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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다 : 17. 너에게 보내는 시(3)

사실 요즘은 별 일이 없어서 새로운 시나 글을 만들어내기 어려워요. 하지만 이전에 이미 탄생한 글들이 많아 이어서 소개하고 싶어요. 대부분 누군가에 대해 느끼거나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실은 내용들이라서 지금 봐도 그때가 살짝 생각나네요. 하지만 저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탐구하는 글도 꽤 있어서 이번엔 그런 고찰을 담은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5. 애써 말하지 않아도

눈물이 고였다.
흐르지는 않았지만
나는 울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흘러야만 우는 것일까

아니야 너의 눈이 말하는 그대로야.
눈은 밖을 보면서 속을 비춰주잖아.

비춰진 속의 너는 울고 있는걸 나는 알았어.
흐르진 않았지만 너는 울고 있었는걸?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게 보여지며 사는 내가
알고보니 스스로를 속이며 살고 있었음을.
스스로에게는 솔직해도 되는데 그러지 않는 나를 보며 느낀점을 담은 글이에요. 울고 싶었고 울고 있는데 그걸 부정하는 나를 위로해보았어요.


6. 제로썸

사랑의 양은 정해져 있는 걸까
정말 세상은 제로썸일까
그 모든 합은 0이라서
누군가가 플러스면 누군가는 마이너스인걸까
많은 사람을 깊게 사랑한다는건
불가능한, 세상의 이치일까

세상은 너무 나에게 잔인하다고 느낀다.
많은 사랑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의도치 않은 사랑이 어느샌가 자라고 있으니.

난 모두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며
세상은 제로썸이라면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지


