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7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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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 15년 경력의 영국 기자가 본 대한민국

'한국인은 부패, 조급성, 당파성 등 문제가 많으면서도
또한 훌륭한 점이 정말 많다!'
- 마이클 브린 -

-출처-
youtube.....
1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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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해요 ㅠㅜ 대한민국 화이팅!
와~~~ 우리 대한민국 화이팅, 만세~👍🏻👍🏻👍🏻
흥미롭네
미국과전쟁했을때...?? 핵버튼을 누르는 수초밖에 안걸릴텐데?
@vhvmflgid1 핵을 배제하더라도 하루도 못버틸것같은데요 ㅜ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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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에 잘라내야 할 나쁜 습관
조선 중기, 존경받는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 선생은 평소 나쁜 습관에 대해서 경고를 하였습니다. 율곡 선생께서 쓴 '격몽요결'이라는 책에는 인생을 망치는 8가지 나쁜 습관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일하지 않고 놀 생각만 하는 것. 둘째, 할 일 없이 하루를 허비하는 것. 셋째,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것. 넷째,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헛된 말과 헛된 글을 쓰는 것. 다섯째, 풍류를 핑계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 여섯째, 돈만 목표로 삼아 살아가는 것. 일곱째,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 여덟째, 절제하지 못하고 돈과 여색을 탐하는 것.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을 통해 이 나쁜 습관을 벗어나는 방법은 칼로 잘라내듯 습관을 뿌리 뽑는 방법뿐이라고 하셨습니다. ​ 말은 쉽지만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나쁜 습관 때문에 망가진 인생을 살아가기보다 어렵고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어느 쪽이 더 현명한 선택일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 # 오늘의 명언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 존 드라이든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모든 망조는 열등감에서 오는겁니다....!!!" -유령 생각- ​
해충기념탑을 세운 이유
미국 앨라배마 주 엔터프라이즈라는 작은 마을은 오래전 목화를 재배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는 중 이 지역에 목화꽃이 피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목화 벌레들이 기승을 부리더니 목화 수확량이 1/3로 줄었습니다. 목화 수입으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빈곤해지고 실직자가 줄을 이었습니다. 심지어 굶주리는 사람들마저 생겨나더니 병자들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엔터프라이즈 마을 사람들은 특단의 조치로 평생 함께하던 목화밭을 포기하고 다른 작물을 키우기로 한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밭의 목화를 모조리 뽑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빈 터에는 땅콩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땅콩은 목화 벌레의 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화학제품의 옷감이 대량 생산되면서 목화산업이 갑작스럽게 사양산업이 되어 사정없이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목화 사업 관련자들은 예전보다 더 심각하게 안 좋은 처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목화 벌레 때문에 작물을 바꾸고 끊임없이 노력한 엔터프라이즈 마을 사람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땅콩 생산지를 만들어 놨습니다. 엔터프라이즈 마을에는 해충인 목화 벌레를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 탑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 넣었습니다. '벌레가 준 고난이 번영을 가져왔음을 감사하며 탑을 세운다.' 기회는 항상 고난의 가면을 쓰고 우리 곁에 슬그머니 다가옵니다. 크게 성공하여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예외 없이 고난의 가면에 감추어져 있는 기회의 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열정과 노력으로 붙잡습니다. # 오늘의 명언 성공하기 전에는 항상 그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 넬슨 만델라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만인을 위한 '발견'
