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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 아빠 에피소드 레전드.jpg
아빠가 밤늦게 들어왔는데 술떡이 됨 술 취해서 난동 피우는 아빠 그 덕에 깬 도라에몽과 진구 진구 :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엄마 : 어머 깨웠구나. 여보 제발 정신 차려요~ 애들이 보고 있잖아요! 술 버릇이 심해지는 아빠 엄마 : 이제 나도 몰라요!  엄마 : 너희도 다시 올라가서 자. 빨리! 도라에몽: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진구 : 응... 아빠 일어나 봐요. 이런 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아빠 : 에잉 시끄러워! 애 주제에 어른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도라에몽 : 이제 어쩌지? 진구 : 아 그래! 어리다고 뭐라고 하셨으니 더 큰 어른을 부르자! 아빠의 엄마. 할머니를 보면 아무 말도 못 하실 거 아냐! (노진구의 할머니는 진구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도라에몽 : 그렇네! 아빠를 (타임머신으로) 옮기자 과거로 아빠 배달 완료! 진구: 할머니를 불러오자! 진구: 근데 뭐라고 말씀드리지..? 진구 : 할머니... 저 그게요... 할머니 : 진구냐? 날 보러 또 와줬구나 진구 : ...! 기억하고 계셨군요 할머니 : 우리 손주를 어떻게 잊을꼬 진구 : 할머니!!!! 도라에몽 : 진구야~ 진구 : 아, 맞다! 진구 :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실은, 아빠도 같이 왔어요. 할머니 : 뭐? 네 아빠도 같이 왔다고? 진구 : 엄청 취하셔서 난리도 아니에요! 진구 : 봐요~! 할머니가 마구 혼내주세요! 할머니 : 석구야~ 어서 일어나거라 아빠 : 너 누구야!  아빠 : 난 이 집에 가장 이란 말이.. 어? 아빠 : ? 아빠 : 어머니 어째서.. 할머니 : 조금 야단을 쳐야겠다 싶어서 할머니 : 잘 지내는거 같구나 아빠: 그럼요! 할머니 : 우리 아들 잘하고 있니? 아빠 : 당연하죠~! 난 한 가정에 가장이라고요! 할머니 : 그렇구나~ 하지만... 할머니 : 뭐든지 다 혼자서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아빠 : 엄마!!!!!! 할머니 : 아이고 우리 아들. 무슨 일이 있길래 이렇게 울음이 터지셨나 아빠 : 부장님이요...! 엄청 못된 부장님인데 날 매일 못살게 굴어요! 할머니 :  그랬어? 힘들었겠구나 진구: 아빠?! 도라에몽: 조금만 있게 해드리자 도라에몽 : 어른은 좀 불쌍한 거 같아 진구 : 그건 왜? 도라에몽 : 그야, 자기 보다 더 높은 사람이 없잖아. 그래서 많이 의지하고 어리광 부릴 사람이 아무도 없어 진구 : 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네 도라에몽 : 아빠도 분명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거야. 그래도 매일 힘을 내시는 거지 진구: 응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울다 지쳐 잠든 아빠 다시 현재로 돌아온 후. 다음날 아침 아빠: 고마워요. 어제는 미안했어요. 취해버린 바람에... 엄마: 괜찮아요~ 아빠 : 오랜만에 어머니 꿈을 꿨어요 옛 생각이 나더군요... 아빠: 그럼 갔다 올게요! 다시 돌아온 아빠 아이들은 공감 못하는데, 어른들이 보고 울었다는 에피소드.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서울 근교 영종도 바다 드라이브 맛집
서울 근교 영종도 바다 드라이브 맛집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설 명절 연휴는 잘 보내시고 계신지요. 오늘은 날씨예보로는 그다지 춥지 않은데 내일 엄청 춥다고 합니다. 영하 17도 서울 기온이라고 하네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니 건강에 더욱 유의하시고 귀성길 안전 운전하세요. 오늘 소개할 서울근교가볼만한곳은 인천 영종도 갈만한곳으로 왕산해수욕장과 영종도맛집 붕어찜을 먹고온 식도락 여해이 소개합니다. 영종도 갈만한곳 바다 겨울 드라이브 코스 1, 영종도 드라이브 코스- 영종대교 2, 영종도 바다 -을왕리 왕산 해수욕장(캠핑장. 야영장) 3. 영종도 캠핑장. 야영장-서해캠핑장. 가족오토캠핑장 3, 영종도 맛집.마시안 맛집- 화산 붕어찜 * 댓글 링크를 누르면 인천 영종도 바다와 맛집 상세소개했어요. * * 인천 영종도 갈만한곳 왕산해수욕장. 붕어찜 맛집 영상 감상해요. #인천영종도 #영종도갈만한곳 #왕산해수욕장 #영종도해수욕장 #영종도바다 #겨울드라이브 #영종도드라이브코스 #겨울갈만한곳 #겨울영종도 #영종도캠핑장 #영종도드라이브 #겨울드라이브코스 #영종도맛집 #마시안해변맛집 #화산붕어찜 #영종대교 #서해카라반 #영종도오토캠핑장 #오토캠핑장 #왕산가족오토캠핑장 #을왕리맛집 #영종도당일치기 #서울근교갈만한곳 #서울근교가볼만한곳
허저 중강 (許褚 仲康) A.D.? ~ ?
사람 보는 안목도 훌륭했고 용인술도 뛰어났으며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재기용 방식을 추구한 실리주의자 "조조"의 휘하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삼국시대 당시 가장 많고 두터운 인재풀을 자랑한 삼국시대의 레알 마드리드 라고 할 수 있었고 응당 그런 조조 아래에는 뛰어난 무장들도 참 많았다. 여러모로 뛰어나거나 조조와 코드가 맞아 신임을 얻은 장수들도 여럿 있었지만, 사료를 살피고 그 모든 것들을 토대로 볼 때 조조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가장 많이 받았다 느껴지는 장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허저"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진짜 "스트롱맨"인 이 인물로 간다. 오늘 날, 중국 안후이성 보저우시 출신인 허저는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며 당시 온갖 히어로들.. 그중에도 특히 범인을 훌쩍 초월하는 피지컬과 신체능력을 자랑하는 차이니즈 슈퍼히어로들 중에서도 가히 압도적인 진짜 '스트롱맨'이였음이 기록에 나온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는 허저 관련 에피소드들 중 허저가 조조 휘하로 임관 전... 고향에 살 당시 1만 여명 이상의 대규모 도적떼가 허저의 고향에 침공했고 대치에 지친 양측이 휴전을 합의하며 도적들의 곡식과 허저측의 소를 물물교환 하는 와중, 소가 놀라 달아나자 그 소의 꼬리를 한 손(!?!)으로 잡고 백여 걸음을 끌고 갔다는 이 말같잖고 믿기지 않는 스토리가 엄연하게도 위서의 허저전에 실려있다.... 당시 후한말에 일반적으로 사육하던 소의 품종, 암수(♂♀)여부, 소의 연령, 소의 영양상태 등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품종여부 떠나 소라는 동물 자체가 원체 크고 암수의 무게차도 상당하지만 암컷인들 일반인에게 끌어 당겨질 무게는 아니며 어린 송아지 또한 지금 이 글 쓰는 나, 읽는 댁들이 힘으로 해볼 수준을 가뿐히 넘어서고 당시 허저측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 사람도 제대로 못 먹어 오죽하면 도적떼에게 고기를 주고 곡식을 받아오려는 시도까지 한 점등 비추면 소인들 제대로 먹어 평소의 몸상태는 아니였겠으나 그렇다한들 소는 소인지라 어쨌건 사람이 일신의 용력만으로 한 손끌이를 할 생물이 절대 결코 아님은 명백하다. 게다가 소의 꼬리를 잡아끌었다는건 소 또한 순순히 끌려가지 않고 그러지 않으려 끌려가는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용을 썼다는 이야기인데... 전 중국 및 전인류사에서 최강의 파워맨이라 일컬어지는 항우가 이런 허저보다 힘 좋았을까 싶을만큼 여간 대단한 힘이 아니다. 위서에 의하면 신장도 "여덟 자 남짓" 이라 하는데, 당시 후한 말 기준의 여덟 자가 현대 기준의 거의 190cm에 가깝고 '남짓'이라는 표현은 여덟 자를 좀 넘는다는 뜻. 게다가 후한 말 관련 모든 역사서들 중 유일하게 허저는 허리둘레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당시 단위로 "10위"나 되는 허리둘레를 지녔다고 나오며 이 역시 현대기준 무려 115cm(45inch가 넘는다!!)라는... 당장 이 수치는 체격이 작은 편은 아닌 내 가슴둘레를 넘어선다.. 아마도 위에 언급된 인간계 끝자락급의 파워를 볼 때 엄청난 근육질이였을 것으로 보이며 저런 피지컬까지 지닌 것으로 보아, 대략 상상해보면 '브록 레스너'나 '밥 샙' 정도 되는 체구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런 거구들은 지금도 길에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들 쳐다볼만큼 눈에 띄는 엄청난 거한들인데,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6cm 가량 정도였을 후한 말의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단순 거인을 넘어서, 방금 화장실 다녀왔더라도 마주하면 소변을 지릴 괴물이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엄청난 신체조건 + 신체능력을 지닌 초인 허저는 조조가 허저의 고향 일대를 점령하자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을 이끌고 조조휘하로 가는데, 당시의 조조 또한 허저의 체구를 보고 심히 놀랐다는 기록이 있고 이 당시 "실로 나의 번쾌가 될만하다!!" 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조조는 허저와 그가 이끌고 온 장정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근위대 즉, 최측 호위대로 임명했다고 하는데 당시같은 난세에 당시 조조가 듣보잡이 아니였음에도 그런 새로 갓 합류한 이들에게 자신의 신변경호를 맡긴 것을 보면 허저를 굉장히 좋게 보고 신뢰했던 모양인데, 이때부터 조조는 허저에게 반한 듯 싶고 조조의 알음알음 허저 챙기기가 시작되었던거 같다.ㅎㅎ 허저는 생김이나 체구, 그 압도적인 신체능력 등을 갖추고도 전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샤이가이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것도 싫어해서 조조가 장수들을 집결하면 가장 구석이나 뒷편에 숨겨지지도 않는 체구를 한껏 움츠려 섰다고 한다. 조조는 장수들이 군공을 세우면 많은 이들 앞에서 당사자를 불러내 크게 칭찬하는 방법으로 당사자를 띄워주고 다른이들도 분발을 유도했는데, 부끄럼쟁이 허저는 간혹 공을 세우고도 이런 수 많은 사람들 앞에 불려나가 주목을 받고 추켜지는 것에 상당히 큰 부담을 갖고 있었고... 