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vores
10,000+ Views
5 Comments
Suggested
Recent
빙글 .유튜브.인터넷기사.친구.가족 음... 다행이 여자친구가 없군 굿굿
불쌍하네요 여친도 없고....물론 제가 그렇다는 말이에오..굿굿
@hangnim 왜 불쌍한거죠 혼자가 얼마나 좋고 편한데요🤔
평일에 일수면 일수면 (출퇴근은 친구와 카톡)휴일다가오면 한달에 한두번은 친구와 약속 수면 그리고 일요일 시체마냥있고 수면 되돌으보니 전 가족은 신경을 안쓰고 2~3가지만 했내욬ㅋㅋ 반성하게됩니다..
픽쓰리... 참고할 만한 좋은 내용이네요!!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게으름의 무서운 보복
 게으름의 무서운 보복 게으름은 두가지 보복을 한다. 첫째는 자신의 실패를, 둘째는 옆 사람의 성공을 지켜봐야 한다. - 르나르 - 젋었을때 태만한자는 늙어서 도적이 된다. - 덴마크 속담 - 게으르게 사는 이의 백년은 노력하며 사는이의 하루만 못하다. - 법구경 말씀 나의 아버지는 게을렀다. 그리고 무책임하셨다. 가장으로서 일을 하지 않고 매일 술을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 나는 아빠처럼 무능력한 사람이 되지 않을거야 " "아버지가 당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그 짐을 다른 가족들이 떠안게 된다. 내 어머니는 새벽일찍 일어나셔서 일을 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실수밖에 없었다. 저녁에 주무실려고 하면 술을 드신 아버지가 저녁내내 괴롭혀서 거의 잠도 못 이루셨다. 지금에와서 생각하면 아버지 나름대로 슬픔과 고통 스트레스가 있기에 그럴수밖에 없음을 이해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을수밖에 없다. 전쟁에서 사주(동서남북)경계를 하는데 한 사람이 게을러서 잠을 자게 된다면 적은 틀림없이 그곳으로 침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전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최소한의 자립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기 밥벌이를 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을 상대방이 대신 떠안게 될수밖에 없다. 부모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고 자식이 대신 빚을 갚아야하듯이 말이다. 아내가 할일을 하지 않고 남편에게 일을 맡겨버리면.. 남편이 아내에게...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식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리거나 무책임하면.. 자식이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지를 해버리면... 상사가 부하에게... 게으름이라는 말은 한 개인의 무책임을 의미한다. 사전적의미 :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게 되면 내일은 2배의 일을 해야 한다. 내일도 일하지 않고 놀아버리면 다음에는 4배..... 엄청난 양의 일이 쌓이게 된다. 나중에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 역시 난 안돼, 그냥 포기해버리자 ㅠㅠ " 게으름이 심해지면 그 부담으로 인해서 찾아오는 마음의 문제가 있다. 바로 우울증 무기력증 나중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면서 자포자기를 해 버린다. 비관주의자가 되면서 무차별적인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내가 이렇게 살아갈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 환경, 사회, 친구, 돈... 때문이라고 하소연을 하게 된다. 그것이 달라지지 않는한 나는 여전히 게으름을 유지하겠다라는 신념이 형성된다. 그때부터 마음이 닫히고 귀가 닫히고 눈이 어두워지면서 외부세상과 소통을 단절해 버린다. 이때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특히 가족들이 큰 고통의 늪에 함께 빠지게 된다. 도대체 게으름은 왜 생기는가? 어떤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심리가 숨어 있을까? 게으름으로 인해서 어떤 위협이 찾아올까? 1. 의지, 기대하는 마음 아기는 참 게으르다. 똥을 싸면 엄마가 알아서 치워준다. 배가 고프다고 울면 알아서 떠 먹여 준다. 짜증을 내면 안아주고 달래준다. 엄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가 해주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이 많을수록 그대는 점점더 게을러 질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신 혼자 정글에 떨어져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서라도 생존을 위해서 부지런해질수밖에 없다. 2. 남탓...무서운 자기합리화 어릴때 마음의 상처, 트라우마, 고통등의 정서가 많으면 심리적으로 게을러지거나 강박증세에 시달릴 확률이 많아진다. 전자는 외부 고통으로 인해서 의지가 꺽여버림으로써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거나 자신감의 상실로 인해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죽어버린다. 후자는 외부 고통으로 인해서 강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인해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세상과 전쟁하듯 일중독, 완벽주의에 빠지면서 마음이 죽어버린 것이다. 