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7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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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 15년 경력의 영국 기자가 본 대한민국

'한국인은 부패, 조급성, 당파성 등 문제가 많으면서도
또한 훌륭한 점이 정말 많다!'
- 마이클 브린 -

-출처-
youtube.....
9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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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해요 ㅠㅜ 대한민국 화이팅!
와~~~ 우리 대한민국 화이팅, 만세~👍🏻👍🏻👍🏻
흥미롭네
미국과전쟁했을때...?? 핵버튼을 누르는 수초밖에 안걸릴텐데?
@vhvmflgid1 핵을 배제하더라도 하루도 못버틸것같은데요 ㅜ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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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법칙
출근 시간 지하철역 근처 횡단보도. 신호가 한번 바뀔 때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우르르 걸어갑니다. 10분의 시간이 아쉬운 출근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다른 때에 비해 더욱 묵직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한 사람이 길을 건너지 않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결연한 걸음걸이의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또 한 사람이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에 뭔가가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출근 시간 전까지 직장에 가야 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또 한 사람 늘어 이제는 세 명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그 세 명을 보고 하늘에 뭔가 있나 싶어 바라보는 네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여섯, 일곱, 여덟….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갑자기 수십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것은 이른바 제3의 법칙 이론의 실험입니다. 바쁜 대중 속에 다른 행동을 하는 세 사람을 차례로 투입하면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내는지 확인하는 실험입니다. 그리고 이 법칙은 올바를 사회정의를 위해 적용할 수 있는데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바른 일을 하는 세 명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으로 때로는 수많은 대중을 바른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만, 역으로 상황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선한 행동의 세 번째가 되어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을 따라서 수많은 선한 행동이 분명히 이어지는 기적이 우리 주변에 자주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 오늘의 명언 작은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 – 레프 톨스토이 –   = Naver"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변화 #환경 #제3의법칙 #군중심리
흔적을 따라서
