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보다 밝았던 밤, 아이슬란드의 기억 #1 레이캬비크
꽃청춘의 방영과 더불어 요즘 자꾸 올라오는 아이슬란드 여행 정보, 저도 예전에 쓰긴 했지만 아이슬란드라는 말 만으로도 마음에서 뭔가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느낌을 표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서 다시 그 때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가 보려 해요. 아이슬란드를 너무 그리워하던 나날들, 저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월터가 아이슬란드에 발을 내딛는 순간에도 혼자 극장에서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만큼 특별하게 다가오는 아이슬란드, 그 때의 기억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런던에서 출발하는 아이슬란드행 비행기를 예매해 놓고도 내가 아이슬란드로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예매 페이지를 확인해 대던 날들이 지나 출발일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던 시점, 바다 밖으로 나와 있으면서도 습관처럼 확인하던 네이버 뉴스에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했다.
아이슬란드 화산 대 폭발
그냥 폭발도 아니고 대폭발이라니,
휴화산이 있는 나라에 살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화산 폭발은 흔치 않은 경험이라, 게다가 아이슬란드는 워낙 화산으로 유명(?)하니 마치 북한이 엄청난 미사일들을 만들었다 해도 면역이 되어 '그게 뭐 어때서'가 되어 버리는 것 마냥 '에이 뭐 화산이야 자주 폭발하는거 아녀?' 생각했지만 떨리는 마음은 머리와는 따로 가더라.
떨리는 마음 억지로 누르며 클릭한 뉴스에는 상공 20km 까지 치솟은 연기와 화산재로 영공이 폐쇄되어 그 때 예정되어 있던 오바마의 유럽 순방 일정도 차질을 빚었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아니야 나는 그래도 이틀이 남았으니 괜찮을거야. 이틀이면 화산재가 가라 앉고도 남을 시간이지. 그렇게 겨우 다잡은 마음이 당황스러움을 감추기도 잠시, 부르르르 거짓말처럼 울리던 핸드폰에 뜬 글귀
'아이슬란드 화산 분출로 인한 아이슬란드행 모든 비행기 결항 - 문의/변경은 전화로'
나는 이미 런던으로 떠나는 비행기도 예약이 되어 있는 상태였고, 런던에 도착하여 두시간 대기를 하면 아이슬란드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이었다 원래는. 그리고 그게 바로 이틀 후의 계획.
애써 담담한 척 '괜찮아, 괜찮아, 바꾸면 되지 뭐!' 아이슬란드 항공사로 전화를 걸었으나 매우 당연하게도
통화중 거짓말처럼 내내 대기중.
하지만 홈페이지를 들어가 봐도 화산 관련 사항은 모두 전화를 달라고만 적혀 있어서 별 수 없이 다시 전화기를 들어 통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5분, 10분, 15분, 들려오는 것은 내내 통화 대기 음악. 계속 귀에 대고 있으려니 귀가 아파서 마치 bgm을 틀어놓은 듯 스피커폰으로 바꿔 놓은 채 통화 대기음을 들으면서 웹서핑을 하는데 드디어,
\할로!\
45분만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담담한 척 하려던 마음을 금세 잊고 엄청 들뜬 목소리로 할로!!! 를 외치고는 평소에는 버벅대던 영어도 거짓말처럼 술술, 다행히 바로 다음날부터 정상 운행이 되어 다음날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런던에서 하루 자야 하게 된 것이지만.
6월이었지만 아이슬란드는 이름만으로 춥게 느껴지는 곳이니 두꺼운 패딩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공항 갈 채비를 했다. 두근두근.
아이슬란드 가는 거 티내냐며 얇은 야상을 걸친 더블린의 친구들이 놀려댔지만 이미 뼛속까지 아이슬란드에 가 있는 나는 조금 후끈대는 옷 속 조차 시원하게 느껴졌더랬다. 내일이면 이 후끈함도 시원함으로 바뀌어 있을테니!
런던에 도착해 본의 아니게 런던 관광을 짧게 하고 - 벌써 4번째 방문인 런던인지라 쉬엄쉬엄하려고 하였으나 런던에서 유학 중이던 학교 선배가 꼭 올라가 봐야 한다며 세인트폴 성당 전망대로 안내를 해 주었다 - 선배가 예약해 둔 27인실-_- 호스텔에 묵은 후 다음 날 아침을 맞았다.
런던 날씨에 어울리지 않던 겨울 패딩은 케플라비크 공항에 내리는 순간 적당한 온기로 나를 감싸안았다. 공항에 내린 시각은 밤 10시였지만 여전히 밝은 하늘에 기분은 마치 늦은 저녁, 피곤함도 간데 없었다. 버스를 타고 레이캬비크에 도착하자마자 지나는 이들이 훤히 보이는 한 카페에 들어서 커피부터 한잔 들이켰다. 그리고 와이파이를 찾아 나서는 하이에나마냥 와이파이 비번을 받아서는 아이슬란드에 무사히 도착했음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지.
