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z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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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배너 고스트투어

서배너에 유명한고스트투어 유령출몰지역가보고.스토리듣는 뭐..그런거 우리의.가이드25년 경력의 베테랑 할아버지 가이드 세배너에서 태어나 쭈욱~ 요기서사셨다네요
스팟지역 둘러보고 스토리듣고..뭐..그런거?
요 기계가 유령이 가까이있으면 불이 단계별로 켜지기시작해요..ㅋ 빨간불이 들어오면 대박!
스팟지역이 꽤 많아요 전쟁이 많이일어난 지역이여서.유령도 많대요
혹시 사진에 유령이 찍힌건 아닌지 ㅋ
요기는 무덤앞이예요 무덤가 벤취에 유령이 자주목격된다네요
요기 분수대도 노예들 시체가 즐비했던장소래요 슬픈장소네요 ㅜ
요기서 불이 레드까지켜지고 깜박거리더군요
불이 켜졔있는거.보이시죠? ㅋ
밤 9시부터 11시넘은 시간까지 장장2시간30분에 걸친 힘들고 졸려운투어 이렇게 힘들줄 몰랐네요 ㅜㅜ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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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유령.....아....낮에 글을 봐서 다행이네여 ㅎㅎ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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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ㅎ 아이가 있어서 침대 가드를 설치해달라고 체크인 며칠전에 미리 전화해두었는데 설치가 안되있었어요 ㅋㅋㅋ 그래서 그냥 침대 두개를 붙여서 사용했습니다 너무 푹 잘잤어요 아침엔 라면이죠 ㅎㅎㅎㅎ 금동이는 짜파게티~ 엄마는 오모리 참치 아빠는 왕뚜껑 이렇게 모두 취향이 다르네요 오늘 일정 첫번째는 케이블카~ 겁이 많은 금동이를 달래서 겨우겨우 태웠어요 ㅋ 루지도 타고 싶었는데 바다에 가겠다고 울고불고;;; 해서 바로 해변으로 ;; 구조라 해수욕장 가는길에 쌤김밥이라고 백종원 골목식당에 나왔던 톳김밥집이 있어서 사와봤어요 김밥은 맥주와 함께 ㅎ 톳이 정말 많이 들어있고 고소한 참기름에 양념을 해서 정말 맛있었어요 금동이도 톳을 잘먹었습니다 브레이크 타임이 있고 번호표를 나눠주는 시간이 따로있으니 잘 알아보고 가셔야할것같아요 저는 개뿔도 모르고갔다가 다행히 시간이 맞아서 구입할수있어요 어떤 날은 인당 구매 갯수 제한이 있는 날도 있다고합니다 날짜 시간 모두 잘 고른것 같어요 사람이 정말 별로 없고;; 양쪽 옆 파라솔 텅텅 빔 금동이는 바다가 너무너무 좋다고 합니다 ㅎ 저렇게 바다를 한참 동안이나 보고있길래 무슨 생각해? 했더니 집에 가기 싫다고 합니다 ㅎㅎㅎㅎㅎ 엄마도 집에가기가 싫구나 남편님은 물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시네요 ㅋ 오후 6시에 샤워장 끝납니다 ㅜㅜ 저희는 6시를 살짝 넘겨서 6시 15분 ;;; 샤워장에서 씻지를 못하고 그 앞에 코인 샤워기에서 대충 모래만 털어냈어요 게다가 영혼을 불태우신 아드님이 기절하듯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바로 호텔로 돌아와야했습니다 원래는 해미가 라는 조개구이 집을 갈 예정이였는데 어찌할까 하다가 배달을 하기로했습니다 ㅎ 라마다 옆에 어부횟집 메뉴에 돌멍게가 있네요 !!!!!!! 회보다 기타해물류를 더 좋아하기땜에 무조건 포장주문해놓고 남편이 가서 찾아왔습니다 돌멍게에 산낙지 ㅎ 밥 찾는 남푠은 회덮밥 국물을 두가지나 주시네요 우럭매운탕 아구지리 ㅎ 생선머리 잘먹는거 어찌아셨으까 ㅋ 우럭 머리도 클리어! 서비스 튀김에 새우 4마리인가;;; 고구마 호박 실하고 맛나고; 리뷰서비스 튀김이 사이드 메뉴급 술이 절로 넘어갑니다 포장 찾으러 갔더니 이미 다른메뉴는 다 되어있고 산낙지 바로 썰어서 포장해주셨다고 합니다 행복 밤하늘도 멋저부러 역시 이틀은 놀아야 휴가지 했지만 막상 내일 돌아가야한다니 아쉽네요 더 있고싶당
천문: 하늘에 묻는다, 진하고도 애절하다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관객수예상/쿠키영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사실 캣츠가 보고 싶었는데, 보기도 전에 평점이 난리가 나서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불편한 골짜기에 딱 걸쳐있음을 제가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죠. 작품성과 노래를 분리하고 봐야하는데 그럼에도 영 땡기지가 않는군요. 오늘의 영화는 그 유명한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 '천문: 하늘에 묻는다'입니다. 개인적으로 쏟아지는 밤하늘을 언젠가 보고 싶습니다. 