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낭만 넘쳤던 순간 10가지
1. 축구 역사상 최고의 낭만 수비수 2015년, 이탈리아 1부리그 세리에A 소속 '파르마'는 재정악화로 인해 아마추어 리그인 4부리그로 강등됐다. 이에 소속 선수 모두가 자유계약(FA) 신분으로 풀렸고, 팀을 떠났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그의 이름은 알렉산드로 루카렐리. 센터백이었던 그는 여러 팀을 전전하다 파르마에서 처음으로 1부리그 주전이 된 선수였다. 그는 모두가 미쳤다고 할 결정을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파르마에 남는다." 아마추어 리그인 4부리그로 강등된 팀에 잔류한 그는 주장을 맡았고 리그 전경기를 선발 출장해 4부리그로 강등된 팀을 다음 시즌 곧바로 3부리그로 승격시켰다. 그 다음시즌에도 모든 경기를 뛰며 팀을 2부리그로 이끌었다. 그리고 2부리그 막바지, 주장이자 팀의 핵심이 된 그는 이번에도 대부분의 경기에 출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나이 40세. 더 이상은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반월판 부상을 당해 더 이상의 시즌을 소화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겠습니다. 반월판은 저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루카렐리의 부상으로 수비 불안에 처한 팀의 성적은 하락세. 마지막 라운드인 38R를 승리하고 경쟁팀이 승리하지 못해야만 승격인 상황에 몰렸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났다. 루카렐리는 불혹의 나이라는 40세의 신체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빠르게 부상에서 회복해냈고 38R에 선발출장 해 팀의 무실점 승리를 이끌었다. 반면 경쟁팀은 89분, 경기막판에 동점골을 허용하며 무승부. 파르마는 다시 1부리그로 복귀하였고, 루카렐리는 마침내 약속을 지켰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낸 루카렐리는 이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파르마는 그의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모두가 나를 미쳤다고 했다. 나의 아내와 서포터들마저도. 오직 아들만이 나를 응원해줬다." "하지만 나는 약속했다. 파르마를 다시 1부리그로 데려가겠다고. 그리고 나는 약속을 지켰다." 이 위대한 팀의 주장이었던 것, 그리고 이 아름다운 셔츠를 입었던 것, 내가 축구선수 알렉산드로 루카렐리로서 충실히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은퇴사 중에서- 2. 트레제게의 눈물 2006 독일월드컵 결승전 프랑스 VS 이탈리아 양 팀은 치열한 경기를 펼쳤고 승부차기에 이르기까지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축구선수들에게 최악의 악몽일 순간. 프랑스의 트레제게는 승부차기에서 실축했고 이탈리아가 우승을 차지한다. 프랑스 대표팀은 빈손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 직후 선수단 해단식. 아나운서가 고생한 선수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였다. 그렇게 트레제게의 이름이 불렸다. 어두운 표정으로 국민들 앞에 선 그가 한 첫 행동은 사과였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뜨거운 환호와 격려로 그를 맞이했다. 이날 트레제게는 그 어떤 프랑스 선수보다 큰 박수를 받았다. 이를 본 트레제게는 눈물을 머금고 사과를 계속하다가 마침내 그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놓였던 것인지, 동료들의 품에서, 실축 당일에도 흘리지 않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3. 평생의 적, 라이벌. 그러나... 이탈리아 수비수의 전설, 파울로 말디니. 그는 1979년 AC밀란의 유소년 선수로 입단하여 2009년 AC밀란의 주장으로 은퇴하였다. 그리고 말디니의 은퇴소식이 발표되던 날 AC밀란의 라이벌, 인터밀란의 홈구장에 인터밀란 서포터즈가 건 걸개 "말디니. 20년의 라이벌. 그러나 그대는 충성을 다했다." 그리고 또다른 원클럽맨. 1989년 AS로마의 유소년으로 입단하여 2017년 AS로마의 레전드로 은퇴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원클럽맨, '로마의 왕자' 프란치스코 토티. 역시 그의 은퇴 소식이 들려오던 날, 로마의 라이벌 라치오 서포터즈가 내건 걸개 "평생의 적이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잘가라, 프란치시코 토티!" 4. 감독과 선수의 가장 드라마틱한 마지막 인사 인터밀란에서 트레블을 달성하고 레알마드리드로 떠나던 조세 무리뉴. 