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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오는 귀신썰] 북망산 가는 길 -1-
헤헤 새해에는 역시 귀신썰이지 2021 첫 귀신썰 같이 보자아 아 그 전에 우선 새해 복들부터 받고 ㅎㅎ 시작할게! ______________ 1. “친구야 내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다. 한때 녀석이 한숨 쉬는 소리만으로도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수 있었으니까. 오랜 우정은 이해하기 힘든 지점에 다다른 교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녀석이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우리 형, 네가 우리 어머니한테 가서 좀 말씀 드려주면 안되겠냐? 부탁 좀 할게.” 수화기 너머 녀석은 울고 있었다. 울음 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 막고 있을것이다. “그래, 친구야. 내가 말씀 드릴게. 이번 주말에 약속도 없으니까 내가 찾아 뵙지 뭐. 걱정하지 마라. 잘 말씀드릴게” 잠시 수화기를 사이에 두고 호수같은 정적이 흘렀다. “고맙다. 친구야” 결국, 영범 형이 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녀석 어머님게 내가 전하러 가기로 했다. 녀석과 나는 고교 삼년 내내 같은 반 단짝이었다. 일학년때 형제처럼 친했던 우리는  -삼년내내 같은 반 이었으면 좋겠다- 는 소원을 종종 말했는데, 우리 일곱명 패거리가 뿔뿔이 반이 나뉠때도 둘은 항상 같은 반 이었다. 그때 나는 혹시 정말 신이 존재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 하기도 했다. 우리는 학창 시절 내내 붙어 다녔다. 그녀석 집에서 자던지, 우리 집에서 자던지. ‘좋아하면 서로 닮아 간다’ 는 말을 나는 믿는다. 터무니 없이 서로 다른 외양을 가지고 있던 녀석과 나는 졸업 할 무렵 둘이 혹시 형제 아니냐는 이야기를 꽤나 심심치 않게 들었다. 좋아하면, 닮아 간다. 외양까지도. 나는 학창시절 술을 영범 형에게 배웠다. 우리가 반짝거리며 학창 시절을 통과 하던 그때, 형은 중위로 직업 군인 신분 이었다. 녀석 집에서 놀고 있을라 치면 주 한두번꼴로 들러 우리를 데려나가 술을 사줬다. 호프집과, 순대집과, 곱창집에서. 고만고만 사춘기를 지나던 우리에게 형은 아주 높은 곳에 위치 했다. 그래 봐야 18세 꺼꺼머리 사춘기 아이들을 훈계하는 이십대 청년 이었지만 말이다. 그땐 그랬다. 형은 어른 이었다. 사고 치지 말아라, 공부 열심히 해라, 부모님게 효도해라, 사나이 바른길을 열심히 훈계 하던 형은, 정작 자신의 바른 길은 어딘지 찾지 못하고 덜컥, 여자친구 배에 임신을 시키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임신을 시킨게 아니라 형수가 임신을 한것이지만 말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하고 깨닭기에는 형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너무 어렸다. 우리는 형수가 만삭이 될 때 까지도 눈치 채지 못했다. (같이 술집을 갈 때 마다 매번 동행했지만) 문제는 영범 형조차 형수가 만삭이 될 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다는게 문제 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하고 반문 해 봤자. 그런 것이다. 인생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보자기에 가득 모아 놓고 ‘이것이 인생입니다’ 라고 떠들어도 좋을 만큼 불가사의한 일들이 잔뜩 이니까. 어쨋거나 스물넷에 형은 딸을 낳았고, 그 세월이 조금 더 흐른 후 대위를 달았다. 그리고, 형의 인생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 했다. 부대내 불미스러운 구타 사건에 휘말려 지휘 책임으로 옷을 벗었다. 딱히, 사건과 연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군대는 희생자를 요구 했고, 조직이 행해왔던 관성대로 가장 힘없고 빽없는 직업 장교 한명의 희생을 요구 했다. 육사출신이 아니었던 영범 형은 눈을 가린채 뱃전에서 널빤지로 밀어 버리기 가장 편한 대상 이었다. 형은 눈을 가리고 두손을 묶인채 망망대해로 떨어졌다. 비명도 지를수도, 하소연을 할수도 없었다. 내가 아는 영범 형은 제대전과 제대 후로 나뉜다. 공부도 잘했고 부모님 말씀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행하는 이미지의 제대전과. 술과, 노름, 사업파탄, 부도, 야반도주, 음주운전 등으로 얼룩진 이미지를 심어 줬던  제대 후 이미지는, 한 사람이 지닌 이데아가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든다. 