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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의 걷는 독서 5.11

아무리 타협하고 사는 세상이라 해도
그래도 이것만큼은, 이것만큼은
영혼의 가시를 단호히 두른 사람

- 박노해 ‘가시가 있다’
Ache, Indonesia, 2005. 사진 박노해


산나물의 왕 두릅 순을 따다가
억센 가시에 손이 찔린다
오월의 여왕 들장미 꽃을 꺾다가
푸른 가시에 손이 찔린다

그렇다, 고귀한 무언가에는 가시가 있다

아무리 타협하고 사는 세상이라 해도
이것만큼은 절대 굽힐 수 없어,
이것만큼은 절대 내줄 수 없어,
영혼의 가시를 단호히 두른 사람

그렇다, 고귀한 사람에게는 가시가 있다

마음에 푸른 가시를 품고 사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조용히 빛난다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가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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