사랑에 대한 생각. 자우림의 카니발 아무르를 참 좋아했어요. 저와 비슷한 사랑관에 대해 노래한다는 느낌도 있었고.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합니다. 항상 다른 사랑을 느끼고 항상 변하는 사랑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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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다 : 13. 일곱 여덟살의 기억 - 첫 경험?
수위가 너무 높았나봅니다... 신고 누적으로 노출이 안된다는 경고를 받고 수정하여 다시 올려봅니다. 사실 수정도 하긴 했지만 많이 지웠어요... 혹시 동성연애 게이 이런 부분에 혐오감을 느낀다면 뒤로 가기를 부탁드립니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7-8살 무렵으로 생각된다. 아마 7살이었을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어느날 집에 아빠의 친한 동생이 놀러왔다. 3일정도 머물렀고 그 사이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생겼다. 요즘 시대였다면 정말 엄청난 사건으로 주목되었으리라. 아빠가 당시 30대 중반이었고 그 사람은 20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M으로 지칭한다. 어린 시절엔 누구나 그러하듯 외부에서 손님이 집에 오고 며칠을 머무르면 그냥 좋다. 기분이 들뜨고 계속 옆에 있고 싶고 장난도 치고 싶고 그렇다. 손님은 항상 기분 좋은 인물로 다가왔었다. M도 마찬가지였고 집에 있는 동안 내내 옆에서 걸리적거렸던 것 같다. 잠도 옆에 붙어서 자게 되었고 이게 사건으로 이어졌다. 옆에 어쩌다가 M의 이불 위에서 손을 움직이다가 M의 물건을 건드렸는데 처음엔 손인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흥분한 상태였음이리라. 그 나이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인체의 신비였기때문에 신기해서 계속 만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M은 내 머리를 이불 아래쪽으로 밀어넣었고 나는 이내 의도를 잘 파악한 듯이, 아마 그의 바람대로 행동했던 것 같다. 이로 씹기도 했다. 기억의 파편에는 물지는 말라고 했던 말이 남아있으니까. 그냥 어느덧 M은 내 입 안에, 발사를 해버렸지만 나는 그때 내 가래가 갑자기 나왔다고 생각을 해버렸다. "가래 나왔어요.." "삼키지 말고 뱉고 와." 짧은 대화가 오가고 나는 다시 그의 옆에 누워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당시 살던 집은 상가건물에 위치한 집이어서 공동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에 간 나는 볼일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화장실로 들어오는 M을 만났다. M은 자신의 그것을 내밀며 한 번 더 해보겠냐고 나에게 물었고, 낮에 밝은 곳에서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칼같이 거절하고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보낸 뒤 M은 돌아갔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나와 M뿐이리라. 몇 년 전 M은 결혼을 했고 지금은 마흔이 넘은걸로 알고 있다. 어릴때라 내가 기억을 못하리라 생각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기억한다. 이 사건은 정말 어떻게 해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못은 나의 지분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가도 성인의 판단력에 더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어쨌거나 이것은 나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호기심 많았던 나의 경험, 어쩌다보니 첫경험에 대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게이다 : 14. 너에게 보내는 시(1)
종종 생각나는 표현들을 글로, 시로 남기는 편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글이기도 하며 어떤 상황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해요. 갑자기 많은 생각들이 한 번에 생각나기도 하며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기도 해요. 그동안 적어왔던 글들 중에서 사랑의 감정을 진하게 담아두었던 글들을 하나 둘씩 풀어보려고 해요. 대상이 동일인물이 아니더라도 제가 느꼈던 감정은 아마 비슷한 모양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너에게 보내는 시(1) 1. 공명 너를 향한 나의 외침이 그대에게까지 미치지 않더라도 이 떨림이 이 진동이 공명이 되어 그대를 강렬하게 흔들게 할 수 있을까 나의 외침이 그대를 흔들 수 있다면 그 흔들리는 손길로 날 어루만져 주길 지금 이 순간, 그래서 난 같은 속도로 같은 힘으로 다시 외친다 이과 감성이 많이 남아있어서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감정의 표현을 자연현상이나 과학적인 현상으로 비유할때 정말 이해가 가기 쉬운 것들이 많아요. 2. 눈물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사랑을 할 줄 압니다. "그대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지요?.."