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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다 떠나는 미술이야기 6월

달마다 떠나는 미술이야기 6월

단오면 머리를 감겨 주시던 할머니

-풍속화 속의 단오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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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 화가의 모델이자 인기남들에게 둘러싸인 여성화가
서양미술사에서 인상주의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은 끌로드 모네, 앙리 마티스,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등이 있으며 이 화가 모두는 남자입니다. 그러나 뛰어난 인상주의 화가들은 모두 남자였을까요? 정답은 "No" 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남자 화가들 사이에 '마네의 뮤즈'로만 알려진 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가 있습니다. 여덟번의 인상주의 전시회 중 무려 일곱번을 참가한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홍일점인 그녀의 삶과 작품을 소개합니다. 1. 재능 금수저 모리조는 로코코 시대의 화가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증손녀였습니다. 그리고 모리조의 아버지는 고위 공무원인 사법보좌관이었는데 아버지도 예술에 관심이 많아 예술가들의 후원자였으며 자기 자신도 아마추어 화가였습니다. 모리조는 어렸을 때부터 친자매인 에드마(Edma Morisot)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화를 따라 그리며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2. 코로의 제자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Jeon-Baptiste-Camille Corot)는 1850년대의 대표적인 풍경 화가였으며 '아버지 코로'라고 불리며 귀스타브 쿠르베, 클로드 모네, 베르트 모리조 등 젊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리조는 코로의 지도를 받고 살롱에 출품한 작품이 당선되었을 때 코로의 허락 아래 '코로의 제자'라고 서명했다고 합니다. 3. 마네와의 만남 베르트 모리조의 예술 세계를 담은 영화인 '마네의 제비꽃 여인 : 베르트 모리조'에서 유부남인 마네와 만난 모리조는 서로 이끌리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관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둘의 미묘한 감정에 대한 사실 관계는 알 수 없지만 모리조는 마네의 작품에 모델로 서기도 하고, 마네의 예술관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은 사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모리조는 마네의 동생과 결혼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원문을 참고하세요. # 원문 출처 : https://redfriday.co.kr/201 # 많이 본 컨텐츠 # 매일 업데이트되는 생활꿀팁과 알아두면 도움되는 이야기를 팔로우 하셔서 쉽게 구독하세요. # ‘좋아요’ 와 ‘공유하기’ 많이 부탁드려요.
보라색에 고인 당신(펠릭스 발로통)
Felix Vallotton <The Neva with light fog> "색채 때문에"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작품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고흐의 작품이 그러할 것이고, 르동과 마티스의 작품이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보라색 끝없는 보라색의 풍경으로 나를 사로잡은 작품이 있다. 펠릭스 에두아르 발로통의 작품이다. <Cloud at Romanel> 참 신기하다. 보라색만이 줄 수 있는 묘한 신비가 있다. 빨강이 주는 열렬함과, 파랑이 주는 높음과, 노랑이 주는 부드러움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차원이, 보라만이 내뿜는 안개 같은 신비가 있다. 