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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장르문학

'오늘의 장르문학' / 듀나 외 7인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문단 문학과 장르문학을 가려 읽는 편은 아니다. 요즘에는 점점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기도 하니 사실 문단 문학만 읽는다거나 장르문학만 읽는다는 것이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오늘의 장르문학에는 총 10명의 작가가 쓴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가들도 있고 처음 보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다양한 작가의 개성적인 상상력이 듬뿍 담긴 단편 10편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일단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제한 없는 상상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양하고 특이한 소재와 이야기였다. 특히 흥미로웠던 소재와 배경은 정명섭 작가가 쓴 바람의 살인이었다. 고구려 군대 내의 괴롭힘으로 인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추리 기법을 빌린 바람의 살인은 그 특이한 설정 덕분에 순식간에 소설 속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은림 작가가 쓴 만냥금 또한 특이하면서도 좋았다. 동화적인 분위기로 시종일관 이끌어 나가면서 그 안에서는 돈이라는 종이 다발에 지배당하는 사람의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천 원짜리를 만 원짜리로 보이게 만들어주는 상상 속 식물, 만냥금의 존재가 동화적인 분위기와 어두운 이야기를 유연하게 엮어준다.

중고등학생 시절 밤을 새 가며 읽었던 드래곤 라자, 피를 마시는 새, 눈물을 마시는 새의 작가인 이영도 작가가 쓴 에소릴의 드래곤은 반가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글만 보아도 아, 이영도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하는 소설이었다. 드래곤과 약간은 특이한 성격의 등장인물들, 이영도 작가 특유의 유머가 여기저기 묻어 나와서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으로 미소를 지은 채 읽었다.

구병모 작가는 문단 문학을 쓰는 작가에 가까운데 이런 곳에서 예상치 않게 만나게 되자 놀람과 반가움이 함께 찾아왔다. 원래 소설들에 약간의 판타지적 상상력이 가미된 경우가 많은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한 편의 잔혹동화처럼 보이는 재봉틀 여인에서는 구병모 작가 특유의 문체가 어김없이 큰 역할을 했고 개인적으로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구병모 작가의 팬이 된 필자로서는 이런 단편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무엇이든 꿰맬 수 있는 재봉틀 여인에게 감정을 꿰매 달라고 부탁하는 주인공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파국을 시니컬하면서도 군데군데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문장으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작가는 구병모 작가밖에 없지 않을까.

그 외에 다른 소설들에서도 그 상상력과 참신함에 감탄했다. 어릴 적 판타지, 무협 소설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장르소설이 이렇게나 다양해지고 풍부해졌다는 점이 놀라웠다. 장르 소설이면 SF, 판타지, 무협 정도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장르문학이 이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정표 같은 책이 바로 이 '오늘의 장르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한 문장 : 아들은 남자의 손아귀에서 바스러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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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인데 서울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제 텅 빈 서울에서 드물게 문을 연 술집에 가, 조금은 후한 대접을 받으며 술을 마시기란 어려운 일이다. 선물 받은 커피 쿠폰을 쓰기 위해 평소 잘 가지 않던 카페를 뒤진다. 첫 번째 방문한 카페는 만석이다. 두 번째 간 카페도 만석이다. 세 번째 방문한 카페에 간신히 자리를 잡는다. 내게 커피 선물을 한 사람은 내게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기회도 덤으로 주었다. 지지난 학기에 꼭 붙어 다니던 여학생 둘은 이제, 수업 시간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다. 그 둘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들과 말을 섞어본 적이 없다. 한 명은 놀라울 정도로 소설을 잘 쓰며, 한 명은 방학 동안 독일에서 머물렀다고 수업 첫 시간에 고백한다. 둘 사이에는 다툼이 있었으며, 방학 동안 독일에 머물렀다고 고백한 학생은 다툼이 있은 후, 주체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홧김에 독일에 갔을 것 같지는 않다. 다툰 것으로 추정되는 둘 중 한 명의 편을 들어야 한다면, 소설을 잘 쓰는 쪽 편에 서고 싶지만, 그것은 조금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학기에는 앙드레 브르통이 나를 괴롭히더니, 이번 학기에는 주디스 버틀러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다음에는 질 들뢰즈에게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어떤 이는 시공간을 넘어 누군가를 괴롭힌다. 어느 날 내가 펴낸 책이 말도 안 될 정도로 호평을 받아,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유산이 되어,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후에 나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독자, 그러니까 예를 들면, 2105년경 폴란드 바르샤바의 어느 대학 한국어 전공 대학생인 유럽인이 번역된 내 책을 읽으며 괴롭다고, 이 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못 알아먹겠다며, 그의 친구에게 짜증 섞인 투정을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나는 지금 그에게 미리 사과를 하고 싶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과제를 대신해드리고 싶지만, 저는 이미 죽었네요. 아니, 살아있다고 해도 그때는 제가 이미 일백 세가 넘어, 과연 펜을 들 힘이라도 남아 있을까 의문인데, 그전에, 그때쯤에는 펜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펜이라는 것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덧붙여 박물관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할까, 그런 생각은 드네요. 이러고 있다. 일곱 살인 조카를 집에 바래다주며, 13년 뒤에 한잔하자고 제안한다. 술을 끊었지만, 13년 만에 술 한 잔 정도는 괜찮을 것 같고, 13년 만에 술을 마신 나에게, 술을 끊었다더니 결국 또 입에 술을 대느냐고, 당신 같은 의지박약의 인간을 보면 혀가 내둘러진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카페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연휴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에는 경기도 용인의 외진 곳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를 방문했고, 도슨트가 원치 않는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제안했으며, 그것이 절실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뭐, 그렇다면 그러시라고 했다. 그녀는 무척 고마워했으며, 이렇게 태풍이 심한 날에 남자분 둘이 방문하시다니, 신기하네요, 했다. 남자분 둘 중 나를 제외한 한 명은 나와 서울시티투어버스를 타기로 계획했던 그 사람인데, 태풍이 심해 급히 계획을 변경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백남준의 작품들을 보고 난 뒤에는, 비바람에 뒤집혀서 꽃봉오리 같아진 우산을 들고, 피자집을 방문했고, 다시 나와서는 상상 이상의 태풍을 맞이하며,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생각하며, 역까지 힘겹게 걸었다. 태풍은 해도 해도 너무했고, 역시 태풍이 심한 날에는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꿈에서는 누군가 담배를 심하게 피워대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집에서 담배를 피울만한 사람이 없는데, 잠에서 깨보니 담배 냄새가 사라졌다. 꿈에서 탄 냄새를 맡아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담배 냄새를 맡아보기는 처음이다. 내 꿈에 흡연자가 등장했다. 누굴까 그는. 꿈에서 오감을 모두 체험해봤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강렬하다. 꿈에서의 후각 경험. 다 좋은데 왜 하필 담배 냄새인가. 다음에 발각되면 그에게 경고해야겠다. 제 꿈에서는 금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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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평범해! '예스터데이'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학교에 아르바이트에 방송에 어후 나이는 점점 먹는데 욕심은 점점 늘고 있네요. 그리고 영화도 빼놓을 수 없죠! 바빠도 저에게 영화는 언제나 비타민입니다. 정말 지치고 힘든 날, 노래로 힐링받고 싶을 때가 있죠! 오늘의 영화는 비틀즈 헌정작품, 영화 '예스터데이'입니다. 일단 예고편을 참 못 만들었더라고요. 마케팅이나 홍보가 영화계에서는 유독 중요한데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좋은 작품이다? 그건 애매합니다만 비틀즈 노래로 위로 받기는 좋은 작품입니다. 사실 뻔해 우린 이미 많은 음악영화를 만나봤습니다. 많은 드라마도 경험했죠. 그러니 음악과 드라마가 섞인 작품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왠만해서 모를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영화는 그저그런 클리셰를 밟아갑니다. 왜? 흥행할 확률이 높고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스터데이도 마찬가지로 여느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 속 '노래'가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해당 작품에 열광하는 정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당연히 비틀즈 노래가 주인공인만큼 노래만큼은 소름 돋을 정도로 좋습니다. (비틀즈를 알거나 팬이라면 더욱) 하지만 그게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이 됩니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움이 없고 듣기 좋지만 오래 여운이 남지는 않습니다. 존카니 영화를 예로 들자면 영화가 끝난 후 남기는 잔상의 깊이 차이가 꽤 크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여, 상황의 차이 미국이건 한국이건 사랑얘기는 단골입니다. 음악에 사랑이라 낭만이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더 익숙한 이야기의 상황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흔히 로맨스 영화에서 남자 2명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자 1명을 자주 봅니다.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남자 2명 사이에서 관계를 애매하게 끌어가죠. 이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만약 반대로 여자 2명 사이에서 남자 1명이 고민한다면, 우린 무슨 생각을 할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가 쓰레기입니다. 여자는 연민의 대상이지만 같은 상황에서 남자는 우유부단하거나 나쁜남자로 묘사되곤 하죠. 사랑을 쟁취하는 남자, 사랑 받기를 기다리는 여자, 이제는 새로운 관계와 상황도 시대가 변한만큼 나올만 하다고 봅니다. 판타지 세계 속 사라진 것들 너무 자연스러운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영화적 허용을 단도직입적으로 사용해버린 탓에 우리는 별로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비틀즈가 없어졌다! 사람들이 기억을 못 한다! 남자 주인공 빼고! 이런 설정입니다. 그런데 굳이 비틀즈 뿐만 아니라 코카콜라, 시가렛, 오아시스, 해리포터 역시 세상에서 없어진 채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왜 하필 이것들이 사라졌을까? 궁금하더군요. 살짝 찾아보긴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적힌 글은 없었습니다. 단순히 대중에게서 20세기를 풍미했던 문화나 생활을 하나씩 가져갔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은연 중에 자리잡은 대중의 수요품들이 없어진채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력에서 영화는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심이 비틀즈일 뿐 사실 영화는 말하고 싶은 바가 따로 있었습니다. 평범함이 행복이다 영화는 평범함을 강조합니다. 세계적인 스타나 부자가 되기 보다 평범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가장 행복할지 모른다는 얘기죠. 우리는 지금 비틀즈의 명곡을 들으며 살 수 있고, 펩시와 코카콜라 중 원하는 음료를 선택할 수 있고, 때로는 진한 시가렛도 필 수 있는, 해리포터를 보며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세대임을 느끼며 살자는 의미라고 봅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지난 추억들을 잊고 변화에만 혈안이 되기보다 때로는 잠시 멈춰 돌이켜볼 수 있는 여유를 심어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가볍게 노래 들으러 가기에는 괜찮은 작품이었네요. 쿠키영상은 없고, 'Hey, Jude' 들으시면서 영화관을 나오시면 되겠습니다. 관객 수는 20만~40만 사이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틀즈의 팬이라면 (에드 시런도 나와요!) 한 번쯤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영화 '예스터데이'였습니다.
