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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서비스의 중단


인공위성 네비게이션 경쟁은 정말로 강대국들의 전쟁이다. 제일 잘 알려졌고 우리도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인 GPS는 미국, 러시아는 글로나스(ГЛОНАСС), 중국의 베이더우(北斗)가 있으며, 지역이 한정되어 있지만 인도의 NAVIC와 일본의 QZSS(참조 1)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놀이터가 우주이고, 유럽은 역시나… 시작은 화려하나 전개 과정이 대단히 부족한 형태를 5일 전, 7월 11일부터 보여줬다. 고장났기 때문이다(긴급용인 SAR(Search And Rescue) 서비스만 작동 중이다).

이유도 현재는 알려져 있지 않다. 역시 미국과 러시아, 중국처럼 정부가 운영을 했어야 할까? 갈릴레오 시스템은 EU 회원국들이 예산만 냈지, 운영은 별도의 기관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영기구는 체코 프라하에 설치되어 있고, 지상 통제국은 이탈리아 푸치노(Fucino)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아마 고장의 원인은 푸치노의 통제국에 있는 것 같다(참조 2). 현재 26개 위성 중 24개가 “깜깜한” 상태이고 원래는 내년까지 30개 위성으로 서비스를 완비하기로 되어 있었다. 심지어 작년부터 유럽에서 판매되는 차량들도 갈릴레오 시스템을 (GPS와 함께) 사용하도록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은행연합이나 이민 정책, Instex처럼 유럽의 또 다른 (현재진행형) 실패 프로젝트로 끝나버리는 것일까? 물론 (아마도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최근 시리아-레바논에서 GPS가 먹통이 되는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참조 3).

잠깐, 마크롱이 우주군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것(참조 4)이 우연이 아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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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Quasi-Zenith Satellite System의 준말이며 準天頂衛星システ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현재 무료로 위성정보를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 이 또한 소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보복”의 한 종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GPS를 쓰면 되니까 별 피해는 없을 듯 한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2. L'Europe privée du signal Galileo(2019년 7월 15일): https://www.air-cosmos.com/article/leurope-prive-du-signal-galileo-21481


4. Armées : Macron annonce la création d’un commandement militaire de l’espace(2019년 7월 13일): https://www.lemonde.fr/international/article/2019/07/13/armees-macron-annonce-la-creation-d-un-commandement-militaire-de-l-espace_5489134_32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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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뿌리치고 한국으로...조아라의 '빅 스케치'
... <사진= 조아라 디자이너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아크(ARCH) 공방을 외부인으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매체 재팬올에 공개했다. 조 디자이너 뒤로 아크(ARCH)의 특이한 CI가 보인다. ARCH라는 글자를 상하로 데칼코마니처럼 붙여서 각도를 90도 틀었다. 마치 상형문자를 보는 듯하다. 조아라 디자이너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뛰 부 트하바이에 아벡 무와?”(프랑스어: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2014년, 샤넬(Chanel)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트 디렉터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는 서른 초반의 동양 디자이너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패션업계에서 콧대 높기로 유명한 샤넬이 아무에게나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니다. 샤넬의 선택을 받은 이 동양 디자이너는 패션 명문 '파리의상조합학교' 출신의 조아라. 샤넬은 파리 패션계의 걸출한 스타 안 발레리 아쉬(Anne Valérie Hash)와 8년간 같이 일한 조아라의 실력과 평판을 익히 듣고 있었던 터다.