영범 형 위암 소식을 내게 전하던 날, 친구 녀석은 수화기 너머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전하려 애썼지만, 들쑥날쑥 불안한 호흡과 앞뒤 안 맞는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 하더니 결국 오열을 터트렸다. “울지 마라 친구야. 다 그렇게 살다 가는 것 아니겠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 말이 고작이었다. 형은 열심히 살았다. 마치 암 선고는 자신과 상관없는 것처럼. 녀석에게 전해 들었지만 형과 마주쳤을 때 혹시 내가 잘못 들었던 것이 아닐까? 착각을 할 정도 였다. 영범 형은 끝까지 삶에 악착을 부렸다. 웃는 얼굴로, 하하 큰 소리도 내면서 “야, 어릴 때 너 술 마시면서 우리 시골에 큰 집 짓고 다 같이 살자고 했었지? 앞으로 십 년 후에 우리 다 같이 한 마을에 모여 살자.” 의사는 앞으로 길어야 육개월 이라고 했는데, 이형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생각 했지만, 같이 하하웃을 수밖에 없었다. 형은 웃음으로 죽음에서 달아나려 했다. 2. 주말 횡성으로 가는 길은 향락객의 여파로 꽤나 길이 막혔다.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고속도로만큼 내 가슴 한켠도 꽉 막힌 고속도로만큼 무거웠다. 국도로 빠져 나와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혼자 운전하며, 나는 녀석의 어머니께 뭐라고 형의 소식을 전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천번 만번 연습을 행했다. 오늘따라 길은 또 왜 이리 불퉁거리는지, 쿵쾅거리는 심장을 울퉁불퉁한 도로 탓으로 돌리며 어머님의 집에 다다랐을 땐 뉘엿거리며 해가 넘어 가고 있었다. “어이구 얘 너 살았는지 죽었는지 얼굴 잊어 먹겠다.”  녀석 어머니는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미소로 나를 반겨 주셨다. 내가 들른 다는 기별에 어머니는 직접 기르신 감자와 호박, 오이 따위를 이미 박스째 가득 담아 입구에 쌓아 놓으셨다. “이거 가져가서 부모님이랑 같이 먹어, 어머니가 내가 기른 감자 유난히 좋아 하시잖니.” “어휴, 어머니 힘드신데 또 뭘 이렇게 까지 챙겨 놓으셨어요.” 통상적인 인사치레를 나누는데 마음속은 먹장구름 한가득 이다. 어머니가 챙겨 주신 저녁을 넘어가지 않는 목구멍으로 쑤셔 넣고, 커피 한잔을 식탁에 놓고 마주한 다음,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영범 형의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했다. “어머니, 영범 형이 사실.”  나는 말을 끊었다. 아니 말이 끊겼다. 성대 안을 거대한 지네가 막아 선 것 같았다. “위암 말기 예요. 발견하고 치료 한지는 꽤 됐는데, 차도 없이 점점 안 좋아 지네요. 종범이 하고 영범이 형은 어머니가 걱정 하실까봐 숨겨 왔었는데........이제 어머니도 마음에 준비를 해 놓으셔야 할 것 같아서요.” 날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거둬졌다. 아니, 웃음기가 사라졌다기 보다 사람이 느끼는 일련의 감정 변화 자체가 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앞에 놓고 마주 했던 어머님과 나 사이에 고고한 적막만 남았다. 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어둠이 진하게 베인 시골 풍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새의 울음 소리가 울렸고, 똑딱 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만 집안을 가득 채웠다. “얘, **야, 영범 이가 말이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시며 말을 이으셨다. “너도 알지만 집에 찾아오는 날이 거의 없었잖니. 부도나서 쫓기느라 못와, 동생명의로 빚보증 세웠다가 그거 때문에 도망 다녀. 아마,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봤을까?”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한 몇 개월 됐나? 개가 주말 마다 뻔질나게 들르는 거야. 걱정 돼서 왔다. 갑자기 생각나서 왔다. 먹을 게 생겨서 왔다. 그래서 내 처음에는 심하게 닥달을 해댔지. 너 무슨 일 있는거 아니냐, 어디 아프냐, 애 엄마랑 싸웠냐. 그런데 그런거 없대. 그 놈이 제 엄마를 뭘로 알고 말이지. 지를 낳고 기른 게 누군데. 지속을 어미가 왜 모르겠냐. 그런데 이놈이 올 때 마다 마르면서 얼굴이 까매지는 거야. 오면 해주는 밥 먹고 잠만 자고 말이야. 그 놈이 내 아무리 물어도 대답 하지 않을거라는거 나도 안다. 다 알아.” 나는 식어가는 커피 잔을 들어 올려 후릅, 일부러 소리를 내 마셨다. “이래저래, 산다는 게 지 맘대로 되겠니. 녀석은 평생 지 꿈과 현실 속에서 끌탕 끓이면서 산 놈인데 말이지. 속이 여려서 지 어미한테 말 못했을 거다. 영범이 하고 종범 이가 또 너한테 신세를 지게 하는구나. 이거 미안해서 어쩌누.” “아....