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r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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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것들, 그러니까 다른 중요한 것들은 미루고 미루는 한이 있어도, 이 글은 어떻게든 이렇게 마감일을 지켜 쓰고 있다. 나는 나와의 약속만을 중요시하는 사람 같다. 한 번쯤은 이 지면을 시 다운 시, 그러니까 분량은 그대로라도 어느 정도 보편적인 범주에서의 시 형식으로 채우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이 글은 이제 내 의지와는 조금 무관하게,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흘러가는 것도 같다. 나는 거들 뿐이다. 며칠 전에는 아는 사람과 낙원상가 부근에 있는, 통나무 식당이라는 곳에 해물찜을 먹으러 갔다. 해물찜의 맛을 보기 전 그는 나를 의심했다. 과연 이번에 내가 데려가는 집은 맛집이 맞는지.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올해 초에 염장을 하지 않은 맛없는 튀김 닭을 먹고 나를 비난했던 그 작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튀김 닭만으로 나를 필요 이상으로 비난한 것은 아닌 것이, 하필 그날 튀김 닭을 먹기 전 데려갔던 이태원의 ‘존슨탕’이라는 음식을 파는 바다식당이란 곳에서도 형편없는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상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태원의 바다식당은 꽤 유명한 집이며, 유명하다고 다 절대적인 맛집은 아니겠지만, 분명 내가 전에 경험한 그곳의 존슨탕 맛은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여담이지만 그날, 그러니까 맛이 괜찮았던 날, 우리 일행의 옆 테이블에는 영화 『강철비』의 감독 양우석이 그의 배우자로 보이는 사람과 그의 아이로 보이는 사람과 셋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여기가 과연 맛집이 맞느냐며 나를 비난했었고, 내가 생각해도 그날의 존슨탕 맛은 너무나 밍밍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주방장의 컨디션 문제였는지, 레시피 하나가 실수로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비난을 막아낼 명분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만회한다고 저녁에 데려간 양재동의 한 튀김 닭집은 테러 수준이었던 것이다. 사실 우연히 알게 된 그 닭집은 내가 가본 집은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맛집 그 자체였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했다가 호되게 당한 꼴이었다. 그곳의 분위기가 어떤가 하면, 일단 지하로 내려가며, 다소 허름하다. 을지로의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외관상으로는 최고의 통닭집이다. 아마도 함께 보았다면,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배웠다. 허름한 집이 꼭 맛집은 아니라는 것을. 외관이 허름한데, 맛조차 허름한 곳도 분명 있다는 것을. 이유 없이, 아니 이유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았던 나는 그에게 이번에는 제대로 된 맛을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는 해물찜을 먹고 만족해했으며, 앞으로 더 두고 볼 테니 잘하라는 듯한 느낌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게다가 나는 해물찜을 먹이기 전 충무로의 태극당에서 그에게 모나카 아이스크림 하나를 쥐여 주었다. 그는 대체로 마음에 들어 했다. 나는 별걸 다 만회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대학로의 학림다방을 가자고 권했고, 그는 좋다고 했지만, 그곳은 만석이었으며, 대기자도 두세 팀이나 있었다. 창가의 한 4인용 테이블에는 여자 손님 한 명이 혼자서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마치 70년대의 한 풍경처럼 노트에 펜을 끼적이며, 눈을 감고 과하게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었다. 시라도 쓰고 있는 것 같았는데, 조심스레 다가가 “저기……, 시를 좋아하시나 보죠?”라고 하며, 은근슬쩍 착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우리는 터벅터벅 내려와 프랜차이즈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태극당에서 사 온 사라다빵을 반으로 나눠 그를 먹였다. 태극당의 사라다빵은 꽤 유명하지만, 사실 그 부피에 압도되는 것이지, 맛이 그렇게 특별한 편은 아니다. 그는 배가 부르다고 했지만, 조금 뒤 카페 건너편에 보이는, 백종원이 운영하는 한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가서 열탄불고기나 먹자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것이 진심이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그는 잠시 망설였다. 식당이 2층이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심이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잠시 뒤 우리는 결국 그 식당에 갔다. 확실히 그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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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
