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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건 하고 살자 - 여행편 1. 샤르드골(CDG) 공항으로 출발!

‘프랑스에서 한 달 살기’ ‘프랑스 생활’ ‘프랑스 소매치기’
표를 예매해 두고 약 25일간 검색창을 채운 키워드 들이다.

본래 한가지 행동을 하기 전에 1562837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 나로써 ‘일단 표부터 예매하고 생각하자’는 일은 사실 극히 드문 일이다. 남들 다가는데 나만 못가는 일본도, 11월에 가면 그렇게 좋다는 대만도, 셋이 떠나는 우정여행으로 여기 만한 곳이 없다는 코타키나발루도... ‘표값이 왜이렇게 비싸!? 여기 원래 5만원이면 가잖아! (그런데 없음)’, ‘아니 근데 누구는 오사카가 좋다고, 누군 후쿠오카래고.. 방사능은 괜찮은거야?’, ‘11월에 가도 덥다고~ 스치기만 해도 살인충동 200퍼래~’ 해가며 아가리 트래블링만 해온지 어언 5년...

지겹다.

사실 나도 지겹다. 그냥 표 예매해서 가서 맛있는거 먹고 시시콜콜한 얘기 해가며 사진 몇장 남겨오면 끝인것을... 무슨 연관성인진 모르겠지만 저런 시덥잖은 핑계를 대가며 뚝배기 박살날만한 굿딜이 있지 않은 이상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는 밀림의 왕 사자자리 oz는 이럴 때마다 부자이길 바랐다. 내 내공도, 지갑도, 사람도...그냥 여행 한번 가는 일인데 뭐 그렇게 재고 따질게 많은지.

설명하기 조금 복잡한데, 난 사실 설레는 일이 생기면 그 일이 실제 일어나기 전까지 기대하는 시간을 아주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병이 있는 것 같다. 아니 있다. 참을성이 없는건가? 아냐 그거랑은 조금 달라.. 일단 예매를 하고 나서 일정을 짜는 일까지 산넘어 산인데, 일정 짤때가 제일 신나고 설렌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기이이이히이이겁을 했다고 하면 어느정도 감이 오려나?

근데, 그냥 갔다. 아무 생각 없이 두 달을.

프랑스 여행 결심의 발단은 교환학생을 가는 남자친구였고, 비행기표 예매의 계기는 사무실에 멍청하게 앉아 썼던 멍청한 컨텐츠들이었고, 두 달을 있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언제 또 그렇게 가보겠냐는 아빠의 말씀이었다. 그랬다. 내 인생에 큰 획을 긋게 될지 모를, 아니 긋고 있는 일생일대의 여행을 결정하는 데에 ‘나’의 ‘생각’은 딱히 담겨있지 않았다. 굳이 있다면 그냥 ‘저분들은 왜저럴까...일하기 뭐같다...’의 감정 정도....?

사실 출국날 일주일 전까지 주변에 여행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거창한 이유 없이 오오오래 여행을 떠나는 나를 보며 “철든”사람들이 하는 철없는 소리를 내가 못견뎌 할 것 같아서. (귀가 극세사인 제가 죄인입니다..😭)

왜?

확실하게 결혼할지도 말지도 모르는 남자친구만 바라보고 멀쩡한 직장을 팽겨치고 (그렇게 비춰질 수 있으니) 두 달 간 그곳에 가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타부시 되는 행동일테니까. 스아실, 양심에 손을 얹어 보자면 나도 15% 정도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가성비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진짜 충격적인건, 내가 그들에게 여행 사실을 밝혔을 때다..
“야, 너 이시기에 남자친구 때문에 거기에 두 달을 있겠다는게 말이 돼? 돈은? 시간은? 넘쳐나?”
정말 단 한명도 이런 반응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어느 누구도....

오로지 나였다!! 최악인 사람은!!!😱😱😱

뭐 하나 하려고 하면 하여간에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면서 김칫국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 뱉기까지 난리 테크노를 추다가 제 풀에 꺾이는 한심충은 바로 나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ㄸr흐흑.. 다들 정말 나보다 더 기뻐해주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축하해주며, 사랑 때문에 가는 것은 시덥잖고 한심한 일이 아니라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멋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일러줬다. 이 말을 계기로 다시 한번 느꼈다.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돈도, 일도, 경력도 아닌 여유와 리프레시와 사랑이라는 것을! (큰 깨달음을 준 땡땡씨께 거창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래서 그냥 갔다. 아무 생각 없이 두달을.

3월 막주 출국이었고 첫주 퇴사였기에 일주일은 원기 회복 하는 데에, 일주일은 짐싸기+프랑스란 나라의 뒷조사 하는 데에, 마지막 일주일은 내가 너무 섣불렀나 불행회로 돌리며 사서 걱정 하는 데에 쓰며 전날 밤을 꼴딱 새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그냥 한번 찍어보고 싶어 찍은 혹시 모를 현금 헤헤,, 미리 준비해간 현금이 톡톡한 효자 노릇을 했다. 나중에는 환율이 갑자기 쑤욱 올라서 조마조마해가며 카드를 썼기 때문. +현금으로 쓰고 거슬러받는 동전으로 세탁을 하고, 주전부리를 사는 재미도 갱댱히 쏠쏠했다! 사실 이 재미가 제일 컸다. 10유로짜리 박박 긁어서 맥주 한캔 사먹었을 때의 그 쫴륏함이란,,!
이른아침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는 딸랑구를 위해 에스코트 자처해주신 나만의 해바라기 (쌍방임. 아니 사실 내가 더 바라봄) 아빠와 모오닝 드라이브 하며 유우우명하다는 동상 보기,, (사실 난 모름. 내가 모르면 유명한거 아니야앗~!)
대한항공 공동운항 에어프랑스 항공기를 타고 갔는데, 대한항공 줄에 서있다가, 반대편이라는 말에 대한항공 직원가족들만 사용하는 줄에 서있다가, 에어프랑스 창구로 가셔야 한다는 말에 우왕좌왕.. 일찍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헤매지만 않았어도 1등으로 짐부치고 아빠와 여유롭게 식사 했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댕청댕청 하는 바람에 커피 엣 웍스에서 커피 한잔으로 최후의 만찬을 떼워야 했다😢 불효자는 웁니다... (하지만 가배 맛 만큼은 스고이 했음)

