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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

손정의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작심하고 던진 말!

"한국이 집중해야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

국내 최고의 미래학 권위자
박영숙 교수의 《인공지능 혁명 2030》이 주목 받는 이유다.

외환 위기 이듬해 1998년, 재일동포 기업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초고속 인터넷망의 필요성을 조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온라인 게임산업 육성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손 회장을 만나 "당시 조언이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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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gor900 그러게... 로봇기술이 발달하는건 좋은데, 결국 인간 스스로 편하자고 발달 시키고 자승자박 될것이 분명해
실업자문제가 양면의 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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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日 구로다 "한국, 우리 '돈' 덕분에 발전…잊었나?"
CBS 김현정의 뉴스쇼 경제보복 아냐, 외교 해결 위한 경고 메시지 대법 배상 판결은 부당, 韓이 해결해야 참의원 선거때문? 아베에 무조건 플러스 아냐 65년 협정 자금으로 韓 위상 오른거 모르나?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구로다(日 산케이 신문 前서울지국장) 어제부터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시작이 됐습니다. 정치, 외교 문제를 가지고 경제적 보복하는 것. 이건 WHO 정신에 위배됩니다. 우리 정부는 명백한 경제 보복이라고 보고 WHO에 제소할 방침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일본은 '이건 경제 보복 아니다. WTO에 위배된 행동 아니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리고 지난해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 일본은 자꾸 '문제가 있다. 배상할 수 없다'라고 하는데 뭐가 문제라는 걸까요? 일본의 입장을 좀 듣고요. 우리의 입장도 전하겠습니다. 일본 산케이 신문 한국 특파원으로 30년 넘게 한국에서 생활하시는 분이죠. 산케이 신문 지국장 지내고 지금은 객원 논설위원 하고 계세요.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 한번 만나보죠. 시간이 넉넉지가 않습니다. 되는 데까지, 되는 데까지 제가 짚어보죠. 구로다 논설위원님, 안녕하세요? ◆ 구로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김현정> 반갑습니다. WTO 정신은 자유 무역주의인데, 그러니까 정치, 외교 어떤 이유로든 경제적인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건데 이번 일본 조치는 WTO에 위반한 명백한 경제 보복 아닌가요. ◆ 구로다> 일본 정부는 위반이 아니다라는 주장이기 때문에 '그렇다', '아니다'라는 거는 WTO가 판단하는 거죠. 그런데 경제 보복이라는 거는 조금 옳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 김현정> 경제 보복은 아니다. ◆ 구로다> 아니다라기보다 표현에 조금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어떤 경제적인 차별을 받고 있을 때 그 보복으로 뭔가 한다면 경제 보복인데, 이건 경제 문제로 시작한 거 아니고 하여튼 징용 문제에 관한, 과거사 문제에 관한 외교적인 문제잖아요, 원인이요. 그걸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어떤 경고성 메시지. 그런 표시기 때문에 외교적인 보복이라고는 할 수 있는데 경제 보복 아니면 무역 전쟁?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아니, 경고성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지금 경제적인 것을 끌어다가 보복을 했으니까 경제 보복이 되는 거 아닙니까? ◆ 구로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보이는데 그렇게 했다고 해서 일본에 경제적인 이익이 있는 거 아니잖아요. 일본 기업도 수출 줄어드니까, 손해 보고 한국 기업도 손해 보는 거니까 양쪽이 다 마이너스가 되는 건데 그런 경제 보복이 없어요. ◇ 김현정> 저는 지금 경제 보복이 아니라는 말에 조금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이번 수출 규제 조치를 시행하면서 내세운 이유가 양국 간 신뢰 관계가 깨졌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지금 신뢰 관계 깨질 일이 없었어요. 대신 지난 10월에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후에 11월에 아소 다로 부총리가 관세에 한정하지 않고 송금 정지와 비자 발급 정지 같은 여러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고를 했고요. 아카이케 마사아키 참의원은 '불화수소의 수출 막으면 한국에게는 급소가 될 거다. 대응 조치 마련하는 데 있어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이런 말을 했고요. 또 결정적으로 그제 아베 총리가 '징용 문제란 역사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가 맺은 약속을 지키느냐의 문제다.' 이런 얘기 했습니다. 결국은 '이번에 경제 조치 취하면서, 수출 규제 조치 취하면서 말했던 그 신뢰 깨졌다는 게 이 약속 말하는 거구나. 결국 이거 때문에 이러는 거구나.'싶은데요. 이거 경제 보복 아닙니까? ◆ 구로다> 그렇게 볼 수도 있죠. 보여요. 그렇게 일본에서 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아까부터 말씀드렸지만 지원금 문제, 개인 과거사에 대한 개인 보상 문제잖아요. 그건 과거에 한일 간 협정 조약으로 해결됐고 노무현 정부 때 벌써 개인 보상도 했고. 그리고 한국 내부적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 문제인데 이번에 판결에 의해서 일본 기업에 대한 재산 압류까지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건 아니다. 그건 한국 내부에서 해결해 달라고 해서 한국 정부에 일본 정부가 계속 요구해 왔었죠. 그런데 전혀 대답이 없고 그래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뜻에서 그런 약간 도발적인 처방을 쓴 거죠. (사진=연합뉴스) ◇ 김현정> 그 부분에 배상에 관한 이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옳으냐 그르냐. 이 문제는 조금 있다 얘기하기로 하고요. 일단 지금 WTO의 정신은 자유 무역 존중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구로다 기자님.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유 무역주의 신봉하는 국가가 미국과 함께 일본이고. 그렇죠? 얼마 전에 G20 자유 무역주의를 실천하자. G20 개최한 곳도 일본 아닙니까? 그런데 일본에서 어떤 이유로든지 간에 자유 무역주의 어긋나는, WTO 정신에 위배되는 이런 경제 보복 조치를 하는 건 옳지 않은 거 아닙니까? ◆ 구로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WTO에서 판단하는 거고요. 그리고 또 일본 쪽에서는 일본의 어떤 셈법이라 할까요? ◇ 김현정> 그런데 WTO가 판단하는 건 맞습니다마는 WTO가 판단하는 건 당연히 맞죠. 그런데 그 전에 이런 행동을 하는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가 옳으냐, 그르냐. 저는 그걸 여쭙는 겁니다. ◆ 구로다> 그건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서 어떤 대화나 협상을 해서 이야기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단은 아까 계속 나오지만 외교 문제, 경제 문제를 거론했다는 게 일본 국내에서도 옳지 않다는 여론은 없지 않아요. ◇ 김현정> 일본에서도요. ◆ 구로다> 그러니까 약간 강경 메시지를 보냈다는 거죠, 한국에 대해서. ◇ 김현정> 아니, 외교적인 강경 메시지를 왜 경제를 이용해서 보내는 것인가. 이거는 WTO에 위배되는, 자유 무역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동 아니냐 이 말인데요. ◆ 구로다> 그런데 가끔 외교에 있어서 국제 사회에서는 있을 수 있잖아요. 중국도 지난번에 한국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했었던 거고. ◇ 김현정> 사드 문제 같은 거요? ◆ 구로다> 그러니까 그건 그걸 WTO 위반이다라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요. 근본적인 문제. 그러니까 징용 개인 보상 문제를 일본과 한국 정부가 협상해서 대화해서 해결하는 게 우선적인 문제예요. ◇ 김현정> 일단 그전에요. ◆ 구로다> 아니, 그런 협상의 대화가 시작하면 이번 경제 문제, 일본에 문제가 된. 그것도 당연히 원상회복, 해결되는 거예요. ◇ 김현정> 제 말씀은 그런 협상을 하고자 하는 경고의 조치로 이런 WTO 정신에 위배되는 이런 경제 보복 조치를 하는 게 옳으냐 그 말씀입니다. 일단 이 당장 이 조치를 철회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 말이죠. ◆ 구로다> 그건 일본 정부 측에서 판단할 거예요. 일본 정부도 그런 비판을 일단 감수하고 있는 거죠. '국제적인 여론도 혹시나 비판할지 모르겠다.' 