조조가 그를 앞으로 호명해도 못 들은체 딴청을 부리고 밍기적대다 거듭 그를 불러도 쌩까는 허저를 조조가 호통을 쳐 부른 후에야 마지못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이 저런 사람이다보니 말도 거의 없었던 듯. 그러나 할 말은 하는 편이였던거 같고 하루는 형주방면 총사령관이던 조인이 급한 보고를 위해 허창으로 갔는데 당시 조조가 바쁜 정무 중이였고 조인은 맡은 중책이 중책인지라 조조를 기다릴 겨를은 없어 허저에게라도 메모를 전달하려 허저를 불렀다. 허저는 조조의 인척이자 최측근이고 방면군 사령관인 조인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어 조인에게 갔는데.. 조인 : 아, 허중강! 나 지금 쫌 급한데 말 좀 전해줘! 허저 : 기다리시면 전하 곧 나오십니다.. 이러고는 조인의 대꾸도 듣지 않고 바로 휭~ 조조에게 돌아갔고 이날 이후 조인은 허저를 벼르기 시작한다. 조인은 다시 정욱을 불러 이 일을 이야기했고 정욱이 듣고 놀라 허저에게 가서 물었다. 정욱 : 중강! 사회생활 참 못하네.. 조장군 성격 몰라? 전하의 친척에 측근에 개국공신인데 왜 그러셨대? 허저 : 암만 그래봐야 저 사람은 방면 맡는 바깥사람이고 난 전하의 신변경호를 맡았는데 내가 왜 전하의 허락없이 외부인을 만납니까... 이 에피소드가 조조의 귀에 들어가자 안그래도 이쁨받던 허저는 더욱 조조의 사랑을 받았다. 허저와 조조는 아무래도 주군과 호위관이다보니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허저는 종종 옷매무새가 허술하거나 한 경우 조조가 이를 먼저 보면 직접 옷매를 다시 챙겨주기도 했고, 조조가 식사시에 조조곁에 서서 조조의 식사를 지켜보는 허저에게 같이 식사를 권해서 허저가 응하면 함께 먹기도 했다. 허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찬이 있으면 응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응하지 않았다.... 허저가 체격이 체격인지라 허저가 타는 말은 금새 지쳐 여러 마리를 번갈며 탔는데, 허저가 탈 말은 조조가 직접 선별해 골라줬고 경우에 따라 자신이 타고 있는 말과 바꿔타기도 했는데, 주군이 신하와 말을 바꿔 타는 것은 당시 "말"이라는 동물의 군사적, 물질적 가치를 고려하면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였다. 게다가 당시의 조조가 타는 말이 예삿말들도 아니였고.. 이는 마치 내가 새로 간 회사 사장님이 외근 나가며 업무용 레이를 타는 내게 자신의 아우디 Q7을 타고 가라며 바꿔 주는 것이나 진배 없는 것이다. 조조의 경호실장이면 거의 대부분 조조의 가장 근처에 있다보니 전장에 나가 지휘를 맡은 적이 드물지만 없진 않다. 양에서의 장수와 전투 당시 돌격대를 맡아 돌진하여 적의 기세를 꺾었던 적도 있고, 관도대전과 원소 사후, 원소의 잔당들을 정벌하는 중 업군 포위전 당시에도 소수나마 병력을 이끌고 나선 적 있다. 하지만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조조가 그를 호위관으로만 거의 중용하고 전장에 내보낸 횟수가 다섯 손에 꼽히는 걸 보면 통솔능력은 별 볼일 없었던 것 같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종종 허저의 일기토 내용들이 나오던데 올뻥이다. 허저는 누군가와 1vs1로 전투에서 맞붙은 적이 없다. 전위와 조조의 경호패키지로 묶음처리 되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둘은 연의에서처럼 서로 맞붙은 적도 없고 심지어 둘이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다. 왜냐 하면 실제 역사에서는 전위가 이미 사망한 후에 허저가 조조휘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의 내용 및 이를 토대로 캐릭터들의 능력치를 데이터화시킨 코에이의 삼국지 게임 내의 허저 어빌리티만 보면, 왠지 자기 이름이나 쓸 수 있을지.. 1부터 10까지 숫자는 셀 수나 있을런지 싶을 힘 쎈 바보로 그려지지만 절대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조조에게 임관 전에도 고향에서 도적떼를 상대로, 또 조조에게 임관 하면서도 자신을 따르던 적잖은 무리들이 있었던 점 등으로 봐서 아주 근본도 없는 사람이 아니였고 정사나 위서, 그의 열전 등 어딜 봐도 '허저는 빠가였다'는 식의 언급은 진짜 1도 없다. 다만... 워낙 별 말이 없고, 게다가 이게 좀 치명적인데 허저는 평상시에 입을 약간 벌린 눈도 촛점없는 멍한 어딜 보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 표정 탓에 그의 별명은 "호치(虎癡)"가 된 것.. 저 허저의 유명한 닉네임 호치의 호는 범 호, 다시 말해 전장이나 임무수행 및 조조곁을 지킬 때의 그의 호랑이같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뜻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뒤에 붙은 저 '어리석을 치(癡)' 인데... 저 치가 바로 허저의 그런 평상시 표정 탓에 붙은 것이였다. 그치만 허저입장에서 이것도 좀 억울한게, 조조곁에 있거나 전장이거나 뭐 그러면 모르지만 진짜 아무일없는 평상시에 조조가 내전에서 업무 보거나 천자를 알현, 또는 자거나 등등 그럴 때의 허저는 혼자 긴 시간을 문앞에 서 있어야 하는데 이 당시에 무슨 스마트폰이 있어서 허저가 유튜브나 빙글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쨌건 근무시간인데 이어폰끼고 음악 들을 것도 아니고, 진짜 할 수 있는거 없이 서 있는데 누군들 표정이 저리 멍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영국 왕실근위병들처럼 뭐 교대를 하는 것도 아니였을 것이고.... 당연히 허저는 본인의 저 별명을 싫어했고 위나라 내부에도 감히 허저앞에서 저 별명을 입에 담을 수 있을 힘과 용기를 지닌 자도 없었지만 어쨌건 허저가 기피하던 저 닉네임은 훗날... 동관에서 마초, 한수와 마주할 때 마초가 바로 달려가 조조를 개 때려잡듯 하려다 조조가 데려간 허저의 비쥬얼을 보고 짐짓 쫄은 마초가 "조공에게는 호후(虎侯)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말해준 후부터 "호후(虎侯)"로 격상된다. 삼국지연의에서 업을 함락 후, 깐죽대는 허유를 빡친 허저가 죽이는 씬이 나오지만 허구다. 저런 일 자체가 없었고, 허저의 성격상 단지 저렇게 깝친다고 하여 아무나 썽큼썽큼 죽이는 스타일이 아니였다. 일에 있어서는 더할나위없이 용맹무쌍했지만 평상시도 거칠고 격한 그런 사람이 아니였다. 평소에는 온순하니 풀 뜯지만 맹수가 다가오면 날뛰는 아프리카 물소같은 타입이였던듯 싶다. 조조가 죽자 탈진하여 쓰러질만큼 울부짖었으며 어찌나 심신이 상할만큼 슬퍼했는지 각혈까지 했다고 한다... 조비 또한 허저를 근위로 삼았는데, 조조가 허저를 자신의 최측에서 경호하는 소수의 경호대를 이끄는 경호실장역을 시켰다면, 조비는 황실전체를 경호하는 황실근위대를 이끄는 근위대장같은 직책을 맡겼다. 허저는 생몰연대가 명확히 사료에 나와있진 않지만 조조의 죽음에 이어 그 아들 조비의 죽음도 봤다. 물론, 조비가 그리 오래 못산 탓도 있으나 아무튼 주군부자의 죽음을 모두 겪고 조조의 손자인 조예대에 사망한다. 여러 정황들 볼 때, 조예재위기에는 사실상 은퇴상태로서 원로예우를 받았던거 같고, 조예 재위 후 그리 오래지 않아서 사망한 듯. 사인에 대한 별 다른 언급도 없고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사망당시의 허저나이가 상당한 고령이였음으로 추정되기에 그냥 노환에 의한 병사였을 듯 싶다. 사실... 주군의 최측근 경호는 그리 공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자리다. 그럼에도 허저를 아끼던 조조는 그런 허저가 혹여라도 기가 죽을까, 늘 그가 있음에 자신이 마음 편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큰 공이라며 그를 치켰고. 가끔은 허저를 전장에도 내보냈다. 허저가 근위대장임에도 몇 차례 전투에 나섰고 비록 몇 차례 안된다고는 해도 어쨌건 모두 승리했는데 추측해 보건데 이는 조조가 허저를 장수로서의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별 다른 지휘통솔능력이 없어 대병을 이끌기는 무리인 그가 소수병력을 이끌고나마 충분히 승리할 법한 전투에 가려 보내 허저로 하여금 주워 먹게끔 했던 배려로 보여진다. 허저 또한 박식똘똘이까진 아니여도 자신을 아끼는 그런 조조의 마음씀씀이를 캐치할 정도는 충분히 되었고 조조를 깊게 공경해 따랐으며 심지어 조조가 그에게 휴식을 명해도 허저는 이를 따르지 않고 거의 자는 시간을 제하면 조조의 지근거리에서 머물렀다. 삼국지 등장인물들 중 통틀어도 손 꼽힐만한 막강한 피지컬과 그에 따른 용맹과 괴력을 겸한 그가 전장을 휘젓고 싶지 않았을리가 없다. 하루종일 자신의 엄청난 신체를 서 있는데 써야함이 실로 괴로웠거나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책임감과 충성으로 묵묵히 해냈다. 비록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부여받더라도 이를 최선 다해 충실히 해내는 프로패셔널. 그렇기에 조조는 늘 자신 곁에 시립해 서 있는 그를 대함에 있어, 외지의 수만 병력을 이끌고 요충지를 지키는 사령관, 전장에서 대규모 전투를 승리한 개선장군들에 못지 않게 대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허저 본인도 그런 자신의 성품 덕에 그 험한 난세에서 난전이나 내부적 정치싸움에 휘말림없이 내내 인정받다 천수를 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즐거운 주말 잘 보내시고 사전투표 안하신 분들은 돌아오는 화요일에 꼭! 잊지 마시고 투표 하시길 바랍니다ㅎ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대의명분에 입각해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후보분께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하세요! 사려깊은 문후보님, 구여우신 홍후보님, 총명하신 안후보님, 기개있는 유후보님, 혁신적인 심후보님 모두 화이팅 하시길. 그리고 누가 대권 잡건 부디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참지도자 되길 기원합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ㅎ 무슨업적도 필요없이, 앞 둘이 워낙 10년 깽판이라 평타만 쳐도 성군소리 들을 각인데...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6.
