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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루 커피는 브라질 지명이다.

...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가 제임스 R. 그레고리(James R. Gregory)는 그의 저서 ‘브랜드 혁명’(최원주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기업 브랜드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면 다음과 같은 효과 있다고 했다.

<강력한 기업 브랜드는 괄목한 만한 수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것은 프리미엄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게 하며, 위기를 견뎌내고 보다 쉽게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마케팅 활동에 좀 더 힘을 더해주며, 그 결과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강력한 기업 브랜드는 시장 점유율의 침식을 느리게 할 수도 또는 멈출 수도 있다. 그것은 재능 있는 인재를 끌어 모으는 것을 쉽게 하며, 재정 그리고 투자 시장에서 기업을 보다 많이 어필하게 만든다.(같은 책 3페이지 인용)>

기업 브랜드가 이런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첫 단계인 브랜드 네이밍(brand naming) 작업부터 잘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네이밍은 해당 상품의 정보와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읽고 부르기 쉬워야 하며, 또한 긍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2편은 1편 카레에 이어 커피다. 일본 커피 체인점들(도토루, 고메다, 사자 커피)과 커피 가공 회사들(키커피, UCC, 이시미츠쇼지) 등 6곳의 브랜드 네이밍 역사를 살펴봤다.

인구 1억2700만 명의 일본은 커피 소비 대국이다. 전일본커피협회에 따르면 한해(2017년) 커피 소비량은 46만 4686톤으로, 국민 1인당 일주일에 11.09잔을 마신다. 커피 수입량은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5위다.

세계 커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스타벅스 진출도 빨랐다. 도쿄 긴자에 스타벅스 1호점이 들어선 건 1996년. 미국, 캐나다를 제외하곤 첫 해외 매장이다. 서울 1호점(이대점)은 그 3년 뒤인 1999년 오픈했다.

일본에서 커피 매장이 가장 많은 체인점은 ᐅ스타벅스, ᐅ도토루(DOUTOR) 커피, ᐅ고메다(コメダ) 커피 순이다. 스타벅스 매장은 1300개에 이르고, 도토루는 1100여 개, 고메다는 760여 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스타벅스는 뱃사람 이름에서 따왔다.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Moby Dick)에 등장하는 피쿼드(Pequod)호의 일등 항해사 이름이 스타벅스다.

당초 시애틀 인근의 광산에서 일했던 갱의 이름인 스타보(Starbo)도 후보에 올랐다.(하워드 슐츠 저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 신화’). 결국은 ‘커피의 해상 무역’ 의미를 담은 스타벅스가 스타보를 제치고 최종 결정됐다고 한다.



1) 도토루 커피: 창업주가 일했던 브라질에서 착안

해외 브랜드인 스타벅스를 빼면, 일본 최대의 커피 체인점은 도토루(DOUTOR)다. 1962년 도쿄에서 커피 로스팅 회사로 출발한 도토루는 무슨 뜻일까?

먼저 창업주 토리바 히로미치(鳥羽博道‧80) 명예회장 이야기부터 해보자. 도쿄의 한 찻집에서 일하던 그는 스무살 때인 1959년, 브라질로 건너가 커피 농장에서 현장감독으로 일했다고 한다.

3년 후 귀국해 1962년, 도쿄에 로스팅 회사를 설립했다. 토리바씨는 1972년 커피 전문점 ‘카페 콜로라도’를, 1980년엔 ‘도토루 커피 숍’을 차례로 오픈했다.

도토루의 브랜드 네이밍엔 토리바씨의 브라질 체험이 담겨 있다. 그의 자서전 ‘도토루 커피, 이기느냐, 죽느냐’의 창업기(ドトールコーヒー「勝つか死ぬか」の創業記)에 따르면, 도토루는 포르투갈어로 ‘의사’, ‘박사’라는 뜻으로, 영어의 닥터(doctor)에 해당한다.