그걸 감수한 거니까 상황 보고 생각할걸요. ◇ 김현정> 감수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고 G20를 개최하고 지금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사실 국제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인데 당장 철회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게 한국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 구로다> 그런 식으로 의견도 있다는 건 있을 수 있는 거죠. ◇ 김현정> 제 생각에는 수출 규제 조치 철회는 일단 당연한 문제고요. 당장 해야 할 문제라고 보고요. ◆ 구로다> 그런데 수출 금지 아니고요. ◇ 김현정> 수출 규제라고 했습니다, 규제. ◆ 구로다> 그건 특별히 한국 기업에 대한 어떤 혜택이 있었는데 그걸 정상적인 절차로 하자는 거니까 반드시 금지가 아니고요. 수출 금지가 아니에요. 구로다기쓰히로(黒田勝弘) 산케이(産經)신문 서울 주재 객원 논설위원.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 김현정> 수출 규제 조치죠. 지금보다 훨씬 강화된 심사 절차고요. 아베 총리가 문제 삼는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 얘기를 좀 해 보죠. 아마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한다고 해도 이 대법원 판결을 계속 문제 삼을 것 같습니다, 일본의 지금 태도를 보자면요. 그렇죠? ◆ 구로다> 그렇죠. ◇ 김현정> 지난 10월 우리 대법원에서 판결 난, 강제 징용당한 개인들에 대해서 일본 기업들이 배상하라는 판결. 구로다 기자도 문제 있다고 보세요? ◆ 구로다> (그렇게) 봅니다. ◇ 김현정> 그렇게 보십니까? 왜 그렇게 보십니까? ◆ 구로다> 왜냐하면 '개인 보상 문제는 벌써 한일 국교 정상화 때 청구권 협정 그리고 조약에 의해서 해결됐다.' 그리고 한국 정부도 개인 보상 문제는 한국 정부가 책임지겠다라는 입장이었어요. 노무현 정부 때 그렇게 다 보상도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와서 대법원은 그런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일본 기업에 개별적으로 돈 내라 하는 거는 약속 위반이 아니냐라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에요. 그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 김현정> '1965년에 한일 협정 맺음으로써 국가와 국민의 재산, 권리, 이익 청구권 다 포기하지 않았느냐.' 그 얘기를 계속하는 거죠? 그런데요, 구로다 기자님. ◆ 구로다> 네. 개인 보상 문제잖아요. 그런데 그건 벌써 박정희 시절에도 일부 보상하고. 한국 정부가 노무현 정부 때 특별법까지 만들고 해서 개인 보상 많이 했잖아요. 그러니까 한국 정부가 책임지고 다 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걸 이제 와서 해당 일본 기업에 대해서 일본 기업이 한국에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강제적으로 압류한다는 거잖아요. 그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이게 아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한국 정부가 국내적으로 국내 내부에서 해결해 달라.'라는 겁니다. ◇ 김현정> 알아서 해결해 달라. 일본 기업한테 배상하라고 하지 말고? ◆ 구로다> 그렇죠. ◇ 김현정> 그런데 그 협정을 강제 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피해자가 받아들이기는 참 어렵습니다. 우선 그때 1965년 협정 맺으면서 일본은 그걸 배상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으니 잘못에 대해 배상한다' 하면서 준 게 아니고 독립 축하금 혹은 경제 협력 자금 이러면서 준 겁니다. 따라서 피해자 개인이 개별 기업에 배상을 받을 자유는 여전히 존재하는 거고요. 우리 대법원도 법적으로 그게 맞다고 판단을 한 건데. 또 지금 2005년 노무현 정부도 1965년 협정 인정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볼 때 그건 어디까지나 경제 외교적인 판단이었을 뿐이지 법적으로 그 당시에 따진 게 아닙니다. 따라서 지금 개인들이 개별 기업에 낸 소송. 그리고 대법원의 법적인 판단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구로다> 개인이 중요하다라는 건데 지금 대한민국이 민주화 과정에서 '나라보다 개인이다.' 그런 사회가 됐잖아요. 그래서 그런 주장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러나 과거사 문제는 어디까지나 상대가 있는 외교적인 문제의 해결이잖아요. ◇ 김현정> 상대가 있는 문제다? ◆ 구로다> 상대. 상대적인 입장도 있고요. 그래서 이건 예를 들면 대법원의 판결이 국내법, 한국 국내의 사정에 의한 결과죠. 또 조약이라는 게 국제법이죠. 그런데 국제법이 우선이냐, 국내법이 우선이냐라는 건 나라마다 견해가 달라요. 일본 측에서는 국내적인 사정이 있어도 국제적인 약속은 지켜달라. 그것이 우리 입장이다라는 거예요. ◇ 김현정> 압니다. 그런데 국제적인 약속이라고 하는 1965년 협정이 제가 보기에는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반성의 의미도 아니었고 특히 배상이 아니었기 때문에요. 그것으로써 이 모든 징용자 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퉁치고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 구로다> 아니, 그것도 그 당시에 일본 정부가 오히려 개인 보상을 하면서 어땠냐면,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개인 보상받고 개별적으로 돈을 써버리면 의미가 없다. 그럼 한국 정부가 대표해서 돈을 받고 한국 경제 발전에 쓰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개개인의, 국민들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이다'라고 해서 한국 정부가 개인 보상보다 나라 보상을 해 달라고 해서 받은 거고. 그리고 이 개인 보상은 한국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해결된 거잖아요. 이제 와서 아니다라면 조금 문제 있는 거 아니냐라는 거예요. ◇ 김현정>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이해는 했는데 그런데 그 당시에 그 협정을 잘 보면 '3억 달러의 무상 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지불하고 한국은 대일 청구권을 포기한다.' 특히 문제 삼고 있는 제2조 1항 보겠습니다. '양 국민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확인한다.' 이 조항을 계속 일본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인데요. 이것이 배상이 되려면 일본이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이렇게 지배하고 만행을 저지른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반성합니다. 따라서 이 돈은 3억 불은 배상액입니다' 하고 줬으면 말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과, 어떤 반성, 어떤 잘못에 대한 인정도 없이 독립 축하금, 경제 협력 자금이라고 하고 줬기 때문에 그때 그것은 피해자들이 보기에는 배상액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물론 우리 국가, 박정희 정권의 잘못도 있습니다마는 그것을 떠나서 '한 푼 받지 못했고 또 배상이 아니다.' 이걸 법원에서도 법적으로 맞다라고 인정해 준 거 아니겠습니까? ◆ 구로다> 똑같은 말씀인데요. 그래서 '개인 보상 문제는 나중에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지겠다.' 노무현 정부가 그렇게 했잖아요. 그러니까 벌써 해결된 문제라고요. 그리고 과거에 그런 협정 조약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 말씀인데 그래서 조약 해석에 대한 어떤 견해 차이죠.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중재위원회를 만들고 제3자를 포함해서 중재위원회를 만들고 서로 다시 대화, 협상하자고 되어 있어요, 조약상에요. 일본 정부는 그렇게 하자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계속 무시해 왔기 때문에 일본에서 '어떻게 해야 되냐. 빨리 대화하고 해결하자'라고 해서 외교적인 협상을 촉구하기 위해서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번의 그런 조치가 나왔다는 거예요. (사진=연합뉴스 제공) ◇ 김현정> 지금 2005년 노무현 정부 이야기를 자꾸 꺼내시면서 그때도 한번 65년 협정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냐고 하는데 제가 계속 같은 얘기를 반복하게 됩니다마는 그때 법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닌 정치, 외교적으로 푸는 것이었고 이번 대법원 판결은 법에 근거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에 근거한 그 어떤 것도 앞설 수 없는 그 해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더 우선하지 않냐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고 한국 국민의 주장입니다. ◆ 구로다> 국제법이 우선이냐, 국내법이 우선이냐 하는 문제도 있죠. 그걸 포함해서 이번에 중재위원회에서 다시 이야기해 보자라는 게 일본 입장이에요. 그렇게 하면 될 거 아니에요. ◇ 김현정> 또 한 가지는 구로다 기자님. 아베 총리가 말입니다. 솔직히 참의원 선거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닙니까? 