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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다 : 16. 새로운 친구 혹은 인연 만들기.


한국에서 게이로 살다보면 중고등학교때처럼 친한 게이 친구 혹은 아는 사람이 절실할 때가 있다.
사람이 아주 많은 서울은 당연히 게이도 많으니까 기회가 더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지방에 사는 나는 아마 상대적으로 기회는 적을 것이다.
기회가 적다고 없지는 않다.
보통 주변에 아는 사람도 적고 활동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을 "은둔"이라고 표현하며, 반대로 아는 사람도 많고 친구도 많고 활동도 많이 하는 사람을 "역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은둔도 아니며 그렇다고 역대도 아니다.
두 가지 범주에 포함되지 않을 뿐, 실제로는 저 두 범주 외의 범위에 속하는 사람이 지배적으로 많을 것이다.

재작년의 나는 은둔에 가까웠다가 친구들을 대폭 늘리면서 활동도 많이 했다.
활동이라는 게, 공개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지역의 이쪽 술집 등에 자주 가면서 이쪽 인맥을 넓히고 놀고 하는 그런 일들을 말한다.
활동을 좀 하긴 했지만 역대는 아니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항상 훨씬 더 많았고, 정말 어울리는 사람들만 고정적으로 만나서 놀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 바쁘게 살며 이리저리 현실에 치이면서 연락이 뜸해지고 급기야 연락하는 사람이 2명 정도로 확 줄어버렸다.
한 명은 전에 교제를 했던 친구가 친구소개해주면서 알게 된 동갑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내가 모임을 만들면서 알게 된 1살 형이다.
동갑친구는 현재 타지에서 장교로 복무중이라 자주 보지는 못한다.
물론 대전에 있다한들 자주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1살 형은 예전엔 그래도 종종 만나서 놀았지만 최근들어 나도 형도 너무 바쁘게 되어 정말 카톡도 1-2주에 한 번 할까말까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는 날은 어색한 것 전혀 없는 재미있고 좋은 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시 자주 연락하고 가끔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발전 가능성을 열어둔 사람도 만나고 싶었다.
애초에 연인으로 발전할 사람을 찾는 것은 물론 아니며,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기만 한다면 어떠하리.

예비군. 6년차 훈련이 있었다.
처음으로 핸드폰을 내지 않았다.
아니 웬일로 훈런소에서 핸드폰 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분대장들에게 가방을 주며 알아서 수거하라고 했기 때문에 내지 않았다.
훈련 중 쉬는 시간에 어플을 살짝 들여다봤는데 2명(?) 정도 근거리에 있었다.
일단 퇴소 전에 연락하면 당황할까봐 끝나고 하기로 했다.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씻고
어플을 다시 들어가서 오랜만에 소개 문구도 바꾸고 프로필 사진도 여러장 업로드했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사람들 중 한 명(J)에게 쪽지했다.
프로필에 써놓은 말을 읽었을때 - 당연히 일부분이고 모든게 사실이 아닐수도 있지만 - 그게 상대라고 가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프로필을 읽고 대화가 하고 싶으면 쪽지를 가끔 먼저 하는 편이다.
"안녕하세요" 부터 "오늘 예비군 훈련 받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하며 대화가 오갔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정성이 느껴졌다.
서로 친분을 구한다는 프로필을 가졌고
실제로도 그러한 대화가 오갔다.
성심성의껏 답장하고 질문하고, 질문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이야기나 본인이 가진 사고와 성격, 성향(성관계의 성향 말고)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이 오갔다.
그래서 J와 만날 날짜를 잡았다.
대화를 시작한 지 며칠만에 잡은 날짜였지만 생각보다 서로 스케줄이 안맞아서 거의 2주뒤의 날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떠한 날 저녁즈음에 서로 시간이 맞아서 일정을 살짝 조정하여 미리 만나버렸다.
처음에는 존댓말로 서로 존칭을 하고, 그럼에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도서관 앞에서 만나 함께 걸어가며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하며, 카페로 향했다.
파티션이 있어 더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카페였고,
역시 이 곳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끼워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랑 비슷한 점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예전에 만났던 친구의 어떤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 예전에 만났던 친구의 모습이라는 것이 '그' 만이 가지는 독특한 모습은 아니지만 너무 강렬했던 탓에 생각이 나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잊고 이 앞에 있는 사람, J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진지한 이야기 솔직한 대화, 예의가 사라지지 않은 대화. 첫만남에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건 아마 나의 특성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과거에 비해 성격이 변하고, 또 많은 일을 겪다보니 처음에 누굴 만나더라도 3시간, 4시간 상대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그 시간을 상대가 좋은 시간이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카페에서 J가 먼저 물었다. 존대하는 게 편한지 반말로 하는 게 편한지. 결국 서로 반말하기로 합의보았고 바로 말을 놨다.
