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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신작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4'(2019) 리뷰


안 만드느니만 못한 시퀄과 리메이크, 리부트들이 지금도 범람하는 와중에, 3편에 이어 9년 만에 나온 <토이 스토리 4>(2019)는, 반드시 만들어졌어야만 하는 이야기임을 스스로 멋지게 증명해냅니다. 이 시리즈의 시작을 "장난감에게 언어를 주자" 같은 착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토이 스토리 4>는 "장난감에게도 삶을 주자"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워낙 명장면이 많지만 정말로 이 시리즈에서 돋보이는 장면은 '앤디'나 '보니'가 장난감들과 인형들을 데리고 일종의 역할놀이 혹은 인형극을 하는 대목입니다. 보안관이 되고 공주가 되며 친구가 되는 그 일은 주인의 상상에서 가능했겠지만 그 상상을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스크린으로 불러내 관객들의 과거를 대신해 (세 번에 걸쳐) 한 번 더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배려하듯 장난감들이 '가만히 있는 척' 하는 것도 그 상상 속 이야기의 연장이었다고 한다면, <토이 스토리 4>는 한 걸음 나아가 (주인이 있든 없든) '장난감의 삶'으로 차원을 확장합니다. 조금도 어렵지 않으면서 타당한 방식으로요.

동시에 <토이 스토리 4>는 모두에게 사려 깊은 이야기입니다. '주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제일의 사명인' 장난감에게도, '주인이 없어도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장난감에게도, 그리고 장난감이 될 일 같은 건 없는 채로 버려진 물건에게도. 그리고, 장식장 한구석의 먼지 쌓인 옛 장난감과 놀이공원에서 홀로 길을 잃고 우는 아이에게도.

'버즈'의 명대사는 "To Infinity"로 끝나지 않고 "And Beyond"로 끝나는데, 이번 4편은 바로 그 'And Beyond'를 진정으로 가능하게 해 주었다고 느낍니다. 그 'Beyond'란, 하나는 헤어짐이 꼭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의 마음속 장난감에게는 주인만 있는 게 아니라 삶을 줄 수 있다는 것. "So Long"을 말하면서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건, 웃으면서 극장을 나설 수 있는 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3편에서도 마지막은 "미안해"가 아니라 "고마워"였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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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토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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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행복해, '토이스토리4'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입니다. 저 약속은 지키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다한들 제가 기대하는 영화는절대 놓칠 수가 없죠!! 어서 빨리 리뷰녹이겠습니다. 아직까지도 전 여운이 가시지 않았네요. 무조건 극호입니다. 제발 천만이 봐주세요. 오늘의 영화는 '토이스토리4'입니다. 결론부터 말할게요, 감동과 재미가 차고 넘칩니다. 완벽한 마무리라고 생각했던 전편 3편을 뛰어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앞으로 보실 분들은 참고해주세요! 마르지 않는 소재 정말 픽사와 디즈니가 만나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기발함이 넘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상 토이스토리의 소재 자체가 우리가 흔히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대한 환상을 자극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의 추억과 향수를 한층 더 진하게 풍기게 만들었습니다. 대충 만들어 못생겼지만 친근했던 일회용 장난감이 더욱 생각나는 시간이었네요. 3에서 끝났다고 생각했던 소재와 스토리가 4에서 또 신선하게 성공적으로 재시작했습니다. 장난감의 사명감 장난감의 시점에서 본 작품이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지 못했던 장난감의 사명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사실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동심 속에 살아있는 추억의 장난감들은 모두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외롭지 않고, 어디에서나 행복할 수 있게 장난감들의 고민은 가까운 친구의 행복이었다고 봅니다. 그 마음을 우리는 현재 '우디'라는 보안관을 통해 20년 넘게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농축된 토이스토리 토이스토리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물했습니다. 단언컨대 1편부터 토이스토리를 사랑해왔던 팬들이라면 이번 시리즈에서 울음을 참기는 힘듭니다. 제가 느끼고 온 2시간은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정신없이 웃다가 한 번 강하게 얻어 맞는 후반부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토이스토리의 농축된 감정이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 영화를 최소한 2번은 더 볼 의향이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토이스토리는 언제나 우리들 곁에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가 있음을 일깨우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장난감도 행복한 세상, 동심이 살아숨쉬고 순수함이 지켜지는 세상이 계속되는 세상이 오기를 지금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편을 보고 정말 완벽한 마무리라고 생각했던 제가 4편을 본 후 그보다 더한 감동을 느꼈을 때, 토이스토리는 이미 제 인생의 명작이 되어 있었습니다. 후손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은 정말 가치있는 작품입니다. 