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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덕후들이 만든 클래식 음악 입문 앨범들.jpg

다가오는 가을,,,
심신의 안정을 주는
클래식 한곡 감상하시죠
뭘 들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추천 앨범 리스트



작곡가별 입문 앨범


중세시대

(500 - 1400)


르네상스

(1400 - 1600)



바로크

(1600 - 1750)



고전파

(1750 - 1830)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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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검색하면 너무 많은 것들이 나와 선택하기 힘들었는데 추천해주신것부터 들어봐야겠네요.^^~
우앗ㅋㅋㅋ도전해보고파도 정리가 안되서 선뜻 도전 못했는데ㅎㅎ 감사합니다♡
좋은 컬렉션이네요👍🏻👍🏻👍🏻👍🏻👍🏻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루간스키 연주도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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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먼저 지진 대처 체계가 잡힌 나라
놀랍게도 대지진이랑은 별 상관 없어보이는 포르투갈임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도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이 맞물리는 곳이라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임 각설하고 1755년 11월 1일 9시 40분경 포르투갈의 수도였던 리스본에 세계 역사를 뒤바꾼 지진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1755 리스본 대지진 지진의 진도만 8.5~9 정도로 추측되며  포르투갈은 물론 인접한 에스파냐, 지중해 건너 모로코까지 엄청난 피해를 줬고 멀리는 러시아와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까지도 지진이 감지되고 해일이 일었다고 함 지진이 발생한 11월 1일은 만성절로 모든 성인의 대축날이었기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성당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지진이 발생하면서 성당 건물이 무너져 내려 수많은 사람이 매몰되었고, 매몰된 상태에서 생존한 사람들도 곧 성당 내부를 밝힐때 쓰던 촛불로 인한 화재로 사망했음.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붕괴와 화재로부터 안전해보이는 탁 트인 해안가로 도망쳤지만 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바다로 쓸려가며 최소 3만명에서 많게는 10만명의 인구가 이 지진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함 당시 리스본의 인구가 20만명이었던걸 감안하면 못해도 4분의 1, 많게는 절반의 인구가 하루아침에 사망하게 되버린 것 때문에 목조 건물이 많았던 리스본은 그대로 불타고 쓸려나가서 도시의 85%가 완전히 없어져버렸고  석조건물의 일부만이 남았는데 사진의 카르모 수도원이 그 예 지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없어지고 가장 튼튼한 뼈대 일부만 남아 지진의 참혹함을 알려주고 있음 하지만 거대한 본진이 발생한 이후에도 거대한 여진이 몇번이고 쓰나미를 이끌고 들이닥쳤고 5일 밤낮으로 화재가 발생해  도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리스본은 폐허도 아닌 잿가루만 남은 잿더미가 되버림 근데 이 지진이 왜 포르투갈 뿐만 아닌 세계의 역사를 바꿨냐 말했듯이 만성절에 발생한 사고기 때문... 저땐 아직 기독교적 사상이 유럽 전체에 널리 퍼져있어서 하느님께서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을 굽어살핀다... 신앙심이 깊을 수록 행복한 삶을 산다가 가톨릭 국가의 기본적인 사상이었는데 유럽에서도 가장 신앙심이 깊다고 알려진 포르투갈에서도 가장 신앙심이 깊은 도시인 리스본에서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미사를 드리러 온 가톨릭 교도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점 때문에 가톨릭 국가 뿐만 아니라 전 기독교 국가가 크게 충격을 받고 염세주의로 돌아서는 계기가 됨 재밌게도 언덕에 위치한 알파마 지구는 피해가 적었는데, 바위 언덕 위에 위치해있어 지진으로부터 안전했고 고지대였기 때문에 쓰나미로도 안전했을뿐더러 당시 알파마 지구는 집창촌과 빈민가였기에 높은 건물이 없어 매몰과 화재로부터도 안전했기 때문. 