사실 J는 나보다 1살 많은 형이라서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J도 자기보다 나이가 8살 어린 동생과도 말놓고 야야 하며 지낼 정도로 나이차이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어서 서로 말 놓는게 나은 것 같았다.
길게 보았을때, 계속 연락하고 지낸다면 언젠가 당연히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되어있을테니 그 시기를 당겼다고 생각하자.
카페에서 2시간정도 이야기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먹으면서도 이야기를 했고, 저녁먹고나서 소화시킬 겸 오래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만에 너무 편해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만난 J도 오늘 좋은 시간이었다고, 내가 이야기를 많이 이끌어가서 대화 참 많이 했다고 했다.
나는 J가 하는 말을 듣기전까지 내가 대화를 리드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랬나보다.
산책도 끝이 날 무렵 J가 물었다.
"우리 번호 교환할래?"
살짝 당황했다. 나에게 먼저 번호교환하자고 묻는 사람이 많지 않았었고 J가 생각보다 크게 말해서 놀래버렸다.
나의 반응을 본 J는 서둘러 말을 바꿔 "오늘 당장이 너무 빠르면 다음에 만나서 번호 교환할까?" 다시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오늘." "오 늘" "지 금"
한 글자 한 글자 강조하듯이 오늘 해야한다는 의지를 내비췄고 형도 당황했지만 좋았다.
바로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조심히 가라는 카톡을 남기자마자 J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이렇게 전화를 빨리 건 사람은 또 처음이었지만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냥 집가는 길 심심하지 말라고 전화했다고 한다.
나는 집이 가까워서 금방 도착했고 조금 더 이야기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J. 내가 첫눈에 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첫눈에 반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나는 J를 적어도 친구로서 놓치고 싶지 않다.

이번에 어플 프로필과 사진을 수정하고나서
처음에는 이전과 똑같이 연락이 오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일주일 새에 거의 2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쪽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대부분이 역시 쪽지 한 두번 오가고 연락을 접거나.. 사진 공개 후 나를 차단하거나ㅜ..

유일하게 연락을 주고 받는 건 J다.
어플로 대화를 하지는 않고 전화나 카톡으로.

새로운 사람을 알게되고 친해지는 과정은 정말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막상 만나면 분명히 쉬운 부분도 있는 것 같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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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빙글 들어와 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런 비슷한 글을 가끔 써보고 싶은데요. 추천해줄 만한 게이 커뮤니티나 매거진 앱 있을까요?
저도...다른 커뮤니티는 잘 모르겠어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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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게이 어플은 역시 잭디와 딕쏘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나인몬스터나 블루드, 써지 등 종류가 굉장히 많지만 한국에서는 그 사용자가 드물다. 또 각 어플마다 이용자들의 성향에 대한 색이 뚜렷한 느낌이 있다. 잭디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게이들이 이용하며, 한국에서도 매우 많이 사용되는 반면, 딕쏘는 거의 국내 전용으로(외국인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 한국에서만 사용된다. 한국에 있을거라면 이 2개만 사용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둘의 차이가 있다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잭디에 비해 딕쏘는 더 연령대가 낮다는 느낌이 있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으로 구성된 느낌? 내가 처음 접한 어플은 잭디와 딕쏘였고 꽤 오래 이용했다. 애인이 있을땐 보통 지우고 없으면 깔고.. 반복되는 생활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어플을 하는 이유를 꼽자면 1. 친분 구하기 2. 애인 만들기 3. 번개 4. 대화 5. 눈팅 이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NPNC - no picture, no chat 이라는 말이 흔하게 있는 만큼 자기 프로필 사진에 얼굴이나 몸을 나타내는 사진이 없이 풍경이나 캐릭터로 해놓으면 차단당하기 쉽다. 얼굴을 알고 대화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는 여론이 크기때문. 또 많은 대화를 하고 막상 만났는데, 알고보니 노식 - 이상형이 아닌 경우 - 이라면 얼마나 김이 빠지는가.. 외모지상주의와는 약간 다르지만 추구하는 이상적인 외모는 다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진교환을 하다보면 보여주자마자 차단을 당하기도 하는데, 마음이 아프지만 차라리 그게 낫다. 마음에도 없는데, 의미없는 대화를 이어나가며 시간을 소비하는건 좋지 않으니까.. 물론 친분으로 친하게 알고 지내는 관계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다들 궁극적으로 애인만들기가 목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확실히 해야한다. 어떤 사람 찾으시나요? 어플 프로필 사진에 나도 얼굴 사진 몸 사진 다 올려봤지만 확실히 몸 사진을 올리는 경우에 쪽지가 더 많이 온다. 번개하자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사실 몸 사진 자체가 어떻게보면 섹스어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근데 나는 섹스어필이 아니라... 그냥 운동을 종종 하는 편이라 불특정 다수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올린다. 왠지모를 희열이 있어서 올리지만 번개쪽지에 못이겨 곧 내린다. 딕쏘이는 또 popular라고해서 인기있는 사람들 순위가 매겨지는데, 몸사진으로 20위 안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한 적이 있다. 뿌듯... 