남탓을 하게 된다. 남탓을 한다는 것은 냉정하게 보면 '내가 잘못이 없다.' ' 기다리겠다.' ' 나는 움직이거나 행동하지 않겠다.' ' 네가 바뀌지 않는 한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겠다.' ' 나는 나를 바꿀 마음이 없고 그럴 능력이 없다.' 라는 자기암시가 되어버린다. 물론 타인으로 인해서 내가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서 평생 타인(부모, 자식, 친구등)을 원망하며 어두운 감옥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이 또한 게으름이 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감나무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누군가가 부러뜨렸다. 그렇다고 다시 사다리가 올려지기를 기다리거나, 사다리를 부러뜨린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이 꼭 정답일까? 아쉽지만 내가 사다리를 수리하거나 올라가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 난 그 사다리가 없으면 영원히 감나무위에 올라가지 않을거야 ㅠㅠ " " 네가 부러뜨렸으니 빨리 고쳐놔서 원래대로 해 놓으란 말이야. " 3. 스스로 무능력한 존재라고 생각 자신에 대한 착각일수도 있다. 내 자신에 대해서 너무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로 인해서 마치 영원히 실패할 인생이 될 것처럼 미리 예단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미리서 무능력한 존재로 규정을 해 버리면 그때부터 하고 싶은 것도 사라지고, 해야 할 일도 없어진다. 그래서 하루종일 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채 멍하니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는 무능력한 존재가 아니다. 그동안 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지 않았을 뿐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에 대해서 규정할수가 없다. 당신은 무능력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4. 삶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 꿈과 희망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힘들어도 달린다. 그러나 갈 곳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맴돌게 된다. 어느시점에 자신의 꿈이 꺽여서 무기력해질수도 있고, 노력을 했는데도 안되어서 자신감이 떨어질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꾸며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물어봐야 한다. 큰 목표가 아니더라도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일단 도전해서 달성해보자. 서서히 시동을 걸다보면 다시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의 욕심을 너무 부려서 아니면 겁을 잔뜩 먹어서 그 목표가 잠시 구름에 가려졌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5. 지나친 완벽주의자는 결국 무기력이 찾아온다. 나와 같은 경우에는 일중독에 조금 가깝게 살아왔다. 그래서 다소의 게으름(여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한다. 지나치게 열심히 살게 되면 결국 숨이 막히게 될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포기하거나 절망하게 될 확률이 높다. 게으른 자는 고속도로에서 주행하지 않고 그대로 멈춰있는 것과 같다. 지나친 완벽주의자는 휘발유가 떨어져가는데도 여전히 급하게 과속을 하는 것과 같다. 달릴때는 열심히 달리고 지쳤다 싶을때는 휴게소에 들려서 음식도 먹고, 잠시 잠도 자고, 휘발유도 충전하는등의 여유가 필요한 법이다. 게으른자는 축 늘어져서 숨을 쉬는건지 안쉬는건지도 모를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이며 일중독에 빠진자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눈에 불을 키며 달려가는 불안한 상태가 된다. 결국 균형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결국 자신이 힘들어지고 주변 사람마저 고통을 받게 된다. 6. 우유부단..겁을 먹었는가? 게으름의 심리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나쁘다, 정신을 못 차렸다고 말하기가 참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왜냐하면 심리적인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자신 또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겁을 먹어버리면 앞으로 나아갈수가 없다. 내가 귀신을 무서워하는데 갑자기 눈 앞에 귀신이 나타났다고 생각해보라. 당장 눈을 감아버리고 순간 얼음이 되어버릴 것이다. 제발 귀신이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난 그저 가만히 기다릴뿐 ㅠㅠ 그런 두려움속에서 나타난 심리상태중 하나가 바로 게으름이다. 게으른것이 좋은 것이 아니지만, 그런 심리과정속에서 게으를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또한 두려움과 죄의식이 많다면 이 또한 게으름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겁이 많으면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이미 심리가 위축되기 때문에 어린아기처럼 엄마를 마냥 기다려야 한다. 