“나 없이 심심해서 어떡해?”

진담반 농담반 던진 말. 내가 신경쓸까 괜히 더 일찍 가보겠다는 아빠 말씀에 만감 교차하며 시원섭섭한.. 사실은 조금은 죄스러운 인사를 나눈 후 게이트 앞에 앉아 기다리는 중. 사실 교환학생이며 유학이며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공항이지만, ‘나름 성인’이 되어서 ‘여행, 휴식’을 목적으로 ‘두 달’간 ‘홀로’ 떠난다는 것은 나로써도 처음이기에 이상했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상했다는 느낌이 딱이다.
그렇게 낄끼빠빠에 실패한 이상한 감정을 껴안고 탑승했다. 이상하리만치 꼭 비행기 타기 전날엔 사고 뉴스가 눈에 잘띄는 무논리 법칙에 따라서 무사착륙 염원하는 기도 한번 찐하게 올려준 뒤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간식을 서비스 받았다. (사실 저는 관심사에 술이 꼭 들어가야 하는 술쟁이입니다. 후의 게시물들을 보면 알콜 중독이 아닌가 의심을 할 수도 있음🥂최얼스-🌟)
빈속에 받아마신 샤도네로 이미 알딸딸해진 일방통행 알콜바라기 O알콜쓰레기Z는 아예 홀라당 취해서 잠이나 자자 하는 심보로, 에흐프항스의 시그니처와 같은 레드와인 한잔..한병? 한..잔만 더마시면 취할 것 같은 양의 병을 받아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서빙되기 전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책자를 받아 고르면 되는데 메인 메뉴는 먹을만 했고 디저트로 나온 까망베르 치즈와 초코무스? 같은 것이 홴쇙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물론 개취입니다)
그렇게 자다 깨다 이리 저리 모가지로 추는 브레이크 댄스를 추다 보니 11시간의 비행시간중 심리적으론 8할을 차지한다는 마의 구간에 도달해 있었다. 헐른 내려주세효 기장님 현기증 납니더.. (영화, 음악, 티비 시리즈는 비교적 선택권이 많았지만 더빙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들이면 자막이 없어서 불편하실듯 합니다)

그렇게 도착했다. 샤르드골에.

짐을 찾는 것부터 출구를 찾는 것까지, 쉽지 않았고, 영어만 할 줄 알았지 다른 것엔 젬병인 나를 옥죄여 오는 심리적 중압감은 이미 디멘터가 되어 3대까지 영혼을 쭉쭉 빨아먹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진짜 사람이 생존본능이 있는 것인지, 마치 죽기전 기지 같은 것이 발휘 되어서 ‘내가 이런걸 한다고?’싶은 행동들-예를 들면 즈으응말 처음보는 사람들한테 가서 손짓 발짓 해가며 터미널 위치를 물어본다던지, 영어가 가능한 직원을 만나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며 나좀 도와달라! 사딸라! 한다던지-을 해가며 나의 살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길길이 뛰고 다니던 와중 운명처럼 남자친구를 만났다. 마중나온 남자친구를. 내 먼 길 여행의 목적! 나의 사랑!을 유리벽 하나 두고 만나질 못해서 오첨지가 되어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며 향수냄새 대신 호르몬 냄새로 재회하게 될까 조마조마. 짐은 또 왜이렇게 안나오는지. 좌충우돌, 우여곡절, 하여간 정신없고 딱한 뜻을 갖고 있는 사자성어의 예시로 나를 보여주면 어디든 200% 들어맞을 것 같았지만, 난 어쨌든 영화 한편 찍으며 그렇게 도착했다. 그리고 만난 나의 남자친구와 재잘재잘 한시도 말을 쉬지 않는 우리는 1분간 껴안고만 있었다. 에흐에(RER)를 타고 남자친구의 집까지 가야 했기에 제일 먼저 나비고(Navigo)를 만들었다. 사진을 첨부하고 싶지만 그와 나의 곽한구와 보름달 같은 증명사진이 떡하니 붙어있는 사진을 차마 첨부할 수 없어(눈갱 지양) 손을 쓴 뒤 다음 게시물에 소개하도록 해야겠다. 어휴 아직까지 샤드골 공항 온 것밖에 못썼다니, 난 항상 주절주절 사족이 많은게 문제다😭😭😭 다음 게시물 부터는 시속 60Km 정도는 기대해 보며.. 또 만나용!

A bientot!!