자원봉사자들의 숙소에 도착해서 침대를 배정받고 짐을 내려두고 얼른 다시 밖으로 나섰다. 밖이 여전히 밝았기에 시계도 보지 않고 나섰지만 이미 밤 11시를 넘은 시각이었으리라. 밤이 늦은 시각이라는 것이 믿겨 지지 않을 만치 파란 하늘이었지만 길에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만이 시각을 반증했다.
꽃청춘에서의 레이캬비크는 온통 눈 쌓인 지붕, 반짝이는 조명들이 달린 동화 속 도시였지만 6월의 레이캬비크는 색색의 슬레이트 패널의, 어쩐지 가벼운 느낌의 도시였다. 길게 내리쬐는 지는 햇살을 받아 더욱 반짝이는 지붕을 보고 아, 그래서 슬레이트 패널을 재료로 쓴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을 만큼. 드문드문 들어선 집들의 골목을 지나 내리막을 걸으니 어느 새 눈앞을 덮치는 빼곡한 항구, 이 곳이 바로 바이킹의 도시 레이캬비크다. 항구 주변을 돌아 다시 오르막으로 들어섰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할그림스키르캬. 꽃청춘에서 그랬듯 레이캬비크의 어디서든 보인다. 물론 나는 아이슬란드의 밤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빛이 나는 할그림스키르캬를 본 적은 없지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교회를 향해 정처없이 걷다가 문득 배가 고프다는 것을 깨닫고 눈 앞에 보이는 국수집 앞에 섰더니 굳게 문이 닫혀 있다. 밤 11시까지 한다고 적혀 있는데 벌써 문을 닫는 게 어딨노, 생각을 하고 시계를 보니 밤 12시 30분. 허허. 12시 30분의 하늘이 이러하다. 괜히 마음에 드는 카페도 발견. 이름마저 귀엽다.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여기는 다음을 기약하고 - 아직 나에게는 4일의 레이캬비크가 남았으니 - 계속 교회를 향해 걷는다. 오늘은 그냥 잠들기 전 산책 겸 동네 구경이 목적이니까. 어느 새 교회가 앞에 펼쳐 졌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중의 하나라는 할그림스키르캬, 주상절리를 모티브로 한 현대적인 디자인이지만 절로 엄숙해지는 자연의 웅장함도 함께 닮았다. 뒤에 이야기할 것이지만 이 곳에서의 파이프오르간 연주는 교회 밖에서도 신기루처럼 울린다. 내려오는 길의 풍경 7장, 모두는 밤 12시 이후의 모습이다. 자정이 넘은 시각, 불과 두시간 전에 처음 밟은 세계의 끝 아이슬란드의 한 동양인 여자 여행객의 홀로 산책. 분명 무서워야 할 상황인데도 빛이라는 것은 참 그렇다, 무섭다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 하나 없는 길들이 정말 동화 속 처럼 여겨졌다. 다시 바닷가로 나오니 콘서트홀 및 컨퍼런스룸으로 쓰이는 Harpa가 저녁빛에 반짝인다. 옹기종기 작은 건물 일색인 레이캬비크에 거대하게 들어선 - 바다를 담았다고 건축가는 이야기하지만 - 이제는 랜드마크로 이야기되는 이 건물은 막 지어질 당시에만 해도 여러 구설수에 올랐더랬다. 내가 방문했던 2011년에도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으니. 항상 메가스트럭처는 여러 뒷말을 남긴다. 그리고 다시 만나는 항구의 풍경 석장 해가 많이 떨어지긴 했다. 새벽 한시가 조금 넘은 시각, 바다 너머에 해가 걸렸다. 하지만 여전히 밝은 밤, 또 그렇게 오랜 시간을 수평선에 머물겠지. 한참을 항구에 서서 멈춘 듯 지는 해를 바라보다 숙소로 돌아섰다. 앞으로 나는 오늘까지 5번의 밤을 이 곳에서 머물겠지. 주말마다 나의 숙소가 되어 줄 곳이다. 모두가 자원봉사자들의 품으로 꾸려져 가는 공간. 아이슬란드의 첫날 밤이 이렇게 저문다. 그리고 나는 두어시간여의 산책 동안 서너 사람만을 마주쳤다. 또 언제 겪을지 모를 밝은 밤 11시부터 발간 새벽 2시까지.
- 다음날에 계속 아이슬란드의 첫날만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이렇게 길어져 버렸네요. 으아. 역시 키보드워리어기질 어디 안가네. 엉엉. 1번과 4번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레이캬비크의 이 날 산책 동안 찍은 사진이랍니다. 1번, 4번은 자원봉사를 했던 셀포스 근처의 어느 작은 마을의 풍경이고 :) 이야기는 차차 풀어가도록 하고 -
조만간 이번 꽃보다청춘에서 보여줬던 골든서클의 이야기로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원래 그걸 오늘에 다 쓰려고 했던거였는데... 왜 이렇게 길어진거지... -_-;
1편 : https://www.vingle.net/posts/1313896 2편 : https://www.vingle.net/posts/1345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