토리바씨가 브라질 커피 농장에서 일할 당시, 하숙했던 곳이 상파울로의 ‘도토루 핀토 페라즈 거리 85번지’(Doutor Pinto Ferraz 85)라고 한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와 회사를 설립할 즈음, 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도토루’로 이름을 붙였다. 브라질에서는 사회에 공헌한 인물을 거리 이름에 붙이는데, 핀토 페라즈(Pinto Ferraz)라는 사람을 기리는 거리에 토리바씨가 살았던 것이다. <2편에 계속>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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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8개 기업이 새롭게 100주년 진입” 흔히 100년 이상된 가게나 기업을 노포(老舗)라고 부른다. 100년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전통과 자존심을 의미한다. 일류 명문대를 졸업한 자녀가 부모의 노포에 둥지를 트는 일이 흔한 게 일본이다. 이런 일본에서는 노포기업이 몇 개나 될까. 때마침 도쿄상공리서치가 2020년 최신판 노포기업을 발표했다. 도쿄상공리서치가 12월 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창업 100주년을 맞는 일본 노포기업은 이토요카도(유통), 킨테츠 백화점 등 1458개사로 조사됐다. 도쿄상공리서치는 “2020년 새롭게 창업 100주년을 맞는 1458개사가 정식으로 노포기업에 진입, 2020년의 노포기업수는 3만 5018개가 된다”(新たに2020年に創業100年を迎える企業の1,458社が晴れて老舗企業の仲間入りし、2020年の老舗企業数は計3万5,018社になる)고 했다. 2020년에 창업 200주년, 300주년, 400주년을 맞는 대표적인 노포기업과 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20년 창업한 직물회사 이부키(伊吹, 교토), 불단 제조업체 에이라쿠야(永楽屋, 시가현) 등 15곳이 업력(業歴) 200년에 올라섰다. △직물업체 야시로니(矢代仁, 교토)와 사찰의 지붕공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코지마고무덴(児島工務店, 오카아먀현) 등 4곳은 창업 300주년을 맞았다. △화과자점 토라야혼포(虎屋本舗, 히로시마현)는 유일하게 창업 400주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찰 건축업체 곤고구미 ‘업력 1443년’ 최고 100년 단위를 넘어 ‘업력 1000년’이 넘는 노포기업도 상당수 있다. △가장 오래된 노포로는 사찰 건축을 전문적으로 하는 곤고구미(金剛組, 오사카부)가 있다. 578년에 창업, 2020년 업력 1443년을 맞는다. △그 다음으로 587년에 창업한 꽃꽂이법인 이케노보카도카이(池坊華道会, 교토)가 업력 1434년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어서 705년에 설립된 니시야마온천(西山温泉)의 게이운칸(慶雲館, 야마나시현)이 업력 1316년으로 3위에 올라있다. 717년 창업한 료칸 고만(古まん,효고현)도 업력 1304년을 자랑한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1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선정, 최고 실적 CEO들
... 1922년 창간된 경영학 잡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2013년부터 매년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낸 CEO’를 선정 발표하고 있다. 이 CEO 리스트는 △UC버클리의 모르텐 한센(Morten T. Hansen)교수 △런던 비즈니스 스쿨(London Business School)의 허미니아 아이바라(Herminia Ibarra)교수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의 얼스 파이어(Urs Peye)교수가 처음 고안했다. HBR은 최근 11-12월호를 발간하면서 ‘2019년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낸 CEO’ 기사를 실었다.(클릭하면 해당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876개 기업의 883명 CEO(일부 기업은 공동CEO 체제)를 대상으로 총 주주수익률, 시가총액의 변동, 재무지표를 반영해 순위를 매겼다. HBR에 따르면, 1위는 AI컴퓨팅 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엔비디아(NVIDIA, 1993년 설립)의 젠슨 황(Jensen Huang)이 차지했다. HBR은 “2015년 말부터 2018년 후반까지 엔비디아의 주가는 14배 올랐다”(From late 2015 to late 2018, the company’s stock grew 14-fold)고 평가했다. 