많은 사람들이 프로필을 방문하고, 찜을 누를수록 순위가 올라간다. 방문자수도 천 명이 넘어가면 정말 엄청난 희열을 느낄 수 있다(나의 경우). 어플을 하며 몇년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다. 첫애인이 그랬고, 지금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이 그랬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플을 통한 만남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오래 만나야 3개월? 정도였다. 하지만 어플을 통하지 않으면 정말 게이인 성향의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는가....물론 다른 경로도 있지만 가장 큰 경로는 어플이라는 의미다. 외국인도 만날 수 있었다. 생각외로 게이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해보면 대체로 외국인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은 걸 알 수 있는데, 나는 아직 이유를 모르겠다. 그저 이상형이 한국 사람에 국한되는건가 싶은데, 외국인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정말 매력있는 사람이 많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만한 영어나 외국어 실력이 뒷받침한다면야 마음만 맞으면 만나지만 그게 아니라면 솔직히 연애가 힘든건 사실이다. 나도 기본회화만 가능하고, 읽고 쓰기가 익숙한 사람이라 듣고 말하기가 부족하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면 읽고 쓰기가 아니라 듣고 말하기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번개로 끝낼 관계면 전혀 문제될 게 없지만 애인으로서는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고, 표현하고 싶은 말이 그대로 말로 전달이 안되니까 문제가 발생한다. 사소한 말, 아무 말, 말장난도 쉽지 않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되다보면..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기보다는 벽이 생기니까 오래 못간다. 나는 특히 잭디를 많이 하는 편인데, 유독 나이차가 많이 나는 아저씨들과 외국인들에게 쪽지가 많이 오는 편이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러하다. 그렇게 귀여운 것도 아니고 나이도 애매하고 ...어떻게보면 감사한 일이지만 왜 그런지는.. 딕쏘는 계정도 지우고 안하고 있다. 나는 사실 너무 어린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군대도 다녀왔으면 좋겠고 나이차도 얼마 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비슷한 상황인 사람을 선호하다보니 딕쏘랑은 맞지 않는 면이 컸다. 어린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건 아니지만 여태까지 연락해본 어린 친구들은 모두 안맞았다.(1-2살 차이는 또래로 생각하지만 그 이상 차이는 어린 친구의 범주) 외로울때 어플을 더 많이 하지만 어플을 하다보면 더 외로워지는 경향이 있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외로움이 나쁜 감정은 아니지만 그냥 외롭다보면 사는게 재미없어져서.. 사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지 않을뿐더러 오랜 연애 경험으로 혼자 생활하는게 나쁘지는 않다. 이따금씩 좋았던 시절이 떠올라 그립기도 하고, 앞으로 또 그런 연애를 해볼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몸이 좋다 섹시하다 멋있다 이런 내용의 쪽지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잘생겼다 혹은 훈남이다 이런 쪽지를 받으면 어색하다. 난 정말 잘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막상 만났을때 상대가 기대를 하다가 내 얼굴보면 실망할까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렇다고 못 나온 얼굴 사진을 올릴수도 없고... 난 그래도 나를 꽤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직 세상엔 많은 남자가 있고, 많은 게이가 있으며 내가 만나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테니 기회는 많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 하나가 없으랴
선량한 차별주의자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예전에 인종차별에 관한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그때 내가 발표했던 내용의 중점은 적극적인 차별이 아닌 소극적 차별,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의 차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 특히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누군가 지하철에서 자신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움츠러들고 차별받는다고 느끼게 된다는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아 그런 내용으로 구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떠올랐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언뜻 보기에 말이 안 되는 단어 같다. 선량한 사람이 어떻게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적극적인 차별이 아닌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가하는 차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더라도 어떤 말이, 어떤 행동이, 어떤 시선이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자신도 모르는 새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결정장애라는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쓴 저자는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들었다.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그 한마디로 저자는 이 결정장애라는 말이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들릴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던 자신의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사과한 후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에 수많은 차별이 숨어 있다. 