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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움짤로 보는 50년 전 한국.gif[데이터 주의]

1961년, 당시 서울역 플랫폼 모습.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당시 경상남도 지역 장날 풍경





짐을 머리에 이고 장터로 향하는 사람들.





강원도 춘천에서 삼베를 말리는 어머니의 분주한 모습





1962년, 대구에서 열린 우시장에서 농민들이 소를 살펴보고 있다.






1962년, 서울시 성동구 논현동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1동, 논현2동)에서 모내기가 한창이다.





6.25를 겪지 않은 첫 세대인 1954년생이 초등학교 (당시 명칭 국민학교)에 입학.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교정으로 향하는 모습.





1960년대 초반, 평범한 어촌 부둣가의 풍경





방과 후 초등학생들이 들로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고 있다.
집의 재산인 소를 배불리 먹이고 잘 데리고 오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임무였다고 한다.





1964년,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의 턱걸이 연습이 한창인 교정 
하나라도 더 해내려는 모습의 학생.





달리기를 겨루며 체육 활동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맨발로 운동장을 달리는 학생들과 응원하는 친구들.





영유아사망률 1000명 당 218명 (2019년 세계 최악의 영아사망률을 기록하는 우간다의 2.3배)
다섯이 태어나면 몸이 약한 아이는 첫 돌을 채 넘기지 못하던 시대였다.
아이들에게 야외 활동을 장려하여 체력과 면역력을 기르자는 표어가 방송되었다.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출범. 직원들이 전봇대를 설치하고 있다.
일반 가정까지 전기가 들어가는 모습





'보릿고개 넘기기 운동'이 한창인 시골의 분주한 모습.





전국적으로 문맹 퇴치를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북 영덕군에 내려온 대학생들이 글을 모르는 주민들을 모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전국적인 문제였던 쥐떼 창궐 해결을 위해 '쥐잡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잡힌 쥐를 보고 속이 시원한듯 웃는 어른들





전국에 큰 비가 내렸다. 잠긴 집과 들을 보고 망연자실한 사람들,
머리를 다친 동생을 돌보는 형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중부지방에서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청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복구에 나서고 있다.
흙을 퍼내는 가장과, 갓난 아이를 내려놓고 삽을 들어 복구를 돕는 어머니들.





범람 위기의 청주 무심천에서 청주공업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제방을 손보고 있다.





청주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교복 바지를 걷어올리고 수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1965년, 춘천 수력 발전소 완공. 능선에 올라선 시민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당시 고등학교의 수업 모습.





교련 시간에 M1 총기 분해조립, 맨손으로 쇠봉 타기 연습을 하는 고등학생들.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필리핀이 2배 이상 앞서던 시절 
필리핀 경제사절단이 내방했다. 한국 관료들의 공손한 인사와 환대에
경제사절단 단장인 필리핀 농림상 로드리게스와 필리핀 사절단이 흡족하게 웃고 있다.





1965년 1월,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으로 다루었던 첫 1인당 국민소득 세자리 돌파. (110달러) 
1961년 70달러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낮았던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를 새해 첫 뉴스로 꼽았다. 
지나치게 과장된 그래프가 웃음을 자아내지만, 당시에는 매우 큰 소식이었던 모양.





파독 광부 예비소집에 모인 인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서독 탄광으로 떠나기 위한 광부 모집에 최종 합격한 20대의 젊은 광부들.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





배웅하는 가족, 지인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린 파독광부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서독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한복을 갖춰 입은 파독 간호사들이 가족들을 향해 손수건을 흔들고 있다.





