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걷는 독서 6.23
‘남들 눈에 꽃으로’ 어린 나를 위해 바치셨던 할머니의 그 아침 기도 - 박노해 ‘남들 눈에 꽃으로’ Korea, 2012. 사진 박노해 할머니의 성전은 울타리 옆 장독대였다 아침이면 항아리 위에 물을 떠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다 할머니는 동네 어려운 사정이 있는 사람들 이름을 하나 하나 일일이 불러가며 그들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원한 다음 맨 나중에야 나를 위한 기도를 바치셨다 내가 훌륭한 인물이 되게 해달라고, 나를 크고 잘되게 해달라고 빌지 않으셨다 ‘남들 눈에 꽃으로 보이게 해달라’고 빌으셨다 울타리 가에 핀 설중매처럼, 그 꽃이 지면 뒤이어 피어나는 수선화처럼, 배꽃처럼, 해당화처럼, 국화꽃처럼 그렇게 남들 눈에 꽃으로 보이게 해달라고 빌으셨다 내가 잘되는 것이 꼭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잘 보아주는 덕분임을 아셨기에 주위 사람들이 잘 안되는데 저 혼자만 잘된다는게 얼마나 어렵고 위태롭고 헛된 것인지를 아셨기에 할머니는 어린 나를 잘되게 해달라고 빌지 않으셨다 오직 ‘남들 눈에 꽃으로 보이게 해달라’고 피고 지는 아침 꽃을 보며 두 손을 모으셨다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남들 눈에 꽃으로’ https://www.nanum.com/site/2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