재팬올은 HBR 기사에서 일본 경영자들의 순위를 살펴봤는데, 총 6명의 일본 CEO들이 랭크됐다. <사진=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선정 '2019년 세계 최고 실적 CEO'에 오른 일본 경영자들. 위로 부터 시계방향순으로 이에쓰구 히사시(시스멕스), 사와다 미치타카(카오), 나가모리 시게노부(일본전산), 손정의(소프트뱅크) 다카하라 다카히사(유니참) 우오타니 마사히코(시세이도)> ... ‘시스멕스’ 이에쓰구 히사시 회장 33위 가장 높은 33위에는 의료기기 제조업체 시스멕스(Sysmex, シスメックス)의 이에쓰구 히사시(家次恒·70) 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시스멕스는 혈액응고, 소변분석 장치 분야에서 세계 선두다. 이에쓰구 히사시 회장은 은행원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산와은행(현 미쓰비시 도쿄 UFJ 은행)에 취직한 그는 37세 때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동아의용전자(東亞医用電子)라는 회사의 경영을 맡고 있던 장인이 사망하면서다. 1961년 동아의용전자에 중도입사한 이에쓰구 히사시는 1996년 사장, 2013년엔 회장에 취임했다. 이 동아의용전자가 지금의 시스멕스다. ‘카오’ 사오다 미치타카 사장 36위 이에쓰구 히사시 회장 다음 순위는 36위에 오른 카오(花王)의 사와다 미치타카(澤田道隆·63)다. 카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화학, 생활용품업체다. 오사카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사와다 미치타카는 졸업(1981년)과 동시에 카오에 들어간 전통적인 ‘카오맨’이다. 입사 30년 만인 2012년 6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일본전산’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 43위 사와다 미치타카에 이어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74) 회장이 43위에 랭크됐다. 1973년부터 경영권을 쥐고 있는 나가모리 회장은 지금까지 50여 건의 M&A를 성사시키고 적자는 거의 내본 적이 없는 경영자다. 이런 ‘영속성장’(永続成長)을 지향하는 나가모리 회장의 경영방식을 ‘영수류’(永守流)라고 부른다. ‘시세이도’ 우오타니 마사히코 사장 52위 다음으로는 시세이도(資生堂)그룹의 우오타니 마사히코(魚谷雅彦·65)가 52위에 올랐다. 일본 코카콜라 회장과 사장을 역임한 그는 2014년 사장으로 취임해 ‘죽어가던 시세이도를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실적을 반영한 시세이도는 9월 26일 “우오타니 마사히코 사장의 임기를 2024년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우오타니 마사히코는 10년간 사장직을 맡게 되는 것. 외부인사로는 흔하지 않는 일이다. 시세이도 창업가 출신인 후쿠하라 요시하루(福原義春)의 10년 경영(1987~1997년)에 버금가는 긴 집권인 셈이다. ‘유니참’ 다카하라 다카하시 사장 72위 이어서 일본 위생용품 기업인 유니참의 다카하라 다카하시(高原豪久·59)가 72위를 기록했다. 산와은행(현 미쓰비시 도쿄 UFJ 은행) 출신인 다카하라 다카하시는 1991년 유니참에 입사했다. 그러다 유니참의 창업자이자 아버지인 다카하라 게이치로(高原慶一朗)가 2001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사장직에 올랐다. 여성 생리용품 시장을 개척한 다카하라 게이치로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96위 끝으로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61) 회장이 96위로 가까스로 10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투자의 큰손인 그의 위상을 감안하면 의외의 순위다. 손정의 회장은 공유사무실 위워크 투자 부진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의 네이버와 동맹을 결성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산하인 라인과 야후재팬을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아쉽게도, '2019년 세계 최고의 실적을 낸 CEO' 명단에 한국 경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14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중국의 ‘커피 굴기(崛起)’