내부적으로 어려움 겪을 때마다 늘 한국을 이용해 왔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구로다> 그건 한국 쪽의 견해인데 이번에 벌써 선거가 시작됐는데요, 참의원 선거가. 한국 문제를 그렇게 거론했다고 해서 반드시 플러스가 되는 건 아닙니다. 아베 입장에서. ◇ 김현정> 플러스가 되는 건 아니다. ◆ 구로다> 왜냐하면 이번에 강경 조치. 특히 경제 문제까지 비화한 거잖아요. 그에 대해 일본 언론에 있어서도 찬반양론이 있어요. 오히려 한일 관계 아니면 경제 문제까지 일본 기업에도 피해가 가는 거잖아요. '그거 안 되겠다. 다른 수단으로 하자.' 그런 비판 소리도 있어요. 그러니까 반드시 플러스는 아니라는 거죠. ◇ 김현정> 아니, 플러스가 될지 안 될지는 결과적인 문제고. 아베 총리가 결국 한국 이용하려고 이 갈등을 부추기는 거 아니냐. 제가 그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2017년에도 러시아 외교 실패했을 때 우리 이슈를 끌고 갔고 2017년 4월에 사학 스캔들 터졌을 때도 한반도 위기설 부각시켰고 2018년 12월에도 외국인 노동자 유입 확대로 여론 나빠지니까 그때 또 초계기 문제 갈등 부각시켰고. 이런 것들이 다 이번에도 결국 가만히 있는 우리를 갖다가,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 정당한 것을 가지고 흔드는 것 아닌가? 내부 정치용 아닌가? 여기에 한국 국민들은 상당히 분노하고 있다는 거죠. ◆ 구로다> 그런데 그건 한국에서 흔히 나오는 이야기들인데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고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일본은 그런 구조가 아니에요. 외교 문제가 국내 정치에 그렇게 이용 못 해요. 특히 투표에 있어서 한국에 대해서 강경 정책을 했기 때문에 아베에 대해서 투표하자. 그런 사람 별로 없어요. 자기 지지 세력에 있어서는 잘했다 해서 투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마는. ◇ 김현정> 제가 좀 한마디 꼭 드리고 싶은 건 뭐냐 하면 일본은요. 36년 일제 강점기 동안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 아직 어떠한 진정한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갈등만 생기면 '1965년 3억 달러 주지 않았느냐.' 이 얘기만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1965년에 3억 달러는 어떤 반성과 잘못에 대한 시인도 없기 때문에 배상금이 아닙니다. 독립 축하금, 경제 협력 자금이라고 일본이 분명히 말하면서 준 돈입니다. 그것을 배상금이라고 퉁치면 안 됩니다. 그리고요. 그 3억 달러는 이거를 배상금이라고 치기도 어렵습니다. 필리핀 3년 지배했는데 5억 5000만 달러 지불했고 인도네시아 3년에 2억 2308만 달러 지불했습니다. 우리 36년 지배했습니다. 이거는 배상금이라고 했어도 배상금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이라도 위안부 피해당한 할머니 몇 분 살아계시지도 않습니다. 그분들 돌아가시기 전에 제발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부터 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 구로다> 네. 지금 하신 말씀이 자주 한국 국내에서 나오는 말씀인데요. 1965년도 그때 식민지 통치에 대해서 사과, 반성 없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보상도 없었다라고 하셨는데 그 당시에 한국 정부도 고민했었어요. 왜냐? 식민지 통치에 대한 반성이라든가 사과 또 보상. 그런 거는 세계사적으로 없어요. 그래서 이거 어떤 명목으로 일본에서 돈 받아야 되겠냐 해서 한국 정부도 많이 고민해가지고. ◇ 김현정> 아니, 사과와 반성이 없다는 건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데요. 독일의 경우를 봐도. ◆ 구로다> 아니, 그 당시에 그랬었어요. 그러니까 한국 정부가 그 대신에 청구권 자금으로 받자고 해서 청구권 협상이 시작된 거예요. 그런 경위가 있고요. 또 하나 아까 일본 정부가 사과, 반성 전혀 안 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니, 몇 번 했었잖아요. 1998년도에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수상과의 한일 공동 성명이 나왔는데 그때 분명히 그런 거 나와 있잖아요, 문서로. ◇ 김현정> 유감이라는 표현을 진정한 반성이라고 피해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요. 또 아베 총리가. ◆ 구로다> 사과, 반성이라는 말이 나와 있어요. ◇ 김현정> 아베 총리가 그것들을 다 이전으로 되돌린 건 아닙니까, 지금의 상황들, 그 많은 망언들을 보면요. ◆ 구로다> 아베도 몇 번 그런 거 했잖아요. 지난번에 양국 합의 때도 사과, 반성 나오고. ◇ 김현정> 그걸 사과, 반성으로 당사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데 그게 진정한 사과와 반성일 수 있을까요? ◆ 구로다> 그렇다면 한국 측에 어떤 사정이 있는 거죠. 국제상 아니면 외교적으로는 그렇게 되는 거예요. ◇ 김현정> 유감이라는 표현 정도면 받아들여야 한다? ◆ 구로다> 잠깐만요.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특히 이 정부가 되면서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데 벌써 거기에서 나온 합의에 따라서 위안부 할머니 살아계시는 분들의 70%가 벌써 위로금, 지원금을 받으셨잖아요. 생존자의 70%가 받았다는 건 그 합의를 긍정 평가했다는 거예요. 그런 것도 사실 있어요. 그걸 한국 여론들이 모르지 않아요. 한국 언론이 보도 안 하기 때문에. 그래서 일본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는 거죠. 한국 측의 요구에 대해서. ◇ 김현정> 구로다 기자님은 한국에 워낙 오래 사셨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서를 잘 아실 겁니다. 그 당시 그 협정이라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맺은 협정이라는 것은 국민들의 여론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었고 거기에 유감이라는 표현을 사과와 반성으로 한국민들은 절대 지금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 말씀을 제가 드리는 겁니다. 그것으로 사과와 반성이 다 끝났다고 말씀하시는 건 옳지 않습니다. ◆ 구로다> 나와 있어요. 한번 보세요. 문서를 보세요. 그리고요. ◇ 김현정> 거기에 잘못했다라는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있다라고 판단을 하십니까? ◆ 구로다> 진정성이 있냐 없냐 하면 그건 감정 문제이기 때문에. 합의는 외교, 국가적인 외교니까. 외교 문서로써는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 말로. 그리고 65년도에 군부 문제인데 65년도에 해결했다라고 제가 주장하는데 65년도에 한일 간에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죠. 새로운 관계 시작했는데. ◇ 김현정> 국교가 다시 시작이 됐죠. ◆ 구로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한국 나라가 이만큼 풍요로운 나라로 경제적으로 발전한 것에 대해서 일본 협력이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걸 정확히 좀 알려달라. ◇ 김현정> 지금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것이 65년에 3억 불 받았기 때문이라는 그런 주장이신가요? ◆ 구로다> 물론이죠. ◇ 김현정> 아니, 일본이 36년 우리나라 지배하면서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이라든지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서 피해 본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구로다> 다 포함해서... ◇ 김현정> 일본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됐다는 것은 굉장히 모순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받아들이기 어렵고요. ◆ 구로다> 아니요. 1995년도 이후에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해서 한일 간에 협력 관계를 시작한 거예요. 특히 경제적으로. 그 결과가 지금 한국 발전의 기초가 됐다는 거예요. 그 당시 상황을 아셔야 돼요. 한국 얼마나 그때 가난한 나라였는지 국제적인 평가도 없고. 한일 국교 정상화에 의해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다른 나라들도 한국에 다 투자하고 협력하게 된 거예요. 그런 효과가 있었던 것도 평가하셔야지 마이너스만 말씀하시지 말고요. ◇ 김현정> 지금 그러면 이 36년의 지배가 문제가 아니고 그 후에 3억 불 준 것으로 인해서 한국이 이만큼 발전했다. 그러니 오히려 감사해야 된다. 이런 주장이십니까? ◆ 구로다> 아니, 감사해야 된다보다 우리 나름대로 노력했다. 한국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노력했다는 겁니다. ◇ 김현정>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노력을 했다라고 했기에는 3억 불이라는 그 금액이... 일단 배상금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계속 말씀드리지만 잘못과 사과와 반성이 보장되지 않은 독립 축하금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배상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요. 게다가 3억 불이라는 금액은 성의라고 보기에도 너무나 적습니다. 우리의 피해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보기에도 너무나 적은 것이 다시 말씀드리지만 필리핀 3년이었는데 5억 5000만 달러, 인도네시아 3년이었는데 2억 2000만 달러. 