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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국 얼굴에 먹칠하는 게 외교냐?”

> 제1야당 입헌민주당 대표 에다노 유키오
> 고노 다로 외상 겨냥해 "물러나라" 요구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가 발끈했다. 그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을 겨냥해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8월 28일 라디오일본(ラジオ日本)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에다노 대표는 “외교는 상대방의 체면을 일정 정도 세워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도 고노 다로 외상이 너무 상대(한국)의 얼굴에 먹칠한 것은 지나쳤다”고 비판했다.


고노 외상은 ‘포스트 아베’로 꼽히고 있지만 최근 교체설이 나돌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자민당 총재를 지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다. 일본 헌정 사상 최장 기간(2003~2009) 동안 중의원 의장을 맡기도 했던 고노 요헤이는 1993년 관방장관 재직 당시,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고노 담화’를 발표했던 인물이다.


최근 고노 다로 외상의 행보를 보면 과거 그의 아버지가 걸었던 길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고노 다로 외상의 자질을 비판한 에다노 대표의 발언 전문(라디오일본)을 싣는다. 일본어가 가능한 독자는 읽어보기 바란다.




라디오일본(ラジオ日本)
いろいろ双方の立場があるとは思うが、(韓国が日本との軍事情報包括保護協定の)GSOMIAをやめた、というのは、明らかにやり過ぎだ。それに対し毅然(きぜん)とする日本政府の対応はありだと思う。

一方、ここに至る過程で、韓国大統領からは少し妥協の余地のあるようなことが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いわゆる「上から目線」、特に河野太郎外相の対応は韓国を追い込んだ。責任は大きい。

これ、外務大臣、代えるしかないですね。この日韓関係を何とかするには。外交ですから、相手の顔も一定程度、立てないとできないのに、あまりにも顔に泥を塗るようなことばかりを河野さんはやり過ぎですね。

筋が通っていることの主張は厳しくやるべきですよ。ですが、何も相手のプライドを傷つけるようなやり方でやるのは、明らかに外務大臣の外交の失敗でもあります。(ラジオ日本の番組で)



번역문
(여러 가지 쌍방의 입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종료한 것은 분명히 지나치다. 이에 의연한 일본 정부의 대책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런 과정에서 한국 대통령이 약간 타협의 여지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부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보였다. 특히 고노 외무상의 대응은 한국을 (지소미아 파기 결정으로) 내몰았다. 책임이 크다. 외무상을 교체할 수밖에 없다.


외교는 상대방의 체면을 일정 정도 세워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도 너무 상대(한국)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은 지나쳤다. 이치에 맞는 주장은 엄격하게 주장해야 하지만 상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방식은 그(고노 외상)의 외교가 분명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디터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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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들은 쌩쑈를 해서 안믿는다ᆢ그냥 지구상에서 사라져라ᆢ민폐다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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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베스트셀링카 렉서스도 안 팔린다
> 일본 자동차 8월 한국 판매 전년 대비 57% 하락 > 도요타 렉서스도 7월과 비교하면 39% 떨어져 > 수입차 판매량과 더불어 신규등록대수도 감소세 맥주, 의류, 자동차 등 일본 제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보이콧이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 영자 매체 재팬투데이(japantoday)는 4일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8월 한 달 한국에서 급격한 매출 감소를 기록했다”(Japanese automakers posted sharper sales falls in South Korea in Augus)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외교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일본 차량에 대한 소비자 불매 운동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했다. 재팬투데이에 따르면,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제조업체들은 지난 8월 한국에서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무려 57% 하락했다. 판매대수는 1398대로, 7월 감소세(17%)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구체적으로 도요타의 8월 판매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9% 감소한 542대, 혼다는 81% 급감한 238대를 기록했다. 