근데 역설적으로 가장 타락했다고 여겨지는 매춘부와 잡배들의 피해가 가장 적었기 때문에 교황도 이 사건에 대해서 뭐라 말하지 못했고, 리스본 대지진은 계몽주의가 폭발적으로 퍼지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됨 어쨌거나 재해는 발생헀고 이제 그 뒷수습을 해야하는데  다행히 왕이었던 주제 1세와 왕가, 귀족들은 공주 한명의 부탁으로 해돋이를 보러 리스본을 떠나있어 안전했는데, 지진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온 주제 1세의 앞에 펼쳐진건 불타는 잿더미가 된 리스본과 각종 범죄가 판치는 생지옥 그 자체였음 이 상황에서 주제 1세는 신의 한 수를 두었는데 가장 신뢰하는 신하이자 수상이었던 폼발 후작에게 리스본 사태에 대한 모든 전권을 넘긴 것 폼발 후작은 전권을 이양받음과 동시에 범죄를 즉결 처분하고 지방의 군인들을 불러들여 치안을 유지시켰고 대주교의 허가를 받아내 시신들을 수습하고 리스본 바깥으로 처리해 전염병의 창궐을 막아냄 그리고 이 상황에서 귀족들은 리스본의 시민들에게 식사와 깨끗한 물, 잠자리를 제공해주어 동요를 진정시키고 살아남은 시민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리스본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왔음 그리고 지진이 발생한지 한달이 지났을때 왕가는 리스본을 재건할때 여러가지 방안 중 도시의 폐허를 싹 치우고 완전히 새로 짓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이것도 신의 한 수로 새로 짓는 리스본은 도로를 넓게 깔아서 화재가 크게 번지는 것을 막았고  4층 이상 건물 짓는것을 금지함과 동시에 가이올라라는 지진에 안전한 새로운 공법을 도입해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는것을 지연시켜 시민들이 빨리 대피할 수 있게끔 했음. 그리고 다음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지진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도 실시했는데 이게 지진에 대한 세계 최초의 객관적 설문 조사였다고함 1700년대에 일어난 일이지만 굉장히 현대적으로 대책을 세워서 일을 처리했던 것 근데 안타까운건 당시 국왕이었던 주제 1세는 이 지진에 대한 공포심과 국민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폐쇄공포증에 걸려 아주다 언덕에 천막과 정자를 세우고 그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고함 지금 리스본에 있는 궁전이 재건된건 주제 1세의 딸이자 다음 국왕이었던 마리아 1세때의 일 주제 1세가 평생을 지냈던 천막이 있던 자리 위에 궁궐을 지어서 이름도 아주다 궁전임
50억 유혹을 뿌리치고 독일 수도원이 한국으로 반환한 화첩
겸재 정선 화첩 - 금강내산전도 한국 문화를 좋아했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는 1925년 한국에서 겸재 정선 화첩을 수집해 독일로 가져갔음 이후 독일의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었음 근데 이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은 우리나라의 성 베니딕도회 왜관 수도원과 형제 같은 우호 관계였는데.. 선지훈 신부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화첩이 발견된 후, 성 베니딕도회 왜관 소속의 선지훈 신부가 이 화첩을 한국으로 찾아오겠다고 마음 먹음 그리고 이 선지훈 신부에겐 절친한 친구인 예레미아스 슈뢰더 신부가 있었는데.. 왼쪽 예레미아스 슈뢰더 신부 예레미아스 슈뢰더 신부가 오틸리엔 수도원의 원장이 됨! 선지훈 신부는 때가 왔다 싶어서 원장을 설득하고 반환을 요청했음! 뉴욕 크리스티 경매회사 근데 이 타이밍에 화첩을 극찬하는 논문이 미국에서 발표되면서 화첩이 국제적으로 유명해짐..... 크리스티 경매회사는 50억원대는 나올 거 같으니 경매에 붙여보라고 몇 번이나 권유함 오틸리엔 수도원 하지만 수도원 장로회는 '한국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화유산을 돈으로 거래할 수 없다' 라고 경매를 거부하고 만장일치로 한국 반환을 결정함! 겸재 정선 화첩 - 고산방학도 우리 꺼니까 당연히 돌려줘야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님 약탈 문화재는 당연히 돌려줘야하지만, 이 화첩은 베버 신부가 합법적으로 수집한 것이기 때문에 수도원은 화첩을 돌려줘야할 의무가 없음 화첩을 돌려준 건 오틸리엔 수도원의 큰 결단임 선지훈 신부 선지훈 신부는 문화재 환수의 공을 인정 받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음 이 일은 바람직한 문화재 환수 사례로 손꼽힘 오틸리엔 수도원은 이후에도 100년 전 한국에서 채집한 희귀한 식물 표본, 양봉요지, 면피갑 등 한국 문화재를 꾸준히 한국으로 반환하고 있음 끝
같이 남극 탐험하는 사람이 금방 돌아 온댔는데 폭풍으로 못온대
미국 남극 기지 8마리의 썰매개를 관리하는 제리 썰매개들은 똑똑함 그러던 중 매클레런 박사가 남극 기지에 옴 매클레런 박사는 운석 채집을 위해 남극에 왔는데... 당초 탐험할거라던 지역과 다른 지역을 탐험하신다고 함 박사님도 사정은 있었지만... 제리는 소장님게 이번 시즌엔 멜버른에 안가서 불안하다 함 결국 소장님 지시를 따르는 제리 박사님과 열심히 멜버른으로 가는데 ...도착 하자 마자 폭풍 오니까 철수하라 함 박사님은 간절히 제리에게 부탁하고 제리는 반나절만 조사하자 함 그리고 기적적으로 반나절만에 운석 발견 싱글벙글 기지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멈춤 한마리가 다친거 같아서 확인하러 간 사이.. 박사님은 기지에 어디까지 가고 있다고 통신하시다가 절벽에서 미끄러지시고 간신히 구출해서 기지에 데려옴 제리도 손에 동상을 입은 상태지만 개들도 함께 가지 않으면 안간다고 함 결국 다른 직원이 내가 금방 다시 돌아와서 개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한 뒤에야 가겠다고 함 개들이 자기 없는 사이 폭풍 피한다고 다른데 갔다가 못 찾거나 못 돌아오고 그럴까봐 제리는 목줄을 조이고 감 어차피 금방 돌아와서 풀거니까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함 근데 깨어나보니 4일째 벌써 아무도 개를 데리러 가지 못했다고 함 남극의 겨울에 단련된 겨울 연구조도 폭풍이 너무 심해서 가지 못했다고 봄까지는 아무도 못간다고 함 개들은 봄까지 살아남을수 있을까.... 벌써 눈물 줄줄ㅠㅠ 1983년 일본 영화 남극 이야기를 리메이크한 2006년도 영화 에이트 빌로우
