lala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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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같이 영화 보실분!!

저랑 같이 영화 보실분 구합니다.
만나서 같이 보는것은 아니고요.ㅎㅎㅎ
일주일에 한편씩 같은 영화를 보고 감상기를 공유하는겁니다.
이름하야

[얼렁뚱땅 영화 스터디 🔨]




영화 리스트는 아래와 같아요.

1주차 (4.30 ~ 5.5) : 킬링디어


2주차 (5.6 ~ 5.12) : 플로리다 프로젝트


3주차 (5.13 ~ 5.19) : 문라이트


4주차 (5.20 ~ 5.26) : 블루 재스민


혼자보기는 조금 무거운 영화들로 리스트업 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이런 작품들을 잘 안보게되고,
보고 나서도 글을 쓰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 스터디로 같이 리뷰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자합니다!!

참여방법은

일주일에 한편씩 해당 영화를 보고

리뷰글을 작성하면 됩니다.


그리고 댓글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으면 합니다ㅎㅎㅎ


저랑 같이 스터디 하고싶으신 분들은
이 글에 댓글 달아주세요!!
톡 만들겠습니다~
15 Comments
Suggested
Recent
저도 참여하고 싶어요
톡에 태그하겠습니다~
태그 되셨나요??
감상평만 잘보겠습니다
플로리다프로젝트랑 문라이트 봣네용
한번더
나머지 같이 하시죠 ㅎㅎㅎ
저요!!
톡에 초대할게요!
앗아....여기에 나온 작품들이 넷플릭스에 서비스가 안되는 작품들이네요 ... ㅠㅠㅠ
@thourock93 엇 ㅠㅠㅠ 왓챠에 있는 작품들로 골랐어요
요르고스란티모스 감독작품은 황홀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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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 (2015)
칼 퇴근 했는데 날씨는 너무나 좋고 이런 날 친구와 술 약속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필이 확 오는 영화가 상영 중이지도 않고 그래도 숙소에는 바로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는 근처 단골 극장에 어떤 영화가 상영 중인지 자세히 검색을 해봅니다ㅎ그렇게 급 번개로 봤던 영화 중 하나가 위 사진의 '로버트 드 니로' 그리고 '앤 해서웨이' 주연의 '인턴'입니다. (굿 초이스ㅠㅎㅎ) 영화는 젊은 나이에 의류 인터넷 쇼핑몰 창업에 성공한 줄스(앤 해서웨이이)사장님이 노인들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하라는 정부의 방침으로 인해 은퇴하여 쉬고 있는 벤(로버트 드니로)을 인턴으로 채용하면서 부터 시작됩니다.ㅎ 처음에는 정부의 방침으로 어쩔 수 없이 인터넷 쇼핑몰 회사에 디지털과는 거리가 먼 벤을 채용하였지만 묵묵히 차분히 그리고 책임감 있게 업무를 수행하는 벤을 발견하게 됩니다.그리고 이러한 그의 언행과 행동에 점점 그를 신뢰하는 동료들도 점차 늘어 나게 되지요. 그러던 중 줄스사장의 운전기사가 몰래 술을 마시는 모습을 목격한 벤은 그에게 오늘은 내가 못 봤던 것으로 할 테니 사장님께 가서 병가를 신청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줄스는 병가를 승낙하였으나 급하게 거래처를 가야 하는 상황이라 근처 길을 잘 알고 있는 벤이 사장님을 모시고 거래처를 가게 되었죠.이 일로 벤은 사장님의 운전기사가 되었고 자연스레 대화가 늘어나게 되었으며 서로의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어려운 고민 있을때 마다 줄스는 벤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고 비록 업무는 사장님이 더 잘알고 있더라도 인생을 더 잘 알고 있는 벤은 '연륜'으로 그때마다 적절한 조언과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벤의 조언으로 회사일의 고민과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도 해결하게 된 줄스.처음에는 정부 지침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벤을 채용하였지만 결국에는 벤에게 '당신은 나의 인턴이자 친구라고' 말합니다.ㅎㅎ 저의 짧은 안목으로 사실 벤은 줄스에게 많은 조언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빠른 디지털 세대에 비록 느리지만 아날로그세대인 벤의 묵묵하고 차분하며 책임감있는 그의 언행과 행동 하나하나가 줄스에게는 조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ㅎ 큰 이슈나 임펙트는 없는 잔잔한 영화이지만 한 번쯤은 꼭 볼 만한 영화 인턴이라 생각합니다^^
심리분석가가 본 영화 조커 심리 분석, 숨겨진 의미, 스포일러 해석
[해당 내용은 유투브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Uso-6Il7sN0 오늘은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 '조커'의 내면을 분석할텐데요 이토록 강렬했던 이유는 우리가 그의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았음에도, 그의 지독히 어두운 내면이 불편함에도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공감은 조커의 내면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가능하고 글을 끝까지 보시면 훨씬 새롭고 풍성한 감동과 자극이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1. "넌 언제나 웃는아이야, 그러니까 항상 남들을 웃게 해주렴 해피" 첫번째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입니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성적 애착을 느껴 아버지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되는 복합 감정입니다. 조커는 이 구조에 강력하게 묶여 있었습니다. 성인이되어 이 구조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동일시를 이루며 아버지의 존재를 수용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최초 조커는 이 구조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있었습니다. 