가끔 별이 많거나 시골에 가면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저는 정말 수없이 많은 별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하늘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픽이지만 영화를 통해서나마 조금 바람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업적보다는 심리 작품은 세종과 장영실이 쌓아올린 업적 그 자체보다 과정과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초반부터 이미 시계는 발명이 됐고 이후의 안타까운 상황으로 인한 감정이 더 중요하게 표현됐습니다. 이미 우리는 이들이 어떤 역사를 써왔는지 알지만 내면의 상태까지는 알길이 없었죠. 물론 대부분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대사와 느낌이겠지만 뻔하디 뻔한 업적 과시용이 아니라 좋았습니다. 왜곡 없는 상상력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역사기반 이야기에 부담없는 상상력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역사책을 그대로 옮겨놨다면 역사시간이었겠지만 제작자의 해석이 들어가 감동적인 하나의 일화로 탄생하게 됐죠. 역사왜곡 문제로 논란이 자주 되는 요즘, 사실은 그대로 남긴채 남겨지지 않은 빈공간에 상상력을 덧댄 선택은 현명했습니다. 대부분은 예상하고 알고있는대로 흘러가겠지만 의외로 뻔하지 않게 영화는 흘러가게됩니다. 600년 전 현재 왜 이토록 오랜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공감이 쉽게 될까요. 왜 옛날 이야기에 마치 현재의 사태처럼 한탄하게 될까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시간을 다룬 이야기지만 결국에는 정치와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600년 전 조선에는 진정 백성을 생각한 왕과, 그 왕을 죽도록 섬긴 천재 노비도 있었죠. 우리는 지금 그런 왕과 노비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우의 영향력 적절한 상상력이 피워낸 연출과 각본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배우들의 열연이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배우들은 관객들을 조선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배우들이 분출한 힘은 어마어마했으며 작품 전반을 이끌어가기에 충분했습니다. 강약조절도 자유자재였으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부분조차 눈빛과 힘으로 제압했습니다. 확실히 누구나 아는 내용을 표현할 때는 배우의 영향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브로맨스 드라마임과 동시에 영화는 로맨스같기도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지만 세종과 장영실의 끈끈한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정분이 터지는거 아닐까 싶은 눈빛교환은 오묘한 기류마저 낳습니다. 그만큼 서로를 생각했고 목표했던 바가 같았으며 조선이라는 나라를 누구보다 생각했기에 가능한 관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믿고 보는 두 배우가 가장 위대한 역사의 인물들을 표현했는데 이런 식으로 마주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희생 누군가는 계속해서 희생하고 양보하는데 누군가는 계속해서 자신들 생각만합니다. 결국 신분의 벽을 넘기에는 왕의 권력조차 의미가 없었습니다. 왕의 이름조차 과연 제대로 알까 싶은 신하들은 정치적 분쟁만을 조장하고 누구보다 왕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직함에도 미움받기만 합니다. 하늘 아래 신분 따위는 없이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우치는데 이토록 오래 걸렸습니다. 작품은 가장 조국을 생각한 두 인물의 하이라이트를 위해 수 많은 사건과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려나갔습니다. 그리고 종전에 가서야 울분을 터뜨리며 마무리합니다. 강한 힘과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습니다. 오락성이 크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무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고 관객 수는 200만 예상합니다. 많은 분들이 보고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였습니다.
