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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랭킹씨] CNN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TOP 10'
'살기 위해 먹는 것'과 '먹기 위해 사는 것' 중 어느 게 진실(?)에 가까운지 결론 내리기 쉽지 않을 만큼, 음식을 먹는 행위는 우리 삶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이토록 중요한 음식, 이왕 먹을 거면 맛있는 걸 먹는 게 좋겠지요? 이에 '친절한 랭킹씨'가 맛좋은 음식 리스트를 전해드립니다. 미국 CNN은 매년 맛있는 음식을 찾아 전 세계를 샅샅이 돌아다녔다며 '세계 최고의 음식 50선(The world's 50 best foods)'을 발표하는데요. 그중 가장 최신 버전의 톱 10 음식을 소개합니다. 먼저 10위부터 6위입니다. 10위는 아프리카 가봉의 전통요리 치킨 무암바입니다. 닭고기에 핫 칠리, 마늘, 토마토, 후추, 소금, 오크라 등을 곁들인 음식이라고 합니다. 9위는 세계 곳곳에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모두 다 한결같이 맛있는, 그 이름도 유명한 아이스크림의 차지. 8위는 새우에 향신료와 소스를 넣고 끓인 태국의 대표요리 똠얌꿍이 꼽혔습니다. 똠얌꿍은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태국 음식 1위로도 자주 거론되지요. 닭이나 생선으로 우린 매콤한 국물에 쌀국수를 넣어 먹는 말레이시아의 전통요리 아쌈 락사는 7위. 미국이 아니라 뜻밖에 독일이 종주국인, 우리와 몹시 친숙한 햄버거가 6위로 선정됐습니다. 이어 5위 이상 음식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먹을 수 있는 북경 오리가 5위로 꼽혔습니다. 잘하는 식당에서는 궁극의 '겉바속촉'을 맛볼 수 있다고 하지요. 4위는 일본의 대표요리이자 우리 식생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초밥(스시)입니다. 3위는 고대 멕시코에서 시작된,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간식 초콜릿입니다. 전 세계 음식문화 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초콜릿, 초코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2위는 피자 중의 피자, 재료 본연의 맛과 뛰어난 식감을 자랑하는 나폴리 피자입니다. 이탈리아 나폴리식 화덕에 400도 내외 고온으로 1분만 구워내는 게 특징. 한 번 맛보면 그동안 맛좋게 먹은 다른 피자들이 모두 아류로 보인다고 할 만큼, 나폴리식 피자의 풍미는 독보적지요. 그렇다면 이 엄청난 음식들을 제치고 1위로 선정된 메뉴는? 1위는 태국의 마사만 카레가 꼽혔습니다. 마사만 카레는 향신료를 넣은 페이스트와 코코넛밀크를 함께 끓여 만든 태국식 카레인데요. CNN은 "카레의 왕이자 (아마도) 모든 음식의 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이 요리를 놀랍게도 태국에서는 길거리에서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태국으로 미식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은 이유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마사만 카레를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이상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10위부터 1위까지 살펴봤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은 톱 10, 범위를 넓혀 50위 안에도 없어 다소 아쉬웠는데요. 어떤가요? 여기 등장한 먹거리 중 어떤 게 가장 당기나요? 또는 이 음식이 톱 10 안에 없다니! 싶은 여러분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 글·구성 : 이성인 기자 silee@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코너명 및 콘셉트 도용 금지>
현재 홍콩을 바라본 한 대학생의 외침
길기는 하지만 너무 명문이라 생각되어서 모두 가져옵니다 마땅히 시간이 나지 않는 분들은 클립해서 나중에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연대숲 #66147번째 외침: 콘스탄티노폴리스 1453, 광주 1980, 그리고 홍콩 2019. 인간은 현명하다. 그래서 가망이 있는 싸움인지 아닌지를 쉽게 안다. 인간은 어리석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죽으러 나간다. 인간은 고결하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한때 지중해를 빙 둘러쌌던 보편제국 로마의 마지막 조각, 그리스 끝자락의 ‘그리스도를 믿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는 이제 십만 명이 넘는 투르크의 포위군과 거대한 대포에 둘러싸였다. 이에 맞선 방어군은 7000명 미만. 교황청과 베네치아가 보내 준 극소수의 병력과 한 줌의 의용군을 제외하면, 서유럽의 수많은 나라 중 단 하나도 도시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야 했다. 50여일의 처절한 공방전 후 다가온 투르크군의 총공격 전날 밤, 그리스 혈통의 마지막 로마인들은 살기 위해 성문을 열고 메카를 향해 절하는 대신 하기아 소피아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아래에서 밤새 기도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음을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도시는 함락되었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동방 정교회 신앙을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싸우다 죽었다. 그렇게 이천년의 로마가 끝났다. 1980년, 광주. 도시는 계엄군의 탱크와 장갑차에 둘러싸였다. 학생들과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로 구성되었던 시민군의 무장은 경찰서 무기고에서 얻은 소총 수준. 도시의 모든 통신시설은 차단되었고, 당시 평시작전권까지 가지고 있던 주한미군은 계엄군의 병력이동을 알면서도 저지하지 않았다. 그 어떤 서방 선진국들도 적극적으로 개도국 한국의 한 지방도시에 대한 군사작전에 개입하지 않았고, 도시 밖에는 빨갱이들과 북괴의 특수부대가 도시를 점령했다는 거짓 뉴스가 살포된다. 