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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리의 진실, 평균의 함정

칼로리의 진실, 평균의 함정 우리가 알고있는 칼로리를 만든 사람은 독일사람이다. 우생학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독일이다. 우유나 소고기를 식품의 표준으로 만든 것도 독일이다. 한국이 쓰는 마블링에 따른 품질기준은 우리만 쓴다. 사실상 모든 식품과 산업의 기준을 만든 것은 유럽이다.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도 우유를 많이 먹게 만든 것도 다 유럽의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된 일이다. 설탕은 사탕수수에서 추출했고 그것도 노예로 플랜테이션 산업을 하던 자본가들이 시작한 일이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먹는 현대의 식품군들은 대부분이 다 근대에 와서 자본에 의해 재편된 것들이다. 코카콜라는 바로 그 상징이 아닌가. 설탕, 육식, 우유에 중독되어버린 현대인은 쉽게 살이 찌고 비만에 빠진다. 거기에 헬스산업은 다시 미국에서 시작되어 보충제산업으로 확장된다. 칼로리 기준에 의한 열량계산법은 대중을 평균의 함정에 빠뜨린다. 똑같이 먹어도 살이 잘 찌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 그것은 소화력과 활동량 때문이지 칼로리 때문이 아니다. 똑같은 칼로리라도 식품의 종류와 본인의 소화력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까 다이어트의 기준은 본인의 소화력과 활동량이지 칼로리가 아니다. 우유는 서양인에게 적합하다. 동양인에게는 우유를 소화시킬 효소가 적다. 굳이 배탈나가며 우유를 마실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고기많이먹는다고 그게 다 근육으로 가는게 아니고 지방으로 변하던가 배출된다. 그게 소화력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지방세포의 수는 유전도 된다. 분명히 잘 찌는 사람과 안 찌는 사람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안먹고 절제하면 되지만 그게 어디 쉽던가. 다이어트는 본인의 상태에 맞게 적당하게 조절되어야 한다. 소식하는 것도 과식하는 것도 둘 다 위험하다.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하루 세끼를 나눠서 위의 부담을 줄이고 필요한만큼만 먹으면 과식을 하려야 할 수가 없고 적당한 운동량이 확보된다면 굳이 칼로리 계산하고 절제해가며 소식을 할 필요도 없다. 원푸트 다이어트나 극단적인 섭취량 감소는 골다공증을 유도한다. 사람이 에너지를 쓸 때는 음식, 근육, 장기, 뼈에서까지 빼서 쓰는데 골다공증이 유발될 정도면 이미 심각한 상태다. 피는 뼈의 골수에서 생성되는데 원활한 조혈작용이 되지않으면 빈혈이 되고 신체 전반의 순환, 면역, 회복체계에 문제가 발생한다. 식품군은 유럽에서 들여오고 먹는 것은 서양인에 맞추고 식단군은 이상하게 조합하기 시작하면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밥은 적게 먹고 샐러드와 고기를 먹으면서 과자와 밀가루를 먹기 시작하면 당연히 변비에 걸리기 쉽다. 기준은 간단하다. 그 식품이 자연식품이냐 화학식품이냐의 차이다. 자연식일수록 분해가 잘되고 화학식일수록 분해가 잘 안된다. 이제는 상식이 되었지만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로 굳이 나누면, 탄수화물이 주에너지원이다. 힘을 쓰려면 밥을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이고 사실 밥만 먹어도 근육은 붙는다. 작은 사실과 차이들이 무시되고 그대로 수용되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다이어트하는 여성들은 너무 적게 먹고 남성들은 너무 많이 먹는다. 운동량으로 조절하는게 아니라 먹는걸로 조절하려든다. 또 반복하지만 하루에 근육이 몇 kg이나 증가할까? 지방은 또 몇 kg이나 빠질까? 다이어트는 효율의 문제이지 식단의 문제가 아니다. 변수를 잘못집어넣고 함수를 풀면 문제가 풀릴까? 식단은 상수지 변수가 아니다. y=ax+b가 운동식이면 식단은 상수b지 변수a가 아니다. 변수는 효율이지 식단이 아니다. 적당히 골고루 먹으면 식단은 신경쓸 필요가 없다. 식단의 적정량을 정해두고 본인에 맞는 건강식을 찾는게 중요할 뿐이다. 선수들은 체중감량을 위해 수분으로 단시간에 몇 kg을 뺀다. 몸에 수분이 70%니 당연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방식은 당연히 극단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사람의 몸은 호르몬과 면역과 순환에 의한 정교한 체계지, 단순히 기름넣고 엔진출력으로 달리는 자동차나 기계가 아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칼로리나 화학식으로 계산해서 그대로 평균을 내고 일반화해서 개인의 신체를 표준화할 수 있는게 아니란 소리다. 그렇게 하면 딱 정중앙의 표준을 빼고 양쪽은 다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통계에 정규분포라고 있다. 지금과 같은 식이면 양쪽의 꼬리쪽은 생명에 위험을 초래한다. 거식증, 고도비만,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내가 말하는 정상은 자연스런 건강상태지 평균빼고 다 비정상인 지금의 잔혹한 기준이 아니다. 본인의 골격이나 체질, 신체에 따라 체중이 정해지면 되는 것이지 나는 몇 kg이 될거야. 그게 아니면 비정상이야 비만이야 잘못된거야가 아니란 소리다. 건강식품을 팔아먹는 것도 결국은 산업이다. 살찌게 만들고 살빼라 강요하는게 자본주의의 식품산업이다. 그걸 위해 필요한게 칼로리 기준법이다. 그걸로 사람을 줄세워야 말을 들을게 아닌가. 평균의 함정에 빠지지 마라. 칼로리 계산안해도 여러분은 정상이다. 필요없는 고민에 스트레스받고 또 먹는걸로 푸는게 이게 뭔 시츄에이션인가. 그냥 맛있으면 먹고 달리면 된다. 그냥 걷고 달리면서 잘 먹으면 된다. 평균은 수학풀 때나 써라.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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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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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방법과 부상
