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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젤쉽 역사공부) 조선시대 대비, 왕대비, 대왕대비의 차이와 관계

글을 소개하기 이전에 "대비" "왕대비" "대왕대비" 등 호칭 구별이 늘 어려워서 한번쯤은 여기에 올려보고 싶어서 올려봄. 흔히 많은 사람들은
대비 = 왕의 엄마 (전왕의 왕비)




왕대비 = 왕의 할머니 (전전왕의 왕비)




대왕대비 = 왕의 증조할머니 (전전전왕의 왕비)

이렇게 생각하지만 전혀 아님. 조선시대 내명부 여인들의 서열은

세자빈 - 왕비(중전) - 왕대비 - 대왕대비, 이 순서였음.

왕대비는 보통 왕의 어머니뻘이지만 사실상 바로 전왕의 왕비를 가르키는 말이였고 대왕대비는 전전왕의 왕비를 가르키는말임.

근데 조선시대에는 대비가 3명이나 된 시절이 있었는데 성종시절과 고종시절이였음.

조선 성종이 즉위하니




선왕인 예종의 부인인 왕대비 인혜왕대비 안순왕후 한씨
(성종 숙부 예종의 왕비)





선선왕인 세조의 부인인 대왕대비 자성대왕대비 정희왕후 (성종 조부인 세조의 왕비)가 있었음.

근데 문제가 되는 인물이 있었음.




문제는 성종의 어머니 수빈김씨였음. 성종의 아버지 덕종은 세자시절에 사망한터라 명목상 수빈김씨는 대비도 아니고 왕비도 아닌신세....대왕대비 정희왕후는 왕도 못되고 서른도 안되서 요절한 아들 의경세자를 왕인 "덕종"으로 추존시킴.




그리고 이로인해 수빈김씨는 - 인수왕비를 거쳐서 인수왕대비로 봉승되었고 서열이 왕비까지 거친 인혜왕대비 (예종 왕비 안순왕후)보다 서열이 더 위가 되었고 이때 왕실 내명부 서열은

세조왕비 (대왕대비 정희왕후) - 덕종왕비 (왕대비 소혜왕후) - 예종왕비 - (왕대비 안순왕후) - 성종왕비 (중전 공혜왕후)

순서가 되었음.

문제는 이러한 대비가 3명이나 살아있는 사태가 철종때 벌어짐.

헌종이 죽고 김대왕대비 (순조왕비)가 고종을 데려와 즉위시킴.

궁중에는 남편이 이미 사망한 왕비가 3분이나 계셨는데




1. 순조의 부인인 순원왕후, 명성대왕대비 김씨







2. 선왕인 헌종의 모친이자 효명세자의 부인 효유왕대비 조씨

(신정왕후)




3. 대행대왕 헌종의 부인인 왕비 효정왕후 홍씨


이렇게 3명의 서열이 문제였음.

문제는 지금까지 왕실 내명부 서열이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였지만 대왕대비 위에 자리를 하나 만들던가 해야 되는 상황이였고

기존의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가 아니라 왕대비 아래 대비라는 직함을 또 만들어서

" 왕비 -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로 바뀌었음.

즉 기존의 대왕대비 순원왕후(순조비). 왕대비 신정왕후 (익종,효명세자빈)은 그대로 있고 그 아래 대비 자리를 만들어서 효정왕후를 대비로 존숭함.

그래서 왕실 여성 서열은

1. 대왕대비 김씨 (순조의 왕비)
2. 왕대비 조씨 (익종의 왕비. 효명세자빈)
3. 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4. 중전 김씨 (철종의 왕비)

이 순서였음.


신기한건 새로 즉위한 국왕 철종은 순원왕후와 순조의 양자였음. 즉 대비 홍씨 (효정왕후)에게는 시숙부였는데 선대 왕의 정실부인이였기 때문에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갔다고 함.

그러던 중 1857년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죽은 뒤로는 왕대비 신정왕후를 대왕대비로 올리고 대비 효정왕후를 왕대비로 올림으로써

1. 대왕대비 조씨 (익종의 왕비, 효명세자빈)
2. 왕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3. 중전 김씨 (철종의 왕비)

기존의 "왕비 -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가 아닌, 다시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로 회귀한거임.

근데 문제는 철종이 죽은 이후 왕실서열이 꼬임. 바로....





철종의 왕비 중전 김씨였음. 명목상 철종이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자여서 철인왕후는 대비 홍씨에게 시숙모임.

즉 철인왕후의 서열을 동서지간인 신정왕후와 동일시할지 혹은 효정왕후보다 낮게 할지 문제가 생겼으나 이때 새로 즉위한 국왕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를 싫어함..

그래서 철종의 부인 철인왕후 서열을 3명의 대비들중 가장 아래로 낮추었음.

