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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뉴스 #더] 신이 내린 면허증
지난 8월 7일 서울 강서구의 한 산부인과에서 영양제 주사를 처방받은 산모를 다른 환자로 착각, 6주된 태아에게 낙태를 시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낙태가 필요했던 이는 사산된 태아를 품고 있던 다른 산모였다. 해당 산부인과의 간호사는 아무런 확인 없이 피해 산모에게 마취제를 주사했고, 의사 또한 그 어떤 확인 절차 없이 시술을 집도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한 태아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는 명백한 의료과실이다. 게다가 ‘형법 제 270조 부동의 낙태’에 해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은 법리상 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고,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적용해 수사하고 있다. 6주된 태아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지만 업무상과실치사가 아닌 업무상과실치사가 된 것은 국내법이 태아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실수로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지만 해당 의사는 지금도 진료를 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의사면허를 유지하고 환자들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가 확정돼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그가 가진 의사면허는 유지된다. 우리나라의 법은 의사에게 매우 관대하다. 아니 관대해졌다. 2000년 이전에는 의사가 어떤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사면허가 취소됐다. 하지만 2000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형법과 관련된 범죄로 면허가 취소되는 조항은 극히 일부만 남았다. 현재 의사는 강력범죄나 성범죄를 저질러도 법적인 처벌은 받지만 의사 자격은 변함없이 유지한다. 과실로 환자를 다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더라도 ‘의사들의 적극적인 진료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의사면허는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2007년 전신마취상태인 20대 여성 환자를 성폭행한 내과 의사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여전히 의사다. 2011년 간호조무사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인 의사는 무려 12년 동안 강간과 협박을 일삼았다. 피해자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작성하게 하고 알몸을 촬영하는 등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그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면허는 여전히 갖고 있다. 2016년 수면내시경 도중 환자를 성추행한 의사도 준유사강간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등을 선고받았지만 병원에서 해고당했을 뿐 지금도 의사다. 물론 의사면허가 취소된 경우도 있다. 2012년 수면유도제를 과다 투여해 환자를 죽게 만들고 사체를 유기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면허가 취소됐다. 하지만 이는 환자 사망도 사체 유기도 아닌 ‘마약류 관리법’을 위반해 수면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2017년 단골환자에게 프로포폴을 투여했다가 사망하자 사체를 바다에 버리고 자살로 꾸민 사건도 있었다. 가해자인 의사는 약물관리 대상을 삭제하고, 병원 CCTV도 지웠지만 덜미가 잡혀 구속됐고 의사면허도 취소됐다. 가수 신해철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집도의 강세훈은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기 전까지 병원을 옮겨 진료를 봤다. 그 사이 몇 차례 의료사고를 더 유발해 1명이 죽고 여러 환자가 다쳤다. 현재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의사면허가 취소됐다. 그러나 이는 고 신해철 씨를 사망케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의료기록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 개인정보를 유출한 죄가 있어서다. 만약 의료기록 누설이 없었다면 그도 여전히 면허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취소됐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의료법 제65조 2항에 따라 시간이 지난 뒤 면허를 다시 교부받아 의사가 될 수 있다. 면허가 취소된 의사가 다시 면허를 받으려면 보건복지부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승인되는 비중이 매우 높다. 2017년에는 단 17건 중 1건만 승인되지 않았고, 그 이전인 2007년부터 2016년까지는 94건이 신청됐고 모두 승인됐다. 사실상 신청하면 승인된다고 봐도 될 정도다. 허울뿐인 것만 같은 우리나라 법은 의사가 되려고 하는 의대생에게도 너그럽다. 2011년 고려대학교 의대에서 동기 여대생을 성추행해 학교에서 쫓겨났던 남학생 3명 중 1명은 또다시 의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고려대 출신 의사가 되는 것만 막았을 뿐 성균관대학교 의대에서 다시 의사가 되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환자들은 병의 경중을 막론하고 의사에게 자신의 건강을, 혹은 목숨을 맡긴다. 그런데 그는 최소한의 양심이나 도덕성은 갖고 있는 사람일까? 겉으로 봐서는 해당 의사가 이전에 어떤 죄를 지었는지, 현재 법적인 절차가 진행 중인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내 눈앞의 의사가 범죄자가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도 신이 내린 것 같은 의사면허는 많은 범죄자들의 손에 여전히 들려 있다. 우리나라의 법에게 묻고 싶다.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글·구성 : 이석희 기자 seok@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믿음을 주는 경제신문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끝이 보이는 관계에 마음을 쏟는 이유