수용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상태로 어머니와 애착관계 속에 강력히 속박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목욕시켜주는 장면 등이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이렇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구조에 완전히 속박된 상태에서 어머니의 기대와 요구는 그의 유일한 생존 방식이 됩니다. 유일하기에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절대 거스를수 없는 신념입니다. 그것은 바로 "넌 언제나 웃는아이야, 그러니까 항상 남들을 웃게 해주렴 해피" 라는 말처럼 웃음. 즉 코미디입니다. 그것이 그가 허락받은 유일한 출구입니다. 어두운 자신의 내면을 가두는 가면인 조커분장의 웃음과 억지로 입을 손으로 찢으며 웃으려는 모습이 이를 상징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강요된 가면때문에 조커는 자신안에 있는 어두운 면을 완전히 억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 억압된 욕망이 강제로 분출되다. 정신적 증상은 언제나 이와같은 억압과 결핍에 대한 잘못된 출구로 만들어집니다. 그의 증상은 결핍이 건드려지는 순간, 즉 억울한 일을 부당하게 당하거나 혹은 배려받지 못하거나, 마음대로 자신을 억압하고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 즉, 애착관계가 무너지는 순간에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무너지는 순간, 그의 억압과 아픈 상처는 병적이며 멈출수 없을만큼 힘든 수준의 웃음으로 표출됩니다. 그것만이 허락된 유일한 출구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어두운 면이자 억압된 욕망은 정신적 압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폭발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영화 처음 시작장면은 아이들에게조차 비참하게 당하고 자신은 어떤 부당한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하지 못하는 존재로 억압을 전혀 분출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다가 이것이 한번에 분출을 당하는 순간이 터집니다. 동료로부터 강제로 건내받은 총으로 지하철에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세남자를 죽이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은 자신은 전혀 계획하지 않았고 주변 상황이 그렇게 만들도록 강제되었기에 강제로 자신의 억압된 욕망이 분출당하게 되는 결정적 순간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억압된 욕망의 다른 출구를 경험합니다. 처음으로 자신의 어두운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출구를 발견했고 그것이 오히려 나답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며 이제는 웃음이 아닌 그 출구가 유일한 허락받은 출구가 됩니다. 3. 자신을 찾으려 발악하지만 결국 광기만이 남다. 그는 자신이 광기에 속박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를 찾고 그와 동일시를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어있던 아버지의 존재를 채우는 것은 결국 거절당하게 되고, 그로부터 채워질 수 없는 좌절과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더 큰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을 사랑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학대당하는 자신을 방치한 마치 그녀의 욕망을 위해 이용당했음을 알게되고. 그녀와의 애착관계 역시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그녀를 죽입니다. 그동안 자신을 봉인하고 있던 유일한 출구마저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더이상 강요된 웃음이 필요가 없어집니다. 여기에 더해, 옆집 여자 소피가 의미하는 상징을 알아야 합니다. 그녀는 자신 내면이 원한 여성적 자아로 따뜻한 감정적 교류를 허용하는 존재입니다. 조커는 지역 사회에서 심리상담을 강제로 종료하면서 더이상 약물을 제공받지 못한 상태가 됩니다. 약을 끊으면서 겨우 참아내던 망상 장애를 막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처럼, 자신이 경험한 것들이 진실이아닌 망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의 양심적 자아, 본성마저 붕괴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막을 그 어떤 것도 사라집니다. 터부가 붕괴되고 진정한 그림자만 남은 정신병적 상태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정신병적인 자신이 기존보다 오히려 더 자신다운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그는 처음에는 TV쇼에 나가서 전 국민앞에서 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때만해도 마지막 이성적 자아가 남아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죽어야 마땅한 존재라는 이성적 죄책감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TV쇼에 나오는 자신의 우상과 같은 존재인 사회자 머레이가 옳은 말을 하는대로 그것을 왜곡하고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역시 위선자이고 죽어야 마땅하다며 자신을 죽이지 않고 자신의 꿈과 같은 존재인 머레이를 쏘아 죽입니다. 이제 조커는 모든 터부를 붕괴시키고 오로지 억압되고 결핍된 상처덩어리, 어두운 그림자 자체만 남은 상태가 됩니다. 그 광기만 남은 모습이 오히려 자신다워서, 그 비정상적인 모습이 너무나 이해가 되기에 불편하지만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조커.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든것일까요? 그일까요? 아니면 그들일까요...