별 다른 예보없이 단순한 개인사유로 무려 반년이나 연재를 쉬었는데, 그 와중에도 늘어나는 팔로워와 어서 돌아오라는 댓글들... 연재를 할 때만큼의 템포는 아니여도 간간히 늘어나는 좋아요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상에 지치고 빙글에 실망해 손 놓고 있던 내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 것은 제 빙글의 시작은 이 곳에서 시작됐습니다 이곳이 없다면 저한텐 빙글은 쓸모가 없어요... 글이 한동안 안올라오길래 무슨 일이 있으신가 걱정했네요 독자로써 항상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ㅎㅎ 이런 댓글을 남겨주신 athletics01 님의 댓글... 물론 athletics01님 외에도 내 글이 자신이 빙글을 지우지 않는 이유라며 복귀요청 댓글 주신 몇몇 분들을 보며 내가 진짜 어디 가서 이런 대우 받아보나 싶어 다시 시작 T-T 헌데 다시 시작은 했지만 반 년만의 새 글이고 하필 그 재시작 주인공도 인기나 인지도는 그닥인 진수여서 읽거나 피드백 주시는 분이 많지 않을 줄 알았으나 댓글 대폭발에 완전 에너지차징 만빵! 그리하여 오늘은 예전부터 많은 삼국지매니아들의 심박동을 거칠게 해왔고 숱한 이슈와 논란의 중심이며, 앞으로도 그럴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오늘의 주제는 그래서 바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삼국지를 딱 한 번만 읽은 사람이라도 이들을 모를 수는 없다. 삼국시대 아니, 동아시아판 "어벤져스" 라고 칭해도 모자람 하나 없는 최강의 조합 "오호대장군" 이 바로 오늘의 테마. (BGM으로 Alan Silvestri의 The Avengers가 딱 어울림) 오늘은 뭇 남성들의 진정한 드림팀인 이 조합에 대해 심층탐구를 해보기로 하겠다. 가장 먼저 저 '오호대장군' 이라는 명칭부터 살펴보면 대장군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그렇다고 저 다섯이 후한시절 실존한 군최고직위인 "대장군(大將軍)" 이라는게 아님은 당연히 다들 아실거고... 일종의 용맹무쌍한 저 다섯 인간흉기들을 묶어 부른 별칭인데 사실 실제 역사 속에서 저런 별칭은 없었다. 놀랍게도 저 별칭은 일본에서 생겨난 별칭이다. 별칭도 그렇지만 저 다섯을 싸잡는 개념조차도 실제 역사에 없었고 나관중이 삼국지연의 속에서 "오호상장(五虎上將)" 이라며 저 그룹을 창작해 냈다.(김새죠?ㅋㅋㅋ) 뭐, 그렇지만 어쨌건 저 다섯이 촉한의 무력을 맡으며 대활약을 한 사실과 저들이 있던 당시의 촉한은 위와 오에 비해 가장 작은 영토와 처지는 국력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둘을 벌벌 떨게 했던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동시출격 여부. 저 다섯이 출격! 캡틴관우가 비브라늄 청룡언월도를 던지자 청룡도가 쓰리쿠션 찍으며 위나라 빌런들을 작살내고, 감마선에 노출되어 괴력을 뿜는 헐크장비는 위빌런들의 말과 수레를 집어던지고 성벽을 맨손으로 파괴하며, 토르조운은 우르로 된 창으로 벼락을 쏴서 적진을 지지고, 골드티타늄 재질의 갑옷을 입은 아이언마초 또한 손에서 리펄서빔을 마구 쏴댄다. 호크황충 역시 무시무시한 연사속도로 화살을 속사해대며... 이렇게 다섯은 순식간에 허창을 점령 후 조조를 굴복시킨 뒤 조운은 조조를 데리고 고향인 아스가르드로 돌아간다. 왠지 이랬을거 같고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저 다섯은 동시에 한 전장에 출격한 일이 없었다. 언뜻 이해가 안가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 아니, 저 무적의 조합을 왜 굳이 안쓰고 묵혔지? ' 라는 의문이 생길터인데, 당장 내가 저들을 비유한 어벤져스만 해도 전원이 모여 상대를 박살내는데 왜 저들은 못 그러는가? . . . 일단 장수, 즉 지휘관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전장에 앞장서 싸우지 않는다. 이는 다른 칼럼에서도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는데, 당시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시 한 부분은 바로 군의 "기세" 였는데, 전투 도중 지휘관이 부상이나 전사 및 패닉 등으로 무용화 될 경우.... 우세한 병력이나 지리적 선점에도 불가하고 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만큼 지휘관의 존재는 실상 그가 이끈 군 전체의 전력만큼 비중이 컸다. 현대의 군체계야 워낙 시스템이 잘 짜여 전쟁 중 지휘관이 무력화 되어도 최소한의 자신들이 맡은 롤을 수행하여 그 손실의 최소화 및 바로 그를 대체할 2, 3순위의 예비 지휘관이 있으나 저 당시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만큼 지휘관의 비중이 매우 컸는데... 저들은 모두 그 능력과 경력 등에서 지휘관이였고 지휘관은 늘 군의 중군 내지는 후방에서 군세를 조율한다. 저 다섯 중 넷은 인재풀이 부족한 촉한에서 지휘관을 맡아 각기 전략적 요충지를 맡는 총사령관이였다. 관우는 유비가 입촉 당시 유비의 본진이던 형주를 맡겨 가장 역할이 컸고, 장비와 황충은 야전사령관을 주로 맡다가 유비가 촉을 완전히 점령 후 장비는 촉지역의 대오전선방면 사령관을 맡았으며, 마초 역시 투항 이후 촉의 서북방면 사령관으로 강, 저족 및 서량쪽의 위세력을 견제했다. 이렇듯 각자 요충지에 배치된 관, 장, 마는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참전이 사실상 불가하다. 게다가 촉한의 국력과 동원 가능 병력 수 등을 감안해보면 저 다섯 모두를 지휘관으로 한 전투에 참전 시킨들 그만큼의 효율은 나올 수 없다. 예를 들어 여기 축구 좀 좋아 하시는 분들 계신가 모르겠다만 어느 축구클럽이 쇼미더머니를 쳐서 감독에 주제 무리뉴, 수석코치에 호셉 과르디올라, 수비코치 파비오 카펠로, 전술코치에 요아힘 뢰브, 피지컬 트레이너에 거스 히딩크를 임명했다 치자. 팬들 입장에서야 입이 벌어진다지만 저런 과도한 코치진 스쿼드를 두면 과연 팀이 잘 돌아갈까? 오히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일부는 스스로 생각한 본인역량 이하의 직책을 맡았다는 생각에 불만 품거나 월권시도 및 지시불이행 등이 나타날 수 있는 등... 쉽게 말해 팀웍이 작살난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지만, 장수가 많으면 군은 저승으로 간다. 그보다 먼저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은 위 이미지같은 현대의 미디어믹싱이 흔한 것과 반대로 한 자리에 다 모여본 적조차 없다. .... 당장 픽션의 정점인 삼국지연의만 봐도 이들이 다 모여 서로 얼굴본 적이 없다. 관우는 애초에 유비가 장, 황, 조 셋을 이끌고 입촉 당시 역사기록 동일하게 형주에 남았고 마초는 그 유비의 입촉 이후 합류... 디테일 다 떠나 정사기록만 봐도 최소한 유비의 입촉 때 관우는 형주에 있었다. 그래서 장비, 마초, 조운, 황충은 서로 본 적이 있겠지만 관우와 마초는 서로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마초가 스마트폰에 구글 검색으로 관우를 찾아봐 프로필을 확인했을리도, 관우 역시 TV를 통해 마초의 아군합류속보를 접하며 마초를 봤을리도 없다. 한 자리 모이기는 커녕 당장 관우와 마초는 서로의 얼굴도 몰랐으며, 물론 서로 마주하면 관우의 인상착의야 홍면장염이 당시로도 워낙 유명한 트레이드마크니 마초가 딱 보고 ' 아! 저 양반이 관우인갑네ㅋㅋ ' 알아봤겠지만 관우 입장에서는 바로 마주쳐도 누가 소개 안해주면 마초를 알아봤을 리 없다. 결국... 저 다섯 맹장이 모이는 길은 게임말고는 애초에 없었던 것. 인간관계. 삼국지연의나 게임 및 기타 각종 미디어믹스들 자체가 큰 사건 위주로 풀어나가다보니 삼국지 속 인물들의 인간관계나 거기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나 면모들에 대한 묘사가 없거나 부족 또는 왜곡된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보니 흔히 저들이 서로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겠나 싶어 하시는 분들도 계실거다. 