야생동물에 비한다면 인간의 근력은 초라한 편인데요. 성인 남자의 평균 악력은 50kg, 침팬지의 악력은 129kg, 오랑우탄은 193kg, 고릴라의 악력은 326kg입니다. 하지만 어떤 동물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지구력입니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육상동물도 42.195k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없습니다. 멕시코에 있는 ‘타라후마라’라는 원시 부족은  오로지 달리기로만 사슴을 사냥합니다. 시속 70km로 달리는 사슴을  고작 시속 20km로 달리는 사냥꾼이 추적합니다. 사냥꾼의 추적을 눈치챈 사슴은  쏜살같이 달려 순식간에 먼 지평선으로  달려가 버립니다. 하지만 사냥꾼은 당황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멀리 보이는 사슴을 향해서 묵묵히 쫓아갑니다. 너무 빠른 사슴을 시야에서 놓쳐버리기도 합니다. 달아난 사슴이 보이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는데, 발자국이나 냄새를 통해 사슴이 도망친  방향을 찾아 다시 추격합니다. 그렇게 사슴은 계속 도망가고  타라후마라 부족은 계속 쫓아갑니다.  놓치면 다시 흔적을 찾아 또다시  추적을 합니다. 추적이 계속되면 시속 70km로 하늘을 나는 듯이 달리던 사슴의 속도는 점점 떨어집니다. 하지만 사냥꾼의 발걸음은 추적을 시작할 때와 비슷한 속도로 끊임없이 달립니다. 그렇게 흔적을 따라 계속 달려가면  결국 지쳐 쓰러진 사슴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타라후마라 부족은  아무런 도구도 쓰지 않고도  사슴을 사냥합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한 일에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실패로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실패는 반드시 어떤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흔적을 묵묵히 끊임없이 쫓는다면 당신의 목표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여러 번의 흔적을 더 찾은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성공이라는 못을 박으려면 끈질김이라는 망치가 필요하다. – 존 메이슨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끈기 #지구력 #집중력
보름달과 초승달
수많은 나라가 난립했던 시대였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작은 두 나라가 있었는데  나라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서로를 미워하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작은 싸움이 아니라 국가 간의 다툼이라는  큰 분쟁에는 힘없는 백성들만 매번  고생하기 마련입니다. 그 참상을 보다 못한 학자 한 명이  양쪽 나라를 오가며 중재에 나서기로 했는데 학자는 먼저 큰 나라를 찾아가 왕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유해 말하건대 이 큰 나라는  가장 둥글고 가득 찬 보름달과 같습니다. 하지만 저 작은 나라는 초승달 같은데 왜 굳이 힘없고 작은 나라와  전쟁을 하려 하십니까?” 학자의 말은 들은 큰 나라의 왕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 듣고 보니 그렇군.  우리 같은 대국이 저 작은 나라에  정을 베풀도록 하지.” 이번에는 작은 나라의 왕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같은 말을 하자 학자에게 왕은 화를 내었습니다. “그 나라는 보름달이고 우리는 초승달이라고? 당신은 우리를 무시하는 건가?” 화를 내는 왕에게 학자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가득 찬 보름달은 점점 기울어 작아질 것이지만, 초승달은 앞으로 커지고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작아질 저 나라와 왜 싸우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크게 기뻐한 왕이 학자의 말을 받아들였고,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이 그쳤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말 한마디는 큰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말 한마디에 지혜뿐만 아니라 배려까지 함께 담을 수 있다면 세상 어느 것보다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인간의 눈은 그의 현재를 말하며 입은 그가 앞으로 될 것을 말한다. – 존 골즈워디 – =Naver"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지혜 #현명함
세젤쉽 역사공부) 조선시대 대비, 왕대비, 대왕대비의 차이와 관계
