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mol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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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맛집기행 : 돌아온 몸보신의 계절

할롱! 직장인 프레지던트 난몰랑 등장! 후후
여러분 한 해의 반이 호다닥 지나버린 지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직장인들에게 가장 필요한건.. 몸보신이 아닐까...허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요즘 번아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피곤에 쩔어사는 제 마음의 소리..

학생들은 방학이라도 있지.. 우리같은 직장러들에게 쉴 수 있는 방법은 퇴사뿐인지라.. ㅇ<-<
쉴 수 없다면 음식으로 건강이라도 챙겼으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득 담은 이번 맛집 추천 카드의 주제는 바로바로 ....

직장인이여, 번아웃 물리치자! 🔥

여러분의 텐션 🆙 보양식 맛집은 어디?✨

(쓰읍 이미지가 좀 징그럽나? 저는 나름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후후)


한숨이 푹- 나오는 번아웃을 물리치기에 딱! 좋은!
이것만 먹으면 철야 따위 두렵지 않게 해주는 여러분이 선택한 최고의 보양식은 무엇인가요?

저부터 소개해보자면.....

뱅뱅사거리에 위치한 켄홈1991 이라는 이자카야입니다!
회사에서 꽤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 했거나, 계속되는 야근으로 몸과 마음이 다 지쳐버렸을 때 꼭 찾는 저만의 힐링 플레이스 입니다..

'으엥? 얘는 뭔 이자카야에서 몸보신을 한다는겨;' 라는 생각이 드시죠? 후후후
하지만 켄홈의 특.오.뎅을 만나본다면 과연 그런 이야길 할 수 있을까? (쿸)

꼬치 꼬치 푹푹 꽂혀있는 오뎅과 그릇이 좁은지 삐져나오는 고니와 이리 ㅜㅜ 그리고 바닥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스지, 짭쪼롬하고 진득-한 노른자를 반짝이며 날 바라보는 겨란까지……..
거기다 라스트팡으로 한마디 던져야죠!
“사장님 여기 안동소주 한 병이요!”
~ 게임 끝 ~
시원한 안동소주 한 잔과 특오뎅의 녹진한 국물 한 숟가락만 있으면….캬~!~!~!
[System : 난몰랑님의 HP가 1,000,000% 충전되었습니다.]
저는 뭐 좋다는 보양식 다 필요없더라고요.. 그냥 이 맛에 살랍니다 껄껄!

이제 철야와 야근으로 지친 심신을 위로해주는, 피곤할 때 꼭 찾게되는 여러분만의 보양식을 추천해주실 시간입니다!

현기증 나니까 빨리 알려주세요~~~~~


후후 맥주방, 빙슐랭방 빙글러들 파.워.태.그
맛난거 매일 혼자 먹지말고 우리 같이 좀 먹어요잉♥︎



(+ 지난 고기 맛집 추천 카드 정리)

@iwannagotohome님이 추천해주신 약수의 금돼지 식당!
크 고기 두꺼운거 보이시나요 ㅜㅜ
한입 한입에 육즙 퐝퐝 터지겠죠..?
약수역에 은근 맛집이 많은 것 같아서 조만간 투어가볼 예정입니다 후후
@bahaah님이 추천해주신 고앤고!
아니 대체 무슨 일이죠 ㅠㅠ 이렇게나 두툼한 양질의 돼지고기 집을 연달아 소개받다니..
심지어 관악구면 우리동네잖아!!!!!!!! 바로 가보겠습니다 ^^7 감사감사
@real896pc님이 추천해주신 백궁 양꼬치..!!!
세상에 이 가게는 알고있는 분이 또 있었다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백궁은 진짜 저의 숨겨둔 맛집이었는데 동지를 만난 느낌 후후! 다음번에는 꼭 맥주솥을 드셔보세요 얼큰~하니 속풀리는 느낌이라 스트레스 개.박.살 각입니다요!
@laco00님의 추천은 안양에 위치한 울릉도 오징어보쌈!
오징어 보쌈 진짜 신박하고 맛있죠 ㅜㅜ 오징어와 무를 잔뜩 집어서 쌈위에 올리고 콩나물과 함께 싸서 먹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매콤한지… (침 꿀꺽)
동해는 가봤으니 꼭 울릉도 오징어 보쌈 가보겠습니다!
@luvnety님의 추천은 영향이라는 심야식당이네요! 독산동에 위치한 가게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맞다면 허억허억 비주얼 작살이던데.. 더 자세한 정보 댓글이나 카드로 알려주세요오오옹!!
@Voyou님이 추천해주신 고기집은 바로 돼지연구소!
와 특수부위 너무 맛있을 것 같지 않나요?
맛있게 먹는 방법도 알려주셔서 도전 의지가 활활 타오릅니다 후후…. 꼭 먹고말테야!!