아마 졸작으로 시리즈가 이어질지언정 저는 토이스토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제발 그렇게라도 이들을 영원히 마주하고 싶을 정도네요. 4편의 주제는 더욱 놀라운 건 토이스토리의 주제가 항상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뻔하지도 않고요. 4편은 지금까지 곁을 지켰던 장난감들의 주체적인 행동에 있습니다. 버려진 장난감들, 선택받지 못한 장난감들, 잊혀진 장난감들이 모두 자신의 삶을 위해 선택하는 편이죠.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언제나 우리들 곁에 있었으며 우리의 행복을 바래왔지만 이제는 장난감 자신들의 행복도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토이스토리의 결말도 어디로가도 슬픈 결말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최선을 골라 우리를 새삼 감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제, 감동, 재미 무엇하나 버릴 게 없는 그야말로 저에게는 완벽한 작품이었어요. 감초의 반란 예고편을 통해 확인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캐릭터들의 등장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인공들보다 눈부십니다. 감초에서 머무르지 않고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을 가지고 관객들에게 끊임없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 잘 웃지 않는데 이번 영화를 볼 때는 시도때도 없이 계속 웃었네요. 마지막에는 거의 박장대소를 하며 완전히 몰입하며 봤습니다. 편안히 즐기다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알아서 장난감들이 여러분들의 감정을 요리조리 가지고 놀고 있을 겁니다. 쿠키영상은 쿠키영상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후속편을 예고하는 영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쿠키영상보다 재밌습니다. 꼭 보셔야 합니다. 올라가는 엔딩크레딧 나오기 전까지 꼭 모두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디즈니픽사는 제작자를 소개하는 영상마저 관객들이 어떻게 보게 만들지 잘 아는 모습이었습니다. 올라가는 엔딩크레딧 이후에는 별다른 영상이 없으나 깊은 여운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향수를 돋게 하는 OST와 함께 영화를 끝까지 즐겨주시면 되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애잔한 향수는 그대로, 새로운 재미와 감동은 보너스인 역대급 시리즈입니다. 우리는 토이스토리가 존재하는 현시대에 살고있음에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행운아들입니다. 그 근거는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시죠. 영화 '토이스토리4'였습니다.
'토이 스토리 4'의 '보 핍' 피규어를 아마존에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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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었다, '기생충'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입니다.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게 됐네요. 곧 종강이니까 방학하고 나면 바로바로 후기를 쓰겠죠? 제가? 본 영화는 꽤 있는데도 많이 밀려있네요 포스팅이,바쁘더라도 분발하겠습니다. 오늘의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화 '기생충'입니다. 이미 개봉 전부터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죠. 그런데 칸 영화제에서 최고수상의 영예까지 얻었으니 인기는 날개를 달은 격입니다. 비록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포스팅을 미루고 있던 저지만 이번만큼은 영화 보자마자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후기를 씁니다. 본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어마무시한 여운을 가진 작품입니다.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영화를 묘사하자면 양극화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작품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이미 존재하는 양극화라는 사회문제를 전혀 현실적이지 않게 표현했는데요. 문제는 이러한 묘사가 과연 어디까지 허구일까 가늠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다수의 중간층을 제외하고 상하위 소수의 입장을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도 확실히 정도를 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 볼 수록 블랙코미디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소름 돋게 영화 자체가 사실일 수 있겠다 싶더군요. 그 정도로 작품은 평범한 소재를 전혀 평범하지 않게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자신의 분수에 대하여 영화는 잔혹합니다. 미장센적으로도 치명적이나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잔혹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제목 '기생충'에서도 느껴지지만 숙주에게 몰래 붙어 기를 빨아먹고 사는 벌레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립니다. 하지만 기생충에 입장에서 이러한 행동은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숙주의 입장에서는 굳이 누군가에게 기생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에 기생충이 굳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들을 벌레라고 치부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그 사람들에게 어떤 시선을 가지자고 말하는 걸까요? 영화를 보고 온 저라도 확실히 단정짓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선을 넘을 필요가 없는 인간들 반대로 기생충으로 묘사되는 인간과 달리 사실과는 멀리 떨어져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사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언제나 양극은 존재하기에 극빈곤의 삶이 있다면 부유한 상류의 삶도 존재하겠죠. 