보라색은 안개처럼 내려앉는다. 그러면서 공간을 약간 뿌연 무언가로 채워버린다. 그 공간의 빛을 볼 수 있고 자유자재로 내뿜을 수 있었던 사람이 발로통이었다고 생각한다. 스위스 출신 펠릭스 에두아르 발로통 Felix Edouard Vellotton(1865-1925)은 1882년 열일곱 살에 파리에 오면서 미술가로서의 공부를 시작했다. 고전적인 작품들을 몰두하던 그는 어느 날 판화에 열중하기 시작한다. 스물여섯 살경 목판화를 시작하고 얼마 뒤 에칭 분야에도 도전한다. 이렇게 판화를 연구하고 발전시킨 중요한 인물이 발로통이었다. 이후 그는 앙데팡당전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기존 미술계에 등을 돌리고, 이후에는 나비파와도 연결되게 된다. 나비(Nabi)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의미하는 것처럼, 종교적인 주제와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주제를 주로 하였으나, 나중에는 일상까지도 주제로 포괄하여 다루었다. 발로통은 존경하던 고갱의 색채 개념에 영향을 받아 윤곽선을 강조하였으며, 표현을 단순하게 하고, 상징적 색채를 사용하여 작품 속 대상들을 살아 숨 쉬게 하였다. 발로통은 이제 후기 인상파와 상징주의와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고, 유화 작품에 치중하면서 장식적이고 평면적인 표현을 시도하게 되었다. 호기심이 충만하고 자기 연구에 성실한 발로통 덕분에 우리는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을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작품 성향을 관찰해볼 수 있다. <Autumn Crocuses> 발로통은 비교적 일찍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다작을 해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발로통이 미술사에서 가장 발전시킨 것은 목판화였을지도 모르나 내가 미술사가라면 단언컨대, 보라빛 풍경화를 남긴 작가로 발로통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보라빛이 고인 풍경화를 꽤 많이 남겼다. 나에게 고흐가 노랑의 빛이라면, 발로통은 보라의 그리움이다. <Sunset at Grace Orang and Violet Sky> 보라색의 날들이 말을 걸어오는 순간, 그 보라색에 응답할 줄 알았던 사람.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보라색의 순간을 붙잡을 수 있다. 순간에 응답하는 삶. 그 응답들이 모여서 누군가의 인생을 물들이는 것 같다. 나 대신 보라색에 고여주었던 삶이 있어서 이제 내 인생이 이 그림에 응답한다. <The Lake in the Bois de Boulogne> 사랑하는 당신이여. 이제 다시 말을 걸어주십시오. 다시 한번 이 순간의 보라에 응답하리이다. <Sunset, Sun Rays and The Pond> 출처
왕실, 권력 그리고 불화
제목이 확 땡기더라구요... 그래서 데려왔습니다. 음, 그런데 말입니다... 국내여행을 다니면서 가는곳 근처에 있는 유명한 사찰들은 꼭 가보고 그 사찰에 있는 문화재들도 꼼꼼히 챙겨보고 하는게 재밌더라구요. 근데 전공이 사학이지만 며칠전 기말고사 공부하는 아들이 하는 질문에도 어버버 했거든요 ㅋ. 미안하다 아들아 ㅡ..ㅡ 암튼 제가 불교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건 삼국의 불교전파에 관한거랍니다. 고소전순 백침동마 신눌고묵... 이게 뭐냐구요? 고구려는 소수림왕때 전진에서 온 순도에 의해 불교가 들어왔고, 백제는 침류왕때 동진에서 온 마라난타 그리고 신라는 눌지왕때 고구려에서 온 묵호자에 의해서 불교가 전래됐다는건데 셤에도 나왔던 기억이... 이렇게 외우니 30년이 훨씬 지나도 잊혀지지가 않더라구요 ㅋ. 각설하고 제가 불교에 대해서 아는건 이게 전붑니다. 그래서 내용이 살짝 전문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림 위주로 편하게 읽어나갔답니다. 기억나는거 거의 없음요 ㅡ.,ㅡ 삼국이나 통일신라시대의 불화는 거의 남아있는게 없고 그나마 고려와 조선시대 불화들이 현재 남아있는데 일본이나 미국에 있는 불화들을 보면서 많이 아쉽더라구요. 머 그리스나 이집트에 비하겠냐만은요... 아, 그래도 어려운 책 읽은거 같아서 쓸데없는 뿌듯함이...