일단 각자 소속집단에서 제법 고위직에 주요멤버들이니. 허나 저들이 무슨 아이돌처럼 맨날 같이 뭉쳐 다니며 합숙소 생활하고 같이 운동하면서 무예수련도 돕고 그런게 아니라 각자 맡은 바가 있다보니, 또 그런 높은 직책들 탓에 친하기는 고사하고 얼굴 서로 보는 것부터 벅찬 사이였다. 일단 저 다섯이 유비휘하에 콜렉션 된 시점부터 관우는 내내 형주에 있다 끝내 거기에서 사망했고...(T-T) 조운은 대부분 유비의 근위대장을 주로 맡다보니 유비 곁에 있는 시간이 길었고, 마초는 유비진영 합류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거의 내내 서쪽만 바라보다 병사했다. 장비도 유비가 서촉 점령이후 어느 정도 시스템이 정비되자마자 강주로 발령받아 대오전선 수비사령관을 맡아 내려갔고.. 뭐 이러다보니 다섯이서 모여 술 한 잔 하고 싶어도 도통 짬이 안났다. . . 그렇다고 당시 뭐 카톡이 있나, 전화가 있나, 이메일이 있나..,. 서신(편지)을 주고받았다한들 이건 뭐 한 통 쓰면 가는데 한 달.. 받아 읽고 바로 답장 써보내도 역시 한 달.... 편지 보낸 후 답장 받는데 두 달 걸리면 이건 실상 의미도 없거니와 다 떠나 저 개상남자 오인방이 손발 오글지게 서로 보고싶다며 그리움에 붓을 들어 편지를 했을리도 없다. 관우 마초? 걔는 뭔데 오자마자 대접이야? 어린놈새끼가.. 황충? 그 뭔 듣보잡나부랭이가 나랑 동급취급이지? 조운 이새끼는 맨날 말이 없냐... 장비 마초? 좆까! 내가 킹왕짱. 조운 이새끼는 맨날 말이 없냐... 마초 관우인지 뭔지 시발 겐세이 지리네... 없는집 서민자식놈들 장비인지 뭔지 시발 겐세이 지리네... 없는집 서민자식놈들 조운 이새끼는 맨날 말이 없냐... 조운 .................. 황충 씨부랄것들! 난 안중에도 없구만? 화살로 눈까리들을 그냥 역사기록들을 집대성해보면 오호대장들의 서로간 인간관계는 위와 같은 뉘앙스였다. 딱 봐도 무슨 막역하고 정다운 느낌은 없다. 게다가 오호대장군의 모티브가 된 계기는 유비가 한중왕에 즉위하며 자신의 왕위즉위에 따른 논공행사 중 무관분야에서 독보적 군공자 넷인 관,장,마,황에게 사방장군(전장군, 후장군, 좌장군, 우장군)에 임명하는 이슈였는데... 저 당시 관우는 형주로 저 메세지를 전달하러 온 비시에게 황충같은 노병(老兵)과 동렬에 설 수 없다!!!!! 라며 직위를 거절했다는 역사기록이 있다. 관우 입장에 장비야 형제고 마초도 워낙 명성있는 집안의 자제에 조조를 엿먹인 커리어도 있지만 황충 나부랭이는 도저히 인정 못 하겠다는 소리. 물론, 저 말이 황충 귀에 안들어 갔을리 없고 황충이 겁나 대인배라한들 저런 말 듣고 깊은 빡침을 느끼지 않았을리 없다. 물론 저 부분은 연의를 깊게 보신 분들로서는 언뜻 이해가 안갈 수 있는게, 장사를 공격하며 관우와 황충의 결론 안나는 대결을 겪으며 관우의 인정을 받은 황충이 왜 갑자기 저런 대우를 받나 싶을 수 있지만.... 관우와 황충이 서로 저리 맞붙어 싸운 자체가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ㅎㅎ 진정 능력자들? 삼국지연의에서 이들의 신격화가 진행되며 어벤져스처럼 묘사되었는데 역사기록을 봐도 이들 개인의 무용에 대한 어마무시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들이 직접 싸우기보다 대체로 일군의 지휘관역할을 했음에도 그 통솔력에 있어서는 의문이 남는다. 정사기록을 살피면 실제로 지휘관으로도 탁월했던 이는 장비, 황충 정도에 마초도 나쁘진 않았으나 유비 휘하로 들어간 이후로는 활약이 전무하다. 게다가 조운 또한 본인이 직접 판단 및 지휘하는 부분은 약했는지 대체로 유비의 근위대장 또는 직속부대장 정도만 맡았고 관우 역시 지휘관으로서의 실적은 좋지 못 했다. 게다가 연의에서는 이들을 너무 띄워 주느라 타국 심지어 자국내 다른 장수들의 비중과 역할이 크게 축소 및 생략 되는 부작용도 커 이들의 사후 등장하는 장수들에 대한 이미지가 듣보잡 취급이 되어 내용자체가 재미 없어지는 부작용도 크다. 솔직히 이들과 동급이라고까지 하는데는 무리가 있지만 촉한에서 이들 이후로 등장한 장수들도 분명 자신의 역할을 수행함에 부족없는 준장들이였지만... 워낙 오호대장군들의 비중 연의내에서 넘사벽으로 나와 나머지들이 파묻히다보니 연의에서의 촉한은 마치 베스트5 외에는 인재없는 북산고교같이 묘사된다. 말하고보니 오호대장과 북산 베스트5의 캐릭터도 좀 겹친다 관우 : 최장신의 엄한 리더 채치수. 장비 : 열혈남아에 터프가이 강백호. 조운 : 과묵한 실력파 서태웅. 황충 : 저들 사이에 가장 원만한 서포터 송태섭. 마초 : 가장 뒤늦게 합류한 실력파 정대만. 게다가 정사기록을 보면 관, 장, 마, 황에 비해 유독 조운이 받는 저평가와 그 대단하던 마초.. 심지어 오호대장 최연소이자 가장 최신 입단 멤버인 마초가 왜 입촉 이후부터 활약없는 먹튀가 되었는지가 의문인 분들도 계실텐데 이는 각자 당사자들의 칼럼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여튼 가타부타 이들에 대한 과대평가와 논란들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이들이 갖춘 개개인의 무력과 그 공적 그리고 이들이 돗자리장사꾼인 몰락황족 유비를 왕을 거쳐 황제의 자리까지 올리는 것은 물론... 삼국 중 가장 열악한 국력의 촉한임에도 되려 위와 오의 두려움을 자아내던 다크호스가 되도록 만들어준 개국공신들이 틀림없다는 점이다. 또 이들의 존재가 있기에 우리는 삼국지를 더욱 재미있고 흥미롭게 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우리회사에도 오호대장군의 존재가 있는데, 초저녁에 앉은자리 소주 아홉 병 까고 있다 중요한 약속 있다며 나가던 혈중 알콜농도 20% 박팀장.. 하루 담배 반 보루를 피우며 조기축구 최강의 미드필더인 폐가 아홉이라는 구폐남 조차장.. 추석연휴 중 4일간 식음전폐 복지부동으로 오버워치한 PC방 마네킹 장과장.. 하우스 다니며 섯다만 쳐서 내집마련 성공한 유과장.. 간통죄 폐지의 최대 수혜자인 정대리..(자세한 설명 생략) 내가 보기는 촉한의 오호대장군보다 우리회사 오호대장군이 더 초인이고 강하게 느껴진다.... 이전에는 슈퍼스타들을 너무 아껴온 감이 있지만 앞으로는 심심치 않게 꺼내들도록 하겠습니다.ㅎ 그리고 오호대장군 중 장비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도 빠른 시일 안으로 올리도록 할께요! 새해 복 다들 많이 받으시고 기다려 주신 분들 정말 다들 너무 고맙습니다. 새로 와서 봐주시는 분들 역시 너무 고맙지만 시작부터 좋아해주신 분들에게 특히 큰 고마움 느끼고 있어요. 주변에도 많은 홍보 부탁 드리고 좋아요와 댓글은 큰 힘이 되니 아끼지 말아주세요ㅎㅎ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시고 이래도 되나 싶을만큼 좋은일의 홍수 속에 사시며 왕성한 성생활 하시길!
설악산 생태탐방원
눈과 추위가 살짝 걱정은 되지만 설악산으로~~~ 아점으로 돈가스 먹고 지날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인제 신나는 곳으로 이동 ㅋ 인제 빙어축제 인파가 어마어마하더라구요. 마침 후배가 연휴에 빙어축제에 다녀왔다고 하더라구요 ㅎ 드디어 이번 여행 두번째 생태탐방원 도착… 눈이 많이 왔었던 모양이더라구요. 폭포도 얼어붙은것이 춥긴 추운 모양 ㅡ..ㅡ 거실과 온돌방 하나인 구조…. 화장실, 샤워실, 세면대가 각각 분리된 구조. 수건은 진짜 넉넉하게 비치돼 있더라구요. 오늘은 소원등 만들기를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맞지않아 그냥 키트를 받아와서 직접 만들어 봤습니다. 이쁜데요. 생태탐방원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원통까지 나가서 저녁거리를 좀 사려구요. 근데 제가 생각했던 원통은 오래전 친구들이 자조섞인 이야기로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하던 그 원통인데 와 그런 시골, 오지의 이미지가 아니고 번화한 곳이더라구요. 치킨 포장해와서 와인이랑 먹었습니다. 마침 송골매 공연도 보여주네요… 걱정했던것 보단 춥지 않아서 밖에서 실컷 놀았습니다. 근데 눈이 왜이리 안뭉쳐지는걸까요? 추워서 그런건가… 들어오자마자 따뜻한 면식수햏… 초3이랑 오목도 두고 놀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와, 전날이랑 완전 다른 기온인데요… 기온이 여기서 더 올라가지가 않네요 ㅋ 아점은 원주휴게소에서 해결합니다.