아니에요. 어머니 신세라뇨. 어머님은, 종범이도 그렇겠지만 제 어머님이나 똑 같으신데요 뭘” “아니다. 오는 길에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누. 너도 속이 단단한 놈이 못되는데 네 속은 편했겠냐. 난 괜찮다. 그래서 뜬금없이 녀석들이 내일 같이 오겠다 그런 거구만. 괜찮다. 사람은 한번 왔다가 언젠가는 다시 가는거 아니겠냐. 누가 빨리 가냐, 조금더 천천히 가냐 뿐이잖아. 이따 종범이 한테 전화해서 난 괜찮더라고 말해라. 알았지?” “네 어머니” 집에 가기 위해 일어서자 어머니는 한사코 감자나 직접 캔 여러 작물들을 더 실어 주셨다. 여전히 나는 웃고 있었지만, 자칫, 울음이 터지면 주체 할 수 없을 것 같아 손을 재게 놀렸다.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 나오지 마세요.”  마중 나오시려는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서고 주차해둔 차로 터덕이며 걸어가는데, 집에서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길게 새어져 나왔다. 길고 높은 어머님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나도 눈앞에 보이는 사물들이 뿌옇게 변하기 시작 했다. 3. 열시가 막 지나는 시간 이었는데 횡성 근교 국도를 지나는 길은 칠흑같이 깜깜 했다. 나오다 차를 세워 조금 울었고, 종범이 녀석과 통화를 조금 길게 했고, 그러다 보니 내 삶도 오두망찰 어지러워 여기저기 두서없이 통화를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열시를 넘기고 있었다. 국도는 황량했고 고고했지만, 어쩐 일인지 내려앉은 어둠이 평소답지 않게 사위스럽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려나 생각을 하고 운전을 해 내려 오는데, 공포란 구멍 뚫린 제방처럼 빈틈이 보이면 순식간에 확장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나는 운전을 하며 공포감에 빠졌다. '왜, 갑자기?’ 라고 묻는 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잊고 있던 의식의 문을 똑똑 두드리며 조금씩 열어젖히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느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져 어쩐 일인지 운전대를 잡은 손에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나 말고 누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강렬히 들기 시작 했다.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끼며 속도를 조금 줄였다. 사고는 긴장 속에 따르기 마련이니까. 운전을 하며 심호흡을 했다. 국도를 지나오며 오가는 차는 한 대도 마주 치지 못했다. 나는 속도를 현저히 늦춘 상태에서 뒷좌석을 살펴봤다. 어린 시절, AFKN에서 본 공포영화가 그랬다. 고즈넉한 밤 시골 길을 달리고 있던 승용차에서 조용히 윗몸을 일으키던 눈 없던 여자. 어린 시절 봤던 그 영화 때문에 간혹 어두운 국도를 달리게 되면 무심코 뒷자리를 한 번씩 바라본다. 뒷자리를 한번 스윽 바라보고는 ‘헛’ 혼자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톨게이트 까지 가는 길이 너무 지난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저 앞 국도에 길섶에 누군가 심상한 모양새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엇, 국도에 누군가 서있나? 하고 생각 했다. 사실 처음 봤을 때는 이게 뭐지? 인지 부조화로 인해 별 공포심을 못 느꼇다. 그러니까, 아, 누가 서있구나. 어? 여자네? 그런데 왜 흰 소복을 입고 서있어? 차가 점점 더 가까워지며. 어라? 나를 보고 웃고 있네? 거 참 여자가 기분 나쁘게도 웃네. 어???근데?????눈이 왜 새빨................ 정확히 이런 감정의 변이를 느꼇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으로 어이없게도 나는 그녀를 보고 온전히 사람이라고 생각 했었던 것이다. 나는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분명,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와 비슷한 인상의 여자를 한번 본 경험이 있다. 자유로에서. 그때는 자유로 괴담이 알려지기 전이어서 내가 주위에 자유로에서 귀신을 봤다고 이야기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정도로 가까이 본 것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내가 뭘 본거야? 뭐야? 귀신이야 사람이야? 생각 했던 기억이 났다. 요금소 나오던 길이 천길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영동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밝은 가로등과 내 옆을 스쳐 지나는 많은 차들. 쿵쾅거리는 가슴은 서울로 들어서자 완전히 잊혀졌다. 휘황찬란한 네온은 공포심을 잊게 해주기 마련이다. 그저 길에서 마주친 지박령이거니,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생면부지의 그 여자가 날따라 왔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2편으로............ [출처] 북망산 가는 길 1 | hyundc ___________________ 으앙 왜 따라오냐구 무섭게 ㅠㅠㅠㅠㅠㅠㅠ 다음 편은 내일 같이 보자 덜덜덜 새해 복!