도요타의 베스트셀링카 렉서스도 8월엔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재팬투데이는 “렉서스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일본 브랜드로, 8월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7.7% 증가했지만, 한 달 전인 7월과 비교하면 39% 감소한 603대에 그쳤다”고 했다. 수입차 판매와 더불어 신규등록대수도 감소세에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4일 보도자료를 내고 “8월 수입승용차 신규등록대수가 7월(1만9453대) 보다 6.8% 감소했으며, 2018년 8월의 1만9206대 보다 5.6% 감소한 1만8122대로 집계됐다”고 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윤대성 부회장은 “8월 수입 승용차 신규등록은 일부 브랜드의 물량부족 및 감소세로 전월보다 감소했다”라고 말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6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2019년에 달라지는 제도
최저임금 8,350원 인상 공무원 3만 3천명 최대 폭 증원 아빠육아휴직 보너스 상한액 250만원으로 인상 2019년은 기해년 황금돼지해이다. 풍요를 뜻하는 황금과 돼지의 만남으로 2019년은 풍성한 한 해를 맞이하게 된다. 풍요를 불러오는 2019년에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새롭게 바뀌는 것들을 알아봤다. 최저임금은 8,350원으로 인상 최저임금이 7,530원에서 10.9%인상 8,350원으로 인상된다. 1인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이 된다.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과 통화로 지급하는 복리후생비의 일정 비율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된다. 공무원 3만 3천명 최대 폭 증원 2019년에는 공무원 채용이 최대 폭으로 증원된다.국가직 공무원 2만1천명, 지방직 1만5천명으로 총 3만3천명이 증원될 예정이다. 이와 같은 증원 수치는 28년 만에 최대 규모다. 증원되는 직무로는 경찰, 군무원, 보건, 교원, 집배원, 검역원, 생활안전 등 다양한 직무가 증원 될 예정이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추진 만 18~34세 청년 중 졸업·중퇴 후 2년 이내인 미취업자,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4인가구 기준 553만원)를 대상으로 생애 1회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까지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지원한다. 취업 또는 창업 시 지급이 중단되나, 취업 후 3개월 근속할 경우 취업성공금 50만원을 지원한다. 단 마지막 달 취업 시 지원하지 않는다. 일자리안정자금 확대를 위해 5인 미만 사업장 지원금을 13만원에서 15만원으로 인상한다. 아빠육아휴직 보너스 상한액 250만원으로 인상 남성 육아휴직을 장려하고자 도입한 육아휴직급여 특례제도인 ‘아빠육아휴직 보너스제’는 월 상한액이 2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인상된다. 이전에 같은 자녀에 대해 두 번째 육아휴직을 시작했더라도 육아휴직 첫 3개월 기간이 2019년 1월 1일 이후에 걸쳐져 있다면 그 이후의 기간만큼은 인상된 급여 기준을 적용한다. 아동·보육 분야 2019년 1월부터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만 6세 미만 아동까지 월 10만원씩 받을 수 있게 됐다. 9월부터는 초등학교 입학 전인 만 7세까지의 아동도 아동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한부모가족의 자녀양육비는 월 13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되고, 지원 연령도 만 14세에서 만 18세 미만으로 확대된다. 청소년 한부모에게 지원되는 아동양육비는 기존 월 18만원에서 35만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난다. 달라지는 자동차 자동차 신규·이전 등록 시, 차종에 따라 지역개발채권을 구입해야 한다. 2019년 1월부터는 새 차에서 고장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을 때 교환 또는 환불 받을 수 있다. 이른바 ‘레몬법’이다. 차량 교환에는 조건이 있다. 출고 1년 이하, 주행거리 2만km 이내여야 한다. 파워트레인 및 조향, 제동장치 등 주요 부품은 같은 문제가 3회 이상 반복될 때, 그 외 일반 부품은 4회 이상 반복될 때 적용된다. 2019년 9월부터는 신규 등록 자가용 및 렌터카에 한해 새로운 자동차 번호판이 적용된다. 앞자리 숫자가 기존 두 자리에서 세 자리로 바뀔 예정이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도 강화된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3% 이상이면 면허정지, 0.08% 이상이면 면허취소 대상이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할 경우 1년~15년의 징역 또는 1,000만 원~3,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사망사고를 낸 경우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형량을 강화했다. 75세 이상 운전자의 적성검사 기간이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줄어든다. 이와 함께 고령운전자 맞춤형 교통안전 교육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내년부터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나오던 보조금이 사라진다. 작년까지 100만 원, 올해는 50만 원 지급됐지만 2019년에는 아예 없어진다. 전기자동차의 경우도 보조금이 축소된다. 정부보조금이 기존 1,200만 원에서 내년부터 900만 원으로 줄어든다. 대신 보조금 지원 대수가 기존 2만 대에서 3만3,000대로 늘어난다.