죄의식이 많다는 것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기 때문에 벌을 주고 싶어하는 심리가 많다. 그러기 때문에 어두운 감옥에 자신을 가두어버리게 된다. 자신을 죄인취급 해 버리면 외부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갈수가 없다. 스스로에게 많은 죄를 부여하지 말자. 미안하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씩 갚으면 그만이다. 이처럼 한 개인의 게으름은 참으로 위험하다. "젊었을때 태만하자는 늙어서 도적이 된다." 처럼 게으름은 단지 행동의 느림, 부지런하지 않음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게으름을 포함한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나 사기꾼의 행동은 아주 부지런하겠지만 마음상태는 아주 게으르다는 것이다. 스스로 열심히 땀 흘려서 벌 생각은 하지 않고 쉽게 벌기 위한 사악한 마음이 가득하다. 어찌보면 이 사회에 나쁜짓을 하는 사람들은 심리의 게으름이 있는 것이라 할수 있다. 쉽게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하고, 남의 것을 쉽게 사기쳐서 내것으로 만들려고하고, 약자를 괴롭혀서 내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다. 결국 게으름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까지 고통으로 빠지게 하는 아주 위험한 마음의 병이자 중독이라 할수 있다. 게으름은 결국 후회, 배고픔, 좌절, 절망등의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no title)
✿ 살만하니 떠나는게 인생이다 ✿   사람이 태어날때는 순서가 있지만 세상 떠날때는 가는 순서가 없습니다. 5분후를 모르는 것이 인생사 입니다.    천년 만년 살 것처럼 발버둥 치며 살다 예고도 없이 부르면 모든것을 다 두고 갈 준비도 못하고 가야만 합니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진자나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어 구걸해 먹고 사는 자나 갈때는 똑같이 갈 준비도 못하고 빈손으로 떠나가야만 합니다.    천년 만년을 살 것같이 오늘 못한것은 내일해야지 내일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되지 기회는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다 보니 부모와 자식의 도리 인간 도리를 못했으니 앞으로는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 보니 삶을 즐기지 못해 이제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고 가보지 못한곳 여행도 하면서 즐겁게 살려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예기치 못했는데 떠나야 할 운명이 오면 갈수밖에 없어 이제 살만 하니 떠난다고 아쉬워하는 것이 인생사 입니다.    내일은 기약이 없으니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지금껏 하지 못한 일들을 하여 내일 떠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갑시다.    과거는 지나 버렸고 미래는 기약이 없으니 오직 존재하는 것은 현재입니다.❀❀  
극사실주의 인형의 대가 'michael zajkov'
안녕하세요 여러분 :) 오늘의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릴 작가님은 극사실주의 인형을 만드는 러시아의 작가 michael zajkov입니다 ! 먼저 작가님의 작품을 조금 살펴볼까요 ? 여러분 저 디테일한 손과 미세하게 비치는 혈관 보이시나요. . . 디테일의 정점을 찍으셨어요 *_* 와 이 사진은 정말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요 +_+ 그렇지 않나요 ? 주근깨 표현 진짜 어마무시하죠 +_+ 작가님의 인형들은 언제나 피부표현이 예술 ! 미세한 눈가 주름부터 눈썹결까지... 정말 완벽하지 않나요 ?! 청초하게 내려다보는 시선. . 얇은 피부표현과 반짝이는 입술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 같은 비주얼이죠? <3 자 이렇게 리얼하고 아름답고 무서울정도로 사실적인 인형들,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_* 그래서 작가님의 작업 과정을 준비해봤어요 ! 일단 작업의 밑바탕이 될 실사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쓱싹 쓱싹 스케치를 진행 ! 호일을 뭉쳐 골격을 만들어 주고 그 위에 점토를 덧대고 눈알을 넣습니다 ! 그리고 계속 점토를 덧붙여 콧대와 광대, 입술의 굴곡을 만들어줍니다 :) 이목구비의 위치가 대충 잡혔다면 그 뒤로는 계속해서 묘사를 진행해요 +_+ 부드럽게 피부 표면을 갈아 지문과 요철을 깔끔하게 마무리합니다 ! 표면이 정리되었으면 사실적인 피부 표현을 위해서 붓등을 이용해 미세한 주름을 넣어줍니다 :) 새필로 눈썹과 피부 채색 진행 ! 속눈썹을 한올 한올 심어줍니다 :) 제일 놀랐던건 한 땀, 한 땀 머리카락을 심어주는 것 ! *_* 어느 세월에 저걸 다 심을 수 있죠. . . ? 이런 작업을 거쳐 완성된 작품 ! 똘망 똘망한 여자아이의 눈빛을 보세요 *_* 은은한 주근깨와 턱의 보조개, 다부진 입술 . . . 금방이라도 영국억양으로 앙칼지게 말을 걸 것 같지 않아요 ? 리얼리티 넘치는 michael zajkov 작가님의 작품을 더 만나보고 싶다면 아래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참고하세요 :) 작업하시는 영상도 확인하실 수 있어요 !