운동방법과 부상 사실 어떻게 하면 다치고 어떻게 하면 다치지 않는지를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없다. 나는 한국합기도로 무술을 시작했는데, 아무리 손목을 꺾여도 기술은 늘지 않고 아프기만 했다. 그런데 한 동기의 손목을 보고 문제를 깨달았다. 그 친구는 손목이 굉장히 유연해서 어지간히 돌려도 아파하지를 않았는데, 그걸 보면서 무술의 특성과 개인에 따라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이 차이를 확장하면 애초부터 운동과 무술은 종목에 따라 개인의 한계가 정해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종합무술과 종합격투기가 나와 발전적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내가 시작할 때는 어느 무술이 더 세냐 가지고 무던히 고민했다. 참으로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운동에서 개인의 한계를 인정하면 사고와 방법에 혁신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굳이 안되는 걸 억지로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뼈도 얇고 몸도 약해서 무리한 운동을 견딜 수가 없다. 덕분에 정신력만 강해졌지만,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과 싸한 통증을 달고 살며 자신을 학대하듯이 운동을 지속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정신력을 키운대도 굳이 부상을 입고 몸을 혹사해가며 단련할 필요도 없다. 더 강해지고 더 효과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걸 직접 경험하고 실험해가며 찾았으니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지만, 그 덕에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부상은 방지했다. 먼저 어디를 잘 다치고 어떤 과정으로 부상이 발현되는지 보자. 간단히 말해, 관절이 버틸 수 없는 한계를 근육으로 시도하면 힘줄이 뜯겨나간다. 무릎은 마모되기 쉽고 인대는 쉽게 상처를 입는다. 염증이 발생한 채로 계속 운동을 지속하면 당연히 자세가 비틀어진다. 운동방식에 따라 자세는 고정될 수도 있고,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잦은 충격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더 빨리 악화된다. 관절의 강도보다 근육이 더 크게 발달하면 어찌될까? 그러니까 보호대나 보조기구를 착용하고 운동하는 사람은 억지로 무리한 자극을 주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어깨도 생각보다 쉽게 부상을 입는다. 회전근개를 무시하고 팔운동 어깨운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이두근의 힘줄은 부하를 견디지 못하는 임계점에 도달한다. 각도에 따라 뼈에 힘줄과 인대가 계속 찝히거나 고중량, 과부하가 반복될수록 힘줄이 뼈에서 뜯겨나간다. 그러니까 회전근개가 수축해서 팔을 잡아주고 이두와 삼두의 힘줄이 견갑골을 붙잡아주지 못하면 당연히 어깨는 부상으로 직행한다. 그것도 아주 쉽게. 내가 배운 관절기에서는 팔꿈치와 어깨가 주요 꺾기부위다.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기도 하고 훨씬 약하기도 하다. 팔의 각도와 회전, 방향에 따라 힘의 사용은 천차만별로 변한다. 사람들은 관절기나 술기가 짜고치는걸로 알기 쉬운데, 그건 당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다. 팔이 힘을 못 쓰게 하려면 손목을 잡고 팔꿈치를 펴면 된다. 팔꿈치만 못 접게 해도 팔은 힘을 쓸 수 없다. 아무튼 회전근개와 팔꿈치의 고정, 수축, 당기고 버티는 힘에 따라 부상이 발생한다. 어깨에 힘을 주고 팔을 쓰는 것과 팔힘만 쓰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게 부상의 정도를 결정한다. 역으로 바로 그게 파워의 정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허리는 장요근을 아예 무시해버리기 때문에 개인차가 더 커져버린다. 사실상 아랫배나 하단전의 힘을 말하는건 장요근의 수축력을 의미한다 볼 수 있다. 물론 발달없이도 아랫배의 무게중심을 잘 잡으면 훨씬 더 큰 힘을 하체에서 상체로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은 없고 각자의 종목에 따라 다른 방식을 적용하고 있을 뿐이다. 몸의 중심, 힘의 중심을 잘 잡는게 왜 중요하냐면, 골반과 다리, 무릎과 발목, 발바닥의 역학을 결정해버리기 때문이다. 몸을 위에서 내려다보자. 두 발은 머리와 척추와 골반을 중심으로 교차한다. 직선의 움직임이어도 결국은 항상 회전력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봐도 다리는 무릎이 올라갔다 내려오며 힘을 전달한다. 그러니까 중심이 안정된 사람이 발바닥과 중심을 잇는 것과 중심이 불안정한 사람이 계속 무릎과 발목에 무게를 가하고 있는 것의 매우 크고 심각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건 기실 체격이나 살집의 차이때문이 아니다. 골반이 얼마나 안정된 선을 그리고 이동하느냐, 두 발이 회전할 때 얼마나 골반이 움직이지 않느냐의 매우 본질적인 차이다. 무릎과 발을 잘 쓰는 사람은 빠르긴 해도 힘을 전달할 수는 없다. 힘을 쓸 때는 언제나 골반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발로 밀고 골반이 힘을 전달하기 전에 이동해버리면 힘은 분산된다. 차를 두 손으로 민다고 생각해보라. 발이 빠르면 힘이 전달될까? 발로 바닥을 지긋이 밀면서 허리가 버텨주는만큼만 팔로 밀 수 있다. 