메모리2020, 'D램과 낸드의 결합'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수출 효자 상품 반도체...메모리 시장 우위 지속하는 것 중요 반도체는 국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대표 효자 상품이다. 이 중 80% 이상은 D램과 낸드 플래시 등의 메모리 반도체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경기가 나빠지고 수출도 감소하며, 한국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의 위기에 시스템 반도체 등 비메모리 영역을 넓혀야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비메모리 반도체의 수준을 올려야 되는 것은 맞지만, 전 세계 시장의 63%를 점유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준까지 올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은 D램과 낸드 플래시 메모리로 대표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90년대 후반부터 시장 우위를 꾸준히 지키고 있었다. 특히, D램에서는 국내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체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시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메모리 시장의 우위를 지속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 수십 년간 그래왔듯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지속하고 있으며, 지금은 ‘호황 다음의 불황’이라는 정상적인 사이클이라는 것이다. 업계는 앞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5G, 8K 영상보급, AR/VR 등으로 전 세계에 필요한 메모리 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즉, 현재의 반도체 위기론과는 별개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성장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YB와 BB의 초거대 데이터를 사용하는 세상에서는 현재의 메모리 기술과 제품만으로는 전송과 저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이런 기술은 지금 당장의 주력이 될 기술이며, 미래 ICT 시대의 메모리 반도체는 D램과 낸드플래시가 아닌 전혀 새로운 형태의 메모리 반도체가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휘발성의 D램을 대체하는 M램, P램, STT-M램 등의 비휘발성 메모리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램(RAM)은 컴퓨터의 주기억장치로, 롬과는 다르게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재 사용되는 램은 휘발성으로 전원이 차단되면 내용이 지워진다. D램은 기록된 내용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재충전이 필요하다. 커패시터(Capacitor)라는 수동부품의 충전상태로 정보를 기록한다. S램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전력소비도 많지 않아, CPU의 주기억장치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M램(Magnetic RAM)은 자기 저항 메모리라고 불리며, 메모리 셀에 자기적 극성이 고정됐거나, 변화가 가능한 극성의 두 가지 자기적 정보 저장 방법을 사용한다. STT-M램의 구조는 D램과 비슷하다. D램과 다른 점은 커패시터 대신 복잡한 자성층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반영구적인 수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P램은 PCM(Phase-Change Memory, 상변화메모리)이라고도 불리며, NAND 플래시를 대체할 메모리 기술로 기대된다. Fe램은 강유전체램(Ferroelectric RAM)으로 FRA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D램의 빠른 동작 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커패시터를 강유전체(ferroelec-tric)로 이용하는 구조다. M램, P램, Fe램 등은 전원이 꺼져도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낸드플래시 메모리와 같이 정보를 저장하는 스토리지(Storage)의 역할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선구자들⑧/ 100엔숍 빅4
... ... 불황과 함께 찾아온 100엔숍 일본 아이치현 가스가이(春日井)시에 일본 최초로 100엔 균일 점포가 등장한 건 1985년이다. 100엔숍이라고 이름 붙인 이 점포는 불황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후 일본은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를 맞으면서 헤이세이 불황(平成不況)이라는 이른바 ‘잃어 버린 10년’(失われた10年)의 터널 속으로 빠져 들었다. 구체적으로 버블 붕괴는 주식과 토지의 거품이 빠진 걸 말한다. 이에 일본은 거품 경제의 파국을 맞으며 긴 디플레이션 불황에 빠져 들었다. 그러면서 시장의 소비 패턴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가 저하되고, 저렴한 상품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한 아이템이 100엔숍이었다. 다이소-세리아-캔두-왓츠 '100엔숍 4인방' 다이소산교(大創産業). 100엔숍의 대표적 브랜드인 다이소(ダイソー)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매출 규모로는 다이소 다음으로 세리아(セリア: seria), 캔두(キャンドゥ: Can☆Do), 왓츠(ワッツ:watts)가 있다. 다이소산교를 창업한 야노 히로다케(矢野博丈, 76) 회장은 일본 100엔숍의 선구자 격이다.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1943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야노 히로다케의 본명은 쿠리하라 고로(栗原五郎). 아버지는 의사였다. 전시(戰時)에 중국 병원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는 일본이 패전하자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인 히로시마현으로 돌아왔다. 