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k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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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재 자동차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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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HOLA SPAIN -8
즐거운 주말이군요! 다들 잘쉬고 계신가요 ㅎㅎ 누워만있으니 나가기가 싫네요. ㅎㅎㅎ 이른 아침 방을 나와 조식을 먹으러 가는길이다 얼핏 보이는 창문밖의 모습은 아찔하다. 밤늦에 넘어온 다리가 까마득한 절벽 위에 있다. 게다가 그 절벽 바로 위에 내가 묵었던 파라도르가 있다. 조식을 먹으면서 체트아웃 하기전에 산책을 다녀오기로 한다. EOS400D, F5.0, 18mm, 1/1250, ISO 800 론다로 들어가는 다리인데 오래되어보이는 다리지만 매우 튼튼하다. 실제로 보면 상상 이상으로 높다. EOS400D, F5.6, 33mm, 1/4000, ISO 400 EOS400D, F5.6, 18mm, 1/4000, ISO 800 파라도그 입구의 모습. 산책갔다 들어오는길에 하나 찍었다. 다리를 건너서 들어오자마자 바로 왼쪽편에 있다. 객실 내의 풍경도 매우 멋지다. EOS400D, F5.6, 18mm, 1/4000, ISO 800 객실의 풍경이다. 전망대가 보이기에 걸어가보기로 한다. 숙소 내부에서 연결되기에 편하게 갈 수 있다. EOS400D, F3.5, 18mm, 1/2000, ISO 800 전망대에서의 풍경. 왼편이 우리가 묵었던 파라도르고 오른편이 론다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도시다. 론다에는 파라도르 뿐만아니라 에어비엔비, 다른 호텔들도 많으니 적당한 숙소를 예약하면 될 듯 하다. 아침도 먹고 짐도 다 쌌으니 도시를 구경해 보자. 다시 다리를 건너 맞은편으로 가보면 다양한 식당과 가게가 많다. 그 가게들을 지나가다보면 절벽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나온다. 2월에 가면 좋은게 론다에 매화가 만발을 한다. EOS400D, F5.0, 45mm, 1/400, ISO 800 EOS400D, F5.6, 55mm, 1/80, ISO 800 EOS400D, F4.5, 18mm, 1/2500, ISO 800 절벽에서 왼쪽 위에가 우리가 묵었던 파라도르고 오른쪽이 론다로 들어가는 다리이다. 저 다리는 누에보다리 라는 이른을 갖고 있으며 18세기에 지어졌다. 저 다리 덕분에 절벽으로 나눠진 두 다리가 소통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리 밑으로 들어가면 폭포와 계곡이 나오니 가볼 만 하다. EOS400D, F4.5, 29mm, 1/3200, ISO 800 저 멀리 전망대도 보인다. EOS400D, F4.5, 18mm, 1/1250, ISO 800 내려가는 길은 매화가 가득하다. EOOS400D, F4.5, 18mm, 1/800, ISO 800 EOS400D, F4.5, 21mm, 1/1250, ISO 800 EOS400D, F4.5, 18mm, 1/800, ISO 800 EOS400D, F4.5, 29mm, 1/1600, ISO 800 EOS400D, F4.5, 23mm, 1/2000, ISO 800 몇몇 사람들은 저 산책로의 끝에 차를 주차해두고 걸어갔다 오기도 했다. 구경을 했으니 다시 올라가자. 가게를 지나 다리를 건너 파라도르로 다시 왔다. 가족들은 모두 투우장을 보러 간다고 한다. 하지만 난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 처리할 일이 있다. 기숙사 신청에 몇몇가지 처리할 일이 있어 난 파라도르의 로비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그 사이 가족들은 투우장을 다녀왔다. (투우장 사진은 동생이 찍었어요) 사진을 보니 나도 갈까 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거... 이제 말라가를 지나 알함브라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로 이동한다. 말라가는 유명한 화가 피카소의 고향이다. 그래서 말라가에는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부에나비스타 궁전 내의 이 미술관에는 많은 피카소의 작품이 전시되어있으니 한번쯤 구경가보자. 말라가에는 알카사바(요새)가 매우 잘 보존되어있다. 게다가 내부에는 로마 로마 원형극장이 있다. EOS400D, F4.5, 18mm, 1/320, ISO 200 EOS400D, F4.5, 18mm, 1/320, ISO 200 말라가 관광을 마쳤으니 그라나다로 이동하자. 먼 길을 가야하니 서두르자.