1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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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속도 아주 좋아요^^
핫ㅎㅎ 감사합니다🤗🤗
글이 너무 재밌어여!!! 여행 에세이 읽는줄 알았네여 ㅋㅋㅋㅋ 저두 여행 계획짜기 너무 귀찮아하는 성격이거덩여 근데 걱정만 이빠이 많아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밤새는 스타일ㅎ 그래두 막상 가면 을매나 재밌는지 ㅎㅎㅎ 다음글도 기다릴게유~~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ㅎㅎ 공감하시는 분을 만나 반갑습니다..🤝😻
글 잼있게 잘 쓰시네요~
감사합니다☺️☺️☺️
속도 내지말아주세요. 지금 속도가 딱 재밌고 좋은데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암요. 먼 길 여행에는 뱅기에서 무료로 주는 알콜을 용량껏 퍼부은 뒤 숙면을 취하는 것이 상책이지요. 일방통행 바라기인 건 좀 슬프지만요 ㅜ.ㅜ
ㅠㅠ 밀크씨슬을 대용량으로 때려묵을까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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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 숨겨진 심리 해석.(※스포주의)
아래의 내용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쉽게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zSXYB2qGa0s 이번에 영화 기생충을 너무 재밌게보고, 심리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아서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끝까지 보시면 나의 심리적인 부분도 반추가 되면서, 영화의 가치가 2~3배 올라가는 놀라운 효과를 보실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부자, 가난, 기득권, 백인, 인디언, 노예와 같이 상반된 계층의 갈등을 대조적으로 많이 표현했습니다. 여기서는 다른 곳에서 많이다룬 해석들은 빼고, 여기서는 정신, 심리적 부분을 뽑아서 해석해 보겠습니다. 우선, 기생충은 아주 자극적이고 협오스럽고 추악하고 더럽지만, 호기심이 생기는 종류의 단어입니다. 다른 동물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먹는 속성을 지니는데, 심리적 의미는 '의존하려는 경향'으로 표현 가능합니다. 이것을 바꿔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은 모두가 '기생'하는 것으로 삶을 시작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부모에게 기생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가정환경, 생활방식을 가지게 되지만 결국 처음 시작은 같은 동물입니다. 영화에서도 지하벙커나 상류층이나 콘돔으로 상징되는, 그리고 쇼파신에서 나오는 내용이 결국은 같은 원초적 욕망을 지닌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치 숙주와 기생충이라는 마치 서로 다른 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숙주가 잘났고 선이고, 희생하고 한쪽이 피빨아먹는 악인것 같지만 사실 하나같이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같은 목적을 두고 있는 같은 생명체일 뿐입니다. 방식이 다른 것일 뿐입니다. 이 영화가 걸작인 이유는 수많은 상징적 표현에 있습니다. 특히, 역할이 상징하는 바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투사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원인을 돌리는 것을 투사라고 하는데, 이 영화는 모든 계층의 사람에게 투사가 일어납니다. 자신의 현재 상황에따라 계급과 역할 기질 성격이 투사됩니다. 예를들어, 기득권층의 경우 조여정이나 이선균 가족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그 송강호 가족에게 자신의 모습이 투사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느끼고 해석한 내용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점, 모든 관객에게 다르게 다가갈 영화라는 점이 정말 대단한 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치유적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고, 이 부분을 생각하시면 아주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 나온 배역, 등장인물들 중에 나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누구에게 가장 감정이입이되고 동일시되는가?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가진 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돕기 위해 인물 속 심리를 몇가지 살펴 보겠습니다. 우선, 이선균과 송강호의 대립입니다. 이선균은 사람을 계급화시키고 선을 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자신은 기생충과는 숙주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송강호는 이선균을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라 생각하며 자극합니다. "사랑하시니까 그렇겠지요.." 라며 사랑의 진실성을 건드립니다. 여기서 아무리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려해도 불가능한 것이 바로 냄새입니다. 마치 똥을 아무리 좋은 상자에 포장을하더라도 냄새는 숨길수없다는 것이고, 즉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아무 계획없고 우유부단해 보이던 송강호는 결국 계획과는 달리,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선균을 찔러 죽이게 됩니다. 