운동방법을 스스로 결정하고 부상을 입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려면 신체의 역학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걸 왜 체육시간에 안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장요근을 발달시키고 몸의 중심을 강화하려면 두 발이 교차하면서 힘을 위로 전달하는 방식을 적용해야한다. 그 가장 과학적인 방식이 역도고 가장 역동적인 방식이 단거리달리기다. 내가 보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은 오르막달리기, 등산이다. 발이 계속 높이를 달리하며 중심을 올려주어야 자연스럽게 골반과 장요근이 강화된다. 제자리에서 하는 스쿼트, 데드리프트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발이 선 상태에 교대로 미는 것과 앉았다 일어나는 것은 역학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평소의 동작과 차이가 크다. 사람은 달리기에 적합하지 앉았다 일어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앞굽이로 버티기같은 방식을 기본으로 두었다. 복직근과 기립근도 마찬가지로 구부리고 펴는데 적합한 근육은 아니다. 본질 자체가 달리기에 맞게 교차하고 비틀리는 동작에 적합하게 근육이 이어져 있다. 특히 무릎과 팔꿈치는 힘의 전달부위지 하중을 견디는 부위가 아니다. 힘을 쓸 때 무릎과 팔꿈치에는 전혀 부하가 가해져서는 안된다. 그건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무리하는 것이다. 손바닥이나 발바닥이라면 몰라도 무릎과 팔꿈치가 자극과 부하를 견디는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운동을 하면 당연히 어깨 골반 허리 다 망가진다. 지극히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어릴 때는 유연하고 회복이 빠르니까 문제점이 바로 드러나지 않는 것뿐이다. 아니면 무시하거나. 부하가 커지면 유연하든 안하든 부상으로 직결된다. 몸을 쓰는 방식과 방법에 따라 필연적으로 부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내가 크게 다치지 않은 이유는 요령을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다칠 것 같은 방식은 아예 하지 않아서다. 몸으로 아무리 실험을 해봐야 각 관절과 허리의 부하는 견딜 수 없다. 그게 되면 스트롱맨 대회에 출전하면 된다. 그러니까 극심한 하중과 부하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체격이 압도적으로 크고 두꺼운 장사형의 체형을 가진 사람들 뿐이다. 그런 사람을 보고 타고난 힘이 세다고 말한다. 일반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훈련할 수도 견딜 수도 없다. 나는 이미 허리를 다친 상태로 운동을 하며 신체를 강화해왔기 때문에 나같은 몸으로 근력 자체를 월등하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장담한다. 지구력이라면 몰라도 근력은 타고난 신체조건을 넘어설 수 없다. 파워리프터처럼 신체조건이 불리해도 일반인을 훨씬 상회하는 건 가능하지만, 같은 선수끼리라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러니까 결국 안되는 조건으로 불가능한 결과를 만들겠다고 스스로 부상을 자초한다는 소리다. 그걸 부추기고 홍보하는게 지금의 헬스업계고 일반의 착각이다. 일반인이 한단계나 두단계 이상의 체급을 올리려면 5년에서 10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해야한다. 솔직히 말해서 중량도 상관없고 회복도 상관없다. 그냥 몸이 커지기 전에 먼저 다친다. 그 시간에 심폐지구력, 근지구력을 키우는게 훨씬 더 의미있고 근장력, 최대근력의 훈련은 일주일에 한번 두번이면 충분하고, 그나마 그렇게 해야 5년이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몸이 커진다는건 손가락, 발가락, 팔꿈치, 무릎, 어깨, 골반, 척추, 힘줄, 인대 등 모든 부위가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걸 단기간에 키운다는 것 자체가 무리고 위험하다. 5년도 충분히 짧은 시간이다. 중량운동만 하는 사람보다 지구력 훈련을 병행하는 사람이 더 빨리 성장하리라 본다. 그리고 버티기 위주의 등척성 방식이 관절에 부하를 줄이고 근육의 부하를 증가시킨다. 여기서 꾸준히 유연성, 그러니까 근막과 인대가 맞춰지는.. 근육을 늘리는게 아니라 구조가 확대되는,이 확보되어야 관절의 충격을 줄인다. 나는 일반인이 이렇게 전문적이고 긴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운동을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그냥 달리기하고 턱걸이만 주구장창 하는게 훠얼씬 더 효과적이라는데 내 두손 두발을 다 건다. 중량은 선택사항이지만 그리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부상이 싫다면 그냥 배제하는게 장수나 건강에 좋다. 어차피 남자는 어깨, 여자는 골반을 키우고 싶은거 아닌가? 굳이 무리한 중량을 들 필요가 있나? 점진적 과부하가 정말 그 방법밖에 없을까? 대한
운동조합과 효율
운동조합과 효율 이것은 초급자보다 중상급자를 위한 설명이다. 운동의 방법은 성장가능성과 부상가능성의 두 가지 측면에서 조합해야한다. 먼저 기준이 되는 세가지를 제시하면 1. 최대근력 2. 관절한계 3. 고립집중이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 운동의 강도에 따른 성장가능성과 부상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먼저 성장이란 결국 한계를 극복하고 돌파한 후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달성된다. 부상은 한계에 도달해서 회복되지 않은 채로 다시 한계로 자극하면서 발생된다. 결국 자신의 신체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느냐 아니냐는 회복의 수준을 얼마나 정확히 판단하느냐에 달려있다. 내가 운동횟수를 최소로 기준잡으라는 이유는 최대강도로 한계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신체는 점진적으로 강화되지 않는다. 그래프를 그리자면 성장은 느리게 파괴는 빠르게 일어난다. 그러니까 한계에 근접하면 이미 신체는 회복단계에 몰입한다. 