[알면 좋은 음악상식] (1) 흙수저 베토벤이 취뽀한 썰
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친절하다고는 하지 않았단다. 이 박사님은 매우 괴팍하니 조심하렴. 하지만 내용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마 첫수업은 그래! 이양반이 좋겠구만. 너희들이 아무리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애들이라도 한번쯤을 들어봤을만한 베토벤이란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서 '베토벤, 베토벤!' 거리는 것은 너희들의 무식함을 세계 만방에 떨치며 자랑하는 일이야. 베토벤의 이름은 Beet + Hoven 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Beet는 사탕무라는 뜻의 단어고 Hoven은 밭이라는 뜻이란다. 우리 축빠녀석들은 친숙할 '아인트호벤'의 그 '호벤'인지. 네덜란드식인 이 이름의 네덜란드 발음은 베이트 호번에 가깝고 베토벤이 나고 자란 독일식 발음은 베트 호픈에 가깝단다. 베토벤이라고 발음하는건, 외국인이 손흥민을 "오우! 소 능민! 히이즈 능민 쏘!" 라고 하는거랑 비슷한 무식함이란다. (하지만 난 쓰기 편하니 베토벤이라고 쓸거란다. 억울하면 박사가 되렴.) 무튼 이양반에 대해서 안 진지하게 잘 알려줄테니 잘 듣거라 흔히 이 양반을 가르켜'악성' 베토벤이라고 부르지 이때 '악성'이라는 말의 뜻은 저 표정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성질이 더럽다'는 뜻이라고 하면 매우 설득력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단다. '악성종양'할 때의 '악성'이라는 무식한 생각을 했다면 조용히 나가려무나. 이 악성은 樂聖, 즉 음악계의 성스러운 인물이란 뜻이다. 알아두도록 하렴. 베토벤 얘기가 나오면 "호오~ 음악계의 성인, 악성 베토벤 말이지?" 라고 하면 된단다. 이 베토벤은 원래 '금수저'가 될 수도 있었단다. 할아버지가 네덜란드의 귀족출신이지.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17살때 독일로 이민을 가서 궁정에 가수로 취직한 뒤 악장으로 승진하게 돼. 거기서 태어난 베토벤의 아빠도 궁정에 테너가수로 취직,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일까지 하며 돈을 벌지. 또 엄마는 궁정 수석요리사의 딸이니 스펙 좋고 괜찮은 집안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좋은 집안 망치는 건 바로 뭐다? 그래 술이란다. 베토벤이 아버지는 전형적인 괴팍한 술주정뱅이st 였지. 나중에는 술때문에 목이 상해서 더이상 일도 할수 없게 되고 베토벤이 돈만 벌어오면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곤 하지. 술로 집안 말아먹는 아버지 외에도 베토벤에게는 여러가지 불행이 닥친단다. 베토벤의 어머니는 원래 7남매를 낳았는데, 둘째/셋째/넷째를 빼고는 모두 일찍 죽게된단다. 술주정뱅이 남편 뒷바라지하던 어머니도 베토벤이 16살때 폐결핵으로 죽게 돼. 둘째인 베토벤은 남은 형제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훗날 일찍 생계를 책임지게 되지. 동생인 셋째, 넷째들.... 이자식들도 아주 그냥 순양아치였는데... 이 얘기는 좀 나중에 들려주마. 뀨 어린시절의 베토벤이란다 정말 귀엽지 않니? 이 어린시절의 베토벤에게 음악을 처음 가르친건 아버지란다. 아버지는 어린 베토벤을 쥐잡듯이 잡으며 피아노를 가르쳤지. 저 귀염댕이를... 쯧쯧. 당시 유럽을 휩쓴 신동 '모짜르트'처럼 되어야 한다며 스파르타식 피아노 강습을 하면서 빨리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싶어했어. 그래서 베토벤이 첫 대중공연을 할때, 사람들에게 8살인 베토벤을 6살이라고 속여서 홍보했어. 240년 전부터 언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 무튼 괴팍하고 가혹하게 베토벤을 가르친 아버지와는 당연히 사이가 안좋게 된단다. 베토벤은 어린시절 피아노를 부수려 한 적도 있고, 아버지의 장례식때도 하나도 슬퍼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지. 너희들은 애 낳으면 살살 가르치거라. 그런 베토벤은 결국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서 9살때 평생의 은인이 된 궁정음악가 네페를 만나 본격적으로 음악의 기초를 배우지. 그리고는 스승의 도움을 받아 13살 때. 베토벤이 처음으로 출판한 작품인 '드레슬러 행진곡에 의한 9개의 변주곡(WoO 63)'을 작곡하지. 위 영상의 음악이 바로 WoO 63이란다. (WoO는 ‘작품번호 없음(Werke ohne Opuszahl)’이라는 독일어의 약어란다.) 