'큰손' 일본에 40년만의 김 흉년…韓 수출 최고치 찍나
ⓒ연합뉴스 지난겨울 높은 수온에 작황 부진…부족분 한국·중국서 수입할 듯 일본의 김 생산량이 40여 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일본으로의 우리나라 김 수출이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3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일본의 김 생산량은 41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 기간 일본 내 마른 김 공판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줄어든 약 6천300만속(한 속은 100장)을 기록했다. 수산업관측센터는 "지난달 일본의 김 생산이 끝난 것으로 보임에 따라 이번 어기 총생산량은 6천400만속 이하로 관측된다"며 "일본 김 공판량이 7천만 속 이하로 떨어진 것은 1977년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겨울 수온이 높았던데다가 강우량은 적어 영양염류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김 작황이 부진했던 이유를 분석했다. 일본은 우리나라 김의 최대 수입국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김 전체 수출액 5억2천500만 달러(약 6천239억원) 가운데 22.5%인 1억1천800만 달러(약 1천402억원)가 일본으로의 수출이었다. 올해에도 지난달에만 '제25회 대일 김 수출 입찰·상담회'에서 한일 간 역대 최대 규모인 5천만 달러(약 592억원)어치의 김 수출 계약이 맺어진 바 있다. 일본에서 김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로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센터는 "일본 내 가공품 제조업체들이 이달부터 김 제품의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현지 가공품 대기업 '시라코'(白子)는 김 제품 50종의 가격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국내산 김 브랜드의 가격 인상 폭은 1∼8%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김은 70%가 편의점 주먹밥 등 외식용으로 팔려나간다. 이외에 20%가 내식, 10%가 선물용으로 팔린다. 지금까지는 내식용 김 제품의 가격만 올라갔지만, 추후 외식 상품도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센터는 "일본의 마른김 수요는 약 8천만속이라고 현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며 "올해 일본의 국내 생산량이 급감함에 따라 부족분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수입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올해 4월까지 우리나라 김 생산량은 평년보다 증가한 1억7천만속에 달했다"며 "일본의 작황 부진으로 한국산 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대일(對日) 김 수출량이 역대 최고치를 찍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기대도 나온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우리나라 김 수출액은 2억4천만 달러(약 2천836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0만 달러(약 106억원), 4% 증가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김 수출의 분위기는 현재 괜찮은 것이 사실"이라며 "중국도 작황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들리기 때문에 올해 수출 실적을 기대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5장. 야생. 그곳의 이름은 아프리카 -28
