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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다 : 19. 너로부터 온 시(1)

제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혼자 시와 글을 쓰기도 하지만, 저에게 글을 써주는 사람도 있어요. 정말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 너무 고마웠어요.

시작합니다.

1. 너의 편지 - 나의 시

종이 위에서 우주의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그런 의식을 며칠씩이나 너는
참 정성스러워서 너는
빛나는 정성이 우주를 건너 왔다.

빛나는 눈동자에 맺힌 나의 모습이
네가 보내준 커다란 종이 위에 정성스레 비치어
종이에 내린 신비로움의 축복에 나는 젖어
어쩔 줄을 모르고 나는 볼펜이 되어요

종이는 마음이라
한 줄 한 줄 수놓인 너를 열어보면
당장이라도 종이에 빠져서 나는
한참을 헤엄칠 수 밖에

홍채가 수축한 이 밤에
닿지 않는 별을 생각하며
하나, 하나, 찬. 찬이. 그러가며
종이를 더듬는다.

따뜻해진 볼펜이
빛나는 …에게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읽으면서 내내 행복했어요. 감탄했고 흘러넘치는 어떤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어요.
종이 글 편지를 보내고, 답장으로 온 편지였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지?

2.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를 만나는 날을 그리며 살면,
너를 만나고 난 시간이 너무 공허해진다.
너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시간을 보낸 뒤,
너와의 만남이 끝나면,
너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동안에 미뤄왔던 쓸쓸함과 불안에.
그리고 무기력함으로 압도당한다.
너를 기대하는 것과 내가 나만의 삶을 사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너를 만나기 기대하며 즐거워하는 것도 내 삶이잖아. - 조금도 미루고 싶지 않은... - 니가 내 삶으로 들어온거야.
내가 너를 나의 시간 속에 들이기 원한거야.
그런 부작용이 있다.
너를 만난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기쁜 일인 동시에 나를 무기력함으로 끌어내림을 숨겨놓은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작용을 감춘 일임을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너를 만나기 전에 이미 기뻐할 수 있고, 끝이 허무하더라도 모든걸 감내할 수 있기에 나는 그래도 너를 만나러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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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에, 다시 혼자가 된 지 좀 지났을때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정말. 대학원 입학전부터 미리 들어가서 연구실 생활을 하기도 했고 당장 내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므로 깊은 관계는 부담스러웠다. 그저 가끔 만나 밥먹고 이야기하고 카페가고 영화보고 일상적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찾고 싶었다. 이런 부류의 친구들은 항상 있지만 의도치 않게 항상 멀어지고 떠나가고 잊혀지므로 다시 혼자라고 느낄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어플을 다시 깔고 친구 탐색에 나섰다. 번개 쪽지는 가볍게 거절하고 인사엔 인사로 답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내 결국 서로의 목적이 다르면 대화는 순식간에 끊긴다. 예전만큼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어 이렇게까지 굳이 어렵게 친구를 찾아야할까 의문이 시작될 무렵이면 신기하게 하나 둘은 연락이 이어진다. 나의 성향이라고 생각하는게 하나 있다면 한국사람도 좋지만 외국인도 친구로 참 좋더라. 어차피 살아온 환경과 상황이 다르다면 외국인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웃음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다만 관계가 깊어지면 안된다. 깊은 관계일수록 심도있는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외국인의 경우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연애로까지의 발전은 한국인에 국한되는게 나의 특징(?)이다. 12월 말에 연락하고 지내게 된 사람이 바로 미국인이다. 흑인이기도 하고. 흑인 친구는 처음이라 그저 설레긴 했다. 친구로 지내기에 나쁜 사람은 많지 않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만큼 어쩌면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이었고, 한국어도 꽤나 잘 구사하는 사람이라 더 좋았다. 애초에 나는 연애가 목적이 아니었고(연락을 시작한 목적이 처음에 연애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연애 관계로 발전할 수는 있지만) 친구가 필요했기에 충분했다. 투썸플레이스에서 처음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사람이 보기에 외국인들은 다 똑같다고 느낄때가 많고,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구분 못할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리라. 나도 그를 처음 보았을때 그냥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비주얼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느낀바를 말했다. 영화배우같다고. 그냥 평범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분명한 것은 이 사람도 굳이 한국사람이랑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 것.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게 너무 좋았다. 진짜 카페에서 3시간 정도 이야기한 듯 했다. 그 사람도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굳이 저녁을 사겠다고.. 아마 그래서 도미노 피자인지 피자헛인지 미스터피자인지 미스터피자 같다. 미스터 피자에서 피자를 10분만에 먹고 나왔다. 나의 버스 막차 시간이 그랬고.. 가게 영업시간이 그랬다. 급하게 먹고 나와서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줬다. 뭐랄까 외국인과 작별하는 인사는 포옹이 좋을까 하여 가볍게 포옹하고 나중에 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 날부터 그와의 카톡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카톡 빈도가 높아지고 연구실때문에 내가 답장을 못해도 카톡은 쌓이고 이런 질문했다가 내가 답하기도 전에 다른 질문을 던져놓고... 