이런 사황에서 계엄군과 맞서면 죽을 것이란 것은 시민군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 군필자들은 더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탱크의 궤도 소리가 들려오던 전남도청의 마지막 밤, 시민군들은 도망치는 대신 애국가를 불렀다. 민간인들이 공수부대를 당해낼 수 있을 턱이 없었으므로, 광주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저항권을 행사하다 죽었다. 그렇게 1980년 서울의 봄은 광주의 피바다로 끝이 났다. 2019년, 홍콩. 손바닥만한 도시는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에게 둘러싸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광주와는 달리, 이번에는 도시 밖의 사람들도 스마트폰으로 도시의 소식을 듣는다. 한 남자 대학생이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열여섯 살 소녀가 경찰들에게 강간당했고 한 여자 중학생은 바다에서 알몸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2019년’에 들려온다. 시위대는 진압군에게 양궁으로 화살을 쏘고, 진압군은 시위대에게 총으로 실탄을 쏜다. 10대와 20대가 주축을 이루는 시위대는 이제 각 대학의 캠퍼스에 갇혔고, 마오쩌둥 꿈나무 시진핑은 전 세계에 강경진압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영중공동선언과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정으로 보장되는 “주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치권은 홍콩특별행정구가 각각 행사한다”는 일국양제의 약속은 시진핑의 말 한마디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보아하니 지난 학기 국제법 교과서에 쓰인 문장은 실로 참되다. “국제법은 법이 아니다.” 이처럼 베이징의 결단은 명징하다. 홍콩에서 밀린다면, 타이완에서, 티베트에서, 신장위구르에서, 광시좡족 자치구에서 똑같이 밀릴 것이고 그 순간 중화인민공화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시진핑에게는 1989년 천안문을 소규모로 재현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홍콩 시위를 진압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탱크를 구룡반도로 돌진시킬 정도로 멍청한 자가 아니므로, 유혈사태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시위를 분쇄하려 하겠지만. 중국 본토를 제외한 전 세계가 홍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설 수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않는다. 워싱턴의 천자는 민주당의 탄핵 카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빨간불이 켜진 재선 상황에서 중국과 국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의 극단적인 갈등을 빚을 여력이 없다.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홍콩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개입할 의무가 있는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외무장관 시절 보여주던 보리스의 현란한 막말실력은 감히 베이징을 향하지 않는다. 유럽과 이혼중인 이빨 빠진 사자 대영제국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난 도시 하나 때문에 굴기하는 중국과 맞설 의지도 힘도 없다. 모스크바의 차르는 그의 신민들이 홍콩을 따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홍콩을 위해 힘을 써 줄 이유 같은 건 없다. 예배당과 성당에 경찰이 난입하여 시위대를 끌어내는 상황 속에서, 즉위 이래 평화를 위해 싸워온 로마의 프란치스코도 이번에는 중국을 소리높여 강하게 비난하지 못한다. 수십 년의 갈등 끝에 중국과 바티칸의 주교서임권 정교협약 물밑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라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떤 전임자들보다 미디어와 도덕성이라는 소프트파워를 잘 다뤄온 교황이 적극적으로 홍콩 편을 든다면, 안 그래도 그리스도교를 체제의 위험분자로 인식해 탄압하는 중국 정부에 의해 본토의 수천만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은 지금보다 더한 극도의 박해에 직면할 테니까 말이다. 1980년 광주를 두 눈으로 지켜본 ‘인권변호사’ 출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16년 사드배치로 인한 경제보복의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한국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도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거대한 중국과 맞서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자살행위일 테니까.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홍콩에 대한 그의 침묵을 도덕적 이유가 아니라 현실정치적 이유로 욕하기는 어렵다. 여당도 제 1 야당도 제 2 야당도 이 지점에 있어서는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이렇게 전 세계가 보고 있지만, 홍콩의 시위대를 위해 중국과 맞서 줄 세력은 없다. 시진핑은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버리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실탄사격 개시 명령을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슬프고 두렵고 안타깝지만 시위대는 아마 이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며칠 안으로 홍콩 각 대학의 마지막 저항은 진압되고, 추가적인 사망자가 나올 것이며, 중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적당히 유화적인 조치와 시위대 사면이라는 당근을 통해 세계에 변명하리라. 