서울나들이 ㅡ 북촌한옥마을 둘러보기
서울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회색빛의 높은빌딩숲. 사람들로 빼곡한 출퇴근지하철. 매연.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등등 숨가쁘게 발전하고 개발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런데 서울에 600년의 세월을 느낄수 있는 아직도 사람 살아가는 장소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북촌한옥마을이라는 곳입니다. 누군가들에게는 삶의 장소이고 누군가들에게는 여행지가 되는 북촌한옥마을....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통영의 동피랑 처럼 서울의 문화관광컨텐츠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목적지쯤으로 여기고 방문하는 곳이지만 삶의 공간이기에 지켜줘야할 에행객 에티켓도 있죠. 1.소곤소곤대화하기 2.금연 3.쓰레기버리지 않기 4.집안을 몰래 촬영하지 않기 5.집안으로 함부로 들어가지 않기 6.전화기는 진동으로 7.노상방뇨금지 8.불법주차 하지 않기 9.확성기 사용하지 않기 이고도 차츰 옛것과 현대의 감각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듯합니다. 북촌 한옥마을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재동, 삼청동 일대의 한옥이 모여 있는 곳. 경복궁과 창덕궁, 금원(비원) 사이 북악산기슭에 있는 한옥 보존지구로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으로 북촌이라고도 한다. 북촌은 고관대작들과 왕족, 사대부들이 모여서 거주해온 고급 살림집터로 한옥은 모두 조선시대의 기와집이다. 원래 이 지역에는 솟을대문이 있는 집 몇 채와 30여 호의 한옥만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말부터 한옥이 많이 지어졌고, 1992년 가회동한옥보존지구에서 해제되고, 1994년 고도제한이 풀리면서 일반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총 2,297동의 건물이 있는데, 이 가운데 1,408동이 한옥이고 나머지는 일반 건물이다. 북촌 거리에는 북촌양반생활문화전시관과 북촌 한옥촌 상징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옛 선조의 생활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가회동 전통 마을축제가 열린다. 주변에 경복궁·창덕궁·덕수궁·금원·삼청공원 등의 관광지가 있다.
영국 화가의 눈으로 본 그때 그 조선
‘Portrait of Miss Elizabeth Keith’ by Ito Shinsui, 1922 20세기 일본 화단의 대가로 꼽히는 이토 신수이(伊東深水, 1898-1972)가 그린 키스의 초상화이다.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 1919년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호기심 많은 한 영국 여인이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곧, 일제 식민 지배에서 신음하는 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과 풍습과 경관에 빠져들었고 깊은 애정으로 이를 그림과 글로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그림은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다가 2006년에야 재미동포 송영달 선생의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됩니다. 아마,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을 터인데, 1920~1940년대 무렵 옛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름답고 정밀하게 나타나 있는 그림들을 보면 경탄을 자아낼 것입니다. ◆ Marriage Procession, Seoul_1921 혼례 행렬 이 그림은 혼례 행렬, 정확히 말하면 신부 행차입니다. 꽃가마가 아주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네요. 행렬 앞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신랑 집으로 가마를 인도하여 갑니다. 그 인도자는 백년해로를 뜻하는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있습니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가마 앞뒤에 있고, 동네 아이들이 구경삼아 따라가고, 빨래하던 아낙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데, 한 아낙은 길에다 물을 버리고 있네요. 뒤로 동대문이 보이는데, 다리는 청계천의 어느 다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East Gate, Seoul, Moonlight_1919 달빛 아래 서울 동대문 푸른 달빛 아래의 동대문(興仁之門). 이 그림에 보이는 돌담 표현은 목판화로는 하기 어려운 기법이라고 합니다. 키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23년 도쿄 대지진 때 목판 원본이 소실되었고, 이 그림은 키스의 저서 <동양의 창>에 실린 것인데, 현재 누가 실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모른답니다. ◆ East Gate, Pyeng Yang, Korea_1925 평양의 동문 “1392년에 지은 평양 성곽 중 동쪽에 있는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서울에 있는 동대문만큼 웅장하지는 못하지만, 평양의 동문은 그 단순한 스타일과 함께 연륜의 은은함이 배어 있는 문이다. 에카르트는 한국의 건축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은 그 건축법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그것은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더욱 절제된 형태로 발전시켜 한국 특유의 건축문화를 만들어냈다.’ 평양의 동문은 바로 이런 한국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 Riverside, Pyeng Yang_1925 평양 강변 “대동강변의 이 정자는 약 150년 된 것이라고 하며, 그 주변 환경이 너무 완벽하여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아주 조심스럽게 정자 터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키스가 대동강변이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모란봉, 을밀대, 부벽루가 있는 근처인 듯싶습니다. ◆ Wonsan_1919 원산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원산. 키스의 그림을 보니 과연 원산이 아름다운 곳임을 알겠습니다. 밤하늘의 별빛과 바다 위 배의 불빛이 기막힙니다 ◆ Korean Domestic Interior 한옥 내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는데, 이 집의 가장은 사랑방이 아닌 대청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며 부인이 식사를 날라다 준다.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있다.