'누운 배' / 이혁진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선, 합격, 계급을 읽고 나서였다. 장강명 작가님이 한겨레 문학상을 심사할 때 두 번째로 집어 들었는데 마지막 원고를 읽을 때까지 이것보다 재미있는 작품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누운 배를 꼭 읽어보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밀리의 서재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길래 e-book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e-book은 읽기 불편해서 빠르게 읽지 못함에도 고작 이틀, 단 두 번만에 모두 읽어버렸다.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누운 배는 조선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조선소에서 어느 날 배가 쓰러지고 주인공은 그 쓰러진 배에 대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온갖 자료를 조작하고 만들어내고 은폐한다. 물론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상부의 의지로 인해. 그 뒤에도 이 중국의 조선소에서는 주인공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누가 봐도 비효율적인 일들이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 개선되지 않으며 잘못된 일에 대한 책임은 유령처럼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 사라져 버린다. 주인공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조리한 일들을, 잘못된 것들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목격한다. 그저 목격하고 고민하고 생각하지만 끝내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못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배척받고 회장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은 살아남는 회사. 주인공이 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행동은 결국 조선소를 떠나는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이. 미생, 송곳 같은 드라마의 시놉시스를 보는 느낌이었다. 사회의 한 단면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펼쳐놓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되기엔 충분했다.(우리나라 사회가 워낙 기형적이라 그런 걸까?) 처음 시작부터 배가 누웠다고 시작하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배가 누웠다는 사실이 아니다. 배가 누웠든, 배가 부서졌든, 현장에서 누가 죽었든, 심지어 누가 돈을 빼돌렸든 간에 그 사건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건이 회사 내에서 어떻게 수습되고 누가 책임을 지고 적절한 보상과 마무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가 중요하다.(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 소설에서는 그 과정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안 좋은 쪽이다. 이 조선소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진행되는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1. 은폐 가능하면 은폐한다. 2. 은폐가 가능하지 않으면 다른 부서, 다른 직원, 아랫사람에게 떠넘긴다. 3. 그것도 되지 않으면 아예 하청 회사, 협력 회사에게 책임을 넘긴다. 4. 그것도 되지 않으면 인재가 아니라 천재, 어쩔 수 없는 일로 포장하여 의미 없는 보고서를 써서 올린다. 5. 결국 제대로 된 책임을 지고 보상하는 사람과 마무리를 하는 사람은 없지만 일은 해결된다. 6. 여전히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그냥 덮어 둔다. 황 사장은 말한다. 책임이란 말은 쓸모없다고. 이미 일어난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그렇게 그 쓸모없는 책임은 결국 자신을 지기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돌다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만다. 시간에 잡아먹힌 채. 이 소설에 나오는 조선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너무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공간이다. 누군가 잘못을 했으면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비효율적이고 잘못된 관행을 고치면 작업의 효율을 올려 회사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초등학생들도 알 법한 일들이 이 회사에서는 온갖 견제와 방해를 받는다. 집요하게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자를 벌하는 것은 아주 지 세상인 줄 알고 나대는 일이 되고, 비효율적이고 잘못된 관행을 고쳐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는 일은 이미 알아서 잘 해오던 걸 쓸데없이 참견하고 귀찮게 하는 일이 된다. 결국 황 사장은 주변의 방해, 회장의 견제에 자신이 이루려던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조선소를 떠나게 된다. 안타까운 점은 이 소설을 읽는 많은 이들이 이런 회사의 모습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다면 너무 작가의 자의식이 크게 반영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 조선소에 대해, 회사에 대해, 사회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그저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한다는 느낌을 받은 곳이 조금 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소설 속 인물을 작위적으로 이용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러한 말과 생각을 조금 더 인물에 체화된 방식으로 서술할 수 있었다면 더 좋은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좋은 소설이다. 회사원이 아닌데도 무섭게 공감했고 빠져들었다. 회사원들이 읽는다면 정말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소설이다. 중요한 건 배가 누웠다는 사실이 아니다. 누운 배 따위가 없었어도 언젠가 이렇게 될 일이었다. 