명작의 탄생, '조커'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비도 오는 김에 친구랑 감자탕을 먹었어요. 영화관이 앞이길래 영화도 보러 갔어요.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갔던 하루였네요. 근데, 결과는 대만족이었어요. 10월달 화제의 영화, '조커'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사실 우리는 히스레저의 조커가 더 익숙합니다. 자세한 스토리는 모르지만 범접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크나이트의 배트맨과 비슷한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죠. 처음에 조커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과연 이전의 그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죠. 그런데 직접 보고 온 지금, 저는 2명의 조커를 섬기게 됐습니다. 그도 사람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커는 무자비하고 냉소적이고 살인에 감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과거는 어떠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 작품은 조커의 탄생비화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탄생의 배경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던지는 야유, 인간에게 던지는 물음과 같은 어둡고 깊은 내면의 주제를 다루기도 합니다. 결국 조커라는 캐릭터도 원래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괴물이 된 조커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영화는 설득합니다. 보통은 설득이 안 되고 허무맹랑하나 이번엔 2시간 내내 그의 힘에 매료됐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라 쓰고 고담으로 읽는다 배트맨과 조커의 화려한 싸움을 혹시라도 생각한다면 그런 기대는 접으시길 바랍니다. 액션은 얼마 나오지 않고 폭력보다 조커의 내면에 집중합니다. 허나 애드 아스트라보다 더 깊고 우울하며 관객이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는 작품입니다. 조커의 배경은 평범한 인간이었을지 모르고 순수한 꿈을 지닌 청년이었을지 모르며 자본주의 사회 속 짓밟힌 아웃사이더일지 모릅니다. 즉, 시작은 자본주의 속 우리들 중 누군가입니다. 고담 시티는 철저하게 잇속으로 더럽혀진 현대사회를 압축적으로 축소한 세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폭동을, 누군가는 선동을 시작합니다. 첫 장면부터 중요하다 조커는 장면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가 중요합니다. 관객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세세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첫 장면부터 자신의 얼굴을 칠하는 '해피'는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희한한 장면을 표현합니다. 이는 조커가 아닌 슬프지만 웃을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해피'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점점 사건이 심각해지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해피가 '조커'로 각성하게 되죠. 처음은 순수하고 겁쟁이었습니다. 다음은 충동적이고 분노에 차 있었죠. 또 다음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심판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수동적이고 무시받던 외톨이가 결정을 내리는 능동적인 처형자가 되는 그림을 2시간에 걸쳐 감상하면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한 때는 인간이었던 '해피'가 어떻게 '조커'로 변화하게 되는지, 어느 순간 '조커'로 됐는지 구분지으면 더 흥미롭습니다. 모든 걸 잃어버렸음에도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있었다면 해피는 조커가 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한 구석도 믿지 못하게 됐을 때, 잃을 게 없어졌을 때 마침내 괴물은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도 그저 평범한 인정을 바랬고 평범한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개인밖에 모르는 인간들 틈에서 순수한 인간은 괴물의 탈을 쓰고 변화하게 됩니다. 호아킨의 연기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명품입니다. 조커 그 자체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름과 전율의 연속이었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로 긴박한 장면이 많지 않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빠르게 시간을 녹여냈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깊이 있는 조커입니다. 히스레저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원했던 조커의 모습, 기다렸던 괴물의 탄생, 진정한 안티 히어로의 출현이 이 작품에서 나타났습니다. 스토리도 좋고 연출도 좋고 설득력도 있고 모든 게 좋지만 단순히 호아킨 피닉스 연기 하나만으로 영화를 보는 이유가 충분할 정도입니다. 명대사 천국 조커하면 공감가는 명대사로 유명한데요. 이번 작품에서도 인상적인 명대사를 많이 남겼습니다.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 같은 코미디였어 당신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처럼, 웃기고 안 웃기고도 판단할 수 있는 거야? 코미디는 주관적이야 방금 웃긴 조크가 하나 생각났거든. 이해 못할 거야 조커의 탄생 코미디와 비극, 웃음과 슬픔, 부자와 빈민, 모든 건 반대되지만 동시에 주관적인 것. 하지만 부자와 빈민의 역전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들죠. 그렇기 때문에 조커는 모든 인간이 같은 상태를 경험하길 원합니다. 돈을 뺏어서 빈민에게 나눠주는 의적이 아니라 돈을 태워서 없애버리는 공정한 심판자입니다. 그리고 부자나 빈민할 거 없이 잘못하거나 예의가 없으면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커가 생각한 예의는 상대를 멋대로 판단거나 무시하는 행동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고 룰이 있는 빌런입니다. 무섭지만 싫지 않고, 난폭하나 설득력이 있는 조커를 우리가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우리도 조커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호아킨의 조커, 꼭 영화관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습니다. 청불이라 대박까지는 힘들 수 있습니다만 300만~400만 정도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상 영화 '조커'의 솔직한 리뷰였습니다.