엄청난 관심을 받다보니, 더 가까워지기 전에 꺼리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물론 나는 대전에 살고 솔로여서 크리스마스가 큰 의미는 없었고 그 날도 연구실을 가야했고 특별한 약속이 없어서 그와 만났다. 선물을 줬다. 무언가를 정성스레 만드는 것을 좋아하서 뭘 좀 만들어줬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해줘서 기쁘긴 했다. 그 후로도 여러번 만나 식사를 함께했고 영화도 봤다. 어느날 갑작스레 나에게 무슨 말을 했다. 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풍기는 느낌과 뉘앙스에서 바로 나는 무슨 말을 하려나보다 알았지만 아니길 바라며 이야기를 했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렸다. 분명히 예전에 한국인이랑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왜 이러는건지.. 멋쩍은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자꾸 대답을 강요한다. 한국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느끼는대로 솔직하게 답했다. 나는 그냥 좋은 친구사이면 좋겠다고. 난 아직 어쨌거나 학생이고, 내가 자리잡을때까지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돌아온 답변은 날 더 당황하게 했다. 기다리겠다고, 지금처럼 일단 지내자고. 부담스러웠지만 더 이상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주는 애정만큼 되돌려줄 수도 없고 의도적으로 그만큼 되돌려줄 생각도 없기에 내가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물론 억지로 좋아하려고 해본 적도 없긴하다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난 그저 친구가 필요했고 그 이상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날아오는 카카오톡 메세지에 답장을 하기는 하지만 나의 대답은 점점 짧아지고 1차원적으로 변해간다. 내가 그럴수록 그도 섭섭해하리란걸 잘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한 쪽의 마음이 균형에 맞지 않을만큼 커져버리면 다른 한 쪽은 당황하게 되고 마음이 붕 떠버린다. 내가 지금 그렇게 떠버린 상태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걸.. 친구로 만난 이 만남은 친구로 지낼때 오래토록 지속될 수 있지만 일방향적으로 은근한 부담이 시작되었기에 그 끝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고 나도 또한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정말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며 만난다는게 얼마아 어려운 일인지,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서로 만족스러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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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확실이 예전에 비해 이쪽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나아졌다. 내가 체감할 수 있을만큼 정말 많이 좋아졌다. 물론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의 첫 커밍아웃. 고3 수능이 끝난 시점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여사친에게 고백했다. 약속을 잡은 시점부터 말해겠노라 다짐하고 발걸음을 나섰지만, 생각대로 입에서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배스킨 라빈스에서 파인트인지 쿼터였는지 싱글이었는지 먹었던 아이스크림 종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긴장되던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하려던 말을 잊은건 아니지만 입밖으로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다른 이야기만 하고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시간을 보낸 뒤 헤어지던 무렵,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어 갈라지기 직전에 이야기했다. "나 게이야." 심장이 터질듯하면서도 발화의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저 말을 툭 던지고 빠르게 이동했지만 문자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면대면으로 이야기를 제대로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면서도 내심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야기를 듣고 미소짓던 친구. 문자로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친구. 덕분에 학교생활도 재미있게 즐겁게했지만 앞으로도 더 가깝게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며 지금도 연락 잘 하며 지내고 있다. 그동안 살면서 주변 친구 20명정도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모두 잘 이해하고 잘 지내고 있다. 사람을 거르고 거르고 차별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주변에 말할 수 있게 해준 친구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내 주변에도 호모포비아인 친구가 있다는 것이며 그런 친구들에게는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대부분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남달랐던 경험이 있다. 바로 친 형에게 말한 것. 형과 나는 1살 차이로 유일한 형제로 남들이 그러하듯 어릴때부터 많이 싸웠다. 하지만 형이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대화가 엄청 줄어버렸고 사이가 좀 멀어졌다. 이상한건지 당연한건지 형이 군대를 가면서부터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다. 말수도 늘고 장난도 치고, 또 형이라고 무언가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이 상태가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다. 드물게 같은 버스를 타면 그럴 생각도 없지만 아는척 하지 말라고 장난스런 카톡을 보내기도 한다. 26살 가을 어느날, 형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저녁에 둘이 같이 술먹자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형이 무언가 알아버린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왜 술을 먹자고 하는걸까?' 