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ie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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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줄 때 생색 안내고 멋지게 주는 방법

- 영화 "색, 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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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멋져 ㅠㅠ
신하균 말투가들리는듯하네
손모가지를 달라?
내가너한테뭔가를해줄수있다는게난더고마워그리고행복해하는너가이세상에서기장아름다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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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예술가들의 기이한 습관
천재랑 도라이는 한끗차이라더니 ㅋㅋㅋㅋㅋ 그말이 사실인듯하다. 몇개는 ㄹㅇ 도라이 재질 독일의 시인 실러 썩은사과를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가 글을 쓸 때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그 냄새를 들이마셨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 알몸으로 글을 쓸 때 최고의 작품이 나왔다. D.H. 로렌스 좋은 글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벌거벗은 채 뽕나무에 놀라갔다. 스탕달 글을 쓸 때 아침마다 프랑스 법전을 두세 페이지씩 읽었다. 골치아픈 법전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졌다고 한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 항상 초록색 잉크로 시를 썼다. 그는 초록색이 희망의 색깔이라고 믿었다. <삼총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산문은 장밋빛 종이, 소설은 푸른 종이, 시는 노란 종이에 썼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상드 연인과 섹스를 즐긴 뒤 곧바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철학자 볼테르 방금 전까지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의 등에 종이를 붙여 놓고 글을 썼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서서 글쓰는 것을 즐겼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두뇌를 자극해 악상을 떠오르게 한다며 얼음물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찰스 디킨스 자신의 몸을 지구의 축과 맞춘다며 항상 북쪽으로 앉아 글을 쓰거나 잠을 잤다.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 작곡에 열중할 때는 늘 담요를 뒤집어썼다. T.S 엘리엇 감기에 걸렸을 때 글쓰기를 좋아했다. 감기 바이러스가 시의 영감을 가져다준다고 받아들였다. 유명한 한국문학 작가 중에도 특정 장소에서 글을 써야하는 강박이 있어서 지인 만나러 가는 도중에 택시타고 작업실로 돌아갔다는게 있엇는데... 누군지 아시는 분??? 기억이 안나네,,,
후회없이 행복한 내 인생을 위하여
절찬리에 종영한 '동백꽃 필 무렵'이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은 시청자들의 공감 때문일 것이다. 보기드문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게 다양한 장르를 하나의 그릇에 담아 어색하지 않게 끌고 간 것은 물론이려니와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이 결코 작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면면은 결국 그들에 맞는 행복을 찾음으로써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회 주인공 동백이가 얘기한 행복론은 우리 모두가 살면서 새겨야 할 금쪽같은 말로 손색이 없다. "행복은 쫒는게 아니라, 음미야~ 음미!"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행복을 허락해도 되었을 것을..." 죽음을 눈 앞에 둔 어느 누군가의 깊은 한숨이다. 삶의 마지막, 죽을때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8년간의 호스피스 생활을 통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곁에서 돌보며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죽을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를 기록한 브로니 웨어는 마지막 다섯번째로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것을 꼽았다. 그 만큼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복을 맛보며 사는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브로니 웨어가 지난 2012년에 출간한 <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은전 세계 32개 언어로 번역되어 100만부 이상 판매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다. 특히 매해 12월, 삶과 죽음을 얘기할 때 어김없이 소환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죽을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는 무엇일까? 1.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대로 살기보다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 용기가 있었더라면…. 2.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 없었는데…. 3.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어야 했는데…. 4. 친구들과 계속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5.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행복을 허락해도 되었을 것을…. 브로니 웨어는 이 책을 쓰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시작한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자신의 삶을 평화롭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평소에 꾸준히 견지하는 가치와 행동 양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일구기 위해서는 새로운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의식적으로 용기, 희망, 감사, 믿음, 솔직함, 공감 능력, 긍정적인 마음가짐, 건전한 행동, 신뢰, 존재감, 변화를 수용하는 마음, 자기애, 자기 존중감, 마음이 원하는 방향을 존중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브로니 웨어는 두번째 책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를 쓰게 된다. 