[코로나19] 우리에게 '세이브', '로드' 버튼이 있다면
'시티즈 스카이라인'으로 보는 재난 대응 시스템의 무게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재난 상황에서는 이성과 시스템이 공포와 혐오보다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적 마스크'도, '드라이브 스루' 검진소도 과거엔 없었던 시스템이죠. 재난 대응 시스템을 잘 구현된 게임으로 <시티즈 스카이라인>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15년 출시된 <시티즈 스카이라인>은 도시를 운영하는 시장이 되어 인프라를 구축하고 시민의 생활을 돌보는 시티 빌더입니다. 재난 상황을 시뮬레이팅하는 '대피모드'는 <심시티> 시리즈보다 고도화된 기능으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5년 동안 <시티즈 스카이라인>에 푹 빠진 한 게이머가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이윤과 생명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일이 게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생각할 만한 지점들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외부 원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고= 한민성(사회학을 전공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시티즈 스카이라인> 팬),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 코로나19 재난에 맞서는 행정 시스템 긴급 재난 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힘차게 울리고 뉴스에 나오는 공무원들이 노란 민방위 점퍼를 입고 있다. 연일 급증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에 국가 자원이 총동원됐다.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논산에 가야 할 공중보건의들은 대구로 떠났고, 간호사관학교 4학년 생도들은 조기 임관하여 전원 대구로 파견되었다.  공공 마스크 확보를 위한 대책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하고, 연일 급증하는 환자를 수용할 병상도 넉넉하지 않다. 그러니 자원 배분 과정이 아주 매끄럽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진자 동선이 지자체 홈페이지와 재난 문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뿌려지고,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선별진료소가 도입되어 각지에 도입되는 등 철밥통인 줄 알았던 공무원들이 이렇게 기동성 있게 움직이는 것은 쉽게 보기 어려운 일이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차량이용 선별진료소 (출처: 서울시) 사회가 만들어 내는 복잡성에 매료되어 사회학과에 진학했던 본인 같은 '시스템 오타쿠'로서는 이 관료제의 역동적 움직임을 마치 '밀덕이 장비의 택티컬함에 감탄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게임에서도 이런 재난대비 시스템을 세울 수 있을까? 재난 상황을 다룬 게임은 많지만 행정적 의미의 '재난 대비'를 가장 전술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게임은 아마 <시티즈 스카이라인>일 것이다. 물론 행정 시스템이 완전히 우리나라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연방제 행정 시스템에 비유할 수 있는 <시티즈 스카이라인>은 재난에 맞서 당신이 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구현됐다. <시티즈 스카이라인>의 플레이어는 시장이 되어 도시를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재난 대비에도 신경 써야 한다. 만약 당신이 재난 대비에 콘셉트를 맞추어 게임을 진행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시티즈 스카이라인> 은 파도 파도 콘텐츠가 나오는 본격 민방위 게임이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니다. 3월 2일, 코로나19 선별진료소 확대에 관해 브리핑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박 시장이 입은 옷은 '민방위복'이다. (출처: 서울시) # 본격 민방위 게임 <시티즈 스카이라인> <시티즈 스카이라인>을 플레이하다 보면, 환경오염이나 식수오염, 병원 부족으로 인한 보건 재난부터 쓰나미, 홍수, 대형 산불이나 지진, 운석 충돌, 토네이도, 전신주 낙뢰, 폭설, 혹한, 싱크홀 등 수많은 재난을 마주하게 된다.  지진이나 씽크홀로 인해 강줄기가 바뀌거나 댐이 무너져 홍수가 올 수도 있고, 재난으로 도로나 전력망이 끊겨 힘들여 구축한 재난 대응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되는 등 복합적인 재난 상황도 일어난다. 재난 발생 시 긴급 재난 문자를 뿌리기 위한 무선 안테나. 음영지역이 생기지 않게 적절한 위치에 심어야 한다. 