살면서 형이 먼저 같이 술 먹자고 한 것이 애초에 처음이었으니까 별 생각 다 하게 되었다. 무슨 사고를 친 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이 있는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를 알아버린건지. 많은 생각을 품고 긴장하면서 컬투치킨으로 갔다. 형이 먼저와 앉아 있었고, 여기 맛있다며 미리 시켜놨다고 했다. 나의 첫마디는 왜 갑자기 술먹자고 한거냐고. 이러는거 처음이라 신기하다고 였다. 형이 대답하길 그도 이런 적이 이전에 없었기 때문에 '그냥' 처음으로 같이 마셔보고 싶었다는게 전부였다. 긴장이 풀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꽤 오래했다. 형은 모르지만 아빠엄마 그리고 나만 아는 이야기를 해주면 진짜냐고 충격도 받고..ㅋㅋ (원래 형이 아빠엄마랑 대화가 많지 않아서 잘 모르기도 하고, 나는 갑자기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다보니 꽤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형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들은 어릴때부터 니네 형제는 여자 안만나냐고 둘이 무슨 게이형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자기는 얼마전에 이런저런 사유로 만나기 시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지만 난 이미 헤어진 것을 알고는 있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메세지보면 답이 나오므로.. 형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무슨 배짱인지 몰라도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에 나는 대답했다. "나는 맞아." 형이 놀란 눈으로 "뭐?"  했다가 한 번 더 "뭐??" 그랬다. 그래서 다시 말해줬다. "지금은 내가 남자친구가 없어서 애매하지만 남자 좋아한다"고. 형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어쨌거나 형제니까 날 때리거나 상종을 안한다거나 자리를 뜨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흥미로운 시선으로 날 봤다. 형은 "타이밍 좋게 잘 말했네." 라고 말했고ㅠ우린 대화를 이어나갔다. 형도 과거에 비해 현재는 많이 유해지고 생각이 넓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다만 아빠 엄마에게는 당장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건 나도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친가족 중에 비밀을 터놓고나니 정말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고 전보다 편해졌다. 아마 적지 않은 이쪽 사람들의 작지 않은 고민이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주변에서 잘 받아들이고 잘 지내주어 생각보다 끝내주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예전에 인종차별에 관한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그때 내가 발표했던 내용의 중점은 적극적인 차별이 아닌 소극적 차별,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의 차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 특히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누군가 지하철에서 자신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움츠러들고 차별받는다고 느끼게 된다는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아 그런 내용으로 구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떠올랐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언뜻 보기에 말이 안 되는 단어 같다. 선량한 사람이 어떻게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적극적인 차별이 아닌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가하는 차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더라도 어떤 말이, 어떤 행동이, 어떤 시선이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자신도 모르는 새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결정장애라는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쓴 저자는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들었다.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그 한마디로 저자는 이 결정장애라는 말이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들릴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던 자신의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사과한 후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에 수많은 차별이 숨어 있다. 결정장애는 물론이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은 남자에게 하는 게이 같다는 말이나 급식충, 맘충 등의 혐오표현은 물론이고 흑형, 백형과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혐오의 의미로 쓰는 표현이 아닐지라도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차별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지라도, 차별에 반대하는 어떤 선량한 사람이라도 무지로 인한 차별적 언행을 일삼을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에 대해 계속 공부해야 하고 알아가야 한다고,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과 다른 계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인식 밖의, 소극적 차별 들에 대해 낱낱이 드러낸다는 것이다. 성별, 인종, 성적 취향, 재산, 사회적 명예, 나이 등 수많은 조건들에 대해 다른 계층의 사람들, 상대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계층의 사람들이 기득권층에게는 전혀 차별 같아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열등감을 느끼고 차별로 받아들이는지를 서술한다.(실제로 많이 찔리기도 했다.) 