신경계와 호르몬, 화학적으로 이미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기전이 작동한다. 관절은 기계적 스트레스에 취약한데, 그 이유는 관절액이 순환하고 혈액이 공급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절은 기름칠만 하고 마모도 없는 베어링 시스템이 아니다. 그러니까 기계적 운동방법은 관절부상에 매우 취약하다. 관절의 회복과 근육의 회복은 그래프의 진폭과 기울기가 다르다. 관절을 기준으로 할수록 성장가능성이 올라가고 근육을 기준으로 할수록 부상가능성이 올라간다. 아마 부상가능성을 기준으로 조합을 찾는다면 방법 자체를 바꿔야 할 것이다. 힘을 쓰기 위한 방법은 그래서 손발이 연계된 지면의 반발력과 전신의 협응력을 기반으로 해야한다. 바디빌딩식이라면 언제나 데드리프트가 기준이고 스쿼트와 밀리터리프레스가 조합되는 것이다. 어깨와 척추와 골반이 결합되는 힘이 꾸준히 강화되어야 성장가능성이 올라가고 부상가능성이 줄어든다. 팔다리도 마찬가지다. 손가락과 발가락의 힘을 강화하면서 팔꿈치와 무릎, 어깨와 골반을 연계해야 근육의 결합력, 수축력의 순서와 조합이 강화된다. 최대근력은 근육이 연계되는 협응력을 시험하는 수준을 의미하며, 관절의 한계는 그 힘을 버틸 수 있는 힘줄과 근육, 인대의 상태를 뜻한다. 그러니까 관절을 교차하는 힘줄과 근육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그것을 의식하고 힘을 쓰는 것과 큰 근육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악력과 압력에 따른 신체 각 부위의 부하와 저항을 이해할 수 없다. 초보단계를 넘어 어느정도 힘을 쓸 수 있고 당기는 힘과 버티는 힘의 연계를 알 수 있으면, 다시 가장 약한 부위에 집중해야한다. 손과 발의 역학과 힘의 이동을 강화해야한단 뜻이다. 굳이 거기까지 세분화하지않아도 힘이 세지고 강해질 순 있지만, 운동능력이나 신체의 움직임을 더 올리기 위해서는 비트는 힘도 강화해야한다. 사실상 여기서부터 부상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체를 쓴다면 무릎을 살짝 굽히고 발바닥으로 지면을 비비면서 무릎이 아닌 종아리가 강하게 버텨낼 수 있도록 단련해야한다. 십자인대의 파열은 발의 좌우회전에 있어서 발과 무릎의 순서가 틀어지면서 발생한다. 원칙은 언제나 발이 먼저 돌고 무릎이 움직이는 것이다. 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손과 발이 큰 힘을 쓸 때 어깨와 골반이 강하게 잡아주어 무릎과 팔꿈치로 가는 부하를 흡수해야한다. 다리는 허벅지와 엉덩이로 전부 흡수해야하고 팔은 가슴과 회전근개가 수축하며 흡수한다. 어깨와 골반은 구조가 다르다. 결합된 골반과 달리 어깨는 견갑골이 분리되어있다. 그러니까 어깨는 승모근과 능형근, 견갑근의 강화와 함께 어깨의 전반을 서서히 단련해야한다. 골반이 당기는 힘과 미는 힘의 역동적 조합으로 강화된다면, 어깨는 당기는 힘과 버티는 힘의 정적인 수축과 조합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어깨를 회전근개보다 삼각근에 집중해서 훈련한다면 점점 부상가능성이 증가한다고 보아도 좋다. 승모근 광배근보다도 회전근개가 먼저다. 항상 큰 근육보다 작은 근육의 강화를 기준으로 훈련해야 부상가능성도 줄어든다. 성장의 기울기가 낮아지겠지만, 작은 근육을 기준으로 하는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알다시피 잦은 부상은 성장효율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게다가 근육의 불균형은 관절과 인대에 영구적인 손상을 불러올 수 있다. 작은데서 큰 것으로 가야지 큰데서 작은 것으로 가는게 아니다. 대개는 큰데서 작은 것으로 가는게 아니라 큰거 큰거 큰거만 신경쓰고 작은 것은 무시한다. 결국 작은 부위는 다치고 기능은 떨어진다. 작은데서 1을 잃으면 큰데서 10을 잃는다. 다른 방법으로 10을 보충하기 위해 또다른 작은데서 1을 끌어쓴다. 그러나 결국 팔꿈치와 무릎의 약화는 아무데서도 보상받을 수 없다. 운동선수라면 은퇴를 하거나 기능상실 또는 저하를 수용하고 재활로 가야한다. 내가 초보자의 중량운동을 심각하게 경계하는 이유는 허리의 부상과 약화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척추기립근도 힘줄과 인대의 결합이고 그건 금방 쉽게 발달하지 않는다. 특히 뱃속의 장요근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초보자가 신체를 강화하는 최선의 방법은 오르막길을 전력질주하는 것이다. 큰 걸음으로 오르막에서 워킹런지를 반복하는게 가장 빠른 성장의 길이다. 뱃속의 장요근이 견뎌내지 않으면 기립근이 충격을 다 받아야한다. 대부분의 운동에서 허리, 특히 장요근을 간과하기 때문에 성장가능성을 갉아먹고 부상가능성을 끌어올린다. 복근은 허리의 안정성이 보장되었을 때만 의미가 있다. 플랭크가 아니라 달리기를 해야한다. 싯업은 할 필요도 없고 레그레이즈도 굳이 누워서 할 필요가 없다. 그 시간에 앞굽이 워킹런지 전력질주를 하는게 백배 천배 낫다. 전력질주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장요근을 강화하고 발달시킬 수 있는 운동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야 신체능률이 올라가고 운동효율이 상승한다. 물론 기립근과 복직근의 강화도 필요하겠지만 뱃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힘과 외부에서 감싸주는 힘은 다르다. 복근과 기립근은 상하체의 연계에 중요하지만 상하체의 힘을 연결하는 자체는 장요근에 있다. 어깨도 회전근개가 그렇다. 삼각근도 측면 전면보다 후면이 훨씬 더 중요하다. 날개뼈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전면 측면을 따로 운동할 시간에 후면에 집중하고 어깨와 등 자체를 강화할 운동을 해야한다. 어깨는 가슴 등 팔과 분리해서 볼게 아니라 뼈와 근육, 힘의 이동을 기준으로 봐야한다. 복근은 상체를 고립하고 하체를 움직여서 부하를 주고, 기립근은 하체를 고립하고 상체를 움직여서 부하를 주는게 낫다. 그러니까 복근은 상체와 연계되고 기립근은 하체와 연계된다. 어깨도 측면 후면삼각근은 날개뼈, 승모근, 삼두근과 연계되고 전면삼각근은 대흉근 이두근 전완근과 연계된다. 물론 이두근의 건 중 하나는 윗팔뼈의 골두를 지나 견갑골에 붙는다. 다른 하나는 바로 견갑골에 붙는다. 반면 삼두근은 하나는 윗팔뼈에 붙고 다른 하나는 견갑골에 붙는다. 