겨울 인천 영종도 가볼만한곳 을왕리 인천 야경
#영종도 #영종도가볼만한곳 #영종도여행 #을왕리카페 #을왕리가볼만한곳 #영종도카페 #을왕리해수욕장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요즘 피부관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1일1팩과 기능성 화장품을 40일 정도 습관처럼 했더니 정말 피부가 좋아지네요. 일전에 필리핀 다녀오면서 얼굴에 잡티가 너무 많이 생겨서 걱정하다가 작심하고 했더니 확실히 효과가 있네요. 우리 나이에 잡티와 잔주름은 나잇살을 더 들게 하잖아요. 우리 아름답게 나이 들어요~~ 오늘 소개할 국내여행지는 겨울 바다 가볼만한곳으로 인천 영종도 드라이브로 다녀온 을왕리카페 을왕리해수욕장 야경까지 즐기고 온 코스입니다. 영종도 전망 좋은 브런치 카페에서 빵을 먹고, 무의도를 돌아본 뒤 다시 을왕리 해수욕장 야경과 TV조선 드라마 빨간 풍선 촬영지 을왕리맛집인 을왕어촌계까지 들러왔어요. 너무 늦어서 조개구이 맛을 보지 못하고 귀가했네요. 겨울 인천 영종도 가볼만한곳 을왕리 인천 야경 1. 인천 영종도 카페 을왕리 카페 오라-오션뷰 전망 좋은 브런치 카페 2. 인천 영종도 가볼만한곳 인천 바다 여행 을왕리 해수욕장 야경 3. 영종도 을왕리 가볼만한곳 드라마 촬영지<빨간풍선>-을왕어촌계 * 댓글 링크를 눌러 인천 영종도 가볼만한곳 을왕리 해수욕장 카페.맛집.야경 확인하세요. * * 겨울 인천 영종도 드라이브 코스 야경까지 영상감상해요. * #인천영종도 #영종도 #영종도가볼만한곳 #을왕리가볼만한곳 #영종도해수욕장 #을왕리해수욕장 #인천해수욕장 #영종도데이트 #영종도카페 #을왕리카페 #카페오라 #영종도브런치카페 #인천바다 #인천야경 #인천야경명소 #드라마촬영지 #빨간풍선 #을왕리맛집 #을왕리해수욕장카페 #을왕리해수욕장맛집 #을왕어촌계 #빨간풍선드라마촬영지 #영종도빵집 #영종도오션뷰 #영종도당일치기
장비 익덕 (張飛 益德) A.D.166? ~ 221
지난 연재가 너무 과하게 늦었던 것도 있고, 슈퍼스타들을 너무 아끼다 똥이 될 우려도 있기에 슬슬 한 명씩 풀고자 이번 칼럼의 주인공으로 삼국지의 인기지대인 한중일 삼국 모두에서 인기스타요, 페이머스 셀럽이자 역시 숱하디 숱한 연의의 피해자들 중 대표주자인 "장비"로 정했다. 현 중국 허베이성의 바오딩시와 줘저우시 일대인 당시 유주의 탁군 탁현 출생이며 유비 & 간옹과는 동향. 일단 무엇보다... 의아하고도 안타까운 점은, 어쨌건 촉한의 건국자인 소열제 유비의 의형제로서 최측근 Of The 최측근에, 뭣도 아닌 유비의 거병부터 함께 하여 개국공신에 이르도록 무수한 군공을 세우고 민간에 인기도 많던 지금은 물론, 당시에도 슈퍼스타였던 그임에도 명확히 남아있는 사료가 별로 없다. 그렇기에 장비에 대한 갖가지 기록과 스토리들의 7할 가까이가 당시부터 이리저리 입타고 내려온 구전의 민담과 무용담 등등 시대에 따라 살이 붙기 쉬운 요소가 참 많다는 점... 당장 (관우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생년이 정확하지 않다. 각종 삼국지 관련물들을 보면 백정출신이라는 설부터, 몰락 귀족의 후예라는 설... 몰락해서 백정이 되었다는 하이브리드설 등등등 여러 설들이 많으나 어쨌건 기록이 없으니 뭐가 맞다고 확정낼 수는 없다. 다만 후한의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던 옛 이야기는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였고, 특히나 유방은 시정잡배에서 황제가 되어 중국을 통일한 인생역전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리얼로 이루어낸 케이스에 유방의 스타일 자체가 당시 서민들이 좋아할 요소가 많았고, 유비 또한 그런 유방의 후예에다 유방의 성공스토리와 엇비슷한 스텝을 밟은지라, 사람들은 유비를 유방에 많이 대응시켰고 그 유방의 무력을 담당했던 번쾌가 개고기장수(개를 직접 도살하는 개백정) 출신인지라 출신이 불분명한 장비를 여기에 대응시킨 부분이 큰 듯 싶다. 게다가 장비의 외모나 말투, 하는 행동 등의 스타일이 대체로 백정이미지를 갖다 붙여도 조금도 어색함이 없었음도 크게 기여한 듯...ㅎㅎ 장비가 어디에서 누구와 뭘 해서 어떤 공을 이루고 무슨 자리에 올라 뭔 일을 했고 등등은 굳이 여기에서 나열하진 않겠다. 오늘 여기에서는 실제의 역사 속 장비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삼국지연의 속의 장비가 어떤 차이가 나는지, 원래 장비는 어떤 닝겐이였는지를 포커스 삼겠다. 연의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기록을 보더라도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장비의 놀라운 점은 유비를 향한 절대적이고도 맹목적인 "충성"이다. 처음 시작 때의 유비는 진짜 별 볼일 없었다. 그런 유비에게 당시 강자가 승자인 난세에 엄청난 피지컬과 거기서 뿜어지는 무력을 지닌 장비는 헌신적이였고 그랬기에 유관장 셋은 단순한 군신을 떠나 형제나 진배없이 지냈다. 물론, 유비 역시 밑바닥부터 맨주먹으로 출발하여 일국의 황제가 된 양반인만큼 보통내기는 아니였겠지만 어쨌건 유비의 진가는 거듭된 전란을 통해 드러나는 부분들이 컸던만큼... 젊은 시절 유비의 어떤 부분에 그리도 장비가 감복하여 개 따르듯 따랐는지는 놀랍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장비'의 이미지는 대개 비슷할텐데, 의리는 있지만 단순무식에 힘과 패기만 앞서는 열혈바보에 술이면 사족 못 쓰고 순진한 면도 있어 속은 여린 듯한 파워얼빵이의 전형일 거다. 좀 모자르고 성깔대로 굴다보니 실수도 많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만은 없는... 현대에서 그런 비슷한 이미지를 찾아보자면...ㅋ 이 양반과 엇비슷한 "친근한 바보힘맨"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실제의 장비는 지용을 겸비한 용장이였다. 그저 본인의 무에만 의지해 설치던 맹장이 아니였던거다. 장비의 기본 성격은.. 냉정함, 시니컬함, 시크함 등등에 의롭기는 하였으나 일에 있어서 목표지향이 강하여, 포커스가 정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인물이다. 게다가 따로 어디서 배우거나 공부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전세를 읽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캐치하는 타고난 전략적 혜안이 있었으며, 본인 스스로의 완력과 무예도 굉장했던 터라 전술적으로도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인.. 예를 들어 보자면 이 양반의 그것들과 대체로 일맥상통한다...ㅎㄷㄷ 그리고 나중에 관우편에서도 다루겠지만 조금 언급하자면 역사 속의 실제 이미지는 장비와 관우가 정반대였다. 장비는 늘 매사에 차가우리만치 냉정했고, 오히려 그래보이는 관우가 매사에 성격이 앞섰던 인물이다. 특히 관우와의 차이가 있다면 관우는 전형적인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타입. 그렇기에 사대부나 고관대작 등을 대할 때 오히려 고압적이였으나 병사들이나 백성들에게는 관대하여 병사들의 사소한 실수 등은 눈감아 주었던 반면.. 장비는 정반대로 자신이 보기에 뭔가 있다싶은 재주를 지닌 이들은 경공했으나 병사들에게는 몹시도 냉혹하게 대했고 사소한 실책조차 군법을 적용시켜, 별 일 아닌 것으로 죽거나 초죽음에 이르는 병사들이 많았다...;; 당장 이 부분은 "제갈량"을 대하는 둘의 태도로 압축된다. 관우는 제갈량이 제아무리 대단한 면모들을 보여도 그를 낮춰 여겼으며, 고분고분하지 않았고 후에 제갈량의 공식직책이 자신의 위에 오르자, 마지못해 앞에서는 숙일 지언정, 속으로는 끝내 제갈량을 인정 않았던 반면... 장비는 역시 처음에는 제갈량을 탐탁치 않아 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제갈량이 실력발휘하자, 바로 꿇고 제갈량을 따랐다. 물론, 제갈량의 입장에서 스스로 낮춰 관우의 아래임을 자처하고 관우를 공경으로 대했다면야 관우와의 갈등이 없었겠지만, 유비를 보좌하여 세력전체를 이끄는 2인자 자리의 제갈량의 입장에서, 관우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끌려 다닐 경우, 이도저도 안될 수 있기에 내린 판단이였을 것. 서주에서 여포에게 패한 것도 연의에서처럼 본분을 망각한 체, 술에 곯아 있다 그리된 것 아닌.. 여포와 내통한 조표의 배신 탓이였으며 장비가 술을 좋아하여 자주 마셨던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사료 속에는 그가 만취하여 일을 그르친 적은 없었다. 유비와 제갈량도 그 참전에 긴장을 탔던 위의 전국구급 지용겸비의 명장인 "장합"이 이끄는 군세를 오로지 자신만의 전략과 무용으로 박멸에 가까운 대승을 이끈 것도 연의에서는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연의에서도 나온 부분이지만 당양 장판파에서 조조의 수천 여 병력을 자신의 기지와 용력만으로 쫓아냈고 수성하는 측의 노장 "엄안"을 몇 배나 불리한 공성측에 서서 심지어 장기전을 벌여 승리를 따냄은 물론, 일절 항복의사 없이 장비를 모욕하던 엄안을 의와 이익을 계산하여 풀어준 것 역시 연의에서는 장비의 이변으로 나오지만, 엄연한 장비의 그릇에서 비롯된 일이였다. 유비가 왕위에 오르며 군사령관 중 가장 실세에 요직인 "한중태수"직을 모든이들과 심지어 자신조차 자기가 될 거라고 예견했음에도 반전으로 "위연"이 임명되자, 불평불만 한 마디 없이 쿨하게 인정하기도 했다. 익주점령 후 익주의 이름난 명사인 "유파"를 찾아갔으나 유파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자신과 교류하고자 친히 찾아온 정복군주의 의형제요, 무력깡패 장비를 면전에서 모욕했으나, 장비는 빡쳐서 단박에 유파의 허리를 뒤로 접긴 커녕, 그냥 크게 웃고는 가버렸다. 물론, 장비의 면모가 모두 연의와 정사 불일치를 이루는 것만은 아니고 둘 모두에서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그의 "무력"이다.... 후한 당시는 물론, 삼국시대를 거쳐 그 이후 진에 이르도록 '홀로 만 명과 싸울만 하다'는 뜻의 "만인지적"이라 평가를 받았던 것은 관우와 장비뿐이였다. 그 대단하다는 여포나 마초, 조운조차 들어본 적 없는 평가를 장비는 받아낸 것이였다. 물론, 저 말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라, 당연히 실제의 장비가 10,000.명과 다이떠서 이길 리는 없으나 그만큼의 무력과 전술적 가치를 지녔다는 극찬인 것이다. 뻥이 수두룩한 연의에서처럼 누군가와 1vs1의 일기토를 벌인 일은 없지만 적군과의 접전에서는 몸소 창을 들고 뛰쳐나가 적병들을 마구 도륙하여 피투성이가 되곤 했다고 한다. 