냄새를 혐오하는 이선균의 위선적 반응이 가슴에 칼을 꽂는 일종의 방아쇠가 됩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한데, 송강호에게도 계획에 없던, 자신도 모르게 욱해서 나온 반응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그동안 조금씩 감정적인 억압이 계속 생겼다는 것이고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계속 축적되다가 무의식이 발동하는 참기 힘든 순간인, 자신의 딸이 죽게되는 상황(위기)과 위선성에 대한 자극(불씨)으로 억압이 표출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숙주의 죽음은 곧 기생충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 역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린 행동입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기게되면, 누군가 선을 넘으면 자신이 죽더라도 우리는 분노하고 싸우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성적이 아닌 감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선균의 가족은 외면적 허영,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삶을 상징하고 송강호 가족은 억압된 욕망, 원초적이고 솔직하지만 추악하고 더러움을 상징합니다. 이는 융이 이야기한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형상을 띄고 있습니다. 사회적 가면이 팽창된 삶을 사는 이선균가족과 억압된 욕망이자 원초적, 사회적억압으로 무시당한 그림자의 모습을 하는 송강호가족입니다. 실제로 지하의 어두운 모습이 그림자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가 팽창되면 자신의 근원적 욕망인 그림자를 억압해서 가식적이 되고, 즉 자신을 속여야 하고 반대로 그림자만 팽창되면 솔직하지만 사회에서 올바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실제로 양쪽 부부관계에서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부부와 너무 솔직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송강호 가족은 '타이틀'은 없지만 모두가 능력자들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실력은 있지만 그것을 증명할 사회적 지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영어와 미술과외, 기사, 가사도우미 각각의 역할은 누구보다도 잘해내는 모습인데, 이것이 욕망은 있고 사회적 가면이 없는 그림자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석은 가난과 부,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연결하는 상징입니다. 페르소나에 접속할수있는 그림자의 기회인데, 수석은 자연을 돌에 축약해서 표현한 것이고 그것을 이룰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석을 통해 서로를 연결하려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실패, 하나의 돌덩이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의 통합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박소담은 술을 먹고서야 자신때문에 일자리 잃은 사람들 걱정하지 말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솔직한 속내를 말합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는 작위적인 천재성을 인정받는것에 반해, 자신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것이 대조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려는 딸의 구조는 심리상담에서도 많이 나오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특히, 반전으로 나오는 파출부 남편은 지하벙커에서 4년반동안 살며, 오히려 여기가 원래 내집인것 같으니 여기서 더 살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는 고통일지라도, 주체성을 완전히 상실하더라도 인간은 출구를 원하는 모습입니다. 아프고 고통이라도 그것이 출구라면 사람은 익숙해지고 거기서 나올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노숙자에게 기회를 주더라도, 원래 생활로 돌아가게 되고, 감옥에서 나오더라도 다시 들어가고 싶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주체성과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다시 생성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움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기우의 웃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찰리 채플린이 말한 것처럼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라는 것을 말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수석으로 머리를 얻어받고 정신차려서 보니, 이 모든 상황이 코미디인것입니다. 의사같지 않은 의사라는 표현에서 가난, 부, 페르소나, 그림자 이 모든 대립이 누가 기생충이고 숙주인지 모를 그 대립이 하나의 코미디로 느껴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선을 그으며 삽니다. 그것이 터부이기도 하고 사회적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 원칙을 정하고, 즉 선을 긋고 선을 넘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 내면의 욕망은 항상 그것을 넘고자 한다. 선은 곧 금지이자 금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막으면 막을수록 그것을 얻고자하는 욕망은 더 커지게 됩니다. 실제로 기생충은 숙주의 마음을 조종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알을 퍼트리기 위해 자신의 숙주가 다른 상위 숙주에게 잡아 먹히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에서 나온 숙주와 기생충의 대립, 그 안에서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지켜야 할 선, 하지만 결국은 그 금지된 선은 욕망으로 인해 넘어서게 되고 그것은 서로를 죽이기도 성장하게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등장인물속 누구와 가장 많은 동질감을 느끼시나요? 그리고 나의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서로 잘 소통하고, 둘다 수용하고 있나요? 볼수록 매력적인 기생충 영화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통해 더 풍성한 이해과 감동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팝의 황제 이야기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 대중음악의 주류는 엘비스에서 비틀즈로 대변되는 소위 '백인' 음악이었습니다. 로큰롤과 팝으로 대표되는 음악들은 악기연주위에 목소리를 얹는 귀를 만족시키는 '듣는 음악' 이었죠.