결정장애는 물론이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은 남자에게 하는 게이 같다는 말이나 급식충, 맘충 등의 혐오표현은 물론이고 흑형, 백형과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혐오의 의미로 쓰는 표현이 아닐지라도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차별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지라도, 차별에 반대하는 어떤 선량한 사람이라도 무지로 인한 차별적 언행을 일삼을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에 대해 계속 공부해야 하고 알아가야 한다고,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과 다른 계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인식 밖의, 소극적 차별 들에 대해 낱낱이 드러낸다는 것이다. 성별, 인종, 성적 취향, 재산, 사회적 명예, 나이 등 수많은 조건들에 대해 다른 계층의 사람들, 상대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계층의 사람들이 기득권층에게는 전혀 차별 같아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열등감을 느끼고 차별로 받아들이는지를 서술한다.(실제로 많이 찔리기도 했다.) 놀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 차별이 산재해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고 또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좁은 의미의 적극적인 차별(KKK 단, 동성애를 반대하는 종교 집단)이 아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넓은 범위의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첫째는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논의해야 할 방안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조금 부족하다. 책에서는 종교 집단의 퀴어 축제에 대한 반대 운동, 여성의 직종 및 노동 대가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하면서 퀴어 축제를 허가해야 하고, 여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직종에 대해 여성 할당제를 시도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는데 필자는 그 부분에 대해 아주 조심스러운 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는다. 성적 취향이란 것은 누가 반대하고 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취향 문제일 뿐이지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도대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퀴어 축제 현장에 대해서는 솔직히 찬성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퀴어 축제가 동성애자에 대한 사람들의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퀴어축제 참가자들의 복장을 보면 거의 비키니에 가까운 복장이나 아예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SM 플레이에 나올 법한 복장을 입기도 한다. 또한 간식들도 여성이나 남성의 성기 모양 과자나 빵 등을 구워서 팔기도 한다. 도대체 왜 퀴어 축제는 그런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야만 하는가? 평범한 동성애자들은 평소에도 그렇게 노출이 심한 복식을 즐겨 입고 집에서 남성기, 여성기 모양의 간식을 만들어서 먹는가? 동성애자 중에도 노출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으며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남자지만 여성의 복식을, 여자지만 남성의 복식을 입는 사람도 있고 중성적인 의상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퀴어축제를 보면 전자의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런 것들이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계속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필자는 과거 LA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퀴어 축제에 가 본 적이 있고 몇 년 전의 축제이기에 현재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퀴어 축제가 아니라 이성 연인 혹은 모든 커플들의 사랑을 주제로 한 축제더라도 사람이 가득 붐비는 축제 거리에서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거나 속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SM플레이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사람들이 주목을 받고 주류가 되는 축제, 남성기나 여성기 모양을 한 간식들을 파는 축제에는 가고 싶지 않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퀴어 축제가 과연 모든 LGBT들을 대표할만한 축제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여성 할당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필자는 여성 할당제가 남녀 간 직종의 차이, 노동 대가의 차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적용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남성 비율이 높은 모든 직업에 여성할당제를 적용한다면 그로 인해 그 직업들을 가지게 된 여성들의 자격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근무하기 위한 객관적인 최소 기준을 측정할 수 있는 직업, 예를 들어 의사나 변호사처럼 시험을 봐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직업들의 경우 그 최소 기준을 만족시키는 범위 안에서 여성할당제를 적용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러한 객관적 최소 기준을 정할 수 없는 직업들의 경우 문제가 된다. 국가의 공인된 시험, 혹은 자격 검증 절차 같은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기 힘든 직업들의 경우 무조건 여성을 절반 이상 뽑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면 그중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런 경우를 고려하여 어떻게 여성의 최소 비율을 할당하면서도 그 안에서 업무 수행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논의와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 두 번째는 너무 모든 것을 차별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는 부분이다. 