의사 집안치고는 형편이 좋지 않았다. 야노 히로다케 회장은 “의사의 가정이라면 부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버지는 가난한 환자에겐 치료비를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며 “덕분에 우리 집은 늘 가난했다”고 말했다. (2018년 4월 시사매체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 야노 히로다케는 고교 시절 복싱에 심취했다. 고3 때인 1964년에는 도쿄 올림픽 밴텀급 예비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복싱 탓에 공부와는 멀어졌다고 한다. 대학은 쥬오대(中央大) 토목공학과 야간부로 진학했다. 이름과 성 다 바꾼 다이소산교 창업자 결혼 후 처가에서 경영하던 양어장 사업을 ‘말아먹은’ 야노 히로다케는 도쿄로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 백과사전 판매원으로 뛰었지만 영업사원 30명 중 실적은 꼴찌. “운은 없지만 능력은 있다”고 믿었던 야노 히로다케가 야노상점(矢野商店)이라는 이동 트럭 잡화점을 연 것은 1972년이다. 야노(矢野)는 아내의 성이다. 그는 장사를 위해 쿠리하라(栗原)라는 성을 야노로 바꿔 버렸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뭔가 스스로 장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쿠리하라’보다는 두 음절의 심플한 야노 쪽이 기억하기 쉽고, 친해지기 쉽다고 생각했다.> (원문: 何か自分で商売すると決めていたので、「クリハラ」より2音でシンプルな「ヤノ」のほうが覚えてもらいやすいし、親しみやすいと考えたからだ。) 다이소(大創)로 회사 이름을 지은 이유 아버지 또한 그의 그런 결정을 존중해 줬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술 더 떴다. 이름까지 바꿔 버렸다. 그는 “나중에 나는 고로라는 이름도 바꾸어 버렸다”(後に私は、「五郎」という名前も変えてしまう)며 “‘고로’ ‘고로 짱’에는 경영자로서의 위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명가가 히로다케(博丈)로 지어 주었다”(「ゴロー」「ゴロちゃん」では経営者として威厳に欠けると思ったからだ。姓名判断の先生に「博丈」と付けてもらった)고 했다. 야노상점을 운영하던 중, ‘싼 게 비지떡’(安物買いの銭失い)이라는 불만이 들려왔다. 체계화된 회사 시스템이 필요했다. 야노 히로다케는 1977년 가게를 법인화했다. 그럴듯한 회사 이름도 필요했다. 100엔짜리 장사로는 대기업이 된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부부의 꿈은 컸다. ‘연매출 1억 회사를 만들자’(年商1億の会社を作る)는 목표를 세웠다. ‘언젠가 큰 회사(大きな)를 만들고 싶다’(創りたい)는 생각을 담아 대창(大創)이라고 지었다. 대창을 일본어로 읽으면 '다이소'다. 일본 전역에 3270개 매장 보유한 비상장사 1987년 12월 100엔숍 매장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다이소는 현재 일본 전역에 3270개의 매장을 갖고 있으며, 취급 상품 수는 7만개에 달한다. 매출액은 4548억엔(4조 9832억원)을 웃돈다. 후발 주자인 세리아, 캔두, 왓츠가 상장사인 것과는 달리, 다이소산교는 비상장사의 현금 부자로 알려져 있다. 야노 히로다케는 2018년 3월, 사장직을 둘째 아들에게 물려주고 회장직으로 물러났다. 장남이 경영을 이어받지 않은 이유는 대학 의대 교수이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일본 다이소는 한국 다이소와는 별개의 회사다. 한국 다이소를 운영하는 아성산업은 2001년 다이소산교의 지분을 일부 투자 받아 다이소아성산업으로 회사 명칭을 바꾸고 간판도 다이소로 바꿔 달았다.) 2위 기업 세리아(seria)...이름 의미는 '성실함' 일본 100엔숍 매출 규모 2위는 세리아(セリア: seria)다. 기후현에 본사를 두고 있고, 1985년 설립됐다. ㈜산양에이전시(山洋エージェンシー)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회사는 2003년 4월 지금의 ㈜세리아(セリア)로 상호 변경했다. 회사의 홈페이지에서 “세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마지메나’(まじめな)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마지메나’는 성실함을 의미한다. 창업자는 가와이 히로미츠(河合宏光, 71). 고교 졸업 후 가업인 세탁소를 경영하다 1985년 100엔숍을 오픈했다. 세리아는 현재 일본 전역에 1506개 점포(취급 상품수 2만 개)를 갖고 있고, 매출은 1591억엔(1조 7432억원)에 달한다. 세리아의 간판에는 영어 세리아 글자 앞에 ‘컬러 더 데이즈’(Color the days)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일상을 물들이자’라는 이 컨셉은 100엔숍 답지 않은 100엔숍 추구를 목적으로 내걸었다. ᐅ상품수를 줄이고 ᐅ실용성 위주 제품을 판매하며 ᐅ잡동사니가 널부러진 이미지를 불식, 매장의 분위기를 살리려는 의도다. 3위 기업 캔두는 ‘감동’(칸도우)에서 따와 100엔숍 3위 기업인 캔두(キャンドゥ: Can☆Do)는 도쿄를 기반으로, 1993년 설립됐다. 사명은 ‘100엔으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경영 취지는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 손님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이다. 회사 이름 캔두(Can☆Do)는 아이 캔 두잇(I can do it)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경영 취지 속 단어인 ‘감동’(感動)과 관련이 있다. 감동을 일본어로 칸도우(カンドウ)라고 하는데, 이를 캔두(キャンドゥ: Can☆Do)로 연결시킨 것이다. 캔두는 다이소와 세리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 전역에 1000여 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매출액은 707억엔(7746억원). 오사카에서 가장 늦게 출발한 왓츠(watts) 가장 늦게 뛰어난 후발 주자 왓츠(ワッツ:watts)는 오사카에서 1995년 출발했다. 매장은 1160여 곳, 매출은 494억엔(5412억원) 규모다. 취급 상품 수는 세리아, 캔두와 비슷한 2만 개 수준이다. 100엔숍이 등장한지 30년, 매장들도 변신을 꾀한지 오래다. 100엔 균일이라는 간판을 떼거나, ‘탈100엔’을 추구하고 있다. 