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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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택시드라이버>와 <분노>가 생각난다.

1
아서는 엄마가 주입하던 대로
'해피'하고 싶었다.
조명을 받는 일(코미디언)이
그렇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었다.

다른 얘기지만
조명은 빛을 다루는 일이다.
하지만 어둠도 잘 알아야
피사체를 잘 보여줄 수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그동안 조커를 비추던
조명의 세기를 낮춘다.
대신 그 뒤의 그늘진
아서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어디에 걸쳐져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그의 고단하고 높은 담을.


2
영화는 조커의 전사를 다루지만
사회현상들의 전사를 다루기도 한다.

그래서 조커라는 희대의 빌런에
심정적 동의를 구한다.
미국에서 모방범죄를 걱정할만 하다.

조커 이전에 아서의 맨얼굴은
다름아닌 우리의 실제 삶이므로.


3
영화가 비추는 그의 분칠된 얼굴은
우습지도, 무섭지도 않다.
서글픈데, 그가 불쌍하지도 않다.

모호하다.

안티테제에 대한 권위의 위선은
밝은 걸까 어두운 걸까?

왜 고담시의 공중보건이 무너졌을까?

아서의 얼굴을 뒤덮은
그 창백한 웃음 역시
위선이라기도,
위악이라기도 어렵다.

아니, 애초에 웃음이라 할 수가 없다.


4
분명한 건, 세상사는 대체로
불분명하더라는 것.

어쩌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아서와 대비되는 브루스,
그들이 물려받은 유산일지도.

지난번 기생충을 보고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이 또 어울리는 것 같다.