예멘 난민의 수용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우리가 무비자 입국을 막은 것이 과연 차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분명 차별로 인한 부분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라는 것은 애초에 어떤 지역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고 다른 집단으로부터 불공정한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국가라는 것은 언제나 그 나라 국민들의 입장을 가장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고 예멘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도적 차원에서는 맞는 일이더라도 국민들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제재하는 것 또한 국가의 일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사이가 좋은 국가가 있고 나쁜 국가가 있다. 어떤 나라에게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어떤 나라에게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도 차별 때문일까? 국가 간의 이권 다툼, 영토 문제, 외교 정책 등 많은 것들이 개입된 문제이고 그 속에 차별도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차별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 차별을 없앨 해결 방법은 국가라는 것을 없애고 전 지구를 하나의 통합된 집단으로 만드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차별이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하지만 그것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만이 우리가 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책 속 한 문장 : 생각해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게이다 : 7. 커밍아웃 스토리
요즘엔 확실이 예전에 비해 이쪽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나아졌다. 내가 체감할 수 있을만큼 정말 많이 좋아졌다. 물론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의 첫 커밍아웃. 고3 수능이 끝난 시점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여사친에게 고백했다. 약속을 잡은 시점부터 말해겠노라 다짐하고 발걸음을 나섰지만, 생각대로 입에서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배스킨 라빈스에서 파인트인지 쿼터였는지 싱글이었는지 먹었던 아이스크림 종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긴장되던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하려던 말을 잊은건 아니지만 입밖으로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다른 이야기만 하고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시간을 보낸 뒤 헤어지던 무렵,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어 갈라지기 직전에 이야기했다. "나 게이야." 심장이 터질듯하면서도 발화의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저 말을 툭 던지고 빠르게 이동했지만 문자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면대면으로 이야기를 제대로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면서도 내심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야기를 듣고 미소짓던 친구. 문자로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친구. 덕분에 학교생활도 재미있게 즐겁게했지만 앞으로도 더 가깝게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며 지금도 연락 잘 하며 지내고 있다. 그동안 살면서 주변 친구 20명정도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모두 잘 이해하고 잘 지내고 있다. 사람을 거르고 거르고 차별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주변에 말할 수 있게 해준 친구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내 주변에도 호모포비아인 친구가 있다는 것이며 그런 친구들에게는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대부분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남달랐던 경험이 있다. 바로 친 형에게 말한 것. 형과 나는 1살 차이로 유일한 형제로 남들이 그러하듯 어릴때부터 많이 싸웠다. 하지만 형이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대화가 엄청 줄어버렸고 사이가 좀 멀어졌다. 이상한건지 당연한건지 형이 군대를 가면서부터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다. 말수도 늘고 장난도 치고, 또 형이라고 무언가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이 상태가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다. 드물게 같은 버스를 타면 그럴 생각도 없지만 아는척 하지 말라고 장난스런 카톡을 보내기도 한다. 26살 가을 어느날, 형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저녁에 둘이 같이 술먹자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형이 무언가 알아버린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왜 술을 먹자고 하는걸까?' 살면서 형이 먼저 같이 술 먹자고 한 것이 애초에 처음이었으니까 별 생각 다 하게 되었다. 무슨 사고를 친 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이 있는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를 알아버린건지. 많은 생각을 품고 긴장하면서 컬투치킨으로 갔다. 형이 먼저와 앉아 있었고, 여기 맛있다며 미리 시켜놨다고 했다. 나의 첫마디는 왜 갑자기 술먹자고 한거냐고. 이러는거 처음이라 신기하다고 였다. 형이 대답하길 그도 이런 적이 이전에 없었기 때문에 '그냥' 처음으로 같이 마셔보고 싶었다는게 전부였다. 긴장이 풀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꽤 오래했다. 형은 모르지만 아빠엄마 그리고 나만 아는 이야기를 해주면 진짜냐고 충격도 받고..