충분히 부유한 사람들은 기생충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죠. 영화에서는 '선을 넘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이는 공사를 구분하는 선도 맞지만 이면적으로는 자신의 분수와 주제의 선을 말하기도 합니다. 기생충이 숙주가 되려고 마음먹지만 선을 넘는 순간 스스로를 갉아먹고 다른 기생충들과 충돌하여 전멸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영화는 잔인하게도 이 선에 대해 단호합니다.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부유한 사람들이 멍청할 정도로 순수한 모습으로 묘사되기까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기생충은 숙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사는 세상이 달랐습니다. 모든 사건은 자신의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선을 넘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무계획이 계획이다 언뜻 명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또한 생존을 위한 법칙일 뿐입니다.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오히려 실망과 좌절의 반복을 맛 보게 됩니다. 이미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패배의식은 그들의 선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장치입니다. 언제나 실패하지 않고 제대로 흘러가는 계획이란 사실 무계획에서 출발한다는 엉뚱한 발상은 피식 웃음 짓게 만들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스스로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 느껴지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무결점의 무계획으로 인해 더 큰 사고로 번지게 되고 마지막에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무계획이 당연히 정답은 아니지만 그들의 선택지는 무계획이라는 하나의 선지 밖에 없었고 선을 넘으면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멈추지 않는 악순환에,그들은 그저 갇혀있는 기생충이었습니다. 돌이나 기생충이나 작품은 그들을 묘사하는 대상을 기생충에 한정하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선물용 돌에 신경이 쓰였는데요. 후반부에 강에 다른 돌들과 선물용 돌이 함께 있게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실 선물용 돌도 그저 평범한 돌일 뿐인데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평범한 돌일 뿐인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말 특별한 힘을 갖고 있게끔 착각하게 만들죠. 하지만 그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돌은 돌이고 기생충은 기생충일 뿐 다른 존재를 흉내내고 쫓으려 한들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누군가는 냄새로, 또 누군가는 용도로, 다른 누군가는 생김새로 그 본질을 제자리에 돌려놓게 만듭니다. 영화는 사필귀정의 원칙에 따라 모든 것들은 각자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가도록 인도합니다. 그들만의 모스부호 영화는 철저히 그들은 인간과 다른 어떠한 다른 존재로 인식합니다. 대표적으로는 기생충, 다르게는 돌이나 여하 다른 존재들로 말입니다. 그 증거로는 영화 내내 등장하는 모스부호입니다. 자세히 보면 상류층들은 모스부호를 인지하지도 않으며 관심도 없습니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살짝 넣습니다만, 그렇다고 내용이나 결말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땅 밑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끼리 말이 아닌 부호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상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 발악을 하지만 결국 살기 위해 인간이기를 벗어나는 행동들을 하며 그들은 무엇이 되어가고 있나 혼란스럽게 합니다. 존경의 대상이자 원망의 대상, 같은 부류지만 서로가 서로의 포식자인 셈임을 교묘하게 녹여낸 작품입니다. 영화를 자세히 보시고 해설을 보신다면 봉준호 감독의 천재성을 피부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저 나름대로의 생각일 뿐이고 다른 분들과 의견이 다를지 모릅니다만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되는 시간이 됐습니다. 결말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결말에 대해 모든 분들이 궁금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열렸는지 닫혔는지 애매하거든요. 저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전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죠. 과연 그는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인가? 이 점이 논란의 대상입니다. 꿈을 이룬 후의 회상일 수도 있지만, 망상일 뿐 현실은 여전히 현실일 뿐이라는 의견도 존재하겠죠. 저는 후자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영화의 성격상 그들의 선을 바꾸려고 하지 않을 거라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올라오기에는 너무 깊이 내려갔습니다. 후반부는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입니다. 곡성에서의 소름을 또 한 번 겪었습니다. 쿠키영상은 없지만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시간 동안 긴 여운에 빨리 일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어딜봐도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지만 정말 현실이라면 너무 공포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장르를 총 망라해 평범한 소재를 얘기한 봉준호 감독은 정말 보면 볼 수록 놀랍기만 합니다. 감히 말하기를 올해의 영화입니다. 기준이 후한 편이지만 혼자나마 호들갑 좀 떨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도 언제든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기생충'이었습니다.
