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h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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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명기..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의상들

뉴욕 패션계 최대행사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패션 갈라쇼라는 걸 할 때가 있는데요.
이때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할리웃 스타들이 독특함을 넘어서 괴기스러운 느낌을 주는 의상을 입고 옴. 보그 편집장이 주관하는데ㅋㅋㅋㅋ 웃기기도 하면서도 보면 재밌고 인생에 한번쯤 해보고 싶기까지 함. (저만 그런듯) 한번 같이 보시져.
에즈라밀러 (신비한 동물사전 크레덴스, 케빈에 대하여, 월플라워 그 에즈라 밀러 맞음ㅋㅋㅋㅋ)
전 이거 해보고 싶어요.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 착시 메이크업
제러드 레토 (수어사이드 스쿼드 조커 맞음)
자기랑 닮은 머리통(?)으로 잘 골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레이디가가
무서운 언니 카디비... 판타지 영화 나오는 왕같네..
직접 샹들리에가 되신 케이티패리. 조명 필요없겠네요.
이집트 왕이 된 빌리포터.
인건비가 얼마여....
해리 스타일스 테일러스위프트 전남친... 너무 오래된 얘기인가.
요즘 패션 쪽은 젠더리스룩이 유행임. 여기 있으니까 무난한편.
마이클 유리
아수라 백작은 울고 갈듯..


(출처 - 인디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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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글 : http://www.animalplanet.co.kr/news/?artNo=3742 사진 : reddit 평소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최애 장난감을 옆에 두고 학교 간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 모습이 공개돼 누리꾼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하고 있습니다.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지난해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는데요. 다름아닌 장난감을 옆에 둔 채로 현관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강아지 옆모습이 찍힌 사진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남자친구와 함께 사는 여성은 2주 전에 강아지를 입양해 키우게 됐는데요. 하필 오늘 학교에 수업이 있는 날이라서 등교를 해야만 했었다고 합니다. 사진 : reddit 마침 집에는 남자친구가 강아지와 함께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요. 주인이 집을 나서자 강아지는 최애 장난감을 옆에 두고는 현관문 앞에 가만히 앉아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집에 있던 남자친구가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옆모습이 너무 슬퍼 이를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보냈고 사진을 확인한 여성은 밀려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렇듯 주인이 집을 비우면 말썽을 부릴 것만 같지만 알고보면 현관문 앞에 앉아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 사진 : reddit 주인 밖에 모르는 강아지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요. 혹시 강아지를 키우고 계신다면 지금 당장 강아지 이름을 불러 꼭 안아주세요. 그리고 말해주세요.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오로지 주인 밖에 모르는 강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 될지도 모르니깐요. 아참 그리고 "사랑한다", "고마워"라는 말은 절대 아끼지 마세요. 후회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저작권자 ⓒ 애니멀플래닛,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콘텐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