독일에 도착한 파독 간호사들. 거동이 불편한 독일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40도가 넘는 온도, 지하 1200미터가 넘는 탄광의 끝자락에서 11시간의 작업을 끝마치고 나온 파독 광부들.
당시 파독 광부 평균연령은 만 25세, 파독 간호사 평균연령은 만 23세였다. (출처 :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삼천만이 힘을 합쳐 일하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의 표어가 방송되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삼천만 하나된 힘, 역사를 바꾸리라.'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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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제만 아니었다면 저때가 희망이 있던 낭만시대...였을까...
@hotman 무슨 또 대가리깨진 소리하는거지? 그나마 이승만이 독제하면서 3차산업이랑 기업에 몰빵하면서 지금 니가 댓글달고 주말에 영화도 보고하는게 미래산업에 투자해서에요 님아 역사 도 모르고 지껄이지마요 공부를하던가 좀;
@hotman ㄹㅇ 댜가리깨진소리하네
@YoonTaeil 뭔 이승만이 3차산업ㅋㅋㅋㅋㅋㅋㅋㅋ누가 누구보고 대가리 깨졌다 할 지능이 아니구만 실드치는건 자유인데 어줍잖게 팩트인척 하지마라 뚝배기 터트리고 싶으니까
자녀분들이 화면으로 젊은시절 또는 생전의 아빠나 엄마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떨까요? 신기하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한 귀중한 자료네요. 잘봤습니다.
감사한 분들~^^♡
나라와 가족을 위해 독일가서 하루를 끝내고 샤워할때의 기분이 어땠을까.. 가슴이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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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인, 조선의 라스푸틴 (3) - 1881
1881년 4월 1일, 조선 주재 하나부사 공사는 일본 외무경에게 서한을 보냅니다. 서한 말미에 그는 당시 조선 동향과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보고를 함께 올리죠. 이만손의 개항 불가 상소, 김홍집의 근신과 수신사 임명, 인천 개항 확대를 반대하며 상복을 입고 도끼 그린 종이를 등에 짊어진 채 궁궐 앞에 엎드린 남자 얘기 등등 모두 정부의 개화 정책에 반대하는 위정 척사파의 움직임에 대한 것이었죠. 그 기록 가운데에 이동인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 또한 있습니다. 하나. 참모관 이동인은 근래 민영익의 집에 동거하여 매우 기세가 좋았지만, 이만손 상소 이후에 자주 걱정하여 특히 3월 초순부터 10일 전후에는 몇 차례 공사관에 와서 공사가 위태로우니 호위를 증가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그 무렵에는 같은 충고를 하는 자도 있었지만, 공사관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동인은 위의 사건과 관련하여 신변이 위태롭다고 생각했는지, 3월 중순경부터 민 참판 댁을 떠나 종적을 알 수 없는 중에, 주상이 갑자기 본인을 불렀는데 도망쳐 달아나 부재하자 분노를 일으키시고 "변변치 못한 소인이 지금 형세의 어려움을 보고 헛되이 그 몸을 숨기고 자전의 계책을 삼았다. 혹시 원래 일본인인데 우리말에 통해 거짓으로 조선인이라 칭한 것이 아닌가!"라고 꾸짖으시면서부터, 조정의 백관도 일찍이 그 가볍고 말이 많음을 꾸짖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의 소행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주상께서는 더욱 역린하시어 '그는 산천에 은거한 것이 아니라 필시 원산진에 몸을 숨기고 일본으로 도망가려 할 것이다. 신속히 추포하여 오라'는 상의가 있어 잡으러 갔다고 합니다. 이만손이 올린 영남만인소. 이만손은 <조선책략>을 읽고 분개해 고종에게 이 책 주장의 불합리함을 알리는 상소를 올렸다고 합니다. 하나부사의 서신에는, 이만손이 당시 70여 세 노인으로 수백 명의 유생들을 데리고 궁궐 앞에 엎드려 무려 일주일 동안 시위를 했다고 적혀 있죠. 상소의 내용은 민씨 세력을 삭감, 인천 개항 불허, 외교 불허, 김홍집 귀국 이래 국가 규범이 바뀐 것을 책망, 무위소 개혁 등 그때까지 추진되었던 개화 정책을 모두 백지로 돌리고 김홍집을 탄핵하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고종은 이 상소를 읽고 매우 분노했고, 민씨 측에서도 몰래 소수에게 돈을 먹여 진정시켰다고 하네요. 나중에 그는 다시 한 번 상소를 올리려다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임오군란 이후 대원군이 집권하자 풀려났다고 합니다. 