싼 값으로는 안된다며 300엔짜리 제품을 판매하고, 매장의 깔끔한 인상을 주는 등 신선함으로 승부하고 있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수소 충전소'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 수소차...규제 샌드박스 1호 '수소 충전소' 효성 이끌 신사업 될까 규제 샌드박스 1호로 수소충전소가 선정될 가능성 높아 정부 2022년까지 수소충전소 310곳까지 늘리겠다고 발표 그동안 전기차에 밀려 찬밥 신세였던 수소차가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부가 수소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동안 수소 산업을 억제했던 규제도 사라질 예정이다. 다만 아직까지 수소차는 전기차에 밀려 별다른 빛을 보지 못했다. 현재 전국에 설치된 수소충전소는 15곳에 불과하다. 전기차 충전소가 약 4000곳인 점을 생각한다면 아직은 미비한 수준이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일 신년 기자간담회부터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까지 수소차 6만7000대, 수소버스 2000대 등을 보급하고, 수소충전소도 310곳까지 늘리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수소 관련 산업을 인공지능, 데이터와 함께 3대 기반 경제로 선정하겠다고 했다. 예산도 총 1조5000억원 지원할 방침이다. 현재 서울 시내에 수소충전소는 양재와 상암 2곳이다. 수소충전소는 고압가스를 이용하는만큼 폭발 위험이 있다. 때문에 서울시는 조례로 입지제한과 거리 제한 등을 둔 상태다. 업계는 정부가 현재 수소충전소에 부과된 규제를 풀어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로 지난해 논의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서다. 이같은 소식을 반기는 건 효성그룹과 이엠코리아다. 국내 수소충전소 시장은 사실상 효성과 이엠코리아가 독점하고 있다. 그동안 사업자인 현대자동차가 입찰을 통해 수주를 주는 방식으로 건설됐다. 국내 수소충전소 15곳 중 7곳을 효성이, 나머지를 이엠코리아가 구축했다. 이중 효성은 700bar급 충전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그간 수소충전소의 단점으로 지적받던 긴 충전시간을 3분대로 줄였다. 이외에도 지난 50년간 중공업 분야에서 쌓아온 압축기, 회전기 등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효성관계자는 "입찰을 따로 준비하기 보다는, 그동안 축적해둔 기술을 토대로 수소충전소 시장 확장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메모리 반도체 진행 방향은?
비메모리 진출, 삼성 '적극적'…SK하이닉스 '소극적' 전 세계 비메모리 시장 메모리 시장의 2.3배 국내 메모리 대 비메모리, 9:1 비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19년 메모리 반도체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며, 업계에서는 두 기업이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계획을 밝혔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비메모리 산업에 대한 특별한 계획은 없으며,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1분기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20~30%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상반기 실적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과 2018년의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대응하기 위해 업체들이 반도체 공급량을 증가시켰고, 사이클이 끝나자 악성 재고 등으로 메모리 반도체 단가가 떨어진 것이 실적하락까지 연결된다는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호황에서 불황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때마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기형적인 구조를 지적하며,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국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 중심 기업들도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에 도전했다.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43% 정도 밖에 안된다. 2017년 기준 메모리 시장의 규모는 1240억 달러, 비메모리 시장 규모는 2882억 달러로 집계됐다. 한국은 메모리 시장의 58%를 점유하고 있지만, 비메모리 시장에서는 3% 수준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비메모리 적극 투자…SK하이닉스는 ‘글쎄?’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성전자는 긍정적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육성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은 비메모리 분야인 파운드리 사업과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는 ▲EUV(Extreme Ultraviolet, 극자외선) 장비를 이용한 7나노(nm) 미세공정 파운드리 사업 확대 ▲모바일AP·이미지센서 경쟁력 강화 ▲차량용 반도체 개발 등을 진행한다. SK하이닉스는 대부분의 사업이 메모리 분야에 집중하고 있으며, CMOS 등 비메모리 반도체를 일부 생산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이밖에 SK하이닉스의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이 미국 반도체 설계·제조업체 사이프레스와 합작 업체를 다음 달 출범할 것으로 알려졌다. http://www.ki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08157
태풍 피난처 제공한 재일동포들…日시민들 "정부, 차별 멈춰라"
