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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㉓/ 전후 황금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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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젊은 시절의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惠介)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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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났다. 패전의 책임은 물론 일본을 비롯한 추축 동맹국들에게 돌아갔고 그 형벌로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두 번이나 맞는 참사를 낳았다. 일본은 무모한 전쟁을 벌였고 300만명 넘는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으며 전 국토는 피폭으로 신음했다.

그러나 전쟁 전 필름이 없다는 이유로 흩어져 작업을 이어갔거나 혹은 종군, 은둔을 해야 했던 영화인들에게는 패전의 시점에서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이며 뒤이어 올 예술적, 기술적, 사회적, 정치적 혼돈을 준비해야 했다. 비록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 도래했지만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 전후 가장 중요한 영화인이었던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惠介)가 데뷔를 한 바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스가타 산시로’(姿三四郎)를 내놓는데 1883년 경 유도명인(柔道名人)의 모범적인 삶을 통해서 인생을 알아간다는 스토리로, 도미다 쓰네오(富田常雄)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검열이 매우 혹독해서 1800피트(약 600미터)나 되는 분량의 장면들이 삭제되고 만다. 게다가 강요에 의해 ‘속 스기타 산사로’(1945)를 촬영하게 되지만 정작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만다.

그나마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무이한 민족적 영화인 ‘가장 아름다운 자(一番美し)’를 통해 앞으로 그가 보여줄 휴머니즘의 흔적을, 첫 시대극이었으나 미군정 하에서 ‘봉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1952년에서야 개봉된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나이’(虎の尾を踏む男達, 1945)를 통해 존재감을 알리게 된다.




이에 반하여 기노시타 게이스케는 애국적이고 풍자적인 코미디 ‘꽃피는 항구’(港, Port of Flowers, 1943)와 모성적 감상주의로 검열을 받은 ‘육군’(陸軍, The Army, 1944)을 통해 건강한 가족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쇼치쿠(松竹)만의 특성인 가족 드라마와 멜러 드라마라는 양축에 잘 어울렸을 뿐만 아니라 도쿄 보다는 지방을 무대로 하면서 코미디에 센티멘털리즘을 섞은 그만의 스토리텔링은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위의 두 사람이 일본 본토에서 데뷔를 하는 동안 다자카 도모타카(田坂具隆)는 히로시마에서 직접 원자폭탄을 맞아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는 의욕을 한동안 상실하고 제자인 신도 가네토(新藤兼人)의 새로운 시작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는데 그는훗날 일본 독립영화계의 아버지로 이름을 날렸다.

신도 가네토는 두고두고 이때를 회고하던 끝에 1975년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미조구치 겐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생애, 미조구치 겐지(ある映畵監督の生涯, 溝口健二の記錄’)를 연출하기도 했다. 마키노 마사히로(雅弘)는 18세에 영화감독으로 데뷔 26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로 연출하여 일본 영화사의 전설이 된 인물이지만 이 때 만큼은 미군들을 환영하기 위해 촬영소 창고에 넣어 둔 악기를 꺼내 급히 재즈 밴드를 조직한다.