그녀의 삶에 일어난 52가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에는 메시지가 있다. 후회 없는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일깨운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은, 인생에서 큰 사건을 겪으며 삶의 교훈을 얻기도 하지만 일상 속의 소소한 일들이 인생의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인생이 보내는 메시지를 수신하려면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어 놓기만 하면 된다. 인생에서 중요한 가르침은 종종 아주 작은 사건에서 얻기도 한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일상생활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알아챌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삶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깨달음은 기쁨이 되고, 권리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52가지 이야기는 누구나 삶의 기력을 찾고, 기쁨을 발견하며, 인생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는 1년 동안 옆에 두고 한 주에 하나씩 총 52가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읽어도 되지만일주일 단위로 한 가지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경험이 더 유익하기도 하고 더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한 주 한 주가 지나면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는 당신의 한 해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의 원서 제목도 직역하면 '변화를 위한 당신의 해' 다. 우리는 우리의 가슴이 원하는 삶을 조각해야 한다.  후회 없는 삶이라는 축복을 얻어야 하며,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즐거움과 놀라움 속에서 살기 위함이라는 점을 꼭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행복이 드라마 속 동백이의 대사처럼 쫒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곁에 소소하지만 충분히 있으니 음미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칠흑의 별에서 해무의 해안까지, 남해#2
숙소에서 제공해주신 전기장판의 위력에 하마터면 백기를 들 뻔 했다. 9시 알람의 이름으로 지정해놓은 '최후의 종소리' 를 듣고서야 간신히 전기장판의 감옥을 탈출할 수 있었다. 바로 물을 끓여서 찻잔에 부어놓고 베란다로 나가 옆구리에 손을 얹고 어제 칠흑 같았던 바다를 바라봤다. 푸른색을 되찾은 바다가 하늘과 구분이라도 할려고 하는지 옅고 하얀 해무가 바다 위를 살포시 덮고 있었다. 짐을 챙겨서 바로 떠난 곳은 금산 보리암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절로 부처님께서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신다고 하는 곳 중 하나다. 여기 외에 양양 낙산사도 그 중에 하나라고 한다. 금산 보리암은 올라가기전 절차가 참신하다. 먼저 주차장에 도착하면 선불로 주차 요금을 낸다. 그리고 평일에 차가 많이 없을때는 괜찮으나 차가 많은 경우 아래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셔틀버스가 운영되는데 셔틀버스 비용 별도로 내야된다. 그러고 입구까지 올라가면... 입구에서 입장권을 또 별도로 받는다. 무려 3단 콤보로 비용을 각각 별도로 내야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일반적으로 비자 발급 받는 절차보다 많다. 운영 주체가 3군데 각각 달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유명한 절에는 참 이런 비용들과 상가들이 많다. 어떨때 보면 산에 있는 마트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유료주차장인 마트...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보리암을 맞이 할 수 있다. 그래도 700m정도 되는 금산 정상부분에 위치해서 그런지 전망이 참 예쁘다. 사방으로 보이는 구불구불한 해안선은 그 속에 드라이브를 하고 싶게 만드는 충동감이 일게 만들기도 했다. 그곳에서 10여분만 더 올라가면 바로 정상이다. 정상에 올라가 보면 봉화대 역할을 했던 것도 있다. 짧게 정상을 구경하고 다시 보리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부처님도 있고, 이성계가 건국하기전 기도를 올렸다는 곳도 있다. 거기서 나도 나의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성공을 기도했다. 부처님상 앞에서 짧게나마 인사를 드리고 내려와서는 바로 독일 마을로 갔다. 도중에 미국마을도 보기는 했는데, 단지 팬션을 예쁘게 지어 놓고 자유의 여신상 하나 가져다 놓고 미국마을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남해라 팬션들이 예쁘고 많은데 그것들과 크게 차이점을 모르겠다. 평일 이어서 그런지 독일마을도 참 조용하다. 문을 닫고 있는 가계들도 많아서 아기자기한 소품같은걸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남해는 주말외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쉬는 것 같다. 독일마을에 있는 카페에서 커리부어스트와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창문 앞에 착석했다. 마을의 붉은색 지붕과 저 멀리 보이는 바다의 모습을 보며 소시지를 뜯었다. 소시지는 커리향이나면서 굉장히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했다. 맛은..그냥 뭐.. 평범해서 자랑까지는 아직 못할듯 하다. 드라이브를 하기에 참 좋은곳이다. 서울에서 멀지만 않다면, 밤에 별도 잘 보인고 낮에는 바다의 수평선의 시원함을 가진 남해를 자주 찾았을 것이다. 드라이브를 하고, 산책을 하며 구경하고 커피 한 잔의 휴식을 취한다는 휴식 여행의 모든것이 들어있다.돌아다니면서 점점 더 카메라를 사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건 조그마한 단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돌아다니면서 점점 더 카메라를 사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건 조그마한 단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펌] 혐) 냉혹한 개미의 생존능력