자! 오늘의 카드는 여기까지!

여러분 좋아요만 누르고 가지 마시고 맛집추천도 툭! 던져주시고 가세요 (굽신굽신)

우리 직장인들의 빅데이터를 위하여 아자아자🔥



3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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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에 있는 미덕원이란.곳인데 오리탕이에요 진흙구이도 맛있어 보이는데 미리 전화해서 예약해야 되더라구요 주말엔 웨이팅 한시간 기본이라 가서 주문하고 기다리면 될 듯해요^^
@soozynx 와우 비주얼 작.살👍👍👍 이제 초복인데 몸보신하기에 정말 적절한 메뉴 초이스네요 ㅜㅜ 녹진한 국물에 오리고기 싸악 발라서.. 와압 먹고싶어요..
@nanmollang 몰랑님 내일 몸보신 하세요~~^^
@soozynx님도 내일 건강하고 맛있게 몸보신 하시길 바라요! 😘
맨날 눈팅만 하는데 오뎅 스지 넘나 맛나보이네요 !!!!! 저희는 아기가 있어서 외식을 못하고 ㅜㅜ 더운날 힘든 남표니를 위해 집에서 해묵었습니다 집에서 먹어도 맛나는 아롱사태수육 ㅎ
@mingran2129 히야.. 아롱사태 수육이라니 ㅜㅜ 금손이시네요!!! 비주얼 진짜 오지고 지리고!!!!!!! 부추도 듬뿍 들어가서 몸에도 좋겠네요 최고최고 👍👍👍
타코 댓글 보고 저도 타코집 다녀온 기억이 나서 올려봅니다ㅎㅎ AK&홍대에 있는 훌리오에요! 저녁시간이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하다는 소문만큼 사람이 되게 많더라구요. 증말로 가성비 짱짱..👍 둘이서 제일 작은 사이즈로 먹었는데도 배불러서 배 퉁퉁 치며 나왔네요ㅋㅋㅋ 홍대 맛집 찾으시는 분들~~ 여기 추천합니다!
@foswl6507 히야 훌리오 좋지요 ㅠㅠ 전 강남으로 몇번 가봤는데 늘 대만족하고 나옵니다! 또먹고싶네용!
뭐 보양식이 따로 있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음식 땡길때 바로 먹고 기분좋게 배부르고 행복함을 느끼면 그게 보양이지요. 그런의미로 Lengua Taco & Burrito combo투척하고갑니다. 위치는 Torrance 지역에 있는 Taco Sinaloa 입니다. 나름 이 주변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지요.
@michaelxxx1076 우와 뭔가 무심한듯 엄청 실하네요 ㅜㅜ 나 왜 한국이지... 부리또 엄청 크게 한입하고 싶어요 엉엉
전 손님 모시고 마땅히 갈곳이 마땅찮을때는 갈비찜 먹으러 갑니다. 울산에 신촌 설렁탕 이라는 곳인데 뼈따라 젓가락이나 가위질 한번 해주면 뼈랑 고기가 홀라당 벗겨집니다. 애들은 갈비탕이나 맵지않은 갈비찜으로 시키면 식사 끝날때까지 조용해요.ㅋ 남자들은 도가니탕을 곧잘 먹지만 여성들은 갈비찜 시켜두면 거의 만족하는 편입니다. 술 좀 먹는다는 사람치고 여기 안들려보는 이들은 잘 없을겁니다.
@roygi1322 크 부드러운 갈비살을 옴뇸뇸 발라먹고 국물에 김가루 팍팍 넣고 밥 볶아먹고 싶네요 허억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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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산 허지웅편 보고 많은 생각 든 염세주의자들.
개인적으로 허지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주 싫어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혈액암 투병을 하다가 완치 되어서 나혼자산다에 돌아온 허지웅의 모습이 굉장히 의외였음. 예전에 뾰족뾰족하던 염세주의자 느낌은 많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 둥글둥글해지고 많이 밝아지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였음.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싶다고 하고. 나도 바뀐 모습을 보고 굉장히 놀랐었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염세주의자들이 허지웅을 보고 놀란 것 같음ㅋㅋㅋㅋ 도움 받을 용기라.. 허지웅 방송분 암으로 투병할 때도 어머니나 동생 그 이외에 다른 친구들도 절대 오지 말라고 하고 거의 모든 과정을 혼자 감내했다고 함. + 허지웅이 2016년에 아버지와 자신에 대해 썼던 글. (스크롤 압박 주의.. 보고싶은 분만 보시길) 나를 '혼자'로 만드는 남자, 아버지 / 허지웅 살다보면,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3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베리 스위처 감독이 말했듯이 말이다. 아무튼 3루에 누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재수가 없어도 내버려둔다. 심지어 3루 말고는 어디도 가본 적이 없는 그를 향해 응원을 한다. 그가 홈으로 무사히 들어와 점수를 낼 수 있도록 편의와 우선권을 제공한다. 어찌됐든 그는 3루에 있으니 말이다. 마침내 기회가 온다. 평생 삼진 아니면 파울만 쳐대던 무명의 노력파 타자가 2루타를 쳐냈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인생에 허락된 단 한 번의 완벽한 안타다. 2루타를 쳐낸 무명의 타자는 아깝게 태그 아웃 당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점수만 만들어준다면 상관없다. 