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으로 인해 모든 것이 뒤바뀝니다. 백인과 흑인의 음악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며 인종을 뛰어넘는 음악이 등장했고, 난생처음 보는 움직임까지 더해 대중들의 귀 뿐만 아니라 눈까지 만족시키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합니다.  1958년 8월 가난한 흑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가정부였던 어머니와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작고 열악한 집에서 학대를 일삼는 아머지가 계셨고, 너무나 많은 형제와 함께 자랐습니다. 특히 아버지 조 잭슨은 앞으로 일어날 마이클의 모든 일생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마땅한 직업이 없었던 아머지는 전전긍긍하며 일을 하는데 그 중 밴드생활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죠. 이 밴드활동에는 성과는 없었지만 잭슨가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마땅히 놀 장난감이 없었던 아이들은 아버지가 밴드를 하던 당시 사용했던 악기들을 가지고 놀게되죠. 잭슨 형제들, 특히 마이클은 음악에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조 잭슨은 잭슨 브라더스라는 가족밴드를 기획해 거의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아이들에게 시키게 됩니다.  이들 밴드는 마이클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활동하며 스트립 클럽에서까지 공연을 하고, 마이클이 9살되던 해에 <Big boy> 라는 곡이 발매되어 자기 곡을 가진 밴드 잭슨 파이브가 되는데요.  1969년 잭슨 파이브는 지방레코드사를 거쳐  '모타운'이라는 메이저 흑인음악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순식간에 유명세를 탑니다. 마이클은 이 과정속에서 어딜가나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잭슨 파이브 팀내를 넣어 동시에 가수 누구보다 주목을 받았고, '모타운'은 이러한 마이클에게 반하죠.  그래서 데뷔 1년동안 싱글 네 개를 내어주고 잭슨 파이브를 모타운의 간판으로 내세우게 되었죠.  잭슨 파이브는 <I want you back>,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으로 이어지는 네개의 싱글을 모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리며 모타운의 기대에 부흥합니다. <I'll be there>은 차트 1위를 5주동안 기록한 초대박 성과를 이뤄낸 곡이 됩니다. 마이클은 잭슨5와 더불어 솔로 활동도 펼치고 다니게 되죠.  <Got to be there>이라는 앨범으로 솔로 데뷔한 마이클은 <Ben>으로 빌보드 1위에 오르며 고작 12살이라는 나이에 본인 자신만으로도 최고의 상품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냅니다. 그러나 마이클에게는 이런 가족의 성공 가도가 달콤하지만은 않습니다. 아버지로인해 음악하는 기계로 살아야만 했죠.  또한 밴드의 성공은 아버지와 마이클의 형들이 방탕한 삶을 살도록 했고, 어린나이에 그런 것들을 지켜보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절을 보냅니다. 또 어린나이부터 시작한 활동과 유명세 때문에도 학교도 다닐 수 없었죠. 동년배들이 학교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던 유년시절 외로운 기억은 마이클잭슨의 평생 트라우마가 됩니다.  유년기를 지나 마이클의 첫 성인 커리어는 1979년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함께 시작됩니다. 마이클은 첫 성인솔로를 준비하며 그가 출연했던 영화 작업 중 만난 퀸시존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첫번째 홀로서기 앨범이었던 <Off the wall>은 미국에서만 800만장, 전 세계적으로 2천만장이 팔리며 대성공을 합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만족하지 못하죠.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였고, 평론가들의 찬사도 이어졌지만 그래미에서의 무시, 롤링스톤 표지모델 거절 등 백인 중심의 주류 음악계에서 그는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인종 문제에서 비롯된 이러한 차별은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과는 별개로 음악에 대한 욕심과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었던 마이클에게 독기를 품게 만들었죠. 그는 결국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을 만들어 냅니다. 1982년 마이클 잭슨의 두번째 앨범 <Thriller>는 인종차별에 독기를 품은 마이클의 의도대로 백인,흑인의 음악경계를 무너뜨리며 전 세계 6500만장 이상 팔리게 되죠.  이는 어느정도였냐하면 기네스북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등재될 정도였습니다. 이 음반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다른앨범까지 구매하면서 그 해의 음악 산업 자체가 성장했을 정도로 큰 획을 그은 앨범이 됩니다. 앨범에 수록된 거의 모든 트랙이 차트 정상 및  상단에 올랐고, 평론가들의 찬사는 물론 본인이 염원했던 그래미와 롤링스톤의 표지까지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키는데요. 1983년 5월 모타운 기념방송 공연무대에서 선보인 그의 무대는 말 그대로 음악의 역사가 바뀌는 현장이됩니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중절모와 자켓, 그리고 흰 장갑을 끼고 등장한 마이클잭슨은 화려한 춤과 문워크로 전세계를 뒤흔들게 됩니다.  이 무대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봐도 촌스러움이 없고 완벽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무대를 선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부터 대중 음악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여 춤이라는 요소가 공연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고, 음악은 단지 듣는 것에서 보고 듣는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앨범은 음악계 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죠.