훗날 일본 활극의 거장으로 존경 받게 될 인물이었지만 그의 아버지 마키노 쇼조가 ‘일본영화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물려 받은 재능도 뛰어나서 그의 영화는 ‘오락영화의 정수’로 불리기도 한다. 미조구치 겐지가 약 100편, 오즈 야스지로가 50여편, 구로사와 아키라가 약 40편의 작품을 연출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편수를 자랑하게 되는데 일본에서 볼 때 ‘점령군’에 해당하는 미군을 그것도 패전 후 환영하기 위해 재즈밴드를 만들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가 왜 전설이 될 수 있었는지 짐작할 대목이다.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는 싱가포르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매일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있었고 우치다 도무(内田常次郎)는 만주에서 만에이(滿映)의 아마카스 마사히코(甘粕正彦)가의 자살을 보았고 이후 8년간 중국영화인에게 기술지도를 했다. 우치다 도무는 사무라이 액션 영화의 거장으로서 장렬한 클라이맥스가 일품인 감독인데 전쟁 이후 황금기에 시작된 장르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사사키 야스시(佐佐木康)의 ‘산들바람’(そよかぜ, そよ風, Nostalgic Blues, 1945)이 1945년 10월 전후 최초의 영화로 쇼지쿠에서 개봉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한국의 포털정보에는 이 정보가 등장하지 않고 1946년에 ‘스무살의 청춘’(はたちの青春, 1946)을 연출했다는 기록만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그는 여러 작품을 이후에도 연출했을뿐더러 ‘산들바람’의 경우 유튜브에도 전편 영화를 감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폐한 도쿄를 떠난 나미키 미치코(並木路子)가 고향의 과수원을 가로 지르면서 노래한 ‘사과의 노래’(リンゴの唄)가 크게 히트했다. 이 영화는 현재도 유튜브에 무료로 전편이 공개되어 있는데 ‘そよかぜ’를 검색하면 열람이 가능하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전후 GHQ의 검열을 통과 한 첫 번째 영화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GHQ란 ‘General Head-Quarters’의 약자인데 1945년 이후 미점령군 사령부를 뜻했다. 미군은 군정을 실시하면서 미디어와 영화산업의 민주화를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이 때 등장하는 기구가 GHQ 산하의 시민검열분과(CCD)였고 다른 하나가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 산하의 민간정보교육부(CIE)였다.

이중 CIE가 영화검열에 관한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받았으며 일본측 제작자는 기획 및 시나리오 등을 모두 미리 영어로 번역하여 허가를 받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완성된 영화 역시 CCD에서 두 번째 검열을 받았다. CIE의 중심은 미국 민간인들이었으나 CCD는 군무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들의 목적은 군국주의적이거나 봉건주의적인 잔재들 그리고 미국에게 불이익을 주는 영화들을 엄격하게 걸러냈다.

물론 사회주의 계열의 평론가들은 이러한 검열을 사실상 군사 검열이며 반공산주의를 걸러냈다고 폄하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개의 일본영화 관련 서적들이 프랑스에 집중되어 있고 이 작가들이 대부분 좌파지식인인 경우가 많아서 일어난 오해로 실제로 일본문화 전반에 드러난 국가주의나 맹목적 애국주의, 봉건적 충성심, 당연한 복수, 할복으로 대표하는 자살에 관한 긍정적 묘사, 잔인무도한 폭력 등 항목이 모두 포함된 검열이었다.

당시 CIE 과장이었던 데이비드 콘티(David Conte)가 전쟁중 일본영화들을 분석한 이후 작성한 ‘제작 금지 규정 리스트’를 근거로 한 것으로, 1945년 11월 13항에 걸쳐 검열기준을 만들었다. 오늘날 이따금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 시절로 회귀하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는 시선들이 많은데 이런 검열기준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한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미군의 점령 초기 사회개혁을 통해 농지개혁이나 재벌해체가 이뤄지고 후기에 반공산주의가 부각되는 시기 가장 혜택을 누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일본공산당(PCJ)’이었다. 이들은 이념적으로 전쟁과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영화들이 장려되는것을 역으로 이용했다. 이마이 타다시(今井正), 가메이 후미오(亀井文夫), 야마모토 사츠오(山本薩夫) 등이 공동 연출한 전쟁과 평화(戰爭と平和, War And Peace, 1947)가 그 대표작이다.