월요일은 정말 너무바빠서 정신차리면 점심이고 밥먹고 좀 쉬다가 다시 정신차리면 퇴근이네요 ㅎㅎㅎ 힘들긴한데 그건 좋은듯...!! 오늘하루도 다들 고생많으셨어요! ㅎㅎ 그럼 이야기 계속 해볼까요! 어제밤에 너무 추워서 잠시 눈을 떴는데 별이보이길래 꿈인가 했는데 꿈이아니었다...! 천장을 안막았다니... 어쩐지 너무춥더라. 보통 아프리카하면 덥기만하다는 생각을 할수있는데(아 물론 적도에 가까운곳은 그렇긴하다...)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 일교차가 매우 극단적이다. 0도에서 낮에는 20도 중후반까지 올라간다. 한계절을 하루만에 다느낄수있다. 근데 벌레는 또 어찌나많은지... 얘들은 어떻게 살아남은거지... 덜덜 떨면서 텐트를 나와 모닥불을 피우기시작한다. 어제 피워둔 모닥불이 꺼져있다. 어제 주워온 코끼리똥과 마른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불을 피운다. 야생의 모닥불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멋은 사실 부수적인 사항이고 요리를 해먹을수있게해주고 보온을 해준다는 기능 외에도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아준다. 가이드가 어제 밤에 나혼자두고(!) 근처 형이랑 자고온다고 가면서 했던 이야기가 만약 밤에 나와서 동물과 눈이 마주치면 그대로 뒷걸음질쳐서 텐트로 들어가란 이야기와 함께 모닥불이있어서 오진 않을거란 이야기였다. 맙소사... 아침에 일어나 조금 기다리니 가이드가 온다. 이미 난 대충 씻고(물티슈가 매우매우 유용했다. 초원이다보니 옷 사이사이 양말 사이사이 할거없이 모래먼지로 가득하다. 씻을곳도 마땅치않고(그럴땐 물에서 수영하면 되긴한다) 밤에는 추우니 사간 물로 가볍게 씻고 마무리는 물티슈로 하곤했다.(물론 문명인인 우리는 그 쓰레기들 다 챙겨서 도시로 돌아오는 센스!)) 밥도 먹은 상황이라 바로 투어를 시작한다. 오늘 투어의 이름은 워킹사파리로 초원을 걸어다니며 동물을 본다. 난 운이 좋았던지 가이드가 정말 동물을 잘찾아간다. 집안 대대로 사냥꾼 집안이었는데 지금은 가이드일을 한다고 한다. 발자국만보고 동물을 찾아가는데 신기할따름이다. 모코로를 타고 조금 가다가 큰 섬에서 내린다.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건 흰개미 집이다. 크기는 거의 집만하다. 높이는 2미터는 넘어가는듯했다.(일단 내 키보단 높았다) 심지어 저런게 엄청 많다. 다행인점은 흰개미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단점이다. 신기했다. 언제 흰개미를 보겠는가. 저 멀리 누(와일드 비스트;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의 모티브가 된 동물이다.)떼가 보인다. 가이드말로는 바람을 맞보고 가야지 동물이 도망치지 않는단다. 얘들이 겁이 많아서 1키로 넘게 떨어진 거리에서도 우리를 발견하면 도망쳐버린다고한다. 실제로 105mm렌즈로 최대한 당겼는데도 저정도다. 여기서 조금만 더 다가갔더니 전부 우리를 보고는 도망갔다. 저 멀리 얼룩말도 보인다. 내 가이드. 믿음직하다. 길을 걷다가 꼬리가 끌린 자국이있길래 물어보니 사자꼬리란다. 가볼래 라길래 당연하지 라고 답해줬다. 하지만 사자는 결국 못찾았다...아쉽다 초원의 바분들도 보인다. 저 멀리 기린도 있다. 목이 길어 느릴거같아보였는데 무진장 빠르다. 시속 60키로까지 달릴수도 있다고 한다. 한참을 걷다보니 섬의 끝에 도달했다. 출출하다. 빵이랑 과일을 좀 먹는다. 가이드한테도 절반을 잘라주니 고맙단다. 돌아오는길에 코끼리 가족을 만났다. 오늘 경험했던 장면중에 제일 무서운 장면이었다. 촬영하면 자극할거같아서 카메라를 들지도 못했다. 몇백미터 떨어져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어미가 우리를 계속 바라보며 경계를 하면서 지나간다. 우리도 몸을 낮추고 천천히 뒷걸음질친다. 다행히 별일없이 지나갔다. 다시 텐트로 돌아가는길에 가이드가 빵과 어제 줬던 통조림에 대한 보답이라고 전통요리를 해주겠단다! 나야 고맙지! 그래서 배를 타고 오는길에 어부와 이야기를 하더니 물고기 2마리를 받아온다. 오 실한게 맛있어보인다. 내가 지냈던 곳에서 한 10분을 걸어가니 캠핑장이 나온다. 어제오늘은 사람이 없었어서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솥을 좀 쓰기로 했다. 잠시 앉아있으니 차를 준다. 