말 그대로, '가장 보통의 연애'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요즘 조커때문에 영화관이 난리입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연속 근무한 소감으론 조커는 악당이고 죽어야해요... 배트맨 도와줘! 오늘의 영화는 말 그대로 평범한? 연애 드라마인 '가장 보통의 연애'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재밌고 사랑에 대한 진지한 자세도 드러났습니다. 많이 웃었고 울컥했던 현실적인 로맨스코미디였네요. 본격적인 솔직리뷰는 아래에서 더 다뤄보겠습니다. 김래원의 힘 최근들어 김래원의 작품 들이 등장해 괜히 뿌듯한데요. 김래원의 힘이란 선하고 신뢰감이 넘칩니다. 그래서 일상의 삶을 그리는 영화에서는 김래원만의 특징이 더욱 잘 삽니다. 이번 작품에서 저는 김기영과 김래원의 하드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 80%이상의 웃음은 이 둘로부터 나옵니다. 김래원 정말 한심한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를 그려내면서도 그만큼 진정성있는 말을 뱉을 수 있는 캐릭터를 소화했습니다. 겉멋만 잔뜩 들어간 힘찬 위로가 아닌 다소 거칠더라도 울컥하게 만드는 바로 그런 힘으로요. 이 영화의 연애관 작품은 정말 현실적인 연애관을 그려냅니다. 누군가는 만남과 이별에 연연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또 이별에 과하게 몰입하죠. 얼핏보면 재훈과 선영이라는 인물로 양립된 두 연애관이 격돌한다는 느낌이지만 실상은 아닙니다. 영화는 오히려 이 둘조차 사실은 똑같은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단지 단계가 서로 다르며 현재 상황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 차이는 다시 영화의 전반적인 전개에 적용돼 서로 모르던 간극이 좁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말에 도달해서는 결국 우리 모두 똑같이 사랑에 약하다는 말로 끝납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고 아픔은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해 2명의 좋은 사람이 만남을 가지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잘못된 만남이나 갈 수록 운명의 상대임을 직감해가는 영화입니다. 재미요소 사실 뻔하고 평범한 보통의 로맨틱고미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인기를 얻는 이유는 장르의 재미에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일단 정말 웃기고 재밌습니다. 배우들의 살아 숨쉬는 연기력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습니다. 사회 풍자적 요소와 플러팅은 익살스럽고도 날카롭습니다. 드라마 속 사랑 이야기는 비현실적이거나 판타지가 아닙니다. 당장 야심한 밤거리 싸우고 있는 몇몇 커플들만 찾아서 봐도 나올 수 있는 플롯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물들의 대사가 공감이 됩니다. 방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 속 상처를 드러내 서툴게 만져주는 느낌입니다. 그거 다 기분 탓이야. 지금은 괜찮은 거 같아도 나중가면 또 억울해. 다른 사람들은 겉으로는 같잖은 위로해준답시고 속으로는 다 너 한심하게 본다고. 그러니까 애쓰지말라고. -재훈(김래원)- 자신의 연애경험에 비추어 봐도 좋고, 연애경험이 없다면 상상해봐도 좋을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주인공들과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요? 보기는 2가지가 있습니다. 재훈과 선영이라는 2지선다가요. 하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어차피 사랑으로 아파하고 사랑때문에 다시 행복해지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단지 용기를 내고 극복할 수 있느냐, 정신 차리고 앞을 볼 준비가 되어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조커로 정신이 혼돈으로 가득차신 분들은 오랜만에 가벼운 멜로영화보면서 기분전환하면 됩니다. 재밌는 영화가 그리운 분들에게 또한 추천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직접 느끼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오늘 리뷰는 짧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상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였습니다.*쿠키영상은 없습니다. 관객수는 200만 정도 예상합니다. (조커가 예상보다 더 큰 흥행을 할 수도 있기에...)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 그리고 신하균