약간 섬뜩할 수도 있는 이야기 2013년에 폴란드에서 우연히 버려진 소련 핵벙커가 발견됨. 핵무기를 보관하던 벙커였는데, 무기는 사라져서 텅 빈 상태였음. 벙커란 이름 그대로 완벽하게 밖이랑 격리된 상태였고 당연히 아무도 안에 없어야 했는데, 벙커를 열어본 사람들은 기겁함. 가로 3m, 높이 2m의 벙커가 빈틈없이 바글거리는 개미로 가득 차 있었음 숫자를 세보니 100만 마리도 넘는 숫자였다. 빈집에 개미 들어가는 거야 흔한 일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존나 이상한 일이었음. 핵벙커란 말이야 존나 두껍단 말이야 콘크리트 두께만 1m가 넘었는데 이걸 개미가 뚫고 들어온다는 건 말이 안 됨. 게다가 지하 벙커라 온도도 개미가 활동하기엔 지나치게 낮아서 일부러 들어올 이유도 없음. 근데도 아무도 열어본 적이 없는, 최소 수년에서 수십년 동안 격리된 공간에서 개미 수백만 마리가 살아있던 거임 뭔가 이상했지 좀 더 조사해보니까 더더욱 이상한게 발견됐는데, 벙커 안의 개미들은 모조리 불임인 일개미들이었음 즉 여왕개미는 커녕 애벌레 한 마리 없었다는 거지 근데도 벙커 안의 개미들 숫자는 자꾸 늘어나는 거임 전부 고자년들인데 말이지 가장 이상한건 벙커 안에는 개미 밖에 없다는 거임. 달리 말하면, 개미가 먹을 것도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음 즉 개미들은 빛 하나 없이 어둡고, 외부랑 완전히 격리된 추운 곳에서, 수 년동안을 고립된 상태로 멀쩡하게 살아서 수백만 마리가 되었다는 건데 뭔가 이상했다 연구가 이뤄진 끝에 개미들이 어디로 들어왔는지는 밝혀졌음 길이 5m짜리 환풍용 파이프가 천장에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개미집이 바로 이 파이프 위에 지어졌던 거지. 그래서 운 없는 개미들이 자주 이 파이프를 통해 벙커 안으로 떨어졌던 거임. 이러면 여왕개미도 없는데 숫자가 늘어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그럼 밀폐된게 아닌거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텐데 개미가 벽을 탈 수 있다곤 해도 5m를 기어올라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임. 결국 벙커 안으로 떨어질 순 있어도 올라갈 순 없으니 격리된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개미가 어떻게 들어왔는진 밝혀졌어도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음. 이 의문이 풀린건 개미들이 벙커 한 쪽에 몰아넣은 개미 시체 숫자들을 세어봤을 때 풀린다 벙커 안에 살아있는 개미는 백만 마리, 그리고 죽은 개미는 200만 마리였음. 그리고 모든 죽은 개미들에게는 같은 개미 주둥이에 뚫려서 생긴 치명상과 내부를 빨아먹은 흔적이 남아있었음. 벙커 안에는 개미들 자신을 빼면 먹을 건 하나도 없었음. 달리 말하면 개미들 자신은 먹을 수 있었던 거다 벙커 안에 떨어진 개미 300만 마리가 서로 내전을 벌여서 3분의 2를 죽이고 잡아먹으면서 수십년을 살아왔던 거임 그리고 위에서는 계속 둥지에서 떨어진 신선한 먹이들이 내려오고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개미들의 동족살육이 이어졌는진 모르지만 아무튼 최소 년단위임. 근데 사람으로 생각해보면 존나 섬뜩하지 않음? 도시 지하 밑에 식인귀들의 던전이 생긴 거잖어 환풍기를 통해서 나무 막대를 꼽아서 지금은 위쪽의 둥지랑 연결통로가 생긴 상태임 갇힌 개미들이 완전히 동족식에 맛을 들였을까봐 일단 100마리만 선발대로 둥지로 귀환시켜봤는데,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고 함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추운 장소에서 수년동안 고립되서 식인만 한다고 생각하니 좀 오싹하네 
'속옷이 되었을 수도' 13만 팬을 거느린 담비의 과거
사진 속 귀여운 녀석은 몸길이 35~55cm의 담비입니다. 이 귀여운 녀석들은 털이 길고 무척 부드럽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부드러운 담비 털은 수백 수천 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옷감으로 거래되어왔고, 모피 업계 종사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담비를 무자비하게 학살해왔습니다. 야생 담비의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담비를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농장이 생겨났고 이들은 담비를 잔인하게 학대하거나 산 채로 가죽을 벗겨내는 등의 잔혹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담비가 코트뿐 아니라, 침구류와 속옷 등의 재료로도 널리 사용되며 담비 시장이 더욱 커지고 있으며 약 70여 개의 담비 농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러시아에 사는 제냐 씨는 인터넷을 하던 중 우연히 담비의 귀여운 모습에 푹 빠지게 되었고, 현재 담비들이 모피로 인해 잔인하게 학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냐 씨는 담비들을 구하기 위해 무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모피 농장에 찾아가 도살되기 직전의 담비 한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한 마리라도 구하는 거였어요." 그녀는 농장에서 도살되기 직전에 구조한 담비에게 우모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우모라는 농장에서 지내던 기억이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서 경계심이 남아있어요. 저와 함께라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제냐 씨는 오랜 시간 인내심을 가지고 우모라를 돌봐주었고, 이제는 녀석도 그녀 곁에서 편안하게 낮잠을 즐기거나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우모라의 귀여운 일상을 담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현재 약 13만8천 명의 사람들이 계정을 팔로우하며 이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담비를 구하기 위해 우모라를 입양하게 되어 기뻤고, 우모라가 유명해지자 전 세계 그리고 러시아의 담비가 겪고 있는 잔혹한 현실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게 되어서 기쁘다고 전했습니다. "우모라도 잔인하게 도살 돼 누군가의 목도리, 침대보, 속옷이 될 뻔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파요. 많은 사람들이 담비들이 당하는 학대와 고통을 알았으면 해요." 그녀는 수많은 사람이 자신과 우모라를 응원하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전하면서도 한 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담비가 귀엽다고 반려동물로 입양하려는 사람은 없길 바라요. 담비는 반려동물로서 함께 하기 쉬운 아이는 아니에요. 인내심 있게 훈련하더라도 1년 어쩌면 2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