단편 : 반반 무 많이
C양은 알람을 5분 간격으로 세 번째 듣고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벌써 회사에 갈 시간이다. 매번 일어날때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지만 어쩔 수 있나. 먹고 살려면 가야지. 15분 더 자는 바람에 아침에 먹으려고 사놓은 샐러드도 못 먹고 후다닥 준비를 하고 집을 나왔다. 지각은 안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종종걸음으로 지하철로 향한다. 지옥철에서 빠져나와 복잡한 거리를 헤치고 회사에 도착하자 진이 다 빠진다. 시계를 보니 출근시간 3분 전.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옆자리에는 P양이 이미 출근해 앉아 있다. P양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책상 위에 떡하니 올려져 있는 가죽 가방에 먼저 눈이 간다. 명품 브랜드의 신상 가방이다. 최근에 연예인이 들고 다니는 게 사진에 찍혀서 유명해진 가방이다. P양의 호구 같은 남자친구가 사다 바친 게 분명하다. P양에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C양의 눈은 고급스런 상아색 가죽 가방과 자신의 오래된 검은색 가죽 가방을 빠르게 훑는다. 오전 시간, 보고서를 써야 되는데 비몽사몽한 상태로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다. “다 같이 요 앞에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부장님의 말에 P양이 입을 가리고 호호 웃으며 좋아요 라고 선수를 친다. 여성스러운 척 하는 P양을 보자 짜증이 확 솟구쳐 올라오는 C양이다.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자들한테 온갖 청순한 척, 약한 척 하면서 일을 떠넘기는 걸 볼 때마다 얼마나 열불이 터지는지. 결국 남자 선배들한테 P양이 넘긴 일이 자신에게까지 넘어올 때마다 P양의 뒤통수를 휘갈기고 싶은 적이 몇 번인지 셀 수도 없다. P양이 꼴보기 싫어서 똥 씹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C양. “C양은 오늘 표정이 왜 그래? 오늘…… 설마 그날인가? 허허허.” 저 웃고 있는 부장 놈의 주둥이를 꼬매버리고 싶지만 C양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어색하게 하하 웃는 것 뿐이다. 다른 직원들도 어설프게 부장의 웃음에 동조한다. 부장의 뒤를 따라 사람들이 나가자마자 C양은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침을 탁 뱉는다. “이 놈의 회사, 내가 언젠가 때려치고 만다.” 회사 앞, 부장이 좋아하는 백반집 좁은 테이블에 다닥다닥 모여 앉았다. 메뉴를 정하는데 고기를 좋아하는 C양은 당연히 갈비탕이다. 왠일로 P양은 비빔밥을 시킨다. 고기가 없으면 밥도 안 먹더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만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메뉴 여섯 개가 눈 깜빡할 사이 나와 테이블 위에 차려진다. P양이 어머 소리를 연신 내며 비비기 힘든 척 연기를 한다. C양 눈에는 훤히 보인다. “이리 줘봐요 P양. 내가 비벼줄게.” 옆에 있는 호구 남직원의 눈에는 진짜처럼 보였는지 남직원이 열심히 손을 놀려가며 P양의 밥을 비벼준다. 고마워요, 하며 살짝 어깨를 터치하는 P양. 남자친구도 있으면서 저게 뭐하는 짓인지.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C양이다. “그런데 P양은 고기 들어간 음식 좋아하지 않았나?” 부장이 입 안 음식을 훤히 내보이며 말한다. 밥알 하나가 튀는 건 덤이다. P양은 입을 가리고 호호 웃는다. “저도 이제 채식하려구요. 살도 빠지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이조잖아요. 게다가 다 같은 생명인데 불쌍하기도 하고요.” P양은 가식적인 슬픈 표정으로 굳이 C양이 뜯고 있는 갈비를 가리키며 말을 끝낸다. 당황한 C양은 갈비를 입에 문 채 뜯지도 내려놓지도 못한다. “역시 우리 P양 대단하구만. 생명을 생각하는 마음도 외모처럼 참 예쁘고 말이야. C양은 평생 채식은 못하겠어? 그렇게 고기를 좋아해서야, 허허.” “아…. 예. 하하.” 농담이랍시고 던지는 부장의 말에 C양은 어설프게 갈비를 내려놓고 웃는다. “어머, 부장님. 그러지 마세요. 고기 먹는 건 개인 기호지, 나쁜 건 아니잖아요. 갈비탕 맛있게 먹어요, C양.” P양은 C양을 향해 웃으며 부장의 말에 한마디 덧붙인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딱 그 짝이다. 두세달에 한번씩 새로 가죽가방을 사재끼는 P양에게 저런 소리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C양의 속에서는 열불이 터진다. 생명의 소중함은 개뿔. C양은 외려 더 우악스럽게 갈비를 뜯기 시작한다. 6시가 지나 퇴근시간이 되자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P양은 6시 땡 치자마자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미 자리에 없다. 저 살찐 몸이 어떻게 저렇게 빠른지 의문이다. 슬슬 일을 마무리하고 정리를 하려는 C양에게 부장이 다가온다. “C양, 미안한데 이것만 좀 해줘. 한 30분이면 끝날 거야. 내가 오늘 밤에 일이 있어 가지고 말이야.” 부장이 비실비실 웃으며 기획서를 C양의 책상에 내려놓는다. 이런 썩을. 욕이 튀어나올 뻔 한 걸 가까스로 참고 C양은 억지로 미소를 띄우며 말한다. “네. 제가 해드릴게요.” “역시 우리 C양밖에 없어. 일도 잘하고 야무지고. 부탁 좀 할게.” 부장이 C양의 어깨를 슥슥 쓰다듬더니 자리로 돌아간다. 부장의 손이 닿은 어깨가 썩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부장놈, 고작해야 밤에 룸싸롱이나 가려고 저러겠지. 회사에서 야근하고 들어가다 근처 룸싸롱에서 잔뜩 취해서 나오는 부장을 본 적이 한두번인가. 치사하고 더럽지만 인사 평가가 얼마 남지 않아 어쩔 수가 없다. 부장한테 밉보였다가 인사평가를 개떡 같이 받아 승진을 못 했던 작년 생각만 하면 이가 갈린다. 열불이 뻗치지만 하는 수 밖에. C양은 푹 한숨을 내쉬고 껐던 컴퓨터를 다시 켠다. 그 사이 부장은 쏜살같이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C양은 컴퓨터가 켜지는 사이 퇴근하고 집에서 만나기로 했던 D양에게 카톡을 보낸다. ‘야, 미안하다. 부장놈 땜에 좀 늦게 퇴근할 듯. 내 원룸 비밀번호 알지? 그냥 누르고 들어가 있어.’ 개가 펄쩍 뛰면서 OK라고 외치는 이모티콘이 스마트폰 안에서 분주하게 뛰더니 멈춘다. 누가 D양 아니랄까봐 꼭 지 같이 생긴 이모티콘을 쓰고 있다. C양은 피식 웃더니 스마트폰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워드와 기획서를 번갈아 보며 열심히 문서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6시가 지난 사무실에는 C양과 남직원 둘까지 총 셋 뿐이다. 그마저도 6시 40분쯤 되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10분 뒤 다시 한 명이 회사를 나간다. 사무실에는 혼자 남은 C양이 타닥타닥 자판을 누르는 소리만 울린다. C양의 안경에 비친 컴퓨터 화면에는 계속해서 검은 글씨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길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으아앗!” C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편다. 이제야 기획서 작성이 끝났다. 이미 창 밖은 어두워진 지 한참이다. C양은 컴퓨터를 끄고 끼고 있던 이어폰을 뺀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 조용하다. 컴퓨터가 꺼지면서 내는 위잉 소리만 빈 사무실을 채운다. 곧 타닥 소리가 나더니 컴퓨터에서 나는 소리도 사라지고 갑자기 C양은 완벽한 정적 속에 놓인다. C양은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부장이 떠넘긴 기획서나 쓰고 있는 처지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후,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언젠가부터 한숨이 많아졌다. 사실 모르고 있다가 D양이 말해줬을 때에야 깨달았다. “너 요즘 왜 이렇게 한숨을 많이 쉬어?” “내가?’ D양의 말에 놀라며 반문했었던 기억이 난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한숨이 잦아졌다는 걸. 그 반문은 한숨이 잦아진 걸 그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D양의 물음이 너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 라는 질문으로 번역되어 일부러 외면하고 있던 명치 즈음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이 울린다. D양이 보낸 카톡의 미리보기가 화면에 떴다. ‘아직 회사?’ 시간이 벌써 9시가 넘어간다. 검은 가죽 가방에 짐을 대충 쑤셔 넣고 자리에서 일어난 C양은 사무실 불을 끄고 나간다. 사무실은 어둠 속에 비로소 텅 비었다. 삐, 삐, 삐, 삐. 차라락. C양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 집인 양 바닥에 드러누워 낄낄대며 TV를 보고 있는 D양이 보인다. “아주 살판 났네.” “어, 왔냐?” 누워 있던 D양과 C양의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가벼운 웃음이 터진다. “그래, 부장 새끼 때문에 이제야 퇴근했다. 내가 드러워서 진짜 회사를 때려치던가 해야지.” C양이 가방을 대충 던지고 식탁 의자에 주저앉자 D양도 슬금슬금 일어나 맞은편에 앉는다. “고생이 많다, 짜식.” D양이 C양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다. D양이 식탁에 앉은 채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린다. “짜증나는 게 부장 새끼 하나면 내가 말을 안 한다. P, 그 년은 진짜 뒤통수 후리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야.” D양은 돌아가는 TV 채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묻는다. “왜, 뭔 일 있었어?” “그 미친 년이 오늘 점심 먹는 데 지 채식 한다고 하더니 내가 뜯고 있는 갈비 가리키면서 생명은 소중하잖아요, 이 딴 소리 하고 앉았더라. 고기면 환장하는 년이. 그래 놓고 오늘 또 새로 가죽 가방 사왔더라. 생명이 소중하다는 년이 그렇게 가죽 가방을 사재끼냐? 진짜 돼지들은 상종할 게 못 돼.” “와 고 년 지능적이네. 내 주변 돼지 친구들은 다 괜찮던데 그 년은 상또라이네. 상또라이.” D양이 말하느라 채널 돌리기를 멈춘 사이 TV 뉴스에서는 공장식 인간 사육에 대한 보도가 나온다. C양이 말한다. “저거 봐봐, 인간들 저렇게 사육해가지고 고기로 만드나, 가죽 벗겨서 가방으로 만드나 죽는 건 마찬가진데 무슨 채식만 하면 인간들 생명이 보장되나? 그럴 거면 인간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나 인간 실험 통과한 화장품이나 다 하나도 쓰면 안되지, 다 쳐 쓰면서 인간권 운운하는 P 같은 년들 보면 짜증나 가지고. 그러면서 육식하는 동물들 싸잡아서 생명의 소중함을 모른다느니, 뭐니 하는 거 보면 어휴. 그래도 우리 닭들 중에는 그런 닭 없어서 다행이야.” D양이 덧붙인다. “야, 우리 개들도 마찬가지야. 우리 개들은 인간 고기는 먹어도 인간 가죽 제품 같은 건 거의 안 쓴다고. 고기를 먹더라도 차라리 인간 실험 화장품이나 가죽 제품들 안 쓰는 게 인간들한테 훨씬 도움 될 거다.” “그니까, 그 돼지년 그렇게 얘기하면서 내숭 떠는 거 보면 내가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게다가 오늘 가방 보니까 상아색 가죽 가방이더만. 그거 그 색깔 가죽 얻으려고 억지로 피부색 다른 인간들 교배 시켜서 만든 거잖아. 그게 잔인하냐, 차라리 깔끔하게 도축해서 고기 먹는 게 잔인하냐? 그게 동물이 할 짓이냐.” D양은 다시 TV 채널을 돌리면서 말한다. “그니까 말이다. 니가 아주 고생이 많다. 야, 그나저나 배 안 고프냐?” 지금도 열불이 뻗치는지 C양은 부리를 딱딱 부딪힌다. 벼슬도 살짝 서 있는 것이 꽤나 화가 많이 났다. “P 년이랑 부장놈 얘기하니까 빡치네. 안되겠다. 우리 인간 튀김이나 시켜 먹을까.” D양이 맞장구 친다. “오, 좋아좋아. 안 그래도 엄청 배고팠다고. 맥주도 같이 시켜봐.” 검은 가죽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려던 C양이 멈칫한다. 그래도 이 검은 가죽 가방은 그냥 흑인 가죽이지 억지로 교배시켜서 만든 건 아니니까. 자기합리화를 끝낸 C양은 마음 편하게 흑인 가죽 가방을 열어 스마트폰을 꺼낸다. C양이 익숙하게 번호를 찍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네, 두마리 인간 왕튀김입니다.” “네, 아저씨. 여기 예원 빌라 301호인데요, 인간 튀김 기본이랑 매운 맛 반반 되죠?” “네, 됩니다.” “그럼 그렇게 반반이랑 맥주도 두 통 갖다주세요. 아, 무도 많이 주세요!” “네, 반반에 맥주 두통, 그리고 무 많이요.” “네, 빨리 갖다주세요.” C양이 전화기에서 귀를 떼기 직전,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인간 튀김 반반, 무 많이!”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 윤고은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라는 제목이 참 매력적이다. 제목만 들어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다. 털털거리며 엔진이 돌아가는 늙은 차와 그 차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이름 모를 히치하이커. 그 때문이었는지 이 소설집은 마치 히치하이킹을 하듯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통통 튀는 소설들이 들어있었다. 이 소설집에는 총 8편의 단편이 들어 있다. 된장이 된, 불타는 작품, 전설적인 존재, Y-ray, 책상, 다옥정 7번지, 오두막,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이 8편의 단편이 끝나면 그 뒤에 윤고은 작가와 정소현 작가의 대담이 실려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상상력이다. 작가의 특이하고 비현실적인 상상이 소설마다 펼쳐지는데 윤고은 작가의 뻔뻔한 문장들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묘하게 넘나드는 인물이나 사건들을 보면 왠지 이 지구 어딘가에서는 진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 같다고 믿어버리게 된다.(심지어 말하는 개나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 여행을 한 소설가 이야기도 이 넓은 지구 어디쯤에서는 일어날 수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렇게 뻔뻔하고 아무렇지 않게 독자를 자신의 상상 속으로 끌어들여 이리저리 휘두르는 작가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들이 그냥 재밌는 상상으로 끝나냐 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상상 속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현실의 어느 부분들을 툭툭 건드리는데 그게 꽤나 아프다. 현대의 인간이란 얼마나 자신 안에 갇혀 있으며 자신이 아는 범위 안의 것만 믿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하고(다옥정 7번지),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인한 방관과 외면이 적극적 가해와 과연 다른가를 고민해보게 하기도 하고(오두막), 사람 사이의 차별과 인간이 가지는 믿음의 의미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Y-ray). 읽을 때는 신나고 재미있게, 읽고 나서는 생각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좋은 소설집이다. 필자가 8편의 단편 중 가장 맘에 들었던 소설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였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늙은 차를 타고 동행하게 된 두 사람이 세상의 중심인 울룰루로 향하는 내용이다. 우연히 같은 차를 타게 된 둘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우연을 발견한다. 그리고 늙은 차는 울룰루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멈춰 버린다. 운전하던 남자는 차에서 내려 여자에게 말한다. "니나, 동행해줘서 고맙네." 물론 여자의 이름은 니나가 아니다. 소설집 맨 뒤에 실려 있는 윤고은 작가와 정소현 작가의 대담도 넘기지 말고 읽어주기를 바란다. 소설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사실 이 소설집의 백미가 대담이 아닐까.)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매력적인 제목이다. 책을 읽기에 제목이 마음에 든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다. 전혀 모르는 책을 제목만 보고 집어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책이 좋은 제목만큼이나 좋은 책일 때 그 순간은 온전한 독자의 행복이다. 적어도 나는 그 행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소설 속 문장 :  "니나, 동행해줘서 고맙네." "니나가 아니라니까요." "어쨌거나 고마워."