그리고 그를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는 마테라치. 마테라치를 발견한 무리뉴는 차를 세우고, 두 남자는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5. 패배의 직감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 프랑스 VS 우루과이 후반 41분, 0-2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경기에 임하는 우루과이의 히메네즈 6. 49800번째 서포터 스페인 라리가 소속 발렌시아의 홈구장 메스티아에 있는 49800개의 좌석 중 하나는 동상의 자리이다. 동상의 주인공은 비센테 나바로. 그는 1928년 태어나 2016년에 사망하기까지 평생을 발렌시아의 팬으로 살았다. 그는 항상 같은 자리의 시즌권을 샀고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다. 1981년, 시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2016년 그가 사망한 이후 구단에선 그 자리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발렌시아의 서포터들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상에 스카프를 둘러주거나, 꽃을 두고 간다. 비센테 나바로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 앉아, 메스티아의 49800석의 1석을 채우고 있다. 7. 3전 3패, 2득점 11실점. 파나마의 첫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낸 파나마.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서 울려퍼치는 파나마의 국가를 부르는 선수들 해설을 하던 파나마의 선배 축구선수들 또한 들려오는 국가와 후배들의 눈물에 벅차오름을 누르지 못한다. 6-0으로 지다가도 한 골을 넣으면 파나마의 서포터들은 기뻐하며 월드컵을 즐겼다. 3전 3패, 2득점 11실점. 마지막 경기를 끝낸 파나마 대표팀은 모두가 둘러앉아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고 그렇게 아름다웠던 자신들의 첫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9. 모든 축구선수가 꿈꿀 은퇴의 순간 2019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마르쿠스 로젠베리. 그는 마지막 경기였던 유로파 조별예선 말뫼 VS 디나모 키예프에서 95분 극적인 역전골을 넣은 뒤 팬들의 품에서, 팬들과 포효하며 은퇴하였다. 10. 피로 세워진 구단의 낭만 독일 분데스리가의 유니온 베를린. 독일에서 여전히 가난한 동독 지역의 팀. 이 팀은 가난했고, 그 가난으로부터 역사를 만들었다. 어느 수준으로 가난했냐하면, 경기장이 저랬다. 돈이 없어서 라이선스를 따지 못해 3부리그를 우승하고도 2부리그 승격이 두 번이나 거부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열정적인 베를린의 서포터들은 이 팀을 사랑했다. 그러던 2008년에, 이 가난한 팀에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위 영상의 경기장이 보다시피 너무 낙후되어, 리그 참가팀이 의무적으로 맞춰야 할 경기장의 안전기준에 못미쳐 리그 참가가 거부된 것이다. 해결책은 구장 재건축인데, 이 팀에 돈이 있을리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프로 구단 해체의 결말 밖에 없던 상황. 이에 서포터들이 나섰다. 우니온 베를린의 서포터들은 헌혈로 피를 모아가면서 경기장 건축비용을 모금했다. 그렇게 돈이 모이자 수 천명의 서포터들이 무급으로 경기장 건축 현장에 나와 막노동을 해가며 경기장을 지었다. 결국 우니온 베를린은 살아남았고, 언론으로부터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피로 세워진 구단' 그리고 10년 후... 우니온 베를린은 120년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1부리그 승격에 성공한다. 관중석의 팬들은 모두 피치 위로 뛰어나와 자신들의 지켜낸 구단의 승격을 축하하였다. 동독 출신 클럽의 다섯 번째 분데스리가 승격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다음시즌 1부리그에서의 첫 경기 우니온 베를린의 팬들은, 꿈에 그리던 1부리그 승격을 자축했다. 팀의 1부 승격을 보지 못하고 먼저 떠난 친구, 가족들의 사진을 들고서. 먼저 떠난 이들과 함께 승격을 축하한 이날, 많은 베를린의 팬들이 눈물을 참지 못했으며 또 많은 축구팬들을 울렸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22-23시즌, 우니온 베를린은 리그 1위이자 극강인 바이에른 뮌헨을 승점 1점차로 추격하는 2위를 기록 중이다. 이 낭만의 팀이 과연 다시 한 번 기적을 쓸 수 있을지, 자켜볼 일이다. 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