우리 36년인데 3억 불. 이것을 가지고 일본이 '우리가 이만큼 베풀어서 너희들이 이렇게 잘살게 된 것 아니냐?'라는 것을 어떻게 한국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 구로다> 아니에요. 지금 이제 와서 그렇게 느끼는 거지, 그 당시에 대한민국의 상황. 국제 환경을 생각할 때 일본에서 제공해 준 그 돈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했었는지 그거예요. 그걸 생각하셔야죠, 그 당시의 상황을. 그리고 아까 일본의 여러 분야에 있어서 미안한 마음, 과거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한국에 대해서 많이 협력해 왔다. 그런 뜻인 그런 이야기인데요, 제가 말한 거는. 특히 기업에 있어서 그거예요. 기업들이 과거사에 있어서 그런 거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 도와주자라는 그런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 대표적인 것이 포항제철에 대해서 일본제철의 지원이 컸잖아요. 그 당시 일본제철의 이나야마 회장님이 박태준 씨가 도와달라 하실 때 '알았다. 우리가 과거사에 이런 거 있었기 때문에 도와줘야 되겠다. 전적으로 도와주겠다'라고... ◇ 김현정> 구로다 기자님, 지금 이 말씀을 계속 듣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고 우리 청취자들 불편해하시는데 그러면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자유 무역을 하셨다는 말씀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수많은 우리나라의 대기업들, 중소기업들 열심히 노력하는 기업들에게 지금 이 말씀은 상당히 모욕적이라는 생각까지 들고요. 제 생각에 일본의 입장이 '우리가 도와줬다. 3억 불 줬으니 우리가 얼마나 도와줬기 때문에 너희들이 이렇게 잘살게 된 것 아니냐'라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렇게 사과와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착잡한 마음이 있다는 것, 제가 좀 전하고 싶습니다. ◆ 구로다> 그게 아니라요. 지금 젊은 세대, 한국 국민들이 과거를 몰라요. 그 당시 국교 정상화 이후에 일본 기업을 포함해서 얼마나 한국에 대해서 협조, 협력해 왔는지 그런 거 전혀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일부러 이렇게 말씀드린 거예요. ◇ 김현정> 여기까지 말씀을 듣도록 하고요. 오늘 약속된 시간이 좀 많이 지났기 때문에 여기까지 듣기로 합니다마는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 구로다> 일본과 한국이 얼마나 사이좋게 지내오면서 서로가 플러스가 됐었냐고요. 윈윈이 됐었잖아요, 서로 간에. ◇ 김현정> 윈윈이 됐던 적도 있죠. 하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일본의 아베 총리로부터 나와야지 계속해서 이런 망언들이 시시때때로 일본 정치가 어려울 때마다 우리를 이용해서 망언하고 이슈 몰이하고 이건 상당히 불쾌하다는 거 분명히 전해 드리고 싶고요. 이번에 WTO에 제소를 우리가 할 수밖에 없게 된 이 상황을 만들어간 것 역시 일본 정치용으로 참의원 선거용으로 또 우리를 흔드는구나. 우리는 이럴 때마다 이용당하는구나. 국민들이 이런 분노를 갖고 있다는 걸 명확하게 일본 정부에 좀 전달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듣죠. 구로다 기자님, 고맙습니다. ◆ 구로다> 수고하셨습니다. ◇ 김현정> 일본 산케이 신문의 서울 지국장 지내셨고요. 지금은 논설위원입니다. 구로다 기자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언젠가부터 “화이팅”은 드립일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 됐다. 이 표현이 갖는 한계 때문인데, 생각해 보시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도와달라고 도움 청하는 이가 말하지 않는 이상, 주변인은 도움이 안 되며, 무슨 말을 건넨다 하더라도 위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낫다? 정확한 이유는 엘레나 페란테가 말한 적 있다(참조 1). 모든 것을 공유한 사람조차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어서다. 비슷한 맥락으로, 가족간 돌봄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니고, 어머니와 동생의 차이에서 보듯 내리사랑이 아니라 어느 정도 평등한, 어떻게 보면 애정이 좀 다른 방향일 경우에 더 수월하게 이뤄지기도 한다. 다만 이게 애정이 없다가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인위적으로 애정을 키워서 상대하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무엇일까? 다정한 무관심(참조 2)에 가깝게 다가서야 하잖을까? 문제가 하나 있다. 어디까지 자신을 드러내야 하느냐이다. 아프다고 하여 아프다고 징징대면 상대에 폐를 끼치는 것일 텐데, 그렇다고 하여 마냥 참을 수도 없다. 가령 곧 받게 될 근전도 검사를 할 때 나는 과연 어떤 비명을 지를까? 아니면 아예 지르지 않을까? 이게 꼭 비단 아픔을 나타낼 때만이 아니라 세상만사와 관련이 있다. 가령 어느 선까지 관심을 보이느냐는 애정과 오지랍을 한꺼번에 가져올 수도 있고, 그 기준은 각자 혹은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잘 구분하는 자는 아마 없을 테고 말이다. 제목이 말해주지 않나?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는 것은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다만 상대가 나를 잘 이해해주리라는 기대가 딱히 없다는 점이 비극일 테지만 말이다. 물론 요새 들어 달라진 점은 하나 있겠다. 지나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게 해줄 동반자가 생겼다는 사실일 텐데, 이왕 같이 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앞으로 감사하고 겸허하게, 적절한 언어를 찾아가며 살아야겠다. 목요일은 역시 독서지. 생각보다 와닿는 점이 많은 책이다. 어떤 식으로든 아픔을 증명해야 한 사람들에게 추천드린다. 우리 모두 “화이팅”. ---------- 참조 1. 엘레나 페란테, 그녀의 이름(2016년 10월 6일): https://www.vingle.net/posts/1799620 2. 다정한 무관심(2021년 6월 2일): https://www.vingle.net/posts/3762410
돈을 찍을수록 부채가 늘어나는 나라가 있다!? + 요약
는 미국 이야기 경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몇 년마다 인터넷이나 TV에서 미국 부채한도 협상이 난항이라는 뉴스를 봤을 거야. 이렇게 부채 한도 협상이 질질 끌고 있다는 기사가 나올 때마다 세계 경제가 심하게 출렁이고 난리가 나니까 야당 측에서 '니네 나라를 어떻게 운영했길래 빚이 이렇게 늘었냐!' 라고 하면서도 '씁 어쩔 수 없지..' 라며 부채 한도를 증액해주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야. 물론, 10년 전쯤 공화당에서 '쫄리면 뒈지시던가' 라면서 부채 한도 증액을 합의해주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당시 세계 경제가 완전히 난리가 났어. 미국 증시가 20% 폭락했고, 한국 증시는 30% 폭락해버렸지. 당시 2011년 08월물 풋옵션은 1000배가 넘는 대박이 터질 정도로 세계 경제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 물론, 이런 상황은 '국가 부도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은 공화당이 부채 한도 증액을 합의해주면서 끝났어. 그렇다면 부채 한도라는 것은 무엇이고 미국은 왜 부채한도를 의회가 승인해 줘야 하는 것일까? 일단 부채한도라는 것은 미국 의회가 미국 정부에게 '니네 이 만큼까지 빚을 질 수 있게 승인해줄테니, 그 이상 빚내지 마라' 라고 규정한 한도야. 이렇게 의회가 정부의 부채 한도를 규정한 것은 미국이 현대 국가 중 유일하지. 왜냐하면 오늘날 현대 국가들은 정부가 해야 일이 워낙 많아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국채 발행 문제는 정부가 알아서 하라고 정부 재량에 맡겼기 때문이야. 실제로 정부가 자유로이 국채를 찍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 사태 때 각국이 신속하고 과감한 재정정책을 펼칠 수 있었어. 비록, 아래 사진의 영국의 사례처럼 막대한 재정 적자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경제가 붕괴하여 공황이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지. 이렇게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신속히 돈을 풀어서 경제를 안정화 시켜야 하는데 미국이 이렇게 부채한도를 설정해놓고 한도를 증액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만든 건 협상 결렬시 국가 부도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미국 안팎에서 많은 불만이 나오고 있어. 그렇다면 미국 정부가 윤전기로 돈을 찍어내서 부채를 갚으면 되지 않냐고? 유감스럽게도 미국은 돈을 찍어서 부채를 갚는 꼼수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나라야. 이 글 제목처럼 미국 경제 시스템은 돈을 찍어낼 수록 부채가 늘어날 수 밖에 없도록 설계 되어 있거든. 현대국가들은 대개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권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은 건국 초창기에 국립 중앙은행을 해산시킨 나라야. 