이마이 타다시는 전쟁 후 좌익의 독립영화 제작 운동을 촉발시킨 좌파 이데올로기의 전도사였고 가메이 후미오는 일본에서 기록영화(다큐멘터리)를 가장 먼저 만든 감독이었으며 야마모토 사츠오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기로 유명한 감독으로 한국에는 ‘하얀거탑(白い巨塔, 1966)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이들은 1948년에 극에 달한 도호 쟁의(東宝争議)의 리더 중 하나로 회사에 맞섰으며 이중 야마모토 사츠오는 1948년 도호(東宝)를 떠나 공산주의 비평가인 이와사와 아키라 등과 함께 신세이에이가샤(新星映畵社)를 설립한 후 폭력의 거리(暴力の街, 1950)등을 만들었다. 동시에 미군정의 검열에 저항하는 이른바 ‘레드퍼지(レッドパージ: 연합군 점령 하의 일본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부 총사령관의 지령에 의해 일본공산당 소속 당원이나 동조자를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서 해고한 움직임)’ 영화인들의 조직적 저항을 이끌어 내려 했다.

이 전통은 1955년 야마모토 프로(山本プロで)의 설립으로도 이어져 전국농촌영화협회의 작품인 ‘짐수레의 노래’(荷車の歌, 1959), 일본 교원 노동조합(日教組)의 재정적 후원으로 제작한 ‘인간의 벽’(人間の壁, 1959) 등으로 투쟁적인 영화들을 만들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일본 공산당은 자신들의 나라가 전범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미군정과의 투쟁을 자신들의 세력 확장 수단으로 삼게 되는데 단순한 미군정에 대한 거부감, 패망에 대한 허탈감에 겹쳐 ‘반미(反美)’정서가 일어나자 이를 드러내 놓고 이용하는 기민함을 보인다.

이러한 역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 사회의 병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영화인들 대부분이 독립프로덕션의 한계를 절감하는 한편,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는데 노동조합의 지지와 압력은 결국 또 다른 자신들만의 ‘검열’을 통해 스토리의 앞뒤가 맞지 않는 파업, 농촌운동 등 장면을 꾸며 넣도록 하여 반감을 샀다. 이 때문에 영화인들이 다시 메이저 영화사로 복귀하게 되는데 1951년 도에이(東映) 등의 설립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았다.<미국 LA=이훈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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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 로버트 A. 하인라인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SF 소설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한국 SF 소설들의 힘 덕분일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유행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기쁠 따름이다.(어린아이들에게 SF 소설은 과학자의 꿈을 길러주기 마련이니까.) 점점 발전해가는 한국 SF 소설계의 흐름에 발맞춰 오랜만에 SF 소설을 한 번 읽어볼까 하고 집어 든 책이 바로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이었다. 이 소설의 저자인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SF 문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이 소설의 가장 뒷부분에 나오는 작품 해설 및 역자 후기 부분을 보면 아시모프는 SF를 통해 박학다식과 위트를, 클라크는 SF에 과학적 엄밀성과 철학적 깊이를 더했고 하인라인은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SF의 재미가 무엇인지 보여줬다고 한다.(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자젤>이란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박학다식은 몰라도 위트 하나는 확실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하인라인의 대표작인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을 읽고 가장 먼저 남은 감상은 아쉬움이었다. 그것도 과학적 깊이나 오류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SF의 '재미' 부분에서 다가오는 아쉬움이라 안타까웠다. 소설의 주인공은 킵이라는 남학생이다. 이제 곧 대학을 가야 할 나이의 킵은 달에 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달 여행을 상품으로 건 비누 회사의 표어 선발 이벤트에 5,000 여장의 표어를 보내지만 중복 당첨이 발생할 경우 가장 먼저 표어가 도착한 사람에게 달 여행 기회를 준다는 규칙에 의해 달 여행의 기회가 아니라 중고 우주복(실제로 우주인이 우주에서 입었던)을 받게 된다. 