밀크틴데 매우 맛있다. 이 날 이후로 여행중에 버릇하나가 생겼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밀크티 한잔을 하고 식사후에도 밀크티를 한잔씩 하게 되었다. 왼쪽에는 이지역 전통 주식인 싸자란 음식이다. 싸자는 말린 옥수수 가루를 물에넣고 끓여주면 된다. 아무것도 안넣었는데 생각보다 맛있다. 그리고 생선 찜이랑 같이먹는다. 생선은 진짜 맛있다. 소금이랑 생선만 넣고 삶았는데 정말 맛있다. 부드럽고 담백하며 단맛조차 느껴진다. 민물고기 특유의 흙맛(?)도 없고 깔끔하고 비리지도 않다. 깨끗한 자연에서 막 잡아서 먹는 생선이라 그런가보다. 뼈만 남았다. 먹고있다보니 많은 새들이 보인다. 밥먹었으니 좀 쉬어야지. 텐트로 돌아와 누워서 밖을보니 이런 호사가 따로없다. 노을이 질 무렵 가이드가 하마를 보러 가잔다(!) 야생의 하마라니! 너무 설렌다. 다들 하마를 보기 위해 이동하는중이다. 저 멀리 하마 무리가 보인다. 하마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수풀조차도 없다. 우리가 조금만 다가올 기미만 보여도 우리쪽으로 오면서 울음소리를 낸다. 그러면 우리도 슬금슬금 뒤로 이동하면서 지켜봤다. 그러면 더이상 다가오진 않는다. 하늘은 노을에의해 타는듯하다. 구름한점 없는 하늘의 노을은 환상적이다. 물이 너무 맑아 거울같다. 반사되는 풍경이 아름답다. 다시 돌아온 텐트. 오늘도 모닥불에 앉아서 가이드랑 술한잔과 통조림을 먹으며 이런저런이야기를 하며 별을 바라본다. 쏟아질듯한 별들은 언제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 밤마다 제일 많이 했던일은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는것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감동은 잊지 못한다.
[홋카이도-도쿄 12] 모리오카(盛岡) 산책 – 모리오카 성, 다쿠보쿠・겐지 청춘관, 모리오카 덴만구(盛岡天満宮)
(701계 701系) 모리오카(盛岡) 역 앞에서 관광 순환버스인 덴덴무시 호(でんでんむし号. 달팽이)를 타고 모리오카 산책을 나갔습니다. 모리오카는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1886-1912)와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1896-1933)의 고장입니다. 먼저 모리오카 성(盛岡城)에 갔습니다. 모리오카 성은 옛 지명의 이름을 따서 고즈카타(不来方) 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에도 시대 모리오카 번주였던 난부(南部) 가문의 성(城)이었습니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성터만 남아있으며, 이와테 공원(岩手公園)이라고도 합니다. 성벽은 도호쿠(東北) 지방에서는 드물게 화강암으로 지어졌고 도호쿠 3대 명성으로 꼽힙니다. 혼마루(本丸)와 니노마루(二の丸) 사이에는 가라보리(空堀. 물이 없는 해자)가 있고 주홍색 다리가 연결하고 있습니다. 혼마루 한쪽에 동상 받침대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난부(南部) 가문 제42대 당주(当主)인 난부 도시나가(南部利祥)의 기마상이 있던 자리입니다. 난부 도시나가는 육군 기병 중위로 러일 전쟁에 참전 중 1905년 23세 나이로 전사하였고, 이를 기리고자 1908년 기마상이 세워졌지만 태평양 전쟁 중인 1944년에 전쟁 물자 조달을 위한 금속 공출로 철거되어 받침대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니노마루 한쪽에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비(石川啄木歌碑)가 있습니다. 不来方のお城の草に寝ころびて 空に吸はれし 十五の心 고즈카타의 성터 자리 풀밭에 누워 뒹굴며 하늘에 빨려 들던 열다섯 살의 마음 다쿠보쿠는 모리오카 중학교 시절에 창문을 넘어 도망쳐서 2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니노마루에 와서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잤다고 합니다. 모리오카 성을 빠져나오는 길의 작은 해자 옆에 미야자와 겐지의 ‘이와테 공원(岩手公園)’이란 시비가 있습니다. 