지난 3월 일본 후쿠오카(福岡)지법 고쿠라(小倉)지부가 규슈(九州)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 68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750만엔(약 7천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자 법원 주변에 있던 이 학교의 여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태풍 '하기비스'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일본에서 조선학교들이 피난처를 제공해 일본 시민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조선학교의 선행은 조선학교 무상교육 배제 등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이 심화된 상황에서 이루어져 더 큰 의미가 있다. 지난 12일 도쿄 아다치구에 있는 조선학교 '도쿄 제4초중급학교'는 건물을 일본 시민들이 피난처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뿐만 아니라 피난민들을 위해 물과 식량 등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본 시민들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고마움을 전하며,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의 한 네티즌(트위터 아이디: Do*****)은 "왠지 눈물이 났다. 이렇게 지역을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왜 참정권이 없는 걸까. 왜 조선학교는 고등학교 무상화 대상에서 배제되어야 하나. 너무 불합리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네티즌(트위터 아이디: 4z*****)도 "(재일 조선인들은) 일본에 살고, 납세도 하고, 지역 사회를 위해 적극 활동한다. 한 마디로 좋은 이웃이다. 그들을 교육 등에서 차별하면 더 나은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 시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재일 조선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은 심화하는 모양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학생 1명당 연간 12만~24만엔(약 134만6천~269만3천원)의 취학지원금을 학교에 지원하는 '고교 수업료 무상화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당시에는 조선학교도 무상화 대상으로 검토됐으나, 제2차 아베 신조 정권이 출범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결국 2013년 2월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령이 확정됐다. 이후 조선학교 졸업생들은 도쿄, 나고야, 히로시마,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 전역 5곳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를 비롯한 일본 법원들은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고교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문제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외에도 재일동포들은 지방참정권과 고위공무원 임용권을 갖지 못하는 등 일본 사회에서 극심한 차별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유아 교육·보육 시설에 대한 무상화 정책에서도 조선학교가 운영하는 유치원을 제외해 재일동포들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아베 "한일관계 복원 계기, 한국이 만들어야" 주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사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국가간 약속'을 준수할 것을 한국 정부에 거듭 촉구하면서 한국이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복원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NHK 등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8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국가간 약속을 어기는 행위를 계속하는 한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를 묻는 세코 히로시게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이며 북한 문제 등에서 한일, 한미일의 협력이 중요하다"라고 전제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한일 관계의 근본을 이루는 한일청구권협정의 위반 상태를 방치하는 등 신뢰관계를 해치는 행위를 계속하는 한국에 대해 우선은 국제법에 근거해 국가와 국가간의 약속을 준수함으로써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려 놓는 계기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과 오후에 최소 2차례 이상 같은 취지의 답변을 되풀이했으며, 앞서 지난 4일 임시국회 개회식에서도 이같은 내용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판결이 나온 이후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내세워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전날 동해 대화퇴 어장에서 발생한 북한 어선과 일본 수산청 단속선간의 충돌 사태와 관련해서는 북한 어선의 불법조업 행위가 확인되지 않아 구조선원들의 신병 구속 등 강제 조치를 하지 않고 주변에 있던 북한 어선에 신병을 인계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또한 조건을 붙이지 않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변함없이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일본의 선구자들⑨/ 철도의 아버지