서신에서 하나부사는 이동인이 실종되었고, 그 행방을 조선 정부 측에서도 알지 못하는 듯 적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5월 9일, 승려 오쿠무라 엔신은 포교일기에 '밤에 총영사에게서 동인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적었습니다. 이동인이 암살당했다고 여긴 건 일본측 인사들뿐만이 아니어서, 5월 3일 주일영국공사관 어네스트 사토우는 자기 일기에 탁정식이 찾아와 이동인의 소식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탁정식은 이동인이 척사파에 의해 희생당한 게 아니라면 어딘가 살아 숨어있을 것이라고 했죠. 또 고종은 대원군을 의심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조선불교통사>란 기록에는 어느날 민영익의 양부 민태호가 이동인을 불러냈고, 이후 이동인의 종적이 사라졌다고 했죠. 대체 이동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1881년 음력 1월 5일, 조선 정부는 이동인을 통해 일본 공사 하나부사에게 무기와 기선 구입 계획 등을 알리도록 합니다. 다만 자금이 부족해 일본에서 100만원을 빌릴 수 있을지 여부를 하나부사에게 타전하죠. 하나부사는 정부가 보증을 선다면 가능하다고 화답합니다. 이후 음력 1월 10일, 하나부사는 일곱 개 조항의 조약안을 조선 측에 제시하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본이 타국과의 관계 중재(이른바 거중조정) 2. 부산포 절영도를 조차해 둔재소로 삼음 3. 일 군함이 조선 선박을 만나면 반드시 힘써 보호 4. 조선 선박, 사인이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 주재 일본 영사가 각국과의 정규 의거 힘써 보호 5. 조선 해육군제 확장, 공업진흥 위해 교사, 기술자가 필요할 시 일본 정부가 보응 6. 조선 군, 공업 등 기술 전수받을 사람들을 일본에 파견할 필요가 있어 선발해 보낸다면 일본 정부가 적당한 학교로 보내 열심히 교수. 소요 학자금을 본국 전수성원들과 동일하게 할 것. 7. 조선이 필요로 하는 총포, 전함 등을 일본이 구입을 주선해 일본정부가 스스로 사용하는 물품 구입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도움. 조선 정부는 이상 7개 조항 중 2조 이외 나머지는 약간 자구수정만 해서 대부분 수용합니다. 또 그와는 별개로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하고 아울러 포함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교섭단을 보내는 일도 차곡차곡 추진중이었죠. 일본 공사관에 공병 소위를 파견 요청해 교련병대인 별기군 창설을 도모하는 한편, 혹시나 모를 일본측 불법 점거를 차단하기 위해 절영도에 진을 설치해 방어태세를 갖추기도 했습니다. 특히 시찰단 파견 문제는 국내외 반발을 우려해 일본 측에조차 공식 통보를 하지 않고 비밀리에 추진합니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은 이동인을 통해 계속해 하나부사 공사에게 전해지죠. 이동인은 '나는 그 전권을 맡았으므로 우리 정부에서 일본 정부에 알리는 것으로 공증을 삼으려 한다. 각하 또한 도와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부사는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믿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공사는 여기 있으면서 아직 조선 정부로부터 의뢰하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와 같다면 공사가 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다. 공사가 만약 공식적인 보고를 결여하면 일본 정부가 믿으려 해도 믿을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동인은 '반드시 강수관이 의뢰할 것입니다. 다만 이 몇 가지 일은 모두 손바닥 안의 비밀스런 일로 우리 당의 몇 명 외에는 절대로 아는 이가 없다. 망령되이 타인에게 알리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들이 출발한 후가 아니면 강수관도 이를 말하기를 꺼려 미정이라고 하면서 말하지 않는다. 아마 2품, 3품의 귀인 7,8명일 것이다.(...)' 이동인은 그 후 몇 차례 더 일본 공사관을 찾아와 신사유람단으로 파견될 인물 구성이나 성향 등을 알려주다가 음력 1월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출발한다고 알려옵니다. 이때 갑자기 공사관을 찾은 이동인이 순도 100%은 60냥과 호피 20매를 가져와 여비로 쓸 물품이라며 하나부사 공사가 부산까지 옮겨달라고 의뢰하죠. 하나부사는 늦어도 지장없다면 처리해주겠다고 하고 맡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동인은 공무 사정으로 지연된다고 하면서 한참을 더 서울에 머물렀죠. 또 돈을 빌려 총포, 군함 등을 사는 일이 내부 반대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단 사실도 은연중에 알립니다. 