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Central S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 출신으로, 샤넬 공방 르마리에(Mason Lemarie)를 맡고 있는 크리스텔 코셰의 눈은 정확했다. 조아라와의 협업 결과는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 프라이즈 올해의 디자이너' 수상으로 이어졌다. 수상 당사자는 코셰지만, 패션 작업은 개인의 산물이 아니기에 팀 파워는 그래서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 이후 프랑스 패션업계는 “조아라와 코셰의 '시너지 효과'가 파리에서 주목할 만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15년 간 활동한 조아라(37, 프랑스 영주권자) 디자이너는 지난해 완전 귀국, 아크(ARCH)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이름 조아라. 하지만 파리에서는 이미 실력파로 인정받았던 그다. 그런 그는 지금 서울에서 ‘빅 스케치’를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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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고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프랑스가 와인의 나라인 만큼, 물보다 더 많이 마신게 와인입니다. 혀가 절여지는 느낌까지 받았죠. 자주 들른 가게에서 와인을 사와서 '입에 머금고' 작업하곤 했어요." 실제로 그의 공방에는 와인 행거에 와인이 여러 병 꽂혀 있다. 와인 이름들이 흔하지 않았다. 그럼, 고양이는 왜일까. 조 디자이너는 12살짜리 ‘레아’라는 이름의 프랑스산 고양이와 함께 산다. 덩치가 엄청나다. “제 유학생활을 온전히 함께 했죠. 귀국 하려는데 12년 키운 이 녀석을 도저히 두고 오지 못하겠더군요. 다행히 한국에서도 적응 잘하고 있고 제게도 여전히 힘이 되고 있죠.” 긴 대화지만, 한 마디만 더 물었다. 조 디자이너의 꿈은 옷을 만드는데 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드리 헵번이 그랬던 것처럼, 패션을 통한 기부 활동이 제가 꿈꾸고 있는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이디어가 달릴 때는 ‘검색’보다는 ‘사색’을 통해 답을 찾는다는 조아라 디자이너. 그와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내린 결론. “그의 브랜드 아크(ARCH)가 불꽃을 튀기며 솟아 오를 날이 머지 않았구나.”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0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주말 특집 퀴즈,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어 선셋”, 그리고 (덜 알려졌지만) 노라 에프런의 “줄리 앤 줄리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https://www.vanityfair.fr/culture/voir-lire/articles/shakespeare-and-company-la-librairie-parisienne-refuge-de-la-beat-generation/24029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이다. 파리 여행 다녀온 분들이면 아마 거의 모두 이 서점을 봤거나 지나쳤거나 했을 것이다. 노트르담 맞은 편, 찾기도 쉽고 한 번 지나치면 안 쳐다볼 수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름도 그렇지만, 파리 한복판에 있는, 영어 책을 다루고 있는 서점이다. “다룬다”에 강조. 여기서는 책을 팔기도 하지만 책을 대여도 해 주고, 손님이 멋대로 잠을 자기도 하며 온갖 책 관련 이벤트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파리 한복판에 이런 영어 책 서점이 생겼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그 시작은 아무래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가 파리에 대거 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온 (군인 외에) 미국인들이 많았다. 방향을 잃은 문화 인사들이었는데, 개중 아무래도 제일 유명한 이가 헤밍웨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 실비아 비치(Sylvia Beach)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녀가 프랑스의 동성연인 아드리엔 모니에(Adrienne Monnier)와 같이 만든 서점이 이것이었다(참조 1).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서점을 닫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게 이유가 있었다(참조 2). --------------- 하루는 독일군 장교가 와서 진열장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책,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를 팔라고 했다. 벌써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제임스 조이스? 당연히 이 서점으로 와야 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실비아 비치는 제임스 조이스의 친구였고, 어디에서도 출판하지 못했던 “율리시스(Ulysses)”를 출판한 곳이 바로 이 서점이었다. 독일군은? 왠지 파리에 들어간 독일군들은 인텔리들이 많지 않았을까? 