군대실화) 본격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누군가가 제게 그러셨죠. "이 분이라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재밌게 쓰실 수 있을걸요?"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껄껄... 그 말. 정말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제가 한 번 써보겠습니다.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 나는 육군 출신이다. 육군이란 무엇인가. 밥 먹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운동뿐이고, 운동 중에서 '축구'와 '족구'에 환장하는 종족. 첫 번째로 동명동 메시, 서초구 히바우두, 달서구 호날두 등등... 전국에서 숨어있던 동네 고수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며. 두 번째. 축구라고는 맥주 한 잔 하면서 프리미어리그를 보며 입으로만 축구하는 남자들이 모이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태어나서 축구를 해본 적도 없는 부드러운 사내들이 모여 눈치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저 세 부류들 중 1~2번에 속했다.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다. 중학교 때 축구보다 먼저 '슬램덩크'에 빠진 나는 열심히 농구만 했고, 고등학교 때는 농구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반강제로 골키퍼를 맡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됐다. 국어국문학과.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 학과였고, 사지 멀쩡한 남자들은 체육대회 때 반강제로 축구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특히 내가 신입생이 됐을 때, 축구를 열심히 하며 체대생을 꿈꿨지만 부상으로 인해 축구 유망주를 접고 국문과에 입학한 예비역 선배 한 명과, 축구에 미쳐 학과 수업보다 축구를 더 사랑했던 선배 두 명이 날이면 날마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인원들을 모아 반강제로 축구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골키퍼를 열심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순히 과대라서 선배들에게 잘보이고 싶었던 나는 팔자에도 없는 다이빙을 열심히 하며 골키퍼를 했고, '너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며 축구 유망주를 꿈꿨던 그 선배는 시간날 때마다 나를 호출해 골키퍼 연습을 시켰다. 어찌 보면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부에서 배웠던 사람에게 배웠으니, 나도 축구부 시스템으로 훈련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방구석 입축구 전문가에서 국문과 골키퍼가 되었고, 선배들의 무수한 압박 속에 승부차기에서 두 골을 막아내며 국어국문학과가 공대를 꺾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입대한 군대. 그 중에서도 내가 나왔던 부대는 정말 공놀이에 미친 사람들 투성이었다. 군화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차에서 내린 행보관님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족구장에서 서브를 꽂아넣고 하품을 하며 출근하기도 했고, 육중한 몸놀림으로 '훈련이나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중대장이 안정환처럼 수비수를 농락한 뒤 세레머니를 하기도 했다. 축구를 너무 하고 싶어서 부대원들과 간부들이 사이좋게 삽 한자루로 언덕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정성스럽게 철근을 용접해 부대 내에 풋살 경기장을 만들었던 미친놈들의 소굴이었다. 그리고. 