유비세력에 투항 직후, 정신 못 차린체 상황파악 안되서 유비를 주군이라거나 직급으로 부르지 않고 유비의 자를 불러제끼던 마초를 살인눈빛 한 번으로 깨갱하게 만든 것도 다 장비의 그 무시무시한 무력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말투 자체는 좀 거칠고 격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한 마디 한 마디가 돌직구에, 아니다 싶으면 비꼬는 것도 잘 했던 거 같다. 그러나 말수 자체는 많지 않았고 본인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말만 하는 스타일이였다. 거의 매끼마다 고기를 상당량 먹었다고 하며, 게임을 비롯해 각종 미디어들에 늘 레드컬러 계통의 두건을 두르고 나오지만 실제로 그가 붉은 두건을 걸쳤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일본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력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다른 이유없고 일본의 전국시대 당시 "혼다 타다카츠"라는 최강의 전사의 활약을 지켜 본 "오다 노부나가"가 그를 장비에 비견되는 맹장이다!라고 한 말의 영향으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본인들 뇌리에 '삼국시대 킹왕짱무력깡패 = 장비'로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 이미 일전에 삼.이.높.에서 다룬 바가 있지만, 장비하면 떠오르는 "장팔사모"는 장비가 본 적조차 없는 무기로서 그냥 찌르기용 창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활"을 쓴다는 기록이 그 어디에도 없다. 물론, 정말 쓴 적이 없는건지... 쓰긴 썼어도 기록이 누락된 것인지는 알 길 없지만. 삼국지의 본고장 중국에서는 관우, 조조, 유비, 제갈량과 늘 TOP 5에 드는 인기스타다. 아마도 실제여부 떠나 삼국지연의 및 구전민담 등 속의 장비의 이미지는 서민들이 친근함을 느낄 요소들이 많기에 그런 듯 하다. (의리, 순박, 충성 등등) 그의 최후는 연의에도 나와있듯... 이릉대전을 앞둔 출병준비 와중에 "범강"과 "장달"에 의한 암살이 맞는데, 연의처럼 무슨 흰색으로 병력을 도배하려다 그런 내용은 없고, 범과 장 저 둘은 그냥 지금으로 치면 낮게는 분대장, 높게 쳐도 소대장급의 잡장들이였는데 뭔지는 몰라도 군법을 어겼고... 비록 그렇다고는 해도 그에 비해 너무나 가혹한 군법집행, 다시 말해 '가혹행위'가 있었으며 이에 크게 원한을 품은 둘의 상관살해의 확률이 높다. 위에서 언급했듯, 장비는 병사들을 대함에 있어 상당히 엄정했고 군법 적용에 얄짤이 없었다. 물론, 마구잡이로 횡포를 부리는 건 아니였어도 어쨌건 사소한 실책에도 가중처벌, 가혹행위가 적잖아, 실제로도 늘 그 부분을 염려해오던 유비가 이릉대전 앞두고도 누차 장비에게 이 부분에 대한 우려를 표하지만 끝내..... 일각에서는 범강과 장달이 오에서 장비킬링을 위해 보낸 킬러들이라는 설도 있으나 그냥 진짜 추측일뿐, 현재까지 드러난 자료에 의한 객관적 근거들만 볼 때는 그냥 가혹행위에 따른 프레깅이 맞는듯 하다는..T-T 슬하에 2남2녀를 두었고, 장남은 장포, 차남은 장소. 연의에는 부친의 뒤를 이어 이릉대전의 선봉을 서는 장수로 나오는 장포는 진정 뻥이며, 장비보다 먼저 요절... 심지어 무장이였는지조차 기록없고, 장소는 문관에 두 딸은 모두 유선의 황후가 되어 장비의 가문은 후대에 황실의 외척이 되었다. 본인의 무예와 병력을 통솔하고 전략적으로 용병을 쓰는 부분 등 후한 말 ~ 삼국시대에 이르러 실질적인 최강의 용장인 장비였다. 그러나 실제의 모습과 다르게 왜곡된 이미지로 인해 긴긴시간 인기를 얻은 그였으나 실제의 모습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단순인기를 넘어, 존경을 받진 않았을런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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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승조 (陳壽 承祚) A.D.233 ~ 297
어찌보면... 이 칼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다뤘어야 할 사실상 삼국지의 가장 중요인물을 이제서야 다루게 되니,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삼국지정사(三國志正史)의 저자 "진수"다. 사실, 수천 여 년 이상을 자랑하는 유구한 중국문명.. 심지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와 함께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의 역사는 여간 장대한게 아니며 그 중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후한 말 ~ 삼국시대는 고작 한 세기 밖에 안되는.. 이리 말하면 좀 뭐하지만, 말 그대로 "찰나" 에 불과하다. 그런 찰나의 순간(...)을 중국 본토는 물론 타이완과 동남아시아 및 중화권을 넘어 여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길고 긴 중국역사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시기이자 큰 인기와 관심을 얻게 된 시대로 만들어 낸 것의 시작은 바로 진수의 공적인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토 다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 뭔 개소리여, 삼국지는 나관중이지! ' ' 난 이문열꺼만 봤구만 뭔 소리? ' ' 오레노산코쿠지와요코야마미쓰테루상노산코쿠지데스 ' 다 맞다. 모두 옳다. 무엇보다 오늘날 대인기의 삼국지가 있게 된 가장 큰 공은 누가 뭐래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저자인 "나관중(羅貫中)" 및 나관중 이전에 삼국지정사의 부족하거나 아쉬운 부분들을 연구하여 주석을 달았던 "배송지(裴松之)", 그 밖에도 현대에 와서 이를 바탕으로 한중일 삼국에서 평역본과 흥미로운 미디어믹스들을 양산해낸 많은 이들이 오늘의 삼국지가 누리는 인기와 명성을 있게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연계물들 역시 애초에 진수가 삼국지를 집필하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정사는 나관중의 연의가 창작되고 이게 또 인기대폭발하며 아주아주 근래에 그리 일컫는거지, 지금도 중국에 가서 '삼국지'라 하면 그냥 정사를 말하며 삼국지연의만 따로 연의라고 한다. 이는 마치 짜장면과 짜파게티를 구분할 때 짜장면을 가리켜 굳이 '정통짜장면'이라 안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정사는 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엮은 거라 제법 많은 편수로 이루어져 있고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에 각 서들은 여러 인물들 위주의 열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의만 줄기차게 읽다 환상을 품고 접하면 그야말로 모든 불면증을 치료할만큼 노잼.. 아니, 핵노잼이다. (일단 구해보기조차 버겁다..,) 다시 진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는 당시로는 파서군(巴西郡) 안한면(安漢縣) 출신이며 오늘날 중국 쓰촨성의 난충 시에서 북쪽으로 50~60km가량 더 가면 그쯤이 대략 진수의 고향 위치다. 참고로 이 동네는 중국내에서 일조량이 매우 적은 곳 중 하나인데, 여름 기준으로 오전 8시쯤 일출, 오후 5시쯤이면 일몰로 어둑어둑하다고 한다. 구글링 해보니 이 동네 5성급 호텔 일반객실의 평균가가 우리돈 ₩ 50,000. 쯤이라는데 매우 싸다! 내가 예전 여친과 자주 가던 캘리포니아모텔의 1박이 ₩ 40,000. 주말 피크타임에 가서 일반실 없다고하면 어쩔 수 없이 가는 디럭스룸이 ₩ 50,000.이였는데... 대신 디럭스룸은 일회용품을 그냥 줘서 실제로는 ₩ 9,000. 더 비싼 셈이다. 여튼 진수의 고향을 보면 알겠지만 촉한(蜀漢)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제법 학문에 밝았다고 하며 그 덕에 초주의 휘하로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다고 초주가 1:1 과외를 해준 건 아닐거고 당시 트렌드상, 아마 초주가 가르치는 여러 문하생들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지연의나 코에이의 게임에서 잉여노쓸모로 나와 그렇지, 초주는 촉한의 당대최고의 학자들 중 한 명이였고 명성이 대단했기에 그런 초주의 문하생은 아무나 될 수 없었다. 참고로 초주는 "도참설(圖讖說)" 이라는 일종의 예언과 관련된 이론의 신봉자인 촉한판 노스트라다무스였다..;;; 본인도 똘망진데다 스승인 초주빨이 겹쳐 꽤 일찍 벼슬에 나섰지만 원래 책만 후비는 애들이 대개 그렇듯, 사회생활은 잘 못 했는지... 당시 실세였던 환관 황호를 비방하는 상소를 올리다 좌천 세 번에 파면 한 번을 먹었다. 보드게임 하다 주사위 잘못 던지면 "처음으로 돌아가시오" 이런거 여러 번 걸리는거랑 비슷한 사회생활을 했다..... 내내 이렇듯 정권실세에게 개김질 하다 파면크리 먹고 백수생활 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량처럼 살 때 촉한은 위나라가 낳은 클리프행어 등애의 손에 멸국을 맞고 검각에서 버티던 강유마저 종회에게 항복하며 진수는 집에서 노는 사이, 국적이 촉한에서 위로 바뀐다. 그리고 여전히 노는 동안 사마염이 위를 멸망시키고 진을 건국하며 백수진수의 국적은 위에서 진으로 또 한 번 바뀐다. 이런 복잡한 귀화사를 가진 진수는 진사람이 되서야 장화라는 한 문관이 한 때 꽤 날렸던 그의 학문을 아까워해 천거해주며 다시 벼슬아치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솔직히... 인성 자체는 그닥이였던 듯 싶다. 촉한시절 임관동기였던 자와 술자리 계산문제로 다툰 후 원수지간 되었는데 진수가 재임관 후 마침 그 자도 다른 이의 천거로 다시 벼슬에 나오려는걸 진수가 혼신의 뒤끝으로 막았고... 당시 촉한출신 벼슬아치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들 모두 진수와 사이가 다들 별로였다. 꼭 그렇다고 어디 나와 있는건 아니지만.. 아마도 진수는 저런 직장내 왕따도 당하고, 별 다른 공적이 없으니 인사고과가 별로라 승진도 잘 안되어 그랬는지... 