ㅋㅋ (원래 형이 아빠엄마랑 대화가 많지 않아서 잘 모르기도 하고, 나는 갑자기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다보니 꽤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형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들은 어릴때부터 니네 형제는 여자 안만나냐고 둘이 무슨 게이형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자기는 얼마전에 이런저런 사유로 만나기 시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지만 난 이미 헤어진 것을 알고는 있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메세지보면 답이 나오므로.. 형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무슨 배짱인지 몰라도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에 나는 대답했다. "나는 맞아." 형이 놀란 눈으로 "뭐?"  했다가 한 번 더 "뭐??" 그랬다. 그래서 다시 말해줬다. "지금은 내가 남자친구가 없어서 애매하지만 남자 좋아한다"고. 형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어쨌거나 형제니까 날 때리거나 상종을 안한다거나 자리를 뜨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흥미로운 시선으로 날 봤다. 형은 "타이밍 좋게 잘 말했네." 라고 말했고ㅠ우린 대화를 이어나갔다. 형도 과거에 비해 현재는 많이 유해지고 생각이 넓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다만 아빠 엄마에게는 당장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건 나도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친가족 중에 비밀을 터놓고나니 정말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고 전보다 편해졌다. 아마 적지 않은 이쪽 사람들의 작지 않은 고민이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주변에서 잘 받아들이고 잘 지내주어 생각보다 끝내주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Call me by your name
상당히 70-80년대 프랑스 영화스러운(특히 에릭 로메르) 분위기가 나는 이 독특한 영화의 무대는 83년인데, 원래 원작 소설은 87년이었다고 한다(참조 1). 감독의 말에 따르면 83년은 이탈리아가 공식적으로 1970년대를 죽인 해였다. 다만 다들 이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성장기의 사랑, 혹은 동성애 얘기만 하니 나는 좀 다른 측면을 얘기하겠다. 과연 철저하게 외부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 안 곳곳에 이탈리아 현대사에 대한 은유가 녹아있어서다. 가령 읍내에 있는 선거 포스터에 등장하는 삼색 횃불을 보셨을 것이다. 궁금해 하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자마자 알겠더라. 녹색과 하얀색, 빨간색 횃불은 바로 Movimento Sociale Italiano, 그러니까 무솔리니의 잔당이 만든 정당이다. 화면에 잘 나오지 않지만 주인공들에게 물 떠주는 할머니 댁에는 무솔리니의 사진/그림/포스터가 걸려 있던 것으로 추정되고 말이다. 게다가 이때 이탈리아는 중대한 격변기를 보냈다. 바로 베티노 크락시(Bettino Craxi)가 총리에 올랐기 때문이다(1983-1987). 베티노 크락시는 전후 이탈리아 최초로 좌파/사회당 출신 총리였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손님들이 자꾸만 5당체제를 얘기하면서 크락시를 믿느냐 마느냐 갑론을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게 바로 1981년부터 1991년까지 이탈리아의 마지막(...) 좋은 시절을 보냈던 5당체제(Pentapartito, 참조 2)를 뜻한다. 자, 1983년이면 미국과 영국은 각각 레이건/대처 시절이었고, 프랑스는 공산당이 여당에서 쫓겨났으며, 이탈리아는 공산당에 대항하기 위한 5당체제에서 사회당이 대표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베티노 크락시는... 오늘날의 베를루스코니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동안 불법이었던 지방방송의 전국방송화를 허용하는 이른바, “베를루스코니 법(Decreto Berlusconi, 참조 3)”을 적극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현대의 문제 투성이 이탈리아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그 당시였다. 즉, (아마 유대인 지식인 가족이기에 더욱 좌파였을) 엘리오(참조 4)는 1983년에 이탈리아에 새로 탄생한 크락시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인 올리버는 미국을 상징하고 말이다. 애초에 크락시 정부와 레이건 정부는 어울릴 수가 없었다(참조 5). 하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도 그렇고 엘리오도 그렇고, 그들은 계속 미국을 동경하고 있다. 후속편은 아마 비포어 선라이즈 방식으로 나올 것이며(참조 1),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가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80년대 동성연애 커뮤니티를 달궜던(!) 주제인 AIDS가 전혀 거론이 안 됐다는 점이다. 혹시 올리버가 보여줬던 피자국, 혹은 엘리오의 코피가 관련 있을까? 뭔가 예상치 못한 비극이 나올 수도 있겠다. 모르겠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작은 놀라움이랄까? 루이 가렐의 여동생인 Esther Garrel이 나온다. 그리고 정말 티모떼 샬라메(Timothée Chalamet)는 떠오르는 스타가 맞다. 너무 잘했다(참조 6). ---------- 참조 1.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Director Luca Guadagnino on Why ‘Call Me by Your Name’ Is Making Everyone Cry(2017년 10월 13일): http://observer.com/2017/10/interview-luca-guadagnino-on-why-call-me-by-your-name-makes-people-cry/ 2. 다음과 같다. • Democrazia Cristiana (DC); 기민당(94년 해산) • Partito Socialista Italiano (PSI); 사회당(94년 해산) • Partito Socialista Democratico Italiano (PSDI); 민주사회당(98년 해산) • Partito Repubblicano Italiano (PRI); 공화당 • Partito Liberale Italiano (PLI); 자유당(94년 해산) 3.