대신 그 자리를 민간과 정부가 합작한 연방준비제도가 차지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달러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처럼 국립 중앙은행에 달러를 찍어내라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위의 사진처럼,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서 연방준비제도에 건내주고 연방준비제도가 해당 액수만큼 달러를 찍어서 교환해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래서 미국은 돈을 찍어낼 수록 국가 채무가 늘어나는 상황이야. 다른 나라들도 이런 원칙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국채 발행 없이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뒷구멍을 한 두 개쯤은 열어놓았지. 하지만 미국은 예외 조항 같은 뒷구멍이 아예 없는 노빠꾸 상황이야. 그렇다면 왜 미국은 부채 한도를 설정하였으며, 도대체 부채 한도 증액시 일일히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불편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어째서 국립 중앙은행 대신 민간이 개입하는 연방준비제도가 존재하는 것이며, 돈을 찍어내는 만큼 국채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고지식한 시스템을 설계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어제 올라왔던 글은 '천룡인들이 야바위 게임으로 대중들을 속여서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라고 주장했었지. 출처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도 이러한 복잡한 시스템을 불신하고 있는 상황이야. 연방준비제도 관련 이야기는 미국 음모론의 단골 소재이기도 할 정도니까. 하지만, 미국 달러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게 시스템이 짜여진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거야.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배를 거부하고 독립 전쟁을 일으켰을 때, 미국 독립군은 자금 부족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어. 워싱턴 회고록에도 굶주린 병사들이 추위에 벌벌 떠는 묘사가 나올 정도였지. 게다가 미국이 영국에게 독립하겠다고 전쟁을 일으킨 상황이었기에 전쟁 이전처럼 영국 파운드를 사용할 수도 없었어. 그렇기에 미국 독립군은 영국 파운드를 대신하여 '대륙 화폐' 라는 지폐를 발행하였지. 이렇게 발행한 대륙 화폐로 미국 독립군들은 물자를 조달할 수 있었어.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 될 수록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대륙 화폐를 남발하자, 대륙 화폐의 가치는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지. 어쨌든 대륙 화폐를 통해 군자금을 조달한 미국 독립군은 영국군을 격파하고 독립을 이루었는데, 독립 전쟁 기간 동안 찍어낸 대륙 화폐로 인하여 미국은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되었어. 처음에는 자기네들이 발행한 돈이니까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대륙 화폐의 가치와 신용도를 바로잡기 위해 온갖 피나는 노력을 했었지만 처참히 실패했지. 결국 알렉산더 해밀튼의 주도로, 대륙 화폐 100달러 당 미국 국채 1달러로 교환해주는 방식으로 대륙 화폐를 사실상 폐기하였어. * 알렉산더 해밀튼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글 참조 이렇게 대륙 화폐를 사실상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미국 정부가 지폐를 발행해도 신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이런 상황에서 알렉산더 해밀튼은 과감히 지폐 발행을 포기했어. 그리고 '미국 정부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금화와 은화는 믿을 수 밖에 없지' 라며 은화와 소량의 금화를 발행했지. 그리고 수십년 동안 미국에서는 정부가 발행하는 지폐가 나오지 않았어. 물론, 간혹 민간 은행들이 발행한 지폐나 재무부 채권, 수표 등이 쓰이긴 했지만 극소수였지. 대부분 은화와 금괴를 선호했기 때문이었거든. 은화와 금화는 설렁 미국이 망하더라도 녹여서 금괴나 은괴로 만들면 어디서든 가치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미국에서 지폐 대신 은화와 금화가 유통되면서 물가가 안정되었어. 은과 금은 안전자산이었기에 가치가 요동치는 일이 없었거든. 이렇게 물가가 안정되면서 미국은 서서히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지. 하지만,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어. 미국이 남부와 국가의 운명을 걸고 수십만명씩 갈아넣는 상황에서 물가 안정이나 화폐 신용도는 그다지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지. 어떻게 하면 전쟁 비용을 마련할지가 중요한 문제였던 상황이었어. 그렇기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 동안의 금기를 깨고, 정부가 발행하는 지폐를 찍어내기 시작했지. 이게 바로 뒷면이 초록색이라고 해서 '그린백' 이라 붙여진 지폐야. 사실 이게 나왔을 당시 미국에서도 말이 많았지.  '대륙 화폐랑 뭐가 다름? 니들 미쳤음?' 이런 반응이었어.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찍어낸 그린백 달러의 뒷면을 보면 '이거는 법적으로 인정받은 돈이다.' 라는 내용만 적혀 있었을 뿐이었어. 그러니까 이 돈은 '미국 정부가 발행한 돈이고 법적으로 인정받은 돈이다.' 라는 문구만 있었지, 이 돈의 가치를 보증해줄 만한 어떠한 담보도 없었던 거였어. 기존의 은화나 금화는 녹여서 은괴나 금괴라도 만들 수 있었고 민간 은행에서 발행한 돈들은 해당 금액에 해당하는 금이나 은 등으로 바꿔주기라도 했었지, 이건 그냥 정부가 종이에다가 인쇄만 해놓고 '이건 합법적인 돈이다. 거부하면 죽는다.' 라고 하는 거였어. 당시 링컨은 오늘날 북괴 김정은이 돈표 들이미는 짓이랑 똑같은 양아치 짓을 저지른 셈이야. 다만 미국은 북괴와 달리 막장 국가가 아니었고, 미국인들에게 미국 정부가 합리적이란 신뢰를 주었기에 아무 담보 없이 미국 정부를 믿으라며 무작정 돈을 찍어냈던 위험천만한 시도는 성공할 수 있었지. 그린백 발행으로 미국 정부는 남북 전쟁에 필요한 전쟁 자금을 마련하여 승리할 수 있었어. 이러한 성공 사례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학계에서 정부가 담보 없이 마음대로 돈을 찍어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이렇게 담보 없이 마구 찍어낸 그린백 달러는 그 동안 안정되었던 미국 물가를 4년사이 80%나 폭등시켰어. 여하튼 이렇게 그린백 지폐가 성공적으로 유통이 되자 미국 정부도 대륙 화폐의 트라우마를 씻고 지폐를 발행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 다만, 담보 없이 찍어낸 그린백 지폐가 물가를 폭등시켰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골드러시로 미국에 넘쳐났던 금을 담보로 하여 금으로 교환 가능한 지폐를 발행했지. 당시 미국 달러는 20.67 달러당 1 트로이 온스의 금으로 바꿀 수 있었어. 그러니까 당시 미국 달러는 1달러당 1.5 그램의 가치를 가지고 있던 상황이었지. 이렇게 미국은 금본위제를 채택했고 미국은 건국 후 처음으로 물가 상승 걱정 없이 지폐를 발행할 수 있었지. 이렇게 물가가 안정되고 경제가 안정되자 미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어. 이 시기를 도금 시대라고 하는데, 미국이 영국을 추월한 시기가 이 시기야. 오늘날 우리가 아는 카네기나 모건 같은 대 자본가들의 탄생이 이 때지. 문제는 이렇게 미국 경제가 외형적으로 성장은 했는데 정작 미국 정부가 이를 관리할 시스템이나 노하우가 없었다는 거였어. 그래서 툭하면 공황이 찾아오고 경제위기가 찾아왔지. 근데 미국 정부는 이런 상황이 터져도 수습할 능력이 없었어. 그래서 미국 정부가 모건한테 발목 잡고 도와달라고 애원하던 상황이었지. 그러니까 기업이 정부한테 구제해달라고 요청한 게 아니라 정부가 기업한테 구제해달라고 요청하던 막장 그 자체였던 시절이었어. 이렇게 자본가들이 미국 정부보다 더 유능하고 강력한데다 노하우도 풍부하니까 미국 의회에서도 경제 운용도 제대로 못하는 정부에게 중앙은행을 운영하게 하느니 아예 자본가들로 하여금 정부와 함께 경제 운용을 하게 만드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지. 그렇게 탄생한 게 민간과 정부가 손 잡은 연방준비제도의 탄생이었어.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연방준비제도에 민간 자본이 참여하니까 아까 링크단 글처럼 '천룡인들이 야바위 게임을 해서 대중들을 등쳐먹는 거 아니냐' 라는 의혹이 많은데, 오히려 연방준비제도의 시스템은 탄생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의 경제 질서를 주도하는 자본가들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서 사실상 개평을 주고 이들의 노하우와 지지를 얻어낸 거에 가깝지. 물론 미국은 이익단체들의 로비가 합법인 나라이고 자본가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도 맞아. 하지만 관치 금융이 강한 나라들에서 벌어진 경제 사태들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민간과 정부가 손잡은 경제 운용 시스템이 나쁘다고 하기만은 어려울 거야. 이렇게 미국 경제가 나날이 발전해 나가고 있는 와중에 세계 1차 대전이 터졌지. 유럽 국가들이 서로 죽고 죽이면서 박살나는 상황에 미국은 어부지리로 독보적인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였어. 