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brielBarbosa
10,000+ Views

칠레 상대로 나온 쿠보의 번뜩임에 대해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쿠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미 이승우 바르샤 시절부터 쿠보는 꾸준히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있는 선수였습니다.

이승우가 징계받던 시절 똑같이 징계를 받으며 쿠보는 일본으로 돌아갔고 재능을 인정받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오늘 마침 칠레와의 코파 경기에 쿠보가 선발로 나왔다길래 봤는데 확실히 번뜩이는건 있더군요
드리블이라든지
패스라든지
순간 돌파라든지..
사실 이 경기에서 가장 압권은 아무도 속지 않는 노룩패스...........
내가 다 민망해지는 노룩패스였음 ㅋㅋㅋㅋ

여하튼 확실히 번뜩이는건 있지만 레귤러로 가기엔 살짝 부족하더군요. 플레이에 안정감이라든지 정확도가 완전 낮아요. 지금 움짤 쪄온것도 번뜩이는 것만 가져온거고 나머지는 다 패스미스에 턴오버 당하고 터치 미스나고 그러더라구요.

번뜩인다는 점에서 이승우와 비슷한 느낌을 꽤 많이 받았습니다. 전진성이 뛰어나다는것도 이승우와 비슷하고 플레이 스타일도 살짝 유사해요. 다만 승우는 이제 플레이에 안정감도 꽤 생겼는데 쿠보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닌거 같더군요.