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고 싶어요. 눈물 흘리게 해줄래요?" "그만 울어요. 눈 붇겠어요." 사랑은 눈물을 타고 흘러 서로의 마음을 마르지 않게 적신다. 중학생 때, 미술시간에 나무작품을 만들며 새겨 넣었던 문구를 본 너는, 꽤 오래된 나의 말에 답변을 해주었어. 그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지만 너는 답변을 해주었고, 꽤나 인상적이었어.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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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에는 솔로라는 말보다는 싱글이라는 말이 옳은 표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솔로라는 단어를 다들 많이 사용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싱글라이프가 된 지 어느덧 몇 개월이 지났어요. 사실 연애를 할때와 하지 않는 지금, 저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생활패턴에도 큰 변화는 없었고 단지 더 솔직하고 더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차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정신적인 차이는 정말 큰 것 같아요. 물론 저라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크게 의존하거나 제 마음 속에서 매우 커다란 부피를 차지하도록 하지는 않아서 공허함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떤 상황에서, 종종, 가끔씩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결국 혼잣말이 되어버리는게 아쉬울뿐. 어쩌면 함께 있을때 느낄 수 있는 좋은 감정이나 편안함, 전율에 대한 느낌을 잊어버려서, 지금 상황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감>을 잊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요 근래에 들어 마음 속 깊이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난번에 좋아한다는 내용의 글에 등장한 사람 맞습니다.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냥 좋아하면서 잘해주면서 말없이 부담주기보다는 좋아한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마음대로 좋아하려고요. 딱히 싫다 좋다 그런 반응은 없었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내 마음 편하자고 일방향으로 말을 한거지만 덕분에 마음은 많이 편해졌어요. 당장 사귀거나 더 가깝게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는 없어요. 서로 너무 먼 거리에 떨어져있고, 하는 일이 너무 달라 실제로 당장 만나기에는 무리가 있기도 하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이 관계와 마음이 그대로라면 그땐 만나자고 해야겠어요. 지금은 대학원때문에 핑계는 아니지만 정말 시간이...그렇습니다. 자취를 시작한지도 2달이 꼬박 다 되어가는데 정말 별 일이 없어요. 보통 어플에서 자취하는 사람들은 그걸 많이 어필하는데 저는 어필할 수가 없어요. <자취> 혹은 <장소유> <장소o> 이런식으로 많이 하는데.. 딱히 집에 모르는 누군가를 들이고 싶지도 않고 장소가 있다한들 ... 제가 없어서요..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당분간은 혼자 살지만 정말 혼자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 아마 누군가를 이 타이밍에 만나게 된다면 너무 빡셀 것 같아요. 빡셀거에요
나는 게이다 : 8. 나는 너에게 항상 미안해(2)
(이전 이야기 마지막 부분) 너를 다시 만나기 전에 전에 만났던 사람 때문에 불면증에 스트레스에 너무 힘들었는데 너를 다시 만나고 다 없었던 듯이 깨끗하게 나았어. 너무 고마웠고 너무 행복했어. 사실 너와 나는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장거리 연애로 다시 시작한 것이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어. 나도 더 이상 너를 바꾸려고 너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고, 그냥 연락하고 종종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한 달에 한 두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만나더라고 볼때마다 좋았고, 우린 만나는 동안 서로 함께 가보지 않은 도시로 짧은 여행을 다녔어. 지도를 다 채울때까지 잘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번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후 이야기, 나는 너에게 항상 미안해(2) 우린 정말 이제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었고 그 흔한 데이트조차 쉽지 않았었지? 한 번 만날때마다 허락된 시간은 24시간 채 되지 못했지만, 그 순간순간마다 너무 소중했고 아쉬워서 더 의미있고 좋은 시간이길 바랬어. 정말 애틋함이 뭔지 제대로 알게 되었지. 직접 얼굴 앞에두고 이야기 하지 못해서 우리 집으로 너가 보낸 택배. 열어보니 들어있던 코털깎이.....정말 피식 웃어버렸어. 둘이 시간내서 2박3일을 보내게 되었을때, 우린 파라다이스 스파에 가기로 했었어. 