혹시 운동 좋아하시는 직장인은 없으신가요?
안녕하세요! 매일 직장인 커뮤니티를 눈팅하는 빙글러입니다 ㅋㅋㅋ @nanmollang 님의 카드를 재밌게 챙겨보고 있는데, 지난번에 취미가 겹치는 빙글러들을 위해 톡방을 만들어주신다는 글을 봤어요! 저는 퇴근후 거의 매일같이 운동을 갈 만큼 운동을 좋아하거든요ㅋㅋ 그래서 다른 빙글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운동을 좋아하는 빙글러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ㅠㅠㅠㅠ 제 주변에는 퇴근 후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 속상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제가 직접 카드를 써서 저와 취미가 비슷한 빙글러를 찾아보려고 해요! 저는 주짓수를 3년째 취미생활로 즐기고 있어요. UFC같은 이종격투기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서울에서 진행되는 로드FC같은 경우는 직관을 가기도해요ㅋㅋ) 물놀이를 좋아해서 도복을 입기 힘들정도로 더운 여름엔 서핑을 가는 것도 좋아해요 ㅋㅋㅋ 물론 아직 발목, 종아리 파도에서 노는 쪼렙입니다 ㅋㅋㅋㅋㅋㅋ 통돌이를 즐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헬스도 배우고 싶은데 진짜 일자무식이라 헬스장에서 바벨 스트라이커와 같은 헬스장 빌런이 될까봐 아직 망설이고 있어요…ㅎㅎㅎ 프로 헬스러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닷! 혹시 주짓수나 서핑, 헬스에 관심이 있는 빙글러가 있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저랑 같이 놀아요 ㅋㅋㅋㅋㅋ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리뷰
사랑의 형태는, 당신과 나의 마음과 닮아 있다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퍼시픽 림>(2013)보다도 2년이나 앞서 기획하기 시작한 (그는 어릴 때 본 <The 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1954)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원제: The Shape of Water)은 사실상 제목만으로 관람 전에도 영화의 주제의식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을 만큼 그의 전작들에 비해서는 쉽고 친절한 영화다. 게다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명체의 교감 혹은 사랑 이야기는 국적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많은 영화와 소설 등의 매체를 통해 다뤄져 왔기에 새롭지 않으며, 영화 속에 심어진 상징들도 비교적 직접적이고 명확하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초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한 비밀 연구소.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때다. 주인공인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이 연구소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 이 연구소에 남미에서 잡아온 괴생명체가 오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음악상 등을 포함한 13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건 다분히 진보적인 할리우드의 성향에 걸맞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멕시코인 감독이 냉전 시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만든 소수자들의 사랑 이야기, 대충 이렇게만 요약해도 이 영화를 관객에게 어느 정도 납득시키기에 무리는 아니다. 다만 이 아름다운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 프로덕션, 각본 등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살펴봐도 부족하지 않다. 다양성과 인간애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고 정치와 권력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를 이 영화는 다분히 향수와 애착이 가득한 시선으로 담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생존해 있었던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이 극장의 촬영 로케이션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Elgin Theatre’로, 공교롭게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토론토국제영화제 때 이곳에서 상영되었다. 이 묘한 조화란!) 