좌절과 절망,
저 절로 이어진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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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인피니티 워 ㅡ 스포주의
혼돈과 질서 1 기대에 부합한다. 팝콘 부스럭 거리며 보기 좋다. 헐크 역할이 줄어든 게 의아하다. 배우가 힘들었나? 2 태초에 우주의 탄생과 함께 여섯 개의 신비한 돌이 생겨났다. 무한한 힘을 가진 돌, 인피니티 스톤은 우주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익히 알듯 타노스는 스톤을 모아 전 우주를 휘두를 힘을 얻고자 한다. 아스가르드를 시작으로 지구까지 침공하기에 이른 타노스 일당. 어벤져스는 타노스의 야욕을 막고자 우주에 흩어져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3 어벤져스를 볼 때마다 감탄하는 거지만 이야기가 세지 않는 게 참 대단하다. 뉴욕에서 와칸다, 우주 끝에서 우주 끝까지 쉴 새 없이 돌아다니지만 흐름이 자연스럽다. 4 영화 속에서 타노스는 이름 값을 톡톡히 한다. 끊임없이 혼돈을 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혼돈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맺음이다. 생존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신념으로 한다. 파괴를 새로운 질서로 삼는 것이다. 5 그건 공리라는 '건틀릿'을 낀 전쟁광의 모습이다. 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학살을 정당화 한다. 6 이와 더불어 몇몇 캐릭터들은 저마다 공리와 사익이 충돌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대체로 공리를 택하게 된다. 다만 닥터만은 다르다. 그는 모든 게 끝이라고 판단된 순간 공리를 포기하게 된다. 7 타노스가 추구하던 다수의 행복은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이다. 그러나 타노스에 의해 남겨진 이들은 불행하다. 살아남는 것만이 생의 제 일의 목적은 아니니까. 이제 타노스가 이룬 힘의 질서 안에서 어벤져스는 어떻게 대항할는지.
<Writing Club> 일기/에세이 글 쓰기 모임 #1
안녕하세요~! 그저께 함께 일기/에세이 형식의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해볼 분들을 모집했었는데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너무나 좋아서! 많은 분들이 함께 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허허 일단 참여의사를 밝혔던 분들은 모두 글쓰기 모임 톡방에 초대를 해드렸는데요! 첫번째 시간을 함게 하기에 앞서서, 모임의 간단한 방향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노트북으로 글을 작성하실 분들은 빙글에 어플리케이션 뿐 아니라, 컴퓨터로 접속이 가능한 웹 버전이 있기 때문에 웹버전 빙글을 켜서 글 작성을 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첫번째 주제는 <나에게 가장 익숙한 감정은 뭘까?> 입니다. 나의 최근의 감정을 천천히 곱씹어보기. 단어가 감정이 될 때. 영화 인사이드 아웃 보셨나요? 영화에서는 주인공 라일리의 머리 속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기쁨, 슬픔, 화, 겁쟁이, 까칠함 등의 감정이 뒤섞여있습니다. 모두가 다섯개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각자 사람마다 중요한 '키'를 가지고 있는 감정이 다른데요. 어떤 사람은 기쁨이 주된 감정인 것에 반해 어떤 사람은 슬픔, 또는 두려움 등이 주된 감정이곤 합니다. 꼭 한가지 감정이 주는 아니죠! 하나가 강렬하게 남아있기도 하고 또는 뒤섞여있기도 합니다. 또 타블로의 노래 중에는 <집>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를 참 좋아하는데요, 타블로의 가사는 그 하나하나가 거의 한 편의 에세이와 같은 것 같아요. 노래 가사 속에서 '슬픔은 웃음보다 자연스러운 마치 내 집이라서, 잠시 행복으로 외출해도 반드시 슬픔으로 귀가한다.'라는 내용의 가사가 있어요. 자신의 현재 감정을 깊으면서도 담담하게 써내려간 것이 전 너무 좋았어요. 불안, 공허, 애착, 우울 등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예민한 감정들을 곱씹어 봅시다! 어떤 감정이라도 좋습니다. 누군가는 행복함이 주가 될 수도 있겠고, 또 어떤 분들은 화, 그리고 또 다른 분들은 슬픔이나 두려움이 주된 감정일수도 있겠죠! 그저 솔직하고 어렵지 않은 표현으로 함께 써본다면 좋을 것 같아요! 최근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쓴 글은 이 곳의 댓글로 작성해주셔도 되고, 아니면 또 다른 카드로 작성해주셔도 됩니다! - @ccstar81 @Mmark @RedNADA @jessie0905 @qudtls0628 @ckoh3142 @sekir @leejs307 @allkcklow106 @moonlitsalon @syp2 @impereal12 @h162101 @syhee1973 @card2 @virgincoke @supia3587 @toystore @item84 @greentea6905 @hheeyo @chj4254 @ebbal @su0su @ct7809 @tan0123 @angksdbdp @alone81 @kooew @AloneTalk @petaterra @fabrics @applecolor @beartank4444 @serengeti73 @lovablewolf @sweet848 @hhyy9004 @jmano @doTTob @foxkkykhk 자! 지금부터 같이 써봅시다! 다른 주제로 쓰고 싶으시면 쓰셔도 되고, 시간이 맞지 않으셨다면 더 후에 쓰셔서 올려주셔도 됩니다! --- 일기/에세이/글쓰기 모임에 참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들어오셔서 메시지를 간단하게 남겨주셔야 톡방이 나의 톡방으로 설정됩니다! https://vin.gl/t/t:5b88052jx4?wsrc=link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리뷰