80년대 서울대 물리학과 리즈시절 썰.txt
아는 사람은 아는 80년대 S 대 물리학과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그 학과는 학력고사 평균 성적이 전국 최고 수준이었고 그 중에서도 진짜 공부를 좋아하는 괴짜들만 모여 있었던 전설의 학과 였습니다. 졸업 후 진로를 우선시 하는 지금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이제는 다시는 그런 친구들이 모인 학과가 생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났을 때 여기 그 당시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 보려고 해요. 1. 처음 입학했을 때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서로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경시대회 (지금의 수학올림피아드)전국 대회에서 입상한 친구들이 모두 우리 과에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승자가 두 명이었다. 알고 보니 한 친구의 학교 교장이 입상자 수를 늘리려 이과인 친구를 문과로 출전시켰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과와 문과로 나누어 시합을 했다.) 2. 신입생으로 아직 서로 서먹할 때 과방(당시에는 과라운지라 했다)에 친구들이 모여 떠들다 아이큐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아이큐가 높다고 나름 자신하고 있었는데 대화 중 한 마디도 못했다. 모여 있던 10명 정도 친구들이 바로 위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 아이큐 150 안되는 사람이 있어?" 150은 당시 만점이었는데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한 학년 900명의 나름 유서 깊은 고등학교였지만 아이큐 140 이상은 두 명 뿐이었다. 한 명이 나였고 다른 친구는 같은 대학 화학과에 입학했다. 900 명중 150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거기 모인 10명이 나만 빼고 모두 만점을 받았던 것이다. 그 중 두 명은 전문 기관에 불려가 정밀 검사를 다시 받아 자신의 아이큐를 알고 있었다. 한 친구는 168이었고, 다른 여자 동기는 167이었다. 168인 친구는 우리 과 꼴지로 학점 미달로 퇴학했다. 여자 동기는 성적이 중 상 정도였다. 3.  한 학년 후배가 있었는데 실제 나이는 우리와 같았다. 같은 대학 법대 합격했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바로 자퇴하고 다시 우리 과에 합격한 친구다. 그 친구 4학년때 내가 조교를 했는데 시험을 너무 못 봐서 불러 물어보니 자기는 수학과 대학원으로 합격했고 D+ 만 받아도 졸업은 가능해서 괜찮다고 여유를 부렸다. 교수님 성향상 너는 무조건 D- 라고 말해 주니 그제서야 사색이 되어 교수님 찾아가 사정했지만 결국 졸업을 못했다. 그 친구 졸업 기수가 44회였는데 졸업 예정자가 4445명이었으나 그 친구가 졸업 못하는 바람에 4444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4. 후배 중에 졸업하고 미국 명문대 대학원에 합격장을 받은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병역문제가 걸려 재검을 기다리느라 유학을 가지 못했다. 몇 달 후 도서관에서 그 후배를 마주쳤는데 유학이 미뤄지자 시간 나는 김에 다른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 후배는 그 다음 해 사시에 수석을 했다. 그 친구 때문에 사시는 1년만 공부하면 수석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과에 퍼졌었다. 5. 당시만 해도 우리 과에서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모두 대학으로 갔다. 교수가 되어 연구를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고나 할까. 성적이 중위권서부터 L 전자나 S 전자로 갔었다. 그 친구들이 당시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S 전자 사장이 매년 물리과 대학원 신입생들을 용인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에 초청해 회식을 했었다. 우리도 거기 불려가 저녁을 먹었는데, 식사 자리에서 사장이 연설을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S 대 공대생들은 병역특례가 끝나도 대부분 회사에 남습니다. 하지만 물리과 졸업생들은 대부분 병역특례(당시 5년) 끝나면 떠나버립니다. 아마 여러 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 얘기에 우리는 조금 당황했었다. 그 뒤에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물리과 졸업생들이 5년간 회사에 한 기여가 다른 사람들이 평생 근무하면서 한 일보다 더 많습니다. 5년후에 떠나도 상관 없으니까 부디 우리 S 전자로 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진짜 레전드네... 저 때 저 사람들은 지금 다 뭐하고 있을까...