언젠가 달에 가겠다는 의지로 우주복을 고치고 닦아 새것처럼 만든 킵은 대학에 갈 돈을 벌기 위해 우주복을 팔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만 입어보자는 생각으로 동네 들판에서 우주복을 입고 교신 장치를 건드리며 논다. 그때 갑자기 잡힌 신호에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응답을 보낸 킵. (이런 소설에서는 으레) 당연하게도 우주선이 착륙하고 킵은 납치당한다. 지구를 지배하려는 외계인 벌레 머리에게. 끔찍하게 생긴 벌레 머리는 엄마 생물이라는 외계인(킵에게 우호적이며 엄마 생물이라는 명칭처럼 가까이 가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생명체다.)과 피위라는 여자 아이도 함께 납치한 상태였다. 킵과 피위 그리고 엄마 생물이 힘을 합쳐 벌레 머리에게서 탈출하는 우주 활극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벌레 머리에게서 킵과 피위, 엄마 생물이 힘을 합쳐 탈출하는 내용이 소설의 중후반까지 쭉 이어진다. 탈출과 좌절의 반복이 계속되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에서 그리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보통 재밌다고 느끼는 장르 소설들의 경우 서사에 이끌려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되곤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자야 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못 덮겠어!"가 아니라 "자야 되니까 덮고 내일 보지 뭐." 하는 느낌이랄까. SF 3대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의 대표작이라 너무 기대를 한 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의 설정과 묘사는 흥미로웠다. 엄마 생물이라는 생명체와 그들의 특이한 의사소통 방식, 오스카(킵이 자신의 우주복에 붙인 이름이다.)에 대한 세세한 묘사, 달과 명왕성 등 미지의 행성에 대한 실감 나는 설명 등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에서 끝이었다. 그 흥미가 서사의 재미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히, 예상 가능하게 흘러간다. 필사의 탈출, 좌절, 또 한 번의 탈출, 좌절, 다시 또 탈출, 좌절......  끝없이 탈출과 좌절의 반복이 이어질 뿐, 무언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나 긴장되는 순간이 없었다. 그건 아마 이 소설이 60년도 더 된 1958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이라 그런 듯하다. 긴 시간 동안 이미 너무나 많은 SF 소설, 영화,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과거에는 너무나 흥미로웠을 서사가 지금은 당연히 예상 가능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60년도 더 지난 소설에 지금의 시각으로 재미를 찾는 것이 조금은 매정할 수도 있지만 거짓을 말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앞부분은 재미없었다 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중후반을 넘어서서 지루한 탈출 과정을 지나면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외계 종족과 인류, 행성과 별의 존망, 생명의 존재 의의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갑자기 엮여 나가기 시작하는데 그 상상력과 이야기 진행, 질문을 던지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주제 의식은 하인라인이 SF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납득시켰다. 후반부가 앞의 탈출 과정에 비해 짧은 것이 엄청나게 아쉬울 정도였다. "뭐야, 이게 끝이야? 킵이랑 피위 지구로 돌려보내지 말고 더 장황하게 써 달라고!" 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반부만큼은 바로 어제 이 소설이 출간되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뛰어난 SF 소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반부까지의 지루함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60년이 넘은 소설이 이 정도의 감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소설이 지닌 가치와 생명력의 대단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탈출 과정도 재미없어서 덮어버리고 싶은 정도는 아니고 충분히 읽을 만하다. 하인라인의 명성과 내 기대에 비해 아쉬운 정도라고 말하면 되려나.)  좋은 SF 소설이고 60년의 세월을 감안하면 아주 뛰어난 SF 소설이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 한 문장 "... 당신은 우리에게 예술이 없다고 했습니다. 파르테논을 본 적이 있나요?" "당신들이 전쟁 중에 폭파했지."