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을 펼치던 MTV는 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골든타임 대에 마이클잭슨의 영상을 틀었고, 흑인 연애인들이 거의 나올 수 없던 Tv채널이나 라디오에서 마이클의 음악과 영상들이 나오면서 흑백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후에도 마이클은 <Bad>, <Dangerous>, <History>등의 앨범을 남깁니다. 앨범의 모든 트랙이 완벽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대로 각각의 앨범은 4-5년이 걸릴 만큼 긴 시간을 두고 발매되었죠. 역대급이었던 <Thriller>만큼의 히트는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그의 이름값에 걸맞는 성공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언제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연예인 마이클 잭슨의 유명세는 자연인 마이클잭슨의 삶을 점점 파멸로 이끌게 됩니다.  그가 움직이는 모든것이 화제가 되고, 등장하는 모든 매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다보니 언론은 자극적이고 근거 없는 루머들을 무차별적으로 생산해 내기 시작했죠.  가장 대표적인 루머는 마이클의 피부색과 외모에 대한 것이었는데 언론은 점점 하얘지는 그의 피부색과 날카로워지는 외모에 대해 '마이클 잭슨이 백인음악을 하는 것을 넘어 백인이 되고 싶어한다'라며 끊임없이 기사화를 시킵니다. 사실 그의 피부는 백반증이라는 질병이었고, 코와 턱의 성형수술은 어린시절 아버지 조잭슨의 얼굴에 대한 폭언과 폭력으로 생긴 외모 콤플렉스였습니다. 이런 무차별적인 루머들은 3류 타블로이드지뿐 아니라 주류 언론에서도 다뤄지며 세상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오해를 심어주게되고 이 밖에도 그가 사는 네버랜드에 관한 근거없는 이야기를 이용해 마이클 잭슨을 미친 마이클잭슨 'Wacko Jacko'로 칭하며 그를 현실과 분리된 존재처럼 만들어내죠. 그를 괴롭힌건 언론뿐만이 아니었죠. 엄청난 부를 이룬 그는 많은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었는데요. 마이클이 호의로 초대한 어린아이의 아버지는 그를 소아추행범으로 고소했고, 헐리우드의 악덕 변호사들과 손을 잡고 마이클을 괴롭힙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약물을 사용해 진술을 바꿀만큼 비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 사건은 1500만달러의 합의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죠.  합의라는 명분때문에 아직도 마이클잭슨을 소아성애자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고 LA아동 복지국의 조사 결과도 잭슨의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되죠.  이후에도 그는 또 다른 어린아이의 성추행에 관한 재판을 다시 한번 겪게 됩니다.  두번째 사건도 마찬가지로 마이클의 혐의에 대한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는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마이클은 수색과정에서 알몸수색을 당하고, 타블로이드지의 보도를 기정사실로 가정한 수사당국의 압박을 받기도 하는 등 큰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되죠.  특히 유년시절을 통째로 잃어 버려 어린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이클잭슨의 순수한 마음에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 것에 대한 괴로움은 그를 결국 불면증에 시달리게 하고, 약물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불면증으로 인한 약물 의존은 훗날 그를 사망까지 이끄는데요. 2009년 6월 그가 사망한 자택에서는 매우 많은 양의 프로포폴 병이 발견되었죠.  그리고 그를 괴롭히던 언론과 대중들은 그가 죽고나서야 루머를 멈춥니다.  어린 나이부터 단 한번도 최고의 자리를 벗어난 적 없던 마이클 잭슨,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그가 썼던 왕관의 무게가 얼마나 가혹했을 지 상상이 가지 않는데요.  아직까지 제 2의 마이클 조던이 나오지 못한것처럼, 여전히 팝의 제왕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이클 잭슨. 언젠가는 그의 아성을 넘어뜨릴 또 하나의 레전드 아티스트가 나올 수 있을까요? 펌) 출처 정말 순수했던 사람... 너무 힘든 삶을 살다 갔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고 있기를 바라오.
위급 상황인데 제가 지금 어딘지 위치를 설명을 잘 못하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세 단어 주소(What3words): 지도의 혁명, 3개의 단어로 목숨을 구하다 혁신적이고도 조난 상황 등에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미래의 주소 체계, What3words를 소개한다 단 3개의 단어가 사람을 구했다. 조난 상황 등에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혁신적인 미래의 주소 체계, '세 단어 주소(What3words)'를 소개한다. 세 단어 주소(What3words)란? 이 앱은 극도로 정확한 위치 파악이 필요한 상황에서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What3words는 전 세계를 57조 개의 정사각형(3m*3m)으로 나눈다. 그리고는 사각형마다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3개의 단어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강남역 7번 출구에서 계단을 올라오면 보이는 3m x 3m 정사각형 땅의 명칭은 '허리띠, 좋다, 심판'이다. 그 바로 옆 신한은행 옆 정사각형 땅의 명칭은 '좋겠다, 검토, 약속한'이다. 굳이 단어를 이용해 주소를 세분화한 이유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앱은 극도로 정확한 위치 파악이 필요한 상황에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수욕장 한가운데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구급대원에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밭으로 와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아마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확한 위도, 경도를 파악하기란 신고자에게도, 구급대원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What3words는 기억하기 쉬운 3개의 단어 조합으로 아주 정확한 위치를 만들어냈다. 