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베를루스코니는 원래 비디오 테이프를 여기저기 운반하는 식(1980년대 초임을 감안하시라)으로 전국방송을 (상당히 불법적으로) 해오다가 이 법 덕분에 본격적으로 방송 독점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베티노 크락시는 실제로 베를루스코니의 절친이었고, 사회당 해산 후 사회당의 많은 의원들이 포르차 이탈리아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어차피 베티노 크락시는 마니 풀리테 건과 관련, 일종의 뇌물이 연루된 배신 사건인 탄젠토폴리(Tangentopoli) 스캔들로 인해 명예롭지 못하게 정치계를 퇴장했다. 영화의 등장 손님들도 5당체제가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계속 떠들었었고, 특히나 “베티노가 ‘법을 만들겠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무나 상징적이다. 4. 당연히 스펠링은 Elio일 텐데, 영화 안에서 중요한 언급이 나온다. 아랍어 연원인 단어들이 실제로는 그리스어 연원이라는 지적이다. 엘리오를 그리스어로 쓰면 Helio(호머 시대 희랍어는 약간 다르지만 고대 그리스어로는 Ἥλιος), 이는 태양이라는 의미다. 내친 김에 다른 주인공의 이름인 올리버(Oliver)의 그리스어 연원을 추적하면 재미나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름 아닌 엘레우테리오스(Ελευθέριος), 즉, “에로스”다. 태양과 에로스인 셈. 5. 가령 1986년 미국이 리비아를 폭격하려 했을 때 크락시 정부는 미국에게 공군 기지 이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6. 어차피 모국어인 불어와 영어 연기는 그렇다 치고, 이탈리아어도 연기할 만큼 하는 것 같다. 이탈리아어는 이 영화 때문에 배웠다고 한다. TIMOTHÉE CHALAMET(2017년 6월 2일): https://www.interviewmagazine.com/film/timothee-chalamet#_
중 1때부터 지독하게 짝사랑하던 선배가 있는데
한 살 연상인데 농구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거든 되게 귀염상에 세심해서 처음부터 호감이 갔었어 동아리 선배들 중에서도 처음으로 말 텄고 대화도 잘 통해서 되게 친하게 지냈어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나는 동아리를 그만뒀고 나는 더 이상 선배랑의 연락이 끊겼어 선배도 연락 잘 안 하는 성격이고 해서 더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어 그런데 선배가 너무 보고 싶은 거야 전처럼 다시 얘기도 하고 싶고 그래서 용기 내서 연락을 시작했어 선배도 전처럼 잘 받아줬고 이때부터인가? 둘이서 엄청 친해졌어 흔히들 말하는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인 분위기가 흐르는 거야 맨날 같이 하교하고 집도 드나들고 스킨쉽도 자유로웠어 근데 이맘때 즈음 내 친구도 그 선배 좋아한다고 하는 거야 그거 듣자마자 내심 선배가 날 좋아해줬음 싶으면서도 겉으로는 친구를 밀어줬어 그렇게 어영부영 선배는 졸업하고 친구는 선배한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또 다시 연락이 다시 끊겼다가 내가 미련을 못 버려서 선배한테 연락 계속 하고 에프터 만들고 플러팅 걸고 떠보기도 하고 한참을 했는데도 반응이 별로 없는 거야 그래서 마지막으로 반 포기 상태로 "나 중학교 때 잠시 선배 좋아했던 거 알아요?" 하고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선배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나도 중학교 때 너 좋아했던 거 알아?" 하고 물어보더라고 서로 얼굴도 못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선배가 또 묻더라고 여전히 좋아하냐고 내가 고개 끄덕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해서 결국 지금 사귀고 있어 현재 고1인데 얘들아 진짜로 좋아하면 티 많이 내고 직진하는 게 답이다 지금 너무 행복하게 연애하고 있어
나는 게이다 : 12. 주절 주절 솔로 라이프
이런 경우에는 솔로라는 말보다는 싱글이라는 말이 옳은 표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솔로라는 단어를 다들 많이 사용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싱글라이프가 된 지 어느덧 몇 개월이 지났어요. 사실 연애를 할때와 하지 않는 지금, 저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생활패턴에도 큰 변화는 없었고 단지 더 솔직하고 더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차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정신적인 차이는 정말 큰 것 같아요. 물론 저라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크게 의존하거나 제 마음 속에서 매우 커다란 부피를 차지하도록 하지는 않아서 공허함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떤 상황에서, 종종, 가끔씩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결국 혼잣말이 되어버리는게 아쉬울뿐. 어쩌면 함께 있을때 느낄 수 있는 좋은 감정이나 편안함, 전율에 대한 느낌을 잊어버려서, 지금 상황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감>을 잊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요 근래에 들어 마음 속 깊이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난번에 좋아한다는 내용의 글에 등장한 사람 맞습니다.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냥 좋아하면서 잘해주면서 말없이 부담주기보다는 좋아한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마음대로 좋아하려고요. 딱히 싫다 좋다 그런 반응은 없었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내 마음 편하자고 일방향으로 말을 한거지만 덕분에 마음은 많이 편해졌어요. 당장 사귀거나 더 가깝게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는 없어요. 서로 너무 먼 거리에 떨어져있고, 하는 일이 너무 달라 실제로 당장 만나기에는 무리가 있기도 하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이 관계와 마음이 그대로라면 그땐 만나자고 해야겠어요. 지금은 대학원때문에 핑계는 아니지만 정말 시간이...그렇습니다. 자취를 시작한지도 2달이 꼬박 다 되어가는데 정말 별 일이 없어요. 보통 어플에서 자취하는 사람들은 그걸 많이 어필하는데 저는 어필할 수가 없어요. <자취> 혹은 <장소유> <장소o> 이런식으로 많이 하는데.. 딱히 집에 모르는 누군가를 들이고 싶지도 않고 장소가 있다한들 ... 제가 없어서요..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당분간은 혼자 살지만 정말 혼자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 아마 누군가를 이 타이밍에 만나게 된다면 너무 빡셀 것 같아요. 빡셀거에요
나는 게이다 : 10. 부담스럽게 하지마시오