아마 홍콩에서 지금 시위하는 10대 소녀 소년들과 20대 남녀 대학생들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괴물 중화인민공화국을, 자신들이 ‘지금’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누리는 우리도 그들만큼 잘 알고 있다. 홍콩의 우리 또래, 우리 동생 또래들이 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서고 캠퍼스에서 농성하는지를. 그렇다면, 홍콩의 시위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일까? ‘고결한 희생’ 일 뿐일까? 결국 홍콩의 민주주의는 인민해방군의 군화발에 무너질까?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스탄불로 바뀌어, 영원히 터키의 수중에 남았다. 하지만 함락으로부터 4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하는 그리스의 동방 정교회 신도들은 ‘자유가 아닌 죽음을!’을 외치며 가슴에 도시의 회복을 품고 독립운동을 벌여 투르크와 싸웠다. 이번에는 바이런을 필두로 유럽의 열강들이 달려왔고,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되찾지 못했으나 자유는 되찾았다. 아직도 그리스에서는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폴리라고 부르며, 동방 정교회의 세계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라고 불린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그렇게 이름 그대로 그리스인들에게 영원히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그들의 마음 속 도시로 남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학살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1980년을 잊지 않았다. 그 후 7년 동안, 수많은 대학생들은 독재정권과 지속적으로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다. 대공분실에서 코로 설렁탕을 마셔야 했고, 최루탄 연기를 마셔야 했으며, 고문으로 장애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1980년 광주에서의 싸움은 전남도청의 피바다로 끝난 것이 아니라 1987년 백양로의 이한열의 피로 끝났다. 그 피로써 공화국은 다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자유의 빛을 다시 밝혀 주었다. 7. 나는 하느님을 믿는 만큼이나 기적을 믿는다. 그래서 홍콩 시위대가 승리하기를, 더 이상 홍콩의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기를,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진압 대신 타협과 협상을 선택하기를,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2019년의 홍콩 시위가 진압당한다고 할지라도, 소녀들과 소년들, 남녀 대학생들이 인민해방군의 군화에 짓밟히고 체포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그랬고 광주가 그랬듯이, 그것이 홍콩의 끝은 아닐 것이다. 만약 중국이 홍콩을 짓밟는다면, 온 세상이 ‘중화인민공화국’이 빛나는 중화문명의 계승자도, 인민을 위한 나라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국도 아닌 시황제의 진나라의 21세기 복제판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중국 대륙에서 중국 공산당에 의심을 품는 모두의 마음 속에 홍콩이 흘린 피와 눈물이 영원이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했고, 한국인들이 광주를 기억했듯. 그리고 그 기억이 결국 절망적인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그렇게 2019년의 홍콩에서 벌어지는 이 절망적인 싸움을 통해, 온 세상은 ‘빛나는 중화 문명’의 계승자들이 바다를 등지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울 때 얼마나 고결한 향기를 뿜는지를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이 아니라 마오쩌둥이 살아돌아와도, 폭력과 살육의 악취로 그 향기를 가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홍콩 사람들도 결국 가망 없는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8. 홍콩은 향항,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이다. ------------------------------------------------------------------------------ 中华人民共和国宪法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第三十三条  ....... 国家尊重和保障人权 제33조 ........국가는 인권을 존중시하고 보장한다. 第三十五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有言论、出版、集会、结社、游行、示威的自由。 제35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언론, 출판, 집합, 결사, 행진, 시위의 자유를 가진다. 第三十七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身自由不受侵犯。任何公民,非经人民检察院批准或者决定或者人民法院决定,并由公安机关执行,不受逮捕。禁止非法拘禁和以其他方法非法剥夺或者限制公民的人身自由,禁止非法搜查公民的身体。 제37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의 인신의 자유는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공민도 인민검찰원의 승인이나 결정 또는 인민법원의 결정을 거친 후 공안기관의 집행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되지 아니한다. 불법구금 및 기타 방법으로 공민의 인신자유를 불법으로 박탈 또는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며 공민의 신체를 불법으로 수색하는 것을 금지한다. 第三十八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格尊严不受侵犯。禁止用任何方法对公民进行侮辱、诽谤和诬告陷害。 제38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인격의 존엄성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공민에 대하여 모욕, 비방 및 무고, 모함하는 것을 금지한다.