위층에 자리한 아파트에 사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절제되어 있지만 음반과 차량 등 당시의 문화적, 사회적 양식을 충실하게 구현한다. ‘엘라이자’는 말을 할 수 없고 주변인, 특히 연구소 내 권력층에게는 일정 부분 억눌려 있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뚜렷한 예술적 취향을 갖고 있으며 영화는 그녀를 성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몇 개의 상징적 신을 통해 그녀의 육체적 욕망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특히 중요한 순간마다 ‘엘라이자’는 자신의 언어를 상대에게 명확하고 뚜렷하게 전달한다. 그녀와 생명체(크레딧에서는 ‘Amphibian Man’, 즉 양서류 인간 정도로 표기된다. 여기서는 편의상 ‘그’라고 표기해보도록 한다.)의 사랑은 힘과 효율, 기능의 가치로 인간을 대상화하던 이들 사이에서 표면적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상대의 마음을 비언어적 소통으로 헤아리며 발전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목표한 바를 뛰어나게 달성한다. 게다가 말을 하지 못하는 인물을 연기한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그’의 행동에 대한 리액션을 표정만으로 생생하게 담는다. 감독의 타 영화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눈꺼풀을 제외하면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 없이 (더그 존스가 수트를 입고 연기한) 아날로그적인 크리처로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사랑은 물과 땅에서 모두 호흡 가능한 ‘그’를 우주개발 연구 목적으로 해부하려는 이들에 의해 위기에 처하고, ‘엘라이자’는 기꺼이 ‘그’를 연구소에서 구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여기서 옆집에 사는 ‘자일스’(리차드 젠킨스)에게 “나도 말을 못하는데, 그처럼 나도 괴물이에요?”라며 화를 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긴박감 있게 펼쳐지는 이 ‘구출 작전’에서 중요한 것은 ‘그’를 사랑하게 된 ‘엘라이자’의 마음이 아니라 그녀를 도와주는 주변 인물들의 공조다. ‘호프스테들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는 연구소 내 핵심 인물 중 유일하게 ‘그’를 생명체로 여기는 인물이며, ‘자일스’는 동성애자, ‘엘라이자’의 동료 청소부 ‘젤다’(옥타비아 스펜서)는 흑인이다. 마음을 진정으로 모은 인물들의 연대는 어느 영화에서든 아름답다. 이 영화를 ‘그로테스크한 사랑 이야기’라고 무심코 요약하려다, 앞의 다섯 글자를 지우기로 한다. 사랑 이야기, 혹은 한 사랑 이야기.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어쩌면 헛된 희망을 품지 않고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그럼에도 황홀한 판타지 영화다. 형태가 없는 사랑은 그것을 대하는 이들이 지닌 마음의 그릇의 모양과 용량만큼 형성된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내레이션으로 열고 닫는 '자일스'의 목소리에 등장하는 시구가 하나 있는데, 나는 그 시의 출처를 찾으려다가 그만 멈췄다. 누가 쓴 시인지보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할 것이다.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You've humbled my heart, for you are everywhere."  사랑은 추상적 관념이기에 그 형태가 없지만, 사랑을 대하는 당신과 나의 마음만큼의 형태로 이 세상을 담는다. (★ 9/10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7), 기예르모 델 토로 2018년 2월 22일 (국내) 개봉, 123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샐리 호킨스, 리차드 젠킨스, 마이클 섀넌, 옥타비아 스펜서, 마이클 스털버그, 더그 존스 등. 수입/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https://brunch.co.kr/@cosmos-j/257
영화 '허스토리' 리뷰 (6월 27일 개봉)
단지 살고자 버텨낸 그녀들의 이야기, 끝내 역사가 되다 때는 1991년, 여행사 사장인 '정숙'(김희애)은 자신의 집에서 가사 일을 돕는 '정길'(김해숙)이 과거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갔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산 지역 여성경제인연합회의 일원으로 당시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할머니들을 후원하던 '정숙'은 그들의 사연을 외면하지 못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 동참한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시모노세키(하관)와 부산을 오가며 공판에 참여해 '관부 재판'으로 불리는 이 이야기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해 최초이자 유일하게, 부분적으로나마 책임과 잘못을 인정한 사례다. (그러나 1998년 판결 이후, 2000년대 들어 이 판결은 번복되고 재판을 담당했던 재판부는 경질되었다.) 