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896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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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쉬었음' 늘어만 가는 구직 기피자들

뭐 시발 뽑기라도 하고 취직 언제하냐고 욕해라
인턴뺑뺑이 조지게 시키지나 말고
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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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일용직이라도 뛰세요 늬들 손에는 금박이라도 발라놨냐?
@rokmc62 근데 그 건설 일용직을 여성은 못한다는 점,집 근처가 아니면 출근이 힘들 수도 있다는 점도 있어요...일찍 시작하니까 대중교통은 힘들 수도 있다는 점...그리고 그 현장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저들 중 안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못가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전부를 그렇게 말하면 안될것같아요...
@wolf3695 하하하 답글이 달리다니.. 일단 일용직 사무소라도 가보면 여성들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음 그리고 출근만 2시간 걸려서 간적도 있어요 버스타고 지하칠 타고 다시 버스 도착 약 2시간 5~6만원 하던 시절 이였는데 그거라도 벌려고 갔음 넋 놓고 방에 있는 것 보다 그거라도 하다 보면 또 다른 세상이 보임 내가 생각하기를 어디 대학 나와서 스스로 엘리트 의식 또는 패배 의식에 사로 잡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얘기에요
@wolf3695 다른 단기 일이라도 구하다구하다 없다면 그거라도 해봐야 겠죠 젋으니까
제도를 만들면 항상 빈틈을 찾아내서 악용하지.. 인턴? 의사뽑냐! **놈드라
인턴 없애야 함. 인턴 경험은 마치 조별 과제와 같음. 악 밖에 안 남음..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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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이라크 신도시에서 보이는 익숙한 풍경
한화E&C가 건설중인 이라크 바스미야 신도시 근방 PC(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폴리티컬 코렉트니스 아님) 공법으로 제작된 아파트 벽들 신도시 옆에 아예 공장 자체를 새로 지어서 아파트 자재를 직송한다. 거푸집에 철근과 콘크리트로 대량 생산하는 방식이다. 현장에서는 통짜로 만들어진 벽, 자재들을 조립하면 됨. 조립한 다음 마감공사, 방수공사 등을 진행한다. 수십 년 전 국내에서 PC아파트가 유행하던 시절엔 끔찍한 마감과 날림공사로 금이 가는 등 안전상의 문제가 잇따랐으나 시간이 흘러 개선되었고, 제대로 된 업체가 시공하면 날림공사 없이 튼튼하다고 함. 어디서 많이 보던 비주얼인데... '주공 x단지' 하고 붙여주고 싶다. 참고로 가로수는 야자수이다. 바스미야 시티는 도시 자체를 완전히 새로 짓는 사업인데, 이게 도시의 '한 조각' 임. 이렇게 분할된 블럭 여럿이 모여 신도시를 이루게 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살기 좋은 새 집을 빠르고 저렵하게 공급하는 것. 10만호 공급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주택 x만호 공급정책이라고 하니까 정책 이름이 웬지 불길하긴 한데 한국 건설사들이 쌓은 짬밥을 믿어보자. 작은 평형. 어디서 많이 본 형태인데... 오늘날 한국에서야 소형평수, 원룸 등등이 유행이지만 이라크의 가족 단위 주거를 위해 공급되므로 30평대부터 시작이다. 6만 3천 달러라니 세상에 이런 혜자 가격이 있나. 특징으로는 바닥이 타일이라는 점과, 중동의 날씨 때문에 창문이 작다는 것. 중간 평형. 크기만 좀 커졌을 뿐, 별 차이는 없다. 아파트 TYPE A, TYPE B 처럼 방향이나 넓이 조금 외엔 별 차이 없는 구성이라고 생각하면 편함. 넓은 평형. 40평대로 방이 더 많다. 40평대 신축 아파트가 8만 8천 달러라니 한국에서는 어디 산골 아파트로 가도 저 가격엔 안되겠지 유일하게 중동답다고 느껴지는 건 베란다 모양 정도? 사막에 지어지는 만큼 땅 걱정은 없어도 주차장은 옛날 아파트처럼 지상에 주차하는 방식이다. 스쿨존... 이것은 참 흔한 것이군요. 아파트 사이에 학교 지어진거 진짜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인데. 심지어 교실도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이역만리 떨어진 도시에서 느껴지는 이 친숙함은 뭐지? 현재 일부 구획(A블럭으로 추정)은 이미 조경까지 마친 상태. 본래 풀 한포기 없는 땅이었기에 저 풀, 나무는 전부 조경작업으로 심은 것. 인터뷰 내용등을 볼때, '신속하고 체계적인 전후복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였음. 중동 사막 한복판에서 뭔지 모를 친근함이 든다. [출처 : 오늘의유머]
80년대 서울대 물리학과 리즈시절 썰.txt