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은 마당이 있고 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한국 사람들은 방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방바닥은 노란 장판지로 덮여 있는데 항상 반짝반짝 닦아놓고 있다. 사랑방 나무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써 있는데, 그것은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 The Eating House 주막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밖으로 새어 나온다. 주막은 추운 겨울날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집을 닮은 초라한 주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달을 쳐다보는데 최고로 좋은 집 >” ◆ The Hat Shop 모자 가게 “간판에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서 키가 큰 친구들까지도 가게 안에 다 들어오게 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루종일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눈다. 한국에서 모자는 중요하다. 학자는 특별한 모자, 그러니까 검은 말총으로 된 모자(갓)를 쓰는데,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 총각은 약혼식에서 노란 짚으로 만든 둥그런 모자를 쓴다. 결혼식 날에는 한 사람이 빨간 모자를 쓰고 손에는 백년해로와 신의의 상징인 기러기를 들고 간다. 이런 옛 풍습은 한국에서 차차 없어져 가고 있다.” ◆ The School - Old Style 서당 풍경 “하늘 천, 따 지, 달 월, 사람 인. 후렴처럼 반복하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여름 해는 따갑게 비치고 있었는데,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장면을 스케치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글을 외면서 그 소리에 맞추어 앞뒤로 몸을 흔들어댔다. 나이 많은 훈장은 실내용 모자를 쓰고 앉아서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한시를 한 수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훈장은 조금도 학생들의 공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반장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감시하고 있다가 학생의 외는 소리가 끊긴다거나 조는 듯한 동작을 보이면 곧바로 등이고 어디고 내려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린 학생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글 읽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 Temple Interior 절의 내부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이 사당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노란색의 작은 지붕 밑에 나무로 깎은 시커먼 조각상은 약 3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한국을 지켜주었다고 믿어지는 중국 장군의 영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사당은 이상한 모양의 조각상들로 꽉 차 있었고 내부는 어두컴컴하였다. 얇고 가벼운 치마를 입고 땅에 납작 엎드려 염불하는 여인들은 마치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떨어진 꽃잎처럼 보였다.“ ※ 여기서 말하는 사당은 지금도 동대문 인근에 있는 관제묘를 말합니다. 동묘라고도 하고 관운장을 모시고 있죠. ◆ White Buddha, Korea_1925 흰 부처 이 그림의 흰 부처는 현재 서울 홍은동 보도각에 있는 백불(白佛)입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A Game of Chess_1936 장기두기 “전형적인 한국 시골의 두 노인이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때로는 길가에 앉아서도 한다. 한국에는 놀이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여자들에겐 그네뛰기가 유일한 놀이이다. 그들은 우리 스코틀랜드 여자들보다 훨씬 높이 그네를 탄다. 그네 타는 여자들은 자리에 앉아서 타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탄다. 그네는 대개 소나무에 줄을 맨 것이지만, 때로는 벽돌로 세운 기둥에 매기도 한다. 그네는 이런저런 명절에 타기도 하지만 주로 봄에 타는 듯하다.” ◆ Kite Flying 연날리기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도 싸서 어떤 것은 불과 일전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려본 것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연 날리는 모습이다.” ◆ New Year's Shopping, Seoul_1921 새해 나들이 키스는 자신의 저서 <동양의 창>에 “정월 초하루인 설은 한국 최대의 명절이다. 이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를 한다”라고 썼습니다. 광화문 해태 상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군요. 옛 우리의 세시풍경을 그린 귀중한 그림입니다. ◆ Young Korea_1920 한국의 어린이들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 두루마기에 예쁜 꽃신을 남자아이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그림을 그렸군요. 키스의 초기작 중 하나인데 이 그림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아이들이 설빔차림을 한 것 같군요. ◆ Two Korean Child_1925 두 명의 한국 아이들 “아이들의 의상은 그 디자인에 있어서 부모나 조부모가 입는 옷과 다를 바가 별로 없으나 색깔이 더 다양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분홍장미 색깔의 넓은 치마를 발목까지 내려오게 입고, 어린 남자아이들도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조금 큰 남자아이들의 바지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통이 넓고 발목까지 온다. 갓난아기들의 저고리에는 색동 소매가 달려 있다.” ◆ Country Wedding Feast_1921 시골 결혼잔치 한국인의 풍습을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 키스는 결혼식 장면을 여러 장 그렸습니다. 