... 1872년 10월 14일 일본 첫 철도 개통 10월 14일은 일본 철도의 날이다. 도쿄 신바시(新橋)와 요코하마(横浜)를 잇는 일본 최초의 철도 개통(1872년 10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1825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철도가 개통된 이래 일본에 철도가 들어서기까지는 반세기가 걸렸다. ‘맛봬기’였지만 그 이전에 일본인들은 철도를 이미 구경했다. 1865년 글로버 저택(Glover's house)으로 유명한 영국 무역상 토마스 글로버(Thomas Blake Glover)가 나가사키 외국인 거류지 해안가에 약 600미터의 선로를 깔고 영국제 증기 기관차와 객차 2량을 선보였다. 영업을 위한 운전은 아니었지만, 일본에서 최초로 철도가 달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인근에는 철도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일본 철도의 탄생은 한 남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JR도쿄역 광장에는 일본 최초의 철도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주인공은 ‘일본 철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 1843~1910)다. 원래 동상은 2007년 건립됐다가 도쿄 역사(驛舍) 복원 공사로 철거됐다. 그러다 10년 만인 2017년 그의 고향(야마구치현 하기시) 사람들의 끈질긴 청원으로 재건립 됐다. 그에 앞서 2016년 10월 14일 야마구치현 하기(萩)시 역 광장에도 이노우에 마사루의 동상이 들어섰다. 도쿄역과 하기시역 동상의 차이점은 도쿄는 노년 시절, 하기시는 젊은 시절을 형상화 했다는 것. 일본의 선구자들 시리즈 9회는 이노우에 마사루 편이다. 막부 말기 영국 밀항 ‘조슈 파이브’ 중 한 명 막부 말기인 1863년, 조슈(長州: 지금의 야마구치)번의 다섯 사내가 유럽의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영국 밀항선에 몸을 실었다. 일본 역사는 그들을 ‘조슈 파이브’라고 부른다. 다섯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훗날 일본근대의 정치와 산업을 바꾸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면면은 이렇다. ①우리가 잘 아는 일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②초대 외무대신이 되는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③조폐 국장에 기용되면서 ‘조폐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는 엔도 긴스케(遠藤謹助) ④ 공부경(工部卿)자리에 오르면서 ‘일본 공학의 아버지’로 지칭되는 야마오 요우조(山尾庸三). ⑤ 마지막으로 ‘일본 철도의 아버지’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다. 이중 이토 히로부미와 이노우에 가오루는 다음 해 죠수번의 정치 상황이 급변하면서 곧바로 귀국했다. 엔도 긴스케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중도 귀국했다. 반면, 이노우에 마사루와 야마오 요우조는 끝까지 남아 유학 생활을 마무리 했다. 영국 유학 후 철도국장으로 철도 개통 총지휘 이노우에 마사루에 좀 더 집중해 보자. 그는 런던 대학의 윌리엄슨 교수 집에 하숙하면서 공부했다. 광산과 철도 기술을 집중적으로 배운 후, 밀항 5년 만인 1868년 귀국했다. 이노우에 마사루는 이듬해 메이지 신정부에 등용, 철도 사업과 관련된 영일 회견에서 통역을 맡으면서 철도인의 첫발을 내디뎠다. 철도 간부로 지명, 1872년엔 일본 최초의 신바시~요코하마 철도 개통을 총지휘했다. 당시 일본 철도는 외국 초빙 기술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1877년 철도국장에 기용된 이노우에 마사루는 오사카에 일본인기술자양성소를 세웠다. 이후 일본의 독자적인 힘으로 교토(京都)~오쓰(大津) 구간이 개통됐다. 1889년 신바시~고베 구간이 개통됐고, 그 이듬해인 1890년 이노우에 마사루는 철도청 장관으로 승진했다. 그 무렵 자본가들이 앞다퉈 사철(사설철도) 건설에 눈독을 들였다. 그걸 본 이노우에 마사루는 “자본가들은 이익에만 목적이 있다. 철도는 국가가 경영해야 한다”며 자본가들과 격하게 대립했다. 이런 일이 화근이 되어 그는 1893년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퇴직 후 유럽 철도 시찰하며 옛 은인 다시 찾아 퇴직 7년 후인 1910년. 이노우에 마사루는 철도원 총재로부터 유럽 철도시찰 의뢰를 받았다. 남만주 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 유럽에 도착한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옛 은인을 찾는 일. 영국 유학 시절 몸을 의탁했던 윌리엄슨 교수의 집을 방문했다. 세상을 떠난 윌리엄슨 대신 그 아내와 40년 만에 재회했다. 그 기쁨도 잠시였다. 시찰을 하고 귀국하던 도중, 이노우에 마사루는 병으로 쓰러졌다. 살아서는 일본 땅을 밟지 못했다. 1910년 8월 2일의 일이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3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약칭
... <사진= 얼굴 사진은 닛산 창업주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 닛산 자동차는 도요타, 혼다차와 다르게 창업자의 이름을 따지 않았다. 지금의 브랜드명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라는 회사의 약칭이다.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는 누구? 닛산(日産)자동차는 1933년 12월 도바타주물(戶畑鑄物)을 이끌던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1880~1967)라는 이가 설립했다. 이때의 이름은 ‘자동차제조주식회사’이다. 1934년 6월, 통칭 닛산으로 불리는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전액 출자를 받아 회사 이름을 닛산자동차주식회사로 바꿨다. 아유카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쿄 제국대학 공과 대학을 나온 그는 신분을 속이고 직공으로 일했다. 야마구치 현 야마구치시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평범하지 않다. 그의 외할머니가 유력 정치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1836-1915, 조선 주재 공사 역임)의 누나다. 아유카와는 1910년 이노우에의 지원을 받아 도바타주물(현 히타치 금속)을 설립했다. 아유카와는 1928년 ‘구하라 광업’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닛폰산교’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아유카와는 닛폰산교를 중심으로 일본광업, 히타치제작소, 일본수산, 닛산자동차를 거느렸다. 신흥 재벌 닛산콘체른(Konzern)이었다. 닛산콘체른의 중심인 닛폰산교는 1937년 만주국으로 이주해서 만주중공업개발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과 만주에 걸쳐 콘체른을 형성하려 했다. 