너희들이 엄마 졸라서 산 문상으로 메이플 캐쉬템 지를 나이에 베토벤이 지은 곡이란다. 한번 들어보지 않으련? 이렇게 음악적 안목과 실력을 키우던 베토벤은,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네페를 따라다니며 오르간 보조주자로 일하게 된단다. 이때는 급여는 없고 그냥 열정페이로 일했지. 하지만 이후에 이 스펙을 바탕으로 드디어 궁정 예배당에 정규직으로 취뽀하여 일할 수 있게 되었단다. 이 후 베토벤은 승승장구 했을까? 이후 베토벤의 성공과 사랑, 몰락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겠네. 다음화에는 궁정 예배당에서 일하던 베토벤이 의느님 친구 소개로 귀족 집안에 피아노 과외하러 갔다가 스폰서 물게 된 썰부터 시작하지. 수업료는 댓글이란다. 댓글이 30개 이상이 되면 다음 수업을 빨리 준비하도록 하마. 자 그럼 열심히 복습하고 댓글 달아주렴.
3월 28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및 만평모음
= 23/03/28 류효상의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 1. 여야가 헌재의 '검수완박‘ 결정과 정순신 부실검증 논란을 두고 충돌했습니다. 여당 측은 '검수원복' 시행령의 필요성과 야당의 '꼼수탈당'을 지적했고, 야당 측은 시행령에 대한 비판과 인사검증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맞섰습니다. 맨날 죽으라고 자기 얘기만 떠들면서 소통이 안 된다고 하면 다들 귀가 문제가 있는 거지? 2. 2030세대의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지면서 국민의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2030세대 여론을 듣기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정책 기능도 강화했지만,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애들이 아직도 어른에게서 답을 구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게 꼰대야~ 3. 민주당이 친명계 일색이던 당직을 개편했습니다. 3선의 김민석 의원이 당 정책위원장을 맡고, 김성주 의원이 정책위 부의장에 내정되는 등 문재인 전 대통령 측근들이 당직에 포함됐지만, 갈등 봉합에는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백의종군하라면 할 사람 하나 없으면서 요구하는 건 왜 그리 많은지… 4.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천아용인’의 중용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의 기류가 바뀌고 있습니다. 3·8 전당대회 직후만 해도 당내에선 부정적 기류가 강했지만 불과 3주도 채 안 돼 “당연히 함께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철천지원수도 지지율에만 도움이 된다면 업고 뛸 양반들이라니까… 5.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차기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최종 후보로 최민희 전 의원을 선정한 것에 대해 강력 비판했습니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최 전 의원 추천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내 마음에 안 들면 반대한다고 할 수 있지, 그렇다고 강제하겠다는 건 폭력이야~ 6. 국가보훈처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을 위한 사전 검토에 나섰습니다. 보훈처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위해 기념관 소재지 등 사전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곧 눈에 보이는 성과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 인간이면 그가 뭔 짓을 했는지는 알겠지? 7. 일본의 2023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검정 결과 강제징용 기술은 기존보다 후퇴하고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확대 기술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추진과는 별개로 일본 측에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윤석열이 “솔직하고 깨끗하고 수차례 사과했다”는 일본은 딴 나라 사람인가? 8.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구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대구지역 학계 인사와 변호사, 의사 등에 이어 경북, 대구지역 퇴직교원들의 시국선언과 대학가에서는 윤석열 퇴진 촉구 대자보가 등장했습니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국민의힘’이라던 아주머니만 사시는 건 아니었군요… 9.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저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많은 국민들과 법률가들의 생각같이 그 결론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과는 제가 할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동안 싸놓은 그 숱한 망언들은 어쩌고 이렇게 야반도주하듯 입싹 씻으면 양아치지~ 10.