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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㉒/ 전시체제6...상하이 외
<사진=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했던 조선영화 황제 김염의 작품. 사진=CCTV 영상.> '일본영화 경제학’을 집필하고 있는 이곳은 미국이다. 한국에서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과 달리 이곳 미국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는 한다. 지난 8월 8일, 미국의 공기관들과 대학들 그리고 교회 등에는 일제히 조기게양이 이뤄졌다. 특히나 필자는 사우스캐럴라이나에서 장기 체류 중이었으므로 그 경이적인 장면에 감탄을 연발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랬다. 그날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여한 날로 비록 전쟁의 종식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사죄를 뜻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 인류에게 행한 행위들에 대해서 무조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정 속에서 있었던 오류에 대해서는 미국은 적어도 이민자의 나라이자 금세기 최고의 나라답게 역사의 공과 과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있었다. 덕분에 동양인이었던 나는 인종차별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오해 받고 있는 미국의 남부에서 수시로 인사를 받았고 일본의 점심 인사인 ‘곤니찌와’(こんにちは, 今日は)를 수시로 듣고 다녔다. 전시체제라는 주제를 마무리 하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이 단순히 황민화 정책의 홍보가 아닌 순기능과 역기능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글을 마치기로 하였기 때문에 서론이 길었다. 우선적으로 이 연재는 일본영화의 경제학적 측면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영화의 영향이 아시아 전체에 미친 파급효과를 살펴보고 향후 전후의 영화산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언급함으로써 전시체제시 일본영화를 정리하고자 한다. 이 중 가장 주목할 지역은 중국 상하이와 필리핀 그리고 인도네시아다. 이중에서 1937년 일본의 중국침략이 시작되자 영화제작사들 가운데에는 문을 닫거나 싱가포르·홍콩 등지로 옮겨가는 회사가 속출하였으며, 나머지는 충칭(重慶)으로 천도하는 국민당 정부와 중국영화는 그 궤적을 함께 했다. 당시 중국영화는 상하이가 중심이었고 여러 나라의 조차지가 공동으로 들어서 공동조계(租界)라는 공동통치구역이 들어섰다. 이곳에 조차지를 얻은 나라 중에는 일본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서 일본인 주도의 영화 대신 중국인이 만드는 순수 ‘중국영화’를 제작하면서도 내용에는 참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비록 1937년 일본이 상하이를 점령했다지만 영화 촬영소는 프랑스 조차 지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자립적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도 사실 상하이는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일제치하를 피해 도피해 온 식민지 조선의 영화인들에게는 ‘성지’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중 김염(金焰)은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이었다. 상하이 시에서 활동한 영화배우이며 본명은 덕린(德麟), 레이먼드 킹으로 알려진 김염은 중국 영화의 황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다. 김염은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였을 뿐만 아니라 항일운동을 ‘영화’로 풀어나갔던 대배우로, 중국 사실주의의 효시라고 부르는 ‘대로(大路)’등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애국혼(愛國魂)’은 1928년 상하이에서 만들어졌는데 일제의 검열을 피해 만들었던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이면서 무성극영화이기도 했다. 정기탁(鄭基鐸), 전창근(全昌根), 이경손(李慶孫), 정일송(鄭一松), 한창섭(韓昌燮) 등 조선인 영화인들이 망명길에 올라 상하이라는 국제도시를 통해 만든 영화였다. 이처럼 상하이의 영화는 전쟁 이전만 하더라도 항일영화가 적극적으로 만들어졌던 전통이었기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일본은 육군의 도와상사(東和商事)의 가와키타 나가미사(川喜多長政)에게 중국 영화의 관리를 요청했다. 