놀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 차별이 산재해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고 또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좁은 의미의 적극적인 차별(KKK 단, 동성애를 반대하는 종교 집단)이 아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넓은 범위의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첫째는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논의해야 할 방안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조금 부족하다. 책에서는 종교 집단의 퀴어 축제에 대한 반대 운동, 여성의 직종 및 노동 대가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하면서 퀴어 축제를 허가해야 하고, 여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직종에 대해 여성 할당제를 시도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는데 필자는 그 부분에 대해 아주 조심스러운 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는다. 성적 취향이란 것은 누가 반대하고 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취향 문제일 뿐이지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도대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퀴어 축제 현장에 대해서는 솔직히 찬성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퀴어 축제가 동성애자에 대한 사람들의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퀴어축제 참가자들의 복장을 보면 거의 비키니에 가까운 복장이나 아예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SM 플레이에 나올 법한 복장을 입기도 한다. 또한 간식들도 여성이나 남성의 성기 모양 과자나 빵 등을 구워서 팔기도 한다. 도대체 왜 퀴어 축제는 그런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야만 하는가? 평범한 동성애자들은 평소에도 그렇게 노출이 심한 복식을 즐겨 입고 집에서 남성기, 여성기 모양의 간식을 만들어서 먹는가? 동성애자 중에도 노출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으며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남자지만 여성의 복식을, 여자지만 남성의 복식을 입는 사람도 있고 중성적인 의상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퀴어축제를 보면 전자의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런 것들이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계속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필자는 과거 LA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퀴어 축제에 가 본 적이 있고 몇 년 전의 축제이기에 현재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퀴어 축제가 아니라 이성 연인 혹은 모든 커플들의 사랑을 주제로 한 축제더라도 사람이 가득 붐비는 축제 거리에서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거나 속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SM플레이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사람들이 주목을 받고 주류가 되는 축제, 남성기나 여성기 모양을 한 간식들을 파는 축제에는 가고 싶지 않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퀴어 축제가 과연 모든 LGBT들을 대표할만한 축제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여성 할당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필자는 여성 할당제가 남녀 간 직종의 차이, 노동 대가의 차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적용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남성 비율이 높은 모든 직업에 여성할당제를 적용한다면 그로 인해 그 직업들을 가지게 된 여성들의 자격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근무하기 위한 객관적인 최소 기준을 측정할 수 있는 직업, 예를 들어 의사나 변호사처럼 시험을 봐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직업들의 경우 그 최소 기준을 만족시키는 범위 안에서 여성할당제를 적용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러한 객관적 최소 기준을 정할 수 없는 직업들의 경우 문제가 된다. 국가의 공인된 시험, 혹은 자격 검증 절차 같은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기 힘든 직업들의 경우 무조건 여성을 절반 이상 뽑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면 그중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런 경우를 고려하여 어떻게 여성의 최소 비율을 할당하면서도 그 안에서 업무 수행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논의와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 두 번째는 너무 모든 것을 차별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는 부분이다. 예멘 난민의 수용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우리가 무비자 입국을 막은 것이 과연 차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분명 차별로 인한 부분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라는 것은 애초에 어떤 지역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고 다른 집단으로부터 불공정한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국가라는 것은 언제나 그 나라 국민들의 입장을 가장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고 예멘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도적 차원에서는 맞는 일이더라도 국민들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제재하는 것 또한 국가의 일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사이가 좋은 국가가 있고 나쁜 국가가 있다. 어떤 나라에게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어떤 나라에게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도 차별 때문일까? 