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교폭력을 미리 알았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 장관은 “정부가 알고도 인사를 밀어붙인 것이었다면 하루도 안 돼 철회했을 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거짓말 사실이냐? 자기 딸 논문 의혹도 덮어 버린 양반이 무슨 소린들 못할까~ 11. '주 69시간 노동‘ 개편안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장시간 근로감독에 착수했습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는 정부 개편안에 지금도 근로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쇄도하자 감독하겠다는 것입니다. 말장난 그만하고 포괄임금제를 폐기하든지 있는 법이나 관리 감독 하세요~ 12. 학교 폭력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배우 심은우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인기 여파로 '제2의 연진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억울하다고 토로했습니다. 배우 심은우는 ‘지나친 마녀사냥’을 멈추어 달라며 경찰 신고를 예고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신고나 하지, 무서워서 신고조차 못 했던 친구들을 기억해야지~ 13. 국내 직장인 10명 중 4명 이상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45.2%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니까 주 69시간제 이딴 헛소리 하지 말고 있는 거나 잘 지키라고 해~ 14. 미국의 한 학교에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다비드’ 상을 수업 시간에 보여줬다가 '포르노'라는 일부 학부모의 항의로 교장이 물러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비드상이 있는 피렌체시는 ‘예술과 외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예술과 외설도 구분해야겠지만, 역사적 사실과 왜곡도 구분해야겠지요~ 15. 충분히 익히지 않은 고기를 함부로 먹을 경우 대장균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대장균이 식중독뿐 아니라 요로감염까지 일으킬 수 있고, 요로감염은 극심한 통증을 유발과 신장을 망가뜨릴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옛말에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이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쁘게 죽으서 뭐하나요~ 16. 교촌치킨이 다음 달부터 제품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면서 여타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도미노 가격 인상 전망이 나옵니다. 배달비를 포함하면 치킨 3만 원 시대가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여론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생닭 사다 튀기는 건 너무 번거롭고, 냉동 사다 에어 플라이어 돌려야지 뭐~ 리얼미터, 윤 지지율 36%, 민주 45.5%-국힘 37.9%. 지지율 하락세 국민의힘, 이재명 대표 때리기에 총력전. 여야, 법사위 전체회의 헌재 ‘검수완박법’ 결정 놓고 공방. 한일 관계 개선에도 일본 오늘 또 '왜곡' 교과서 발표. 박지원, 무소속 후보 지원 논란 민주 “당 방침 어긋나” 경고. 오세훈 시장, "한강, 전담 관리 법인 설립해 관리한다". 윤 대통령, 내달 4일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할 듯. 우종수 신임 국가수사본부장 "국민 기대 부응토록 할 것". 권영세 "북한, 도발과 위협으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에도 마스크 매출 늘어. 롯데, 한국서 벌고, 돈은 일본으로 작년 1000억 보내. 토트넘 홋스퍼 콘테 감독 사임. 손흥민과 '이별 엔딩' 우리의 인생은 바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 온 것일 뿐이다. -사르트르- 그래서 우리의 삶은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미래에게 빌려온 자원이라고 하는 것처럼 후세에게 비록 우리의 이름은 남겨지지 않을지언정 선배들이 남긴 것들이 아름다운 사회였으면 하는 바램은 모두 같은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삶이 고단할 까닭은 혼자라서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내 곁에 나와 함께 하는 이가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습니다. 오늘 당신 곁에는 제가 있습니다. 류효상 올림.