무제
-지잉- -...응? 휴대폰에 울린 알림을 확인했다. -oprjkjd님이 당신의 글을 좋아합니다! 문득, 나는 빙글에 들어갔다. 언제 썼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내 글. 그 글에 좋아요가 달렸다. 몇 달 전 확인했을 때보다 조회수는 훨씬 올라가 있었고, 나를 팔로워해주는 사람들은 내가 없는 사이에도 몇백명이 늘어나 있었다. 빙글에 들어오지 않았던 몇 달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이는 이제 보행기를 타고 온 집안을 누비기 시작했고 나는 쓰리잡에서 투잡으로 일을 줄였고, 새로운 직장에서는 이름뿐이지만 과장 타이틀과 함께 실무자가 되어 있었다. 이제 조금은 여유가 생긴 거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슬슬... 빙글에도 열심히 글을 올려야겠다.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열심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소재가 없다... 그 동안 굳어버렸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뽀로로 주제가랑 아기상어밖에 생각이 안난다. 내가 추구했던 이야기, 무섭고도 오싹하고, 소설같은 실화. 혹은 실화같은 소설... 소재를 찾기 위해 담배를 챙겨들고 집 밖으로 향했다. 늦은 새벽. 아이와 아내가 잠들어있는 새벽. 아무 생각 없이 근처 뒷산으로 걸어갔다.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그 산.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 벤치에 앉아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을 목격했다. 작은 가로등 불빛을 조명삼아 술에 많이 취한 듯,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반쯤 벗겨진 옷을 걸친 채 열심히 서로를 탐구하고 있었다. -아...시바..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한참 서로의 입술을 부딪히던 커플 중 여자가 눈을 뜨고 내 쪽을 바라봤다. -꺄아악! 뭐야 씨발! 여자는 남자를 밀어내며 나를 향해 거칠게 욕설을 쏘아댔고, 남자는 잠시 상황파악을 하더니 나를 보며 일어났다. -야. 뭐야? 뭔데 쳐다봐. 변태야? 시발 변태냐고. 어? -오빠. 저 새끼 성희롱으로 신고해. 나 계속 훑어봤어. 개 더럽네 진짜. 아. 나는 내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그들을 봤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듯한, 자신들의 추태가 들킨 것에 대한 민망함을 내게 풀겠다는 듯, 옅은 비웃음이 걸린 입으로 다가왔다. -툭- -툭- -야. 뒤질래? 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밀던 남자는. -퍽- 내 가슴을 발로 찼다. -크하하! 그러게 좆밥새끼가 어디서 나대 나대기를. -오빠. 이제 신고하자. 저 새끼 보내버리게. 볼썽사납게 흙바닥에 나뒹구는 나를 보며 저급한 대화를 이어가는 그들을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서 많은 것들이 보였다. 서류를 집어던지던 회사 상사, 정강이를 발로 까던 거래처 박차장, 살려달라며 돈을 빌려가서 연락이 없던 내 친구 준상이... 내가 싫어하던, 분노하던 많은 얼굴들이 얼굴에서 보였다. 그리고, 어느 새 내 손에는 큼지막한 돌이 들려 있었다. -퍼억-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았다. 움푹 들어간 관자놀이와 옆으로 서서히 넘어가는 그.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하는 듯한 눈. 모든 것이 서서히 내 시야에서 밑으로 무너져내렸다. -퍼억- -퍽- -퍽- 나는 그의 몸 위로 올라탔다. 내 손은 내 손이 아닌 듯, 그의 얼굴을 몇 번이고 돌로 짓이겼다. 그 순간 예전에 돈까스 만들 고기를 내리치던 때가 생각났다. 내 온 몸에 피가 여름 밤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것만 빼면. -히..히익...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미동도 없어진 남자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문득 빨갛게 물든 내 손이 보였다. 내 몸의 피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거 같지만, 그 남자의 몸에서 내 손으로 옮겨 온 피들은 아직 온기를 담고 있었다. -퍽- 아무 생각 없이 몸뚱이 두 개를 산 밑으로 굴려버린 후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뜨겁게 그들이 사랑을 나누던 이 벤치도, 지금은 산 중턱에 걸려있는 그들만큼이나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담배를 한 대 피워올렸다. 빨갛게 타들어가는 담뱃불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빠르게 휴대폰을 켰다. 내가 없는 동안 꾸준히 내 글을 읽어준 사람들, 팔로우해준 사람들. 아직 손이 빨갛게 물들었을 때, 얼굴에 튄 무언가가 굳어버리기 전에. 이 생생함을 빨리 써내려가야한다. -게시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담았다. -다음엔 비옷 같은거라도 챙겨서 나와야겠다. 일주일에 한 편씩 올릴 방법. 실화같은 소설, 소설같은 실화. 소설인 척 하는 실화. 실화인 척 하는 소설. 이제 소재를 찾았다.
작가의 글쓰기
'작가의 글쓰기' / 이명랑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작가의 글쓰기는 이명랑 작가가 총 11명의 작가들의 창작론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실은 책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소설가들의 창작 방법, 노하우, 소설에 대한 생각 등을 알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반가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총 11명의 소설가들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공지영, 구효서, 김다은, 명지현, 방현석, 심윤경, 이동하, 이명랑, 이평재, 정유정, 정이현 작가가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만의 창작 노하우나 창작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답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명랑 작가는 책의 챕터를 세 개로 나눴다. 인물 중심의 소설을 쓰는 작가, 공간 중심의 소설을 쓰는 작가, 사건 중심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 나눠 총 세 챕터에서 인물, 공간, 사건이라는 소설의 요소들에 대해서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글로 옮겼다. 보통 소설 구성의 3요소라고 칭하는 인물, 공간(배경), 사건을 가지고 어떤 것이 중심이 되느냐에 따라 소설을 구분한 것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가는 정유정 작가였다. 정유정 작가는 소설의 중심이 되는 가상의 공간을 그림으로 완전히 그려내 자신의 머릿속에 그 공간이 사실처럼 존재할 때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정유정 작가님의 소설 대부분이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7년의 밤에서는 세령 마을이 중점이고 종의 기원에서는 아예 주인공이 사는 아파트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도 정신병원을 무대로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정유정 작가는 그런 한정된 공간에 각각의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을 풀어놓으면 자연스럽게 소설이 진행된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창작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쯤 따라 해보고 싶다고 해야 할까. 사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조금이라도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한계에 많이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고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은 이들의 조언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책은 그런 상황에 해답을 던져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게 해 주었다. 그냥 엉덩이 붙이고 노트북 앞에 앉아 계속 자판을 두들기는 것. 그것밖에 답이 없었다. 10명의 소설가만 모아놔도 각각이 글 쓰는 방법이 모두 다르고 정해진 방법은 없다. 스스로 꾸준히 글을 써가며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길이 유일한 것이다. 아직도 답이 안 보이고 지금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쓰는 수밖에.