“스마트폰 앱으로 미리 주문하면 매장에서 줄 서지 않고 커피를 받을 수 있는 카페가 지금 중국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본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4월 15일자)가 보도한 중국 루이싱커피(瑞幸咖啡, Luckin coffee)에 대한 기사 내용의 일부다. 루이싱커피는 중국의 신생 브랜드로, 중국 ‘커피 굴기(崛起)’의 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루이싱커피의 특징과 마케팅 전략을 전문가(중국관련 컨텐츠 플랫폼 회사 ㈜코난월드의 이훈구 미국지사장)와 중국 매체를 통해 알아봤다. <편집자주> ①스타벅스의 중국 진출 베이징 출신의 청년 진룽 왕(Jinlong Wang)이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건 1985년이었다. 콜롬비아 대학 로스쿨에서 공부한 그는 스타벅스에 입사해 10년 넘게 일했다. 법률 부사장으로 재직 당시, 미국에는 150개의 스타벅스 매장이 있었다고 한다. 1995년 무렵, 스타벅스는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었다.(이듬해 일본 첫 매장) 당시 진룽 왕은 스타벅스의 중국 진출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4년 후인 1999년, 진룽 왕은 스타벅스를 그의 고향 베이징에 들여왔다. 그해 1월 11일, 중국에 첫 스타벅스 매장이 문을 연 것. 당시 스타벅스는 중국 브랜드인 ‘메이 다 커피’(Mei Da Coffee)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출발했다. ② 중국인들의 커피에 대한 ‘이해도’ 차(茶)를 즐기는 중국인들에게 커피는 생소했다. 1999년 스타벅스가 첫 오픈했을 당시, 중국인들의 커피에 대한 인식은 ‘네슬레 팩’ 정도였다(When the first Starbucks store opened in China in January 1999, Chinese’s understanding of coffee was Nestle packets)는 평가도 있다. 스타벅스의 창업자 겸 CEO 하워드 슐츠는 자신의 책에서 “가장 큰 도전은 차(茶)에 익숙한 나라에 커피 문화를 소개하는 것”(The main challenge is to introduce the coffee culture to a country that’s so used to tea)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스타벅스는 중국인들의 인식에 변화를 주기 위해 처음부터 고급화 전략으로 접근했다. 하이엔드 쇼핑몰과 오피스 빌딩 주위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승부를 걸었다. 초창기 몇 년 동안 매출 부진이 이어졌다. 하지만 진룽 왕은 가까운 미래에 재정적인 이익을 갖고 올 것이라 믿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9년 9월, 하워드 슐츠는 중국으로 날아가 스타벅스 매장을 방문하고 고객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스타벅스의 현지화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③ 스타벅스의 배달 전략 14억 인구의 중국에는 현재 3700여 개의 스타벅스 매장이 영업 중이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9월, 중국 알리바바 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알리바바 산하의 음식 배송 플랫폼 어러머(ele.me)를 통해 스쿠터로 커피를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배달 서비스는 중국 신생 브랜드 루이싱커피(瑞幸咖啡, Luckin coffee)에 맞서기 위한 차원이었다. 루이싱커피는 도대체 어떤 브랜드일까. ④ 루이싱커피의 등장 스타벅스의 중국 진출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루이싱커피의 출점 속도는 스타벅스를 능가하고 있다. 루이싱커피는 배차 서비스 선저우요우처((神州优车)의 전 COO(최고운영책임자) 치엔즈야(钱治亚)가 2017년 설립했다. 2018년 1월 첫 매장을 연지 1년 4개월 만에 2000점포를 돌파했고, 올해 말까지 4500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추세와 관련, 일본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는 “스마트폰 앱으로 미리 주문하면 매장에서 줄 서지 않고 커피를 받을 수 있는 카페가 지금 중국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4월 15일자)고 전했다. 루이싱커피가 출범했을 당시, 상하이에 기반을 둔 컨설팅업체 차이나 마켓 리서치(China Market Research)의 벤 카벤더(Ben Cavender) 연구원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루이싱커피의 성장을 점치기도 했다. ⑤ 루이싱커피의 주문 방식 루이싱커피의 구매 방식은 중국 핀테크의 발전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만하다. 주문, 결제, 수령 모두 스마트폰 앱으로 한다. 고객이 루이싱커피를 주문하려면 사전에 전용 앱을 깔아야 한다. 앱을 통해 상품을 주문하면 ‘완료’ 메시지가 온다. 