아는 사람은 아는 80년대 S 대 물리학과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그 학과는 학력고사 평균 성적이 전국 최고 수준이었고 그 중에서도 진짜 공부를 좋아하는 괴짜들만 모여 있었던 전설의 학과 였습니다. 졸업 후 진로를 우선시 하는 지금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이제는 다시는 그런 친구들이 모인 학과가 생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났을 때 여기 그 당시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 보려고 해요. 1. 처음 입학했을 때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서로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경시대회 (지금의 수학올림피아드)전국 대회에서 입상한 친구들이 모두 우리 과에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승자가 두 명이었다. 알고 보니 한 친구의 학교 교장이 입상자 수를 늘리려 이과인 친구를 문과로 출전시켰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과와 문과로 나누어 시합을 했다.) 2. 신입생으로 아직 서로 서먹할 때 과방(당시에는 과라운지라 했다)에 친구들이 모여 떠들다 아이큐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아이큐가 높다고 나름 자신하고 있었는데 대화 중 한 마디도 못했다. 모여 있던 10명 정도 친구들이 바로 위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 아이큐 150 안되는 사람이 있어?" 150은 당시 만점이었는데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한 학년 900명의 나름 유서 깊은 고등학교였지만 아이큐 140 이상은 두 명 뿐이었다. 한 명이 나였고 다른 친구는 같은 대학 화학과에 입학했다. 900 명중 150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거기 모인 10명이 나만 빼고 모두 만점을 받았던 것이다. 그 중 두 명은 전문 기관에 불려가 정밀 검사를 다시 받아 자신의 아이큐를 알고 있었다. 한 친구는 168이었고, 다른 여자 동기는 167이었다. 168인 친구는 우리 과 꼴지로 학점 미달로 퇴학했다. 여자 동기는 성적이 중 상 정도였다. 3.  한 학년 후배가 있었는데 실제 나이는 우리와 같았다. 같은 대학 법대 합격했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바로 자퇴하고 다시 우리 과에 합격한 친구다. 그 친구 4학년때 내가 조교를 했는데 시험을 너무 못 봐서 불러 물어보니 자기는 수학과 대학원으로 합격했고 D+ 만 받아도 졸업은 가능해서 괜찮다고 여유를 부렸다. 교수님 성향상 너는 무조건 D- 라고 말해 주니 그제서야 사색이 되어 교수님 찾아가 사정했지만 결국 졸업을 못했다. 그 친구 졸업 기수가 44회였는데 졸업 예정자가 4445명이었으나 그 친구가 졸업 못하는 바람에 4444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4. 후배 중에 졸업하고 미국 명문대 대학원에 합격장을 받은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병역문제가 걸려 재검을 기다리느라 유학을 가지 못했다. 몇 달 후 도서관에서 그 후배를 마주쳤는데 유학이 미뤄지자 시간 나는 김에 다른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 후배는 그 다음 해 사시에 수석을 했다. 그 친구 때문에 사시는 1년만 공부하면 수석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과에 퍼졌었다. 5. 당시만 해도 우리 과에서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모두 대학으로 갔다. 교수가 되어 연구를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고나 할까. 성적이 중위권서부터 L 전자나 S 전자로 갔었다. 그 친구들이 당시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S 전자 사장이 매년 물리과 대학원 신입생들을 용인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에 초청해 회식을 했었다. 우리도 거기 불려가 저녁을 먹었는데, 식사 자리에서 사장이 연설을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S 대 공대생들은 병역특례가 끝나도 대부분 회사에 남습니다. 하지만 물리과 졸업생들은 대부분 병역특례(당시 5년) 끝나면 떠나버립니다. 아마 여러 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 얘기에 우리는 조금 당황했었다. 그 뒤에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물리과 졸업생들이 5년간 회사에 한 기여가 다른 사람들이 평생 근무하면서 한 일보다 더 많습니다. 5년후에 떠나도 상관 없으니까 부디 우리 S 전자로 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진짜 레전드네... 저 때 저 사람들은 지금 다 뭐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