그 후부터 촉한의 이런저런 자료와 기록들을 모으고 엮어서 역사서 저술이라는 히키코모리나 해낼 법한 일을 해내고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좋아하는 삼국지가 된다! T-T 진수가 만약 직장동료들과 막 사이 원만하고 일도 열라 잘 해서 제갈량처럼 온갖 거 다 떠맡고 그랬으면 그렇게 한가롭게 자료 모아서 역사서 만들 생각도 안했을거고 여유도 없었을거다. 물론 진수 본인의 삶이야 한결 업그레이드 되었겠지만 그야 내알바 아니고, 따당하는 일못인 덕에 우리가 오늘도 삼국지를 볼 수 있는 것. 물론, 내가 반 년이나 쉬다 이제 와서 다시 이 칼럼을 연재하는 이유가 결코 직장내 왕따 및 인사고과 하위자여서가 아님을 명시한다. 이렇듯, 인성이 별로인 진수의 삼국지는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한창 위와 촉의 기록을 모으던 터에 마지막으로 발악하던 오나라까지 망하며, 거기서 유입된 오출신 학자들과 공동으로 오의 역사기록들까지 합쳐 엮으며 삼국지는 완전체가 되었고 보통 당시에는 인정 못 받는 경우가 많음에도 진수의 삼국지는 이미 당대에도 여러 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본인도 내 길은 이거다 싶었는지 더욱 삼국지 편찬에 집중... 심지어 본인을 재임관 하도록 추천해준 장화가 다시 더 높은 직위에 천거하자 장화의 반대파에서 태클이 들어왔는데, 진수는 그걸 핑계 삼아 승진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반대파의 집요한 태클에 또 다시 파면 당하여 백수가 되고 만다. 허나 그간 정력을 다해 삼국지를 짓고 또 어머니도 여의고 게다가 정치적인 태클도 워낙 심히 받다 기어이 파면까지 되며 그가 받은 스트레스도 적잖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안되어 본인도 병을 얻고 사망하고 만다..... 그가 죽자, 그가 지은 삼국지를 읽었던 학자와 고위관리들은 그와 그 책을 잊지 못하여 당시 천자에게 상서를 올려 진수가 지은 삼국지가 겁나 명작이니 그냥 저렇게 없어지는건 아니될 말이라며 애원했고 이에 천자도 사람들을 진수의 집으로 보내 이들로 하여금 인간복사기가 되라는 어명을 내려 이렇게 수작업으로 베껴진 삼국지는 세상의 빛을 본다. 위에서 말했듯 그 분량이 대단하지만.... 근 100년의 역사를 엮은 것치고는 간소한 부분도 많았다. 그런 아쉬움에 훗날 송나라의 3대 황제인 유의륭이 부족한 부분을 좀 더 기록과 자료 및 민담 등을 걸러 주석을 달게 하였으니 이 때 주석을 달았던 것이 배송지다. 일부 떠도는 소문에... 제갈량에게 처형 당한 촉한의 장수인 진식이 진수의 부친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픽션! 그냥 픽션도 아니고 개픽션!! 저 진수가 지은 삼국지정사에 의하면 진식은 3차 북벌 당시 참전했다는 기록 이후로는 등장이 없다. 그리고 연의에서 진식이 처형되는 4차 북벌 자체가 나관중이 지어낸 뻥인데다, 그 연의가 맞다셈쳐도 연의 속 진식의 사망시점이 230년이니... 233년생인 진수가 3년 전 사망한 진식의 아들이 되는 방법은 현대에서나 가능한 냉동정자보관 기술만이 정답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그 긴 시간 피나는 노력과 정성으로 온갖 자료들을 끌어모아 역사서를 저술하는데 자기 부친의 기록만 하필 부실한 것도 말이 안된다. 여튼 그가 촉한출신에 위를 거쳐 진의 신하가 된 관계로 당시부터도 명서라는 호평과는 별개로 기록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 및 이에 대한 가십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서에 좋은 기록으로 넣어줄테니 뇌물을 요구했다던가 (그런데 이건 나였으면 진짜 이랬을 듯.ㅎㅎㅎ) 사마가문에 대한 비판이 유독 없다거나 등등... 특히 이 사마가문의 비판관련 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애초에 진수도 결국 사람인지라 현 정권의 시초 및 그 가문 사람을 객관성있게 표현할 깡은 없었다는 주장과 또 하나는 위에 진수 사망 후 인간복사기들이 가서 진수가 쓴 삼국지를 베끼는 과정에서 누락 시켰다는 주장이다. 뭐 그런데 이건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니.. 혹여 독자분들 중 근시일내로 안타깝게 운명하시는 분이 저승가서 진수를 만나거든 물어본 후 내 꿈에 나타나서 알려 주시기로 하자. 여튼 당시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의 출신이나 정치성향에 따라 어땠는지는 모르나 현대에 와서는 그의 저술방향에 있어 두드러지는 편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 받고 있다. . . . 가장 마지막이 7월 2일에 올린 노숙편이니 그날부터 거의 만 반 년만에 올리네요...ㅎㅎ (하필 컴백편 주인공이 노잼 진수...;;;) 제가 4월에 이직을 했는데, 새 회사가 제가 지금껏 살며 다닌 그 어떤 회사들보다 일이 더 많고 어렵네요.. 맨날 일에 치이다 집 와서도 일하고 새벽 3~4시에 자고 제가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공부 중인데 그것도 벅차고 가장 큰 이유는 빙글의 인터페이스가 제 입장에서는 좀 직관적이지 않고 불편하더라구요.,.. 사실 여러 번 썼다 말았다를 반복 했었어요. 그렇게 저도 삶에 치여 잊고 살았는데, 간간히 뜨는 알림에 들여다 보면 꽤 긴 시간 놓고 있음에도 저와 제 글을 잊지 않아 주시고 돌아오라는 기다린다는 댓글 남겨 주시는 분들의 댓글을 보며 완전 진짜 마음 울컥 했습니다....T-T 제 바쁜 삶이 달라지진 않다보니 꾸준한 연재는 약속 드릴 수 없지만(뭐 이건 전에도 그러긴 했죠ㅋ) 그래도 텀이 길지언정, 예전처럼 많은 분들이 봐주시지 않는다해도 연재는 계속 해나가겠습니다. 사실 이 6개월도 제가 글을 안쓰겠다 마음 먹은 건 아니였고 어쩌다 저쩌다보니 진짜 시간이 쏜살처럼 간거예요ㅋ 아무튼 이제 솔크도 지났고 곧 새해니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날 추우니 감기들 조심하세요! 그리고 본의 아니게 긴 휴재에 대해 사과 드리며 그럼에도 여태 기다려 주신, 그리고 다시 돌아와 읽어 주신 분들께 깊은 고마움을 표합니다. 제 글 때문에 빙글 안지운다는 분들과 돌아오라고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는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어차피 노총각이라 주말에 시간이 남으니 최대한 빨리 연재 해보려 노력할께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5.
지난번 삼.이.높.4에서 중국의 삼국시대 당시 위세를 떨치던 소수민족들에 대해 다루다 분량이 길어지며 일부 민족들을 이월시켰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나머지 썰을 푸는 시간ㅎㅎ 본문에 앞서, 정말 기약없이 다음편이 늦어진 점에 대한 사죄의 말씀을 고개 숙여 전한다는... T-T 생애 가장 바쁜 삶을 살다보니 진정 도저히 시간적, 정신적, 체력적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기에 (-_-;;) 아무튼 그래서 사과는 다시 차차 드리기로 하고 저번에 못 다룬 소수민족들인 선비, 저, 무릉만과 남만에 대해! 그럼 거두절미, 바로 본론 Go Go~~~ 선비(鮮卑) 이름만 들어보면 맨날 진지하고 엄숙한 선비충같은 부류들 같이 느껴지지만 이미 한자부터 다른, 그냥 발음만 같은... 우리가 떠올리는 그 선비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종족들! 지금의 중국 허베이성에서 내이멍구(내몽골) 자치구 일대에 걸쳐 중세시대에 번성했던 '동호'라 일컬어지던 유목민들의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전투민족인 흉노들에게 대대적으로 작살나며 내이멍구 동부의 선비산이라는 산 일대로 쫓겨 정착한 이들이 "선비족"이다. 참고로 오환족들도 저 동호 무리들 중 일부가 '다싱안링산맥'의 한 봉우리인 오환산 일대로 쫓겨가 무리지은데서 이름이 붙은 케이스이므로 선비와 오환은 그 뿌리가 같다는게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ㅎ 막상 삼국지의 배경인 후한 ~ 삼국시대 ~ 진나라 때까지는 그리 큰 두각을 나타내던 종족들은 아니였다. 일단 무엇보다 흉노에게 여러 차례 발린 적이 있는데다, 중원의 근간인 한족들과 조우하려면 흉노의 영향력이 큰 지역들을 거쳐야 했기에 굳이 천적인 흉노까지 스킵하며 한족들에 겐세이 줄만큼 수나 파워가 강한 애들은 아니였... 그러다 흉노들이 남북으로 갈리며 약화, 여기에 선비들의 거주지역과 한족들의 거주지역 중간에 있던 북흉노들이 위와 진에 털려 위용을 잃으면서부터 두각을 드러내, 진나라도 점점 나가리의 뉘앙스를 풍기자 땅따먹기하러 쏟아져 내려왔고 이때부터 "오호십육국시대"가 개막된다. 결국..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의 본 배경되는 후한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진으로 중국이 재통일 될 때까지 별 영향 못 미치고 북동쪽에 처박혀 있던 쭈구리들였던 것. 심지어, 문화적으로도 그닥 특색이 모호했던지라.. 당나라가 들어설 무렵에는 흐지부지 없어진 종족들이다. 덧붙이자면... 흉노나 한족들에게는 쭈구리였던 얘들이지만, 우리측의 부여에게 있어서는 천적과도 같던 이들이였다.. 부여는 내내 이 선비충들에게 시달림을 면치 못하다 고구려가 건국되고도 한동안 시달림이 지속.. 후에 그 대단한 "광개토태왕"이 요동일대에서 갈아마신 후에야 악연을 끊었다. 저(氐) 위에서 언급한 오호십육국시대의 오호 중 하나를 차지할 정도였음에도 그닥 기록이 별로 없는 종족이다. (참고로 오호는 흉노, 선비, 강, 저, 갈) 이들은 위와 촉 사이의 서량의 남서에서 익주의 북서인 무도일대에 자리잡은 종족들이였고 앞서 설명했던 흉노, 선비, 오환 등등이 유목민족들이였던데 반해 이들은 강족처럼 정착민족들이여서 농업과 임업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강족들과 거주지가 인접 또는 겹쳤는데, 강족들이 숫적우위에 더 와일드하다보니 많이 뭍힌 감이 없지 않고, 삼국지연의나 기타 창작물들에서는 그냥 죄다 강족으로 싸잡히는 비애도 있다... 당장 마초 & 한수가 조조를 씹어먹으러 서량의 세력들을 죄다 싹쓸어 올 때 그들의 주력이 강족전사들이라고만 표현되어 있지만 강족과 저족의 비율이 7:3 가량 되어, 저족들의 비중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였음에도 나관중은 그냥 무시하고 다 강족처리 했다. 한편... 기록이 부족하다는건 그만큼 기록자인 한족들 입장에서 별 임팩트를 못 느꼈다는 소리. 