그는 영민한 인물로 이미 만에이(만주영화협회)의 실패 원인과 현지에서의 불평을 리서치한 끝에 일본인 주도의 영화제작을 포기하고 중국인에 의한 중국영화를 제작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중국인 감독들은 훗날 중화민국 국민당군이 귀환하자 ‘한간’(漢奸 : 조국을 배신한 중국인)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고 대부분 홍콩으로의 망명을 선택했는데 이 때문에 전후 홍콩영화는 상하이의 하청업자라는 오명을 씻고 영화산업을 융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가와키타 나가미사는 더 나아가 중국인 회유를 위해 전력했는데 첫 작품으로 비록 스즈키 시게요시(鈴木重吉)를 통해 ‘동양 평화의 길’(1937)을 제작했는가 하면, 아예 1939년에는 상하이에 있던 12개의 영화사들을 합병하여 ‘중화전영’(中華電影)을 설립하고 ‘목란종군’(木蘭從軍)이라는 국방영화를 제작했고 항일영화인이었던 장센쿤(張善琨)까지 영입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군부의 비호를 받은 일본인들이 영화계를 지배한 것은 사실이며 만에이와 합작으로 리샹란 주연의 ‘만세류방’(萬世流芳)을 제작하여 아편전쟁을 배경으로 한 중국인들의 영웅적 투쟁을 못하면서 일본 본토에서도 마키노 마사히로(まきのまさひろ)가 ‘아편전쟁’을 만든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이 중국의 승리로 끝나 뿔뿔이 흩어졌던 영화인들이 상하이로 복귀하기 까지 이른바 ‘충칭시대의 영화’는 극심한 영화자재의 부족 등으로 흥행이 부진하였다.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현지인의 영화 촬영을 금지하고 일본어로 된 선전계몽영화를 주로 제작하였는데 이중 대표적 작품은 두 가지로 히나쓰 에이타로(日夏英太郞, 본명 許泳)가 자카르타에서 촬영한 ‘콜링 오스트레일리아’(Calling Austrailia, 1944)와 ‘도나리구미’(隣組 : 반상회)를 결성하여 일본어와 일본정신을 배운다는 계몽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중 히나쓰 에이타로는 입체적 인물이다. 조선인이었지만 히나쓰 에이타로라는 일본인으로 살다가 전후에는 닥터 후융(DR.HUYUNG)이라는 이름으로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이 된 인물이다. 그는 ‘콜링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스위스의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연합국에 전달되었는데 포로인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으로 꾸미는 바람에 전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연 포로들을 다시 불러 모아 허위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다시 제작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키스신을 촬영한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심지어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 등을 제작하며 국민 감독으로 불리고 있는데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가 ‘시네아스트 허영의 쇼와’(1987)에서 허영의 전기적 삶을 복원한 바 있다. 필리핀은 원래 미국의 식민지였다. 할리우드의 영향이 강한 뮤지컬과 멜로 드라마가 1930년대부터 이미 발달했는데 스페인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를 골고루 경험했고 필리핀 최초의 영화 상영이 1897년 1월 마닐라로 알려져, 아시아 최초로 영화 상영이 있었던 인도 뭄바이 이후 두 번째였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앞선 행보였다. 1917년 최초의 영화사가 문을 열고 이후 첫 장편영화 네포무세노(Nepomuceno)의 ‘시골 소녀’(Country Maiden)가 1919년 개봉하면서 시작된 영화산업은 할리우드의 영화를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생소한 일본영화를 다시 접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 역시 일본군의 통제 하에 현지인과 합작으로 포로들을 출연시켰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베 유타카(阿部豊)다. 그는 1920년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배웠다는 인연으로 제럴드 드 레온(Gerald de Leon)이 공동으로 제작한 ‘저 깃발을 무찔러라’(The dawn of Freedom, 1943)를 만든다. 필리핀에서 미국을 몰아낸 일본군을 찬미하는 내용이지만 레온 쪽이 훨씬 더 고전적인 할리우드 방식을 따랐고 아베 유타카는 딱딱한 연출로 일관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훗날 스페인에 맞선 무장봉기와 미국과의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에디 로메로(Eddie ROMERO) 감독의 ‘그때 우리는’(As we were)을 통해 꿈을 좇아 도시로 나간 시골 청년이 혁명의 격랑 속에서 당시 필리핀이 겪던 고난의 과정을 그려내고, 마리 오하라(Mario O Hara) 감독의 일본 식민지 시절의 아픔을 그린 영화 ‘신이 부재한 3년’(Tatlong Taong Walang Diyos Three Godless Years, 1976)을 통해 모두를 희생자로 만드는 것이 전쟁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지게 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신이 부재한 3년’은 필리핀인이면서 일본인인 주인공을 내세운 전쟁영화로 2차 세계대전 시기, 필리핀계 일본군 마수기가 시골마을 교사 로사리오를 강간하고, 임신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분노에 찬 로사리오는 마수기의 모든 제안을 거절하지만 결국 그와의 결혼에 동의하게 되면서 필리핀인, 일본인, 그리고 미군들로부터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러니한 비극을 뛰어난 심리묘사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와 같이 일본의 영화인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때로는 종군으로 때로는 단순히 창작을 위해서 혹은 식민지배를 정당화 하거나 새로운 영화 환경을 통해서라도 명맥을 이어나가는 한편 전후 일본 영화계의 중심인물로 자리매김할 자양분을 얻는다. 