고객은 가게에 가서 QR코드만 대면 된다. 루이싱커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중국 사정에 밝은 전문가에게 물었다. 중국 관련 컨텐츠 플랫폼 회사 ㈜코난월드의 이훈구 미국지사장이다. 이 지사장은 “중국에는 거지들도 QR코드로 영업을 할 정도로 핀테크 기술이 발달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루이싱커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⑥ 루이싱커피의 ‘중국인 길들이기’ “지금 루이싱커피는 중국 사람들에게 ‘커피 길들이기’를 하고 있습니다. ‘루이싱커피를 계속 먹다보면 스타벅스 커피를 못 먹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보다 30% 이상 비싼 원두를 사용하고, 반대로 가격은 더 싸기 때문이죠. ‘이 커피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인기 여배우 탕웨이를 모델로 내세워 공략에 나서고 있습니다. ‘파란 사슴(루이싱커피의 로고)이 인어(스타벅스의 로고)를 잡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루이싱커피는 바리스타에 대한 대우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훈구 지사장은 “스타벅스 바리스타보다 월급을 3배 더 주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종전까지 ‘메이드 인 차이나’는 품질이 좋지 못하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루이싱커피는 ‘천만에, 웃기지 마라’라는 식의 이미지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했다. ⑦루이싱커피의 마케팅 전략 루이싱커피의 가격은 스타벅스 보다 저렴한 편이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이 21위안(3500원)이다.(스타벅스는 25위안, 4200원) 스타벅스 상품군이 숏, 톨, 그란데, 벤티 등 천차만별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루이싱커피는 톨 사이즈 하나로 메뉴를 단순화했다. “루이싱커피는 톨 사이즈를 기준으로 ‘아메리카노냐 라떼’냐에 따라 21위안, 24위안, 27위안짜리 세 가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할 때 고객은 라떼 우유의 양도 정할 수 있고, 아이스커피의 경우 얼음 개수까지 설정이 가능합니다.” 루이싱커피는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짜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이훈구 지사장은 “중국인들은 공짜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며 “어플을 깔면 한 잔 무료, 회원에 가입하면 한 잔 무료, 친구를 가입시키면 한 잔 무료라는 식이다. 쿠폰 유효기간도 1년”이라고 말했다. ⑧ 스타벅스+알리바바 vs 루이싱커피+텐센트 루이싱커피가 색다른 것은 매장 수령 이외에도 지정된 장소로 배달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5분~20분 안에 스쿠터로 초고속 배달한다. 구매 금액이 55위안(9300원) 이상이면 무료로 배송해 준다고 한다. 이훈구 지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루이싱커피는 ‘커피 만드는 시간보다 배달 시간이 더 빠르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배달 서비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스타벅스가 알리바바와 제휴했다면 루이싱커피는 텐센트(Tencent)와 손을 잡았다는 데 있습니다.” ⑨ 과도한 보조금 투자와 물량공세 루이싱커피의 출점 속도가 무서운 반면, 부정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훈구 지사장은 “문제는 과도한 보조금 투자와 물량공세”라며 “투자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주시하는 움직임도 있다”고 덧붙였다. 루이싱커피는 지난해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를 중심으로 자금조달을 한 바 있다. 때마침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18일 “루이싱커피가 1억5000만 달러(1700억 원)의 신규 자금 조달을 완료했다”고 보도했다. 루이싱커피의 이런 배달 서비스는 점점 편의성을 추구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을 겨냥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란런경제’(懒人经济)가 주목받고 있다는 얘기다. 