국가 간의 이권 다툼, 영토 문제, 외교 정책 등 많은 것들이 개입된 문제이고 그 속에 차별도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차별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 차별을 없앨 해결 방법은 국가라는 것을 없애고 전 지구를 하나의 통합된 집단으로 만드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차별이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하지만 그것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만이 우리가 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책 속 한 문장 : 생각해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게이다 : 6. 이쪽 모임 만들기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고 대학교에 복학했었다. 당시 나는 25살에 2학년이었고 11학번인 나는 15학번 후배들과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가까워지기엔 먼 당신들이었지만 그래도 인사는 하고 지낼정도로까지 유지했다. 너무 친하게 지내기는 어렵고 (나도 원하지 않았다. 이정도 나이 차이면 분명 후배도 나를 대하기 부담스러울 것이며 나 역시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따로 생활하려했다) 너무 멀게 지내기엔 실험때문에 문제가 되므로.. 그렇게 학교를 혼자 다니게 되었다. 나의 긴 휴학의 대가였지만 생각보다 자유로워서 좋았다. 그러던중 학교에 LGBT관련 성소수자 동아리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덜컥 연락해서 가입까지 해버렸다. 평등함을 추구하는 동아리여서 회장직이나 임원직이 따로 있지 않았지만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나도 부서장을 하면서 면접보는 일을 했다. 나를 거쳐 동아리에 가입한 회원도 꽤 된다. 그 회원 중 하나가 머지 않은 미래의 남자친구가 되었다. 그는 H.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최악이었고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H. 이 H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할 예정이다. 어쨌든 H와 만나다가 6-7개월 가량? 만나다가 헤어지게 되었지만 헤어지기 한 달 전?즈음부터 당시의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져 있었다. 인간관계의 권태기라 하는 관태기가 왔고 살짝 대인기피증도 오려고 했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울감. 불면증. 이로 인해 나는 정신과 진료를 받고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먹었다. 사람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어질 줄은 몰랐는데  이런 일이 나에게도 왔었다. H와 헤어지던 날, 형용할 수 없는 쾌감과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동아리마저 탈퇴해야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은 커졌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모임만들기. 내 이름을 붙여 **팸 이라고 명명하고 모임을 만들기위해 어플에 홍보하기 시작했다. 사진 이미지처럼 팸 원 모 집 24~29살 7명 규모 술/여행/영화/식사 연애목적 X 지속적인 패밀리 Line : ******* 나이대는 비슷했으면 했고, 너무 회원이 많아 관리가 어려운건 싫어서 한 두 테이블에 앉아 한 눈에 잘 들어오는 7명을 기준으로 했다. 술도 먹고 밥도 같이 먹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갈 수 있는 사이로 지내고 싶었고 연애는 원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모임 내에서 연애가 시작되면 언젠가 그게 문제가 되고 결국 누군가는 나가게 되므로 되도록이면 모임 내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설명을 했다(직접 하나하나 만나보며 면접봄). 연락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왔다.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율도 상당했다. 40대 중반이라던지 번개를 찾는다던지 난교모임으로 착각한다던지.. 그런 사람들을 제하더라도 거의 3일만에 팸원을 다 구하게 되었다. 대학생이 반정도 직장인이 반정도였고 24살에서 28살까지. 좋았다. 그때는 여름방학이었고 나는 시급 1만원짜리 인턴을 하고 있어서 여유롭게 생활할때였다. 덕분에 모임에 들어가는 지출이 부담스럽지 않아 모임장으로서 모임을 관리하기 좋았다. 많으면 일주일에 한 번, 보통 2주에 한 번 만나 술자리를 함께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자주 많이 술을 마셨던 때가 아닌가 싶다. 여름방학 2달동안 정말 이쪽 술집에 많이 갔고 가는 날이면 1차 2차 술집 3차 노래방 4차 가라오케 5차 실내포장마차 어느정도 정해진 코스를 따라 4차, 5차까지 놀았다. 덕분에 아침해가 뜨면 첫차를 타고 집에 가는 영광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두 달 간 월40만원정도가 유흥비로 나갔지만 기분좋은 지출이었고, 방학이 끝나자마자 워터파크를 같이 간 일 외에는 만나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정말 한 달에 한 번 볼까말까했다. 우려했던 일도 생겼었다. 팸 내 연애금지가 암묵적인 룰이었지만 그런 규칙이 있다 한들, 사람들 마음을 내가 마음대로 억제하고 규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모임 내에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고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예상대로 한 명이 먼저 나갔고 남은 한 명도 결국 나갔다. 이 문제로 사실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남은 멤버들은 다행이 잘 활동해주어 참 고마웠다. 가끔 집들이도 가고 생일파티도 하고 그냥 작게작게 만나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즉흥적으로 바다도 보러가서 조개구이도 먹고.. 이렇게 유지는 되는듯 했지만, 1년정도 되었을때 사실상 유령모임이 되어버려 단톡방에 공지하고 폭파했다. 이 모임을 만들며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심리적으로 안정하게 해주었고 정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 물론 모임장이었던 나는 지금도 멤버였던 친구들과 종종 연락하고 만나고 지낸다.  이 모든 시작은 H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H에게 고맙지는 않다. 다들 잘 지냈으면 좋겠다. H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