내가 만들었지만 단짠 중에 킹 오브 갑
올 6월엔가 출시한 스타벅스 밀크 블렌디드 with 포테이토를 드셔보셨나요? 밀크 블렌디드에 알 수 없는 감자와 주황색 소스가 뿌려져 있는데 평범할 수 있는 밀크 블렌디드에 잘 어울려서 맛있게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음료는 그 때 마셨던 그 음료가 아련하게 기억이 나서 만들게 된 야매 밀크 블렌디드 위드 포테이토 되시겠습니다. 일단 소스부터 만들어 볼까요? 우유 조금에 머스타드를 넣어요. 저는 집에 홀그레인 머스타드가 있어서 이걸 넣었는데 일반 머스타드를 추천 드려요. 겨자씨가 씹히는데 잘 어울리진 않더라구요. 치즈도 넣고 약불에 저어가며 끓여주시면 돼요. 치즈가 좀 더 주황주황 했으면 소스 색도 주황색을 띄면서 좀 더 보기 좋았을 것 같아요. :/ 겉에 거품이 뽀골뽀골 올라올 즈음까지 저어주시면 되고, 불을 끄고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혀주세요! :) 음료 위에 올릴 포테이토를 준비 합니다. 저는 초록색 포카칩을 준비 했어요. 어떤 감자칩을 준비해도 상관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짭짤한걸루다가....ㅎ 도구 또는 손으로 잘게 부셔주세요. 저는 손으로 ASMR 이거니 하면서 뿌셔뿌셔 했는데 부서지면서 뾰족해진 부분에 손가락을 찔렸는지 저녁에 손가락이 부었더라구요. 도구를 사용 하시는걸 추천 드려요. 감자칩을 뿌시다보면 냉찜질을 받은 소스가 식었을 거예요! 차게 식은 소스를 지퍼백에 담아주세요. 담고 나서 모서리를 살짝 잘라주세요. :D 준비는 모두 마쳤으니 밀크블렌디드만 만들면 끝! 블렌더에 우유를 콸콸콸 여기에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설탕을 넣고! 갈아줍니다! 리얼 블렌디드 느낌이 나게 하시려면 우유를 적게 넣고 아이스크림을 많이 넣으시면 돼요. 아니면 얼음을 넣어도 되구요! 유사 라떼가 된 밀크블렌디드를 컵에 담고 위에 지구 대신 뿌신 감자칩을 소복하게 올려주세요. 준비해둔 소스를 뿌리링 해주시면 완성입니다! >< 홀그레인 머스타드에 들어있는 겨자씨가 지퍼백을 막아서 소스를 골고루 뿌리지 못하고.. 생각보다 많이 뿌리게 됐어요. 그러나 왕 많이 뿌렸으니 왕 맛있다는 것. 음료 따로 고명(?) 따로 먹어도 맛있고 다 섞어버려도 맛있었던 밀크블렌디드 포테이토!! 정말 맛있어서 다 마시고 난 다음에 매우 아쉬웠어요. 이렇게 여운이 남는 음료는 오랜만이였습니다... 감자칩 사와서 또 해먹어야지 해놓고 아직도 감자칩 안사온 바보.. 나야나... https://youtu.be/kkcfzhTfEGY 내일은 꼭 만들어 마실 것...