사실, 동북쪽의 소수민족들은 넓디 넓은 벌판에서 수 많은 가축 때를 휘몰아 쏘다니며 늘 말을 타고 또 원래 저런 벌판은 물도, 식량도 넉넉치 않으며 대체로 육식위주다보니 아무래도 더 거칠었던 반면... 서쪽의 소수민족들은 그럴 벌판이 없는 산악지형에 거주하며 수렵, 채집생활도 하긴 했으나 역시 식량의 주요루트는 농사였던 관계로 채식비율도 더 높고 식량수급이 아무래도 떠돌이 유목들보다는 나았기에 좀 덜 거칠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저 당시에 "말"이 갖는 기동력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파괴력이 어마무시했기에 대부분 1인 2마 이상인 유목민들이 말보다 농사짓는 소와 더 가까운 산악민족들보다는 공격력이 앞설 수 밖에 없었을거 같다. 현세에 이르러, 우리회사만 봐도... 늘 사무실에 정착해 자기자리에서 농사짓듯 모니터만 보고 밥도 식당밥, 도시락 먹는 내근직들보다는 맨날 이리저리 차 타고 거래처와 클라이언트 찾아 떠돌며 편의점에서 MSG와 나트륨 범벅인 백종원 CU도시락이 주식인 영업직 인간들이 더 거칠고 개새끼들이 많다.. (나도 그 개새끼들 중 한 마리인건 함정) 무릉만(武陵蠻) 삼국지의 자타공인 바퀴벌레 종족들이다.... 삼국시대 당시에 만약 핵전쟁이 났어도 쥐, 바퀴벌레와 함께 절대 멸종 안했을거 같은 한족들 입장에서는 진심 진저리 넌더리 났을 종족들인데, 이들의 포지션을 현대로 옮겨와 보자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긴긴시간 우주제일 천조국을 엿 먹인 탈레반과 비슷하고 역시 몇 십년 전 천조국을 학 떼게 만든 베트콩과도 비슷하다. 이름만 봐도 어디 사는지 드러나는 이들은 말 그대로 형주의 "무릉"일대에 퍼져 살았다. 삼국지를 연의나 게임으로만 접한 분들 입장에서는 여태 언급된 소수민족들은 아직 소개안한 남만족과 더불어 거의 중국의 변두리에 살았다지만 무릉만들이 사는 무릉은 중국의 한복판인데 뭔 소수민족??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도 그럴만한게, 중국이 원체 넓고 큰데다 그 넓은 땅이 전부 평야도 아니고 도심지도 아니다. 심지어 지금보다 훨씬 인간 적고, 인프라가 꽝이라 미개척지, 오지가 많던 1,900여 년 전 중국은 말할 거 없어, 당시의 형주는 비교적 인구도 많고 인프라와 교통이 발달한 강릉, 강하, 장사 정도까진 꽤 살기 괜찮은 곳이였지만 무릉은 그냥 완전 험준한 협곡 투성이의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오지로서... 여러분들 영화 '아바타' 다들 봤나? 거기의 파랗고 길쭉한 나비족들 사는 판도라와 엇비슷한 그런 환경이였다. 무릉만들의 전술은 바로 저 거지같은 험지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이였고... 이 전술 덕에 한족들의 끊임없는 토벌릴레이 속에서도 종족의 근간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유표는 손 놓고 없는셈치는 땅이였고, 삼국이 정립되어 가는 와중에 오에서 황개, 반준, 여대, 보즐 등등이 수차례 토벌에 성공은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냥 겁 주고 주의만 시킨 수준일뿐, 이들의 세력존폐를 위협할 수준의 데미지를 주는데는 실패했다. 쉽게 말해, 그냥 이들로 하여금 지들 영역에서만 짱 박혀 지지고 볶고 알아서 하게 하고 한족의 영역으로 나오지 않게끔 억제만 한 수준이였던 것. 당장 역사를 조금만 더 올라가보면, 이들의 존재는 한족의 애물단지같은 위치였고, 하다하다 안되자, 소수민족 토벌의 달인인 마원(마초의 조상) 까지 고령임에도 출병시킬만큼이였다. 허나 소수민족 상대로 킬 수가 수두룩 하던 그 마원조차도 무릉만들 상대로는 지지부진하다 끝내 전장에서 병사한다. 무릉만들도 순수혈통 단일민족은 아니고 그 일대에 퍼져 사는 여러 종족들을 싸잡아 일컫는 호칭이였는데 무릉만들 중 일부는 식인풍습도 있었던 듯... 뭐... 저걸로도 무릉만들 수준이 어땠는지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도 된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삼국지 매니아분들에게 있어서, 무릉만의 슈퍼스타는 역시 "사마가"인데, 사마가의 등장은 유비가 관, 장 두 아우 사망에 있어 만악의 근원인 오를 정벌하고자 이릉대전을 개전함에, 촉에 협조하는 것으로 나온다. 당시 걸핏하면 자기들 족치려는 오를 극혐하던 무릉만들에게, 승전시에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촉한의 특산물인 최고급 비단을 잔뜩 챙겨 무릉만들을 설득했던 결과였다. 당시, 비단 싸들고 무릉만들과 협상하러 나섰던 촉한의 네고시에이터는 바로 백미 "마량"이였는데... 당시 자치권도 자치권이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고 일단 마량을 필두 삼은 촉한의 협상단이 가져간 비단을 본 무릉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였다고 한다. 하긴, 그도 그럴게.. 여러분들도 맨날 동네시장 신발가게에서 아티스나 슈퍼카미트만 사신다가 옆동네에서 에어조던 시리즈별로 다 갖고 오며 도와달라면 눈 뒤집힐 듯. (아티스나 슈퍼카미트 알면 무조건 아재 당첨) 허나,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이릉대전에서 촉이 대박살이 나며 따라갔던 무릉만들도 무시 못할 피해를 입었다... 참고로 여느 소수민족들이 그렇듯, 무릉만들도, "We Are The 무릉만!" 이라며 하나로 뭉쳐진 단일세력이 아닌, 여러 크고 작은 부족들의 연합 비슷한 것이였고 여러분들이 아는 사마가는 연의의 표현처럼 무릉만들의 왕이 아니라, 그런 여러 무릉만들의 부족들 중 한 부족을 이끄는 부족장들 중 하나였다. 남만은 분량도 좀 될 것 같고 아무래도 다른 소수민족들에 비해 삼국지 매니아분들이 더욱 궁금해하며 흥미 가지실 것같은 종족이라 차라리 따로 다루는 게 나을 듯 싶다는 생각에 따로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 죄송합니다, 독자여러분들.. 제가 연재를 늦게 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진짜 이번에는 도가 지나친 수준의 텀이 생기고야 말았네요... T-T 하지만 저 역시 뒹굴고 노느라 연재가 미뤄진 것은 절대 아니였어요. 저도 좋아서, 즐거움과 보람에 시간내서 글 쓰는데 장시간 못 그러니 참 답답했습니다. 그 와중에 재촉없이 묵묵히 기다려주신 분들, 애정과 관심 담아 재촉해주신 분들... 모두 죄송하고 또 고맙습니다. 그 긴시간 동안 연재 없음에도 팔로워는 줄지 않아서 기뻤다는 ㅎㅎ 아무튼 다시 연재에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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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드라이브 #한강드라이브 #남산공원 #남산도서관 #남산안중근기념관 #넷플릭스앤칠 #용산가볼만한곳 #용산데이트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매서운 한파가 지나고 약간 누그러진 겨울 날씨입니다. 주말은 잘 보내셨는지요. 새롭게 시작한 한주도 활기차게 시작하세요. 오늘은 서울 여행지 추천으로 한강 드라이브 코스로 남산공원 한바퀴 둘러보고 용산 이색데이트로 넷플릭스앤칠이라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남대문시장까지 둘러보고 온 코스입니다. 남대문시장에는 추웠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장 골목에 줄을 이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가가 올라 걱정인데 다들 따뜻한 겨울을 보냈으면 합니다. 서울 주말여행 한강 드라이브코스 1. 서울 남산공원 드라이브 2. 서울 남산공원 남산도서관. 남산갤러리 3. 서울 남산둘레길 안중근의사 기념관 4. 용산 가볼만한곳 이색 데이트 코스- 넷플릭스 앤 칠 (공간대여. 파티룸. 커플 영화관) 5. 용산구 후암동 맛집 -후암연어식당 6. 서울 전통시장 후암시장 7. 서울 중구 가볼만한곳-남대문시장 * 댓글 상세한 내용을 보려면 링크를 클릭하세요. * * 서울 드라이브 코스 생생영상 감상해요. * #서울드라이브 #서울드라이브코스 #주말여행 #서울여행 #주말드라이브 #서울주말여행 #남산공원 #서울남산공원 #한강 #한강드라이브 #서울주말드라이브코스 #남산드라이브 #서울남산 #서울주말에가볼만한곳 #서울당일치기 #강변북로 #남산도서관 #안중근기념관 #넷플릭스앤칠 #서울파티룸 #서울커플영화관 #서울이색데이트 #후암동맛집 #후암연어식당 #남대문시장 #서울구경 #서울시장투어 #한남대교 #올림픽대로
경기도 가평 쁘띠프랑스 데이트 코스
#가평가볼만한곳 #가평여행 #쁘띠프랑스 #가평데이트 #가평갈만한곳 #가평볼거리 #가평놀거리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춥지만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3일간 휴식을 취하고 인사드립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잘 지키고 계신지요. 3일간 여행을 한 것도 아니고 일로써 컴퓨터를 하지 않고 오로지 휴식을 취한 3일 이었어요. 제대로 방굴러데쉬와 실내 운동을 맘껏 한 시간이었어요.  그동안 못 보았던 넷플릭스와 불타는 트롯맨과 미스터트롯2도 감상했어요. 그리고 독특한 피지컬100 오디션도 봤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오늘 소개할 국내여행지는 지난 경기도 가평 다녀오면서 들렀던 쁘띠프랑스와 이탈리아마을을 안내합니다.  이미 다녀오신분들도 있겠지만 아직 못 가본 분들은 부모님과 함께 가도 좋고 아이와가볼만한곳이기도 하고 데이트 코스로 추천합니다.  겨울 경기도 갈만한곳 가평 당일치기 여행 코스 1, 경기도 드라이브 코스 가평 대교 2, 서울근교 데이트 코스 가평 쁘띠프랑스 3, 가평 이탈리아마을 카페-아모레 파스타. 피자 맛집 4, 가평 쁘띠프랑스 .이탈리아마을 주차장 * 댓글 링크를 눌러 가평 이국적마을 쁘띠프랑스 상세보기를 하세요.  * 가평 갈만한곳 이탈리아마을. 쁘띠프랑스 영상도 감상해요.  #겨울경기도갈만한곳 #경기도갈만한곳 #가평갈만한곳 #쁘띠프랑스 #가평당일치기 #경기도당일치기여행 #당일치기여행 #겨울당일치기여행 #겨울당일치기 #서울근교당일치기 #서울근교당일여행 #경기도당일여행 #가평쁘띠프랑스 #가평이탈리아마을 #이탈리아마을 #가평데이트 #경기도실내가볼만한곳 #가평실내가볼만한곳 #가평아이와가볼만한곳 #경기도아이와가볼만한곳 #경기도체험여행 #경기도테마파크 #프랑스마을 #가평드라이브 #경기도드라이브 #이탈리아마을맛집 #프띠프랑스카페 #가평대교 #청평호 #북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