하나부사는 이동인이 일본과의 관세 교섭 준비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걸로 짐작하죠. 그러던 중 3월 15일 전후로 이동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일본측, 개화당, 조선 정부, 영국 등 이동인과 안면이 있던 그 어느 인물도 그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자취를 감췄는지 알 수 없게 되죠.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몇몇 의심가는 정황은 있습니다. 1. 이동인이 본래 일본인 첩자이다 이동인이 사라지자 고종이 화를 내며 그가 본래 일본인이 아니냐고 했죠. 또 지난번 소개한 <나암수록>에선 이동인은 본래 서양술 하는 왜승이라고 했죠. 그의 출신이나 기록에 등장하기 전 그의 이력 등을 전혀 알 수 없기에 이같은 의문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는 임무를 마치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서 일본으로 되돌아간 걸까요? 2. 대원군 측 인물이 살해했다. 이동인이 고종의 밀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청국 공사 하여장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유대치가 이동인에게 대원군을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그가 이동인을 매국노로 규정해 체포하려 한다면서요. 당시 대원군은 권좌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정부 안팎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부사가 파악하길 조정 내 개화파는 소수이고, 나머지는 전부 척사파로 대원군이 그 수장이라고까지 했으니까요. 1881년 8월 대원군 추종 세력이 대원군의 서장자인 이재선을 보위해 군사 정변을 일으키려다가 발각되는 일도 있었고, 결국 1882년 6월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잠시 재집권하기도 했죠. 탁정식도 이동인이 대원군 혹은 김홍집과 이조년 두 사람에게 모살당했다고 추정했습니다. 3. 개화파 내 분열로 살해당했다. 탁정식은 당시 개화파 내부에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이동인은 그 성격 때문에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결정해 처리하는 것이 심해서 걸핏하면 김홍집을 능가하려 했다고 했죠. 두 사람이 견해 차이를 보인 것은 외교 문제였던 모양입니다. 김홍집과 이조년은 <조선책략>에서 보듯 일, 청의 의견도 있으니 미국이나 독일과 결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동인은 무슨 이유에선지 영국과 친하여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했다는 거죠. 심지어 이동인의 주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한 모양입니다. 탁정식은 이것 때문에 이동인이 영국인과 사통한 자가 아닌가 김홍집의 의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 그가 영국인과 친하게 교제한 이력을 문제삼은 거죠. 이외에도 일본 등 외국에서 이동인을 암살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 모양입니다. 하나 확실한 건 그가 평소 적이 많았고, 남 눈치도 보지 않고 제가 옳다고 믿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조선이 자력으로 문명 개화를 이룰 수 없다고 믿었고, 고종이 개화 정책을 추진하는 와중에도 일본과 영국 등에 접촉해 군함과 병사들로 위협해 강제로 문호를 열어야 한다고 했죠. 친교 관계를 이용해 외국 외교관들과 자주 마나 조선 내정에 대한 정보를 주었고, 특히 일본 공사와 친밀했습니다. 만약 이동인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지 않고 신사 유람단 파견 및 조미수호조약 채결에 기여했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그는 고종의 신임을 받아 더 많은 외교 및 개화 정책에 개입했을지 모릅니다. 그때는 정말 러시아의 라스푸틴같은 인물이 되어 더 선명한 족적을 남겼을수도 있죠. 어쩌면 외세의 개입을 방조 혹은 찬동해 이완용보다 더한 매국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예상은 누구도 하기 어렵겠죠. 이동인의 짧은 행적을 보는 내내 이것이 마치 1884년의 갑신정변으로 한순간 정권을 잡는 개화파의 운명을 상징하는 듯한 착각도 들었습니다. 이동인과 관계를 맺었던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당은 김홍집 등 온건 개화파의 정책에 반발해 그동안 포섭한 각계각층 인사를 총동원해 정변을 일으키고 고종을 옹립해 자신들의 정책을 펼치죠. 