사람을 구했다. 얼마 전 4900에이커(2000헥타르)의 광대한 숲 속에서 길을 잃은 한 커플이 이 앱을 통해 구조될 수 있었다 얼마 전 4900에이커(2000헥타르)의 광대한 숲 속에서 길을 잃은 한 커플이 이 앱을 통해 구조될 수 있었다. 둘은 산속에서 밤새 비를 맞으며 길을 헤매던 중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들판에 있었는데 저희 위치가 어디인지 전혀 감이 안 왔어요." "엄청나게 두려웠어요. 울음이 날 것 같아서 억지로 농담을 하고 웃었지만요." 전화를 받은 구급대원은 이들에게 What3words 앱을 내려받으라고 요청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어요." 앱을 내려받자마자 3개의 단어를 알 수 있었다. 'Kicked-Converged-Soccer(차이다-모이다-축구)' 산악구조팀은 해당 단어를 토대로 커플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고 이들을 빠르게 구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커플은 이제 만나는 모든 사람에 앱 내려받기를 권유하고 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다운로드를 권유하고 있어요." "언제 어떻게 길을 잃고 필요해질지 모르는 거니까요." 이 앱의 개발자 크리스 쉘드릭은 영국 시골 마을에 산다. 그가 사는 전원마을 허트포드쉐어는 우편번호가 정확하지 않아 택배, 우편물 등이 잘못 전달되는 상황이 많았다. 쉘드릭은 배달부가 길을 잃는 상황에 길가로 나가 깃발을 흔들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말했다. "우편번호가 저희 집이랑 달랐어요." "다른 주민의 우편물을 저희가 받는 일도 익숙했죠." "사람들에게 위도 경도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귀에 잘 안 들어왔나 봐요." "그래서 생각하게 됐죠. 이 16개의 철자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친근하게 만들 수 있을까?" 쉘드릭은 배달부가 길을 잃는 상황에 길가로 나가 깃발을 흔들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말했다 "어느 날 한 수학자와 만나 이야기하던 중에 3가지 단어로 세상의 모든 위치를 세분화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단어 4만 개면 충분했다. 그는 2013년 4만 개의 단어로 세상을 조각내는 데 성공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된 이 회사는 현재 런던 북부에서 100명의 직원을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들판이 많은 몽골은 벌써 국가 차원에서 what3words를 우편배달 서비스에 적용했다. 여행 서비스로 유명한 론리플래닛 역시 유명 관광지에 what3words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회사 메르세데스-벤츠는 차량 시스템 내에 35개 언어로 what3words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 응급서비스의 윌키스 대원은 "헷갈리는 점들을 다 배제해준다"고 말했다. "서비스를 훨씬 효과적으로 만들어줘요." "너무 조급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일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문제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구조대는 앱이 없는 경우 문자로 링크를 보내는 방법 등을 사용한다. 신호가 잡히지 않는 오지여도 괜찮을까? 한국에서도 카카오맵에 What3words 기능이 도입되어 사용할 수 있다 예전에는 신호가 있어야만 앱을 사용할 수 있어 4G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앱을 활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What3words는 이 점을 보완해 무선 신호가 없어도 위치 단어를 파악할 수 있다. 미리 다운로드만 해둔다면 무선 통신 없이 3개 단어를 조회할 수 있다. 사우스 요크셔 경찰은 최근 영국 셰필드의 한 65세 남성이 철로 근처에 추락해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What3words를 통해 구조를 요청한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사고가 난 여성 운전자의 위치를 파악해 구조하거나 납치되었던 여성이 3단어로 위치를 알려서 사건이 해결된 사례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카카오맵에 What3words 기능이 도입되어 사용할 수 있다. [카카오맵APP] what3words 기능 카카오맵 반영 ㅊㅊ 더쿠 와 모야.. 신기하다.. 이 앱 진짜 신박하지 않음? 미국같이 땅 큰 나라들은 하이킹 갔다가도 조난 당하는 경우 많던데 진짜 유용하겠다 등산러, 낚시러, 캠핑러 등등 야외 활동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필수로 알아둬야 하는 정보인 것 같아서 퍼왔음 ㅇㅇ 사람이 언제 어디서 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파리일기_그리고 어제 오후 3시쯤 B2 합격증을 받았다
https://youtu.be/wZkjl7Mwi_U 파리에 온 지 1년 하고 40일이 지났다. 지난 10월에는 거의 매일처럼 비가 내렸고 해가 온전히 든 날은 손으로 다 꼽을 수 있을 정도뿐이었다. 빨래가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작년에는 어떻게 했었지 생각을 해보다가 일 년이라는 시간이 어떤 기념도 없이 홀연히 지나갔음을, 계절이 침 발라 넘기는 미용실 잡지의 페이지들처럼 몇 가지 색깔만 보여주고서 왼 허벅지 위에서 툭하고 뒤집혀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비에 젖어 떨어진 낙엽들은 바스락 소리도 없다. 비로 쓸어도 쉽게 쓸리지가 않아 미화원들은 강풍기을 들고 다니며 여름의 흔적을 길가로 밀어낸다. 한 번의 빗질에 양말마다 머리카락이 또 가득이다. 방을 빙빙 돌며 테이프를 찍찍이는 엄마는 매일같이 덧창 너머에서 부지런하다. 어느 정도는 죄책감이 무거운 아침을 들어 열고 겨울이면 방향을 잡아 앵글 안으로 잘도 들어오는 붉은 해에 감탄을 한다. 아 오늘은 어김없이 수업을 가야겠구나. 어느새 우리의 창을 가려주던 나무는 내밀한 제 덩치를 들어내고서 옷걸이처럼 우리의 눈을 긁어댄다. 사랑하는 이들만 아는 베기는 어깨, 힘을 놓기 미안한 갈비뼈, 그 앙상한 스케치. 몇 차례나 갱신한 신분증에도 롤로 말아 부풀린 풍성함들 사이로 팔을 넣어 만지면 놀라 조금은 슬프던 작은 내 사람. 겨울은 더 작게 견뎌야 한다. 바꾸지도 않는 침대는 자꾸 커져만 간다. 경계가, 우리와 남이 고무장갑에 자꾸 구멍을 내는 식칼처럼 느껴지던 우주 같은 어젯밤.  