준비성이 너무나도 철저한 너는 스파에서 신고 다닐 나이키 아쿠아 슈즈를 나에게 주려고 사왔고, 사진찍기 좋아하는 나를 위해 디스커버리 방수팩도 줬어. 내가 한 일이라고는 파라다이스 스파 이용권 뿐인데말이지. 항상 고마웠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는다는게 미안하면서 고마웠어. 항상 사랑받는 느낌을 받는다는게 너무 고마웠고 좋았고 미안했어. 너는 그렇게 너의 세상에 나를 크게 담아준 사람이었지. 키는 나보다 작았어도 생각은 나보다 깊고 넓은 거인같은 너였어. 전주 한옥마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말에 우리는 또 오랜만에 만나 전주로 향했어. 남들 다 하는 한복대여를 해서 입고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전동성당에도 가보고, 길거리 간식도 사먹었어. 지금도 기억나는건 통통한 왕새우가 들어있던 만두. 몇 개 들어있지도 않은데 5천원이었던가.. 전주 비빔밥도 먹고 경치좋은 카페에도 갔지. 그리고 한창 모바일 배틀그라운드에 빠져있던 나를 생각해서 컴퓨터 배그를 알려주겠다고 피시방에 가자는 너.. 전주까지 와서 무슨 피시방이냐고 투덜대는 나였지만 그래도 따라가서 2판 했었지? 나는 역시 모바일로 시작해서 컴퓨터 배그는 못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서로 흡연자지만 너는 너무 헤비스모커같다고 자주 말했었지. 금연해볼 생각도 아닌데 아이코스같은 전자담배도 하면서 일반담배도 하는 너를 보며 타박해도 너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대했어. 전주 터미널쪽에 저렴한 수제담배가 있다고 알려줬지만 바로 거기로 가자고 할 줄은 몰랐었어. 거기서 바로 2보루를 사는 너를 보고, '아 너는 정말 골초구나..' 생각했어. 그래도 그런 너가 좋았다. 나는 겉으로는 안 그런척해도 속으로는 많은 계산을 하는 사람인데(돈 쓰기 아까운 게 아니라 돈이 나가고 들어오는 타이밍과 여윳돈이 얼마인지 얼마까지 사용이 가능한 지에 대한 계산) 너는 일단 지르고 보는 사람이라 걱정을 참 많이 했어. 예전에도 바퀴 프레임 하나에만 40만원하는 자전거를 산 너를 보고 놀란 적이 있어서 웬만하면 이젠 잘 놀라지도 않지만 말이야. 나에게 들어가는 돈도 정말 상당했을텐데 - 나는 대학생 신분이었고 너는 직장인이었으니 - 그래도 나는 부담주기 싫어서 내가 계산할 수 있으면 하려해도 니가 훨씬 많이 썼지.. 그런게 미안해서 내가 먼저 예약하거나 결제를 해버리면 너는 돌아갈 나에게 차비를 준 적도 있어. 고마웠어. 내가 하는 일과 네가 하는 일은 정말 너무나도 다른 세계라서 내가 일에 대해 짜증내고 말을 해도 너는 최대한 들어주려고 했던 모습,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위로의 말을 찾던 너의 모습, 약해지는 나를 꿋꿋하게 서있게 해주려는 너의 모습 잊을 수가 없네. 나도 어디가서 멘탈 약하다는 소리는 안듣는데 너와 통화할때면 얼마나 애처럼 굴었는지. 실제로는 괜찮은데 안 괜찮은 척을 했는지..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하고 힘들텐데 내가 전화하면 받아주고 오랜 통화에 응해주던 너. 내가 예전에 말했던 일에 대한 문제들도 조금은 기억하면서 넌지시 물어보던 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너는 그걸 해주었네. 진짜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너에게 빚만 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그 와중에 나는 그런게 고마웠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긴적도 많은 것 같아. 나는 학교일로, 너는 너의 일로 서로의 생활에 치여 살며 조금씩 연락이 뜸해졌지. 그래도 서로 아는게 많아서 서로 이해하고 그러려니 했었지. 시간은 안 맞았어도 결국 연락은 주고 받았으니까, 또 괜한 오해따위 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였으니까. 이런 상황에도 저런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우리가 지금은 다시 헤어지게 된 이유는 또 나에게 있지. 그 모든 이유는 나때문이란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너에게 미안해. 우리가 다시 만난 지 8-9개월이 되었을때, 나는 고민이 하나 생겨버렸어. 오래 생각해봐도 혼자 고민을 오래 해봐도 절대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란걸 알게 되어, 나중에 직접 만나게 되었을때 말해버렸어. 누군가에게 커밍아웃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너에게는 꼭 말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만났으니 말을 꺼냈지. "나는 내가 폴리아모리라고 생각해. 아니 나는 폴리아모리가 맞는 것 같아. 그렇다고 지금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야." 폴리아모리. 너는 폴리아모리가 무슨 단어인지 무슨 뜻인지 그게 뭔지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매우 생소한 단어일거야. 바로 검색을 해보더니 깊은 한 숨, 무게가 다른 한 숨을 내뱉는 너를 보면서도 나는 떨렸어. 내가 과연 잘한건지. 이렇게 말하는게 맞는건지. 폴리아모리 :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多者間) 사랑을 뜻하는 말이다.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이들은 일부일처제를 비판하며, 일부는 집단혼 형태로 가족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많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폴리(poly)’와 ‘사랑’이라는 뜻의 라틴어 ‘아모르(amor)’의 변형태인 ‘아모리(amory)’의 합성어로, 서로를 독점하지 않는 다자간(多者間) 사랑, 즉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파트너의 동의 하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바람 피우기’ 또는 ‘스와핑’과는 구별된다.