모리오카 성을 나와서 나카쓰가와(中津川)를 가로지르는 나카노하시(中の橋)를 건너면 붉은 벽돌의 이와테은행 구 본점 건물(岩手銀行赤レンガ館)이 보입니다. 도쿄역과 한국은행 본점을 설계한 다쓰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한 건축물로 1911년에 준공되었습니다. 바로 근처에 있는 모리오카 다쿠보쿠・겐지 청춘관(もりおか啄木・賢治青春館)에 갔습니다. 이곳은 이와테 현(岩手県) 출신의 두 위대한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주제로 한 문학관입니다. 둘 다 모리오카 중학교를 다녔는데, 다쿠보쿠는 졸업을 못하고 중퇴하였습니다. 다쿠보쿠 자신은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불운한 자신의 처지와 어려운 생활고를 3행 단가라는 새로운 형식의 단가로 표현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재시인, 국민시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쿠보쿠의 대표적인 작품집으로는 처녀시집 <동경(あこがれ)>, 처녀가집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 유고가집 <슬픈 장난감(悲しき玩具)> 등이 있습니다. いのちなき砂のかなしさよ さらさらと 握れば指のあひだより落つ 생명이 없는 모래의 슬픔이여 사르르 사락 주먹을 쥐면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네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 제1장 ‘나를 사랑하는 노래(我を愛する歌)’ 중에서] 미야자와 겐지는 시인, 동화작가이자 농민교육자였습니다. 겐지는 생전에 주류 문단과 전혀 교류하지 않고 고향인 이와테 현에서만 창작활동과 농민계몽활동을 했습니다. 겐지의 대표작으로는 ‘주문이 많은 요리점(注文の多い料理店)’, ‘은하철도의 밤(銀河鉄道の夜)’, ‘포라노 광장(ポラーノの広場)’ 등이 있습니다. ‘은하철도의 밤(銀河鉄道の夜)’은 겐지의 미완성 유고작으로 인기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銀河鉄道999)’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춘관 내 카페 ‘동경(あこがれ)’에서 잠시 쉬면서 다쿠보쿠와 겐지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다시 덴덴무시 호(でんでんむし号)를 타고 모리오카 덴만구(盛岡天満宮) 신사에 갔습니다. 이곳도 다쿠보쿠가 모리오카 중학교 시절에 학교를 도망쳐 나와 자주 놀러왔던 곳입니다. 본전 앞에는 한 쌍의 고마이누(狛犬)가 있습니다. 고마이누는 신사나 절에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사자를 닮은 상상의 동물 형상으로 이름이 고려견(高麗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측의 고마이누는 입을 벌린 형태인 ‘아형(阿形)’이고, 좌측의 고마이누는 입을 닫은 형태인 ‘훔형(吽形)’입니다. 아훔(ahum. 阿吽)은 산스크리트에서 왔습니다. ‘아(阿)’는 입을 벌릴 때 나는 소리로 ‘처음’을 의미하고, ‘훔(吽)’은 입을 다물 때의 소리로 ‘끝’을 의미합니다. 신사 옆으로 조금 내려가면 언덕에 다쿠보쿠 시비가 있습니다. 病のごと 思郷のこころ湧く日なり 目にあをぞらの煙かなしも 마치 병인 양 고향 그리는 마음 솟구치는 날 눈에 푸른 하늘의 연기 서글프구나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 제2장 ‘연기(煙) 하나(一)’ 중에서] 다쿠보쿠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부타미(渋民)에 가기 위해서 모리오카 역으로 갔습니다. (계속) [오늘 탄 열차] 13:12 모리오카(盛岡) - 13:31 시부타미(渋民) (IGR이와테 은하철도 IGR7000계) 16:06 시부타미(渋民) - 16:27 모리오카(盛岡) (JR하나와센 JR花輪線 키하110계 キハ110系) 16:36 모리오카(盛岡) - 17:08 이치노세키(一ノ関) (E5계 신칸센 하야테 新幹線はやて) 17:26 이치노세키(一ノ関) - 17:34 히라이즈미(平泉) (JR도호쿠혼센 JR東北本線 701계 701系) (여행일 2017.08.15.)
