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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랑 할 줄은 모르는 우리가 있다

너는 신비한 마법상자와 같다
무엇이 들어가면 무엇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들어가면 무엇 아닌 것이 나오는

어쩌면 방정식 같은 거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같은 것을 넣는다고 해서
늘 같은 것이 나오지는 않으니
나는 그냥 너를 모르겠다 하고 웃었다

웃음에 웃음으로 답해주다가
좋아한다는 말에 침묵
침묵
침묵이었다
무서웠다

500원을 먹은 자판기라면
발로 실컷 차기나 하고 돌아섰겠지만
왜인지 못 잊어 아침부터 와서 보았다
밥을 굶어 만든 500원을 또 넣고
침묵
웃겼고
웃었다

아까워서
답을 제대로 안 내어주는
네가 아까워서
바보 같은 내가 아까워서
나는 늘 거기로 갔다

모르지만 늘 바라보았고
예상했지만 늘 틀렸다
웃겼고
웃었다
무엇을 받고 싶은 건 지도 잊었다
그냥 재미가 있는 듯
모르는 너와 함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문은 사람이 늘 스쳐지나갈 뿐이고
사람이 문을 붙잡고 있을 때는
문이 왜인지 열리지 않을 때 뿐이었네
그러니
나는 다만 너의 이상함에 매달려 있는 것

사랑하는 장면이라는 말에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사실 무엇을 하지도 못 했고
나는 사실 무엇을 받지도 못 했다

500원에 침묵
1000원에 콜라
다시 1000원엔 침묵
2000원에 침묵
다시 500원엔 환타
웃겼고
웃었다

답을 내는 게 아니라
다만 함께 있는 것이지
알 수 없는 네 마음과
알 수 없는 내 집착을
같은 그릇에 담아 두는 것 뿐이지

사람들이
단란한 맛집이라며
후루룩 먹고 가는
사랑하는
사랑할 줄은 모르는 우리가 있다

배워서 고향으로 갈 수가 없는
다만 이곳의 물 맛이라며
조용히 그릇에 물을 받아

양념 같은 내 마음이나 얹어 보는
비법 없는 사랑의 글들이 있다 W 레오 P Ingmar Hoogerhoud
2019.09.19 시로 일기하기_오늘 날씨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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