후면 측면 삼각근은 견갑골에 붙는데 반해, 전면 삼각근은 쇄골뼈에 붙는다. 그 말은 결국 견갑골의 움직임에 따라 전면 삼각근을 제외한 모든 근육이 수축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회전근개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어깨와 팔의 강화를 안정적으로 유도한다. 이걸 근육으로 분리해서 나누면 효율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견갑골의 활용에 문제가 발생한다. 견갑골을 먼저 수축하고 팔을 쓰는 것과 이두나 삼두에 집중해서 힘을 쓰는 것에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는 회전근개의 부하를 가중시킨다. 특히 회전근개의 강화보다 삼각근의 훈련이 앞서면 반드시 회전근개에 문제가 발생한다. 차라리 삼각근보다 팔이 굵은게 낫다. 그게 일반적이기도 하고. 팔이 약한데 어깨가 자꾸 들리면 반드시 크게 다친다. 그러니까 팔꿈치의 변동을 최소화해 고정시키고 날개뼈와 손아귀에 힘을 준 상태에서 팔을 써야만 다치지 않고 힘을 쓸 수 있다. 그래야 승모근과 광배근으로 연계되는 것이고, 그 외에는 전부 분리된다. 그러니 악력과 견갑을 집중해서 훈련하는게 가장 효율적이며, 그렇게 조합을 짜야한다. 팔씨름 선수와 클라이머가 어떻게 훈련하는지 보라. 거기서 강도만 조절하면 된다. 맨몸운동에서는 일반적이지만 매달리기는 어깨와 팔 손을 동시에 강화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인체공학적인 방법이다. 한팔씩 번갈아 매달리는 것만으로 근육의 불균형과 수축의 인지를 재정렬할 수 있다. 30초안에서 높이를 달리하며 매달리고 버티는 것만으로 견갑과 이두 삼두의 부하를 조절할 수 있다. 물론 손가락도 단련할 수 있고 전완근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다시 이두 삼두의 강화로 이어진다. 버티는 힘을 키우는 것은 관절이 견뎌내는 한계를 끌어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당기는 힘과 미는 힘은 관절이 버티는 힘을 상회해선 안된다. 세 힘이 조화를 이뤄야 부상을 입지않고 힘을 쓸 수 있다. 힘을 쓰기 전에 관절에 힘을 주는 예비동작은 부상을 입지않기 위한 요령이다. 운동의 조합은 신체의 부위보다 힘의 방향과 한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적합하다. 작은 힘부터 큰 힘으로, 작은 부위부터 큰 부위로 올라가는 것이 효율적이고 힘이 연계되는 부위가 같이 강화된다고 의식하는 것이 좋다. 관절의 부하를 줄이는 방법과 순서로 조합하고 훈련해야한다. 그래야만 장기적인 신체의 강화를 유도하고 부상에서 멀어질 수 있다. 대한
운동강도와 변수
운동강도와 변수 운동의 강도와 효율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게 회복이다. 운동중의 휴식시간을 줄이면 그 자체로 운동강도가 올라간다. 인터벌, 카디오, 컨디셔닝 운동 자체는 모두 심폐지구력, 근지구력을 직접 자극한다. 일반인이 운동의 방법에 대해 착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운동의 목적과 수단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근육의 성장만을 기준으로한 방법에서는 많은 변수가 간과되거나 무시될 수 있다. 일반인에게 적합한 가장 효율적인 운동방법, 그러니까 약한 신체를 강한 신체로 바꿀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힘의 기준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에 맞게 훈련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예전에 깔짝깔짝, 느릿느릿, 쉬엄쉬엄같은 운동의 방법을 고안한 적이 있다. 간단히 예를 들면 턱걸이를 열번 하는 것보다 가장 높이 당긴 상태에서 30초를 버티는 등척성 운동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팔굽혀펴기도 마찬가지다. 가장 아래서 30초를 버티는게 힘을 키우는데 가장 효과적이다. 거기에 가동범위를 최소로 좁혀서 최대의 가속도로 30회를 반복하는게 효과적이다. 이러한 원리는 첫째, 관절의 한계를 인정한다. 둘째, 관절의 강화를 유도한다. 셋째, 신체의 효율을 강화한다. 근지구력을 보장하는 것은 심폐지구력이고, 근력강화를 보장하는 것은 관절강화다. 결국 심폐와 관절의 한계내에서만 운동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최대한 빠르게 하거나 최대한 느리게 하거나. 운동강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시간이라 말하는 이유도 신체가 에너지를 사용하는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속도이기 때문이다. 반사신경이란 것도 신경전달속도, 신체반응속도로 귀결된다. 오랜 경험 결과, 근육이 성장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관절의 지속적인 강화다. 근육의 성장이 아닌 심폐의 강화도 당연히 관절의 강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관절을 단련한다 말하는 이유도 지속적인 충격에 노출되는 관절의 힘이라는 전제없이는 무조건 부상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굳이 고중량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5~10kg이내의 작은 중량으로도 충분히 관절을 강화하고 근육을 자극할 수 있다. 신체를 강화하는 운동의 효율과 강도는 모두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같은 말이지만 그 원리의 핵심을 꼽자면, 시간 회복 속도다. 이 세가지를 기준으로 운동강도를 조절해야 부상없이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다. 시간 회복 속도를 바꿔가며 운동을 해봐야 내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다. 본인이 스스로 체득해야 강도를 조절하고 효율을 올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만들고 알려주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심폐능력과 관절한계, 회복속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그에 맞게 운동강도를 결정해야한다. 