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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아이가 빵을 사달라고 한다면?

이런거 보면 괜히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다 사줄게 다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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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보면 참 눈물나고 진짜 살만한 세상인가 같아요. 근데 실제로 눈앞에 이런학생들이 나타나면 의심하나 없이 연민만으로 사줄수 있을지. 혹시 뭔가 꼬투리를 잡히진 않을지. 요즘 사회가 너무 의심으로 가득찬거 같아요ㅠㅠ 저부터두 그래요ㅠㅠ
저두 중간에 일베 튀어나오지 않나 조마조마 했어요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도움 받고 감사함을 아는 이들은 저럴수있다.
과하지않은 부탁이라 흔쾌히 들어준듯‥
인간이 결코 나쁜 동물은 아닌 거 같다
저는 미국이다보니 먹을걸 사달라면 사주는데 돈달라하면 어지간해선 안줄려고합니다. 분명 술사마시거나 마리화나 사서피려는게 분명하기에... 그들이 술과 마약에 찌들다 죽는거에 일조하고싶지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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