5장. 야생. 그곳의 이름은 아프리카
다들 주말인데 푹쉬시고 계신가요! ㅎㅎ 오늘부터는 아프리카 이야기를 해보려해요. 제가 바라본 아프리카는 아름다운 야생과 도심속 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어요. 치안이 좋다는 아프리카 내에서 치안이 좋다는거지 절대 절대적으로 치안이 좋다는 아니에요. 저야 운이좋아서 사건사고없이 무사히 돌아왔지만 강도사건을 당한 사람들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들리는 곳이에요. 만약 가게되신다면 꼭 안전한지역만 다니시고 조심 또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전 그런 정보없이 그냥 치안이 좋다란 말만 믿고 혼자 가방 울러메고 떠난 길이라... 쨌든 그럼 시작해볼게요! APPS가 끝나고 한주동안 푹쉬었다. 집에서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가끔친구도 보고 지내다보니 벌써 인천공항이다. 체크인을 하면서 '마운'이란 도시로 출발한다니까 리셉션의 직원이 마운이 어디냐고 물어본다. 아 나 진짜 깡촌으로 가긴하는구나! 이제부터 근 한주동안 있을 마운이란 도시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아프리카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큰 삼각주인 오카방고델타의 관문도시이다. 아프리카의 보석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정말 아름다웠다. 사실 이번 아프리카 여행을 잡을때 마다가스카르랑 보츠와나 둘중 고민하다가 어차피 행사 참여하기 가까운 보츠와나로 선택했다. 동남부 아프리카를 가기 위해서는 우선 요하네스버그의 O.R. 탐보 국제공항으로 이동한다. 요하네스버그까지는 홍콩에서 환승해서 가는 방법이나 방콕에서 환승하는방법 2개가 있었다. 나는 홍콩에서 환승을 했다. 비행시간만 만 하루가 걸리는 긴 여정에서 아프리카행 비행기는 연착이 매우 잦다. 그러니 꼭 환승에는 시간여유를 두고 가자. 요하네스버그는 매우매우 추웠다. 밖은 영하의 온도이다. 남극에 가까운 도시답다. 남아프리카 관광을 하고 온 친구들말로는 팽귄도 많다고 한다. 남아프리카의 경우는 치안이 진짜 괜찮다고는 하더라.(관광지 한정) 확실히 아프리카로의 여행객이 별로 없다라고 느꼈던 부분은 홍콩까지는 사람이 가득했는데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가는 비행기는 텅텅비었다. 아직은 유럽쪽에서 많이오는 관광지구나 싶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마운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프로펠러 비행기는 진짜 오랜만에 본다. 마운에 도착하니 완전 시골마을이다. 활주로도 하나이고 공항도 작다. 관광도시치고는 규모가 작다. 공항안에는 오가는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이 도시에 동양인이 나뿐이다...! 있는동안 나 말고 일본인 한명을 더봤다. 공항 직원이 모를만한 도시다. 우선 체크인을 위해 택시를 탄다. 마운에는 호텔은 거의 없고 대부분 캠핑장이다. 그래도 걱정할게 없는게 큰 텐트를 기본으로 빌려주고 공용 사워실과 화장실이 있다. 위 사진은 캠핑장 리셉션이다. 주인분이 친절하게 맞아준다. 이제 내 텐트를 배정받고 내일부터 갈 모코로 투어 예약을 확인한다. 총 2박3일이었고 델타 안에서 쓸 텐트렌트까지 확인하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온다. 우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다보니 저녁시간이다. 노을이 참 아름답기에 맥주한잔 하기로한다. 야생답게 악어도 있다. 다행히 사람사는곳까지는 안내려와서 캠핑장에서는 못봤지만 델타안에서는 심심치않게 보인다. 앉아있다보니 배가고프다. 주변 식당을 물어보니 도심까지는 나가야한단다. 오는데 차타고 30분은 왔었는데...? 결국 캠핑장에서 파는 음식을 시켰다. 매우 훌륭하다. 가격은 좀 비싼데(이후 밖에서 먹은거에 거의 2배이상...!) 우리나라가격으로 치면 그리 비싼거도 아니었고 맛도있었다. 택시비 따지면 얼추 비슷할지도...? 해가지기시작하니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모닥불 주변으로 관광객들이 모인다. 다들 한손에는 맥주를 들고있다. 서로에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여행의 묘미겠지. 모르는사람과의 교류는 항상 새로운걸 느끼고 배울수있어서 즐겁다.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은하수도 보인다. 얼마만에 보는 많은 별인가. 이때본 별 이후로 이렇게 많은별을 본건 남미가 유일했던거같다. 다시한번 도시에 살면서 좋은점도 있지만 포기해야하는것도 있다는걸 느끼게된다.