.. 상황과 계절 핑계를 앞세웠지만, 실은 매 순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일정량 이상 껴안고 지낸다. 본격적으로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때는 아마도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넘어가던 겨울이 아니었나 싶다. 수능 끝난 수험생이었던 우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 있는 동산을 산책 삼아 오르내리며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주로 미지의 영역인 대학 생활에 대한 상상이었다. “대학 가면 진짜 친구 사귀기가 어렵대. 거의 다 겉 친구래.” “고등학교 때 사귄 친구가 오래간다더라” 같은 소리를 하며 이상한 의리를 쌓았던 기억이 난다. ...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관계의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거.  급하게 가까워진 친구는 여름날의 반찬처럼 쉽게 상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이십 대 초반에는 일상의 중심이 자주 바뀌는 법이니까. 일정표를 채운 단어가 ‘동아리’에서 ‘아르바이트’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서로를 소울 메이트라고 불렀던 친구와 별일 없이 멀어졌을 때. 봉사 활동을 하며 한 달 동안 동고동락했던 이들이 하나둘 인사도 없이 메신저 단체방을 나갔을 때. 나는 놀이터에 홀로 남은 아이처럼 처량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때 손에 꼭 쥐고 있었던 주인 없는 마음은 미처 식지 못해 아직 따뜻한 상태였는데….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는 매사에 계산적으로 굴고 싶어졌다.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 연연하는 촌스러운 애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상처받지 않을 것인가’하고 머리를 굴리는 일이 늘었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지내기도 했다. 누군가 좋아진다 싶으면 혼자 지레 겁을 먹고 뾰족한 말로 선을 그었다. 그렇게 애를 써도 역시나 마음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좋아하는 사람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수학 문제 푸는 것처럼 매번 어려웠다. 어쩌다 한 번 정답을 맞춘 뒤에도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제에서는 또 헤매야 했다. 그 방황을 끝내준 사람은 뜻밖에도 스물셋 겨울 함께 토익 공부를 하던 언니 오빠들이었다. 보통 토익 스터디에서 만난 이들과는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마련인데, 그때 만난 사람들과는 예외적으로 합이 좋았다. 수업 전후 짧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다정한 기운이 깃들어서, 머리로는 ‘어차피 곧 다시 못 볼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그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던 날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회식은 육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언제라도 다시 만날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어쩐지 야속해서 내내 꽁해 있었다. 그리고 비뚤어진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어차피 오늘 지나면 만나지도 않을 거잖아요.” 흥이 깨질 것을 각오하고 뱉은 말이었으나, 과연 좋은 사람이었던 언니 오빠들은 어른스럽게 나를 달랬다. “꼭 자주 봐야만 인연인가? 길 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인연이지!”그건 찰나의 대화였지만 이제껏 관계가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상처받았던 느린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온기였다.  아,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는 것이구나. 그동안 오늘 손에 쥔 관계까지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가난했던 거구나.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관계는 그날로 끝났다. 대신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의 술자리는 기억 속에 잠겨 있다가, 내가 관계에 회의감을 느낄 때면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리고 다정했던 언니 오빠들처럼 내가 너무 인색해지지 않게 다독여준다. ‘지속되지 않아도 설령 끝이 나쁘더라도 한때 좋았던 관계를 깎아내리진 말자.’ 다시 유월에 했던 두 사람과의 이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분명 매일 사무실에서 얼굴을 부딪칠 때보다는 멀어질 것이다. 곧 무언가 일상의 가운데를 차지할 테고 지나간 이는 자리를 내주어야겠지. 그래도 우리가 주고받은 다정한 쪽지나 사진 같은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괜찮다. 마음을 쏟길 잘했다.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주문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현재 만나는 사람들에 충실할 것. 이후에 만남이 지속되지 않더라도 좋은 추억으로 남길것! 그동안 인간관계 때문에 우울했었던 마음이 정리되는 듯, 좋은 글이라 오랜만에 빙글에 가져와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