우리 중대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유망주로 불리다 불행한 사건에 휘말려 일반 육군으로 입대한 프로 선수. 소속팀과 이름은 밝힐 수 없다는 점. 심지어 그 사람과 동반입대한 친구는 대한민국 프로 씨름선수 출신이었다. 아무도 그 둘에게 개길 수 없었다. 그 선임들이 일병 때였다. 나와 2개월 차이가 났기 때문에 나도 일병이었고, 자주 붙어다녔다. 그 당시 중대에서 운동을 좋아하고 격투기 좀 배웠다 싶은 선임들, 간부들이 모두 그 씨름선수에게 "야. 나랑 씨름 한 판 해보자. 나도 운동 좀 했다." 라고 말하며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 선임은 넉살 좋게 웃으며 "에이. 진짜 다치십니다. 그럼 저는 프로 출신이니, 다리 하나를 들고 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샅바를 잡았고, 그 선임은 그렇게 중대의 모든 도전자들을 다리 하나로만 들어서 넘겨버렸다. 그 때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그 선임의 만두귀는 강렬했고,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 아닌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실전압축근육'은 모든 중대원들에게 경외감을 심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만두귀는 피해다녀라' 라는 격언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프로 출신 축구선수였던 그 선임. 군대는 전국 팔도에서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기에, 축구를 배웠던 사람들, 유학을 다녀왔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선임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프로 구단에서 훈련을 받고 경기를 뛰며 어느정도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그 선임. 미드필더로 이미 스무살의 나이에 1군에 출장한 진짜 '선수'. 티비에서 축구 중계를 할 때 나오던 그 선수.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물론 프로 선수였다는 것은 네이버에만 쳐도 다 나왔기 때문에 믿었지만, "제가 진짜로 하면 축구 재미 없어집니다." 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대대 축구대회에서 대대 최강 7중대를 상대로 우리 8중대 대표로 나왔던 그 선임은, 후반전 때 팀이 1대 0으로 지고 있자 "하아..." 라는 긴 한숨을 쉬고는 우리 골키퍼에서 상대방 골키퍼까지 혼자 공을 몰고 돌파해 여유있게 두 골을 때려박고 대대 체육대회에서 8중대를 우승으로 올려놓았다. 긴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그 선임을 쳐다보던 7중대장의 이마. 탈모가 시작된 그 넓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큼이나 그는 빛났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그는 호날두였다. 우리중대 호날두...호우... 그 날 이후 우리 중대는 소위 말하는 '짬순'으로 축구를 하던 룰이 사라졌다. 병장이라고 공격수만 할 수 없었고, 이등병이라고 수비수만 하지 않았다. 모든 포지션과 전술은 그 선임이 말하는 대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그 선임 옆에서 듬직하게 지키고 있던 고향만두가 생각나는 귀를 가진 씨름선수 선임의 포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기자 역사상 최강의 동반입대병들의 포스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선임들이 운동법과 축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모두가 경청했다. 사실 군대에 있으면서 어지간한 남자들은 몸 만드는 것과 축구에 목말라있었기 때문에 그 선임들이 하는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닌 '프로 씨름선수의 피지컬 훈련'과 '프로 축구선수의 기본기 훈련'이었다. 유투브에서 해도 솔깃할 만한 달콤한 조언들 아니겠는가. 그리고 축구 대회가 진행될 때면. "오우. 중대장님 나이스!" "아 그래? 헤헤 성호야 나 잘했어?" 일병이 엄지를 들고 칭찬하면 대위가 쑥쓰러워하며 고마워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야. 너는 축구 한 번 배워봐라. 가능성 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 신체 밸런스가 괜찮은데? 