이렇게 세계 1차 대전 이후 뉴욕은 세계의 경제 수도로서 화려함을 과시했지.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미국 정부가 경제 운용 능력이 부족했기에 대공황이 터졌어. 게다가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다 보니까 이런 경제 상황이 다른 나라에도 옮아 버렸지. 당시 세계 1차 대전으로 배상금을 마련하느라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은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히틀러가 집권해버렸어. 일본 역시 무리하게 금본위제 복귀를 추구하다 세계 대공황 여파로 경제가 파탄나버렸지. 이러한 경제 파탄은 정치인들에 의해 운영되는 민주주의 체제를 무능하다고 인식하게 만들었고 군부가 사실상 정권을 장악하고 폭주하는 사태로 이어졌어. 그리고 독일과 일본은 세계 제 2차 대전을 일으켰지. 물론, 미국은 세계 대공황으로 한 때 금본위제를 포기하기도 했었을 정도로 고생했었지만 세계 2차 대전이 벌어지자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항모를 1주일에 한 척씩 찍어내는 생산력으로 독일과 일본을 패망시키고 세계 패권을 차지하였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자, 전쟁으로 파괴된 세계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는데 당시 세계 경제를 어떤식으로 짜야 할지 갑론을박이 이어졌어. 이러한 상황에서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대공황에서 세계를 구해서 '마르크스 선생님 말씀대로 자본주의는 경제 공황으로 무너진다!' 라고 설레발치던 공산주의 국가들을 닭 쫒던 개 꼴로 만든 케인즈는 '특정 패권국의 화폐를 기축통화로 삼으면 언제든지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라면서 특정 국가의 화폐가 아닌 '방코르' 라는 새 화폐를 기축통화로 삼자고 제안했지. 하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미국 입장에서는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파탄난 상황에서 패권국이 가치를 보증해주지 않는 화폐를 기축통화로 삼자는 건 굉장히 위험한 시도로 보였거든. 막말로 대공황이 세계 2차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방코르를 잘못 도입했다가 실패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하지 않겠어? 마르크스가 불러온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 온 세상을 배회하는데 전후 세계 경제 재건에 실패하면 세계가 공산화 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았어. 이렇게 되면 미국이 파시즘에서 세상을 구해놓고 빨갱이들 좋은 짓만 해주는 꼴이 될 판이었지. 그래서 미국은 케인즈의 방코르 도입 제안을 거부하고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수립했어. 물론, 미국 입장에서는 자기네가 패권을 장악했으니 자기네 돈을 기축통화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지. 브레튼우즈 체제는 위 사진과 같았어. 당시 세계 각국은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금본위제를 도입할 만한 금이 없는 상태였기에 미국이 총대매고 35 미국 달러당 금 1온스로 바꾸어 주는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미국과 환율을 고정하는 방식을 채택했지. 이러한 방식으로 다른 나라들은 금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미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국의 화폐를 금과 연동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어. 근데 말이야 미국이 기축통화국이 되니까 좋은 점도 많았지만 나쁜 점도 만만치 않았어. 그 중 하나가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 문제였지. 세계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미국 달러가 풍부하게 유통이 되야 하는데 그러려면 미국이 지속적으로 국제수지 흑자를 내서는 안 되는 거야. 미국이 지속적으로 국제수지 흑자를 내면 전세계의 달러들이 미국으로 회수되어 버려서 세계에 달러가 돌아다니질 않으니 달러가 널리 쓰일 수가 없거든. 이렇게 달러가 쓰이지 않게 되면 달러는 기축통화의 자리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그렇기에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지속적으로 국제수지 적자를 감내할 수 밖에 없었어. 반대로 미국이 국제수지 적자를 너무 크게 보아도 안 되는 상황이었어. 아무리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어도 미국의 국제수지가 천문학적인 적자라면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의 가치가 유지될 것이라고 믿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었어. 게다가 세계에 달러가 너무 많이 풀리면 달러 가치가 하락하여 달러 결제를 기피하게 되어버리니 달러가 너무 많이 풀려도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자리를 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이러한 문제점이 트리핀 딜레마였어. 그래도 브레튼우즈 체제는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25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어. 위와 같은 문제점들로 35 미국 달러에 금 1온스라는 가치가 유지되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각국의 지도자들은 '미국 애껴요' 라는 식으로 미국을 옹호해 주었어. 막말로 미국이 브레튼우즈 체제 판 깨면 누군가 미국 대신 독박을 써야 하는데 아무도 자기네들이 그런 상황을 감당하고 싶진 않았거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겁도 없이 판을 깨자는 나라가 있었어. 바로 프랑스였지. 당시 프랑스는 미국이 경고하는데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나토에서도 빵 차고 나갔을 정도로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였어. 이런 프랑스가 자국의 금 보유고가 고갈되자 다른 나라들은 눈치껏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 혼자 눈치 없이 미국에게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깽판을 쳐버렸지. 게다가 일본과 서독이 전후 부흥에 성공하면서 일본과 서독이 미국 시장에 일제와 독일제 제품을 무지막지하게 팔아대니까 미국의 국제수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었어.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1971년 미국 대통령 닉슨은 기습적으로 이런 내용을 발표해버렸어. '우리가 세계 경제를 위해 희생하고 있으니까 호구인줄 아나. 우리도 참을만큼 참았다. 이 순간부로 미국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주기로 약속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쫑났음을 선언한다.' 실제로 1971년을 기준으로 미국 달러에는 '소지자가 요구하면 금으로 바꾸어 주겠다' 라는 문구가 사라졌어. 미국 달러는 더 이상 금과 가치가 연동되지 않게 된 것이지. 이제 미국 달러는 그 자체의 가치를 보증해줄만한 어떤 담보도 없는 상황이야. 단지 미국 정부가 달러 가치를 책임져줄 것이라는 신뢰만으로 그 가치를 믿고 사용하는 상황이지. 링컨이 그린백을 돈이라고 찍어내던 시절로 돌아간 셈이야. 그런데 링컨 시절처럼 정부가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내면 달러 가치가 폭락하고 이렇게 달러를 남발하면 대륙 화폐의 사례처럼 사람들이 달러 자체를 믿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지. 실제로 오늘날 짐바브웨나 베네주엘라 같은 나라들은 화폐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기도 했고. 만일 미국 달러 가치가 저렇게 휴지조각이 된다면 세계 경제가 무너질 수 밖에 없었어. 그렇기에 미국 정부가 폭주하여 달러를 찍어내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기존에 있던 여러 제도들을 활용하여 제어하고 있는 상황이야. 우선, 미국 달러의 발행권을 정부와 민간이 합작한 연방준비제도에 맡긴 건 다른 나라의 국립 중앙은행들처럼 정부가 중앙은행에 돈을 찍어내라고 압력을 넣지 못하게 만든 것이지. 그리고 달러를 찍어내기 위해서 반드시 해당 액수에 상응하는 국채를 발행하게 만든 것도 달러를 찍어낼 수록 국가 부채가 증가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서 미국 정부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달러를 발행하지 못하게 견제하는 측면이 강해. 마지막으로 미국 의회가 부채한도를 설정해놓고 한도 상향을 위해서는 의회 승인을 얻도록 요구하는 절차도 당연히 '정부가 재정 운용을 건전하게 하고 있는지 감시' 하는 목적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 하지만, 달러를 발행하는 만큼 국채를 찍어내야 하는 미국 특성상, 부채한도를 설정하고 한도 상향을 위해 의회가 승인해줘야 하는 상황은 미국 의회가 달러 발행 한도를 설정하고, 달러 발행량을 늘릴 때마다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해. 