서머타임이 끝나지 않았을 때는 8시가 되어도 해가 다 뜨지 않아 새벽 같은 거리를 삐죽 나온 입을 마스크 안에다 넣고서 한 발쯤 앞서 걷는 그를 따라 학교에 가곤 했었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오면 그제야 아침다운 빛이 아이들의 곱슬머리 속으로 숨고, 아이들은 날개같이 등을 가로지르는 사각 가방을 메고서 아빠나 엄마의 손을 잡고 학교로 총총이며 걸어간다. 나처럼 칭얼대는 애는 없네.  2시간의 수업에 12번도 넘게 핸드폰을 두드려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흐부아, 제일 경쾌한 프랑스어, 계단을 내려왔을 때 누군가가 길에 잠시 세워둔 샤리오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고 있을 때면 짧지만 그래서 유난히 하얀 이곳의 낮 빛이 연출하는 지독한 콘트라스트에 배고픔에도 빠른 추위에도 몇 호흡은 서서 뭔가를 바라보곤 해야 했다. 같은 하늘을 다른 내가 보는 것, 다른 하늘을 같은 내가 보는 것, 아니 같은 하늘을 같은 내가 달리 보는 것. 투덜대며 끌려가던 수업이 1달 반도 못 견디고 다시 중단되었다. 일일 확진자가 수가 천 단위라니 하며 놀랐는데 1만, 2만을 금세 넘어서더니 10만을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긴 여름밤만큼 쌓인 설거지 거리가 우리를 다시 서로의 좁은 방으로 갈라 넣었다.  이동제한이 다시 실시되기 직전에는 이슬람을 풍자한 만화를 두고 프랑스가 무척 시끄러웠다. 몇 번의 테러가 있었고 죄 없는 사람들이 죽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마우스로 색을 뒤집으며 읽어 보던 텍스트가 가까이 비명을 만들고 총소리를 내고 울음과 외침을 만들며 내 신경 주위에서 움직거렸다. 쉬웠던 판단들도 이제는 무엇 하나 쉽지가 않다. 인종차별과 종교 갈등, 파업, 빈부격차, 이민자, 난민, 전염병 많은 것들이 놀라도록 내 어깨를 툭툭 치는데 나는 아무런 말도 못 정하고서 내일이면 까맣게 잊을 단어들만 외우고 외웠다. 지난해 겨울, 어학원의 껌껌한 계단을 올라 벽처럼 은신한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상형 문자 같던 레벨 테스트 시험지를 빈 페이지처럼 써내고 선생님과 어색한 웃음만 주고받았었지. 봉쥬흐는 알고 쎄 비자는 모르던 우리는 ABC 바로 뒷페이지에 앉아 축축한 겨울과, 기나긴 파업, 그리고 전염병, 이동제한, 시위, 테러 등 프랑스어가 아니래도 새로웠을 단어들을 반복으로 배우며 학교를 갔다가 학교를 못 갔다가 하며 1년을 보냈다.  말 하나 좀 하는 걸로 지금껏, 노래방에서처럼 가끔 스스로 취하고 가끔 주위에게 박수도 좀 받으며 살고 있었는데 사계절을 옹알이만 하며 발가벗겨진 채로 살아야 했다. 말이 없는 나는, 말 하나 제대로 못 하는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말재주에 가려진 나의 초라한 밑천들에 밤마다 이를 깨물었다. 그러다 보니 신경이 다 상해 파리에서 치과도 가봐야 했다.  무엇도 아닌 내 맘도 아닌 문장들을 말하고 쓰기 위해서 1년을 평생 한 것만큼 공부를 해야 하다니, 답답했고 억울했고 무엇보다 체력이 부쳤다. 간단한 문장이 목에 막혀 아이 같은 말만 뱉고 나면 붉어진 얼굴을 잠시 고개 숙여 감추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라서, 할 수 있다며 또 11월에는 대학 지원 필수 조건인 B2를 꼭 따야 한다며 늘어진 내 손을 잡아 끄는 장군님 덕에 그럭저럭 몇 권의 책들을 폐지로 내려 보냈고 드디어 지난주에는 속으로는 무리인데 자꾸 되뇌면서도 엠마의 옆에 앉아 B2 시험을 치러 잔다르크가 화형을 당한 루앙으로 갔다. Attestation을 들고 이동제한 직전에 기적처럼 발급받은 머그샷이 박힌 체류증도 손에 꼭 쥐고서 취소된 끝에 학생들의 요구에 재개된 시험을 치러 취소되어 더 비싸게 끊은 TER 기차를 타고 해 질 녘의 센 강 옆을 빨갛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위치만 보고 고른 방은 중앙등이 나가 캄캄했다. 두 번을 내려가서 부른 주인아저씨는 쿠스쿠스를 만들고 있었다며 급한 기색 하나 없이 여유롭게 걸어 올라오더니 또 내려가서 콩알만 한 전구만을 가지고 올라왔다. 키가 무척 큰 북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팔을 빙빙 돌려 어깨를 풀더니 내가 잡아주는 의자 위에 올라 아슬하게 닿았다가 멀어지는 램프를 검지와 중지로 간신히 달래 갈아 끼웠다. 그러게 별 볼품없는 방이 천장은 왜 이렇게 높은 거지? 비현실적으로 물러나 있는 천장 아래에서 우리는 도무지 잠을 못 이뤘다. 알람도 필요 없이 일어나 앉은 아침, 찬물에 탄 커피를 페이퍼처럼 마시고 시험을 치러 갔다. 우산도 없는데 비까지 내렸고 코로나 때문에 대기실까지 닫아 놓아 우리는 건물 밖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다. 약 1시간의 말하기 시험을 문법을 만들어 가면서 겨우 뭐라도 뱉어 내고 와선 이동제한으로 닫힌 거리에서 갈 곳이 없어 루앙 역 벤치에 앉아 오후 시험을 기다렸다. 오후 시험은 읽기, 쓰기, 듣기 총 2시간 30분 간의 시험이었다. 편하게 보자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니 내년에 또 보면 되지 했던 마음들이 시험을 보면서 이번에 꼭 붙어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시험이 내용도 그렇지만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이거 두 번은 못 보겠다 싶었다. 마침내 볼펜을 내려놓고 엠마와 서로가 써낸 답이 잊어혀지지 전에 맞춰보자며 서둘러 시험장을 나와 골목을 한 바퀴 돌았다. 걸음마다 지난 1년이 채여 신기해하면서 축축한 바닥에 비치는 서로의 얼굴을 향해 걸었다. 멀리 루앙 대성당의 첨탑이 보였지만 이동제한 중이라 가 보지는 않았다. 합격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루앙으로 다시 여행을 오자 하곤 백 년이 넘었다는 빵집에서 산 샌드위치를 공원에서 대충 씹어먹고 채한 속을 붙잡고 파리 행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어제 오후 3시쯤 메일로 B2 합격증을 받았다. 합격점수를 넉넉히 넘긴 엠마와 달리 나는 딱 0.5점 차로 간신히 합격에 턱걸이를 했다. 한두 시간 실감이 안 나서 이게 정말 합격 점수가 맞는지 합격증은 정말 이렇게 생긴 것이 맞는지 괜히 인터넷을 어슬렁거렸다. 한 문제를 더 틀렸다면 후 하며 아찔함도 굳이 몇 번씩 불러와 공연을 했다. 0.5점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년에 무엇을 해야 했을까. 여전히 파리에 남아 어학원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을까... 아니면... 내년의 내가 무엇을 시작하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희극의 장치 같은 이 0.5점을 몇 번이고 꺼내 얘기 하겐 되겠지. 그래도 시간은 밑 빠진 독에도 뭔가를 담아낸다. 단어가 모이면 문장을 꿈꾸고 문장이 모이면 꿈꾸는 사람을 불러낸다.  파리에 온 지 벌써 1년 하고 40일이 흘렀다. 마무리가 있는 한 해는 정말 오랜만이라고 슬며시 혼자 웃어도 본다. 글, 이미지 레오 20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