나는 보편성을 추구하기 위해 30회 30초 이내로 제한하고 100회 3세트, 90회 3세트같은 3을 기준으로한 방법으로 통일했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맨몸으로 한계에 도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턱걸이를 횟수가 아닌 버티기로만 세트수를 늘린다고 생각해보라. 손가락과 상체 전체를 한계로 몰아붙일 수 있다. 단 몇 분안에. 물론 나는 점진적인 강화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강한 자극을 주고 회복을 길게 가져가는 것은 초과회복의 가장 정확한 방법이다. 그 주기가 심리적 변수에 좌우되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 것뿐이다. 운동강도는 강강강으로 설정되어선 안된다. 강약중강약 약약중약강약. 멀가중멀중가중...신체 심폐와 관절, 근육)의 회복주기가 강도주기와 일치해야한다. 그걸 신체리듬, 바이오리듬, 컨디션이라 한다. 강도를 올리면 회복을 더 길게 가져가고 강도를 낮추면 회복을 짧게 가져간다. 관절은 오랜 자극과 강도를 견딜 수 없다. 그 말은 낮은 강도로도 매일 관절의 강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말이다. 힘은 그렇게 꾸준히 세지고 몸은 천천히 강해진다. 이것 역시 시간의 문제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꾸준히 하는게 중요하지 빡세게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대한
신체단련의 기술, 발
신체단련의 기술, 발 이제 보다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방법과 기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다이어트든 피트니스든 운동의 목적이 무엇이든 신체의 기술과 원리는 똑같다. 각자의 능력과 수준에 따라 방법론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관절의 한계와 기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허리가 긴 사람이 구부렸다 펴는 동작을 많이 하면 당연히 척추에 무리가 따른다. 똑같아 보여도 허리의 길이에 따라 척추가 받는 부담은 전혀 다르다. 극단적으로 마르고 허리가 긴 사람과 두껍고 허리가 짧은 사람이 척추에 받는 부담을 비교하면 근본적으로 차이가 발생한다. 상대적으로 팔다리가 짧고 허리도 짧은 사람이 긴 사람보다 힘을 쓰기에 유리하다. 팔다리가 짧을수록 근육을 쓰기에 유리하고 팔다리가 길수록 관절에 받는 부담이 커진다. 그래서 마르고 긴 체형일수록 동작에 정확한 구사가 필요하다. 팔과 다리의 동작에 따른 각도에 따라 관절이 받는 부담은 다르게 작용하다. 같은 동작이 반복될수록 관절이 받는 부담은 점점 더 커진다. 관절이 받는 부담을 줄이면서 신체를 강화하려면 자신의 신체에 맞는 정확한 자세와 각도를 찾아야 한다. 개인에 따라 보폭이 다르고 각력이 다른데 그것을 일반화해서 단련할 수는 없다. 자신의 최적화된 자세와 각도를 찾는 방법은 자신의 신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와 동작을 시험해보는 것이다. 다리가 긴 사람이 짧은 보폭으로 뛰면 무릎에 부담이 많아질테고 다리가 짧은 사람이 큰 보폭으로 뛰면 역시 무릎에 부담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길든 짧든 보폭이 짧아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신이 최대한 빨리 뛸 수 있는 보폭을 자신의 최대치로 보면 된다. 거기서 보폭이 더 커지는 것은 다리의 길이내에서 유연성에 기반한다. 육상선수를 떠올리며 자세를 만들면 된다. 왜 이런 자세의 교정과 기술이 필요하면 당연히 더 잘 뛰고 더 강해지기 위해서다. 걸을 때나 뛸 때 또는 앉았다 일어날 때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다리가 최대의 힘을 낼 수 있는 자세에 익숙해져야 한다. 스쿼트를 할 때의 각도나 자세를 말하는게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동작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움직일 때 허리를 먼저 굽히는 사람은 모든 동작에서도 상체를 먼저 구부리고 움직인다. 다리를 벌리면서 골반을 쓰지 않으면 몸은 그 상태로만 발달한다. 대부분 골반이 뻣뻣하고 제한적인 이유다. 남자는 뱃살이 찌고 여자는 골반 엉덩이 허벅지가 전반적으로 찐다. 허리의 부담을 생각하면 마른 것보다는 차라리 찐게 낫다. 몸매가 어쨌든 골반과 허벅지가 하중을 받는게 낫다. 물론 과도하게 되면 무릎과 발목의 부담은 다시 피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말랐든 쪘든 부담은 있다. 허리가 아프거나 무릎이 아프거나. 그걸 모두 피하고 강화하려면 평소에 걸을 때부터 자세를 교정해야한다. 가능한 크게 걸으며 골반과 엉덩이, 허벅지를 활성화해야한다. 무릎이 펴지도록 크게 걸어야 무릎의 부담이 줄고 발바닥과 허리가 일체화된다. 허리가 길거나 골반이 큰 체형이더라도 가슴이 약간 앞을 향하도록 걸어야 한다. 걸을 때 허리가 펴지고 가슴이 나와야만 등이 당겨지고 척추가 펴진다. 그래야 다리의 부담이 줄고 신체가 발달한다. 무릎이 펴진다는 것은 발바닥의 앞부분, 발가락을 쓴다는 것이며 그래야 종아리가 제대로 수축하고 허벅지로 이어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발이 바닥을 스치듯이 미는 것이다. 걸을 때는 뒤꿈치가 달릴 때는 앞꿈치가 스치듯이 디디면 무릎과 허리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가끔 보면 빨리 걸으면서도 부드럽게 걷는 사람들이 있다. 바닥을 스치듯이 발을 쓰면 근육의 발달없이도 더 빨리 가볍게 걸을 수 있다. 발을 가볍게 쓸 수 있어야 달릴 때도 더 빨리 달리고 부담은 더 줄일 수 있다. 발끝이 들리지 않고 바닥을 스치듯이 쓰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것이 속보이고 보법이다. 그게 가능하면 발을 빠르게 쓰면서도 무릎의 부담없이 허벅지와 엉덩이, 골반을 강화하는게 가능하다. 