퀴리 부인은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오랜 세월 방사능에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하며 방사능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퀴리 부인은 다른 과학자가 발견한 우라늄보다 더 강력한 빛을 방출하는 원소를 발견했고, '라듐'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순수한 라듐을 분리하는 일은 엄청나게 고된 일이었으며 피치블렌드란 광물 몇 톤을 화학적으로 정제해야 했습니다. 부부는 비가 새는 헛간을 실험실 삼아 밤낮없이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1902년 4월 20일, 순수한 라듐 0.1g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이듬해인 1903년, 퀴리 부부는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퀴리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단 1g이라도 좋으니 연구를 위해 라듐을 마음껏 써봤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라듐은 1g당 10만 달러나 될 만큼 값비쌌는데 퀴리 부인은 갖고 있던 라듐까지도 연구소에 기증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의아한 기자가 되물었습니다. "발견하신 라듐으로 특허를 받아서 큰돈을 벌면 얼마든지 라듐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퀴리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원소는 만인의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방사성 물질인 라듐과 폴로늄이 인체에 해로운 성분이라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시기라 연구에 몰두한 퀴리 부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강이 악화했고 결국 방사능으로 말미암은 골수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녀를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 중 명예 때문에 순수함을 잃지 않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퀴리 부인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타적인 연구를 계속해나간 과학인들이 있기에 오늘날 우리가 더 건강하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헌신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에서 흘러넘치는 것이다. – 제임스 패커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성균관 유생이 좌의정에게 개기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정조임금이 다스리던 1790년에 있던 일이다. 채제공 초상화 정조의 손꼽는 충신이자 명재상으로 좌의정을 역임했다. 좌의정은 조선시대 관료 18품계 중 정1품 최고위직일 뿐 아니라 영의정과 우의정을 포함한 삼정승 중에서도 실권이 으뜸이었다. 이 좌의정 재체공이 1790년 길을 가던 중 돈의문 근처에서 담배를 꼬나문 두 명의 성균관 유생을 마주쳤다. "식후불연초하면 삼분내즉사라~" 당대 조선에는 웃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거나 안경을 쓰는 것은 예에 어긋난 일이었고 심지어 당시 이 유생들은 옷도 대충 걸쳐입고 있는 상태였다. 보다 못한 채제공의 권두(오늘날 비서/경호직)가 담배끄라고 호통치자 담배피던 유생이 한 말이 가관이다. "아저씨 요즘 애들은~ 한 성질 하거든요? 예?!" 더 정확한 표현은 "내가 무엇 때문에 저 자를 보고 담뱃대를 빼겠는가." 일개 유생이 일흔 살 먹은 좌의정 앞에서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빡이 오른 권두는 이 두 유생, 곧 김병성과 김관순을 잡아다 가둔다. 어찌되었든 크게 처벌할 일은 아닌지라 채제공은 이 둘을 적당히 벌주는 셈 치고 다음날 풀어주려 했는데 그날 밤에 일이 터진다. 성균관 유생이란 작자들이 야밤에 우르르 몰려가 관리에게 잡힌 동료 유생들을 풀어주라고 협박한 것이다. 