5년 만에 신혼여행
'5년 만에 신혼여행' / 장강명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장강명 작가님의 소설은 많이 읽었지만 에세이는 처음이다. 제목 그대로의 내용이 실려있다. 5년 만에 떠나는 신혼여행. 5년 만에 떠나는 신혼여행은 그 부부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장강명 작가님과 아내 분은 결혼식도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 한 채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당연히 신혼여행은 없었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5년 뒤에야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다. 목적지는 필리핀의 보라카이. 하지만 첫 단추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가성비를 열심히 따져가며 예약한 자유여행 패키지에 들어있던 항공편은 하필 문제가 많기로 유명한 항공사였고 원래 아침에 출발할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결국 1시가 넘어서야 출발한다. 게다가 뒤로 젖혀지지도 않는 비상구 앞 좌석은 다리는 편하지만 허리는 불편하고 그 상태로 보라카이에 도착한 둘은 이미 기분이 좋지 않다. 과연 이 신혼여행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책 내용은 간단히 보자면 보라카이 신혼여행 이야기가 전부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작가님의 여러 가지 생각과 소회들이 담겨있고 반가운 에피소드들도 불쑥 튀어나온다.(예를 들면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와 기명의 모델이 작가님의 아내분과 작가님이 모델이었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장강명 작가님의 생각들 자체가 작가님의 여러 소설들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꼬마와 드래곤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생각났고 보라카이에 사는 필리핀 사람들은 아마 보라카이의 관광 경제에 편입되려는 희망을 품고 왔다는 말이 나올 때는 한국을 훌쩍 떠난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가 생각났다. 소설로 읽고 생각하던 것들을 실제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살짝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 꽤 매력적이었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소설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작가님의 유머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글이라는 점이다.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유머들이 에세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머리를 든다. 아내 분의 기분이 저 끝까지 추락한 상태를 '다 때려치워' 단계라고 부른다던가, 간혹 튀어나오는 현실적인 의성어라던가,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말을 대신할 '뚫훍뀄땃찡부리쌍광쾅'이라던가.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님의 글이 곧잘 나오곤 해서 즐거웠다. 생각보다 나와 잘 맞기도 했고.(꽤나 웃으면서 읽었다.) 책, 이게 뭐라고를 들을 때마다 유머를 던지고 요조 님과 제작진 분들 눈치를 보던 게 생각나서 그런지 글에서도 툭 던져놓고 눈치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게 오히려 더 웃겼다.(아마 아내 분에게 초고를 보여주면서 눈치를 좀 보시지 않았을까 싶다. 유머 몇 개는 날아갔을지도.) 5년 만에 신혼여행이지만 다른 신혼여행들과 별다를 바는 없다. 첫날부터 꼬인 일정에 기분이 안 좋은 데다 익숙하지 않은 지리에 헤매다 보니 결국 둘째 날 싸우게 되는 것도, 이야기를 통해 풀고도 아직 남은 불만을 서로 시답잖게 툭툭 건드리며 해소하는 것도, 맛집을 찾아다니고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산미구엘 맥주를 펑펑 마시는 것도, 떠나면서 못 해본 것들에 대한 후회가 남는 것도 보통의 신혼여행과 다를 바 없다. 그래도 남의 신혼여행 이야기를 이렇게 생생하게 들을 일은 잘 없는 데다 원래 남 결혼 얘기, 연애 얘기만큼 재미있는 게 또 없다. 맘 편하게 소파에서 뒹굴대며, 가끔 웃음도 터트리며 읽기 좋은 에세이다. 평범한 상황에서 이어지는 소설가의 생각의 확장은 한 번쯤 내 머리도 굴려보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이런 결혼 생활이라면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 속 한 문장 : 2016년 8월 현재, 저희 부부는 아직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사람_여태현 작가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잘' 만큼 지극히 주관적인 부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제가 애정 하는 작가님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2019년에 알게 된 사람들 중 제일 좋은(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인어와 우주의 방 그리고 오늘은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_순차적으로 한 권씩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꼭 비가 내리는 날에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비 내리는 날마다 읽었던 소설, 인어.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랑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우울과 몽상을 마시는 그들에게선 비 냄새가 납니다. T는 주로 차갑고, 가끔씩만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T는 내게 꼭 지구 온난화 같은 영향을 미쳤다. 끝없는 장마를 곁에 두고 간 것이다. 저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생경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뭐랄까요, 사랑이 넘치는 대한민국의 문화(드라마, 영화, 음악...)에 질려버린 것도 있습니다. 이는 문학에도 적용되는데 아, 이들의 사랑은 먹먹해서 입을 다문 채 '이제는 행복해지길' 바라며 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물이 빠지고 있는 욕조는 바닥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것은 꼭 T와 나 같았다. 우리의 관계는 바닥을 드러낼수록,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서로를 할퀴었다. 어둡고 우울한 것에 대해 논하지 않아도 느껴질 때 완전히 그 감정과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축축함을 좋아합니다. 책임지지 못할 다정함은 상처가 되고, 나는 그것을 폭력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른 셈이었다. 심연에 살 수밖에 없는 그들 모두가 인어가 아닐까요. 울적한 공기가 온 사방을 가득 채우며 이들의 이야기는 끝납니다. 물의 파동이 계속해서 퍼져 나가듯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우주의 방은 10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중 좋아하는 부분들을 발췌했습니다. 파란색이 우울을 상징한다면, 하늘도 바다도 파란색인 이 지구에서 우울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거네요. 그렇죠? 아, 그래 우리는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은 행성 지구에 살고 있다. 그러니 저는 이상한 게 아니겠죠...? 라고 적으며 슬픈 미소를 짓습니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하려다가, 연희에 대한 생각만 잔뜩 한 것에 대한 자책이었다. 이번엔 동그라미로 글자들을 가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니까. 글자들이 다른 생각과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 가둔 것인지, 그것만 생각하기 위해 가둔 것인지에 관한 생각이었다. 원의 이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글자를 가로질러 검은 선 몇 개를 그었다. 곧고 검은 선. 그것마저 연희를 닮았다. 그의 시선은 섬세합니다. 소설가의 시선이란 그런 법이죠. 그렇기에 매번 '어떻게'라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몸 속에 가득 차 있을 물의 밀도를 낮추고자 했다. 그래서 울었다. 울다가, 울다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물처럼 나를 계절에 녹이고 싶었다. 윤이 머무른 계절에. 겨울을 묵묵히 버텨내고 다시 봄이 오게 하는 생명으로 죽을 수만 있다면.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온몸을 저 계절 속에 산산이 비산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다시 봄이 오게 하는 생명으로 죽을 수만 있다면 저도 이런 생각으로 타인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올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배를 잃어버린 닻처럼 잠겨 살았다. 고개를 들면 수면 위로 표류한 배들의 배가 보이는 삶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잠겨있는 것뿐인 삶이 계속되었다는 문장을 손끝으로 계속 매만집니다. 소화가 되지 않습니다. 어둠의 결이 비슷하다는 건 그런 법인가 봅니다. ''한 종류의 차를 오래 우려 마시면 찻주전자에 그 차의 냄새가 배게 돼요. 난 그게 좋아요. 꼭 생명을 잉태한 것 같아서.'' 별 특징도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 유일한 문장이었다. 저도 반해 버렸습니다. 준영이란 이름을 자꾸 되뇝니다. 사람의 삶은 타인없이 홀로 설 수 없다는 사실 너무 어린 날에 깨달은 탓에 역사는 오래되었고 방은 날마다 무겁다 이번 책은 당신이 내게 준 것들을 당신에게 돌려주려는 행위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추모다 수많은 제목이 후보로 오르내리다가 이 제목으로 결정되었다고 했을 때, 저의 반응은 '글쎄요.' '제목은 별로여도 글은 다 만족하실 겁니다' 라던 그의 말이 생각납니다. 연애를 하기엔,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고 맞춰 나기기엔 우리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겁니다. 그만큼의 시간을 내게 할애할 수 없다고. 열정 같은 거 더 이상 타오르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고. 나이가 많아서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을 혓바닥 위에 올려놓고 오래 굴립니다. 모서리가 많아서 입안을 아리게 하는 글자들. 여태현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면 어김없이 왼쪽 차선으로 나를 앞지르는 차들. 붉은 후미등을 보이며 달려갑니다. 한겨울에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어쩐지 외로워져서 '내게서 멀어지는 것들 대부분 낯을 붉혔다.' 같은 메모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의 담백하면서 명료한 문체와 아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표현들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애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은 나까지 자꾸 애로 만든다. 일어나지 않은 일과 일어나지 않을 일과 좋아하는 마음과 단념하는 마음. 나 혼자 오해하고 서운해하는 일이 잦다.(중략) 그래도 괜찮다. 그 애는 '아직' 날 사랑하지 않으니까. 사랑하게 된다면 달라질 거야. 그런 희망을 '아직' 바라볼 수 있는 거다. 연필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은 마음을 부드럽게 긁곤 합니다. 단어에 대해 얘기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접해있는 건 물들기 마련이니까. 글자에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일수록 단어에 예민하기 마련입니다. 어느새 바지 밑단이 축축해지는 것도 모르고 글자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 발을 담그고 오래 서있다 보면, 소설가는 문장을 수집하는 직업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아, 그래 떠오르는 말들이 많습니다. 글자 속에 손을 집어넣고 왼손으로부터 오른손이 있는 곳까지 뚝 끊어내면 것보다 좋은 말이 얼마든지 떠오르는 겁니다. 저는 이 글을 기점으로 여태현이라는 작가에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SNS에 올라와 있는 그의 글을 탐독하고 우편으로 글을 받아보며 활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글자와 대화를 나누며 같이 호흡한다는 거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워낙 좋아하는 작가님이기도 하고 제 벗이기도 해서 한 문장이라도 더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오늘 글이 꽤 길어졌습니다. (나머지 한 권도 싸인을 받을 예정입니다.) 독서 하세요. 그 곳이 어디든. 그의 말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을 넘었다, '기생충'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입니다.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게 됐네요. 곧 종강이니까 방학하고 나면 바로바로 후기를 쓰겠죠? 제가? 본 영화는 꽤 있는데도 많이 밀려있네요 포스팅이,바쁘더라도 분발하겠습니다. 오늘의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화 '기생충'입니다. 이미 개봉 전부터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죠. 그런데 칸 영화제에서 최고수상의 영예까지 얻었으니 인기는 날개를 달은 격입니다. 비록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포스팅을 미루고 있던 저지만 이번만큼은 영화 보자마자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후기를 씁니다. 본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어마무시한 여운을 가진 작품입니다.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영화를 묘사하자면 양극화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작품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이미 존재하는 양극화라는 사회문제를 전혀 현실적이지 않게 표현했는데요. 문제는 이러한 묘사가 과연 어디까지 허구일까 가늠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다수의 중간층을 제외하고 상하위 소수의 입장을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도 확실히 정도를 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 볼 수록 블랙코미디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소름 돋게 영화 자체가 사실일 수 있겠다 싶더군요. 그 정도로 작품은 평범한 소재를 전혀 평범하지 않게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자신의 분수에 대하여 영화는 잔혹합니다. 미장센적으로도 치명적이나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잔혹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제목 '기생충'에서도 느껴지지만 숙주에게 몰래 붙어 기를 빨아먹고 사는 벌레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립니다. 하지만 기생충에 입장에서 이러한 행동은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숙주의 입장에서는 굳이 누군가에게 기생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에 기생충이 굳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들을 벌레라고 치부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그 사람들에게 어떤 시선을 가지자고 말하는 걸까요? 영화를 보고 온 저라도 확실히 단정짓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선을 넘을 필요가 없는 인간들 반대로 기생충으로 묘사되는 인간과 달리 사실과는 멀리 떨어져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사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언제나 양극은 존재하기에 극빈곤의 삶이 있다면 부유한 상류의 삶도 존재하겠죠. 충분히 부유한 사람들은 기생충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죠. 영화에서는 '선을 넘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이는 공사를 구분하는 선도 맞지만 이면적으로는 자신의 분수와 주제의 선을 말하기도 합니다. 기생충이 숙주가 되려고 마음먹지만 선을 넘는 순간 스스로를 갉아먹고 다른 기생충들과 충돌하여 전멸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영화는 잔인하게도 이 선에 대해 단호합니다.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부유한 사람들이 멍청할 정도로 순수한 모습으로 묘사되기까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기생충은 숙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사는 세상이 달랐습니다. 모든 사건은 자신의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선을 넘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무계획이 계획이다 언뜻 명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또한 생존을 위한 법칙일 뿐입니다.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오히려 실망과 좌절의 반복을 맛 보게 됩니다. 이미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패배의식은 그들의 선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장치입니다. 언제나 실패하지 않고 제대로 흘러가는 계획이란 사실 무계획에서 출발한다는 엉뚱한 발상은 피식 웃음 짓게 만들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스스로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 느껴지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무결점의 무계획으로 인해 더 큰 사고로 번지게 되고 마지막에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무계획이 당연히 정답은 아니지만 그들의 선택지는 무계획이라는 하나의 선지 밖에 없었고 선을 넘으면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멈추지 않는 악순환에,그들은 그저 갇혀있는 기생충이었습니다. 돌이나 기생충이나 작품은 그들을 묘사하는 대상을 기생충에 한정하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선물용 돌에 신경이 쓰였는데요. 후반부에 강에 다른 돌들과 선물용 돌이 함께 있게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실 선물용 돌도 그저 평범한 돌일 뿐인데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평범한 돌일 뿐인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말 특별한 힘을 갖고 있게끔 착각하게 만들죠. 하지만 그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돌은 돌이고 기생충은 기생충일 뿐 다른 존재를 흉내내고 쫓으려 한들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누군가는 냄새로, 또 누군가는 용도로, 다른 누군가는 생김새로 그 본질을 제자리에 돌려놓게 만듭니다. 영화는 사필귀정의 원칙에 따라 모든 것들은 각자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가도록 인도합니다. 그들만의 모스부호 영화는 철저히 그들은 인간과 다른 어떠한 다른 존재로 인식합니다. 대표적으로는 기생충, 다르게는 돌이나 여하 다른 존재들로 말입니다. 그 증거로는 영화 내내 등장하는 모스부호입니다. 자세히 보면 상류층들은 모스부호를 인지하지도 않으며 관심도 없습니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살짝 넣습니다만, 그렇다고 내용이나 결말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땅 밑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끼리 말이 아닌 부호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상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 발악을 하지만 결국 살기 위해 인간이기를 벗어나는 행동들을 하며 그들은 무엇이 되어가고 있나 혼란스럽게 합니다. 존경의 대상이자 원망의 대상, 같은 부류지만 서로가 서로의 포식자인 셈임을 교묘하게 녹여낸 작품입니다. 영화를 자세히 보시고 해설을 보신다면 봉준호 감독의 천재성을 피부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저 나름대로의 생각일 뿐이고 다른 분들과 의견이 다를지 모릅니다만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되는 시간이 됐습니다. 결말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결말에 대해 모든 분들이 궁금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열렸는지 닫혔는지 애매하거든요. 저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전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죠. 과연 그는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인가? 이 점이 논란의 대상입니다. 꿈을 이룬 후의 회상일 수도 있지만, 망상일 뿐 현실은 여전히 현실일 뿐이라는 의견도 존재하겠죠. 저는 후자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영화의 성격상 그들의 선을 바꾸려고 하지 않을 거라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올라오기에는 너무 깊이 내려갔습니다. 후반부는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입니다. 곡성에서의 소름을 또 한 번 겪었습니다. 쿠키영상은 없지만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시간 동안 긴 여운에 빨리 일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어딜봐도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지만 정말 현실이라면 너무 공포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장르를 총 망라해 평범한 소재를 얘기한 봉준호 감독은 정말 보면 볼 수록 놀랍기만 합니다. 감히 말하기를 올해의 영화입니다. 기준이 후한 편이지만 혼자나마 호들갑 좀 떨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도 언제든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기생충'이었습니다.