사랑의 형태는, 당신과 나의 마음과 닮아 있다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퍼시픽 림>(2013)보다도 2년이나 앞서 기획하기 시작한 (그는 어릴 때 본 <The 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1954)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원제: The Shape of Water)은 사실상 제목만으로 관람 전에도 영화의 주제의식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을 만큼 그의 전작들에 비해서는 쉽고 친절한 영화다. 게다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명체의 교감 혹은 사랑 이야기는 국적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많은 영화와 소설 등의 매체를 통해 다뤄져 왔기에 새롭지 않으며, 영화 속에 심어진 상징들도 비교적 직접적이고 명확하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초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한 비밀 연구소.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때다. 주인공인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이 연구소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 이 연구소에 남미에서 잡아온 괴생명체가 오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음악상 등을 포함한 13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건 다분히 진보적인 할리우드의 성향에 걸맞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멕시코인 감독이 냉전 시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만든 소수자들의 사랑 이야기, 대충 이렇게만 요약해도 이 영화를 관객에게 어느 정도 납득시키기에 무리는 아니다. 다만 이 아름다운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 프로덕션, 각본 등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살펴봐도 부족하지 않다. 다양성과 인간애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고 정치와 권력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를 이 영화는 다분히 향수와 애착이 가득한 시선으로 담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생존해 있었던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이 극장의 촬영 로케이션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Elgin Theatre’로, 공교롭게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토론토국제영화제 때 이곳에서 상영되었다. 이 묘한 조화란!) 위층에 자리한 아파트에 사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절제되어 있지만 음반과 차량 등 당시의 문화적, 사회적 양식을 충실하게 구현한다. ‘엘라이자’는 말을 할 수 없고 주변인, 특히 연구소 내 권력층에게는 일정 부분 억눌려 있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뚜렷한 예술적 취향을 갖고 있으며 영화는 그녀를 성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몇 개의 상징적 신을 통해 그녀의 육체적 욕망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특히 중요한 순간마다 ‘엘라이자’는 자신의 언어를 상대에게 명확하고 뚜렷하게 전달한다. 그녀와 생명체(크레딧에서는 ‘Amphibian Man’, 즉 양서류 인간 정도로 표기된다. 여기서는 편의상 ‘그’라고 표기해보도록 한다.)의 사랑은 힘과 효율, 기능의 가치로 인간을 대상화하던 이들 사이에서 표면적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상대의 마음을 비언어적 소통으로 헤아리며 발전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목표한 바를 뛰어나게 달성한다. 게다가 말을 하지 못하는 인물을 연기한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그’의 행동에 대한 리액션을 표정만으로 생생하게 담는다. 감독의 타 영화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눈꺼풀을 제외하면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 없이 (더그 존스가 수트를 입고 연기한) 아날로그적인 크리처로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사랑은 물과 땅에서 모두 호흡 가능한 ‘그’를 우주개발 연구 목적으로 해부하려는 이들에 의해 위기에 처하고, ‘엘라이자’는 기꺼이 ‘그’를 연구소에서 구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여기서 옆집에 사는 ‘자일스’(리차드 젠킨스)에게 “나도 말을 못하는데, 그처럼 나도 괴물이에요?”라며 화를 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긴박감 있게 펼쳐지는 이 ‘구출 작전’에서 중요한 것은 ‘그’를 사랑하게 된 ‘엘라이자’의 마음이 아니라 그녀를 도와주는 주변 인물들의 공조다. ‘호프스테들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는 연구소 내 핵심 인물 중 유일하게 ‘그’를 생명체로 여기는 인물이며, ‘자일스’는 동성애자, ‘엘라이자’의 동료 청소부 ‘젤다’(옥타비아 스펜서)는 흑인이다. 마음을 진정으로 모은 인물들의 연대는 어느 영화에서든 아름답다. 이 영화를 ‘그로테스크한 사랑 이야기’라고 무심코 요약하려다, 앞의 다섯 글자를 지우기로 한다. 사랑 이야기, 혹은 한 사랑 이야기.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어쩌면 헛된 희망을 품지 않고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그럼에도 황홀한 판타지 영화다. 형태가 없는 사랑은 그것을 대하는 이들이 지닌 마음의 그릇의 모양과 용량만큼 형성된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내레이션으로 열고 닫는 '자일스'의 목소리에 등장하는 시구가 하나 있는데, 나는 그 시의 출처를 찾으려다가 그만 멈췄다. 누가 쓴 시인지보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할 것이다.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You've humbled my heart, for you are everywhere."  사랑은 추상적 관념이기에 그 형태가 없지만, 사랑을 대하는 당신과 나의 마음만큼의 형태로 이 세상을 담는다. (★ 9/10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7), 기예르모 델 토로 2018년 2월 22일 (국내) 개봉, 123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샐리 호킨스, 리차드 젠킨스, 마이클 섀넌, 옥타비아 스펜서, 마이클 스털버그, 더그 존스 등. 수입/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https://brunch.co.kr/@cosmos-j/257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3일 후면 이사를 해야 했기에 파리로 돌아온 다음 날 바로 매트리스를 사러 마들렌느 역에 있는 이케아에 다녀왔다. 시내에 자리 잡은 이케아여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하철로 바로 올 수 있어 몇 번을 이곳으로만 와서 두 손으로 안고 갈 수 있는 만큼의 물건들만 사서 돌아가곤 했다. 