박찬욱 감독의 변태지수 만렙찍은 영화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의 복수 3부작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복수는 나의 것) 가운데 첫번째 작품임 전반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선천성 청각 장애인 류(신하균 분)에게 누나(임지은 분)는 유일한 가족이다.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는 병이 악화되어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얼마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 누나와 혈액형이 달라 이식 수술이 좌절된 류는 장기밀매단과 접촉해 자신의 신장과 전재산 천 만원을 넘겨주고 누나를 위한 신장을 받기로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기로 드러나고. 그 때 병원으로부터 누나에게 적합한 신장을 찾아냈다는 전화가 걸려 온다. “천 만원 있다고 했지? 그거면 수술할 수 있어.” 수술 기회를 놓치게 되어 괴로워하는 류를 보고 그의 연인 영미(배두나 분)는 아이를 유괴하자고 제안한다. “딱 필요한 돈만 받고 돌려주는 거야. 이건 착한 유괴야...” 우연히 알게 된 중소기업체의 사장 동진(송강호 분)의 딸 유선(한보배 분)을 납치하는 류와 영미. 그러나 돈을 받은 날, 류의 유괴 사실을 안 누나가 자살하고 동진의 딸 유선도 우연한 사고로 강물에 빠져 죽는다. 회사 일에만 몰두해 이혼을 당하고 회사마저 어려워진 후 딸에게 생의 전부를 걸었던 동진은 딸의 죽음 앞에 복수를 결심한다. 누나를 잃은 류 역시 자신이 유괴를 택하게 한 장기밀매단에게 응징을 준비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력, 점점 더 잔혹해지는 복수의 반전. 그들의 결말은? 배운 변태 박찬욱의 극단적인 폭력성과 대비되는 잔잔하고 무미건조한 영화의 분위기 때문인지 흥행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호불호도 엄청나게 나뉨 뭔가 주인공들이 이상한 상황들로 엮여버렸기 때문에 "복수! 역시! 통쾌하다! 오예! 죽여!" 이런 느낌보단 "음......(긁적).....흐음...(애매함)...." 이런 감정이 반복된다. 뭐 암튼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카드는 영화 소개 카드가 아니다. 그럼 이 글을 왜 쓰고 있냐고? 그 이유는 이 영화 속 신하균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금의 신하균에게는 큰 관심이 없지만.. 뭐 영화 비추는 아니니까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링크 하나 남기겠읍니다. 암튼 젊은 시절 찬란하게 빛나는 그의 외모는 내 심장을 주먹으로 패고 저 발 밑으로 집어 던진다. 그래도 마냥 좋아.. 난 얼빠니까...으힣 저 에메랄드 빛 머리카락과 투명한 갈색 눈동자가 그렇게 취향을 저격했다. 이 짤은 진짜 신하균이 가보로 간직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인생샷이야. 개인적으로 박찬욱 영화의 불쾌함을 잘 못견디는데 (그 애매한 감정이 너무 오래 지속되서 싫어한다.) 이 영화는 꾹- 참고 다 봤다. 신하균 얼굴 보려고 ^^* 우하하~!~! 젊은 시절의 신하균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이 있다. 막 그런거 있잖아.. 선과 악이 담겨있는 얼굴..?? (오글) 웃고 있을 때는 세상 티없이 맑은 아이같다가도 정색하고 있으면 세상 차가운 얼굴 그런 그의 얼굴이 이 영화와 엄청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뭔가 더 기분이 이상했지만... 긁적 긁적 복수는 나의 것이 개봉된 2002년.... 왜 난 아무것도 모르는 코찔찔이 초등학생이였나... 신하균 그는 왜 늙어버렸는가... 쩝... 야속하게 흘러가버린 세월을 붙잡지 못함에 눈물이 난다.... 암튼 모든 빙글러가 젊고 탱탱한 신하균의 영광의 시절을 알길 바라는 마음에 그의 짤들을 쪄본다.... 젊탱 하균.... 그리워..... 저 건치 미소가 너무 좋다고.... 탱글한 광대도 봐주세요. 우리형에서 생머리에 교복 개치임... 순딩이... 내가 정말 좋아했던 이수영의 휠릴리와 안단테 뮤비의 신하균.. 마지막 영상편지 남기면서 수화로 얘기하는거 눈물버튼이다 (오열) 저 푸른 하늘과 젊탱하균의 조화가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돌려봤었지.. 포스터 디자이너에게 소송 걸어야하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 크리피하지만 이유모르게 귀여운 병구.. 엔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젊탱하균 샷으로. 젊탱하균 is 청량보스 청량보스 is 젊탱하균 이것은 기본적인 공식임 아 그냥 내가 정했음. 그냥 그게 맞음.