사실 무턱대고 일본 선수라고 쿠보를 까고싶진 않습니다. 쿠보도 분명 번뜩이는게 있기 때문에 이것만 잘 정제하면 분명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거라 봅니다. 다만 그걸 정제하는게 정말 정말 어렵다는게 함정ㅋㅋ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1 Comments
Suggested
Recent
'know' look pass ㅋㅋㅋ
이강인은 u-20대회고 쿠보는 성인 대회임. 수준 자체가 다른 대회임.
글 쓰신 분은 이강인 말고 이승우랑 비교하고 있어요 ㅎㅎㅎ
이강인과 비교해도 강인이는 이미 라리가 1군 데뷔에 국왕컵 4강도 뛰었던 선수구요. 쿠보는 이제서야 스페인 입성이고 심지어 2군 카스티야 계약입니다. 말씀하신 기준이라면 이강인이 우위지요.
국뽕이라서가 아니라 쿠보 같은 선수는 흔한 케이스죠.... 남미만 봐도 돌파력, 1:1개인기량 좋은 선수들 많습니다. 유럽은 더 말할 것도 없구요. 다만 그게 되면서 득점력이 잇는 선수는 매우 드물다고 봅니다. 만약 쿠보가 저런 번뜩임과 득점력까지 갖췄다? 반박의 여지 없이 쿠보 선수가 우위입니다. 그치만 아니네요. 딱 이승우ㅠㅠ 이승우 선수도 잘됏으면 좋겟다
그래도 프로 경기 뛰다보면 경험이 쌓여서 어찌될지는 아직 미지수죠 ㅎ
맞아요. 그래서 지켜볼 필요가 있을듯 싶어요. 다만 전 좀 부정적인게 그간 수많은 일본의 축구 천재들과 쿠보가 그다지 다르지 않은거 같아서요. 아사노며 우사미며.. 오히려 조명 받지 않았던 나카지마 같은 선수가 더 잘하더군요.
솔직히 아시아 어린 선수를 그냥 응원하고 싶어요... 이때 만큼은 모든것을 떠나서요
강긴리도 이제 발렌시아에서 기용이 될 지, 다른 팀에서 임대로 뛰게 될 지는 또 모르지만 스페인에서 같은 아시아 유망주로서 선의의 경쟁 구도가 기대되기도 하네요ㅎㅎ 또 아시아 선수들은 원래 성실하고 팀을 뒷받침한다는 이미지(혹은 편견일 수도..)가 있었는데 요즘 아시아 선수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들이 축구팬으로서 너무 설레게 해주네요 응원할 맛 납니다:)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호날두가 방한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이유
이번 k리그 올스타전은 유벤투스와의 경기로 확정됐습니다. 지난 시즌인가 뜬금 베트남가서 한거랑 비교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 유럽팀들은 프리시즌겸 투어겸해서 아시아쪽으로 많이 오긴하는데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을 가지 한국은 잘 오지 않습니다. 특히 유벤투스 같이 거대한 클럽들은 더더욱 그렇죠. 지난 2010년에 바르셀로나가 방한하긴 했지만 그 후로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러 실로 오랜만에 거대 클럽이 방한을 하는겁니다. 더 놀라운건 호날두가 한국행을 원했다는 것 ㄷㄷㄷ 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해당 이벤트는 호날두가 한국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해서 본격 추진하게 된 이벤트라고 합니다. 이미 5월부터 유벤투스 아시아마케팅하는 업체와 접촉을 시작했고 일정상에 문제가 있었지만 유벤투스가 적극적으로 변경을 하며 성사됐다고 합니다. 호날두가 과거 한국에 마지막으로 왔던때가 2007년 맨유 시절이었으니 거의 12년 만에 재방문입니다. 이때 이미지가 꽤 좋았나봐요. 아니면 이거 또 먹고 싶어서 오는거야 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이 발롱도르 탄 만큼 빠다코코낫도 발전했어 ㅋㅋㅋㅋㅋ 와서 한 번 더 먹방보여줘 ㅋㅋㅋㅋㅋ
가오가 육체를 지배한 레슬러
그의 정체는 바로 AEW소속의 오렌지 캐시디 흉폭하고 잔인한 기술로 유명했던 레슬러임 그의 과거를 말해주는 오렌지 캐시디의 AEW 영입당시 리플들 AEW는 하드코어한 곳이라 알고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난 이 계약을 지지할 수 없어 그의 킥은 너무 위험해 다른 선수들이 그의 킥에 다리가 부러지지 않길 바라 댓글이 말해주는 그의 경기력 그럼 이제 그의 극악무도한 경기 영상을 확인하자 불곰같은 챱으로 상대방의 가슴을 찢어버리는 오렌지 캐시디 상대방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킥 남다른 등장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오렌지 캐시디 그저 쉬고 있을 뿐인데도 넘쳐 흐르는 그의 가오 그의 전광석화같은 킥에 눈이 멀어버린 레슬러 (왼쪽 주의) 저정도의 펀치로는 그를 절대 쓰러트릴 수 없다. 일어날때도 느껴지는 가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그의 이스케입 친구를 구하러 등장한 오렌지 캐시디 스테이지 장악력이 어마무시하다 단 한번의 점프로 악의 무리를 해치우는 오렌지 캐시디 3단 로프 점프로 적들을 무찌르는 오렌지 캐시디 굉장히 아파보이지만 절대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는다 오렌지 캐시디 덕분에 목숨을 구한 친구들. 아름다운 포옹으로 마무리 되는 경기 (격정적인 줌아웃이 포인트) 형. 존나 멋있어. 진짜.
인조잔디에 대포동 태클, '인민 사커'였어