단순히 병원과 소방서를 확충하는 것을 넘어서, 도로망 단절을 대비한 닥터헬기와 전문 구조헬기, 소방헬기를 준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재난 대응을 위한 비상 통신망, 백업 전력망을 갖추는 것 또한 필수다. 재난 상황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재난 기간 동안 시민들을 대피시킬 대피소를 지어야 한다. 또한, 대피소에 충분한 식량과 물자를 비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어야 하고, 수송과 유통을 위한 도로나 철도망이 있어야 한다. 공장이 없으면 화물항이나 화물공항을 통해 국경 밖에서라도 들여와야 한다. 시설만 짓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재난 대비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해야 한다. 재난 대응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고, 운반하고, 배분해야 한다. (출처: 식약처) 쓰나미 위험이 잦은 해안가나 홍수가 잦은 강변 마을이라면 방파제와 배수로, 비상용 펌프 시스템도 갖추어야 한다. 산불 위험이 잦은 숲 속 마을이라면 어디선가 피어 오를지 모를 연기를 감시할 산불 감시 탑과 소방차가 갈 수 없는 산 속 깊은 곳까지 물을 뿌릴 소방헬기 기지를 지어야 하고, 소방용수 확보를 위한 저수지까지 마련해야 한다. 재난을 대비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건 재난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다.  재난을 ‘방지’하거나 ‘방치’할 수 있는 법령도 선포할 수 있다. 화재경보기를 무료화하는 법령을 통해 대형 화재를 예방할 수 있고, 무너진 건물의 생존자 수색보다 재건축을 우선 하는 법령으로 생존자 수색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다. 이렇게 모든 재난대비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려면 아주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돈이 궁한 게임 초반에는 이런 재난대비, 예측, 대피 시스템 구축은 언감생심이다. 그저 재난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도시가 성장하여 여윳돈이 생기고, 도시의 성장에 따라 늘어가는 화재와 질병에 소방차와 앰뷸런스 몇 대를 가지고 동분서주하는 소방관들과 구급대원이 안쓰럽게 느껴진다면, 바로 그때가 재난대비 계획을 세우고 재난 대비 관련 시설을 확충할 때다. 하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대형 재난을 몇 번 겪고 나서야 재난 대비 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사스를 겪고 질병관리본부를 만들고, 메르스를 겪고 시스템을 정비한 한국처럼. # 대피모드 버튼, 결단의 무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에 대응 계획을 세우는 것과 재난이 일어날지 모르니 대피령을 내리는 것은 도시 행정의 관점에서 완전히 다른 일이다. 플레이어가 지진 경보계나 기상 레이더, 쓰나미 경고 부표 같은 재난 사전 예측 시설을 충분히 깔아 두었다면 재난이 일어나기 전 "도시 어딘가에 재난이 예측되었습니다"라는 사전 경고를 받아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예측의 형태는 현실에서도, 게임에서도 언제나 모호하기 마련이다. "도시 어딘가에 토네이도가 발생할 예정입니다"는 식이다. 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도시가 멈춘다 재난 예보를 확인한 당신이 <시티즈 스카이라인>의 '대피모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당신이 깔아둔 비상 통신망을 통해 도시 전역에 사이렌과 "즉시 가까운 대피소로 피난하라"는 재난방송이 울려 퍼진다. 한국인에겐 익숙할 ‘민방위’ 태세다. 당신의 재난방송이 긴급 통신망을 타고 둘리는 동안, 도시는 모든 생산 기능을 멈추고 당신이 이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 매뉴얼에 따라 재난 대응 태세로 전환할 것이다. 당신이 도심에 마련해둔 대피시설에서는 시설과 떨어진 곳에 사는 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한 버스가 출발할 것이다. 대피소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시민을 위해 피난  버스의 노선을 설정할 수도 있다 재난 대비를 위해 도시가 멈추면 생산이 없으니 세금 수입도 제로가 된다. 모든 경제 수치는 마이너스로 변한다. 당신이 힘들게 모아둔 도시 재정은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한다.  당신이 (게임 시간으로) 수십 년간 동안 쌓아둔 도시 금고가 재난 발생 3~4주 만에 바닥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의 도시는 파산해 중앙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할지 모른다. 재난은 언제나 확률이지만, 도시를 멈춤으로써 입는 경제적 피해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숫자로 떨어진다. 긴급 피난 명령의 경제적 대가는 크다 도시 어딘가 떨어진다고 예보된 운석이 도시 한가운데를 피해 한적한 공터에 떨어질 수도 있고, 도시 어딘가에서 발생한다는 토네이도가 저 멀리 송전탑 몇 개만 부수고 소멸할 수도 있다. 