여기까지는 조금만 자료를 찾아보면 알게 되는 내용이다. <귀향>을 비롯해 <눈길>, <어폴로지>, <아이 캔 스피크>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그들이 겪은 일을 다룬 영화가 최근 여러 편 관객들을 만났다. 소재를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애국심에 기댄 채 정서에 호소하기도 했고 세대 간의 관계로 접근하기도 했으며, 유쾌한 휴먼 드라마의 톤으로 대중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미 이 영화들을 극장에서 만나본 이들이라면 <허스토리>(2018)가, 제목에서도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헤아릴 만한 이 이야기가 무슨 새로운 가치가 있을지 반문할 만하다. 위안부 합의 파기 혹은 재검토 등 첨예한 이야기가 재기되기도 하면서도 점차 생존자가 줄어가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라면 '그녀들의 이야기'는 문제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부연하자면 '한국인이라면 봐야 할 영화' 같은 건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좋은 영화는 특정한 소재로도 능히 배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전달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스토리>는 대체로 민족적 정서나 감정에 열을 올리는 대신 1990년대 당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시작의 가치를 드높인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 지난 이야기 무엇 하러 들추냐며 핀잔할 때, 창피하지도 않느냐며 폄하할 때, 당시로서는 이미 성공한 사업가였던 '정숙'이 겪는 물적, 심적 어려움은 관객이 기대할 승리와 반전의 쾌감보다는 좌절감을 안겨준다. 그것은 2018년, 지금도 그때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허스토리>는 승리의 드라마도 아니요, 반전의 쾌감을 주는 법정 영화도 아니며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계몽적 서사도 아니다. 그러나 엄마에게 반항적으로 툴툴대던, '정숙'의 딸 '혜수'(이설)가 수요집회에서 마이크를 쥐고 선 모습은 <허스토리>의 다른 의미를 짐작하게 한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정숙'에게서 딸 '혜수'에게로 목소리가 옮겨가는 순간, 영화는 뿌듯함과 감격의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보는 동료들 곁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가만히 딸을 바라보는, 머리 희끗해진 '정숙'에게 잠시 시선을 둔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시대를 타고 사라지지 않고 흐른다는 이야기, 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 멋대로의 추측이지만 그렇다. 수 년 간의 단조로운 공판 과정보다 <허스토리>에서 눈에 띄는 건 상기의 모녀지간과 같은, 인물들의 관계다. '정숙'과 '혜수', '정길'과 아들, '귀순'(문숙)과 그녀의 옛 소학교 교사, '정숙'과 변호사 '상일'(김준한)의 관계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사연을 통해 공감, 이해, 화해, 응원, 그런 것들을 서로 나눈다. 사건 자체보다는 대화의 내용과 양상이 중요히 여겨지는 이 영화의 힘이다. 소재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차근차근 관계를 성장시켜 가는 것. 섣불리 앞서나가지 않고 아픈 현실을 직시하되 일말의 희망을 남겨둔 <허스토리>의 맺음이 마음에 든다. 실은 약간의 곁가지처럼 여겨졌던 맨 마지막 신을 제외하면 말이다. 중급 규모 이상의 한국 영화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성비의 캐스팅 앙상블 역시도 이 영화에 동하는 이유다. <허스토리> 속 처음의 목소리는 결말에 이르러 지금 여기, 오늘날 그것에 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비로소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전한다. 그녀들의 용기는 그렇게 역사가 되었고, 되고 있다. (★ 8/10점.) <허스토리>(Herstory, 2018), 민규동 2018년 6월 27일 개봉, 121분, 12세 관람가. 출연: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김선영, 김준한, 이설, 이유영 등. 제작: 수필름 제공/배급: NEW https://brunch.co.kr/@cosmos-j/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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