작년 12월에, 다시 혼자가 된 지 좀 지났을때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정말. 대학원 입학전부터 미리 들어가서 연구실 생활을 하기도 했고 당장 내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므로 깊은 관계는 부담스러웠다. 그저 가끔 만나 밥먹고 이야기하고 카페가고 영화보고 일상적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찾고 싶었다. 이런 부류의 친구들은 항상 있지만 의도치 않게 항상 멀어지고 떠나가고 잊혀지므로 다시 혼자라고 느낄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어플을 다시 깔고 친구 탐색에 나섰다. 번개 쪽지는 가볍게 거절하고 인사엔 인사로 답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내 결국 서로의 목적이 다르면 대화는 순식간에 끊긴다. 예전만큼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어 이렇게까지 굳이 어렵게 친구를 찾아야할까 의문이 시작될 무렵이면 신기하게 하나 둘은 연락이 이어진다. 나의 성향이라고 생각하는게 하나 있다면 한국사람도 좋지만 외국인도 친구로 참 좋더라. 어차피 살아온 환경과 상황이 다르다면 외국인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웃음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다만 관계가 깊어지면 안된다. 깊은 관계일수록 심도있는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외국인의 경우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연애로까지의 발전은 한국인에 국한되는게 나의 특징(?)이다. 12월 말에 연락하고 지내게 된 사람이 바로 미국인이다. 흑인이기도 하고. 흑인 친구는 처음이라 그저 설레긴 했다. 친구로 지내기에 나쁜 사람은 많지 않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만큼 어쩌면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이었고, 한국어도 꽤나 잘 구사하는 사람이라 더 좋았다. 애초에 나는 연애가 목적이 아니었고(연락을 시작한 목적이 처음에 연애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연애 관계로 발전할 수는 있지만) 친구가 필요했기에 충분했다. 투썸플레이스에서 처음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사람이 보기에 외국인들은 다 똑같다고 느낄때가 많고,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구분 못할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리라. 나도 그를 처음 보았을때 그냥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비주얼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느낀바를 말했다. 영화배우같다고. 그냥 평범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분명한 것은 이 사람도 굳이 한국사람이랑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 것.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게 너무 좋았다. 진짜 카페에서 3시간 정도 이야기한 듯 했다. 그 사람도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굳이 저녁을 사겠다고.. 아마 그래서 도미노 피자인지 피자헛인지 미스터피자인지 미스터피자 같다. 미스터 피자에서 피자를 10분만에 먹고 나왔다. 나의 버스 막차 시간이 그랬고.. 가게 영업시간이 그랬다. 급하게 먹고 나와서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줬다. 뭐랄까 외국인과 작별하는 인사는 포옹이 좋을까 하여 가볍게 포옹하고 나중에 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 날부터 그와의 카톡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카톡 빈도가 높아지고 연구실때문에 내가 답장을 못해도 카톡은 쌓이고 이런 질문했다가 내가 답하기도 전에 다른 질문을 던져놓고... 엄청난 관심을 받다보니, 더 가까워지기 전에 꺼리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물론 나는 대전에 살고 솔로여서 크리스마스가 큰 의미는 없었고 그 날도 연구실을 가야했고 특별한 약속이 없어서 그와 만났다. 선물을 줬다. 무언가를 정성스레 만드는 것을 좋아하서 뭘 좀 만들어줬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해줘서 기쁘긴 했다. 그 후로도 여러번 만나 식사를 함께했고 영화도 봤다. 어느날 갑작스레 나에게 무슨 말을 했다. 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풍기는 느낌과 뉘앙스에서 바로 나는 무슨 말을 하려나보다 알았지만 아니길 바라며 이야기를 했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렸다. 분명히 예전에 한국인이랑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왜 이러는건지.. 멋쩍은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자꾸 대답을 강요한다. 한국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느끼는대로 솔직하게 답했다. 나는 그냥 좋은 친구사이면 좋겠다고. 난 아직 어쨌거나 학생이고, 내가 자리잡을때까지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돌아온 답변은 날 더 당황하게 했다. 기다리겠다고, 지금처럼 일단 지내자고. 부담스러웠지만 더 이상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주는 애정만큼 되돌려줄 수도 없고 의도적으로 그만큼 되돌려줄 생각도 없기에 내가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물론 억지로 좋아하려고 해본 적도 없긴하다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난 그저 친구가 필요했고 그 이상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날아오는 카카오톡 메세지에 답장을 하기는 하지만 나의 대답은 점점 짧아지고 1차원적으로 변해간다. 내가 그럴수록 그도 섭섭해하리란걸 잘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한 쪽의 마음이 균형에 맞지 않을만큼 커져버리면 다른 한 쪽은 당황하게 되고 마음이 붕 떠버린다. 내가 지금 그렇게 떠버린 상태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걸.. 친구로 만난 이 만남은 친구로 지낼때 오래토록 지속될 수 있지만 일방향적으로 은근한 부담이 시작되었기에 그 끝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고 나도 또한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정말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며 만난다는게 얼마아 어려운 일인지,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서로 만족스러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