단편 : 여름의 주홍빛 녹색
“언니, 저 그 새끼랑 헤어졌어요.” “잘했어. 똥차 가면 벤츠 온다. 언니 말 믿어.” 조그만 술집에서 여자 둘이 소주를 마시고 있다. 안주는 두부 김치 하나. 언니라고 불린 여자는 아직 멀쩡해 보이는데 똥차랑 헤어졌다는 동생은 이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소주병이 셋이나 되는 걸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동생은 아까부터 하던 똑같은 하소연을 세 번째 시작한다. 소주 한 병당 한 번 꼴이다. “그 새끼가, 아니 그 개새끼가 또 바람피웠어요. 그 썩을 똥차 새끼가! 진짜 쓰레기 아니에요? 바람피운 거 아주 무릎 꿇고 싹싹 빌길래 두 번이나 용서해 줬는데 세 번째 또 바람피운 거 알았을 때는 진짜 내가 화도 안 나더라고요. 그것도 똑같은 년이랑 세 번을 피웠어요. 그게 말이 돼요?” 앞에 앉은 언니는 동생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고 있다. 세 번째 듣는데도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들어주는 언니에게 동생은 울분을 토한다. “내가 나보다 이쁜 년이랑 피웠으면 말도 안 해. 그 만들어지다 만 것 같이 생긴 년이 뭐가 좋다고. 진짜 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네. 개만도 못한 새끼. 그래서 진짜 제가 그래, 두 번이니까 봐주자, 삼세번까지는 참아보자 했는데 역시나 세 번째가 왔어요.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진작 차 버렸어야 됐는데.” “그래 잘했어. 사실 오지랖 같아서 말 안 하고 있긴 했는데 나도 너한테 진작 헤어지라고 하고 싶었어. 입 근질거리는 거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언니와 동생이 동시에 소주를 원샷하고 잔을 내려놓는다. 빈 잔을 채우는 동안 잠시 조용하다. 쪼르륵, 소주가 잔에 차오른다. 동생이 크 소리와 함께 입에 두부와 김치를 함께 집어넣고 씹으며 말한다. “진짜 그 새끼는 제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새끼에요. 살다 살다 그런 똥차는 또 처음 만나봤어요.” “그래, 곧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걱정 마.” 동생이 씹던 두부와 김치를 꿀꺽 삼킨다. “근데 언니는 지금까지 남자 몇 명이나 만나 봤어요?” “나? 한 네다섯 명 정도?” “언니는 그중에 누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역시 첫 남자 친군가?  “제일 기억에 남는 남자?” “저는 아무래도 이 똥차 새끼만큼 기억에 남을 놈은 없을 거 같아요. 어떤 쪽으로든.” 동생이 킥킥대며 웃는다. 맞은 편의 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잔에 찰랑찰랑 채워진 투명한 소주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남자는 그중에는 없어.” “엥? 그럼 누군데요?” “우연히 만났던,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 금요일 오후 2시 여자는 예식장을 나왔다. 딱히 할 일도 없는 백수 처지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예식장에서 혼자 꾸역꾸역 밥까지 먹고 나오기에는 여자의 면피가 그렇게 두껍지 못했다. 그저 적당한 금액의 축의금을 내고 축하해요 오빠라는 말을 신랑에게 전한 뒤 조용히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박수 몇 번 치고 나왔지만 그래도 나름 지인의 결혼식이라 꽤나 차려입고 나왔다. 이렇게 꾸며 본 지가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  백수는 생활 반경이 점점 좁아진다. 백수 연차가 찰수록 만나는 사람도 없어지고 같이 취업 준비를 하던, 가끔 만나 소주 한 잔 하며 신세 한탄하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회사의 일원이 되어간다. 백수가 아닌, 번듯한 바깥세상의 사람을 만나기에는 자신이 이 사회의 짐덩이 같은 존재라는 걸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한참을 고민하다 미안, 내가 좀 바빠서 라는 답을 보내기 일쑤다. 백수 연차 3년 차가 지나가는 여자가 남색 원피스를 입고 밖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연례행사나 다름없다. 사실 여자의 계획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취업을 위한 인적성 평가 문제집을 풀고 면접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막상 예식장에서 나온 여자는 눈 위에 손으로 차양을 만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날이 너무 좋았다. 햇빛은 따갑지 않고 따뜻한 빛의 입자를 온 거리에 뿌렸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이 흔들릴 때마다 빛의 입자들은 더 잘게 부서지며 초록색 사이로 반짝거렸다. 문제집과 인강, 면접 예상 답변 만들기가 기다리고 있는 어두운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씨였다. 그렇지만 여자에게는 딱히 할 일도, 만날 사람도, 가야 할 곳도 없었다. 그렇게 한 자리에서 한참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는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했다.  ‘평일 서울 혼자 갈만한 곳’  검색 결과들이 주르륵 떴다. 경복궁 나들이, 서울숲, 북촌 한옥 마을, 동묘 벼룩시장 등등 온갖 키워드들이 어지럽게 스마트폰을 가득 채웠다. 화면을 슥슥 내리며 살펴보던 여자의 손이 멈췄다. 여자의 엄지 손가락이 화면을 한 번 터치하자 잠시 후 한 블로그가 화면에 나타났다.  ‘평일 오후 고전영화’ 누군가가 일기처럼 쓰는 블로그인 것 같았다. 제목 밑으로 어떤 영화를 봤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두 문단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여자는 글에 나온 영화관의 이름을 다시 검색했다. 종로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걸으면 바로 그 영화관이었다. 위치 바로 밑에 뜬 상영 정보를 보니 처음 보는 제목의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3시에 상영되는 영화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여름의 녹색’ 지하철역은 오른쪽이었다. 여자는 종로역에서 내려 영화관에 도착했다. 영화관 정문 오른쪽에는 오늘의 상영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13:00 기름과 물은 섞이지 않는다 15:00 여름의 녹색 17:00 그믐달 전부 처음 들어보는 영화들이었다. 저 셋 중에는 여름의 녹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조그만 매표소가 있었고 그 옆에는 사람이 없는 매점도 있었다. 꽤 넓은 공간 안에 움직이는 사람은 여자뿐이었다. 매표소 안의 직원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잠들어 있었다. 여자는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매표소로 걸어갔다. 여자가 창구 앞에 섰음에도 머리를 박고 잠들어 있는 직원은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저기요.”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부르자 직원이 흠칫 떨더니 일어났다. 입가 오른쪽에는 침이 살짝 묻어있다. 직원은 소매로 침을 쓱 닦고 한껏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거 드릴까요.” “여름의 녹색 하나 주세요.” “네, 팔천 원입니다.” 아직도 팔천 원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여자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내밀었다. 여직원은 이천 원과 티켓을 함께 건넸다. 분홍색 티켓에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이십 분 전부터 입장 가능하세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티켓을 보았다. 이렇게 티켓으로 된 영화표를 받아 본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자는 영화 티켓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영화관에서는 티켓이 아니라 영수증 겸용의 흐물흐물한 종이 영화표를 주기 시작했고 영화 티켓을 모으곤 하던 그녀는 그런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취미 하나를 잃어버렸다. 전에 티켓을 모으던 상자가 있었는데 어디 있더라. 여자는 그 상자에 이 분홍색 티켓도 넣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마트폰을 보니 2시 50분이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여자는 아무도 없는 매점으로 가 냉장고에서 생수를 한 병 집어 들었다. 여자는 매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직원을 찾았지만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여자는 겉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 생수를 들고 다시 매표소를 찾았다. 직원은 그 사이 머리를 박은 채 잠들어 있었다. 여자는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직원을 깨웠다. “저기요.” “에!” 직원은 대답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다시 일어났다. 검은 머리끈으로 질끈 묶은 그녀의 머리가 마치 달리는 말의 꼬리처럼 흔들렸다. “깨워서 죄송해요. 매점에 아무도 안 계셔서요. 이거는 어디서 계산하면 되나요?” 여자가 생수를 들어 보이며 묻자 직원은 손으로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아, 그냥 저한테 돈 주시면 돼요. 생수 천 원이에요.” 여자는 지갑에서 아까 받은 이천 원 중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직원은 찢어지게 하품을 하며 돈을 받았다. 이제 2시 58분이었다. 관은 하나였다. 적어도 헷갈릴 일은 없어 보였다. 상영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크린에서는 영화 감상을 위한 에티켓을 티켓에 있는 것과 같은 캐릭터가 설명하고 있었고 좌석은 텅 비어 있어 영화관을 통째로 빌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관 안에서는 어릴 적 잡동사니를 쌓아 놓던 먼지 쌓인 다락방의 냄새가 났다. 여자는 티켓에 적힌 좌석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중간 열의 제일 왼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여자는 자리에 앉은 채 주변을 둘러보다가 누군가를 발견했다. 자신의 반대편, 오른쪽 끝 좌석에 남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구석이라 처음 들어올 때 못 본 것 같았다. 이 작은 관 안에는 왼쪽 끝의 여자와 오른쪽 끝의 남자 둘 뿐이었다. 남자는 한 달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3년간 사귀었던 연인은 한순간에 참 싱겁게도 헤어졌다. 두 달 전부터 남자의 연인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아무리 메시지를 남겨도 1 표시만 사라질 뿐, 답은 오지 않았다. 3년을 사귀는 동안 그녀는 절대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었고 일하는 곳도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무시하면 도저히 만날 방법이 없었다. 남자는 연인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커피에 시럽을 몇 번 넣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외의 것들은 하나도 모른다는 걸 연락이 단절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그녀는 이런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한 달 전, 내내 1만 사라지던 카톡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오늘 저녁 6시 반, 함께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만나자는 메시지였다. 반쯤 포기하고 있던 남자는 한 달 만에 온 그녀의 메시지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회사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았다. 6시가 되자마자 회사를 나온 남자는 카페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고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녀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던 한 달 동안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카페에 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흘렸고 도착해서는 카페가 있는 건물 안 화장실에서 5분간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6시 반에 앞에 앉은 차가운 얼굴의 전 연인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다. 6시 35분, 커피가 나오기도 전 그녀는 카페를 떠났고 남자는 혼자 자리에 앉아 앞에 두 잔의 커피를 놓은 채 1시간 동안 창 밖을 쳐다봤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남자는 그 후 일주일 동안 매일 다른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술이 떡이 되어서 원룸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침대에 엎어져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출근했다가 퇴근 후 다시 술을 마셨다. 일주일 뒤에는 함께 마실 친구가 없어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마른오징어를 사 와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그렇게 술에 절어 지낸 지 이 주가 지나 남자는 갑자기 일상으로 돌아왔다. 카페에서 헤이즐넛 라떼를 시키는 여자를 볼 때마다, 커피에 시럽을 세 번씩 짜는 사람을 볼 때마다, 호두과자를 먹을 때마다, 검정치마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블 영화 광고를 볼 때마다 누군가 떠오른다는 점에서는 아직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볼 때에 남자는 완전히 원래의 남자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아직도 가끔 밤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잠들곤 하는 남자는 갑작스러운 두통 때문에 오후 반차를 내고 병원에 들렀다. 