모두의 시선이 3루로 모인다. 지금이다! 뛰어! 점수를 내줘! 3루에서 태어나 평생 3루타를 친 것처럼 굴었던 자가 느지막하게 뛰기 시작한다. 그런데 조금 뛰는가 싶더니 도로 3루에 돌아와버린다. 다소간의 야유가 있었으나 3루에 주자가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냐는 집단 지성에 의해 소동은 금세 잦아든다. 경기가 끝난 후, 평생 단 한 번의 완벽한 2루타를 쳐낸 동료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묻는 기자를 향해 그가 말한다. “아프니까 이루타죠. 천번을 흔들리면 언젠가 그도 저처럼 삼루타를 칠 수 있지 않을까요.”(엄지 척) 이런 ‘우사인 볼트 기립근 염려해주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왔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내가 그런 사람들과 결과적으로 다른 게 뭔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한번은 아버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똥을 싸다가 문득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연락을 했다. 문자를 보냈고, 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버지와는 중학생 이후로 왕래가 없었다. 그날 아침 내가 왜 갑자기 찾아갈 생각을 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버지를 만나 대답을 들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 대답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도 잘 살아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원주는 추웠다. 아버지는 원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하고 있었다. 터미널 앞에서 만났다. 중학교 시절에 멈춰 있는 내 기억 속의 아버지 차는 언제까지나 하얀색 엑셀이었는데 다른 차를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만남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 둘 다 이런 종류의 만남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가 이 만남에 대해 내심 꽤 감동하고 있으며, 내게도 같은 종류의 감동이 전해지길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뜨거운 화해를 하러 거기 간 것이 아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사무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전공분야에 관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어색하고 거대한 구멍을 메우기 위한 용도였지만, 놀랍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반강제적 ‘독립심’에 발버둥치다 도움이 필요하다 말할 능력도 호의를 받아들일 능력도 잃었다 독선만 남은 건가, 너무 두렵다 군대를 전역한 뒤 돈이 없어서 복학을 하지 못하고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다가 탈진을 해서 쓰러진 날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고시원 앞에서 소주 두 병을 억지로 한꺼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정말 피가 났다. 도움을 구걸한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모멸감이 느껴졌다. 아버지 도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언제까지나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백기를 들고 전화를 한다는 게 끔찍했다. 그 와중에 소주는 알코올이니까 이 상처가 소독이 되어서 덧나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버지가 교수로 있는 대학교에서 자녀 학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나중에 전부 갚을 테니까 제발 등록금을 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월세와 생활비는 내가 벌 수 있다, 당장 등록금만 어떻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예상되는 상대의 답변이 있을 때 나는 그 답변을 듣기 싫어서 최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버릇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등록금도 갚고 효도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등록금과 효도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아버지가 대답을 했다. 