(no title)
빨간날엔 역시 핑크빛 사랑썰을 보는게 제맛 아니겠나여? 가을엔 역시 사랑썰이라구욧 ㅎㅎ 오늘껀 마치 영화 한편을 본것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글이에여 평생 한사람만 사랑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무래도 저는 못할것같아여 헿 하지만 썰로 보니 넘나 설레고 그르네여 출처는 고대숲입니당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야, 걔 결혼한다며?” “진짜? 생각보다 엄청 빨리 하네.” “축의금 얼마 내야 되냐? 일단 우리는 다 가는거지?” “난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3만원은 좀 그런가?” 드디어 너의 사랑이 결실을 맺나싶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억지로 시간을 내 참석했던 고등학교 동창회가 아깝지 않았다. 너가 결혼을 하는구나. 웨딩드레스를 입겠구나.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싶다던 너가 몇 년뒤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겠구나. 기다림 끝에, 우리 연애가 그랬던 것처럼, 너가 결혼을 하는구나. 14살, 막 중학교에 입학했던 때였을거다. 그 때는 소개팅이나 맞선이라는 이름 대신 남소, 여소라는 말을 쓸 때였다. 그닥 친하지는 않았던 친구가 쉬는 시간에 우리반을 찾아와 소개받을 생각이 없냐고 물었었다. 네 이름와 얼굴만 알았었는데 갑자기 왜 그러냐 물었다. 친구는 대수롭지 않은 듯 그냥 여자애가 한 번 물어나 봐달라는 식으로 했다고, 문자나 해보라 그러길래 별 생각 없이 네 번호를 받아 연락을 주고 받았다. 두 달정도였나? 도서관도 같이 다니고, 방과 후 교실도 같이 신청해 다니다보니 주위에선 도대체 언제 사귀냐고 안달이었다. 너도 아마 내 고백을 기다리고 있었을거다. 같이 도서관 주변을 산책할 때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너였으니까. 엄청 더웠던 여름 날이었는데, 수학학원이 끝나고 그늘진 정자 아래에서 너랑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진지한 목소리로 네가 나에게 물었었지. 나한테 할 말 없어? 아무리 바보에 쑥맥이어도 그 때만큼은 내가 할 말을 알았다. 나랑 사귈래? 그리고 이어지는 10초간의 침묵. 넌 내 팔뚝을 꼬집으며 그 말이 그렇게 어려웠냐고 투덜댔다. 14살,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어색한 그 감정이 커지기 시작한 때였다. 손을 잡는 데에는 100일이 넘게 걸린 것 같았다. 집을 바래다 주다가 자꾸 네 손등과 내 손등이 스치길래, 너의 엄지를 먼저 감싸고 살짝 떨리기에 나머지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그 땐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집 앞에서 손만 5분은 넘게 잡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우리는 동네 공식 커플이 되어있었다. 1000일이 넘게 사귄 커플은 그 또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사이좋게 1지망부터 마지막까지 같은 학교를 적어냈고 운 좋게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받았었다. 야자가 끝나고 가로등 밑에서 살짝 입을 맞춘 것, 쉬는 시간이면 네 교실로 가 엎드려 자는 너를 바라본 것, 손 잡고 매점 주위를 돌던 것, 수학여행 날 방에서 빠져나와 너가 내 어깨에 기대 제주도 하늘을 바라본 것. 모의고사날 야자가 없으면 카페에 가 오답노트를 만든다면서 결국엔 네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얘기만 한 것. 나는 내 고등학생 시절을 몽땅 너로 채웠다. 수능을 볼 때쯤 우리는 6년차 커플이 됐다. 부모님끼리 안부도 주고 받고 명절이면 서로의 집에 가 명절음식을 먹고 세벳돈도 받았었다. 난 어느 순간부터 너의 부모님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두세달에 한 번은 자고 오기도 했다. 그 때부터 난 너와 결혼하면 어떨까란 상상을 한 것 같다. 수능날 아침을 먹고 체했던 나는 수능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반면 너는 생에 최고 점수를 받아 그토록 원하던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했다. 난 원서를 쓰지 않았다. 꼼짝없이 재수를 할 판이었다. 너가 합격증을 받고 난 학원에 등록하고 나자 네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넌 내 손을 꼭 잡아주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정말 넌 일주일에 세 번은 학원 앞에서 날 기다리고 모의고사 날이면 간식을 잔뜩 싸오고, 내가 답장이 없어도 그날 뭘 먹었는지, 뭘 하고 있는지 꼬박꼬박 알려주었다. 