란런(懒人)은 ‘게으른 사람’을 뜻하는데, 이는 소비자들의 편의성과 직결된다. ⑩ 편의성 강조한 ‘란런경제’ 이와 관련, 최근 중국매체 ‘동방재부망’(东方财富网)은 ‘게으름뱅이 경제굴기, 배달커피업계에서 새로운 상업 기회 캐치’(懒人经济崛起外卖咖啡嗅到新商机)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루이싱커피를 다뤘다. 이 매체는 “스타벅스와 루이싱커피는 모두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제 각각 다른 길을 걷고 있다”며 “루이싱커피는 항상 스타벅스를 경쟁 대상으로 삼는데, 이번에는 스타벅스와 정반대(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의 전략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동방재부망’은 루이싱커피의 특징을 이렇게 전했다. <루이싱커피는 30분 내 도착 약속을 지키기 위해 큰 투자를 했다. 30분 내에 도착하지 않으면 환불을 해주는 것이다. “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루이싱커피 측은 “시간이 커피의 생명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런 식으로 루이싱커피는 짧은 시간에 전국에 몇 천 개의 오프라인 매장과 100여 개의 배달 주방을 만들었다.> 루이싱커피는 핀테크 기술과 ‘란런경제’(懒人经济)가 접목된 케이스다. 핀테크에 편의성을 강조하는 ‘란런경제’가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커피 굴기’(倔起)가 무서운 이유이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기사출처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평범함을 거부하는 공장개조 카페 BEST 10
이런 인테리어 실화냐? 많고 많은 이색 카페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공장 또는 창고를 개조한 카페. 옛 공장의 빈티지함과 거친 매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공장개조 카페들을 모았습니다.  1. 세종 에브리선데이 농협창고를 개조해 만든 세종시에 있는 에브리선데이 빈티지 인테리어로 유명한 메르시엠 인테리어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로스팅룸도 따로있고 다양한 스페셜티원두를 맛볼 수 있다.인기에 힘입어 최근에2호점도 오픈했다. 2. 담양 서플라이 창고를 개조해서 높은천장과 넓은공간으로 자칫 삭막한 분위기를 낼법한데 초록식물들과 네온사인으로 깔끔하면서 세련된 인테리어를 보여주며 화분을 판매하기도 한다. 다양한 더치커피를 맛볼 수있다. 3. 서울 성수동 어니언 넓은 공간과 거친느낌의 마감처리가 옛공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베이커리카페. 베이커리 카페인 만큼 다른곳에서 찾아볼수 없는 독특한 빵들을 만날수 있으며 팡도르와 롱패스츄리는 베스트셀러이다. 성수동일대와 카페안뜰을 볼수있는 루프탑도 이용해보자. 4. 제주 앤트러사이트 상수동 본점으로 시작하여 제주에도 전분공장을 개조해 만든 핫한 카페 옛공장터를 그대로 살려 인테리어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내부 천장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맞거나 야외테이블에서 커피를 즐겨보는 것과, 독특한 이름을 가진 블랜딩 커피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5. 제주 볼스카페 귤농장 창고를 개조해 만든 베이커리카페 2층에서 빵을 직접 만드는 빵공장이 있으며 감귤밭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커피를 즐길수있다. 다양한 시그니쳐 음료와 베이커리를 맛볼수있으며 애견동반까지 가능하다. 6. 부산 테라로사 부산 수영에 자리잡은 테라로사는 고려제강의 철강제품을 만들던 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로 공장의 옛 골격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철강공장이었기 때문인지 굵은 철사로 만들어진 인테리어들이 많이 사용되었고 넓은 카페 구석구석 예전에 사용하던 설비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커피를 마셨으면 옆에 있는 중고서점으로 이동해 책을 보는 것이 추천 코스 7. 대구 빌리웍스 일제강점기 최초의 공단지역이었던 대구의 북구 침산동에 위치한 빌리웍스는 옛 공장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한 리모델링으로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카페 공간이다. 카페의 남아있는 호이스트는 내부는 바뀌었지만 아직 긴 시간동안의 정체성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커피와 함께 맛있는 빵도 함께 즐겨보고 베틀그라운드를 하고싶게 만드는 루프탑도 꼭 들러보도록 하자  8. 