실비아는 그에게 진열장 책이 파리에 있는 단 한권의 피네간의 경야이며 당신에게 팔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독일군 장교 왈, “독일에서 제임스 조이스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요.” ...예? 열흘 정도 후, 그 장교는 다시 돌아와서 진열장의 제임스 조이스 책이 없어졌는데 뭐냐, 당장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그녀는 그거 내가 가졌다고 말했고, 그 장교는 매우 분노한다. 오후에 와서 모든 책을 다 압류하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서점 문을 닫고 친구들을 동원하여 2시간 내에 모든 책을 모처에 숨겼다. -------------- 이 서점을 되살린 것은 실비아 비치의 친구였던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이었다. 참, 詩人 월트 휘트먼과는 전혀 혈연관계가 없다. 동명이인일 뿐. 1951년에 “Mistral”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점했는데 실비아가 원래 자기 서점 이름을 주겠다고 했고,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맞이하여 1964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된다. 조지 휘트먼은 그 후로 2011년 죽기 직전까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경영한다. 공산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그는 서점을 누구에게나 개방했고, 꼭대기 자기 방에 열쇠도 없었다. 책 주문은 우편 주문으로만 했으며, 전화기는 2000년대 들어서나 한 대 마련했다. 작가들이나 문학도들에게는 서점 내에서 잠을 자도 된다고 했고, 주말이면 팬케이크를 구워주기도 한 그는 꽤나 다루기 힘든 늙은이였던 모양이다. 1913년생이다. 하루는 사뮈엘 베켓을 초청해서 저녁을 마련한 다음, 두 인물은 서로 말 없이 한동안 서로를 쳐다보기만 한 적도 있었다. 자러 오는 손님들 역시 휘트먼의 “kibun”에 따라 거절당할 때도 많았다. (사례: 조니 뎁) -------------- 그는 계속 독신이었다가 1970년대에 한 여인을 만나고 1981년 딸, Sylvia(당연히 실비아 비치의 이름을 딴 것이다)를 낳는다. 그의 나이 67세였다. 그때부터 딸 실비아는 서점의 마스코트가 됐다. 언제나 서점에서 놀았고, 세계구급 작가들이 그녀에게 책을 읽어줬다. 그리고 가끔은 배낭족들에게 책 3권을 주고 실비아를 봐달라고 한 적도 있는 모양이다. (그 배낭족들은 실비아가 어른이 됐을 때 다시 찾아와서 실비아가 살아있는지 묻는다.) 서점 앞에 앉아있는 실비아 비치 휘트먼 그러다 1980년대 후반, 실비아의 어머니는 휘트먼과 결별했고, 실비아는 어머니를 따라 스코틀랜드로 가서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을 마치고 다시 아버지의 서점으로 돌아온다. 휘트먼의 나이가 이제 80대였다. 실비아는 서점에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썼지만 보내지 않았던 편지 상자를 발견하고는… 어떻게든 후계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참조 3). 그는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런던에서 온 배우, 에밀리랍니다”라고 능청을 떨었다. 물론 다들 알고 있었다. 액자 사진 속 아이와 똑같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전화기를 놓으려 하고, 신용카드 리더기까지(!) 놓으려 하는 딸과 마찰이 좀 있었다. 휘트먼은 딸을 “마거릿 대처”라 놀렸다. 다만 도서 배치만은 도저히 아버지를 무시할 수 없었다. 휘트먼은 모든 책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 -------------- 서점의 역사와 함께 해온 휘트먼의 유산은 책만이 아니다. 온갖 쪽지와 메모, 알바지원서(!)까지 다 놓여 있다고 한다. 여기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미스터리 세 가지가 나온다. 첫 번째, 제임스 조이스의 시신이 서점에 있다. -> 이건 아니라고 한다. 두 번째, 가끔 이유 없이 책이 떨어질 때가 있다. 아버지의 유령일까? 세 번째, 꽂혀있는 명함 중에 90년대 Halliburton CEO 딕 체이니의 명함이 있다. 체이니 부통령이 정말 여기를 방문한 것일까? 상당히 안 어울리는 조합이며, 아직 수수께끼이다. -------------- 참고 1. Sylvia Beach Interview: https://youtu.be/UnJYK5t--Xo 2. Syvlia Beach interview on James Joyce and Shakespeare & Company (1962): https://youtu.be/R1Zbw39MCm4 사실 이 인터뷰에 재미나는 내용이 매우 많다. 제임스 조이스와의 관계도 그렇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 해방 이후, 숨어있던 그녀를 구하러 온 인물이 다름 아닌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3. 조지 소로스에게 조건 없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을 인수하라고 요청한 적도 있는 모양이지만 답변이 없었거나 부정적이었던 듯 하다. 결국 딸인 실비아가 현재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4. 현재는 홈페이지도 운영 중! https://shakespeareandcompany.com
트위터로 본 현재 영국 상황 #부들부들