너 덕분인지는 몰라도 난 이 학교에 오게 됐다. 합격소식을 들은 난 가장 먼저 너에게 전화를 했다. 난 울지 않았는데 넌 전화 너머로 펑펑 울었었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나도 답했다. 내가 더 사랑하고 더 고맙다고. 새내기인 나, 2학년이었던 너. 미팅이 그렇게 재밌다는데 한 번 나가보라던 너. 내가 장난으로 진짜 나간다? 라고 말하자 잔뜩 삐져 실컷 나가라던 너. 내가 어떻게 미팅을 나갔겠었어. 동기들에게 나는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떠들고 다녔었는데말야. 남들은 새내기 때 술을 배우고 사람을 배운다지만 난 너에게 사랑을 배웠다. 사실 7년전부터 가르쳐줬던 너지만 2000일을 채우고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설렘이, 다정함이, 뜨거움이 나는 늘 신기했다. 사랑이란 단어는 흔하지만 난 그 단어를 생각하면 그냥 너가 떠올랐다. 1학년을 마치고 그 다음 해 2월 난 입대했다.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넌 대수롭지 않게 ‘그냥 여행간 셈 치지 뭐.’ 라며 호국요람 글자 밑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네 부모님께 들은 말이지만 넌 일주일 넘게 밥도 못 먹고 펑펑 울기만 했다면서. 나도 똑같았어. 10시에 누우면 울며 뒤척이다가 12시가 넘어 잤고 처음으로 포상전화를 한 날은 5분동안 너가 한 말을 한 단어도 빠짐없이 되새김질했어. 수료식날은 무슨 상견례도 아니고 너의 부모님과 너, 우리 부모님이 모두 와서 마치 약혼식이라도 하는 듯 했지. 왜 이렇게 탔냐며 네 화장품을 꺼내 나에게 발라주던 손길, 하나라도 더 먹고 들어가라며 음식을 떠먹여주던 너의 어머니, 너가 그냥 내 아들해라 라던 너의 아버지, 질세라 너에게 그냥 내 딸 하라던 우리 아버지. 난 그 날 나에게 다른 가족이 있을수도 있단 걸 알았어. 휴가 때마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며 얼굴만 비춘 뒤 너에게로 달려갔지. 신병위로휴가, 1차정기, 포상, 2차정기.. 휴가 때 너 얼굴을 보지 않은 날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군인일 때 받은 편지는 200통이 꼬박 넘어갔다. 선임들은 진짜 결혼하라며 자기들을 꼭 불러 달라 했었다. 넌 우리 부대에서 꽤나 유명인사였다. 제대하는 날 넌 말없이 날 꽉 안아주고, 조용히 울며 수고했다고 토닥였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펑펑 울면서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엄청 많았는데 막상 네 얼굴을 보니 딱 그 말밖에 나오지 않더라. 10년이란 시간은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확인의 시간이었다. 10년동안 어떻게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아직도 손을 잡을 때면 난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걸까. 너의 집에 찾아가 큰 절을 올리고 넌 또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고. 한 달 뒤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고. 신혼여행으로 칠지 말지 다퉜었다. 나는 찬성, 너는 반대. 나와 신혼여행은 무조건 유럽으로 가야된다고 우겼던 너. 왜냐고 물으니 일본은 너무 가깝단다. 재수 1년, 군대 2년을 기다렸는데 일본은 너무 가깝다고 우겼던 너.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래, 너가 가고 싶던 프랑스도 가고 영국도 가자라며 열심히 돈을 벌겠노라 약속했다. 가끔 사람들이 묻곤 한다. 너에게도 묻곤 한다. 한 사람이랑만 연애한게 아깝지 않냐고. 그럼 우린 미리 말을 맞춘 것도 아닌데 똑같은 대답을 한다. 아까운데, 솔직히 아까운데, 너무 확실하다고. 3000일, 또 10년을 훌쩍 넘겨 20년은 챙길까 말까 고민하는 지금도 이 사람을 사랑하는게 확실하다고. 다른 사람이랑 있는 걸 상상하면 도저히 내가 내 자신이 아닌 것 같다고. 난 네가 없는 나를, 아니 내 삶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너와 보낸 봄부터 겨울까지, 10번이 넘어가는데 어떻게 내가 너 없는 봄의 벚꽃을, 여름의 햇살을, 가을의 단풍을, 겨울의 눈을 생각할 수 있겠어. 이제 너와 안 해본 건 결혼 하나가 전부인데. “야, 너 결혼 한다며?” ㅡㅡㅡㅡㅡㅡ 크... 마지막 소소한 반전까지 귀엽다 ㅠㅠㅠ 그나저나 저도 요런 사랑썰 한번 맛깔나게 써보고싶은데 아니 얘기할 썰이 있어야 풀지 참내... 풀만한 이야기 있는분덜 없어여? 내미친 사랑은 여기까지였다!!! 하는 분덜 없으신가여?ㅋㅋㅋㅋㅋㅋㅋ @wens @adlin 혹시...?ㅎ 내 비록 나나연이지만 사랑썰은 좋아한다구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