도요타 베스트셀링카 렉서스도 안 팔린다
> 일본 자동차 8월 한국 판매 전년 대비 57% 하락 > 도요타 렉서스도 7월과 비교하면 39% 떨어져 > 수입차 판매량과 더불어 신규등록대수도 감소세 맥주, 의류, 자동차 등 일본 제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보이콧이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 영자 매체 재팬투데이(japantoday)는 4일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8월 한 달 한국에서 급격한 매출 감소를 기록했다”(Japanese automakers posted sharper sales falls in South Korea in Augus)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외교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일본 차량에 대한 소비자 불매 운동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했다. 재팬투데이에 따르면,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제조업체들은 지난 8월 한국에서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무려 57% 하락했다. 판매대수는 1398대로, 7월 감소세(17%)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구체적으로 도요타의 8월 판매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9% 감소한 542대, 혼다는 81% 급감한 238대를 기록했다. 도요타의 베스트셀링카 렉서스도 8월엔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재팬투데이는 “렉서스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일본 브랜드로, 8월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7.7% 증가했지만, 한 달 전인 7월과 비교하면 39% 감소한 603대에 그쳤다”고 했다. 수입차 판매와 더불어 신규등록대수도 감소세에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4일 보도자료를 내고 “8월 수입승용차 신규등록대수가 7월(1만9453대) 보다 6.8% 감소했으며, 2018년 8월의 1만9206대 보다 5.6% 감소한 1만8122대로 집계됐다”고 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윤대성 부회장은 “8월 수입 승용차 신규등록은 일부 브랜드의 물량부족 및 감소세로 전월보다 감소했다”라고 말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6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스토리뉴스 더#] 인터넷서 ‘마약 쇼핑’…잡고 보니 20대가 최다
조직폭력배처럼 사회 규범과 담을 쌓은 자들, 혹은 일부 일탈한 연예인들 사이에서만 오고 가던 ‘그것’. 그마저 TV 뉴스나 포털 사회 섹션을 통해 간간히 소식만 접하던 ‘그것’의 확산세가 심상찮다. 바로 ‘마약’이다. 마약사범 관련 소식이 전과 달리 하루가 멀다시피 뉴스의 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지도 오래다. 지난해 9월 대마 환각 상태의 운전자가 일으킨 부산 해운대 7중 추돌 사고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는 이들도 골치 아픈데 환각에 빠진 운전자마저 길 위를 질주하고 있었으니. 그런데 이조차 서막에 불과했다. 2021년 들어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마약 관련 뉴스는 이미 차고 넘친다. 1월만 해도 충남의 한 공원 주차장에서 차량 정차 후 자신의 팔뚝에 주사기로 마약을 투약하던 남성이 붙잡힌 바 있다. 헤로인·주사기 등 마약류가 든 가방을 서울 역삼동서 탄 택시에 두고 내린 남녀가 검거된 것도 1월이다. 2월에는 더했다. 8일 서울 양재동 노상에서는 한 남성이 대마 흡연 후 자신의 차량을 몰다 주차돼있던 오토바이 2대와 상가 에어컨 실외기를 부쉈다. 같은 날 압구정동 편의점에서는 한 여성이 필로폰 및 대마 투약 후 횡설수설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설 연휴 때는 강남 소재 호텔에서 대마·아산화질소(해피벌룬)을 흡입한 남녀 3명이 검거되기도. 14일에는 용산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어떤 남성이 떨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는데, 그는 출동한 경찰에게 “마약을 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마약 양성반응이 나온 이 남성의 직업은 소방공무원. 텔레그램을 통해 필로폰을 샀던 것으로 드러났다. 호텔, 공원, 길거리, 편의점. 