딱 병원 점심시간이 끝나는 1시 반에 맞춰서 갔더니 대기하는 사람이 없어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신경성 편두통이라는 진단과 함께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술, 담배 당분간 줄이시라는 아무나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약국에 들러 약봉지를 받아 들고 나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제 오후 2시였다. 남자는 예상치 못하게 남아버린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이 근처에 가끔 갔었던 영화관이 있었다. 독립 영화나, 인디 영화, 예술 영화들을 상영해주는 영화관이다. 이 영화관은 항상 오후 1시, 3시, 5시에 각각 한 번씩 영화를 상영했었다. 1시간 안에 간다면 3시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원래 그곳에 종종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전 연인이었던 그녀를 데리고 두 번 정도 함께 간 적이 있었는데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그녀는 왜 저런 영화를 보는지 모르겠다, 하나도 재미없다 라며 남자를 타박했다. 그녀 덕분에 둘의 데이트 때 보는 영화는 항상 토르, 헐크, 어벤저스 같은 히어로물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데이트가 없을 때 그녀가 말한 왜 보는지 모르겠는 재미없는 영화를 혼자 보러 가곤 했다.  회사 근처 병원과 영화관은 가까웠다.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가서 도착하는 시간이나 걸어가는 시간이나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남자는 걷기로 했다. 점심이 지나 어정쩡한 시간, 회사원들은 이미 사무실로 돌아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시간에 남자는 거리를 혼자 걸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걷는 남자는 햇살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최근 한 달간 햇빛을 몸으로 받아 본 일이 거의 없었다. 해가 그 빛을 완전히 뿜어내기 전에 출근했고 붉은빛 외의 다른 빛들은 모두 사라진 반쪽짜리 햇빛을 받으며 퇴근했다. 회사에 나가지 않는 주말에는 점심이 한참 지나 일어나서 TV를 좀 보다가 밤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그대로 잠들었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낮 거리는 생각보다 한적했고 햇빛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30분 정도 걷자 영화관이 보였다. 땀이 나서 정장 상의를 벗은 남자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영화관 안에 들어섰다. 영화관은 냉방이 되고 있는지 시원했다. 남자는 익숙한 걸음으로 매표소로 향했다. 남자는 자고 있는 매표소 직원을 불렀다. “저기요.” 직원이 졸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직원이었다. 항상 여기 계시던 아저씨는 잘리신 건가. 직원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남자는 약간의 생경함을 느꼈다.  “3시 영화 하나 주세요.” 남자는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직원이 카드를 받아 긁자 직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수증이 나왔다. 직원은 영수증과 티켓을 함께 건넸다. “영화 시작 20분 전부터 입장 가능하세요.” 남자는 네라고 대답하며 티켓과 영수증을 받아 들었다. 직원은 변했지만 분홍색 티켓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는 그대로였다. 그녀가 이 영화관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 이 분홍색 티켓이었다. 남자는 물끄러미 티켓을 쳐다보다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직 2시 40분이 되기 조금 전이었지만 남자는 상영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래 묵은 건물에서 나는 냄새가 반가웠다. 그녀가 싫어하던 이 냄새를 남자는 좋아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상영관에 들어온 남자는 중간 열 오른쪽 끝 좌석에 앉았다. 항상 이 곳에 올 때마다 남자는 그 자리에 앉았다. 애초에 사람이 많이 오는 영화관도 아니거니와 몇몇 오는 사람들도 거의 한가운데 자리에 앉았기에 중간 열의 오른쪽 끝 좌석은 남자의 지정석이나 다름없었다. 앉아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스크린을 쳐다보는 남자의 눈길에 보답이라도 하듯 조금 뒤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정장 상의를 옆 좌석에 대충 걸쳐놓고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했다.  같은 광고가 두세 번씩 나오기를 두세 번 반복하고 나서 영화 관람 에티켓과 대피 경로 등을 티켓에 있는 것과 같은 캐릭터가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낯선 빛이 뒤에서 들어왔다. 남자는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한 여자가 상영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상영관 밖의 흰 빛이 여자의 뒤에서 비추고 있었다. 푸른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상영관 안으로 걸어 들어왔고 상영관의 문이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점점 가늘어진 흰 빛은 문이 완전히 닫히며 사라졌다. 남자의 시선은 움직이는 여자를 따랐다. 여자는 구두 소리를 울리며 천천히 걸어서 남자의 정 반대편, 왼쪽 끝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여자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를 향했던 시선을 스크린으로 돌렸다. 왜 여자의 눈길을 피했는지 남자도 알 수 없었다.  앞에서 날아다니는 캐릭터가 사라지고 상영관이 암전 되었다. 상영관 안에는 오른쪽을 보고 있는 여자와 스크린을 보는 척하는 남자가 있었다. 탁, 탁, 타다다다다다.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오래된 필름 영화가 스크린에 투영되었다. 여자는 스크린에서 반사된 빛이 스민 남자의 왼쪽 얼굴을 보았다. 선이 가늘고 부드러운 남자였다. 영사기에서 쏘아지는 빛의 줄기에 떠다니는 먼지들 너머로 보이는 남자의 왼쪽 얼굴은 눈길을 잡아 끄는 힘이 있었다. 갑자기 남자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여자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바라봤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하고 있었다. 오래된 일본 영화였다. 시간이 쌓인 영화라서 인물이나 배경의 선이 뚜렷하지 않고 부드럽게 뭉개졌다. 여자는 요즘은 볼 수 없는 필름 영화의 미흡한 기술력에 의한 부족한 뚜렷함과 선명함이 마음에 들었다. 일본 시골 마을의 무더운 여름 풍경이 펼쳐지더니 마루에 앉아 밖을 구경하는 남자아이와 엄마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는 일본어로 물었다. “엄마, 여름은 왜 녹색이야?” 엄마가 대답했다. “여름이니까.” 아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는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 아래 따뜻한 색감을 입혔다. 여름이란 온통 녹색인 시골의 남자아이와 도시에서 전학 온, 사계절이 회색이었던 여자아이가 만나 매미 소리가 울리는 녹색 산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여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화의 색감에 빠져들면서도 문득문득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그때마다 남자는 스크린에서 반사되는 빛에 녹색, 흰색, 노란색으로 물든 얼굴로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 남자가 살짝 자세를 고쳐 앉으면 여자는 다시 스크린으로 얼굴을 돌렸다. 여자의 눈은 영화를 보면서 머리는 자신이 왜 자꾸 저 남자를 쳐다보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학생 때처럼 얼굴을 보고 한눈에 반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여자는 스크린에 나타난 초점이 맞지 않는 나뭇잎의 뭉그러진 녹색을 보며 생각했다. 이 공간과 시간이 주는 아무 의미 없는 우연 때문이 아닐까. 하필 오늘, 이 곳에서 이 오래된 일본 영화를 보고 있다는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텅 빈 영화관의 여자와 남자 둘 뿐이었다.  여자는 자신이 남자를 자꾸 바라보는 이유에 대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뒤로 남자의 왼쪽 얼굴을 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 생각을 한 직후, 여자가 영사기에서 쏘아지는 빛의 궤적과 그 속에서 떠다니는 먼지들을 넘어 남자의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초점을 맞췄을 때 남자도 스크린이 아니라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 먼지 하나가 유영하며 영사기가 쏘아낸 빛의 궤적을 이탈하는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둘의 눈이 마주친 찰나의 시간 동안 어떤 감각이 흘러가고 흘러왔음을 느꼈다.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제대로 얼굴을 식별하기조차 어려웠지만 분명히 여자와 남자 둘 다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한 채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은 의미 없는 단순한 시선의 스침이 아니었다. 남자는 가끔씩 여자가 자신의 얼굴을 본다는 것과 자신이 살짝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여자가 시선을 거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가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남자는 고개를 살짝 돌려 여자의 오른쪽 얼굴을 보았다. 긴 생머리에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시골의 소년과 도시에서 온 소녀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무슨 일을 하는지, 이 시간에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이유는 무엇인지,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는 좋아하는지,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화는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도시에서 온 소녀는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가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할 때보다 조금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소년은 내일 도시로 떠나는 소녀에게 말했다. “시즈코. 녹색 여름은 어땠어?” “회색 여름보다 훨씬, 훨씬 좋았어.” 소년이 소녀에게 네 잎 클로버를 내밀었다. “그때 못 찾았던 네 잎 클로버야. 이게 있으면 도시에서도 여름은 녹색일 거야.” 소년이 내민 네 잎 클로버를 소녀가 받아 들었다. 카메라가 점점 녹색 네 잎 클로버로 줌인되더니 그 위로 하얀 일본어 글씨가 떠올랐다. ‘여름의 녹색’ 화면이 검게 변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영화관에 어두운 노란색 조명이 켜졌다. 여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오른쪽을 보자 남자가 한 팔에 정장 상의를 걸치고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두 걸음 정도를 남겨두고 멈춰 섰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말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뭘 어떻게 돼. 그냥 커피 한 잔 마시고 헤어졌지. 그리고 끝이야.” “뭐 전화번호나 그런 거 안 물어봤어요?” “응. 안 물어봤어.” “아니 그럼 그 여자분한테 왜 커피 마시자고 한 거에요?” “그냥. 영화가 재밌었는지 궁금했거든.” 남자는 여자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나이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원래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지, 이 영화관에는 가끔 오곤 하는지를 물어봤을 뿐이다.  “아니, 형. 남자가 돼 가지고.” “야, 닥치고 술이나 마셔.” 남자는 앞에 앉은 동생의 입을 소주잔으로 막았다. 빈 소주잔에 남자가 소주를 따랐다. 투명한 액체가 꼴꼴꼴 소리를 내며 잔에 채워졌다. “그 여자분 어떻게 사는지 안 궁금해요?” 남자가 대답했다. “조금 궁금하긴 하지. 그래도 안 물어보길 잘한 것 같아.” 남자는 가끔 여자가 생각났다. 그저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커피를 같이 마셨을 뿐인데도 여자는 남자의 머리에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여자가 떠오를 때는 항상 그때의 기억 전부가 함께 불려 왔다. 그 날 거리를 걸을 때의 따뜻한 햇빛과 영화관에서 났던 오래된 건물의 냄새, 타닥거리는 영사기의 소리와 영화관에 떠다니던 먼지들까지 모든 것들이 되살아나면 그 가운데에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그녀도 가끔 이렇게 나를 떠올릴까? 그 날의 영화와 날씨와 감각이 머릿속에서 나와 함께 재생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잔 하자.”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리고 남자는 소주잔을 비웠다. 남자가 소주잔을 내려놓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술집 창문 밖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여름밤, 나뭇잎은 가로등 빛에 물들어 주홍빛 녹색이다.