운석이나 토네이도가 도시 한가운데로 떨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단순히 경제 논리로만 따지자면, 도시를 멈춰서 드는 비용이 재난으로 인한 인적손실의 비용보다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더 많은 돈을 금고에 쌓아두는 게 플레이어의 목적이라면 재난이 임박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별일 없을 테니 시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라는 방송을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시티즈 스카이라인> '대피모드'의 비용은 정말 비싸다. 재해 감지 시설에 의해 감지된 자연재해의 예상 사망률이 1% 남짓으로 예측된다면, 당신은 도시를 재정적 파탄에 이르게 할 ‘대피' 버튼을 누를 것인가? 운이 없다면 1%보다 많은 시민이 죽겠지만 사실 이 게임은 도시를 멈추는 비용보다는 장례비가 훨씬 저렴하다.  '겨우' 인구의 1% 남짓한 희생 가능성 때문에 대피 경보를 내린다면, 당신이 수년간 공들여 준비해왔던 스포츠 대회나 로켓 발사를 취소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티즈 스카이라인>엔 민주주의가 구현되어있지 않기에 시민들 좀 죽었다고 하더라도 시장 직을 계속해나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코앞에 닥쳐온 재난을 숨길 것인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한 명의 시민이라도 더 구해낼 것인가? 불안에 떨고 있는 시민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우리에게 세이브&로드 버튼이 있다면 장례비는 병원비보다 저렴하다 고백하자면 난 <시티즈 스카이라인>의 시장으로서 예측시스템의 경보를 무시하고 재난이 도시의 문을 두드리는 최후의 순간이 올 때까지 대피를 시키지 않았던 적이 더 많았다.  실제 도심 한가운데로 재난이 떨어질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현실적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긴 하지만, 솔직히 힘들게 모은 예산을 ‘긴급 피난 명령’으로 날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티즈 스카이라인>에는 세이브&로드 버튼이 있다. 이 버튼은 공짜다. 세이브&로드 버튼이 없는 현실사회는 이보다 더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있다. 올림픽 같은 대형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고, 선거를 앞두고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사이비 종교 단체나 백신 거부론자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상황을 통제 불가능한 지경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코로나19라는 재난에 맞서 한국 사회는 그간 여러 재난을 겪으며 구축해둔 매뉴얼과 가용 자원들을 총동원하고 있다. 한국은 비슷한 상황인 주변국에 비해 훨씬 많은 정보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우리가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서 태어나 살면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재난의 기억이 우리의 머릿속에 세이브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이브&로드 버튼이 있는 <시티즈 스카이라인>처럼 과거로 돌아가 비극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나 살면서 겪었던 어처구니없는 비극과 슬픔이라는 기억을 돌이켜 다가올 재난을 대비 할 수 있다. 우리의 오늘은 과거의 총합이고, 지금의 재난 대응은 과거의 아픔에서 오는 반응이다. 이는 '사회적 면역'의 작동이다. 한국사회는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 '코로나19와 총력전'이라는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코로나19의 근원지인 중국을 제외하면 그 어떤 다른 나라보다 많은 행정적 자원을 재난 대응에 투여하고 있으며, 이는 하루 1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검사자 수로 증명된다. 고위 공직자 몇몇의 과감한 결단이라기보다는 같은 재난을 다신 겪지 않겠다는 시민 의지의 작동이다.  코로나19가 빠르게 종식되어 "철저히 준비한다면,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라는 재난 대비의 모범사례로 우리 기억 속에 세이브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자수첩] 정인게임장의 폐업, 그리고 어릴 적 아버지의 게임장에 부치며