이제 마약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수치로 봐도 마약 범죄는 크게 늘었다. 2020년 경찰이 검거한 마약류사범은 1만 2,209명으로 2019년의 1만 209명보다 약 20%나 증가했다. 종류별로는 향정신성의약품이 67.5%(8,238명)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마약이 16.6%(2,027명), 대마가 15.9%(1,944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젊은 층의 비중이다. 2016년만 해도 40.7%(3,604명)였던 10~30대 마약사범의 비율은 지난해 51.2%(6,255명)로 절반을 넘겼다. 10대와 20대로 국한하면 15.8%(1,408명)에서 28.3%(3,452명), 비중이 4년 만에 거의 2배가 됐다. 20대는 전체 마약사범 중 26.3%(3,211명)로 나타나, 사상 처음으로 30대와 40대를 제치고 마약 범죄자가 가장 많은 연령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마약사범 수는 늘고 연령대는 내려가고. 이는 마약의 경로가 더는 특정 집단 안에 갇히지 않게 됐다는 의미다. 클럽이나 유흥업소 등 거래·투약을 위한 공간 또한 고전적 개념일 뿐이다. 디지털 시대에 맞춰 ‘쇼핑’으로 진화한 셈. ‘도구’를 쓰는 데 능숙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점에서 점으로, 마약은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은 주요 판매 루트가 됐고 이에 기반한 소셜미디어들은 놀랄 만한 침투력을 뽐내는 중이다. 2016년 12.7%였던 인터넷 마약류 사범의 비중, 지난해에는 21.4%로 크게 올랐다. 앞서 언급한 소방공무원 역시 폐쇄형 소셜미디어인 텔레그램을 통해 그토록 해롭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필로폰을 손쉽게 구매했다. 뿐만 아니다. 최근 이슈인 암호화폐 또한 거래의 수단이 되고 있으며, 다크웹(특수한 웹브라우저를 써야 접근이 가능한 웹)도 신종 거래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경로로 마약을 매매한 자들의 비중은 2016년 0.9%에서 2020년 6.1%로 급증했다. 경찰도 이 같은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에 경찰청은 ‘마약류사범 집중단속’을 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실시한다고 밝혔다. 시도 경찰청과 경찰서 전담 수사 인력을 중심으로 마약류 불법 유통 사범 검거에 주력한다는 계획. 2월 22일부터 28일까지는 첩보수집 기간이다. 경찰청은 “익명을 특징으로 하는 비대면 마약 유통 및 외국인 마약류 범죄 등을 중점적으로 단속할 것”이라며, “단순 투약자라도 상선을 끝까지 추적하고 범죄수익도 철저히 환수해 범죄 연결고리를 차단하겠다”고 전했다. 코로나19의 초장기화와 그에 따른 경제적 파장 등이 말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불안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코로나 블루’에 빠진 상황. 특히 마약에 손대는 비율이 늘고 있는 20대의 경우, 70.9%가 이 코로나 블루를 겪는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불안을 파고드는 불온한 손길들, 이번 기회에 그 숨은 손길을 끊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글·구성 : 이성인 기자 silee@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 성수동 블루보틀과 도쿄 롯본기 블루보틀
<사진=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그 호들갑스런 대열’에 합류해 보기로 했다. ‘그 비싼 커피를 굳이’ 마시러 갔다.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인내심은 노(NO). 주말과 휴일은 피해 평일로 택했다. 애플 신상품을 ‘득템’하기 위해 밤을 새거나 장시간 기다리는 장면은 종종 들었다. 하지만 기껏 커피 한 잔인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까 싶었다. 아니었다. 오픈(3일)이후 그런 광경은 내내 벌어졌다. ‘커피계의 애플’. 스페셜커피 블루보틀 매장으로 찾아간 건, 8일 오전 8시. 오픈 시간에 맞춰 지하철 뚝섬역에 내렸다. 역에서 불과 50미터. 큰 붉은 벽돌 건물보다 무리지은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구나.’ 입구에 들어서자 50여 명이 4겹 줄을 서서 대기 중. 건물 내부는 특별할 게 없다. 성수동 특유의 거친 콘크리트 벽과 천장. 1층에서 대기하고 계단을 통해 지하1층 매장으로 내려갔다. 커피 데스크에 핸드드립기가 6개. 바리스타가 순서대로 즉석에서 ‘핸드드립’ 중. 아메리카노 기본(블렌드)을 주문했다. 5000원. 스타벅스의 숏사이즈(3600원) 톨사이즈(4100원)와 비교하면 꽤 비싼 편. ‘5’자가 주는 부담감도 크다. 