그러니까 내가 서론 부문에서 '왜 미국은 국립 중앙은행 대신 연방준비제도를 만들었으며, 어째서 달러를 찍어낼 때마다 반드시 국채를 찍어내야 하는 꽉막힌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으며, 부채한도라는 개념을 설정해 두고 이를 상향할 때마다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불편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미국은 달러 남발로 달러 가치가 붕괴하여 미국 및 세계 경제가 붕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하여 견제 장치를 마련하였다. 미국 정부가 직접 달러를 발행하지 못하게 하고, 달러 발행시 반드시 국채를 발행하게 만들어 섯불리 달러를 발행하지 못하도록 견제하였으며, 부채한도라는 개념으로 달러 발행 한도를 제어하여 세계인들에게 달러를 남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음을 주기 위해서이다.'  라고 답 할 수 있겠지.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기만 하더라도 세계에 달러가 널리 풀려서 세계 경제에 활력이 생기고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기만 하더라도 세계에 풀린 달러가 회수되어 경제 기반이 취약한 나라들이 골로 가는 상황이야. 이렇게 금리만 조정해도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데, 만일 미국이 견제장치 없이 무분별하게 경제를 운용한다면 세계 경제는 붕괴할 수 밖에 없지 않겠어? 출처 관련 글들이 요즘 많은데 봤던 글들 중 가장 친절한 설명이라 같이 보자고 가져와봤소. 이것도 읽기 싫다면 요약이 아래에 있소. "미국이 국립중앙은행 대신 연방준비제도를 두고, 돈 찍을 때마다 뒷구멍 없이 부채를 발행하게 만드는 건 미국 달러 남발을 막기 위해서고 미국 의회가 부채 한도 설정을 일일히 하는 이유는 본래 목적인 재정 건전성 목적도 강하지만 달러 발행 한도를 제한함으로서 신뢰를 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결심의 순간
본명이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인 마더 테레사는 1910년 8월 26일 마케도니아 스코페 지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의 독실한 신앙의 영향을 받아 그녀는 18세 때 수녀회에 입회하며 종교인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 그 후 1929년, 인도로 건너간 테레사 수녀는 많은 사건을 겪으며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사명을 깨닫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 어느 날, 밤길을 가다가 한 여자의 비명을 듣게 됩니다. 즉시 병원 치료를 받지 않으면 위험한 환자였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급히 그 여인을 데리고 근처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 하지만 첫 번째로 찾아간 병원은 돈 없는 환자는 받아줄 수 없다며 테레사 수녀와 여인을 쫓아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테레사 수녀는 여인을 데리고 조금 더 먼 병원으로 갔습니다. ​ 그러나 두 번째 병원은 그녀의 계급이 낮아서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 두 곳에서나 문전박대를 당하고, 세 번째 병원으로 가는 도중 결국 그 여인은 테레사 수녀의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 자신의 품 안에서 죽어가는 여인을 보면서 테레사 수녀는 결심했습니다. ​ ‘이제부터 내가 서 있을 곳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곁이다.’ 진정한 향기는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처럼.. 마음을 나누고 또 나눌수록 사람의 향기는 모든 사람들의 따뜻한 행복을 위해 퍼져 나갈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가난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달까지라도 찾아갈 것입니다. – 마더 테레사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결심#실천#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한국의 농업 혁신 기업; Farm8
팜에이트 Farm8. 2004년 설립된 한국의 농업회사임 수직 농업 회사이기 때문에 논과 밭이 아닌 공장을 가지고 있음 영화속 장면 아닙니다. 공장 내부임 핑크색인 이유는 led의 빛을 조절해서 식물의 생장을 돕기 때문에 시간 맞춰 색색깔의 색을 비춰줌 이렇게 깜빡깜빡하면서 최적의 빛조합을 뿌려줌 그래서 햇빛이 없는 곳에서도 잘자람 그래서 남극에도 이렇게 서울 지하철에도 설치했음(상도역 외 4곳) 햇빛 없이 수도랑 전기만 있으면 되니까 이렇게 만들어진 채소를 서브웨이, 버거킹 롯데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롯데리아, KFC, 스타벅스, CU, GS25 에 납품해서 2020년에 한 해 매출 560억원 달성함 일본에도 설비 수출했고 내년엔 싱가폴, 몽골, 중동에도 설치하러 감. 참고로 기존 양상추가 1년 2번 수확에 6-7명이 필요하다면 1년에 9번 재배 가능, 0.5명의 인력만 필요 재배기간도 90일에서 40일 단축. 빛과 비료 온도 습도 모든 걸 데이터화해서 최적의 양육환경을 제공하기 때문 (폭우, 폭염, 가뭄, 폭설 다 상관없음) 이 회사는 3대 아시아 어그테크 기업으로 손꼽힘(세계 10대 스마트팜 회사) (어그테크=농업기술) 아직 상장 안함(내년에 코스닥IPO 예정이라는듯?) (출처) 여태 매번 (주로 해외) 작품들을 제 방식으로 소개했지만 이건 다른 분이 써놓은 글을 가져왔습니다. 아름답기도 하고, 너무 멋있는 회사네요 :)
<세계문학 단편선 - 플래너리 오코너> 플래너리 오코너
<세계문학 단편선 - 플래너리 오코너> / 플래너리 오코너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1925년 미국 남부 조지아 주에서 태어나 서른아홉 살에 루푸스 합병증으로 죽었다. 두 편의 장편소설과 여러 단편소설들을 남겼다. 그리 많지 않은 작품 수에도 그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생길 만큼 플래너리 오코너가 미국 문학계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현대문학에서 나온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선은 방대한 분량(700페이지가 넘어가는)을 자랑한다. 총 서른한 편의 중,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서른한 편 중 몇 편은 좋았고 몇 편은 굉장히 좋았으며 그중에서도 몇 편은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다. 좋지 않은 소설은 없었다. 미국 문학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에는 레이먼드 카버, 줌파 라히리 등의 소설이 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명확하게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소설 속에서 인간의 인식과 세계가 확장되는 어떤 지점이 주는 삶과 동떨어진 듯한, 일상 너머의 진실을 조금 엿본 듯한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에서 그러한 계시(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선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의 순간은 그녀가 경험해 온 미국 남부의 시대상, 가톨릭 신앙과 겹치며 독특한 울림을 자아낸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그 울림을 지금까지 읽어온 소설 중 오로지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다. 오코너의 소설은 대부분 미국 남부에서 가치관이 뒤바뀌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노예제가 폐지되고 법적으로는 흑인과 백인이 동등하지만 여전히 남부에서는 암묵적인 인종 분리가 행해지고 과학과 이성이 점점 종교와 신앙의 자리를 침범하며 미국 북부에서 인종과 종교, 합리를 대하는 관점과 남부에서 그것들을 대하는 관점 사이의 틈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 시대. 오코너의 소설들은 그 시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늙은 군인도 있고 백인과 흑인이 서로 평등하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백인 또는 흑인도 있으며 종교에 충실한 인물이나 종교 따위는 믿지 않고 과학과 이성을 맹신하는 사람도 있다. 오코너의 소설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던 인물들이 어떤 사건을 통해 가치관과 인식의 흔들림을 경험하고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과 그 순간을 함께 경험함으로써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진실의 일부를 엿보게 된다. 그때의 감각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벗어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어떤 존재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체감하는 느낌과 약간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 경험만으로도 이 단편선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작품은 <제라늄>과 <행운>, <인조 검둥이>다. 소설 속 한 문장 "나는 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 남자가 말하고 창문을 떠났다.