오늘은 며칠 동안 고민하던 매트리스를 사러 온 것. 프레임은 전세입자가 우리에게 넘겨주고 가서 그 위에 얹은 매트리스만 사면 됐는데.. 어떤 매트리스가 좋을지 고민만 하다 지난번에는 미처 사지 못하고 돌아갔고 오늘은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어 결정을 하고야 말겠다며 두 손을 말아 쥐고 다시 이곳까지 왔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괜스레 나도 정말 홀린 듯 굴면서 억지로라도 그녀의 품에 안겨주고 했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을 다 터놓고 함께 의논을 하게 된다. 이제는 나의 돈도 아니고 그녀의 돈도 아니고 둘의 지속력의 관한 문제이다 보니, 서로 감정을 누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그러다 보니 그녀는 ‘어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서울과 다르지 않게 ‘좋은데?’라고 답을 해주지만 그녀는 좀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늪과 같은 고민에 다시 빠진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나와는 다르게 호불호가 분명하고 취향이 확고해서 신기했었고, 그녀와 무엇을 보러 가고 또 자잘한 물건이라도 구경하고 홀리고 사고 만족하는 일들이 내심 즐겁기도 했었는데.. 무엇을 사고 돌아오는 날보다 무엇을 사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아져 돌아오는 길 혼자 속으로 가슴이 쓰린 적이 많았다. 당연히 필요한 물건이라도 10유로 20유로가 넘어가면 고민을 하게 되는데.. 옷들도 집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그릇, 컵, 칼, 드라이버, 상자 등도 모두 모두 다 고민의 대상이 되니 큰일이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삶이라면 뜻과 다르게 뭔가를 포기를 하고 돌아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할 수 있기에.. 나도 그녀도 스스로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마는 것. 하지만 버티기만 하는 삶은 얹는 게 없으니 자신감이 쌓이면 우리 꼭 공격도 하자. 조금 가격이 있는 매트리스를 집에서 같이 마음먹고 왔지만, 결국 이동과 처분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기본 매트리스 하나와 쉬어 매트리스 하나로 쪼개어 사기로 했다. 상품을 결정하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 후에 유명하다던 이곳 이케아의 핫도그를 먹었다. 고기와 채소들을 섞어 만든 소시지에 튀긴 양파가 바삭해서 아주 맛이 있었다. 한국보다는 양은 작고 진한 카페 알롱제까지 마시니 얼마나 걸었는지는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매트리스와 여러 물건들을 한 번에 결정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나를 이곳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한 그녀는 미안한 마음에 내가 저번에 관심을 가지던 마들렌느 성당을 들렸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난 성당 안은 굳이 지금 갈 필요 없으니 산책이나 하며 조금 돌아서 돌아가자고 했다. 마들렌느 성당의 정면을 지나가면서 성당을 배경으로 두고 걸어가는 그녀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는데 엠마가 ‘왼쪽 봐봐’라고 들뜬 목소리로 나의 팔을 당겨댔다. 고개를 돌려보니 흐렸던 하늘은 어느새 개였고 노랗게 물든 하늘 아래로 노란 머리를 한 가느다란 바늘 같은 기둥이 서 있었다. “왼쪽 보라니까! 봤어?” “응, 근데 저게 뭐지?” 우리는 파리를 오는 동안 준비하는 것들에 치여 어디에 무엇 무엇이 있는지 전혀 조사도 못 하고 왔기에 마들렌느 성당이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몇 번을 이 곳에 왔는데 우리의 고개 너머로 이런 장면이 있을 줄이야.. 노란 하늘과 더 노랗게 빛나는 기둥에 이끌려 우리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차들이 분주히 돌아 나가는 거대한 광장.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둥글게 물러나 준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황금색 머리의 기둥. 우리가 멀리서 보고 따라온 노란 머리의 기둥은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있다가 프랑스로 건너온 오벨리스크였다. 그리고 여기는 역사책에서만 봐 오던 프랑스혁명의 상징,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혁명 광장, 지금의 콩코흐드 광장이었다. 파리에 와서 집을 구하고, 매일같이 학교를 나가느라 여행이라면 당연히 갔을 곳들도 2주가 넘게 못 가보고 있었는데, 계획도 없이 이곳으로 걸어오게 됐다는 게 신기했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이 잘린 자리에 세워진 분수는 노을 빛을 그대로 받아 (아니러니하게도) 매우 아름다웠다. 배로 4년에 걸쳐 파리로 옮겨졌다는 오벨리스크는 그 과정이 그려진 기단 위에 아름다운 상형 문자 무늬를 하며 서 있었고 그 오른쪽으로는 파리라는 글자와 함께 가장 많이 본 상징, La Tour Eiffel 에펠탑이 나무 가지들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넓은 직선대로의 끝에 개선문이 서 있는 것도 보였다. 그렇다면 저 넓은 대로는 Avinue des Champs-Élysées 샹젤리제 거리겠구나. 우습게도 우리가 지금 파리에 있구나. 아직은 실감이 가지 않아 서로에게 뻔한 질문을 하며 신기함을 즐긴다. 무엇을 하러 왔을까를 끝없이 물어야 하는 곳에 우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우리가 오기 전까진 우리의 자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학교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결석을 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형의 결혼식을 위해 2일간의 수업을 빠진 것을 굳이 선생님께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파리라는 곳에 우리가 있다. 부르지 않아도 많은 예술가들이 굳이 찾아왔던 곳. 더럽고 누추한 곳에서 생을 잘라먹으며 버티다 끝내 묻히기까지 한 이곳. 그 블랙홀 같은 곳에 지독한 중력을 간신히 이겨내고 날아오른 우리가 쉼표도 없이, 기꺼이 빠져들고 있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2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