중국계 자본에 속속 넘어가는 일본 전자기업들
일본 전자기업들이 중국계 자본에 속속 넘어가고 있다. ①파이오니아(홍콩펀드) ②샤프(대만 홍하이) ③도시바의 백색가전(중국 메이디) ④도시바의 PC부문(대만 홍하이) ⑤파나소닉 자회사 산요전기 백색가전(중국 하이얼)⑥ 가전양판 라옥스(중국 쇼녕전기) 등이다. ᐅ파이오니아(2018년)/ 홍콩펀드 가장 최근의 사례는 파이오니아다. 일본 음향기기 제조업체 파이오니아는 3월 27일,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서 상장 폐지됐다. 지난해 12월부터 홍콩펀드에 매각되는 수순을 밟으면서다. 파이오니아는 1938년 마츠모토 노조미(松本望:1905~1988)라는 사람이 설립한 회사다. 고베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마츠모토 노조미는 1937년 일본 최초로 다이나믹 스피커 Aー8개발에 성공했다. 이듬해인 1938년에는 ‘복음상회전기제작소’(福音商会電機製作所)를 설립했고, 1947년에는 ‘복음전기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꿨다. 1961년에는 회사 이름을 Aー8의 상표였던 ‘파이오니아’로 다시 바꿔 오늘날에 이르렀다. 파이오니아는 세계 최초로 50인치 대형 플라즈마 TV를 만든 회사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NEC(일본전기)에서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사업을 인수하면서 사업 확장을 꾀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그 인수는 소니에 디스플레이 공급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소니는 LCD 액정TV에 집중하고 플라즈마 TV에서 철수해 버렸다. 그러면서 파이오니아는 돌연 공급처를 잃게 됐다. 또한 플라즈마와 LCD액정 싸움에서 액정이 우위를 점하면서 플라즈마에 주력하고 있던 파이오니아의 실적은 급격하게 악화됐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파이오니아는 샤프, 혼다, 미쓰비시화학의 자본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실적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지난해(2018년) 12월 홍콩펀드인 ‘베어링 프라이빗 에쿼티 아시아’(BPEA)의 완전 자회사가 되는 운명을 맞았다. ᐅ샤프(2016년)/ 대만 홍하이 해외매각 사례 중 샤프의 경우는 일본으로서는 뼈아팠다. 샤프는 텔레비전 사업 부진으로 2012년부터 경영위기에 빠졌다. 샤프 측은 당초 일본 민관합동펀드 운영사인 산업혁신기구(産業革新機構)가 회생을 시켜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대만의 홍하이(鴻海精密工業: 통칭 폭스콘)가 산업혁신기구보다 더 많은 인수 금액을 제시했다. 당시 홍하이는 ᐅ사업체를 팔지 않고 ᐅ직원 고용을 보장하며 ᐅ경영진은 그대로 둔다는 제안을 하면서 샤프 인수에 성공했다. 2016년 3월의 일이다. ᐅ도시바 백색가전(2016년)/ 중국 메이디 비슷한 시기인 2016년 6월, 도시바(東芝)의 백색가전 사업이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美的, Midea)에 넘어갔다. 메이디는 하이얼(海爾)), 하이센스(海信)와 더불어 중국 가전업계 3강이다. 샤프와 도시바의 매각엔 이런 배경도 있다. 당시 산업혁신기구(産業革新機構)는 도시바의 백색사업과 샤프의 백색사업을 통합하는 플랜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만 홍하이가 샤프를 인수하면서 도시바의 백색부문은 공중에 뜬 상황이 돼 버렸다. 부랴부랴 급하게 정해진 인수 파트너가 중국 메이디였다. ᐅ도시바 PC 사업(2018년)/ 대만 홍하이 대만 홍하이의 매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홍하이 산하의 샤프는 2018년 6월, 도시바의 PC 사업 인수를 발표했다. 4개월 뒤인 10월에는 절차를 완료했다. ᐅ파나소닉 산요전기 백색가전(2011년)/ 중국 하이얼 중국 최대 백색 가전업체 하이얼(海爾)도 손길을 뻗쳤다. 2011년 10월 파나소닉 자회사의 산요전기(三洋電機)는 하이얼에 백색가전부문을 매각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듬해인 2012년 1월 매각이 성사됐다. 현재 하이얼은 ‘아쿠아’라는 브랜드로 일본시장에서 영업 중이다. ᐅ가전양판점 라옥스(2009년)/ 중국 쇼녕전기 10년 전엔 일본 가전양판점도 중국 손에 떨어졌다. 라옥스(LAOX)다. 2000년대 이후 일본 가전양판점업계의 경쟁이 심화됐다. 결국 라옥스는 2009년 중국 전자제품 유통업체 소녕전기(蘇寧電器)에 매각되고 말았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중국인 사업가 뤄이원(羅怡文)이 사장으로 취임했다. 라옥스는 중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양판점에서 면세점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때마침 전례없는 중국인들의 일본 여행 붐이 불면서 ‘바쿠가이’(爆買い: 싹쓸이 쇼핑)가 성행했다. 라옥스가 중국인들의 싹쓸이 쇼핑 원조가 된 셈이다. 업종 변경과 ‘바쿠가이’로 라옥스의 실적은 그 이후 급상승했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77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