혹 그보다는 미혼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더 흥미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한번은 신부 행렬을 보려고 급히 따라가다가 물에 빠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는 아이 어른 다 합하면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흥겹게 잔치를 치르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Korean Bride_1938 한국의 신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다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부는 결혼식 날 발이 흙에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족이 들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뺨 양쪽과 이마에는 빨간 점을 찍었다. 입술에는 연지도 발랐다.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지만 신부는 자기 앞의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과일즙을 입안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입술연지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루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디어내야 한다. 신부의 어머니도 손님들 접대하느라고 잔치 음식을 즐길 틈도 없이 지낸다. 반면에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신부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는 키스의 표현이 재미있으면서 격세지감을 들게 합니다. ◆ Wedding Guest_1919 결혼식 하객 결혼식 하객으로 온 이 부인은 머리에 장식이 달린 조바위를 쓰고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키스의 관찰입니다. "일본 여자들은 두 다리를 붙이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 여자들은 가부좌로 앉아서 피로하면 서슴지 않고 수시로 다리를 고쳐 앉는 게 풍습이다. 교회에 나온 한국 여자들을 그리다 보면, 다리를 고쳐 앉을 때마다 치마가 불쑥하게 들어올려졌다 내려앉았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광경이다.” ◆ Returning from the Funeral_1922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성 밖에 묻는 것이 법이라, 겨울 저녁 어두워진 후에 등불을 켜 든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성문의 현판에 ‘東大門’이라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서울은 아니로군요. 키스가 영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영국 왕실에서 이 그림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 The Widow_1919 과부 "온화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한 이 부인은 한국 북부 출신의 여인이다. 한국에서는 남남북녀라 하여 북쪽의 여자를 더 쳐준다. 모델을 서려고 내 앞에 앉았던 그 당시,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였고 원한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 이 과부는 남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처지가 못 되었다. 외아들은 일제에 끌려갔고 그녀는 언제 그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애국자였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다. 여자는 전통적이고 폭넓은 크림색 치마를 입었고 그 속에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저고리는 빳빳한 삼베였다. 북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풍습대로 머리에 두건을 두른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인데도 여자는 그런 두건을 쓰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숱이 많고 길었으며 그것을 땋아서 머리에 감아올리고 있었다.“ ◆ Embroidering, Korea_1921 자수놓기 긴 머리에 빨간 댕기를 하고 수를 놓고 있는 처녀. 혼기를 맞아 자신의 혼수 준비를 하는 걸까요. ◆ Woman Sewing 바느질하는 여자 “중류 가정의 한 여자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옆에는 바느질 그릇과 인두가 꽂혀 있는 놋화로가 놓여 있다. 한국 여자들은 세탁과 바느질을 아주 잘해서 아무리 더럽고 거칠었던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세탁된다.” ◆ A Hamheung Housewife_1921 함흥의 어느 아낙네 “한반도 북쪽에 있는 함흥의 여자들은 서울 여자들보다 키도 크고 자세도 더 꼿꼿하다. 독특한 옷차림으로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닌다. 큰 두건 같은 머릿수건은 치마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여자를 대낮에 그렸다. 그녀는 땡볕도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머리에는 빨래를 담은 붉은 함지를 이고 있었는데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옥가락지 두 개를 정성스럽게 끼고 있었다.” 이 그림과 아래의 ‘아침 수다’는 같은 소재의 그림입니다. ◆ A Morning Gossip, Hamheung, Korea_1921 아침 수다 "아침에 빨랫감을 이고 씻어야 할 요강을 들고 냇가로 나가던 여자와 다른 한 여자가 길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 머릿수건을 기술적으로 두르는 것이 풍습이며, 어떤 때는 치마나 아이들 옷으로 머리를 둘러싸기도 한다. 치마는 풍선처럼 넓게 퍼져 있고 저고리는 무척 짧다.“ ◆ From the Land of the Morning Calm_1939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사람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추운 겨울이라 머리에는 털이 안으로 달린 남바위를 쓰고 그 위에 말총으로 만든 갓을 쓰고 있다. 하얀 무명옷에는 솜을 넣어 방한을 하고 있다.” ◆ The Country Scholar 시골 선비 “이 선비는 원산 사람이다. 그가 입고 있는 전통적인 선비 의상은 8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이고 모자도 옛날식이다.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는 끝 부분이 백옥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복장과 잘 어울렸다..선비는 그 부분이 잘 보이도록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의 옷고름은 연홍색 비단이고 옷은 엷은 옥색이었는데 까만 단하고 훌륭한 색깔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 나이 많은 한국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좋은 가정교육, 자기 절제, 인자한 부드러움 등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의 매너는 은근하면서도 정중했다. 