다른 종목과 운동에서는 이러한 보법의 기술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다. 발을 쿵쿵거리며 딛고 상하요동이 크면 클수록 무릎과 허리의 충격은 커진다. 물론 전력질주라면 동작이 커지고 발이 높아지겠지만, 평소에도 그렇게 뛸 필요는 없다. 단거리보다 장거리달리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앞발의 뒤꿈치가 바닥을 스치면서 뒷발의 발가락이 바닥을 밀면서 걸으면 체중이동과 근육사용을 저절로 체득하게 된다. 사람의 다리는 직립보행에 적합한 그것도 장거리보행이 가능하도록 진화했다. 만들어진 구조를 제대로 써먹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달리기를 많이 하고 많이 걷고 등산을 자주하는 사람이라면 자세를 바꾸고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신체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신체단련의 기술도 결국은 효율의 문제다. 장기적인 효율의 상승이 부상을 예방한다. 관절의 부담을 줄이는만큼, 한계를 더 늦출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신체의 구조는 다시 발달한다. 평소에 보법을 연습하는 것은 똑같은 몸으로 월등한 효율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자 기술이다. 대한
신체능력의 발달
신체능력의 발달 타고난 것과 타고나지 않은 것. 잘난 것과 못난 것. 잘생긴 것과 못생긴 것. 그 기준은 무엇인가? 외모와 외형에 집착하는 사람은 결코 진리를 깨우칠 수 없다. 각자의 능력은 각자가 깨닫는 원리와 이해에 기반한다. 신체의 능력은 외모로 순위를 매기는 경쟁과는 다르다. 무술의 측면에서는 얼마나 잘 싸우고 잘 죽이냐가 기준이다. 생존의 측면에서는 얼마나 잘 버티고 잘 살아남느냐가 기준이다. 외모나 외형은 그 사람의 가치나 능력을 구속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가 몸매에 집착하는 것은 건강이나 능력보다 외형과 외모에 편중되어있다. 남보다 더 커보이고 또는 더 날씬해보이고 남보다 더 멋있어 보이고 예쁘게 보이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은 운동의 원리와 본질을 크게 벗어나 있다. 나는 호신술과 운동법을 고민한다. 실제로 쓸모가 없는 것들은 모두 고려대상이 아니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말하면 신체의 능력이 아니면 고민할 가치도 없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은 대중의 욕구와 신업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체의 능력에 기반하지 않고 외형적 기준을 만들어 놓고 남과 비교하면서 거기에 사람의 신체를 끼워맞추는 것은 인형의 가면을 쓰고 살인을 하는 영화속 괴물들처럼 괴이하고 잔인하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버리고 과도하게 치장하고 화려하게 꾸미며 인간성을 스스로 감추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문화가 인간의 신체와 능력을 구속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결론이 그런 것처럼 소수의 승자를 빼면 다수가 패자가 된다.그것도 대다수가 비정상으로 취급받는다. 정해진 틀을 짜고 거기에 사람을 끼워맞추니 당연한 일이다. 달리기가 아니라 얼마나 날씬하냐 말랐냐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기준인지를 대중은 알아야 한다. 다수를 불행하게 만드는 기준을 세워두고 그것이 옳다고 우기는 것은 멀쩡한 사람을 불행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잔혹한 문화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정해진 틀에 박아두고 그걸 동경하고 부러워하게 만드는 것은, 수많은 꽃을 두고 몇 개의 꽃만이 아름답다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중을 세뇌시키는 것은 모든 자연의 본질을 흐리고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고 강요하는 독재요 압제다. 도대체 근육이 크면 멋있고 날씬하면 아름답다고 누가 정한 것인가. 그것도 크면 클수록 멋있고 마르면 마를수록 예쁘다는 것은 또 누가 정했을까? 문화와 산업의 소비재가 되기를 선택한 것은 대중인가 예술인가. 신체능력은 각자의 골격과 체력에 기반한다. 능력이 발달하면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크기나 외형은 중요하지 않다. 신체의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운동하고 훈련하는 것은 본인의 목적과 건강을 위한 것이지 누군가에게 뽐내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미혼의 남녀가 짝짓기를 위해 외모를 과시하는 것은 성선택의 일환이다. 그러면 그 외의 남녀는 그러한 과시가 필요없다. 그럼 성선택도 굳이 외모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패션은 그것을 극복할 충분한 방법이 되지 않는가. 연예인을 기준으로두고 외모를 평가하면서 순위를 매기는 것은 스스로 계급화되는 노예근성과 다르지 않다. 남을 외모로 평가하면서 비교하고 재단하는 것은 가장 비인간적이고 비열한 짓이다. 무엇보다 건강하지 않은데 외모가 다 무슨 소용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일반의 대중운동은 수영과 육상, 등산의 일반론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중량운동은 일반운동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특별훈련이지 절대로 건강운동이 아니다. 왜 없는 시간을 쪼개서 관절을 혹사시켜야 하는가. 그러면 신체능력의 발달을 위해 중량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반대중이 중량을 다루는 능력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밖에 없다. 