노르웨이의 숲(번역판 제목 :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최근 일이 바빠 초반부 빼고는 얼마 읽지 못했던 '노르웨이의 숲'을 오늘 도서관에 찾아가 세 시간을 투자해 모두 읽어버렸다. 생각보다 우울하고 생각보다 기묘했으며 생각보다 더 섬세하고 부드럽고 아슬아슬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와타나베와 고등학교 시절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기즈키,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는 늘 셋이 함께 다니곤 했다. 그러던 중 셋의 중심이었던 기즈키가 이유모를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와타나베는 그 이후 도망치듯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도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와타나베는 우연히 지하철에서 다시 나오코를 만나게 되고 나오코에 대해 사랑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나오코는 기즈키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불안정한 상태였고 결국 그녀는 치료를 위해 와타나베와 연락을 끊고 요양원에 들어간다. 나오코가 뒤늦게 보낸 편지로 그녀가 "아미 사"라는 요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와타나베는 그녀를 찾아가 묻어두었던 기즈키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편 같은 대학에서 만나게 된 미도리는 기즈키의 죽음 이후 모두와 벽을 치고 지내던 와타나베의 삶 속에 뛰어 들어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생기 넘치고 당당한 미도리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던 와타나베는 그녀의 환한 모습 이면에 있는 아픔을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며 점점 더 미도리와 깊은 관계가 되어간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나오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두 여성 사이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스무살을 보낸다. 큰 줄거리의 진행만 보면 그저 그런 청춘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키워드를 말하자면 죽음, 사랑, 섹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이렇게 네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네 키워드를 가지고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죽음 와타나베와 나오코 두 사람 모두 과거 자신들의 중심이었던 기즈키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이 뒤바뀌는 경험을 한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라는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와타나베에게 기즈키와 나오코는 세상의 전부였을 것이다. 기즈키와 나오코가 자신의 친구이자 곧 세계인 것이다. 기즈키의 죽음으로 와타나베에게는 세계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고 그 이후 와타나베는 죽음이 이미 자신의 삶의 일부에 스며들어 있다고 느낀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자신의 바로 옆에 있다고 느끼게 된 그 순간이 그에게는 자신의 모든 가치관이 뒤바뀌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나오코 또한 영원히 기즈키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딘가 뒤틀린 상태로 불안한 삶을 살다 이른 나이에 자살로 숨을 거둔다. 그만큼 죽음이란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2. 섹스와 사랑 위에서 말했든 와타나베는 죽음이 언제 고개를 쳐들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그는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나가사와라는 같은 기숙사 상급생과 함께 신주쿠 거리를 거닐며 술집에서 처음 만나는 여자와 섹스를 함으로써 사람의 온기를 느끼려 한다. 그러나 늘 다음날 아침이면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낀다. 필자에게 그러한 와타나베의 행동은 죽음이 스며들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신의 삶에 무언가 의미를 남기기 위해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육체적인 관계 중 가장 깊은 관계인 섹스를 갈구했던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와타나베는 육체적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였을 뿐, 그녀의 삶에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날 아침 그녀의 말과 행동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니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낄 수 밖에. 그렇게 성욕과 섹스, 고독 그리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와타나베는 결국 나오코에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고 나서 비로소 그 굴레에서 자유로워진다.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 있어 그녀가, 그녀의 삶에 있어 자신이 이미 그 무엇보다 커다란 의미로 남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 대상인 나오코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와타나베가 단 한번도 여성과 관계를 갖지 않았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와타나베의 변화를 통해 작가는 죽음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 짧은 삶의 진정한 의미는 섹스(육체적 쾌락)가 아닌 사랑(정신적 가치)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3.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개인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라는 키워드가 이 소설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오코가 치료를 받는 요양원은 무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벗삼아 생활하며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곳이다. 와타나베는 그 곳에서 머무는 3일 동안 스태프와 환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오히려 의사인 미야타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연설을 맥락도 없이 늘어놓는 등 사회성이 부족하고 전에 있던 기노시타라는 경리는 노이로제로 자살을 시도했었으며 도쿠시마라는 전 간호사는 알코올 중독이 심해서 잘렸다. 와타나베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말한다. "환자와 스태프를 전부 바꿔도 될 정도네요." 그러한 와타나베에게 나오코와 같은 방을 쓰던 레이코씨는"우리에게도 아주 정상적인 부분이 있어. 그건 우리는 스스로 비정상이란 걸 안다는 거지." 라는 말을 던진다. 가만히 소설을 보면 등장인물 중에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다. 나가사와는 하루가 멀다하고 술집에서 만난 여성들과 원나잇을 즐기면서도 그에 대한 죄책감도 하나 없고 스스로 금욕주의라고까지 말한다. 그의 여자친구인 하쓰미는 돈 많은 집안의 딸들이 다니는 여대에 재학 중인 좋은 집안의 고상한 성품을 가진 아가씨이면서 남자친구인 나가사와가 다른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다니는 것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인한다. 와타나베의 룸메이트였던 특공대는 행동 하나만 봐도 흔히 말하는 정상은 아니고 등장하는 다른 단역들도 마찬가지로 극히 평범한 정상인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깥 세계와 요양원 속 세계를 비교하던 와타나베는 요양원에서 돌아온 날 저녁, 신주쿠의 레코드 가게에 알바를 하러 간다. 그는 가게 밖으로 비치는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비정상적인 광경에 혼란스러워 한다. 스스로가 비정상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요양원 속 세계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경제적 풍요에 힘입어 방탕한 생활과 육체적 쾌락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바깥 세계. 필자는 작가가 이 둘의 극명한 비교를 통해 1960년대 고도성장기의 일본이 가진 문제점들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 성장이 급속화되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당시의 일본 사회 자체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과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도 꼭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인 듯 싶어 씁쓸하다. 4. 결론 많은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냥 가볍게 읽으면 뛰어난 문장력과 묘사(상당히 특이한 비유들이 많이 나온다)를 바탕으로 술술 읽히는 청춘 연애 소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던지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이며 과연 당시의 일본 사회는 정상인가" 라는 물음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청춘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주관적인 별점 : 4.5개 (사람은 누구나 비정상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그러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했을 때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한다.)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같은 글을 같은 시간에 올리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더 편하신 분들은 아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읽어주세요! https://www.facebook.com/GongdaeBR/
아껴 읽고 싶은 너와 나의 이야기: 14
뉴스를 보다가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달려가서 찍은 추석의 보름달입니다. 이제야 편히 웃음을 짓습니다. 찬물에 설탕을 넣고 저으면 설탕이 녹는다. 찬물을 데우면 설탕을 더 많이 녹일 수 있다. 끓이면 훨씬 더 많은 설탕을 넣고도 쉽게 녹일 수 있다. 이렇게 끓인 설탕물을 천천히 식히면 더는 설탕을 녹일 수 없는 물이 된다. 이런 물을 과포하 용액이라고 한다. 과포화 용액에 설탕 한 숟가락을 추가로 넣으면 포화 상태에 있는 설탕이 급속히 결정을 이룬다. 질서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요구처럼 여겨진다. ⠀ 생이 꺼진 눈을 한 채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눈 앞에 비친 광고판 속 네 글자가 눈에 띈다. 바랍니다. 질서의 회복이 불가한 과포하 용액상태에 있는 자는 그저 글자의 획에 따라 눈을 움직일 뿐이다. ⠀ #12가지 인생의 법칙 #메이븐 #조던B피터슨 어떤 저녁은 투명했다.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 불꽃 속에 둥근 적막이 있었다.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한강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보이는 것 뒤에는 늘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에게, 나보다 더 아파하는 사람 옆에서 아프다 내색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 슬픔을 견디기 위해 몸부림 치는 사람을 끌어안고 또 다른 상처를 몸에 새기고 있는 사람에게 ⠀ 오랜만에 울었다 ⠀ #한 번쯤 남겨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수오서재 #안희주 닐 디 그래스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서로에게는 생물학적으로, 지구와는 화학적으로, 우주 전체와는 원자적으로." 하나 더 인용하자면 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바다의 섬들과 같다. 표면에선 떨어져 있지만 깊은 곳에선 이어져 있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마지막 대사와도 비슷하다. "모든 사람은 섬이다. 그러난 어떤 사람들은 섬들을 연결시켜 준다. 우리는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다." ⠀ 그래서 우리는 손을 맞잡을 때 안온함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김영사 #김하나 예전에는 친절함이 칭찬의 대상이었다면, 요즘에는 친절함이 디폴트값이고 친절하지 않은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요즘 '친절'에는 절박한 냄새가 난다. ⠀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몸에 배인 습관이기도 하지만, 그 선함이 옮겨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손한 행동을 하는 이에게는 해당되지 않지만요. 어제 '웃기는 양반'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든 일은 절차에 따라 행해지기 마련인데 이를 자신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화를 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웃으실 일 없으실 것 같아 제가 웃겨드렸습니다. 라고 할 수는 없으니 조용히 짜증의 데시벨을 듣다가 끊긴 연결음을 들었습니다. 뚜 뚜 뚜 뚜 고약한 소리가 납니다. ⠀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허밍버드 #박사 ''또 한 해가 가고 오네요.'' ''당신 나이가 되면 모든 게 선명해질까요?'' ''아니요.'' ''그럼 더 혼돈스러워지나요?'' ''그냥 빨리 흘러가요. 비 많이 왔을 때 흙탕물처럼.'' ⠀ 정제되지 못할지라도 긴 호흡으로 부유하는 것들과 함께 가라앉고 싶다. 내려앉은 것들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 나누면서.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어크로스 #김영민 사라지는 것만이 가장 현재 같았다. 구름은 사라지고 빗물이 남았고, 연기는 사라지고 재가 남았다. 음악은 사라지고 감정만이 남았다. 그러니까 나는 사라지고 무엇이 남는가. ⠀ 인간 때문에 기쁠 일은 점점 줄어가고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지도 이미 오래라고 생각하는 그가 마음에 든다. 우리 같이 사라지자 ⠀ #여름, 스피드 #문학동네 #김봉곤 하나라고 여겼던 심장이 두 갈래로 벌어지던 저녁이 있었고 이인분의 생을 사는 일인분이 되었고 예고 없이 폭설이 왔고 심장 하나를 떼어내 움켜쥐고 눈 위에 팡팡 두드렸고 일인분의 기억이 사라졌고 나머지 심장 하나가 뜨거운 혈액을 온몸으로 푹푹 내보냈고 둘이라고 여겼던 심장이 하나로 뭉개지던 그날만이 남았고...... ⠀ 일그러진 미련은 그때라는 시간 속에 나를 박제시킨다. ⠀ #내가 나일 확률 #문학동네 #박세미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 말에는 힘이 있고 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언령이라 부른다. 내 주위를 맴도는 언령이 악귀일지 천사일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 #걷는사람 하정우 #문학동네 #하정우 그리고 가을도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가을이라는 의지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각자 번역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이를 시로 써보았습니다. ⠀ 나의 계절은 번역할 수 없습니다 번역하고 싶지 않습니다 ⠀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문학동네 #황유원 외