결과적으로 왕실 여성들의 서열은

1. 대왕대비 조씨 (익종, 효명세자의 부인)
2. 왕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3. 대비 김씨 (철종의 왕비)
4. 중전 민씨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

이 순서가 되었어. 대비 김씨는 조카며느리인 왕대비 홍씨에게 아예 서열이 밀린거임.

보통 선선왕의 왕비면 무조건 대왕대비가 되는건 아니였음.

이러한 비운을 가진 인물은 바로 조선역사에 2명 있었음.





성종의 제3왕비인 정현왕후는 성종 - 연산군 - 중중까지 3대왕을 거쳐서 대왕대비가 되야 하지만 연산군이 폐위될때 그의 왕비인 신씨도 같이 쫒겨남..그래서 그대로 왕대비 자리에 있었는데 그 이유는 어짜피 새로 즉위한 왕도 뭐 손주뻘도 아닌 친아들 중중(진성대군)이였음.



인종의 왕비 인성왕후는 인종시절 중전, 명종시절 왕대비였기에 선조가 즉위하고 대왕대비가 되자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시어머니 문정왕후와 달리 다른상황이였는데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이 즉위할때 이미 인성왕후가 왕대비로 있었고 둘은 고부지간이여서 대왕대비로 승봉된 경우, 하지만 인성왕후는 바로 아래서열 명종비 인순왕후와 항렬이 같아서 대왕대비가 되지 못하고 그대로 왕대비자리에 있게됨.

더군다나 조정에서 인순왕후의 영향력이 상당했고 인성왕후는 뒷방신세여서 수렴첨정의 권한도 뺐기게 됨.





선조의 왕비 인목왕후는 선조(왕비) - 광해군(왕대비)를 거쳐 인조가 즉위했을때 광해군부인이 쫒겨났기에 그냥 그대로 왕대비자리에 있어도 되는거 아님?이란 생각이 있겠지만

새 국왕 인조는 선조의 손자였음. 즉 의붓할머니 - 의붓손자 관계였고 더군다나 당시 인조의 친어머니가 살아있던터라 대왕대비로 승격됨.





인조의 왕비 장렬왕후는 인조(왕비) - 효종(왕대비) - 현종(대왕대비)였기에 숙종때는 더 높은자리에 있어야 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효종왕비 인성왕후는 고인이였고 궁중에는 현종비와 인조비 둘 뿐이였기에 그대로 4대왕을 거쳤어도 대왕대비자리에 있게됨.

만일 효종비 인성왕후가 살아있었으면 철종이나 고종때처럼 왕대비 아래 대비자리를 만들거나 혹은 대왕대비 위에 대상왕대비같은 자리를 만들었을것임.





영조의 왕비 정순왕후는 정조 즉위 이후 조모뻘이여서 대왕대비로 바로 올리자는 여론이 있었는데 왕대비자리에 오를 사람도 없었고 이당시 장조(사도세자)는 죄인인터라 혜경궁 홍씨 역시 왕대비자리에 오르지못함.

정조의 양부 진종 (효장세자)의 부인 조씨 (효순왕후) 역시 고인이였던터라 정순왕후는 그대로 왕대비가 됨.





서양에서는 대비(태후)를 " queen dowager"로 표현하는데 유럽왕실에서는 만일 현왕의 어머니면 영향력이 강하겠지만 단순히 선왕의 왕비였으면 딱히 영향력이 강하지 않았음.

재혼도 가능해서 헨리 8세의 부인 캐서린 파는 재혼도 했다고 함. 다만 선왕의 왕비였기에 존중의 대상이긴 했다고 해.

대략 늘 사극을 보면서 왕실여성들 호칭이 궁금해서 공부해봤음.