또 전후에도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중에는 기회주의자들도 상당수 존재했으며 대동아공영권 아래 있었지만 실제로는 여러 형태로 할리우드 영화와 만나고 그 영향을 받아가며 영화를 제작했다. 본토가 단절 속에서 독자적인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면 식민지에 흩어져 있던 영화인들은 할리우드 혹은 지배지 안의 영화인들과 교류 혹은 발굴을 통해 영화를 제작했다. 이중 상당수는 필리핀에서 ‘저 깃발을 무찔러라’에서 카메라를 담당했던 미야지마 요시오(宮島義勇)처럼 필름을 불태우고 증거를 없앤 후 전후 일본영화계에서 좌익세력의 중심인물로 활약한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미국 LA=이훈구 작가>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87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돼지열병' 농가 고기, 시중유통 추정… 100두 이상 인천 도축장에 출하
도축장 반출=시중유통 의미, 경기도 "시중 유통 가능성 높다" 경기도 파주 발생농가와 가족농가서 4차례 인천 서구, 미추홀구 도축장과 가공업체로 출하 한차례 출하시 40두가량 옮겨지는 것 감안시 130~160두 출하 추정 (사진=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의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발생 농가의 돼지 100마리 이상이 인천지역의 도축장으로 출하된 후 시중에 유통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기도는 해당 돼지의 이동과정에서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전파 됐을 가능성을 두고 추적조사를 벌이고 있다. 17일 도에 따르면 24시간내 파주 발생농장의 돼지 2천400두와 이 농장의 가족이 운영하는 2개 농장(발생농장에서 20㎞)의 돼지 2천250두 등 모두 4천700부를 살처분할 계획이다. 특히 돼지열병 바이러스 잠복기간(4~20일)에 돼지열병 발생농가과 가족 농장에서 4차례 인천시 서구와 미추홀구에 위치한 A도축장과 B가공업체로 돼지들이 출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도축장 출하는 시중유통을 의미한다. 한차례 반출시 평균 40두 가량이 옮겨지는 것을 감안할 때 130~160두 가량의 돼지들이 인천의 도축장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의 관련 취재에 "파주 농장과 가족농장에서 돼지들이 인천의 도축장으로 출하된 것이 맞다. 단, 도축장 소재지가 경기지역이 아닌 인천지역이라 도축장에 대한 확인작업은 경기도에서 하기 어려운 상황" 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중유통 가능성에 대해서는 "보통 돼지가 도축되면 하루 이틀 정도 지난 후 판매되는 것을 감안할 때 시중에 유통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용 경기도 대변인은 이날 긴급기자회견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인수공통 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한바 있다. 이에 대해 한돈협회 관계자는 "돼지고기는 정상적인 경로로 유통됐고, 인체 감염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파주의 돼지열병 발생농가는 주로 돼지를 번식시켜 두수를 늘려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농가는 사육한 돼지를 도축장으로 유통시키는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보여진다. 경기도는 이날 오전 11시30분부터 돼지열병 발생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지사 주재로 31개 시군 부단체장 영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IN신문] 부산과학기술대학교, 부산직업교육거점센터 1기 교육생 모집…오는 23일까지
부산과학기술대학교(총장 강기성)가 주관하는 ‘부산직업교육거점센터’가 1기 교육생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번 교육은 교육부의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 후진학선도형(Ⅲ유형) 지원 사업으로 다양한 지역 성인학습자에게 맞춤형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와 대학 간 연계 강화를 목적으로 실시한다. 아울러 교육생들의 동기부여와 발전 등을 위해 ‘취약계층 학업지원 장학금’과 ‘학업성취 우수 장학금’을 지원한다. 장학금은 1인 최대 15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교육과정은 △드론사진측량 전문가 양성과정 △드론조종 국가 자격증 취득과정 △소셜마케터 양성과정 △스마트팩토리 코디네이터(운영자) 양성과정 △골목식당 창업과정 △부동산 경·공매기술 전문가과정 △자동차바디 리페어 및 내외장 전문가 과정 △파티쉐 및 블랑제리 양성과정 △바리스타 양성과정까지 총 9개 과정을 개설했다. 지원대상은 김해, 양산을 포함한 부산지역 거주하는 성인학습자로 현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지원이 불가하며, 휴학생은 지원 가능하다. 접수는 오는 23일까지 팩스(051-330-7083), 메일(life@bist.ac.kr), 온라인(http://www.busanlifelong.co.kr) 또는 방문하여 신청할 수 있다. 교육과정 및 자세한 안내는 부산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홈페이지(http://life.bist.ac.kr)를 참조하거나 전화(051-330-7369,7371)로 하면 된다. 강승희 기자 / busaninnews@naver.com #부산과학기술대학교 #부산직업교육거점센터 #전문대학 #성인학습자 #직업교육 #장학금 #드론 #소셜마케터 #스마트팩토리 #식당창업 #부동산경매 #파티쉐 #바리스타 #양성과정 #부산지역 #휴학생 #평생교육원