[최종 S의 비밀 - ‘유전’에서 ‘미드소마’ 감독판까지] 호러영화사에 새겨질, 완전 새 얼굴(들)
※ 『최종 S의 비밀』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Sequence), 신(Scene), 숏(Shot)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에 <유전>과 <미드소마>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 “우리는 얼굴을 통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 - 자크 오몽 특히 공포의 전도체가 될 때, 얼굴은 유난히 도드라진다. 실제로 관객한테 공포(영화)는 스크린 속 얼굴들이 극단의 표정을 지을 때 완성되고는 한다. 깜짝 놀란, 고통에 찬, 절규하는, 비명의 얼굴. 한 세트로, 흉측한, 광기어린, 무섭게 일그러진, 악마성의 얼굴. 이 과정에서 창조적 솜씨가 빚어낸 얼굴들은 장르의 관습이 돼 지독히도 반복되는데, 대개는 진부하거나 한심한 복사본에 그치고 만다. 아마도 원본 속 얼굴의 맥락을 해석해내지 못한 채 단지 표정 흉내에 급급했기 때문이리라. 그 와중에 여태껏 본 적 없는 얼굴이 등장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장편 데뷔작 <유전>(2017)의 마지막 숏. 피터는 말 그대로 넋이 나가버린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가족들이 ‘악마의 굿판’ 안에서 모두 잔혹하게 희생된 데다, 엄마(애나)는 방금 전 스스로 본인 신체를 훼손했고, 피터 자신의 정신과 육체는 이제 막 악마가 점령할 참이다. 미쳤거나 미치기 직전이거나. 그런데 잊지 말자. 이 빙의 행사는 (악마 측 입장에서는) 거룩한 의식이다. 혈통이라는 가족의 근원이 낳은 지옥도인 동시에, 악(惡)의 계보가 연속성을 획득하는 경축의 시간이다. 살육과 의전이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인 셈. 추종자들은 그들이 섬기는 악마 파이몬에게 ‘지식’이나 ‘좋은 친구’ 따위를 달라고 간청까지 한다. 악의 측면을 모른 체하거나, 악행을 덮어도 될 만큼 파이몬의 명성이 위대하다고 믿는 듯하다. 이때 파이몬은, 누구와 닮았나. 아리 에스터는 피터의 최종 얼굴을 담는 데 적잖은 러닝 타임을 쓴다. 이제 피터는 더 이상 놀라거나 부르짖지 않는다. 그는 압도된 채 무너져 내리며, 다만 악이 스며드는 시간을 얼굴에 새기는 중이다. 77초간 지속되는 이 숏에서 피터는 눈을 단 한 차례도 깜빡거리지 않는데, 생리현상이 불필요한 어떤 초월의 공간으로 넘어간 듯도 하다. 중세 서양 예술에서 얼굴이 주로 신(神)의 형상이었다고 할 때, 탈-인간으로서 피터의 이 얼굴은 성스럽고 선량한 그 기표들과는 조금 다른 버전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 신성한 의식이(었)지만 그 개최를 위해 잔혹한 파괴, 그리고 현혹의 기술이 동원되지는 않았냐는 반문. 물론 고결하고 인자하고 번뇌를 짊어진 듯한 표정들은 그 이면을 가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을 테다. 따라서 피터의 얼빠진 마지막 표정은 위장 작업이 완수되기 직전 단계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거룩함으로 가공되기 이전의 그 무엇, 이를테면 선택된 자 개인의 멸망에 관한 이미지. 전에 본 적 없는 이 얼굴은, 자신이 신인 줄 아는 악마를 맞이하고 있다. 여기 의식이 또 하나 있다. 호르가 마을의 하지제, 그 하이라이트로 9명의 제물이 불에 타는 중이다. 그중 곰 가죽 안에 갇혀 산 채로 타는 이는 대니의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이다. 말 그대로 환장의 카니발. 이 광경에 넋 놓고 울먹이던 대니가, 이윽고 웃는다. 너희들의 이 엔딩이 고소하다는 듯. 영화가 끝난다. 아리 에스터의 두 번째 영화 <미드소마>(2019)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도 학살과 의식은 동전의 양면인 양 들러붙어 있다. 이 기괴한 중첩을 떠안는 자, 이번에는 대니다. 그녀의 경우 혈연과의 단절은 이미 서사 초반 경험했고, 애인인 크리스티안과도 이별 중이다. 전자는 내부의 신경쇠약을 견디다 못 해 발 디딜 판 자체를 깨뜨렸고, 후자는 슬픔은커녕 이 괴이한 마을에 대한 의심조차 나누기 힘들 만큼 둔해빠졌다. 감정의 공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만 보면 차라리 이 모계-토테미즘 사회가 나아 보일 정도다. 인류의 역사는 곧 분화의 역사다. 집단은 부피가 늘어나 갈라졌고 또 그 갈래별로 같은 과정을 겪었다. 최초의 단어가 진화 끝에 백과사전의 체계를 갖췄듯, 인간관계의 망은 넓이와 깊이를 더하고 더해 삶의 양식이 됐다. 어쩌면 인생이란 내가 속한 각 층위의 집단들에서 맡은 바 역할극을 잘해내기, 그 자체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교과서도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정의하지 않았나. <미드소마>의 대니는 그 역할극에서 탈락했고 또 탈락하는 중이다. 이를테면 과거와 미래 가족 모두와 이별하기. 사회적 동물이 타자와 관계를 맺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퇴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대니를 자꾸만 미토스(mythos)의 영역으로 밀어 넣고, 그녀 또한 그 중력장에 적응해간다. 마치 비극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끝내 종교로 빨려 들어가듯이. 다시 한 번, 대니가 이윽고 웃는다. 너희들의 이 엔딩이 고소하다는 듯. 낯선 마을에서 낯선 공포를 느낀 ‘여성’ 주인공이 되레 애인의 죽음을 선택하고 웃음까지 짓는 아마도 최초의 숏. 여태껏 본 적 없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이곳 호르가 마을은 역할놀이가 필요치 않은 세계다. 