일본 고위 관료가 친아들을 살해한 사건.jpg
2019년 6월 2일 일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도쿄 대학교 법학부 졸업의 농림수산성(구 농림성) 경제국장, 사무차관, 체코 대사까지 지낸 고위 관료가 자신의 아들을 식칼로 잔혹하게 살해한 뒤 자수 피의자 熊澤英昭(쿠마자와 히데아키) 1943년 기후현 출생으로 범행 당시 76세 은퇴 후에 퇴직금으로 도쿄에 있는 2층짜리 단독 주택을 구입해서 아내와 여생을 보낼 계획이었다 주위 평판도 좋았던 부부 살인 피해자 친아들 熊澤英一郞(쿠마자와 에이이치로) 1975년 3월 20일 출생 향년 44세 아들 에이이치로는 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는 가정환경에서 어머니로부터 엄격한 엘리트 교육을 받아옴 우수한 성적으로 도쿄의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기도 했으나 교우관계에 서툴러 이지메를 당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겉돌며 중학생 때부터 삐뚤어지기 시작 고등학교 졸업 후에 애니메이션 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사립대에서 건축학 학사를 취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늘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히키코모리 생활을 이어감 다니던 병원에서 해고당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에이이치로는 식칼을 꺼내서 부엌에 두고 상사를 찔러 죽이겠다고 해 겨우겨우 진정시켰다고 한다 에이이치로는 매달 거액의 용돈 40만 엔을 받았는데 이렇게 돈을 주지 않으면 미쳐날뛰며 협박해서 혹여나 타인에게 범죄를 저지를까 봐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부모와 떨어져 다른 아파트에 혼자 살던 에이이치로의 생활은 항상 게임이 중심이었고 2019년 5월부터 다시 본가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같이 산지 2일째에 문제가 터지게 됨 쿠마자와 히데아키 : "에이이치로에게 쓰레기 좀 내다 버리라고 했다가 습격당했습니다 머리카락을 잡혀 식탁까지 끌려갔고, 저는 필사적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현관까지 쫓겨 문과 콘크리트에 내동댕이 쳐졌습니다 계속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이 히데아키의 몸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멍 자국이 여러 개 발견됨 아들에게 중학생이던 때부터 40대가 된 때까지 줄곧 폭력을 당해왔는데 이런 사실을 체면 때문인지 에이이치로를 위해서인지 절대로 외부에 알리지 않았던 히데아키 내외 살인사건 발생 그로부터 6일 후 에이이치로는 집 근처에 있는 소학교에서 운동회 하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학생들을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하며 적대감을 표출 그리고 불과 며칠 전인 5월 28일에 도쿄 인근 가와사키 시에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던 50대 남성이 양손에 흉기를 들고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어린 학생들과 사람들을 공격해 11살 여자아이와 30대 남성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치는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시작된 폭력,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 소학교 학생들을 죽여버리겠다는 말 등을 겪은 아버지 히데아키는 아들이 진짜로 범죄를 저지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결국 새벽 3시 20분 칼로 에이이치로의 복부, 옆구리, 견갑골 아래 등 30여 곳을 찔러 살해함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 용의자 岩崎隆一(이와사키 류이치) 어렸을 때 부모의 이혼으로 큰아버지 집에 맡겨졌으며 에이이치로처럼 오랜 기간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었음 양손에 쥔 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장갑까지 끼고 사람들에게 휘둘러 상해를 가한 후에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사건 현장 / 흉기 난동 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 小山智史(오야마 사토시, 일본 외무성 미얀마어 통역 담당관) 부부에겐 아들 에이이치로 말고 딸도 한 명 있었는데, 에이이치로가 중증 히키코모리이자 만화 오타쿠로 이미지가 나빠 집안에 대한 말이 안 좋게 번져 혼담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고 파혼 때문에 상심한 딸은 자살했다고 한다 이 또한 히데아키의 아들 살해 동기 중 하나로 지목된다 2월 16일 도쿄 지방 재판소에서 열린 1심 결과 아들이 심각한 패륜아였고 단순히 히키코모리로 사는 것을 넘어 부모를 학대하고 노후자금을 가로채기까지 하는 등 악질이었던 점을 감안해 쿠마자와 히데아키에게 존속살인 형량으로는 예외적인 6년형이 선고됨 판결에 항의하여 항소했으나 2심에서도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