하고싶은건 하고 살자 - 여행편 prologue.
“두 번 생각,해~” 난 블랙핑크가 아니기에 하고 생각했다. 유독 인간을 못견뎌 하는 내게 이번만큼은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싶어 부푼 꿈을 갖고 입사했던 IT기술 전문 스타트업은 독이 되어 돌아왔다. 졸업하기도 전에 흔쾌히 취업의 기회를 마련해 준 고마운 회사. ‘그래도 참아봐야 하지 않겠나 요즘 같은 취업난에...또 비전도 분명 있을거야...’ 라는 생각이 나를 비웃듯 트러블이 생긴지 약 한 달 정도 만에 ‘내주변은 다 적군 뿐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뿌리를 내려 유독 인간을 못견뎌 하는 나는 퇴사를 외쳤다. “OZ씨 없이 사실 우리 회사 돌아가는 거 지장 없어요. 그러니 오늘 당장 나가도 문제는 없습니다. 인수인계만 제대로 하세요.” 갑작스레 퇴사를 고하는 내가 일말의 성의라도 보이기 위해 사람이 구해질때까지는 책임지고 근무하겠단 말에 대표라는 사람이 콧방귀를 뀌며 뱉은 말. 당시 마케팅 사원으로 들어가 기획부터 개발, 디자인 등등 모든 업무를 (대기업에 6년간 있었다는 대표 피셜 아주 엘리트라고 하는 사수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담당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참 한심한 소리가 아닐 수 없구나 했지만 뭐, 이렇게 쿨하게 보내주신다면야.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까지 서로가 서로를 못잡아먹어 안달인 그 지옥 소굴에서 박쥐같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피나 쪽쪽 빨리고 있었겠지... 😵 모순적이게도 막상 나가는 날 되니 내 앞에서 우리 회사가 얼마나 더 성장할 것인지 아느냐, 이사람 저사람 불러가며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프로세스가 얼마라고 했었죠?”, “OZ씨 내가 기획 자리에 앉혀주려 했는데 정말 퇴사가 맞는 선택이겠어요?” 구구절절 침을 튀겨가며 불안증세를 내보이신 대표님의 딱함 지수는 굳이 내 입으로 말을 안해도 될 터. 퇴사 후에는 얼마나 더 바닥을 보여 주시던지... (굳이 비교하자면 헤어진 전남친이 여태 내가 사준거 다 내놓으라는 급?) 여튼 매번 생각이 많아서 보이지않는 손에게 결박당한 나에게 이번 여행은 뭐든 일단 하고 생각하는 실행력(사실 그중엔 먹고 눕고 자고가 제일 큼ㅋ)을 배워온 아주 값진 기간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디어가 주력상품인 나에게 ‘행동이 0이면 결과도 0이다’라는 뼈저린 교훈을 알려준 멘토링 기간이었달까. 3.26~5.31 약 두달간의 쫴릿한 유랑 “프랑스-체코-오스트리아-니스-칸-바르셀로나” 까지 왜 독일은 안갔어? 스위스가 그렇게 좋다던데 거길 빼놓고 오다니.. 등등 많은 야유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겠으나 내 모토는 “일단 하고 싶은 것만 할거야. 두달간은.” 이었으니까. 왜, 인풋 대비 아웃풋에서 최고 효율을 내고싶어 하는 나같은 인간 유형들은 사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내가 이돈 내고 여기 왔는데 뽑아낼 만큼 뽑아 내야지!’라는 생각에 노는게 노는 것이 아닌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여행에서 나도 100% 그런사람에서 벗어났다고는 저어어올때 말할 수 없다. 난 약간 유전자에 가성비 유전자가 있나봐. 하지만 그렇게 27년을 살아온 내가 ‘아, 항상 가성비를, 효율을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하는 깊은 깨우침을 얻은 그런 기간. 27년간의 생각을 뒤바꾼 두달이라는 그런 기간. 그래서 앞으로 몇 십 년간의 삶을 뒤바꿀 그런 기간. 그런 기간이 이번 여행이었다고 아주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고인물인 것을 티내는 중)말할 수 있다. 외려 사람은 효율을 안 따지고 살 때 더 행복한 것 같다. 효과 만큼은 기가맥히게 뽑아낼 수 있으니까. 남자친구와 함께 한 여행, 5박 6일의 체코여행기간 동안 싸울 게 있으면 싸웠다. 당일치기 오스트리아 여행이지만 다리가 아프면 그냥 앉아서 쉬었다. 몽생미셸은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 이지만 가는게 귀찮아서 안갔다. 