군산 틈카페 군산은 근대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옛건축물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일제시대 때 미곡창고로 쓰이던 건물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개조만 해서 사용하는 틈카페는 모던한 내부를 가진 다른 리모델링 카페와는 달리 내부또한 고풍스런 모습을 유지하며 꾸며져 있다. 맛있는 커피와 함께 20세기의 낭만에 젖어보고 싶은 사람에겐 강력추천하는 카페. 9. 서울 성수동 대림창고 건물에도 새옹지마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정미소와 물류창고를 거쳐 현재는 가장 힙한 카페로 떠오르고 있는 대림창고는 옛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여 빈티지한 멋을 더했다. 높고 넓은 탁트인 공간이 좁고 어두운 프랜차이즈 카페에 실증을 느낀 사람들에게 묘한 매력을 준다. 망원동과 연남동을 거쳐 성수동까지 이렇게 늘어나는 새로운 명소들로 주목을 받게될지 생각이나 했을까?  10. 남양주 플랜트202 공장 개조카페보다는 반려동물과 입장 가능한 카페로 더 많이 알려졌다. 그래서 인지 방문리뷰를 보면 유독 동물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넓은 공간과 멋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하지만 도시 외각에 위치한 탓에 차가 없는 뚜벅이들에겐 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차가 있는 애견인이라면 시간내어 방문해 볼 만한 카페 ▼아래 그림을 누르시면 [구글 플레이] 다운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다운을 원하신다면 눌러주세요
쏘 깔-끔한 콜드브루. (상상도 못한 커피필터 주의)
찬 물에 장시간 우려내는 콜드브루. 약 2-3년전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 요즘은 어느 카페를 가나 콜드브루가 있는 것 같아요. 필터를 한 번 거쳤기 때문에 지방성분이 있는 크레마가 없어서 목넘김이 깔끔하고 공기와 만나 약간의 신 맛이 나는게 특징이랍니다!ȏ.̮ȏლ 이 맛있고 좋은 콜드브루를 우리는 좋은 원두만 있다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왼쪽에 검은 물체는 수달 피규어의 꼬리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원두를 준비해요. 개인적으로는 콜드브루 자체가 제조한 순간부터 신 맛이 나는 것 같아서 산미가 덜한 원두를 고르는걸 추천 합니다. 지금 딱 생각 나는 원두는 브라질 원두가 생각 나네요. 단전에서부터 끌어오는 고소한 향이 흙을 퍼먹는 것 같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제가 커피를 즐겨 마시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원두에요!ෆ╹ .̮ ╹ෆ 원두의 굵기는 에스프레소보다는 굵게, 핸드드립용 보다는 얇게 준비 했어요. 집에 그라인더가 없으시다면 프랜차이즈 카페 가서 갈아달라 하면 대부분 해주십니다. 그리고 이 원두를 필터에 담아서 물에 담궈놔도 되고, 그냥 물에다가 원두를 담아놓고 나중에 원두를 걸러내도 되지만 저의 선택은 멸치육수 내다가 남은 다시백 입니다. 이거에요. 원두 세어나올 일도 없고 우린 뒤 처리도 깔끔한 효자상품! 갓다시백! 통에 물과 원두를 담은 다시백을 넣고 다음날을 기다립니다. 냉장고에 우린지 딱 24시간 경과. 처음 냉장고에 넣을 때는 물 색이 투명한 갈색이였는데, 지금은 찐-한 커피가 되었네요! 콜드브루는 제조 후 며칠 내로 드시는게 좋아요. 상하거나 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변하기 때문이에요.(இ﹏இ`。). 그래서 한꺼번에 많이 만들기 보다는, 한두번 안에 먹을 정도의 양만 만드는게 가장 좋습니다! 굿굿! 콜드브루는 원액 그대로 마셔도 상관 없지만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따라 진하기가 다를거예요. 저는 너무 진해서 물을 타서 마셨습니다.(*´꒳`*) 그냥 찐한 커피도 좋지만 우유랑 마셔도 넘나 맛있는 거 RGRG요? 콜드브루 원액에 우유만 넣어도 간단한 콜드브루라떼 완성! 커피 쓴 맛과 우유의 부드러움이 얼마나 어울리게요.٩(๑>◡<๑)۶ 요즘 SNS 많이 보이는 #마블링라떼 같기도 하네요! 한 때 콜드브루가 찬 물에 우린거라서 카페인이 많이 없다는 말이 많았었어요. 저도 최근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었구요. 찬 물에 카페인이 많이 우러나지 않는다는건 사실이거든요. 근데 요즘들어서는 아무리 찬 물에 우렸어도 조금씩 오래 우러나오기 때문에 카페인 함량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ヘ( ㅇAㅇ )ノ 목마르다고 무조건 벌컥벌컥 마시는건 금물! 햇살 내리쬐는 오후에 여유를 가지며 즐기기로 해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