그는 속세의 근심을 떠나 별천지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 Young Man in Red 홍복을 입은 청년 "이 청년은 자기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입궐할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있다. 붉은색의 겉옷 밑에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고, 백색 옥돌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주머니를 달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패옥 소리가 낭랑했다. 거북이 등과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는 꼭 매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허리 위로 둥그렇게 두르도록 되어 있었다. 앞으로 내린 에이프런에는 금으로 된 단추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 등급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모자는 말총으로 만들어졌는데 금색 칠을 했고, 신발은 넓적하고 코끝이 뭉특해서 발이 작아 보인다.“ ◆ A Daughter of House of Min_1938 민씨 가문의 규수 “이 처녀는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암살된 명성황후의 친척이다. 나는 그녀를 고풍스러운 병풍 앞에 세웠고 예쁜 신발을 그리고 싶어서 비록 실내지만 일부러 신발을 신게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에 외교사절로 파견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이었다. 또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한국 양반이었다. 그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고 크림색의 얇은 천으로 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의 하얀 버선은 발에 아주 잘 맞았다. 만약 내가 시인이었더라면 그의 멋진 발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으리라! 훗날 나는, 결혼하여 어린 딸을 둔 이 여자를 다시 만났는데, 그 모녀에게서 그 아버지의 우아함이나 온화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영어를 잘하고 꽤 똑똑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좋은 배필을 만난 듯해 기뻤다.” 처녀의 아버지는 조선 말기 최초의 프랑스 공사였다는 것으로 보아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특권대사로 파견되었다가 1902년에 주불공사로 임명되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까지 공사로 활약한 민영찬으로 추정됩니다. 민영찬은 국권을 빼앗긴 것을 분히 여겨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입니다. ◆ The Gong Player_1927 좌고 연주자 이 악기는 조선 말기 화가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에도 보이는 좌고(座鼓)로 생각되는데, 좌고는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북입니다. 보통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하거나 춤 반주를 할 때 좌고를 치는데, 앉은 채로 연주할 수 있도록 높이가 낮은 틀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칩니다. 좌고의 북통에는 용을 그리고, 북면에는 태극 무늬를 그려 넣습니다. ◆ The Flute Player_1927 대금 연주자 "이 사람은 과거 국악원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조선왕조가 망하여 궁중음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일본정부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잇다. 다행히도 나는 국악원 사람을 몇 명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에 종묘제례 때 보았던 아주 희귀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제일 보기 드문 악기는 다듬지 않은 옥같이 보이는 삼각형의 돌을 여러 개 나무틀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편경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치면 전 음계의 음정을 낼 수가 있었고 소리가 아주 좋았다. 대개는 피리소리의 효과를 높이는 데 사용하였다. 또 오리 모양으로 만든 나무딱따기도 있었는데, 밝은 색깔의 옷을 입은 20여 명의 사람들이 전후좌우로 돌아가면서 소리를 냈다.(박을 가리킵니다). 북의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각기 다른 소리를 냈는데 언제나 피리소리가 제일 고음이었고 또 제일 아름다웠다. 이 대금 연주자는 연주도 잘하지만 행동도 점잖아서 좋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과 마찬가지로 손이 잘생겼으며, 대금을 부는 사람의 섬세한 손놀림이 정말 보기 좋았다.“ ◆ Court Musicians, Korea_1938 궁중악사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전통 한국음악의 정수인 궁중음악이 사라져갈 무렵, 키스는 궁중악사들을 애써 찾아 몇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아마 이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종과 순종 재위 시에 궁중음악을 연주하던 마지막 궁중악사들로 생각됩니다. 출처
선사시대 조상과 현재 동물들 크기 비교
현재를 살고 있는 동물들은 모두 선사 시대 그와 닮은 조상들이 있었죠. 지난 세월만큼 많은 환경 변화를 거쳐 오면서 지금에 맞는 모습으로 진화해 온 동물들. 아직도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할 말 없지만요 ㅎㅎ 어쨌든 그 고대의 생물이 그 크기 그대로 지금 살아있다면 그 스케일감은 어떨까요? 현재의 후손과 고대의 조상이 함께 있다면 그 크기 차이가 얼마일지 함께 보시죠. 왼쪽이 현재, 오른쪽이 고대의 조상이랍니다. 저기 엉덩이쯤에 붙어있는 아이가 바로 현대의 나무늘보. 나무늘보의 조상은 나무와도 같았군요. 웜뱃 백상아리 사자 오랑우탄 표범 카피바라 조상에 비해 모델 체형으로 성장해버린 기린 안경곰 호랑이 아시아 코끼리 치타 코모도 왕도마뱀 아프리카 코끼리 코뿔소 아메리카 들소 아르마딜로 세리에마 캥거루 낙타 멧돼지 알래스카 무스 인드리(여우원숭이) 프르제발스키말(생존한 유일한 야생마종) 듀공 타조 흰코뿔소 개코원숭이 향고래 오 얘는 현재 향고래가 더 크군요 하이에나 안데스 콘도르 하마 재규어 숲멧토끼 조상 토끼는 귀가 그리 크지 않았군요 물론 크지 않아도 될 만큼 몸집도 컸고... 늑대 악어 코디악불곰 향고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상님들이 훨씬 크거나 조금 컸군요. 실제로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다가도 사실은 현재의 동물들도 실제로 본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생각하니 또 그럴 것까진 없겠구나 싶기도 하네요.