국정원 요원 합격하는 받는 훈련 클라스.jpg
출처는 2005년도 국정원다큐,동아일보 취재 3개국어마스터에 빡빡한 논술시험과 체력시험을 거치고, 신원조사와 면접까지 통과해 합격한 사람은 일단 1년동안 경기도 어딘가에 위치한 국가정보대학원에 보내져 합숙을 하게된다 입구에 무장군인들이 경비서고있어서 함부로 나가면 안된다 초기 4개월동안은 외출도 금지돼 가족도 못본다 입소하게 되면 5시에 일어나 동기들과 아침구보 2km를 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다음 아침식사후 사격훈련을 받게된다 신입인데도 이정도쐈다고 욕을 오지게 먹는 당신... 그 다음은 마약전문화교육이 있다 직접 맛도 보면서 마약과 불법약물을 구분한다 실제로 거물급 마약사범들은 국정원이 증거모아서 검찰청에 넘긴다고 한다 마약수업을 마치고는 무술훈련이 있다 이때 태권도,유도,합기도를 전부 배운다 지칠때로 지친 당신...하지만 (사진과 관계없음) 기억술 수업이 있다 본 장면과 들은 정보를 사진처럼 찍어내는 기술이라고 한다 기억술외에 미행,감시,도청,면담유출등등을 배우고 분야에따라 해킹도 같이 배운다 어느정도 훈련이 익숙해질 여름에 특전사부대로 가서 특전사와 같은 훈련을 받게된다 새벽부터 뻘밭을 구르고 공수훈련도 받는다 그렇게 한달동안의 특수훈련을 마치면 다시 국가정보대학원에 컴백해서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 와인,사교댄스같이 독특한 것도 가르쳐준다 이렇게 1년동안의 과정을 거치고나면 백색요원,흑색요원으로 나뉘어 정식 요원의 길을 걷는다 흑색이든 백색이든 주기적으로 신분을 바꾸며 주위에는 출판사나 제약회사 다닌다고 하며 살아간다 참고로 연봉은 같은 직급 공무원이 받는 월급에 '정보비'라는 특수활동비가 같이 지급된다 대략 월급의 2배에 해당하며, 이 금액은 국가기밀이라 세금도 추징하지않는다 (mb때 댓글공작팀이 있었던 흑역사가 있긴하지만...) 같은팀외에 서로가 무슨일하는지도 보안이라 같이 합숙한 동기끼리도 무슨일을 하는지 숨겨야한다 건물이 저렇게 생긴 이유도 방끼리 마주보지않게 보안을 지키려고 저렇게 설계했다고 한다 흑색요원으로 활동하다 상대국에 발각되면 우리나라에서 파악한 상대국흑색요원을 체포해 서로 교환하기도 하지만 순국할시 이름 석자도 남기지못하며 단순히 '별'로 기록되어 국정원에 남는다 지금까지 기록된 별은 52명이라고 한다 배가본드보다가 심심해서 글쪄봄 출처 예전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드라마에 미쳐서 국정원뽕에 찼던적이 있는데 ㅋ 요즘은 이미지 너무 안좋아졌지만 예전엔 진짜 정보요원 그자체의 이미지였음 ㅋㅋ
'조국사태' 시국선언 교수명단 진위 논란
폐교된 학교·허구의 학교 교수 포함 대학명과 참여인원만 표기, 교수 이름까지는 공개안해 시국선언 폼, 간단한 정보만 적으면 누구나 참여 가능 정교모의 시국선언 명단. 대학명과 참여인원만 표기되어 있고, 심지어 대구미래대학교는 2018년 폐교된 학교다. 사진=정교모 캡처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대학교수들이 3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국선언 명단에 폐교된 학교나 존재하지 않은 허구의 학교의 교수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져 진위 논란이 일고 있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이하 정교모)은 지난 13일 온라인을 통해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으로 사회정의와 윤리가 무너졌다'는 시국선언서를 발표했다. 정교모가 지난 14일 시작한 조국 법무부장관 교체 요구 온라인 서명운동은 나흘 만에 3천 명을 돌파했다. 18일 오후 2시 기준, 전국 290개 대학, 3396명이 시국선언에 동참한 것으로 정교모 블로그에 게재돼 있다. 블로그에는 대학명과 참여인원만 표기돼 있을 뿐 교수 이름까지는 공개돼 있지 않다. 이중 46곳은 대표 서명자들이 온라인에 서명한 교수들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고 하지만, 이들 학교 역시 대표 서명자를 제외한 교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명단에 나온 학교 이름도 수상하다. '대구미래대학교'는 2018년 폐교됐다. 한 누리꾼이 SNS에 정교모의 시국선언 명단을 캡처해서 올렸다. 시국선언 명단에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학들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해당 대학들은 삭제된 상태다. 사진=SNS 게시물 캡처' '명인대학교'라는 학교명도 포함됐다. 이 대학은 실존 학교가 아니라 과거 드라마 '하얀 거탑'에 등장했던 가공의 이름이다. 이날 현재 이 학교는 시국선언 명단에서는 삭제된 상태다. 폐교된 학교와 유령 학교가 시국선언 명단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시국선언 참여 폼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정교모의 시국선언 참여 폼.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정교모가 만든 시국선언 참여 폼은 이름, 소속대학, 학과, 전화번호, 이메일을 적어서 전송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지난 18일 조선일보는 '조국 퇴진' 시국선언 교수 2300명 넘었다...최순실 사건 때보다 많아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사진=조선일보 홈피 캡처 이는 시국선언 서명자가 나흘 만에 3천 명을 돌파한 것과 관련있어 보인다.