관리가 거부하자 유생들은 옥을 부수고 꺼내가겠다거나 관리를 때려죽이겠다고 패악질을 부렸다. 아 선비님들 잠시만요.jpg 생명의 위협을 느낀 관리가 호다닥 채제공에게 보고하자 놀란 채제공은 잡혀있던 유생 둘을 형조로 넘겼다가 얼마 뒤 풀어주었다. 좌의정 앞에서 양아치짓을 한 이 두 유생이 높으신 분 자제분들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김병성은 종9품 돈령부참봉 김세근의 아들이고 김관순은 종8품 동부봉사 김이의의 아들이었는데 둘 다 미관말직이었다. 결국 김병성은 아버지한테 끌려가 집안하인들 다 보는데서 빠따질을 당했고 김관순은 그 할아버지가 채제공의 지인에게 "우리집안에 병신새끼가 있다."고 돌려 사죄했다. 애초에 오늘날로 치면 외무부 말단 공무원 아들이 지나가던 국무총리한테 담배피며 개긴 꼴이니 조선시대에 그 아비가 빠따질을 안했다면 그게 용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신 못차린 유생들이 사발통문을 돌려가며 채제공을 공공연히 욕하고 나중가면 유생은 "죽일지언정 욕을 보일 수는 없다."고 상소를 올려대며 채제공을 공격한 것이다. 명재상으로 이름 높던 채제공의 인내심도 여기서 그만 폭발해버리고 만다. 채제공은 정조에게 나아가 "욕보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선비가 공론을 말할 때나 할 소리인데 대낮 길가에서 양아치 새끼마냥 담배 꼬나물고 좌의정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놈을 혼내지 못한다면 이건 그냥 일하지 말라는 소리 아닙니까?" 라고 상소하고 사직서를 낸다. 당연히 정조가 이를 받아줄리 없었고 예의범절에 엄격했던 정조가 이를 묵과할 리도 없었다. 왜냐면 정조야 말로 당대 최고의 꼰대 중 하나였기 때문... 그 결과 길빵하며 좌의정에게 개긴 두 명은 어찌되었든 그 가장에게서 빠따질로 처벌을 받았으니 그걸로 넘어갔지만 야밤에 통금령 어기고 우르르 몰려가 관리를 때려 죽이겠다는 둥 패악질을 부린 유생들 중 주동자 이위호는 종신과거금지 처분을 받아 벼슬길이 막혔고 추종자들인 조학원, 윤선양, 원재형, 원재행 네 명은 10년과거금지 처분을 받게 된다. 결국 이렇게 1790년의 길빵사건은 정신 못차린 유생들이 꺵판치다 자기 뚝배기 깨는 걸로 끝을 맺게 된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 별반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이따. 출처
알면 알수록 빡치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미스테리
2008년 7월 문화재청 게시판에 '집에 고서하나가 나왔는데 문화재로 신청하고싶다'는 글이 올라 옴 전문가들을 통해 검증한 결과, 훈민정음 해례본 진본인 것으로 밝혀짐 이때 상주본 출처에 대해 배익기 씨는 '집수리를 하다가 발견했다'고 답함 현장조사에 직접 참여했던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연구자가 직접 쓴 주석까지 달려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함. 그런데.. 이때 안동에서 골동품을 판매하는 조씨가 등판함 그의 입장은 이러했음.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본인의 골동품 가게에 두었는데 가게에 방문한 배씨가 다른 책들에 슬쩍 끼어 훔쳐갔다는 것. 가게에 둔 이유는 판매용이 아닌 본인이 따로 알아보기 위함이었다고 함. 조씨는 배씨를 절도죄로 신고함 근데.. 님은 이책 어디서 남? 조상 대대로 우리집안에 내려온 것임 재판결과 대구지검은 골동품점 주인인 조씨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판결함 배씨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조씨에게 반환하라는 판결에도 불복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재청의 현장조사 요청 또한 거부했음 혹시라도 문화재가 손실될까 애가 타는 문화재청은 배씨의 집을 두차례나 수색했지만 찾을 수 없었음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배씨를 고발했고 형사재판이 시작됨 형사재판 중.. 또 한번 놀라운 반전을 맞이함 도굴꾼인 서씨가 1999년 안동 광흥사의 대웅전 나한상 토불들을 부수고 훔친 복장유물 중 해례본이 있었고 훔친 해례본을 골동품점 조씨에게 팔았다라는 증언을 했기때문 훈민정음 해례본의 표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진술했는데 상당부분 일치함 대환장 파티가 열림.. 서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 소유주는 골동품가게 조씨가 아닌 광흥사의 것이 되는 상황 조씨는 도굴꾼 서씨의 말을 극구 부인했음 그리고 얼마 후 상주본의 소유권을 문화재청에 기증함 이후 배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받음.. 풀려난 뒤 그는 지금 내놓으면 도둑 누명을 못 벗기때문에 소유권부터 되찾고 내놓겠다 이미 훼손됐대도 어쩔수없다며 황당한 소리를 지껄임.. 여기까지만봐도 속터지져? 근데 아직 환장 파티 시작도 안함^^ 해례본이 숨겨져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인간 집에 불이남... 