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사상을 폴리아모리즘(polyamorism), 폴리아모리를 행하는 이들을 폴리아모리스트(polyamorist)라고 한다.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전통적인 혼인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한 사람에 얽매이지 않는 연애 생활을 추구한다. 이들은 모노가미(monogamy) 즉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결혼 제도라 하여 이를 비판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여러 파트너와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성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폴리아모리를 바라보고 있지만 폴리아모리스트들은 파트너에 대한 헌신과 친밀감 등의 정신적 유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말을 이어갔어. 너한테는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말하는 거라고. 내가 폴리아모리인지 헷갈리는게 아니라 폴리아모리가 맞다고 확신해서 말하는거라고. 근데 이건 숨기면 안될 것 같다고. 내가 말하는 폴리아모리는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말하는건데 나는 다자연애보다는 "비독점적"이라는 단어에 더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라고. 너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버렸고 화가 났어. 처음 너의 생각을 정리한, 나에게 전한 말은 내가 바람을 한 3번 핀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었어.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지만 단 한 번도 너를 만나면서 다른 누군가를 만나거나 그런 적이 없다고는 말은 했어. 그래도 너는 당연히 복잡한 심경이었을테고 표정이 좋지 않았었지. 하지만 너는 곧 "그래도 그런 고민 생각 말해줘서 고맙다고.. 숨기지 않고 잘 말했다." 하며 나를 장난스럽게 때렸어. 물리적인 통증은 없었지만 마음을 세게 때린 것 같아서 아프긴 했어. 내가 준 충격이 더 컸겠지만.. 그렇게 나는 집에 가는 기차를 타러 갔고 너도 너의 집으로 돌아갔어. 한동안 서로 통화하면서 암묵적으로 폴리아모리에 대한 아야기는 하지 않다가 내가 다시 이야기를 꺼냈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관계를 예전처럼 잘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 서로 공부해보자고 말은 했지만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변해가고 있음을 직감했어. 헤어지자는 말을 그 누구도 서로에게 하지는 않았어. 다만 그저 서로 자신의 생활에 좀 더 집중하자고, 서로의 마음이 다시 조화를 이루고 결정을 할 수 있을때까지 시간을 갖자는 말로 그동안의 우리 관계는 일단 정리가 되었어. 헤어질 생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결국 헤어진 우리. 또 나로인해 너와의 결말을 이렇게 짓게 되어버렸네. 나는 네가 종종 생각나. 지금도 생각나고 미안한 마음뿐이야. 앞으로 너와의 소중했던 시간과 같은 연애를 다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너와의 추억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리다.
낙타와 관련된 tmi
낙타는 성질이 매우 더러워서 가축화하기까지 정말 긴 세월이 걸렸고 현대에도 목축하기 까다로운 동물이다 성경의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은 사실 없다. 아람어 원전 성경에서 나오는 밧줄(gamta)을 낙타(gamla)로 오역한 것이다. 즉 원문은 '굵은 밧줄이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뜻이다. 낙타는 더울 때 위장을 꺼내서 열을 식힌다 혀가 아니고 위장이다. 혀는 따로 있다. 위도 사실 여러 개인데 식도와 연결된 첫 번째 위를 꺼내어 열을 식힌다. 그림 속의 4번이다. 낙타는 10분 동안 100리터의 물을 마실 수 있다. 낙타의 혹은 순수 지방질이며 의외로 누린내는 없다고 한다. 모로코 같은 중동 지방에서는 낙타혹에 곡식을 넣고 볶아서 영양밥으로 해먹는다고 한다. 사진은 낙타혹 쿠스쿠스고 사실 즐겨 먹는 음식은 아니고 우리네 보양식 정도의 지위라고 한다. 낙타는 자기 새끼가 죽은 곳을 기억하고 찾아간다고 한다. 실제로 칭기즈칸이 죽어서 매장하고 현장에서 낙타새끼를 죽여서 제관들이 후에 어미낙타가 가는대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능을 찾았다고. 낙타의 조상은 약 3천만년 전 북미에서 왔다. 파라카멜루스로, 건조하고 추운 툰드라 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복슬복슬한 털로 뒤덮여 있고 물탱크 역할로 혹이 발달했다고 한다 낙타의 성기는 매우 작은데 몽골 설화에 따르면 부처가 낙타에게 크고 거대한 혹을 두 개나 붙여준 대신에 작은 불알을 준 거라고 설명한다. 지구촌갤러리 반듀링론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