[S1E1] 괴물의 모습을 엿보다 | 킬링필드
나치의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 우리나라 제주의 4.3 사건까지, 대학살은 역사 속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 ‘왜 대학살은 반복되는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대학살이 일어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알아갈 필요가 있곘죠. 그래서 첫번째 에피소드 ‘괴물의 모습을 엿보다’에선 캄보디아의 가슴 아픈 현대역사, 크메르 루즈 독재 정권시대를 살펴보면서 이 기간 동안 일어났던 대학살 통해 괴물로 변한 인간의 모습을 엿보고자 합니다.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학살 킬링필드. 2017년 여름, 저는 킬링필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뚜얼 슬랭 박물관"과 "청아익 대량 학살센터"를 방문했어요. 그 당시의 아픔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뜻에서 그곳에는 고문 기구, 고문 사진, 교실을 개조해서 만든 감옥 등 생생한 증거들과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천천히 그 당시의 참혹했던 역사를 더듬어가며 분노와 슬픔을 느꼈어요. 그리고 많은 질문이 들었습니다. "왜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었지? 그리고 왜 대학살은 역사에서 계속 되풀이되는가? 대학살의 원인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대학살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꼭 이 캄보디아의 슬픔을 그리고 제 생각들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시리즈 "왜 대학살이 반복되는가" 여러분과 함께 참혹한 역사를 통해 깊은 고찰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류현진 홈런! 실제로 일어났다" 美 현장 중계진도 흥분
LA 다저스 류현진,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홈런 폭발 현장 중계진 "베이브 류" 외치며 류현진 홈런에 열광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홈런을 때린 LA 다저스 류현진이 코치의 축하를 받으며 3루를 돌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류현진의 홈런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베이브 류!!" 23일(한국시간)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콜로라도 로키스의 경기에서 다저스의 선발투수 류현진이 타석에서 데뷔 첫 홈런을 쏘아올리자 현장 생중계를 맡은 캐스터 조 데이비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류현진은 다저스가 0대1로 뒤진 5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상대 선발 안토니오 센자텔라와 맞섰다. 0볼-2스트라이크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시속 154km짜리 직구를 받아쳤고 타구는 우중간 담장을 살짝 넘어갔다. 비거리는 118.5m, 타구 발사속도는 시속 162.5km였다. 조 데이비스는 공이 넘어가는 순간 류현진이 마침내 첫 홈런을 때려냈다며 그를 "베이브 류(Babe Ryu)"라고 불렀다. 이는 과거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성(루스)과 발음이 비슷한 류현진의 성(류)을 섞어 만들어낸 표현이다. 다저스 기사를 전문적으로 작성하는 채드 모리야마 다저스다이제스트 기자는 조 데이비스가 류현진의 홈런을 보고 마치 월드시리즈에서 끝내기 홈런이 나온 것처럼 반응했다는 글을 자신의 SNS에 남겼다. 그러자 조 데이비스는 "그보다 더 나은 순간이었다"는 재치있는 답변을 남겼다. 류현진이 홈런을 때린 것은 메이저리그 통산 255번째 타석 만에 처음이다. 류현진은 7이닝동안 볼넷없이 6피안타 8탈삼진 3실점을 기록하며 다저스의 7대4 승리를 견인했다. 이로써 시즌 13승(5패)을 달성했다. 리그 1위인 평균자책점은 2.35에서 2.41로 소폭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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