어허 일케 봐도 헷갈리네..
쨌든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라는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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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공무원들을 쥐어짜냈던 중국의 흙수저 출신 황제
출생, 1328년 원나라 말기 심한 기근에 각지에서 도적들이 들끓는 막장 상태의  사회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넷째 아들로 태어남. 이름 중팔. 소작농인 부모와  농사일, 목동일을 하면서 지독한 가난을 겪음 유년기, 끼니도 제대로 못 먹는 상태에서 천연두까지 걸렸으나 이겨내고 살아남.  얼굴이 곰보로 모두 얽어버림. 10대 초반, 지주의 소를 치던 중 너무 배가 고파 친구들과 송아지 한마리를 잡아먹음.  자신이 대표로 몽둥이로 개맞듯이 맞음. 17세, 심한 가뭄과 전염병으로 부모, 형 전원 사망. 마지막까지 막내 중팔과 함께  살아남았던 중팔의 형은 13알의 마지막 볍씨로 풀죽을 쑤어 중팔에게 주었고  형 자신은 배를 곪다가 사망. 재산이 없어 부모와 형의 묘를 세울 땅도 없었고 유계조라는 사람에게 땅을 빌어  귀퉁이의 땅을 얻음. 찢어진 옷 몇벌을 겨우 구해 시신을 덮고  손수 부모와 형의 시신을 매장하고 장례를 치룸. 17세 이후, 절에 가면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듣고,  머리를 밀고 황각사라는 절에 들어감. 절에서 마당을 쓸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등  허드렛일을 하고 죽을 얻어먹음. 그곳에서 글을 배울 수 있었고 서적을 읽음. 절이 어려워지자, 탁발승(당시에는 거렁뱅이 취급)을 하며 전국을 4년동안 떠돌아다님.  민심이 흉흉하던 때라 바가지로 물을 맞거나 침을 맞는 수모를 당하기도 함. 24세, 곽자흥의 홍건군 휘하에 말단 병졸로 들어가 공을 세우며 승승장구. 2인자의 자리까지 오름. 처음 홍건군에 투신하였을 때, 외모 때문에(...) 첩자로 의심받아 포박 당하여 끌려갔으나  곽자흥이 그의 담력과 총명함을 알아보고 천거함.  곽자흥의 양녀 마씨와 당시 기준으로 늦은 나이에 결혼. 27세, 곽자흥이 죽자 곽자흥이 이끌던 홍건군 군단의 지도자로 추대됨 28세, 남경 점령. 남부의 대 군벌 중 하나로 부상 35세, 최대의 라이벌 진우량을 파양호 대전에서 격파. 36세, 진우량의 세력을 모두 흡수하고 스스로 '오왕'의 자리에 오름. 39세, 또 다른 군벌 장사성을 격파하고 남부 패권 장악 40세, 25만의 대군으로 북벌 단행, 원나라 잔존 세력과 군벌들을 모두 격파하고  베이징 (대도) 점령. 원나라의 잔존세력을 만리장성 이북으로 몰아내고 명(明) 건국. 그 이름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 중국 역사상 평민으로부터 시작해서 황제가 된 인물들은 있지만, 대부분 젊은시절에도 세력을 키울만한 기본적인 밑천은 가지고 있었다.  평민에서 황제가 되었다는 한 고조 유방조차도 말단이나마 관직이 있었고,  장인이 지역 유지였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징기스칸과 누르하치는 젊은 시절 고생을 겪었지만 유목세계에서 귀한 혈통을 이었으며 둘 다 부족장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주원장은 가난한 천민에 가까운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홍건적에 투신하기 전까지는 세력도 배경도 아무것도 없었다. 황제가 된 이후, 부모의 묘자리를 내어준 유계조에게 엄청난 포상을 내렸으며 절에서 있던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이 사천왕상의 다리 사이에 있는  먼지를 청소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모든 절의 사천왕상은 청소하기 편하도록 반드시 한 발을 들게 만들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이러한 출신 성분과 이후의 치적으로 백성들 사이에서는 명군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였지만,  신하들 사이에서는 폭군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는 개국 공신들을 쥐 잡듯이 족쳤기 때문이다.  백성들에겐 명군인데 신하들에겐 폭군이라고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이유는, 아무래도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신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도자의 권력 한계상 백성과 신하 둘 중 하나만을 챙길 수밖에 없는데,  신하들은 자기들이 잘 살아야 태평성대라고 봤기 때문이다. 또한 엄청난 워커홀릭으로 유명했다. 그 자신부터 관리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신념을 유지했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그 자신조차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엄청난 양의 업무를 소화했다.  태어날 때부터 황실에서 태어나 귀하게 자란 그 아들들이나 손자부터는  생전 주원장의 그 업무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보조하는 신하를 두기 시작했고  이것이 사실상의 승상제도처럼 변해버렸다.  그런데도 주원장은 죽을 때까지 승상을 두지 않고 본인이 업무를 맡았다.  기록에 따르면 한번은 얼마나 업무를 처리하는지 계산을 해봤는데  8일 동안 3,391건의 문서를 처리했다고 한다. 