글을 소개하기 이전에 "대비" "왕대비" "대왕대비" 등 호칭 구별이 늘 어려워서 한번쯤은 여기에 올려보고 싶어서 올려봄. 흔히 많은 사람들은 대비 = 왕의 엄마 (전왕의 왕비) 왕대비 = 왕의 할머니 (전전왕의 왕비) 대왕대비 = 왕의 증조할머니 (전전전왕의 왕비) 이렇게 생각하지만 전혀 아님. 조선시대 내명부 여인들의 서열은 세자빈 - 왕비(중전) - 왕대비 - 대왕대비, 이 순서였음. 왕대비는 보통 왕의 어머니뻘이지만 사실상 바로 전왕의 왕비를 가르키는 말이였고 대왕대비는 전전왕의 왕비를 가르키는말임. 근데 조선시대에는 대비가 3명이나 된 시절이 있었는데 성종시절과 고종시절이였음. 조선 성종이 즉위하니 선왕인 예종의 부인인 왕대비 인혜왕대비 안순왕후 한씨 (성종 숙부 예종의 왕비) 선선왕인 세조의 부인인 대왕대비 자성대왕대비 정희왕후 (성종 조부인 세조의 왕비)가 있었음. 근데 문제가 되는 인물이 있었음. 문제는 성종의 어머니 수빈김씨였음. 성종의 아버지 덕종은 세자시절에 사망한터라 명목상 수빈김씨는 대비도 아니고 왕비도 아닌신세....대왕대비 정희왕후는 왕도 못되고 서른도 안되서 요절한 아들 의경세자를 왕인 "덕종"으로 추존시킴. 그리고 이로인해 수빈김씨는 - 인수왕비를 거쳐서 인수왕대비로 봉승되었고 서열이 왕비까지 거친 인혜왕대비 (예종 왕비 안순왕후)보다 서열이 더 위가 되었고 이때 왕실 내명부 서열은 세조왕비 (대왕대비 정희왕후) - 덕종왕비 (왕대비 소혜왕후) - 예종왕비 - (왕대비 안순왕후) - 성종왕비 (중전 공혜왕후) 순서가 되었음. 문제는 이러한 대비가 3명이나 살아있는 사태가 철종때 벌어짐. 헌종이 죽고 김대왕대비 (순조왕비)가 고종을 데려와 즉위시킴. 궁중에는 남편이 이미 사망한 왕비가 3분이나 계셨는데 1. 순조의 부인인 순원왕후, 명성대왕대비 김씨 2. 선왕인 헌종의 모친이자 효명세자의 부인 효유왕대비 조씨 (신정왕후) 3. 대행대왕 헌종의 부인인 왕비 효정왕후 홍씨 이렇게 3명의 서열이 문제였음. 문제는 지금까지 왕실 내명부 서열이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였지만 대왕대비 위에 자리를 하나 만들던가 해야 되는 상황이였고 기존의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가 아니라 왕대비 아래 대비라는 직함을 또 만들어서 " 왕비 -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로 바뀌었음. 즉 기존의 대왕대비 순원왕후(순조비). 왕대비 신정왕후 (익종,효명세자빈)은 그대로 있고 그 아래 대비 자리를 만들어서 효정왕후를 대비로 존숭함. 그래서 왕실 여성 서열은 1. 대왕대비 김씨 (순조의 왕비) 2. 왕대비 조씨 (익종의 왕비. 효명세자빈) 3. 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4. 중전 김씨 (철종의 왕비) 이 순서였음. 신기한건 새로 즉위한 국왕 철종은 순원왕후와 순조의 양자였음. 즉 대비 홍씨 (효정왕후)에게는 시숙부였는데 선대 왕의 정실부인이였기 때문에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갔다고 함. 그러던 중 1857년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죽은 뒤로는 왕대비 신정왕후를 대왕대비로 올리고 대비 효정왕후를 왕대비로 올림으로써 1. 대왕대비 조씨 (익종의 왕비, 효명세자빈) 2. 왕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3. 중전 김씨 (철종의 왕비) 기존의 "왕비 -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가 아닌, 다시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로 회귀한거임. 근데 문제는 철종이 죽은 이후 왕실서열이 꼬임. 바로.... 철종의 왕비 중전 김씨였음. 명목상 철종이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자여서 철인왕후는 대비 홍씨에게 시숙모임. 즉 철인왕후의 서열을 동서지간인 신정왕후와 동일시할지 혹은 효정왕후보다 낮게 할지 문제가 생겼으나 이때 새로 즉위한 국왕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를 싫어함.. 그래서 철종의 부인 철인왕후 서열을 3명의 대비들중 가장 아래로 낮추었음. 결과적으로 왕실 여성들의 서열은 1. 대왕대비 조씨 (익종, 효명세자의 부인) 2. 왕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3. 대비 김씨 (철종의 왕비) 4. 중전 민씨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 이 순서가 되었어. 대비 김씨는 조카며느리인 왕대비 홍씨에게 아예 서열이 밀린거임. 보통 선선왕의 왕비면 무조건 대왕대비가 되는건 아니였음. 이러한 비운을 가진 인물은 바로 조선역사에 2명 있었음. 성종의 제3왕비인 정현왕후는 성종 - 연산군 - 중중까지 3대왕을 거쳐서 대왕대비가 되야 하지만 연산군이 폐위될때 그의 왕비인 신씨도 같이 쫒겨남..그래서 그대로 왕대비 자리에 있었는데 그 이유는 어짜피 새로 즉위한 왕도 뭐 손주뻘도 아닌 친아들 중중(진성대군)이였음. 