들배지기 하나 알려주까?" "알려주시면 제 한 몸 씨름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 선임들이 툭 뱉는 칭찬은 후임들에게는 '프로 선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엄청난 동기부여를 주었고, 거의 모든 중대원들이 주말만 되면 오전에는 씨름과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공을 들고 운동장을 누비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렇게 중대원들 몸이 점점 구릿빛으로 진해질 무렵. 나는 상병이 됐다. "어이. 랩쟁이." 가끔 씨름선수였던 그 선임은, 사단 대표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휴가를 받았던 나를 이렇게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다. "랩 한번 해보그라." "췍. 췍. 앰네ㅐ뤠눌내무랜ㅁ언ㅁ엉어단아ㅡㅏ 췍!" 그리고 부끄러움보다 만두귀의 공포가 더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씩 궁중 광대같은 생활을 하며 터미네이터들에게 예쁨을 받았고, 상병이 되고 그들이 고참이 됐을 때도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우리가 상병일 때, 대대에서는 또 체육대회가 열렸고, 축구대회를 위해 선임들은 중대원을 호출했다. "니는 공은 잘 못차는데 달리기가 빠르네. 골키퍼 하지 말고 측면 공격수를 해라." "잘못들었습니다? 저... 저는 공을 잘..." "닥치고 그냥 공 받으면 앞으로 툭 차. 그리고 뛰어. 누가 붙으면 어깨로 밀어. 그리고 슛을 때리던 패스를 하던 알아서 해. 쉽지?" "...그게 축구 맞습니까?" "야씨. 그럼 내가 농구선수냐? 너넨 다 기본기가 부족해서 여러가지 시키면 안돼. 하라는 것만 해." 그렇게 나는 왼쪽 공격수가 됐다. 그 선임의 전술은 매우 간단했다. 한 명 한 명 불러서 뭔가를 주문했는데, 다들 엄청 쉬운 것들이었다. "측면 수비수는 측면 공격수한테 무조건 공을 차. 받아도 그만 못받아도 그만. 오케이?" "중앙 수비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앞으로 뻥 차던가, 앞에 있는 나한테 주던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격수는 기다리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제가 공 올려드릴테니까, 발만 대시면 됩니다." -끄덕. 공격수를 맡았던 소대장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대 축구대회. 수비수에 있던 씨름선수 선임과 중앙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프로선수 출신의 선임, 그리고 '우리는 프로들에게 훈련받았다'는 자부심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던 중대원들과 간부들. 우리는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대대 최강이었던 7중대를 다시 만나게 됐다. 무난하게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결승전은 묘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애초에 우리가 연습한 것보다 7중대는 더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7중대장은 축구대회 전부터 쥐잡듯이 중대원들을 훈련시켰고, 결승전에서 축구선수 선임에게 무려 4명을 붙여 꽁꽁 싸매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축구선수는 일반 게임에서 진지하게 뛰면 안된다'는 주의로 중앙에서 패스만 뿌려주던 선임과 실력이 부족한 8중대원들, 그에 비해 악에 받힌 채 뛰어다니던 7중대원들로 인해 경기는 0대0으로 팽팽하게 전반전 막바지까지 흘러갔다. 그렇게 전반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패스가 최전방에 있던 소대장에게 흘러갔다. 센스있게 중앙에서 패스를 뿌려준 그 선임 덕분에 당시 중위였던 소대장은 마지막 슛을 날리게 됐고, 소대장은 힘차게 공을 찼다. -뚜둑! 공은 프리미어리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궤적을 그리며 아름답게 골대로 빨려들어갔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소대장에게 뛰어갔다. "와아!!! 소대장님!!! 대박!!!" 하면서 뛰어가던 우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힘차게 공을 찼는데... '뻥'이 아니라... '뚜둑'...?" 그렇게 생각하며 소대장 쪽을 쳐다보자 "와아!!! 내가 골이다!!!" 라고 말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소대장이 있었고, 축구선수 선임은 "아.. 십자인대 나갔네..." 라고 말하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종료되고, 소대장은 대대 엠뷸런스를 타기 위해 들것에 실려나갔다. "내 인생 최고의 슛이었어." 