그냥 오늘을, 내 기분을 살고 싶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 내가 내일 죽는다고 할 때, 그 장관을 보고 느낀 아름다움도 물론 크게 남겠지만, 그 장관을 못봤어도 당장 내가 쉬고 싶어서 쉬었을 때의 행복감이 나로써의 삶을 더 충실히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더 크게 자리하지 않을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밥상을 뒤엎을 사람 무울론 있겠지만 할튼 그런 여행이었고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란 말을 하고 싶었다. 여행이 끝난지 이주가 된 이 시점에, ‘들어가면 한달은 쉬면서 펑펑 놀아야지~’ 했던 내가 취준에 시달리며 (이래서 인간은 환경이 중요해~) 동네방네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어서 두달 전 내 마음가짐을 되새기고자, 솔직한 나를 마주하고자, 나와 더 소통하고자 비교적 오프라인으로 아는 상대가 훠어어어어어어얼씬X200없을 빙글에 글을 끄적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도대체가, 이번이 인생 2회차 인가? 어떻게 다 겪어보지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지도 않고 “나는 00기업에 00직무에 지원해서 합격한뒤 연봉 몇천을 받으며 배우자와 자식 둘 낳고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거야”가 다 짜여져 있는거지? 나 빼고 분명히 다들 개인 컨설턴트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요즘 아주 집중적으로 취준 활동을 하면서 술에 취해 버스 바닥에 대짜로 뻗어 잔 이후로 내가 인생을 참 한심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이리도 강하게 든 적이 없었다. (그 사이사이 근접하게는 들었을 수 있음) 나도 교환학생부터 시작해서 아르바이트, 인생에 크나큰 시련에 무너지지 않고 딛고 일어섰으며, 대외 활동과 사회 생활, 자격증 획득 등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아니,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단 말야?? 내가 지원한 직무와 관련되어서 살지 않은 기록들은 다 무용지물이란 말야???? 도대체가 왜!? 60을 바라보는 우리 아버지도 아직 본인에 대해 100%, 아니 100%가 뭐야. 60%정도 아실까 말까? 근데 꼴랑 27살 먹은 내가 도대체 무슨 일에 소명의식이 있는지, 내가 기깔나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직업은 뭔지, 어떤 작살나는 기업의 사원증을 목에 매고싶은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나는 그냥 하고 싶은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런생각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책임감도 없고 안일한 한심한사람 취급을 받는 것인지!!! 나는 마케팅을 배우고, 하고 싶었는데 내가 왜 27살이 되어서도 소금물 농도를 구해야 하냐 이말입니다. (솔직히 빙글도 취준하다 알게됨🤫)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나는 이렇게 색깔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점점, 이제는 쳐다도 보기 싫은 그 클리셰, 현실과 타협해야지, 언제까지 이상만 좇을래 가 내 머릿속을 맴돌게 될 줄이야...... “하고 싶은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려면, 일단 하기 싫은거 불행하게 30년은 해야지 그럴 수 있는거야~”가 거의 뭐 학계의 정설이 된 이 시대에 나 세젤또 oz오스본은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여행을 회상하며 또다른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무튼 갑자기 중간에 깜빡이 없이 치고 들어온 고난과 고통때문에 길을 잃을 뻔 했지만 두달간의 대장정(?)을 정리해 보고자 시작을 거창하게 알린 글 정도로 봐주면 메흨씨 하게씁니다! 언제 1편을 들고 올진 모르겠지만 뭐 일단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껄껄껄 곧 다시 만나요 à bien·tô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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