태안 갯벌체험 서해 맛조개 체험 펜션
<<태안 갯벌체험 서해 맛조개 체험 펜션 골드하우스>>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와, 오늘 서울 기온이 36도까지 오른다고 하네요. 체감 온도는 34도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미세먼지가 없어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거예요. 오늘 같은날 외부 활동은 좀 자제해야 할 것 같아요. 집 안에서 또는 숲이나 계곡에서 시원한 수박을 맛보고 싶네요. 오늘 소개할 국내여행은 서해안에서 즐길 수 있는 갯벌체험인데요. 갯벌체험하는 곳마다 유료가 있고 잡는 양도 정해져있는데요. 태안 진산리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갯벌체험장에서는 그곳 펜션 이용자들에게는 무한대?로 잡을 수 있는데요. 갯벌의 규모가 워낙 넓어서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지 신기해요. 한쪽의 양식장에 들어가면 절대로 안되니 참고하시고요. 오늘은 특별히 맛조개 잡는 방법 팁도 알려드렸어요. 맛조개 잡아본 사람들은 알지만 맛소금을 이용하는데요. 어떤 갯벌구멍에 뿌리냐에 따라 맛조개를 잡을 수 있습니다. 서해바다니만큼 해가 질 때 석양의 아름다움도 즐기고 펜션에서 거주하고 있는 길고양이가 상당히 많아서 아이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물놀이할 수 있는 미니수영장도 운영하고 있으니 이번 여름 휴가를 보내려 가족 단위로 다녀오길 추천합니다. 주변 맛집, 태안 가볼만한곳도 소개했어요. * 댓글 링크를 누르면 상세한 소개와 주변 여행지 및 생생 영상도 소개했습니다* #태안펜션 #태안갯벌체험 #태안갯벌체험펜션 #갯벌체험 #서해갯벌체험 #서해펜션 #서해맛조개체험 #맛조개체험 #맛조개잡는법 #태안맛조개체험 #서해맛조개 #태안반도펜션 #태안반도 #태안가볼만한곳 #태안여행 #태안수영장펜션 #태안가족펜션 #태안단체펜션 #진산리어촌계 #서해안펜션 #태안천리포수목원 #천리포수목원 #몽산포해수욕장 #태안숙소 #태안숙박 #서해안숙소 #서해숙소 #태안1박2일여행 #태안여행코스 #태안여행
홍콩의 마지막 영국인 총독 이야기
1842년부터 1997년까지 155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은 홍콩은 총 28명의 총독들이 거쳐갔다. 27명의 전임총독들은 군인출신이나 현지사정에 밝은 식민지 관청 출신들이었다.  하지만 1992년 임명된 28대 총독 크리스 패튼(Chris Patten)은 이들중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과거 홍콩에 몇번 온 적은 있었으나 동아시아 정세에는 문외한이었고 광둥어조차 한마디 할 줄 몰랐다. 패튼은 1944년 랭커셔 지방의 아일랜드계 가톨릭 출신으로 태어났다. 현재도 그렇지만 영국에서 아일랜드계는 주류계층이 아니다. 하지만 패튼은 살을 깎는 노력으로 옥스퍼드 발리올 대학에 입학하여 차석으로 졸업하고 1979년 바스 지역구 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80년대 대처와 메이저 내각 시기 그는 해외 개발부, 환경부 장관등을 지내며 정치 커리어를 이어갔다. 1992년, 패튼은 영국 보수당 의장으로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정작 자신의 지역구에서는 패했다. 내각은 그를 재·보선이나 상원의원으로 임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메이저 총리는 그에게 홍콩의 마지막 총독 자리를 권했다. 그의 임무는 중국과 영국 간 체결된 반환 공동선언 내용이 최대한 잘 실현되도록 힘을 쓰는 것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가 100년 전 영국이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러 가는 역할을 맡았다고 조롱했다. 홍콩시민들도 처음에는 그가 현상유지만 하다가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패튼은 임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홍콩의 여러 체제들의 개혁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거개혁이다. 패튼은 먼저 홍콩 정치체제의 풀리지 않은 문제는 홍콩 입법회 의원의 선출 방식을 개편하고자 했다. 그는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정치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본래 홍콩의 선거제도는 1982년에 도입된 간선제였다. 실권을 대부분 총독가 가지고 있었고 구의원도 총독이 지명하는 식이었다. 선거인단도 대부분 지역유지들과 기업임원들 같은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로 이뤄졌다. 패튼은 투표 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추고 전체 인구의 1/3에 달하는 270만 명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등 부분적인 직선제를 도입했다. 구의원 임명제는 아예 폐지해버렸다. 이 법안은 8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가결됐다. 1994년 실행된 입법국 선거에서 최초로 도입된 후, 1995년 선거부터는 홍콩의 평범한 노동자들도 선거 참여가 가능했다. 그가 이런 행보를 보인 이유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지 않으면 중국에 넘어간 홍콩인들이 피지배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아일랜드계로서 살아온 그로서는 ‘2등 시민’으로 사는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있었다. 지금 홍콩 사람들이 누리는 실낱같은 민주주의와 식민통치 시절의 좋은 기억은 패튼의 유산이다. 본래 총독들은 공식석상에서 견장과 칼이 달린 흰 제복을 입고 권위적으로 행동했다. 주민들과의 교류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패튼은 전혀 달랐다. 