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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잘 몰랐던 매력적인 아프리카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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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몽니부리는 자한당. 이유는?
나는 문빠가 아니다. 나는 진보정당인 민중당 당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청문회에 나서는 조국교수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자한당이 수구언론과 결탁해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고 여론을 계속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청문회를 이틀에 거쳐 하기로 해놓고 추가 협의를 미적대는가 하면 청문회 일정을 무산시키며 보이콧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나는 이를 보며 자한당은 장관내정자 청문회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조국을 청문회에 올리지 않고 사퇴시켜 문재인 탄핵까지 몰아 가려는 심뽀라는 걸 느꼈다. 괜히 청문회를 열어 사실과 다른 내용이 그게 아니었음이 밝혀지면 그 후과가 자한당에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지만 조국 교수의 개인 신상털기에서 재미를 못 본 자한당이 그 가족을 들먹이고 있는 것은 사실을 밝히기보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느냐는 식의 의혹만 제기하며 시간 끌기만 하고 있어 여론악화의 진원지여서다. 이제와서 자한당은 조국 법무장관 내정자 청문회를 9월 2일과 3일 열리는 것이 아니라 훨씬 뒤로 늦추고 후보자의 비위나 불법혐의를 들추고 싶은 것이다. 확실한 불법행위나 결격사유를 찾지 못하자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나 몽니를 부려도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이런 자한당을 가만 나둬선 안된다. 촛불시민은 법조개혁을 원한다.
우파 정당의 전통성은 있나?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선거를 실시한 이래 대한민국에는 총 20번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사이버선거역사관 기록과 경향신문의 대한민국 정당사 인터랙티브 뉴스를 종합해 정리한 역대 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원내 1당을 차지한 경우를 기준으로 살펴 보면 자유당(2회), 민주공화당(5회), 민주정의당(3회), 한나라당(2회),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 새누리당이 각각 1회로 도합 15번이다.  중도파인 민주당(윤보선1회), 열린우리당(노무현1회), 더불어민주당(문재인1회)였으며 1997년 IMF시기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되기도 한다. 이를 우파정권의 총선으로 1당이 된 시기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1948년 대한독립 촉성 국민회 -이승만 1950년 대한국민당-이승만 1954년 자유당 -이승만 1958년 자유당 -이승만 ㅡ ●1960년 민주당 -윤보선.장면 1963년 민주공화당 -박정희 1967년 민주공화당 -박정희 1971년 민주공화당 -박정희 1973년 민주공화당+유신정우회 -박정희 1978년 민주공화당+유신정우회 -박정희 1981년 민주정의당 -전두환 1985년 민주정의당 -전두환 1988년 민주정의당 -노태우 1992년 민주자유당 -1노2김 ㅡ 1996년 신한국당 -김영삼 2000년 한나라당 -이회창 ●2004년 열린우리당 -노무현 2008년 한나라당 -이명박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2016년 새누리당 -박근혜 ●2017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이 보수정당은 끝이 안 좋게 끝나 이전 체제를 부정하곤 했다. 이승만 하야 후 망명. 박정희암살. 전두환 민주화운동으로 굴복. 이렇듯 보수는 세력만 대물림하고 자신은 새로운 세력으로 포장하는 등 정통성은 이어 받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상층부만 바뀌었을뿐 몽통은 그대로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을 기득권세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까만 점 표시가 정권이 바뀐 정당의 표시이다) 이승만은 임정 초대 대통령을 했으나 탄핵된 바 있었으니 그가 대통령에 또 나선 것을 보면 자리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미군정이 유지해 온 일제시절 친일파를 물리치지 않고 오히려 결탁하여 반민특위를 무산시킴으로서 친일파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내팽개치고 만다. 이승만집권시기는 친일세력의 집결지 한민당의 김성수가 사주로 있던 동아일보의 의도적인 왜곡보도로 촉발된 신탁통치반대 시위를 통해 친일파가 매국노에서 반공애국자로 변신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게 보수정권의 시작이다. 이들은 남한 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제주4.3항쟁을 빨갱이들의 반란으로 규정하고 영락교회 출신이 주축이 된 서북청년단이 전 경과 함께 무력진압의 중심에 선다. 이렇게 보수집단과 기독교가 결합되고 미국이 방임하는 사이 반공이 국시로 자리잡게 된다. 이승만시절 선거는 부정이 없던 시기가 한 번도 없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부정이 심했고 중임까지만 하던 걸 3선 연임선거를 하려 사사오입으로 4.19국민저항에 하야하고 망명한다. 민주당정권으로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만주군관학교와 일제사관학교 출신인 박정희가 주도하는 군사쿠테타가 벌어진다. 그는 민정이양을 약속하지만 스스로 대장 예편 후 민간인이라며 직접 5대 대선에 선거에 나선다. 당선후 그는 군관학교와 사관학교 출신들을 요직에 올린다. 일본군 출신으로 일본을 형으로 모셔야 할 만큼 일본과 한패였던 박정희. 1964년 미국의 요청으로 한일회담에 나서자 정권이 흔들릴 정도의 반발이 일어나고 그는 비상게엄을 선포하며 체제전복을 노렸다고 민혁당사건을 조작한다. 한일협정에서 독립축하금으로 3억달러를 받는데 필리핀이 14억달러를 받은 거에 비하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회담이었다. 군사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제야세력을 북한과 연계시켜 반정부조직사건인 간첩사건을 터뜨린다. 동백림사건. 통혁당사건. 제일동포형제간첩단사건. 2차 민혁당사건 등 조작사건을 만들어 위기를 돌파하지만 한일관계를 바로잡을 기회를 차버린다. 박정희하면 유신을 떠올릴 정도로 유신시대는 한국 정치사에 가장 엄혹하고 암울한 시기라고 한다. 유신반대가 연이어 일어나며 10.26으로 생을 마감한다. 민주화는 인민의 피를 먹고자란다는 제퍼슨의 말마따나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정말 많은 피를 흘렸다. 김대중대통령은 그래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튼튼하다며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한 바 있는데 지금 실재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선견지명이 대단하다고 그낀다. 전두환까지 설명하고 싶으나 박정희와 매 일반이고 반복적이어서 군사정권의 연장선으로 보고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보수의 집권시대는 엄격한 통제와 감시가 일반화 돼 온 독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자기와 사상이 다르다고 혐오와 테러를 일삼은 무리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더디게 만들었으며 반민특위의 무산과 유신독제로 이어지는 자유당과 공화당의 정권은 집권내내 친일과 자신의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을 볼보지 않고 희생시킨 바탕위에 서 있었으며 반공과 민중의 자유를 억압한 독재정권으로 미국과 일본의 비호없이는 경제도 살릴 수 없는 무능한 정권이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를 일으켰다고 하나 세지마보고서를 기반으로 경제의 대일종속을 가속화해 100억달러 달성을 통해 일본의 배를 불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는 노동자와 민중의 수탈과 억압을 통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반공을 부르짖는 게 반복되었을 뿐이다. 이는 한국보수가 결코 버릴 수 없는 정체성이라고 본다. 이승만이 부활시킨 친일파는 박정희의 충복이 되고 자한당의 스승으로 대접 받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앞에서 어이없는 말을 서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을 자극하면 안 된다며 일본 극우세력을 본받겠다는 자한당같은 수구세력인 한국보수가 이런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한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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