동일한 믿음과 삶의 리듬 아래 단일 자아로 꿰어져 있기에 관계의 유지나 개선을 위한 어떤 ‘증명’이 요구되지 않는다. 대니의 마지막 웃음은 자신에게 울음만 남긴 그 증명의 기록물, 즉 인물들을 활활 태워버렸다는 안도인 셈이다. 따라서 이 웃음은, 비가역적이며 돌이킬 수 없다. 수 년 간 요동쳤을 그녀의 감정은, 그 진폭은, 이 순간부터 가지런하게 정렬된 하나의 선으로 수렴해갈 것이다. 대니는 백과사전 이전의 시간, 몇 가지 음절만 알면 되는 그곳으로 되돌아갔다. “사물은 그 자리에 있다. 왜 그것을 마음대로 조작하는가?” – 로베르토 로셀리니 로셀리니 감독의 말에 빗대어 보자면, 아리 에스터는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즉 실재하는 두려움의 요소를 관습적 표정 안에 억지로 끼워 넣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전에 없던 얼굴들 – 피터의 ‘흡수’와 대니의 ‘변환’ – 을 포착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물론 우리는 그 덕에 악의 진영이 갖춰지기 직전의 절망적 시간을 목격했고(유전), ‘맹신’과 ‘나 자신으로 살기’가 양립할 수 없음을 지켜볼 수 있었다(미드소마). 무엇보다 대니의 얼굴에서는, 알면서도 가야 하는 퇴행 길에 관한 서글픈 섬뜩함마저 느낀다. 아마도 잠재적으로는 모든 사람한테 열려있을 그 뒷걸음의 문. ‘홈 스위트 홈’에는, 사회 곳곳에는, 문손잡이를 돌리도록 만들, 나락으로 통하는 구멍이 너무 많다. 믿.습.니.까? 영화관 안과 밖의 공통점, <미드소마>나 현실이나 그토록 잔혹한 사건들은 대낮에(도) 일어난다는 것. 그럴 수밖에. 그들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걸 해대니까, 떳떳하니까. 신의 이름을 빌려 침략하고 신의 이름을 빌려 목숨을 뺏고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모두 신의 뜻 운운하는 이들은, 추종자는, 악마는, 악을 행하되 악의가 없다. ⓒ erazerh ------- PS 1. <미드소마> 감독판이 이전 버전과 다른 점은 대니와 크리스티안 사이의 감정선 및 그 굴곡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 정도. 그밖에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몇몇 대사들. PS 2. <유전>의 최종 숏은 사실 77초간의 얼굴 숏이 아니라, 약 3초 동안 나무집 내부를 디오라마처럼 포착한 장면이다. Hail Paimon.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빠른 시사회 후기! '날씨의 아이' 영화 솔직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오늘 오랜만에 시사회 다녀왔습니다. 제가 정말 기다리고 기다렸던 작품이었어요. 게다가 메가박스 MX관이라는 최고 좋은 관에서 감상해서 그런지 시험기간 중임에도 행복한 저녁이었습니다. 오늘의 영화는 신카이 마코토의 또 다른 세계, 영화 '날씨의 아이'입니다. 가장 최근 '너의 이름은'이라는 영화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사실 이전부터 남녀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잘 표현하기로 유명했는데요. 점점 스케일도 커지고 이야기도 흥미로워지는 모습입니다. 시사회로 빠르게 감상하고 온 후기 솔직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압도적 비주얼 전작(너의 이름은)과 비교하는 내용이 다소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최신작이기 때문이죠. 날씨의 아이에서 눈에 띄는 점은 비주얼이 더 화려해졌다는 점입니다. 원래 섬세한 묘사로 명성이 높은 감독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보다 더 화려한 그림으로 영화를 꾸몄습니다. 확실히 판타지적인 요소가 증가하면서 그래픽에도 더 신경을 쓴 모양입니다. 큰 스크린으로 봐서 그런지 몰입이 더욱 잘 됐습니다. 한편, 이번 날씨의 아이에서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반가운 얼굴들도 등장하니까요! 새로운 재미로 즐겨주시면 되겠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여름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은 보통 여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애틋한 사랑이야기, 여름이 배경, 정교한 비주얼이 공통적인 특징인데요. 이번 작품에서도 감독의 이러한 특징들이 잘 녹아들어있습니다. 특히 신카이 마코토만의 여름은 참으로 슬프고도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훔쳤네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애절하게 슬픈 사람 이야기가 날씨의 아이에서 잘 표현됐습니다. 정말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신카이 마코토의 여름에서 쭉 살고 싶네요. 개연성 부족 다만 이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설득력이나 개연성 부분이 취약합니다. 그래서 공허한 부분을 채우려 여러 장치들을 구비해놨는데요. 쓸데없는 요소들로 인해 중간중간 난잡해지기도 합니다. 왜 굳이 이 인물이 있어야할까,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야했는가?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채 영화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내용 예측이 쉽게 되고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영화가 주는 반전이나 임팩트가 부족해졌습니다. 더 슬펐고 더 예쁜 영화였지만 작품이 주는 충격은 부족했습니다. 