그는 항상 양복을 입었고 경호원 없이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거리를 산책을 하며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장애인 시설이나 저소득층이 사는 구룡, 신계지역을 자주 방문했다. 타이청 베이커리(泰昌餅家)의 에그타르트는 그가 좋아했던 간식이었다. 한번은  건물에서 난 화재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나오자 직접 사고현장으로 뛰어와 유족들을 위로하고 사고수습에 고뇌하는 모습도 그대로 뉴스에 나왔다. 이런 친서민적인 행보 덕분에 홍콩 시민들은 패튼을 좋아했다. 사람들은 그를 뚱보 팽(Fat Pang, 肥彭)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홍콩반환 직전까지도 그의 지지율은 70%가 넘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허브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고속성장을 거듭했고 부채문제도 깔끔했으며 외환 보유액은 사상 최고치였다. 패튼은 재정을 불려서 그 돈을 고속도로,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쏟아부었다. 대표적으로 하드랜딩으로 악명 높았던 카이탁 국제공항을 대신하고 있는 현재의 홍콩 국제공항이 그의 재임시절 건설됐다. 홍콩영화를 통해서 많이 알려진 메트로폴리스의 모습은 사실 이 시절 완성된 것이다.  배우자인 라벤더 패튼(Mary Lavender St Leger Patten)은 로펌변호사 출신으로 온화하고 이미지 덕분에 홍콩시민들에게 퍼스트레이디로 대접 받았다. 그녀의 내조는 조용했지만 효율적이었다. 패튼이 현지방문으로 대중들과 카메라 앞에서 웃고 친근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 그녀는 항상 뒤에서 관계자들을 불러 재정적 지원과 후원등 실질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는등 남편을 도왔다. 수많은 병원이나 복지단체, 특수학교들이 그녀의 도움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났다. 패튼 부부에게는 케이트, 앨리스, 로라 총 3명의 딸들이 있었다. 그녀들 역시 부모를 따라 어린 나이에 홍콩에 와서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홍콩반환년인 1997년 마지막 날까지 홍콩을 떠나지 않고 생활했다.  사진에 보이는대로 세명 모두 한 미모 했기때문에 홍콩시민들은 그녀들을 공주님처럼 여겼다. 그가 시행한 ‘민주적 개혁’은 중국 정부와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중국 공산당은 식민지 지배 종식에 앞서 혼란의 씨를 뿌리려 한다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천안문 사태 직후라 매우 민감한 상황이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패튼 총독을  “머리 둘 달린 간사한 뱀” “천년에 걸쳐 천벌을 받은 역사의 죄인”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하지만 패튼은 중국이 뭐라 하건간에 홍콩의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위한 일이라며 개혁을 밀어부쳤다. 중국정부는 홍콩이 반환되면 이 조치들을 무효화할 것이라는 엄포를 놨다. (결국 반환 직후인 1998년 홍콩 입법국은 해산되고 중국에서 선출한 입법회가 구성됐다.) 홍콩 반환식 날의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절하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총독관저의 국기 하강식에서는 비가 쏟아졌고, 접힌 유니언잭을 받아든 그는 북받친 감정을 억누르느라 눈이 붉게 충혈됐다. 이스트 타마르에서 열린 고별행사에서는 엄마대신 총알받이로 온 찰스 왕세자 옆에 앉아 행사를 지켜봤지만 견딜 수 없었는지 마지막에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는 고별사에서 "영국은 물러나지만, 홍콩인들은 영국이 남긴 민주주의와 자유의 유산을 고스란히 지켜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패튼뿐만 아니라 아내 라벤더와 세 딸들도 반환식이 끝나는 순간까지 눈물을 흘렸다. 반환식이 끝난 직후 패튼은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찰스 왕세자가 타고 온 영국왕실 요트인 HMY 브리타니아(Britannia)호에 오른 그의 식구들은 홍콩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여담으로 찰스 왕세자는 이날 행사를 끔찍한 공산주의 인형극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정치에서 은퇴한 현재도 홍콩을 여러차례 재방문 했으며, 2013년 우산혁명과 2019년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중국의 정책은 법치가 아닌 공포의 통치'라고 비판하며 영국과 서방국가들이 이런 압제에 도움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총독 재직 당시 정신질환자로부터 “영국은 세계 최고(最古)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왜 홍콩인 의견을 묻지 않고 전체주의 정권에 홍콩을 넘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홍콩에서 받은 질문 중 가장 완벽했지만 답을 할 수 없었다. 홍콩 민주화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민주주의를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거의 항상 바람직합니다.(Democracy is seldom predictable, but it is almost always desirable).”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