심폐능력과 근지구력이 중요하지 왜 최대근력이 중요하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내 글을 계속 접한 사람은 왜 이렇게 까칠하냐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행해지는 운동과 문화의 기준이 한참이나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내추럴 보디빌더를 관찰하며 언급한 적이 있지만, 지금의 헬스업계를 주도하는 것은 내추럴 보디빌더가 아니라 약물인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보디빌더들이다. 유소년계까지 약물사용이 만연해 있다. 대중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것이 옳은 줄 알고 헬스장에 간다. 내추럴 보디빌더들은 단기간에 성장할 수 없음을 안다. 지금껏 한참을 돌려 말했지만, 약물사용없이 중량훈련으로 원하는 몸을 만들려면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절대 단기간에 되지 않는다. 그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테로이더 뿐이다. 러너들이 많아지면서 운동의 방법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요가 필라테스 헬스업계 모두 마찬가지로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달리기 하지 않는 몸은 신체능력이나 발달에 있어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신진대사 기초대사 활동대사 모두 마찬가지다. 모두 다 심폐능력에 귀속된다. 달리기를 하고 안하고의 차이는 그 심폐능력에 직결되고 그것은 혈액순환과 상통한다. 갇힌 공간에서 정적인 운동만 하는 것만으론 결코 건강해질 수 없다. 정신수양 차원이라도 바람을 맞고 하늘을 보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게 중요하다. 아무리 인위적인 운동방법을 고안해봐야 자연의 순환을 따라가지 못한다. 인간은 자연이고 동물이다. 원래가 아스팔트, 콘크리트가 아니라 흙을 밟고 나무를 보고 사는게 맞다. 쇠덩이와 가까우면 가까워질수록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 사실 총칼과 같은 쇠를 만지는 직업은 필히 전쟁과 생사에 직면한다. 싸움이 아니라면 굳이 중량을 써가며 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물론 일반인도 호신술을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솔직히 사람때리고 죽이는데 고중량이나 큰 근육은 필요없다. 제압하고 방어하는데 필요한 능력은 반사신경, 근지구력과 직결된다. 결국 보여주기 위해 근육을 키운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자기만족이고 자유이지만, 부상을 입기 쉬운 일반인에게 권할만한 방법이 아니다. 결코. 여자도 마찬가지다. 요가나 필라테스가 좋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해야 효과적인 발달이 일어난다. 신체능력이 신장되어야 살도 잘 빠지고 관리도 쉬워진다. 운동량이 늘고 대사량이 늘어야 많이 먹어도 덜 찌고 잘 빠진다. 고도비만인 사람들에게는 이게 가장 중요하다. 일단 운동량 대사량을 늘려야 장기적인 다이어트가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신체능력을 기준으로 삼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달리지도 못하는데 근육이 무슨 소용이고 날씬한게 무슨 소용인가. 그것도 스스로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학대하면서 쫒기듯이 운동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그냥 신체가 발달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을 남과 비교해가면서 고민하고 집착하면서 잠도 안자고 스스로 피곤하게 사는데 몸이 회복될 리가 있나. 두뇌도 자야 기억을 정리하는데 정리가 될리가 있나. 호르몬 효소 면역도 쉬어야 회복되는데 계속 먹고 일하고 운동하는데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운동을 하면서 명심할 금언이 있다. 과유불급. 너무 열심히 하지마라. 남들따라 너무 열심히 살지도 마라. 그런다고 성장 안한다. 혹사만 할 뿐이다. 충분히 쉬고 집중하는게 성장과 발달의 기준이다.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없으면 능력도 건강도 발달도 없다. 이렇게 보면 정신능력의 발달이 먼저인가? 대한
190717 오늘의 주짓수 일기
존윅에 빙의한 나를 표현해봤다. 도복도 검정색이니까 찰떡이넹 >_< 뀽! 1. 더워도 너무 덥다.... 한 타임만 해도 도복이 땀에 푹 젖어버리는 그런 날씨… 그렇다는 건 노기의 계절이 와버렸다는 건데, 노기가 좋아지는 날이 과연 올까 싶다. 2.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노기는 래시가드, 타이츠나 반바지를 입고 수업을 듣는다. 도복이 없기 때문에 그립을 잡을 수 없는데 그립충인 나에게는 혼돈과 고통의 시간. 2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10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히히 흰 띠 0그랄로 돌아간 기분이야…. 노기의 필요성은 잘 알고 있지만 하기 싫어 죽겠어! 3. 라쏘에서 상대가 누르고 들어올 때, 그립이 잘 들어가지 않을 때 스윕하는 방법을 연습해야겠다. 무게로 압박하는 상대를 만나면 손가락 관절, 무릎 다 털리는 느낌인데 버티고만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니까 빨리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자. 4. 최근 스파링을 하면서 느끼는 건 주짓수가 여성에게 가장 적합한 호신술이라는 것. 당연히 체급이나 힘을 무시할 수 없지만, 상대방의 힘에 1:1로 부딪히기보다는 나에게 다가오는 힘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우당탕탕 힘짓수말고 정말 주짓수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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