일전에 정인게임장에 취재를 하러 가면서 어려운 마음이 여럿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벌써 2년 전이다. 정인게임장이 폐업을 한다는 루머. 하지만 2년 뒤, 루머는 결국 현실이 됐다.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관련기사] “그놈의 사명감 때문에. ‘정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참 별것 아닌데…” 당시 기사에서 짧게 언급했듯, 기자에게 게임장은 곧 '아버지의 일터'와 같았다. 짧게 얘기를 하면, 아버지는 기자가 아주 어릴 때부터(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게임장을 운영하셨다. 전국에 체인점을 낼 정도로 걱정 없이 지냈다. 주에 한 번씩, 퇴근길 동생과 함께 부르셔서 과자를 한가득 사주셨던 기억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점점 크면서 횟수는 점점 줄었다. 게임장 영업이 어려워진 탓이다. 이용자의 놀이 형태가 바뀐 것도 있지만, 새로운 게임(아버지는 항상 이를 '기판'이라 부르셨다)이 나올 때마다 교체하는데 드는 수백만 원의 막대한 비용, 그리고 PC방이 성행함으로 인한 수입 감소 등이 있다. 출처: '맑고 향기롭게' 유저 블로그 결국 아버지의 게임장은 전국의 지점을 닫게 됐다. 커다란 규모에 빽빽하게 들어선 수많은 게임 기판들, 그리고 그곳을 채우는 많은 이용자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더욱더 안타까웠던 것은, 대학교 입학 후 방학이 되어 아버지의 업장을 방문하려 했는데, 기자가 갔던 곳은 이지투디제이와 펌프잇업, 그리고 10개 남짓 되는 아케이드 기판이 들어가는 다소 조그마한 크기의 게임장이었다. 당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꽤 아팠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근거 없는 원망이 들기도 했지만, 그게 누군가의 원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서비스업을 하시는 분들의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정말 대단한 것임을 알게 됐다. 군대를 다녀올 때 즈음, 아버지는 게임장을 폐업하셨다. 기자가 정인게임장 사장을 취재하러 갔을 당시, 사장은 함께 운영하던 숭실 게임랜드를 폐업하면서 일부 기판을 정인게임장으로 가져오려 하는 차였다. 사장은 게임장을 운영한 지 16~7년 정도 됐다고 말했다. 기자의 아버지와 비슷한 연차였다. 사장 역시 아버지와 같은 이유를 어려움으로 꼽았다. 그에게 부딪히는 현실의 압박이 너무나 거셌던 탓이다. 임대로부터 거듭해 오르는 물가까지. 하지만 이용자에게 받는 이용 요금을 섣불리 올릴 수 없는 상황. 놀이 환경의 변화 등. 정인게임장은 한때 '격투게임의 성지'라 불리며 흥행을 달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당시 사장은 그런 타이틀 때문에, 더욱 여기에 매달렸다 말했다. 철저히 무시했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 것을, 정리했다면 2년 전부터 인형뽑기방을 했을 것이라고 얘기하며. 당시 기사의 제목은, 기자의 귓속을 계속 맴돌던 정인게임장 사장의 말이다. "그놈의 사명감 때문에, 정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그거, 참 별거 아닌데."라며. 정인게임장의 위기설이 나오면서 많은 이용자, 팬들이 우려 혹은 꼭 살아나기 바란다는 응원을 하기도 했다. 아마 사장도, 늘 어렵지만 그런 그들의 응원에 부응하려 하루하루 '버텼을' 것이다. 기자가 아버지를 보며 느꼈던 것처럼. 당시 사장은 게임장 한 라인을 싹 정리하고 자리에 아케이드 기기를 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는 거다. 그래도 결과가 같으면 두 손 두 발 다 드는 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데도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실이 그러했으니까. 2시간 남짓 사장과 함께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만남을 종료했다. 사장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며 "잘 가라. 또 놀러오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사장이 개인실명 공개를 꺼린 탓에, 연락처는 받지 못했다. 기자도 "언젠가 다시 놀러 가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했다. 하지만, 그 만남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16일, 정인게임장은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아마 가뜩이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도중, 코로나19 여파로 수입이 제대로 얼어붙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폐업 전 다시 들르려 했던 계획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게이머를 위한 게임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체감형 기기나 인형 뽑기 등 형태를 바꿔가며 운영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게이머들에게 소위 '성지'라 불리는 곳 중 많은 곳이 막을 내렸다. 연락처라도 여쭤볼 걸 하는 아쉬움이 더욱 남는 요즘, 그래도 20년 가까이 게임장을 운영한 사장에게 기사를 빌어 "고생하셨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기자의 아버지에게도 못한 말에 대한 죄송함도 함께 담아. 