소설 속 한 문장 : 배가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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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1994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두 편이 극장가에 걸렸다. 『유열의 음악앨범』 그리고 『벌새』. 두 편 모두 그럭저럭 만족스러웠지만, 완성도는 현격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영화의 배경이 꼭 1994년이어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한마디로 당위성이 부족하다. ‘유열’이라는 현실 인물을 이용한 매개는 좋지만, 그 매개란 것도 사실 미미하며, 감독의 센스는 딱 거기까지다. 그런데도 만족스러웠던 이유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지, 결코 영화 때문은 아니었다. 후자의 경우, 올해의 한국 영화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수작이다. 긴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내내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화 자체로도, 한 시절로의 시간여행으로도 매혹적이었다. 게다가 주연배우의 연기도 좋다. 1994년에 일어난 사건들이 등장하는 장면들(김일성의 죽음, 미국 월드컵, 성수대교 붕괴 등)에서는, 당시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신기하게도 모두 기억이 났다. 그때 나는 어렸지만, 그 시절을 기억할 만큼은 자라있었으니까. 영원할 것만 같던 현재에 너무 많은 배신을 당했으므로, 나는 이제 늘 지금을 회상하는 훗날을 상상한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25년 전은 분명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여전히 생생한 날들이기도 하다. 2045년 즈음에 2019년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는 일 같은 것을 상상한다. 영화 속 장면에는 김정은과 트럼프, 일본 보이콧, 조국의 청문회 같은 것이 고증 차원에서 지나가고, 중년이 된 2000년대 생 인물의 어린 시절이 등장하는. 어느덧 노년이 된 내가 극장에 앉아 그 영화를 보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가서 현재를 보는 기분일 것 같기도 하다. 과거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해서. 그때는 정말 과거, 현재, 미래가 순서대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동시에 펼쳐져 있는 기분이기도 할까. 그땐 또 얼마나 많은, 지금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뒤일까. 물론 나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끔찍하고, 동시에 재밌다.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고 한다. 복원하기 좋은 도구로서의 위력적인 태풍이. 이런 상상을 자꾸 하는 이유는 어쩌면 먼 훗날의 나와 끊임없이 교신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런 글을 썼었지 하며, 회상으로써 지금의 나와 교신해주길 바라면서. 물론 너무 늙어버린 훗날의 나는 지금의 나를 유치하다며, 상대조차 안 할지 모르겠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고 강의실에 들어서자,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현기증이 일어 걷는 것이 조금 불편할 정도였다. 다시 학교를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사무실에는 시인이 되려는 무수한 사람들이 시 원고를 보내왔다. 그들의 열정이 너무나 강렬해, 나는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이 나라에 시인이 너무 많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어떤 무명 시인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시를 잡지에 싣지 못하는 현실을 애꿎은 나에게 분풀이하기도 한다. 시인으로 살고 싶다면 그저 시를 쓰면 된다. 시인이 되고 싶은 건지, 공명심에 취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장정일은 어느 글에서, 시인이란 그저 난 키우는 자에 불과하다고 격하했지만, 시인이 스스로를 난 키우는 자 정도로 생각한다면 나는 그를 지지할 것이다. 그저 정성스레 난을 키우듯 시를 쓰면 될 뿐이다. 시 쓰는 자들이 시를 도구 삼아 자꾸 사심을 드러낸다. 시를 도구 삼아도 좋고, 공명심에 취해있는 것도 좋지만, 고상한 척은 좀 그만했으면 한다. 그 전에 시라는 것이 도구 삼을 거리나 되는 성질의 것인가? 이미 시인인 자들은 도처에서 묵묵히 시를 쓸 뿐이다. 등단 제도라는 것은 그저 미화부장이나 오락부장을 정하는 일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마저도 곧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도 강하게 든다. 시인이 되고 싶으면 시를 쓰면 되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면 된다. 정말이지 그뿐이다. 시는 진입장벽이 낮아서, 진입장벽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슬프다. 2045년 즈음에는 이런 생각도 다 부질없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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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인데 서울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제 텅 빈 서울에서 드물게 문을 연 술집에 가, 조금은 후한 대접을 받으며 술을 마시기란 어려운 일이다. 선물 받은 커피 쿠폰을 쓰기 위해 평소 잘 가지 않던 카페를 뒤진다. 첫 번째 방문한 카페는 만석이다. 두 번째 간 카페도 만석이다. 세 번째 방문한 카페에 간신히 자리를 잡는다. 내게 커피 선물을 한 사람은 내게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기회도 덤으로 주었다. 지지난 학기에 꼭 붙어 다니던 여학생 둘은 이제, 수업 시간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다. 그 둘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들과 말을 섞어본 적이 없다. 