통일되었을 때 가장 큰 위험이 될 북한의 문제점
2013년도에 북한으로 여행간 서양인 블로거가 찍은 사진 의외로 불법이 아니며 '잎담배'라는 이름으로 팔기도 하고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피는 사람들도 많다고 함 북한의 마약생산, 밀매는 광복직후부터 북한의 전술적 도구로 키워지기 시작했으며(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식민지 영토 내 마약류 재배가 그 기원) 인민위원회 농림부 특별상품과와 같은 정부 부처가 주도해 아편, 모르핀,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70년대부터는 헤로인도 제조함.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부터 필수 의약품들의 생산이 멈추고 사람들은 부작용과 악영향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몸이 편해진다는 이유로 마약에 의존하게 됨. 이 당시 '필로폰'이라 불리는 메스암페타민, 헤로인도 광범위하게 일반인들 사이에도 퍼지게 됨. 모 기자 왈 연구 중 만난 여러 탈북인들의 표현을 빌려 "머저리, 미물이 아닌 이상 전당 전군 전민이 다 한다"라고.... -탈북인 증언 중 북한 내 마약 사용 실태와 관련한 진술을 일부 발췌한 내용- 열에 여덟은 다 한다. 주변에서도 많이 했다. 양강도 쪽은 아편을 많이 쓴다. 함북도 쪽에서는 빙두를 많이 한다. 보안원들이 단속을 많이 하긴 한다. 그런데 약 효과가 좋으니까 계속 쓴다. 한국은 그것보다 훨씬 효과 좋은 약이 많겠지만 북한은 아편이 최고의 약이다. 치료용으로 제일이다. 진통도 금방 없어진다. 북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편만 있으면 뭐든지 다 고칠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산이 깊다. 산에서 해가 잘 들지만 사람들이 잘 안가는 쪽에 양귀비 꽃밭을 만든다. 그렇게 직접 아편을 만들곤 했다. 팔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직장이라는 것이 다녀도 월급을 주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너무 막 산다. 이런 것을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탈북인 A 마약이 너무 일반화되었다. 일반화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해보면, 마약을 안 하는 사람이 도리어 ‘시대에 뒤떨어진’, 밀리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이겠나? 그만큼 마약 구하기도 쉽고, 판매자도 많고, 하는 사람도 많다. 마약으로 돈을 버는 게 쉽다. 밑천이 없어도 물주 있는 곳에 가서 조금씩 외상 떼어 다가 소분해서 팔고 그러면 돈을 쉽게 번다. 마약 하는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법관들 자체가 마약을 더 하니까. 형식적으로 처벌을 한다는 규정은 있다. 북한에서는 마약을 판매한다고 하면, 그 사람 집에 가서 마약을 할 수 있고 하니까 오히려 그 사람과 더 친해지려고 한다. 탈북인 B 출처 국제 엠네스티 
감사를 키우고 욕심을 줄이자
한 마을에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농부가 무를 심었더니 농사가 어찌나 잘 됐는지 커다랗고 튼실한 무들을 많이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농부는 이 모든 것이 고을을 잘 다스려 주는 원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수확한 무 중 가장 크고 튼실한 것으로 골라 원님께 바쳤습니다. ​ 원님은 농부의 진실한 마음을 무엇으로 보답할까 생각하다 마침 큰 황소 한 마리가 있어 이를 농부에게 주었습니다. ​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욕심 많던 한 농부도 알게 되었습니다. ​ 그는 착한 농부가 무를 바쳐 큰 황소를 얻었으니, 본인은 원님한테 황소를 바치면 더 귀한 것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그렇게 황소를 받은 원님은 그 보답으로 무엇을 줄까 고민하다가 지난번에 착한 농부가 가져다준 무를 주었습니다.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하나를 가지려고 필요 이상의 것을 너무 탐하다가 모든 걸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의 하루는 어제보다 훨씬 행복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가장 축복받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 C. 쿨리지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욕심#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은행에 돈을 갚을때, '원리금 균등상환'과 '원금 균등상환' 무엇이 좋을까?
일반적으로 자동차 할부금융을 이용하면 이자만 내지 않고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아 나간다.   원리금 균등상환은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 나간다는 의미다.  이자만 내지 않고 원금을 함께 상환하는 건 좋은데, 이게 과연 나에게 유리한 방식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원리금 균등상환’과 ‘원금 균등상환’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자동차 할부금 혹은 다른 물건의 할부금 대출 조건이 대부분 ‘원리금 균등상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할부금융회사나 은행들은 이 방식을 좋아한다.  보통 할부금융회사나 은행들이 좋아하는 방식은 소비자들에게 불리할 때가 많다.  · 비슷하지만 다른, 이자 상환 방식 원금과 이자를 함께 상환하는 방식에는 ‘원리금 균등분할상환’ 방식과 ‘원금 균등분할상환’ 방식이 있다. (이하 원리금 균등상환과 원금 균등상환이라 칭한다.)  ‘원리금 균등상환’은 말 그대로 원금과 이자를 합해서 매월 동일한 금액을 갚는 방식이다.  만약 10년을 상환기간으로 본다면 금리가 일정하다고 가정하고 120개월 동안 은행에 내는 금액이 매월 같다.  예를 들어 1억 원을 연 3% 금리로 대출받을 때 금리가 변동하지 않는다면, 이자와 원금을 합해 매월 96.5만 원씩 동일한 금액을 낸다. 이에 반해 ‘원금 균등상환’ 방식은, 원금 상환 방식은 대출기간 내내 균등하지만 이자는 매월 상환된 원금을 제외하고 산정하게 된다.  따라서 초기에 내는 부담은 더 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월 납입하는 금액이 줄어들게 된다.  예를 들어 1억 원을 연 3%의 금리로 대출받는다면, 첫 달은 108만 3,000원을 내지만 둘째 달은 108만 1,000원, 셋째 달은 107만 9,000원 … 이런 식으로 내는 돈이 조금씩 줄어든다.  매월 원금이 줄어들면서 부담하는 이자금액이 줄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은행이나 할부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을 더 좋아할까?  답은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이다.  2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장기간 내는 이자금액이 더 많아 이자 수입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의 경우 매월 동일한 금액을 상환하더라도 초기에는 원금 비중이 적고 이자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출받은 사람이 중간에 여유자금이 생겨 대출을 만기 전에 상환해버리면 이자만 열심히 내고 원금은 별로 갚지 못한 꼴이 돼버린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은, 초기에는 이자 비중이 크고 중간 이후부터 원금 비중이 커지는 구조다.  따라서 만기를 절반 이상 남기고 여유자금이 생겨서 원금을 상환하려고 보면 원금 상환금액은 적고 열심히 이자만 낸 꼴이 된다.  반면 원금 균등상환 방식은 원금 상환은 매월 균등하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원금이 줄기 때문에 이자가 줄어드는 구조다.  만약 중간에 대출금을 상환할 가능성이 크다면 원금 균등상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중도상환 없이 만기 때까지 원리금을 상환한다고 해도 총 이자금액을 따져보면, 원금 균등상환 방식이 유리하다. 원금 균등상환 방식과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의 이자 차이는 금리가 높을수록, 그리고 상환기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벌어진다.  예를들어 자동차 할부금리가 8% 혹은 그 이상이라면, 이자 차이는 훨씬 더 커진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원금 균등상환 방식이 훨씬 좋아 보이지만, 처음에 내는 돈이 조금 더 많기 때문에 초반에 부담이 클 수 있다.  따라서 본인 소득과 상환 능력을 고려해서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여력이 된다면 원금 균등상환이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보다 이자 부담 면에서나 조기상환 시 원금 상환금액이 더 많기 때문에 유리한 게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자동차 할부금융의 경우 원금 균등상환 방식은 거의 없고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예 선택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를 할부로 사는 것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차는 사자마자 중고가 되는데다 이자 부담도 적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를 할부로 사게 되면 금융회사만 돈을 벌게 된다는 걸 쉽게 이해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