설(창작 단편)
한 노인이 툇마루에 앉아 털신에 발을 집어넣는다. 오래되어 겉이 반질반질하다.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두 발을 신에 집어넣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마당에 선 노인은 무릎이 시린지 손을 무릎에 대고는 가만히 서 있다. 입에서는 오메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무릎에서 손을 뗀 노인은 구부정한 허리에 한 손을 대고 걸음을 옮긴다. 산책을 나가는 건가 싶어 아까부터 안절부절 못하던 마당의 하얀 똥개 한 마리가 결국 웡웡 짖어 대기 시작한다. 노인이 다가가니 똥개가 배를 드러내고 드러눕는다. 노인이 헥헥대며 꼬리를 흔드는 개의 배를 긁는다. “복실아. 오늘은 이 할미가 무릎이 아픈께 산책은 나중에 가자잉.” 노인이 손을 떼고 일어나 대문으로 향한다. 말을 알아들었는지 복실이는 짖는 걸 멈추고 조용히 낑낑댄다. 노인이 나가고 파란 철문이 철컹 소리를 내며 닫힌다. 철문을 나선 노인이 논두렁을 따라 걷는다. 중간중간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쉬어가며 2~30분쯤 걸었을까, 저 앞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 노인은 아이고 소리를 내며 파란색 페인트가 다 벗겨진 의자에 앉는다. 추운 날씨에 노인의 귀가 빨갛다. 의자에 앉아서도 노인은 연신 무릎을 두드린다. 한참 무릎을 만지작거리며 추위를 견디던 노인의 귀에 버스 엔진소리가 들린다. 노인은 목도리를 고쳐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목 같은 손을 흔든다. 버스가 노인의 앞에 멈추고 문을 열자 노인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른다. 노인이 올라서기 무섭게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가 시장 앞에 서고 문이 열리자 노인이 천천히 내려선다.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 버스를 뒤로 하고 노인은 시장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설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근처에 생긴 마트 때문인지 사람이 별로 없다. 노인이 한 옷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뽀글거리는 파마를 한 아줌마가 노인을 맞는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어떤 거 사러 오셨어?” 노인이 가게를 휘휘 둘러보더니 한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쩌그 있네. 내복 사러 왔는디 요즘 애기들은 어떤 걸 좋아한당가?” “애기가 몇살인디?” 아줌마의 말에 노인의 얼굴에 주름진 미소가 번진다. “손주가 7살이고 손녀가 5살이여. 지 애비랑 애미 똑 닮아가지고 을매나 잘생기고 이쁜디. 게다가 우리 변호사 아들 내미 머리를 물려받아갖고 머리들이 비상혀.” “오메, 아들이 변호사여? 부러워 죽겄네. 우리 아들은 스물 여덟이나 먹었는디 아직도 백수여, 백수.” 한숨을 내쉬며 내복들을 뒤적거리던 아줌마의 손에 파란색과 분홍색 내복이 들려 올라온다. “요즘 애기들이 제일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그려진 내복이여. 5살, 7살이면 이게 좋을 것 같은디?” “박스 열어봐도 된당가?”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박스를 열고 꼼꼼하게 내복을 살핀다. 바느질이 성긴지, 천은 좋은 걸 썼는지, 색은 빠지지 않을지. 한참 내복을 만지작거리던 노인이 박스를 닫고 건넨다. “이걸로 줘. 얼마여?” 아줌마가 능숙하게 박스를 포장한다. “원래 이만원씩인디 그냥 두 개에 삼만 오천원만 줘요. 포장도 해줄게.” 노인이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만원 짜리 세 장을 꺼낸다. “삼만원 밖에 없는디 좀만 깎아줘. 다음에 또 팔아줄텐께.” “아이고, 안돼요 어머니. 삼만 오천원도 엄청 깎은 거에요. 남는 것도 없어.” 한참을 실랑이하더니 결국 삼만 이천원에 합의를 본다. 꼬깃꼬깃 접혀 있는 천원 짜리 두 장을 주머니에서 꺼낸 노인이 삼만원과 합쳐 지폐 다섯장을 건넨다. “어머니 다음에 꼭 오셔서 더 팔아줘야 돼요. 진짜 내가 손해 보면서 드린거야.” 노인이 내복이 담긴 봉지를 받아 들며 말한다. “걱정하덜 말어. 이번 설에 아들 내미랑 손주들 오면 꼭 데리고 올텐께.” 노인이 두 손에 묵직한 비닐을 든 채 파란 철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다. 엎드려 있던 복실이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노인의 뒤를 따른다. 툇마루에 비닐 봉지 두 개를 올려놓은 노인이 오메오메 소리를 내며 허리와 무릎을 연신 두드린다. 얼핏 보이는 비닐 봉지 안에는 곶감과 과자, 내복 등 여러 가지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 시간이 지나 허리와 무릎에서 손을 뗀 노인이 비닐 봉지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주방으로 들어간 노인은 과일과 과자, 곶감들을 냉장고와 찬장에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빈 비닐 봉지를 주방 한 구석 비닐 봉지가 가득 들어 있는 박스 안에 구겨 넣는다. 정리를 끝낸 노인의 귓가에 따르릉 거리는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노인은 내복 두 개를 들고 안방으로 향한다. 노인은 들고 온 내복 두 개를 펴져 있는 이부자리 위에 조심히 올려 놓고 유선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 든다. “여보세요.” 노인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오메, 둘째냐. 잘 있냐잉?” 수화기 너머로 “잘 지내시죠 어머니”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얼핏 들린다. 노인이 다시 입을 연다. “그래 잘 있제. 너가 이번 설에 손주들이랑 며느리랑 내려온다고 해서 니 좋아하는 곶감이랑 애기들 선물도 다 사놨다. 니 형은 이번에 일이 바빠서 못 오고. 근디 언제쯤 내려오냐? 미리 방도 좀 뎁혀 놓고 해야된께.” 수화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린다. 꽤 길게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이 대뜸 말한다. “괜찮은께 걱정 말어. 못 올수도 있제. 변호사가 오죽 바쁘겄냐. 다음에 보면 된께 엄마 걱정은 하덜 말고 일 열심히 혀. 니가 잘되는 것이 엄마한테 효도하는 것이여.” 노인이 입을 다문다. 가만히 있던 노인이 다시 입을 연다. “그려. 일 잘하고 항시 몸 건강하고. 다음에 시간 되면 내려오그라잉.” 노인의 얼굴에 피어났던 꽃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시들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노인은 몸을 일으켜 이부자리 위에 있는 내복 두 개를 집어 든다. 자개로 된 옷장 문을 열자 한 구석에 무언가 쌓여있다. 어린이들이 입을 법한, 캐릭터들이 그려진 내복 박스 여러 개가 먼지가 쌓인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인은 쭈글쭈글한 손으로 위에 쌓인 먼지를 슥슥 쓸어내고 그 위에 새로 산 내복 두 개를 올려놓는다. 노인은 옷장 문을 잡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내복들을 바라본다. 늙은 고목처럼 구부정한 모습으로 쌓인 내복들을 응시하던 노인이 천천히 옷장 문을 닫는다. 노인이 툇마루에 나와 앉는다. 앉아 있는 노인의 옆으로 복실이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풀쩍 뛰어올라 노인에게 몸을 기대고 눕는다. 노인은 마디가 불거진 마른 손을 들어 복실이의 하얀 털을 쓰다듬는다. 가만히 앉아서. 하염없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오랜만에 읽은 SF 단편집이다. 사실 SF 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자주 읽지도 않는다. 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SF 소설을 읽을 때 마음 편히 읽지 못하고 계속해서 소설 내 설정의 정합성을 따지는 바람에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순수한 집중을 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인 SF와 다른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조금 더 편히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총 일곱 권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차례대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필자에게 흥미로웠던 작품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과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였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가 개척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이주한 행성으로 가지 못하게 된 안나라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냉동 수면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인 안나는 슬렌포니아라는 행성계로 남편과 아들이 먼저 이주한 상태에서 자신은 지구에 남아 연구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당시 워프 버블을 이용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다른 은하에 도달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지만 그 기술로도 다른 은하에 도달하기까지는 여전히 몇 년, 혹은 몇십 년의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시간을 멈추기 위해서는 냉동 수면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나가 냉동 수면 기술을 거의 완성했을 때쯤 워프 항법이 아니라 웜홀 통로를 이용하는 항법이 개발된다. 웜홀 통로는 우주에 이미 뚫려 있는 통로였고 그 통로를 이용하기만 하면 되었기에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도 훨씬 효율적인 항법이었다. 하지만 웜홀 통로 항법은 이미 우주에 존재하는 웜홀 통로만 이용할 수 있었고 슬렌포니아 행성은 웜홀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위치한 행성이었다. 결국 웜홀 통로 항법이 개발되면서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방법은 점점 사라져 갔고 안나가 냉동 수면 기술을 완성한 이후에는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은 거의 없었다. 결국 안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될 때까지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지 못하고 언제일지 기약 없는 슬렌포니아 행 우주선을 기다린다. 영원히. 이 단편은 기술의 변화로 소외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분명 먼 미래,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묘하게 현재와 겹쳐 보인다. 생물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계의 트렌드를 생각하며 읽었다.(사실 과학에 트렌드가 존재하는 것이 납득할만한 사실인가도 의문이다.)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충당할 과제에 선발되기 위해서는 트렌드에 맞춘 연구를 해야 한다. 돈을 후원하는 입장에서는 이슈가 되고, 홍보가 되고, 유명한 저널에 올리기 쉬운 논문이 나올 연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기에는 암, 몇 년 후에는 치매, 또 몇 년 뒤에는 심장병. 그런 트렌드의 변화에 맞물려 진행되던 연구가 돈이 부족해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특히 우리나라 과학계가 그런 면이 많다.) 그렇게 트렌드에 맞지 않는 연구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그 연구들에 희망을 걸던 암 환자들, 치매 환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은 영원히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는 연구임에도 실낱 같은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결국 트렌드에서 멀어진 병을 가진 환자들은 소외되고 마는 것이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의 트렌드인 심장병 연구에만 돈이 지원되기 때문에.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몸을 개조해 극한 상황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사이보그 그라인딩이라고 부른다.) 우주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우주비행사를 만드는 것이 주 설정이다. 주인공 가윤은 1차 사이보그 그라인딩 우주비행사였던 자신의 우상, 재경을 보고 이 프로젝트에 지원해 합격한다. 우주비행사 선발 당시 재경은 작은 키에 이미 아이가 있는 데다(심지어 비혼모다.) 나이도 많은 동양 여성이었고 많은 비난에 직면했었다. 성별과 인종 쿼터를 신경 쓴 선발이다, 재경의 실력과 자격이 부족하다는 비난들에도 재경은 꿋꿋이 버텨내 인류의 소외된 사람들을 대표하여 당당히 모든 훈련을 소화해냈고 안타깝게도 마지막 우주 터널 통과를 위한 우주비행선이 폭발하면서 사망한다. 가윤은 그런 재경을 한없이 동경했고 자신이 사이보그 그라인딩 우주비행사로 뽑힌 사실에 감격한다. 하지만 우주 터널 통과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폭발 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재경은 사실 우주 비행선에 타지도 않은 상태였고 사이보그 그라인딩이 끝난 몸을 가지고 심해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가윤은 뒤늦게 알게 된다. 재경과 친엄마만큼이나 돈독한 사이였던 가윤은 그 사실이 보도되자마자 엄청난 비난에 직면한다. 결국 가윤도 재경처럼 도망칠 것이다, 가윤도 무언가 자격 미달인 점이 있을 것이다 등등. 하지만 가윤은 재경처럼 도망치지 않고 그 모든 비난을 뚫어낸다. 결국 터널 너머의 우주를 본 첫 번째 우주비행사는 가윤이었다. 이 단편은 소수자에 대한 시선의 양면적인 뒤틀림을 보여준다. 고령의 동양인 비혼모 우주비행사인 재경은 대중이 기대하는 표준적인 우주비행사가 아니다. 한없이 표준에서 먼 곳에 있는 존재, 소수집단의 일원인 것이다.  재경에게는 소수집단이(실제 숫자에서든 사회적 관점에서든) 받는 양면적인 시선이 끝없이 가해진다. 한쪽에서는 분명히 제대로 된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할 것이다, 자격미달이다 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한쪽에서는 여성의, 비혼모의, 동양인의 우상, 소수집단의 희망이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그 양립할 수 없지만 양립하고 있는 비난과 기대를 모두 저버리고 사라진 재경에 의해 오히려 가윤은 보호받는다. 가윤은 재경보다는 표준에 가깝고, 이미 재경에 의해 가윤에 대한 기대는 한껏 내려간 상태이기에 가윤은 훨씬 담담하게 사이보그 그라인딩 프로젝트에 임하고 실제로 우주 터널 통과까지 성공한다. 우리는 소수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비난하는 대중과 찬사를 보내는 대중이 우리에게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도 동시에. 소수집단이든 다수 집단이든 아무 차이 없이 대하는 것이 분명 정답일 테지만 아직도 우리는 많은 편견과 차별에 사로잡혀 있고 그런 이상이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다. 이 소설은 SF, 먼 미래라는 탈을 쓰고 현실을 꼬집는다. 과연 나는 재경과 가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가라는 질문이 곧 현 사회의 소수집단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로 이어진다.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질문이다. 이 소설집은 다른 SF 소설들과 약간 다르다. SF적인 요소들을 불러와 먼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음에도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SF 소설의 장르적인 특징과 순수문학의 주제의식을 잘 섞어서 흥미롭고 새로운 유기체를 만들어 냈다. 김초엽 작가의 두 번째 책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해진다. 소설 속 한 문장 :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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