'2022 카타르월드컵' 축구대표팀의 북한 원정 경기를 보고 2022년 '카타르월드컵 ' 아시아지역 2차 예선 3차전은 원정경기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평양 김일성종합경기장 원정길을 떠나게 됐죠. 지상파 3사가 최후까지 매달렸던 한국 축구대표팀의 지역예선 '평양 원정' 방송은 생중계는 물론 결국 녹화 중계마저 무산되어버렸죠. 축구전문 유튜브 채널 '꽁병지tv'에서 전문가들은 '인민 사커'라는 이름으로 이번 축구를 설명했어요. 방송 카메라 1대로 촬영된 7~8분여의 하이라이트 경기 장면을 보고 관람후기를 소개할까 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치 군대 축구를 떠올리며 개념 축구가 아닌 걸로 최종 판정합니다. ◇무관중 ◇무중계 ◇인조잔디 ◇대포동 태클에 더해 심판의 반칙 휘슬이 울릴 때마다 북한 축구 대표팀 선수와 스태프들이 단체로 무관중 경기장의 진동을 그대로 실어 '벤치 클리어링' 하듯 일제히 항의하는 모습은 위협적이면서 원정팀 선수들에게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여요. 귀국 후 한국축구대표팀 주장인 손흥민 선수의 인터뷰처럼 부상 없이 무사히 떠나온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니까요. 축구팬으로서 정말 실망스럽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한 공동 올림픽 개최'라는 헛꿈을 꾸지 말길 권하고 싶네요 끝으로, 엄청난 부담감과 원정 압박감을 이겨내며 승점 1점을 가져온 태극전사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내년에 치러질 홈경기에서 천만 이상의 '붉은 악마' 모여서 실력 차이를 보여주자고요!!
98센트...식료품 배달원의 마라톤 우승화
... (일본 브랜드 네이밍, 스포츠 브랜드편 아식스/미즈노/데상트 관련 기사입니다.) 2003년 6월 22일 뉴욕타임스는 한 전설적인 마라토너의 부음(Johnny Miles, Upset Winner of Boston Marathon, Dies at 97)을 전했다. 식료품 배달원을 하다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한 조니 마일스(1905~2003)의 사망 기사였다. 존 크리스토퍼 마일스(John Christopher Miles)가 본명, 조니(Johnny)는 별명이다. 그런 그는 1926년과 1929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우승자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조니 마일스의 우승 신화는 드라마틱했다. 캐나다 광산 마을의 식료품 배달원 조니 마일즈 조니 마일스가 태어난 곳은 캐나다 동남부의 광산마을 노바 스코디아(Nova Scotia).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던 조니 마일스는 식료품 배달원을 하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10대 시절 지역경주에서 우승한 적은 있지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가지 전까지 10마일 이상을 달려본 적이 없던 그였다. 그런 그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도전한 건 1926년이다. 하지만 경비가 문제였다. 동네 사람들이 보고만 있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마일스의 이웃들은 그를 기차로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보내기 위해 수백 달러를 모았다”(Miles's neighbors raised a few hundred dollars to send him by train to Boston for the 1926 marathon)고 전했다. 98센트...초라한 운동화 신고 보스턴 마라톤 출전 뉴욕타임스는 “단풍에 고향 노바 스코티아(Nova Scotia)를 상징하는 NS를 새긴 유니폼을 입었고, 운동화는 98센트 짜리였다”고 했다. 생전 첫 풀코스였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열린 날은 그해 4월 30일.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당시 기록이나 관록으로 보자면, 조니 마일스 같은 아마추어가 도저히 우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알빈 스텐루스(Albin Stenroos)와 보스턴 마라톤 3연패의 클라렌스 데마르(Clarence DeMar)가 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니 마일스는 두려울 게 없었다. 레이스가 진행되며서 데마르가 뒤쳐졌고 스텐루스가 주도권을 잡았다. 마일스는 훗날 보스턴글로브(Boston Globe)에 당시 레이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선수들 제치고 더 위대한 우승 일궈 “나는 스텐루스를 쳐다 보았다. 그의 눈은 가라 앉아 있었고, 얼굴은 튀어 나와 있었다. 나는 그를 제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하트브레이크 힐(Heartbreak Hill)에서 나는 스텐루스를 앞질렀다.” (I looked at Stenroos and his eyes were sunken, his face was kind of pulled in and I figured this was the time to pass him. I passed him on Heartbreak Hill) 조니 마일스는 2시간 25분 40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식료품 배달원의 기적과도 같은 반전 드라마였다. 조니 마일스는 1929년 한 차례 더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제패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1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