하지만 불과 3일만에 청군이 개입하면서 개혁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거기다 이들의 정변을 계기로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하게 되면서 앞으로 일어날 청일전쟁의 불씨가 형성되죠. 이동인이 고종의 신임을 얻은 그 짧은 순간은 묘하게 김옥균의 3일 천하를 상기시킵니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혁명이란 부분이 둘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하는 걸까요? 이동인의 사진. 구한말 근대 문명 개화에 눈뜬 그와 같은 개화승들은 이동인 외에도 몇 명이 더 있었던 듯합니다. 하지만 이동인처럼 뚜렷하게 인상을 남긴 인물은 또 없죠. 각국 외교 인사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견문을 익힌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천하게 여겼던 승려란 신분 탓에 국가 전면에 나설 수는 없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앞서 적었듯 의심스러운 정체와 성향, 독불장군 식의 성격도 문제가 되고요.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을지, 여러모로 상상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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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뉴 멕시코 주에서 1891년부터 1894년초까지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수천 마리의 양과 소, 염소를 잡아먹는 늑대와 로보가 출몰함. 많은 농장주들이 로보를 잡으려고 현상금까지 걸어가며 노력했으나 교활하고 머리가 좋은 로보는 절대 잡히지 않음. 동물학자였던 어니스트 시튼은 이로 인해 무분별한 학살이 일어날까 우려해 직접 로보를 잡으려 1년간 노력했으나 실패함. 마지막 수단으로 시튼은 늑대왕의 아내인 블랑카를 먼저 생포하는데 성공. 당시 덫에 붙잡힌 블랑카. 그 이후 죽은 여친을 못 잊은 로보는 마을로 계속해서 찾아오게 되고 블랑카로 인해 로보가 예전과 달리 부주의해졌음을 눈치챈 시튼은 130개의 덫에 통나무를 연결해두고 죽은 블랑카의 시체를 끌고 다니며 그 주변에 그녀의 체취를 남김 심지어 한쪽 발을 잘라서 블랑카의 발자국도 남겨놓음 다음날 로보의 울음소리를 들은 시튼은 덫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보았고 그 곳엔 네 다리가 모두 덫에 걸려잇는 거대한 늑대 로보를 발견. 여느때 같으면 쉽게 알아차렸을 함정을 자신의 연인 블랑카의 발자국을 보고 이성을 잃고 달려오다 덫에 걸리고 만 것. 당시 덫에 붙잡힌 로보 그렇게 모든 덫을 피해가던 로보도 슬픔과 분노에 휘말려 결국 허무하게 붙잡히게 됨. 이후 인간들이 주는 먹이와 물을 모두 거부하고 스스로 굶어죽게 됨. 시튼은 이후 비열한 방법으로 로보를 잡았다고 안타까워하며 블랑카와 함께 묻어줬다고 함. 남아있는 로보의 털가죽 출처 : 에펨코리아 모야 ㅠㅠ 인간이 제일 나빠....... 시체를 끌고 다니고 발을 잘라 걸어놓다니...... 악마: (고개 절레절레)
여름 휴가때 가볍게 읽기 딱 좋은 한국사 책 3
올 여름은 그 어느해보다 많은 분들이 휴가를 가까운 곳이나 집에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 곳이 집이든 아니든 여름휴가를 슬기롭게 보내는 것으로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 한권 골라 보는것은 어떨까?  최근에 출간되어 독자들의 호응이 좋은 한국사 책 3권은 알찬 북캉스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1.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한국사 편-  이 책은 99%가 모르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주는가리지날 시리즈로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제목으로 출간되고 있으며 이번 한국사편은 네번째 이야기다. 조홍석 저자는30년 역사 덕후로서 교과서에 없는 놀라운 한국사 이야기를 고조선부터 대한민국 탄생까지 시간의 흐름 순서로 다루고 있다. 