평일임에도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 정확히 9시에 커피 한잔을 손에 들었다. ‘득템’. 커피 양은 스타벅스 숏사이즈의 절반. 한 눈에 봐도 끈적할 정도로 진하다.(재팬올의 정희선 객원기자는 ‘한약’같다고 했다.) 맛을 잠시 음미하는 사이, 누가 불쑥 말을 걸었다. 커피 취재를 온 잡지매체의 기자란다. 연배 어린 후배기자에게 인터뷰 당하는 영광을 누렸다. 블루보틀 맛에 대한 평가는 짧은 인터뷰 내용으로 대신한다. “(‘커피 맛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매일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스벅마니아’는 아니지만 습관처럼 한 잔씩. 스타벅스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맛이다. 쌉싸름한 맛이 나쁘지 않다. 와인으로 치자면, 샤르도네(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 같은 적절한 산미가 느껴진다.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줄 서는 일만 없다면 다시 찾을 것 같다.” “(‘블루보틀 커피가 유명한 건 왜일까요’라는 질문에) 성수동에 1호점을 낼 것이라는 입소문을 낸 게 오래됐다. 금방 매장을 열 수도 있었겠지만 상당히 뜸을 들였다. 그러면서 커피팬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유발시켰다. 파란 병 로고에는 굳이 블루보틀이라는 이름을 적지 않았다. ‘파란 병=블루보틀’이라는 인식이 커피 팬들을 줄 세웠다고 본다.” 30분 동안 매장을 지켜본 후 나왔다. 밖엔 여전히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놀랍다. 더 놀라운 건 한 시간 뒤. 블루보틀 잔향이 혀에 그때까지 머물렀다. 오전 11시, 혀를 헹구러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편집인> (아래는 도쿄에 거주하는 정희선 객원기자의 롯본기 블루보틀 ‘맛 평가기’입니다. ) <사진=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정희선 객원기자=일본기업 분석 애널리스트>커피 맛은 호불호가 강하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선호가 갈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내 생각에 블루보틀은 더하다. 내 경우, 유학 때문에 몇 년 미국에서 지냈지만 커피를 델리키트하게 느낄 정도의 ‘혀’는 갖고 있지 않다. 다시 ‘커피 대국’ 일본에 와서 몇 년 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커피 혀’는 그대로다. 내 혀보다는 커피 맛을 잘 아는 친구의 말을 빌려 블루보틀을 평가하는 게 나을 듯하다. 그 친구는 쓴맛과 신맛이 강한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신맛이 너무 강한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다만 내 ‘혀’는 이렇게 내게 속삭인다. “블루보틀은 확실히 스타벅스 커피보다 신맛이 강해~” 나만큼 커피 취향이 ‘고급지지 못한’ 내 막내동생은 한 술 더 뜬다. 블루보틀을 마시고 나선 심지어 “한약 먹는 것 같다”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이런 ‘한약 같은 커피’를 마시러 일부러 일본으로 찾아오는 한국 커피 마니아들이 많다. 여기서 또 취향이 갈린다. 한국 사람들은 오리지널 블루보틀이 아닌 우유가 들어간 달달한 라떼를 많이 주문한다고 한다. 당분간은 한국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블루보틀은 현재 미국(57점)과 일본(11점)에 68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일본에선 도쿄에 9곳, 교토에 1곳, 고베에 1곳이 있다. 해외진출에 나선 블루보틀이 (한국 제외)오직 일본에만 매장을 낸 이유는 뭘까. 또 유독 도쿄에 몰려있는 건 왜 일까. 일단 ᐅ일본이 ‘커피 대국’이라는 점 ᐅ도쿄 사람들의 취향이 고급화 되어 있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창업자의 개인적 취향도 반영됐다. 클라리넷 연주가였던 창업자 제임스 프리맨(James Freeman)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오래된 커피 가게들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며 “특히 도쿄는 더 그러하다”(I'm very deeply inspired by the old-fashioned coffee shops of Japan, and in Tokyo particularly)고 말한 바 있다. 도쿄의 번화가 긴자 뒷 골목에는 아직도 레트로(retro: 복고풍) 느낌이 나는 오래된 커피숍들이 많다. 이들 가게 대부분은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핸드드립 방식으로 고객 앞에서 커피를 내려준다. 제임스 프리맨이 이런 분위기에 반했다는 것이다. 