당시 아유카와를 만주를 불러들인 이는 현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56-57대 총리)였다. 일본 상공성의 유능한 관료였던 기시는 만주국의 산업차장으로 발탁돼 1936년 부임했다. 패전으로 닛산콘체른 해체...닛산자동차 독립 당시 만주에서 일했던 기시 노부스케, 아유카와 요시스케, 남만주철도(만철) 사장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세 사람을 ‘만주의 3스케’로 부른다. 아유카와의 닛산콘체른 야망은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좌절됐다. 전후 연합국에 의해 콘체른이 해체되면서 닛산자동차가 독립했다. 이후 닛산은 1966년 스포츠카를 만들던 프린스자동차와 합병하면서 기술력을 한층 더 높였다. ‘판매의 도요타, 기술의 닛산’이라는 말은 이런 이유 때문에 나왔다. 1966년 닛산은 써니...도요타는 코롤라 출시 닛산은 1966년 2월 기존 ‘블루버드’를 대체할 신형 대중차 써니(Sunny)를 출시했다. 그해 10월 도요타의 코롤라(Corolla)도 세상에 나왔다. 코롤라는 라틴어로 ‘화관’(花冠)을 뜻한다. 당시 도요타는 라이벌 닛산의 써니를 의식, 코롤라의 배기량을 갑자기 바꾸면서 신형 엔진 코드에 Z자를 새겨 넣었다. Z는 러일전쟁에서 연합 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가 발틱 함대를 격파했을 때 걸었던 깃발을 상징한다. 도요타의 ‘타도 닛산’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자동차공업회(JAMA:Japan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는 도요타와 닛산이 경쟁을 벌이던 1966년 그해를 일본 ‘마이 카’ 시대의 원년(The first year of My Car)이라고 표현한다. 아유카와는 태평양 전쟁 이후 어떻게 됐을까. 그는 닛산그룹 각사의 출자를 받아 ‘중소기업 조성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중소기업 진흥에 힘썼다. 말년까지 정치인(참의원)으로 살다 1967년 사망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5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발행인 칼럼/ 한일관계, ‘알까기’가 되어선 안된다
... 문 대통령 태풍 피해 일본에 위로 전문 문재인 대통령은 바둑 아마 4단의 실력을 갖춘 애기가(愛棋家)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이나 외교 관계는 ‘바둑판 놀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 문 대통령이 실타래처럼 얽힌 한일 갈등과 관련해 묘수(妙手)에 가까운 작은 해답을 내놓았다. 태풍(하기비스) 피해를 당한 일본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아베 총리에게 위로 전문을 보낸 것. 문 대통령은 양국의 껄끄러운 감정에도 불구하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일본 태풍 희생자들에게 전문을 보냈다. 바둑으로 보면, 정석(定石)에 해당한다. 14일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일본 정부와 국민이 합심해 피해를 조기에 수습하고, 피해를 본 많은 일본 국민이 하루속히 평온한 일상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는 문 대통령의 전문 내용을 공개했다. 위로 전문은 이날 오후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 측에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언론들은 문 대통령의 위로 전문을 발빠르게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며 그 내용을 전했다. 하지만 산케이는 위로 전문에 대한 해석을 담지는 않았다. 사실 관계만 드라이하게 전한 것이다. 이낙연 총리 일왕 즉위식 참석도 좋은 기회 하루 전인 14일 요미우리신문은 이낙연 총리의 일왕 즉위식 참석 계획(22~24일)을 전했다. 이 신문은 한국 관계자를 인용 “이낙연 총리가 일본 방문 중에 아베 총리와 회담을 갖고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요미우리는 “이 총리는 한국신문의 도쿄특파원 경력을 가진 지일파로, 악화된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 대화할 의향을 갖고 있어 보인다”고 했다. 팩트 이외에 의미 해석까지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태풍 피해 위로 전문과 이낙연 총리의 일왕 즉위식 참석. 바둑으로 치자면, 이 2가지 사안은 긍적적인 행마(行馬)인 셈이다. 상호 경제보복, 지소미아(GSOMIA) 폐기라는 악수(惡手)와 무리수(無理手)가 뒤엉켜 복잡해진 바둑판의 행마 싸움에 실낱 같은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바둑 위기십결에 나오는 동수상응(動須相應) 위기 해결에 종종 등장하는 바둑 10계명 ‘위기십결’(圍棋十訣)에는 동수상응(動須相應)이라는 말이 있다. ‘바둑돌들이 서로 살고, 호응하도록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한일 관계에서 바둑돌을 쥔 사람은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두 사람이 내놓는 행마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해답을 찾아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위로 전문과 일왕 즉위식 참석이라는 2가지 행마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낙연 총리가 아베 총리와 만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다면, 정상 회담 가능성도 점쳐 볼 수 있다. 물론 속단하긴 이르다. 두 행마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최종 포석(布石)으로 작용해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의 패착(敗着)은 없어야 한다. 양국 정상이 바둑돌을 놓는 심정으로 정상회담을 갖길 바란다. 승부수는 그때 던져도 늦지 않다. 한일 관계는 서로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알까기’가 되어선 안된다. 그럼? 서로를 건강하게 견제하고 경쟁하는 ‘정석 바둑’이어야 한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3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