우산국(울릉도, 독도)을 정벌한 이사부 장군의 알려지지 않은 최대 업적,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사에서 최대 규모의 군사가 동원된 전투였던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승리에 관한 진실, 토번제국(티베트)의 성장이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미친 영향,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 1인자였던 장보고에 관한 진실, 북송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소동파가 고려를 증오한 이유, 허균이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가 아닌 이유, 한석봉과 어머니의 심야 배틀 스토리의 진짜 주인공, 임진왜란의 6가지 승리요인, 19세기 말 그레이트 게임이 한반도에서 벌어진 이유, 그리고 우리나라 이름 ‘대한민국’을 두 글자로 줄일 때 ‘한국’이 아닌 ‘대한’이어야 하는 이유 등, 우리 민족의 긴 역사 속에서 활약했던 수많은 인물들의 오리지날 이야기를 밝혀줌으로써 저자는 가리지날(가짜 오리지날) 상식을 낱낱이 깨뜨려준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그림, 사진, 일러스트 등이 풍부하며 저자 특유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구어체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잠시 책속에 거문도 점령 사건을 들여다 보자. .....거문도 점령에 대해 가장 늦게 안 곳이 우리의  조선 정부인것을 알고 계셨나요? 뒤늦게 거문도의 존재를 파악한 조선 정부가 영국에 항의하지만, 영국은 조선 정부를 깔보고 반환하지 않으려 들죠. 그래서 결국 청이 종주국으로서 대신 나섭니다. 조선은 청의 속국이라 외교권이 없다며 조선 영토 점령은 청에 대한 배반이라고 주장하면서 조선 정부 가 보낸 속국 인정 서류까지 제출하게 되지요..... 청・프・러・일 대사 : “소식 들었냐해? 영국 넘들이 너네 거문도 섬을 점령했다스키. 빨리 영국에 항의해라니뽄!” 조선 관리 : “거문도? 거제도 아니고? 어제도 거제도 멸치 진상품 잘 받았는데~.” 청・프・러・일 대사 : “아놔다해~. 그 섬 말고 거문도다부르봉. 답답 하니뽄. 너넨 자기네 섬 이름도 리스트 안하나타샤?” 조선 관리 : “리얼리? 우리나라에 그런 섬이 있다고종? 근데 왜 전라도 감영에선 연락이 없지개판?” 영국 대사 : “음, 우리가 점령한 건 맞는데…, 그게 너네 섬이냐? 우린 임자 없는 섬인 줄 알았다” 일본 대사 : “오호~, 그렇게 하면 되는구나? 다음에 우리도 저 동해 울릉도 옆 작은 섬에다 똑같이 써먹어야겠다.” 2.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자 역사 관련 저서를 많이 출간했고 방송에서도 간간히 볼 수 있는 심용환 저자의 신작이다. 매일 하루 한페이지만 읽으면 된다는 콘셉의 한국사 책이다.  한국사에 대해 교양을 쌓고 싶은 사람이라면 보고싶은 부분을 골라서 읽으면 된다. 각 페이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독립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큰 부담없이 볼 수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건, 인물, 장소, 유적·유물, 문화, 학문·철학, 명문장 총 일곱 분야의 지식을 다루고 있다. 한국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든,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든 백과사전 스타일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읽을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 페이지 안에서도 책을 읽는 방법과 지침등이 상세히 담겨있다. 3. <읽고 나면 입이 근질근질해지는 한국사> 우리에게 글보다는 만화로 더 친숙한 정훈이 작가가 한국사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역사의 드러난 전면 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가 역사자료 수집이 취미이고 얼마나 역사 덕후인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등 수많은 역사책 속에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나 인물을 찾아내 주목하는 역사 카툰이다. 작가 특유의 개성넘치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생생한 과거여행을 하게 한다. 저자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에 그려진 역사는 대부분 한국사의 큰 줄기에서 비껴나갔거나 거대한 역사적 사건에 감춰진 뒷이야기입니다. 굳이 외우려 애쓰지 않고 재미삼아 읽으면 되는 것들이지요. 하지만 모든 역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사람사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교과서에 나올법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왜, 어떤 배경에서 일어났는지도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책을 읽다 보면 TV 사극에서 보여주는 정형화된 조선시대와는 다른, 뜻밖의 조선을 만날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선조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색다른 시선을 제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