추석 준비 (막걸리 만들기) 1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제가 아주 어렸을때 할머니는 명절 한두달 전부터 명절 준비를 하셨어요 정말 일가 친적들이 다 모이는 큰집이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할머니 성격 때문에 제사 음식을 거의 모두 집에서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유과 찹쌀 반죽을 말리고 조청부터 만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서 손으로 만드는 유과는 정말 환상적이에요 그리고 술! 엄청나게 큰 항아리에 막걸리를 만들어요 어렸을때 담요를 두르고있는 술항아리 옆에 귀를 데고 누우면 안에서 술 익는 톡톡 ~ 방울 방울 소리가 들리는게 신기했어요 엄청나게 큰 항아리라 불을 붙인 짚으로 안을 소독하는 장면도 기억이나고 짤막 짤막한 기억이지만 명절은 이렇게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하는 엄청난 날이라고 막연한 느낌이 있었어요 얼마전에 할머니가 전화가 와서 금동이 안부를 제일 먼저 물어보고 요즘 도통 입맛이 없으시다며 옛날옛날 할머니가 어렸을적엔 꿈에그리던 하얀 쌀밥인데 이제는 입이 써서 넘길수가 없다고 하시는데 마음에 아팠어요 그래서 할머니 입맛 돌릴 막걸리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ㅎ 누룩 찹쌀 술항아리 ㅎ 찹쌀을 백번 정도 씻어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부터 고비에요 쌀알이 다치지 않게 살살 ~ 맑은 물이 뜰때까지 씻어줍니다 정말 백번정도 많이 씻어야합니다 뿌연물이 나오게되면 술에 기름이 뜨고 빨리 상하거나 술이 되기전에 상해버릴수도 있다고 합니다 씻은 찹쌀 일부를 덜어내 죽을 끓여줍니다 저는 밥솥 쾌속으로 고두밥을 쪘어요 ㅎ 고두밥도 식혀줘요 25도 정도로 식은 죽에 누룩을 넣고 버물버물 물기가 생길때까지 .... 2차 고비가 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양이 많아 한참걸렸어요 누룩도 그냥 막 때려넣기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 잘게 부시면 더 잘될거같아요 소독된 술항아리에 누룩죽을 넣고 식은 고두밥을 넣고 섞어줘요 너무 치덕치덕하지말고 손가락을 세워 잘 섞어줍니다 모든 도구와 손은 수술방에 들어가는 것처럼 뜨거운물 이나 알콜로 소독합니다 세상의 균들로 부터 우리 누룩이를 지켜야하거든여 :) 병 안쪽 벽에 붙은 지꺼기들도 알콜 뿌린 키친타월로 닦아냅니다 그리고 집에서 제일 시원한 곳에 두면 끝입니다 일단은 ;;;; 12시간후 아직 밥알이 살아있는것처럼 보이네요 ㅎ 철저 소독한 손으로 다시한번 버물버물해줘요 밀가루 반죽하든이 막 치대면 안되영 24시간후 약간 물기가 생긴듯 부드러워졌습니다 누룩이들이 찹쌀을 열심히 먹고있나봐요 ㅎ 다시한번 소독한 손으로 버물버물 40시간 후 상태입니다 확실히 느낌이 많이 달라졌지요 이제는 물기가 아주 많은 상태입니다 지금부터는 진한 곡물향과 막걸리 알콜냄새가 납니다 역시 소독된 도구로 저어줍니다 약간 느낌이 막거리에 밥을 말아놓은것 같습니다 이제는 5일정도 절대 개봉금지 계속 발효 시켜줍니다 추석전 채주 할 예정이에요 ㅎ 채주 후기 올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