그날 원주의 사무실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식을 부양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왜 등록금마저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후회하고 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 입에서 후회라는 단어를 목격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후회하고 있다, 는 말은 짧은 문장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왜 내가 아버지에게 미움 받아야 하는지였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학교에서 공짜로 나오는 학비 지원금마저 주고 싶지 않을 만큼 미웠는지 하는 것 따위 말이다.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나는 반평생 슬프고 창피했다. 그래서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남의 눈치 보면 지는 거라고 위악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쿨병’이니 뭐니 안 좋은 말이 쌓여갔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남에게 결코, 다시는 꼴사납게 도움을 구걸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만 버텨 살아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후회하고 있다는 말로 내게는 충분했다. 삶이란 마음먹은 대로 안 되기 마련이다. 아버지도 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후회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후회하고 있다는 그 말에 나는 정말 태아처럼 안도했다. 아버지가 “그래도 니가 그렇게 어렵게 산 덕분에 독립심이 강한 어른이 되어서 혼자 힘으로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의 만남은 그걸로 끝이었다. 아버지를 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연락이 몇번 왔지만 받지 않았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자신도 어렸을 때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친구 같은 부모 자식 사이가 되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아, 자신이 원하는 어른으로 나이 먹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살다보면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3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내가 딱히 나은 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심지어 3루에서 태어난 것도 3루타를 친 것도 아닌데 ‘아무도 필요하지 않고 여태 누구 도움도 받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혼자 힘만으로 살 수 있다’ 자신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자신감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 와서야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어떤 면에선 아버지 말이 맞았다. 그게 누구 덕이든, 나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컸다.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멀쩡한 척 살아왔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혼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좋은 어른은커녕 이대로 그냥 독선적인 노인이 되어버릴까,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허지웅 작가 [출처] 나를 '혼자'로 만드는 남자, 아버지 / 허지웅|작성자 고콩이 (ㅊㅊ - 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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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메르데쿠르
2주동안 여행을 다녀왔더니 또 집에 식량이 떨어졌네요. 유치원 째고 집에서 개기는 딸도 데리고 간만에 셋이서 마트 좀 털고 왔네요. 간만에 셋이서 그냥 집에 들어가기 거시기해서 커피나 한잔할까 하고 기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어라 한동안 기장엘 안온것도 아닌데 카페 로쏘가 있는 곳은 길이 좁고 구불구불해서 잘 안왔더니 로쏘 바로 윗쪽에 신상 카페가 생긴게 아니겠습니까... 7월에 생겼다고하니 초신상 카페 되시겠네요. 들어보니 여름이후로 손님들이 폭발적으로 몰려서 한바탕 난리가 났던 모양이더라구요. https://vin.gl/p/1052747?isrc=copylink 카페 자체가 이쁘게 생겨서 사진 찍으러 많이 오겠더라구요. 평일인데도 주차관리 하시는 분이 나와 계셨어요... 아랫쪽으로 카페 로쏘가 내려다보이네요... 