ㅠㅠㅠㅠㅠ 지금 영국에 계시는 빙글러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때여 분위기는? 직접 가볼수가 없으니 트위터를 통해 본 분위기 한번 전해 봅니다 ㅋ 저 사실 읽다가 감정이입해서 좀 서러워졌어여 ㅠㅠㅠㅠㅠㅠㅠㅠ 어제 백인 남자가 나보고 외국인이라고 큰소리로 외쳤어. 저런 가벼운 인종차별은 런던 살면서 처음이야. 고맙다 브렉시트. 78%가 무슬림인 학교에 도착했어. 백인남자가 지나가는 가족들한테 승리사인을 하고있네. 이게 우리가 합법화한 인종차별이야 내딸이 그러는데 오늘 누군가가 학교 화장실벽에 ○○는 루마니아로 돌아가라라고 써놨대.. 134번 버스에서 늙은 여자가 젊은 폴란드 여자와 그녀의 아기에게 버스에서 내려서 짐이나 싸라고 즐겁게 말했어. 끔찍해 (인도계 영국 정치인) 시마 말호트라가 말하길 그녀의 선거구에서 아이들이 인종차별적 언어폭력을 당하기 쉽대. 길거리에서 어른들에게 말이야.. 브렉시트의 결과야 blockely에서 남자들이 무슬림 여성에게 '나가 나가 나가'하고 외쳤다. Enfield 은행에 있던 여자가 '여긴 잉글랜드고 우린 백인이야. 우리나라에서 나가라고!'라고 외쳤고. 어제 내 파트너가 폴란드출신 커피샵 종업원에게 사람들이 '너 이제 집에 간다'고 조롱하는걸 목격했대 오늘 저녁에 birmingham에서 딸이 퇴근하는데 남자애들 무리가 무슬림소녀를 코너에 몰고 "나가 우린 떠나라고 투표했어"라고 소리치는걸 봤대. 끔찍한 시간들이야.. 영국 : 미대륙을 식민화하고 수천명의 원주민들을 학살함. 아시아를 침략함 아프리카를 침략함 90%의 나라를 침략하고 그 과정에서 수백만명의 원주민들을 학살함 그리고 현재 영국 : 니네 나라로 돌아가 외국인들아! 이건 우리 나라야!! 아 진짜 중간에 좀 울컥해서 울뻔 진짜 슬프다... 뭐 EU 있으면서 많이 답답하기도 했겠지만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세대동안 영국인이었던 사람들까지 이렇게 차별 받는건 또 괜히 서럽네여 또 영국의 젊은 사람들 입장도 생각하면 씁쓸.. 삶의 터전이 엄청나게 좁아져 버렸잖아여 유럽이라면 어디든 가서 살 수 있고 결혼할 수 있고 친구만들기도 쉽고 학교 다니기도 일하기도... EU라면 다 쉬운거였는데 청년들의 터전이 줄어 버렸네여 영국 페친이 그런 말 하는데 진짜 그렇더라구여... 진짜 우주님이 올려주신 톡처럼 노엘갤러거가 맞는 말 했네여 ㅋ 그런거 하라고 뽑아서 돈주는건데 x나 어려운건 맨날 우리한테 시키고 ㅋㅋㅋ 우리끼리 싸우게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국회의원들 다 똑같나봐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고나니 또 슬퍼진다) 영국에 계신 분들 부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탈하시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세계 식사 예절
프랑스 X : 손을 무릎에 두기 O : 두 손을 테이블 위에 두고 먹기 ▷ 포크나 칼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손목과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자. 독일 X : 칼로 감자 자르기 O : 포크로 감자 으깨기 ▷ 칼로 감자를 자른다는 건, 감자가 덜 익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크로 감자를 으깨자. 그레이비 소스를 끼얹어 먹기에도 편하다. 스페인 X : 밥 먹자마자 자리 뜨기 O : '소브레메사(sobremesa, 저녁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이야기 하는 시간)'을 즐기자 ▷ '소브레메사'는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시간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편히 쉬기도 한다. 영국 X : 아스파라거스를 도구로 먹기 O : 손으로 아스파라거스 먹기 ▷ 아스파라거스가 드레싱 혹은 디핑 소스와 함께 나올 땐 손가락을 사용한다. 줄기 끝을 잡고, 소스에 찍어서 한입 베어 문다. 딱딱한 부분은 접시 가장자리에 놓자. 헝가리 X : 맥주 마시면서 '치어스'라고 하기 O : 술이 담긴 잔이라면 서로 부딪쳐서 땡그랑 소리내기 ▷ 1848년 헝가리 혁명이 있었을 때, 헝가리를 이긴 오스트리아 군인들이 맥주잔으로 건배를 했다. 헝가리 사람들은 150년간 맥주로는 건배를 하지 않는다. 그 전통은 아직 남아 있다. 멕시코 X : 타코를 칼, 포크를 사용해 먹기 O : 손으로 먹기 ▷ 현지인처럼 먹기 : 엄지, 검지, 중지를 사용해 타코를 집어 먹자. 조지아 X : '수프라(supra, 덕담을 나누며 술을 마시는 것)' 도중에는 와인을 홀짝이지 말자 O : 건배할 때는 한 번에 마시기 ▷ 수프라는 축하할 일들이 많을 때 열리는 저녁파티다. 연회를 집행하는 사람을 일컫는 '타마다(tamada)'는 축하할 일들의 숫자를 알려준다. 다행히도 술잔은 작은 편이다. 일본 X : 젓가락을 밥공기에 꽂아두기 O : 가로로 놓기 ▷밥공기에 젓가락을 꽂는 것은 일본 불교에서 봤을 때 죽은 사람에게나 하는 의식이다. 젓가락은 접시 옆 혹은 그릇 위에 가로로 두자. 한국 X : O : ▷ 다 아시죠?^^ 태국 X : 포크를 사용해서 음식을 먹기 O : 포크는 숟가락에 음식을 옮기는 용도로 쓰자 ▷ 태국에서 포크는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포크와 숟가락은 쭐랄롱꼰 왕이 1897년 유럽을 방문하고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 타이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었다. 또한 중국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면 젓가락은 사용하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