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우던 소대장은 그렇게 엠뷸런스의 구슬픈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대를 벗어났다. 그렇게 폭풍같던 전반전이 지난 다음 찾아온 후반전.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니까는 소대장님. 어휴. 나와 이 새끼들아!"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걸죽한 욕설과 함께 행보관이 공격수로 투입됐다. 장동건과 동갑이었지만 임하룡과 비슷한 연배의 얼굴을 소유한 행보관은 경기 시작부터 욕을 한 바가지로 퍼부으며 상대방 수비진을 농락했다. "나와! 다 뒤질래? 나와! 나오라고!" "7중대! 쫄지마! 얼굴만 늙었지 형이야! 쫄지말고 막아!" "아니 7중대장님 너무하십니다!" "행보관님 애들 겁주지 마세요!"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각종 예능축구들을 선보이던 행보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격진에서 시끄럽게 해준 행보관 덕분에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동안은 1:0이 유지됐다. 우리 수비진들은 평화롭게 산책을 했고, 예상 외의 행보관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10분동안만... "허억....허억... 아 씨바 힘들어..." 10분이 지나자마자 행보관의 체력은 거짓말처럼 급격하게 방전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위험한 한골 차 리드를 챙긴 채 아등바등 뛰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전이 끝나기 얼마 전. "어! 어! 씨바 비켜!" 축구선수 선임이 차올린 공이 정확히 행보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팡! -우당탕! 그 공은 정확히 행보관의 발등에 걸렸다. 무려 오버헤드킥. 행보관은 그 짧은 순간 육중한 몸을 띄워 공중에서 공을 차냈고, 공중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그의 무거운 몸은 중력과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어..? 어...?" "와아아!!!!!! 행보관님!!!!!" 우리는 믿을 수 없이 멋진 골에 놀란 채 환호하며 흙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행보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야! 야! 오지마! 이 씨바 오지마! 잠깐만! 진짜 야!" 행보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우리들은 행보관 위로 올라타며 기쁨의 세레머니를 했고, 세레머니가 끝난 후 행보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못했다. "야. 소대장님 태우고 간 엠뷸런스... 복귀했으면 일로 오라그래라...빨리..." 그렇게 방금 부대로 복귀해 체육대회를 즐기고자 했던 의무병과 운전병은 다시 들것을 들고 뛰어왔고, 날렵했던 소대장과는 달리 100키로에 가까웠던 행보관을 들기 위해 들것에는 4명의 장정이 달라붙었다. -웨용 웨-용 웨-용 그렇게 행보관은 떠나갔다. 허리가 나갔다며... 엠뷸런스는 오늘따라 더욱 구슬프게 사이렌 소리를 두 번이나 내며 초가을 연병장 바닥에 타이어자국을 남긴 채 떠나갔고, 그렇게 우리 중대는 대대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 시발 간부가 둘이나 실려간 팀을 어떻게 이겨..." 오늘따라 더 휑해보이는 이마를 빛내며, 7중대장은 절규했다. 그렇게 요란한 금요일이 지나고, 주말이 지난 후. 행보관은 허리에 복대를 찬 채 복귀했다. '앞으로 축구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소대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십자인대 파열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우리 중대장. 기아 타이거즈의 광팬이며 사회인 야구단에서 오래 활동했던 우리 중대장은 "축구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다치냐. 당분간 축구는 금지한다." 라고 말하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야구 글러브 10개를 부대로 주문했다. 그렇게 열심히 축구를 배우던 병사들과, 전직 프로 축구선수, 전직 씨름선수는 모두 4번타자를 꿈꾸며 배트를 휘둘렀고, 중대장은 매주 주말 환하게 웃으며 글러브를 들고 우리를 집합시켰다... ------------------------------끝 이상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재미는 음... 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 주세요! 감사합니당!