딸은 한시도 잠자코 있지 않고 카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네요 ㅎ. 카운터가 있는 A동과 바로옆 B동으로 건물이 나눠져 있더라구요. B동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인데 어른들에게도 제법 가팔라보였어요. 이곳 1층 복도에 남녀 화장실이 있는데 특히 남자 화장실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변기가 다 보일 정도였어요. 화장실 앞쪽에 칸막이를 해주던가 아니면 화장실을 구석으로 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상 카페인데 아쉽게 느껴졌어요. 개인적으로 식당이나 카페를 가면 화장실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랍니다 ㅎ. 커피랑 마약소세지빵을 시켜봤어요. 커피는 소소하네요. 그런데 가격은 ㅎㅎㅎ. 갠적으로 음식에 이제 마약 같은건 제발 좀 붙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ㅡ..ㅡ
[펌] 단무지의 유래와 색에 관한 이야기
단무지의 유래에 대한 설은 매우 여러가지이다. 심지어 한국의 승려인 택암이 전파했다고도 알려져있는데 뭐 이건 같은 승려인 신미대사가 한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동급인 내용이고 전국시대 당시 일본의 타쿠앙 소호라는 승려가 만든 타쿠앙즈케라는 선식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타쿠앙은 절에서 장기간 동안 보관할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쌀겨와 소금으로 무를 절이고 버무린 뒤 항아리 담아 익히는 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이후 타쿠앙이 있던 동해사라는 사찰에 당시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방문하게 되어 대접을 해야하는데 산해진미에 익숙한 이에미츠를 위한 고기 같은게 절에 있을리가 없고 그냥 이 무절임에다 밥을 내어주게 됐다. 의외로 담백한 맛에 이에미츠가 반하게 됐고 이에미츠는 이 반찬의 이름을 물었지만 아무 이름도 없는 무절임이라는 말에 개발자인 타쿠앙의 이름을 붙혀 타쿠앙즈케 즉 타쿠앙절임 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게된다. 이 간단해보이는 무절임이 긴박한 전장터에서 밥을 제때 챙길 수 없는 병사들에게 쓸모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미츠는 이후 출병하는 병졸들에게도 통으로 허리춤에 차게한 채 전쟁을 하도록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타쿠앙’은 오랜 시간동안 일본의 대표적인 야채절임으로 전해져 왔고 쌀겨로 수개월간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인해 제작 비용이 높은 고-오급 반찬으로써 막부의 장군이나 호위무사들의 밥상에서나 볼수 있는 음식이 됐다. 그런데 원조인 타쿠앙의 색깔은 지금 우리가 먹는 단무지처럼 노란게 아니라 뒤죽박죽이었다. 앞서 말한 쌀겨로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숙성기간에 따라 무가 노랗거나 회색 또는 갈색으로 변색되는데 만드는 사람마다 색이 달라서 이게 무슨 절임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결국 타쿠앙을 만드는 사람들은 색을 통일하기 위해 치자나무 열매를 우린 물 또는 울금을 첨가해서 노랗게 만들게 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 타쿠앙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면서부터 아예 황색 색소를 이용하는 케이스가 정착해 우리가 아는 단무지 색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엔 언제부터 단무지가 나온 것일까? 일제강점기 때 명월관이라는 식당이 처음 문을 열게되는데 이 명월관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외식문화가 성행하게 됐다. 근데 당시엔 돈있는 사람들만 이런 고급식당에서 외식을 즐길 수 있었는데 주 고객이 누구일까? 바로 일본인이었다. 이 일본인들을 대접 하기 위해 고오급 반찬인 타쿠앙를 내오게 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된것이다. 중국집에서 단무지를 반찬으로 내게 된 것도 역시 일제 강점기 동안 인천에서 문을 열기 시작한 산동성 출신 중국인들의 요리집이 외식열풍으로 인해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마찬가지로 주 고객인 일본인 들의 입맛을 고려하여 내오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도 타쿠앙 이나 다꽝으로 불리던 이 고급반찬은 시대가 흐르고 급성장한 한국의 경제 상황에 맞춰 만만하고 친숙한 식재료가 됐고. 부르는 이름이 타쿠앙에서 단무지라고 변하게 되어 가장 성공적으로 일본의 잔재를 털어낸 단어가 됐다. 이렇게 한 중 일의 근대역사의 흐름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단무지는 어엿한 한국의 대표반찬이 되어 우리의 밥상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