그럼, 제임스 프리맨은 처음에 어떻게 블루보틀 커피를 만들게 됐을까. 왜 굳이 블루보틀이란 이름일까. 여기서 커피 역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683년 유럽 일대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의 터키군이 빈(비엔나)에 도착했다. 적군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포위망을 뚫고 인근 폴란드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터키어와 아랍어를 할 수 있는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라는 사람이 나섰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폴란드 원군을 요청하는데 성공했다. 터키군이 물자를 남겨두고 퇴각을 했는데, 그 더미에서 콩 봉지들이 발견됐다. 처음에는 낙타의 먹이인줄 알았지만, 아랍에 살던 경험이 있던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는 그게 커피 콩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원군 요청 포상금으로 그 커피 콩을 매입, 중부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 ‘블루보틀’(The Blue Bottle)을 개업했다. 비엔나 커피 문화의 출발이었다. 그 319년 후인 2002년, 클라리넷 연주가 제임스 프리맨이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에 커피 가게를 열었다. 그는 비엔나를 구한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차원에서 가게 이름을 ‘블루보틀’이라고 지었다. 제임스 프리맨은 평소 직접 원두를 구입, 매일매일 로스팅해 커피를 즐길 정도로 커피광이었다. 블루보틀이 유명하게 된 건, 그가 볶은지 24시간 이내의 신선한 커피원두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면서다. 입소문이 나면서 블루보틀 커피는 유명세를 타게 됐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네슬레가 4억2500만달러(약 4500억원)에 블루보틀의 지분 68%를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루보틀 커피를 흔히 ‘제 3의 물결 커피’ (Third wave coffee)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제 1의 물결 커피’(First wave Coffee)는 1990년대 이전의 베이커리에서 빵과 함께 파는 커피, 혹은 개인이 공간을 임대하여 파는 형태를 지칭한다. 커피의 퀄리티에 주목하기 보다는 1~2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제공하였다. 1990년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가 등장하면서 ‘제2의 물결 커피’(Second wave coffee) 시장이 열렸다. 집,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퀄리티 높은 커피를 제공했다. 요즘의 가장 흔한 커피 전문점 형태다. 그러다 2010년 이후,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드디어 ‘제 3의 물결 커피’(Third wave Coffee)가 시작 되었다. 대표적인 가게가 블루보틀(Blue bottle), 필즈 커피(Philz coffee), 스텀프타운(Stumptown) 등 이다. ‘제 3의 물결 커피’의 특징은 스타벅스 보다 훨씬 좋은 원두를 사용하며, 차별화된 로스팅 기법을 도입하여 기존의 커피와 차별화된 맛을 제공하다는 것. 대부분의 ‘제 3의 물결 커피’ 전문점들은 1~2분 이내에 커피를 내리기 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니즈에 맞춰 커피를 만들어 준다. 핸드드립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고객이 보는 앞에서 맛깔나게 커피를 내려주는 것이다. 획일화된 커피 맛에 지친 미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되는 커피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제 3의 물결 커피’는 서부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제 3의 물결 커피’는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지 않고, 성장보다 퀄리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제 3의 물결 커피’ 중에 해외진출을 한 브랜드는 블루보틀이 유일하다. 이상이 ‘한약 같은 커피’ 블루보틀의 유래와 성장기에 대한 내용이다.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7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