너의 이름은 양식 한 번 대박을 치고 나니 앞으로의 영화도 '너의 이름은' 양식과 골격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마치 같은 뼈대에 내용만 갈아끼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OST노래들은 전작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좋지만 나오는 타이밍이나 활용도가 너무 비슷합니다. 그리고 도입부 부분 전개나 대사 역시도 이전 작품의 냄새를 지우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초반이 잔잔하다보니 유사한 부분이 더욱 노골적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분명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만 어딘가 익숙한 기분이 드는 건 이 때문입니다. 따뜻한 설레임, 얕은 여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노래와 함께 마음이 설레이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바랬던 부분이 대부분 충족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보통 실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남기는 여운은 생각보다 얕았습니다. 자세히 생각보면 지나치게 일본 특유의 미신에 의존한 감이 있으며, 굳이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나 싶은 의문마저 듭니다. 스포는 하지 않기에 자세한 얘기는 못하지만 '너의 이름은'을 좋아했고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이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저는 한 번 더 볼 의향이 있습니다만, 이전작처럼 흥행하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고 관객수는 100~200만 정도 예상해보겠습니다. 그래도 과연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입니다. 노래와 사랑 이야기로 힐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날씨의 아이'였습니다.
10월 1일 영화의 일기 - '와일드 로즈'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피하기만 하려 했던 주인공이 스스로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진짜 노래는 시작된다. 영화 <와일드 로즈>는 슬픔을 붙들 손이 있고 아픔을 삭일 눈물이 있는 한 우리는 계속, 다시 노래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B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준우승으로 활동을 시작해 노래와 연기 양면으로 주목받고 있는 제시 버클리는 노래하지 않는 순간에도 쌓인 이야기를 언제든 내놓을 것처럼 극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너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봐도 된다"는 응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발판은 누군가의 조력이 아니라 스스로의 다짐이다. 뮤지션 주인공을 다루는 영화의 흔한 도식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와일드 로즈>는 전하려는 이야기를 (사운드트랙에만 기대지 않으면서도) 명확히 담을 줄 아는 영화다. 그러니까, 컨트리 싱어라고 해서 꼭 내쉬빌에 가야만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있는 곳이 곧 방향이자 과정의 중심지이므로. (2019.10.01.) (작년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런던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되었던 작품으로, 국내 개봉은 오는 10월 17일.)
조커
<택시드라이버>와 <분노>가 생각난다. 1 아서는 엄마가 주입하던 대로 '해피'하고 싶었다. 조명을 받는 일(코미디언)이 그렇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었다. 다른 얘기지만 조명은 빛을 다루는 일이다. 하지만 어둠도 잘 알아야 피사체를 잘 보여줄 수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그동안 조커를 비추던 조명의 세기를 낮춘다. 대신 그 뒤의 그늘진 아서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어디에 걸쳐져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그의 고단하고 높은 담을. 2 영화는 조커의 전사를 다루지만 사회현상들의 전사를 다루기도 한다. 그래서 조커라는 희대의 빌런에 심정적 동의를 구한다. 미국에서 모방범죄를 걱정할만 하다. 조커 이전에 아서의 맨얼굴은 다름아닌 우리의 실제 삶이므로. 3 영화가 비추는 그의 분칠된 얼굴은 우습지도, 무섭지도 않다. 서글픈데, 그가 불쌍하지도 않다. 모호하다. 안티테제에 대한 권위의 위선은 밝은 걸까 어두운 걸까? 왜 고담시의 공중보건이 무너졌을까? 아서의 얼굴을 뒤덮은 그 창백한 웃음 역시 위선이라기도, 위악이라기도 어렵다. 아니, 애초에 웃음이라 할 수가 없다. 4 분명한 건, 세상사는 대체로 불분명하더라는 것. 어쩌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아서와 대비되는 브루스, 그들이 물려받은 유산일지도. 지난번 기생충을 보고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이 또 어울리는 것 같다. 좌절과 절망, 저 절로 이어진 오늘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