한 명은 놀라울 정도로 소설을 잘 쓰며, 한 명은 방학 동안 독일에서 머물렀다고 수업 첫 시간에 고백한다. 둘 사이에는 다툼이 있었으며, 방학 동안 독일에 머물렀다고 고백한 학생은 다툼이 있은 후, 주체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홧김에 독일에 갔을 것 같지는 않다. 다툰 것으로 추정되는 둘 중 한 명의 편을 들어야 한다면, 소설을 잘 쓰는 쪽 편에 서고 싶지만, 그것은 조금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학기에는 앙드레 브르통이 나를 괴롭히더니, 이번 학기에는 주디스 버틀러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다음에는 질 들뢰즈에게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어떤 이는 시공간을 넘어 누군가를 괴롭힌다. 어느 날 내가 펴낸 책이 말도 안 될 정도로 호평을 받아,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유산이 되어,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후에 나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독자, 그러니까 예를 들면, 2105년경 폴란드 바르샤바의 어느 대학 한국어 전공 대학생인 유럽인이 번역된 내 책을 읽으며 괴롭다고, 이 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못 알아먹겠다며, 그의 친구에게 짜증 섞인 투정을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나는 지금 그에게 미리 사과를 하고 싶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과제를 대신해드리고 싶지만, 저는 이미 죽었네요. 아니, 살아있다고 해도 그때는 제가 이미 일백 세가 넘어, 과연 펜을 들 힘이라도 남아 있을까 의문인데, 그전에, 그때쯤에는 펜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펜이라는 것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덧붙여 박물관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할까, 그런 생각은 드네요. 이러고 있다. 일곱 살인 조카를 집에 바래다주며, 13년 뒤에 한잔하자고 제안한다. 술을 끊었지만, 13년 만에 술 한 잔 정도는 괜찮을 것 같고, 13년 만에 술을 마신 나에게, 술을 끊었다더니 결국 또 입에 술을 대느냐고, 당신 같은 의지박약의 인간을 보면 혀가 내둘러진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카페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연휴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에는 경기도 용인의 외진 곳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를 방문했고, 도슨트가 원치 않는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제안했으며, 그것이 절실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뭐, 그렇다면 그러시라고 했다. 그녀는 무척 고마워했으며, 이렇게 태풍이 심한 날에 남자분 둘이 방문하시다니, 신기하네요, 했다. 남자분 둘 중 나를 제외한 한 명은 나와 서울시티투어버스를 타기로 계획했던 그 사람인데, 태풍이 심해 급히 계획을 변경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백남준의 작품들을 보고 난 뒤에는, 비바람에 뒤집혀서 꽃봉오리 같아진 우산을 들고, 피자집을 방문했고, 다시 나와서는 상상 이상의 태풍을 맞이하며,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생각하며, 역까지 힘겹게 걸었다. 태풍은 해도 해도 너무했고, 역시 태풍이 심한 날에는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꿈에서는 누군가 담배를 심하게 피워대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집에서 담배를 피울만한 사람이 없는데, 잠에서 깨보니 담배 냄새가 사라졌다. 꿈에서 탄 냄새를 맡아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담배 냄새를 맡아보기는 처음이다. 내 꿈에 흡연자가 등장했다. 누굴까 그는. 꿈에서 오감을 모두 체험해봤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강렬하다. 꿈에서의 후각 경험. 다 좋은데 왜 하필 담배 냄새인가. 다음에 발각되면 그에게 경고해야겠다. 제 꿈에서는 금연입니다.
돈 대신 미안하다고 적고서 나는 간다
살아난 할머니는 오는 자식들에게마다 죽고 싶다는 말을 연기를 한다 마음이 차오를 때까지 징그러운 그 말을 뱉고 또 뱉는다 커다랗고 하얀 병실이 가볍게 울리다가 어느새인가 어두워진다 세월이 가르친 연기는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무겁다 꿈에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새장가를 가셨단다 일찍 가서 밉고 데리러 오지 않아서 더 밉단다 9층 병실에서 보는 하늘도 높은 가을이고 가을이 슬픈 엄마는 떠나보낼 것들이 가득이다 모아 놓은 돈이 없어 인사를 못 간 나는 학생이라는 말에 비겁하게 또 숨는다 더 어린놈에게도 길을 가르쳐준다 학생이라 글도 그림도 못 미덥고 보여주기에는 무섭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영화가 서랍 안에서 무겁다 쌓아가는 메모는 빚과 같아서 이제 좀 사람이 되어야지 좀 털어 갚아보려다 하나를 못 털어 갚고 파리로 갈 시간이 다 되었다 다섯 시면 고파서 못 견딜 배를 들고 말도 배워야 하는 곳으로 간다 잘 살고 있는 이들을 보고 오면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 미안하다 말도 잘하면 능력이라면서 할머니도 엄마도 사랑도 내 머리를 쓸어 넘긴다 마흔이라 눈물은 안 날 텐데 흠칫 놀라 고갤 젖힌다 아픈 곳이 낮아져 간다 멀쩡한 얼굴에도 호흡을 찾으려 긴 산책을 하곤 한다 태풍이 끌고 온 추석에는 달이 밝다 고개를 숙이고 걸어도 달을 알겠더라 삶 같은 거에 쉽게 갖다 대면서 봐라 더 좋은 날이 온다고 한 번만 툭 터지면 된다며 꼬깃 모은 돈을 쥐어 주시고 한 번만 일어서면 된다면서 못 받을 돈도 또 주신다 마음이나 풀고 오라는 길에 나는 사랑의 손을 꽉 잡는다 인사도 다 못하고 간다 울 거 같아 도망처럼 뛰어서 간다 돈 대신 그림을 받은 적이 있다 돈 대신 미안하다고 적고서 나는 간다 W 레오 P Todd Diemer 2019.09.14 시로 일기하기_오늘 날씨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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