집이라 불리는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보호소
미국 캔자스시티 스프링힐에는 조금 특별한 유기견 보호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보호소를 실제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부르는데요. 이 보호소의 별명은 바로 '작은 집'입니다. 보호소 직원인 미란다 씨가 손을 뒤로 뻗으며 보호소를 소개했습니다. "작은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작은 집의 구조는 간식이 가득한 부엌과 24시간 돌아가는 세탁실 그리고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거실과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넓은 뒷마당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해 언제든지 신나게 뛰어놀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아이들을 많이 기르는 다견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미란다 씨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아니요. 이곳은 유기견 보호소가 맞아요." 작은 집이 보호소를 평범한 집처럼 꾸민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유기견은 대부분 새 가족을 찾지 못하고 좁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다 비참하게 떠나요. 우리는 그런 것만은 막고 싶었어요. 보호소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하더라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물론, 겉모습만 가정집으로 꾸민다고 해서 진짜 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작은 집의 진짜 강점은 이것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 녀석들을 반려견 대하듯 대해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진짜 집 같은 인테리어에서 알 수 있듯, 이곳 직원들은 모든 개와 친밀한 시간을 갖습니다. 특히 밤에 말이죠! 매일 밤, 모든 개는 미란다 씨를 비롯한 모든 직원과 각자 저마다의 친밀한 시간을 보냅니다. "사랑하는 우리 심바. 좋은 꿈 꾸렴." "데릭. 데릭. 아름다운 데릭.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언제나 기분 좋은 코코. 너의 꼬리도 이제 좀 쉬어야 하지 않겠니?" 오랜 시간에 걸쳐 모든 아이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야 보호소의 조명이 꺼집니다.  밤에도 짖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 일반적인 보호소와 달리,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조용하고 편안한 상태로 깊은 잠에 빠집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달콤한 밤을 보낸 아이들은 눈을 말똥말똥 뜨며, 케이지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란다 씨가 우리 문을 열어주자, 마당을 뛰어다니거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소파 위에서 잠을 낮잠을 자는 등 저마다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미란다 씨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고 또다시 하루의 시작을 준비합니다. "집처럼 꾸민 보호소는 아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돼요. 새 가족에게 입양된 아이는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고, 입양되지 못한 아이도 여기가 또 다른 집이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미란다 씨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활짝 웃으며 말을 덧붙였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유기견들이 충분히 사랑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세상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곳, 작은 집은 그 세상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글 제임수 사진 The Dodo, 인스타그램/alwaysnfurever, 틱톡/alwaysandfureverkc?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