인종의 왕비 인성왕후는 인종시절 중전, 명종시절 왕대비였기에 선조가 즉위하고 대왕대비가 되자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시어머니 문정왕후와 달리 다른상황이였는데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이 즉위할때 이미 인성왕후가 왕대비로 있었고 둘은 고부지간이여서 대왕대비로 승봉된 경우, 하지만 인성왕후는 바로 아래서열 명종비 인순왕후와 항렬이 같아서 대왕대비가 되지 못하고 그대로 왕대비자리에 있게됨. 더군다나 조정에서 인순왕후의 영향력이 상당했고 인성왕후는 뒷방신세여서 수렴첨정의 권한도 뺐기게 됨. 선조의 왕비 인목왕후는 선조(왕비) - 광해군(왕대비)를 거쳐 인조가 즉위했을때 광해군부인이 쫒겨났기에 그냥 그대로 왕대비자리에 있어도 되는거 아님?이란 생각이 있겠지만 새 국왕 인조는 선조의 손자였음. 즉 의붓할머니 - 의붓손자 관계였고 더군다나 당시 인조의 친어머니가 살아있던터라 대왕대비로 승격됨. 인조의 왕비 장렬왕후는 인조(왕비) - 효종(왕대비) - 현종(대왕대비)였기에 숙종때는 더 높은자리에 있어야 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효종왕비 인성왕후는 고인이였고 궁중에는 현종비와 인조비 둘 뿐이였기에 그대로 4대왕을 거쳤어도 대왕대비자리에 있게됨. 만일 효종비 인성왕후가 살아있었으면 철종이나 고종때처럼 왕대비 아래 대비자리를 만들거나 혹은 대왕대비 위에 대상왕대비같은 자리를 만들었을것임. 영조의 왕비 정순왕후는 정조 즉위 이후 조모뻘이여서 대왕대비로 바로 올리자는 여론이 있었는데 왕대비자리에 오를 사람도 없었고 이당시 장조(사도세자)는 죄인인터라 혜경궁 홍씨 역시 왕대비자리에 오르지못함. 정조의 양부 진종 (효장세자)의 부인 조씨 (효순왕후) 역시 고인이였던터라 정순왕후는 그대로 왕대비가 됨. 서양에서는 대비(태후)를 " queen dowager"로 표현하는데 유럽왕실에서는 만일 현왕의 어머니면 영향력이 강하겠지만 단순히 선왕의 왕비였으면 딱히 영향력이 강하지 않았음. 재혼도 가능해서 헨리 8세의 부인 캐서린 파는 재혼도 했다고 함. 다만 선왕의 왕비였기에 존중의 대상이긴 했다고 해. 대략 늘 사극을 보면서 왕실여성들 호칭이 궁금해서 공부해봤음. 출처 어허 일케 봐도 헷갈리네.. 쨌든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라는거군
엄마와 찐 감자
어린 자녀들을 혼자서 키우는 건 쉽지 않습니다. 남편이 있을 때는 가난해도 행복했는데, 뜻밖의 사고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이들의 웃음도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더욱 힘들기만 했습니다. 다행히 아는 분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누워 잘 수 있는 집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온종일 빌딩 청소며, 식당 설거지까지 쉬지 않고 일을 했고, 집안일은 초등학교 3학년인 큰아들이 맡게 되었습니다. 어느 겨울날 엄마는 찜통에 감자를 넣어놓고 집을 나서며 메모를 남겼습니다. ‘찜통에 감자 쪄놨으니까 배고프면 그거 먹어. 너무 차가우면 데워서 동생하고 먹도록 하고, 그리고 불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엄마는 직장에 나갔는데 그날은 눈이 많이 와서 아무리 청소를 해도 복도가 계속 더러워졌습니다. 결국 빌딩 관리자에게 욕을 먹어야 했으며 저녁에 식당에서는 남자 취객으로부터 무례한 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고된 삶에서도 이를 악물며 살아왔지만,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단 생각에 집으로 돌아와 순간적으로 삶을 포기할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 얼굴이라도 볼 생각에 찬찬히 둘러보는데, 잠든 아들의 머리맡에 쪽지 하나가 보였습니다. ‘오늘 감자를 데워 먹으려고 했는데 그만 감자가 다 타 버리고 말았어요. 동생이 못 먹겠다고 투정해서 너무 속상했어요. 내일은 감자 찌는 법을 저에게 가르쳐 주세요. 엄마는 일하느라 힘드신데 배워서 해볼게요. 엄마 죄송하고 사랑해요. 먼저 잘게요.’ 그 쪽지를 보는 순간 엄마는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 걸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좌절의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아픔의 순간. 그 순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분명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는 모두 인생의 격차를 줄여주기 위해 서 있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힘든 시간을 이겨내곤 합니다. – 오프라 윈프리 – =Naver"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가난 #절망 #고난 #좌절 #사랑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