훈민정음 해례본 잘있는지 제발 한번만 보여주라 제발ㅠㅠ "이미 불탔을수도 있고ㅋ 아닐수도있고ㅋ 탔어도 어쩔 수 없고~~~" 이런 식의 말장난만 치면서 끝끝내 보여주지않고 버팀 그리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결과는 당연히 낙선~ 떨어지고 한번 더 출마함 이때 재산 신고한것도 환장.. 자신의 재산을 1조4800만원이라고 신고하려함ㅋㅋㅋㅋㅋㅋㅋ 이유는 문화재청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1조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해서^^ 선거결과는 당연히 낙선~ 낙선 후 잠잠하더니 다시 어그로를 끄는데.. 갑자기 불에 타 훼손된 해례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함; 갑툭튀한 이유는 자신이 당선되면 책을 공개하려했으나 소장자라는 것을 믿지않는 사람이 많아 공개했다함.. 사진에 공개되지않은 다른 부분들의 상태는 어떨지 그것도 미지수 이 지저분한 싸움은 지금까지 현재진행 중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배씨가 조씨의 골동품 가게를 두번 방문했는데, 첫번째 방문 시 한장을 몰래 찢어와 진본인지 확인하고 두번째 방문 때 훔친 것이라 함. 또 다른 골동품점 주인에게 훈민정음 한장을 확보했는데 300만원을 줄 수있냐고 거래를 시도했던 정황도 나옴 이런 인간 설득하려고 문화재청에서 45번이나 만났다함ㅠ 강제로 회수하고싶으나 정말 불에 다 타버린건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꽁꽁 숨겨둔 건지 행방을 전혀 알 수없는 상황임.. 아예 다 타서 없다고 속시원히 말이라도 해주면 문화재 훼손죄로 감방이라도 갈텐데ㅠ 출처 소드 모야 왜저래;; 뭘 믿고 저렇게 뻔뻔하냐 나이값을 하시오 우리 소중한 역사고 문화잖아 아 제발 이 이야기 볼 때마다 너무 빡치고 열받아서 무슨 욕을 해야될지도 모르겠음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위대함
2006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중교통국(MTA) 직원 아서 윈스턴이 100세를 맞아 모든 직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퇴직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서는 어린 10살 때부터 목화밭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18살이 되어 버스 운전사가 되고 싶어 교통국 직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1920년대에 흑인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아서가 교통국에서 맡은 일은 정비실에서 버스를 닦고 기름 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비실에서 76년을 일했습니다. 76년 동안 아서는 매번 새벽 6시에 칼같이 출근했습니다. 결혼 직후 다른 회사에서 6년간 일했던 시기를 포함해서 아서의 출근 기록부에는 단 하루의 병가만 있었습니다. 단 하루의 병가는 1988년 어느 월요일로, 이틀 전 토요일에 아서의 아내 프랜시스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 맞은 근무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화요일, 아서는 여전히 새벽 6시에 출근했습니다. 그에게 직장은 네 아이를 키우고,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삶과 함께한 평생의 동반자였습니다. 아서가 퇴직하기 10년 전인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세기의 일꾼'으로 표창했고, 1997년 로스앤젤레스 대중교통국은 그가 담당하던 5구역을 '아서 윈스턴 구역'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아서의 퇴직을 앞두고 많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는데 한 기자가 아서에게 퇴직 후 계획을 물었습니다. 아서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평범한 버스 수리공인 나에게 이런 특별한 일이 일어나다니, 모두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쉬지 않고 움직일 거예요. 내 나이에 누웠다가 못 일어나면 큰일이니 말이오." 아서 윈스턴 씨는 퇴직한 해인 2006년 4월 13일, 100세의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100세에도 자기 일을 할 수 있었고 100세가 넘어서도 일하고 싶어 했던 그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중요한 건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놀라운 축복과 존경이 쏟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어디서 무엇을 하건 간에 적당히 대충 하지 말라. 열 가지를 해야 한다면 스무 가지를 하라. – 데니스 웨이틀리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