대략 하루에 처리한 것이 400건이 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라서 누가 글자는 1만 5천자나 되는데 내용은 쥐뿔도 없고 쓸데없는 문서를 올렸다. 주원장은 노발대발하며 그를 숙청해버렸다. 건국군주임에도 후비를 많이 들이지 않은 군주로도 유명한 주원장은,  당시 황후와의 의리를 지킨 점 때문에도 당시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주원장은 자신이 쥐뿔도 없던 시절부터 뒷바라지를 해 주던 마 황후가 사망하자  그녀의 죽음을 매우 비통해 하였으며, 약 일주일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하며  마 황후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 그리고 평생 후비를 들이지도 않았으며 일에 몰두했다. 숙청과 후계 구도 실책으로 후대 신하들에게도 엄청나게 부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백성들에게는 영웅으로 추앙받던 황제였다고 한다.
[책 추천]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 백범일지 편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 입니다. 좋은 책인지는 알지만 읽을 엄두가 안 나는 스테디셀러를 알기 쉽게 풀어주는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 특히 어제 방영되었던 8회에서는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독립운동의 생생한 기록이 담긴 백범 김구의 <백범 일지>를 설민석 씨가 간결하고 생생하게 읽어주었습니다. 백범일지 김구, 도진순 지음 | 돌베개 펴냄 백범 김구의 유언이자 자서전으로 평범한 사람 백범의 이야기와 굴곡진 독립운동 역사가 생생하게 담긴 책 백범일지 보러가기> 제시의 일기 양우조, 최선화 지음 | 우리나비 펴냄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한 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제시를 낳으며 1930년부터 환국 시까지 기록했던 육아일기로, 백범 김구 선생님과 친밀했던 이 부부의 이야기 곳곳에서 우리가 몰랐던 김구 선생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 아이를 중심으로 시대 상황을 알수 있는 육아일기와 그 속에 담긴 백범 김구의 모습 보러가기>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정운현 지음 | 인문서원 펴냄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뿐일까? 대갓집 마님에서 신여성까지, 일제와 맞서 싸운 24인의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 한 평생 독립을 위해 살았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 보러가기> 플라이북 앱 바로가기>
[펌] 찰떡같이 말해줘도 개떡처럼 알아듣는 대일본제국
성형작약탄이라는 신통한 물건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지루하니까 생략하고 폭발력을 사방으로 분출시키는게 아니라 한점으로 모아서 엄청난 관통력을 얻은 탄이라고 생각하면 됨 독일군이 발견하고 독일군이 제일 쏠쏠하게 써먹었다 가끔 2차머전 영화에 보면 뜬금없이 나치들이 존나 큰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보이는데 이게 성형작약탄임. 이렇게 멀리서 발사하는 형태도 있었지만 좀 더 구식인 형태로는 그냥 땡크 옆구리에 철썩 붙여서 터뜨리는 흡착지뢰도 있었다. 자석이 들어있어서 전차 옆구리에 갖다 붙이면 알아서 찰싹 붙는다. 이 상태에서 터뜨리면 아무리 두꺼운 양키나 쏘련 전차라도 구멍이 뚫리는 물건이다. 물론 개 위험하다. 전차말고 이거 들고 있는 불쌍한 나치 가 미친듯이 굴러다니는 탱크에 이거 붙이려고 개다리스텝으로 뛰어당기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드물다. 뭐 그래도 독일은 이거라도 있어서 제법 괜찮게 버틴 편임. 태평양에서 미국 땅크들에게 고통받는 일본은 상황이 훨씬 안 좋았다. 일본 친구들로 말할 거 같으면 미국 땅크는 지옥에서 올라온 디아블로 같은 존재였음. 땅크가 뒤지질 않아 일본은 양키 땅크를 잡으려고 폭탄 껴안고 궤도 밑으로 기어들어가고 관측창에다 총검을 쑤셔넣으려고 시도하고 심지어는 청산가리 유리병을 해치에 넣어서 안에 있는 양키를 독살하려고도 시도했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얘네는 왜 탱크도 근딜로 잡으려고 지랄할까. 물론 기술력이 똥이라 그렇다.  이 꼴을 보다 못한 독일군이 저 모자란 놈들이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친구니까 도와주겠다며 흡착지뢰의 설계도를 보내준다 성형작약탄에 자석 붙이고 땅기면 되니 설마 아무리 멍청이들이라도 이걸 못 만들진 않겠지 싶었을 것이다 물론 못 만듬 2차머전 최대미개국 대일본제국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은 아닌가? 어케어케해서 성형작약탄 부분까진 만들었는데 자석을 못 만들었다. 보통 폭탄보다 자석이 더 만들기 쉬울 거 같지만 아무튼 그런 고로 폭탄을 들고 있어봐야 땅크한테 붙일 수가 없었음.  그래서 일본은 포기...하지는 않고 참으로 일본스러운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자석의 용도가 터질 때까지 땅크에 달라붙어 있는 용도가 전부라면 그걸 굳이 자석으로 할 필요가 없잖엉 인간한테 들고 꼬라박으라고하면 되지 그리하여 성형작약탄을 죽창 끝에다 달아서 탱크한테 찔러넣는 대전차죽창 자돌폭뢰가 개발된다. 사용법은 존나게 간단했는데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하고 지나가는 탱크에 달려들어 꼬라박으면 된다. 성형작약탄이라 관통력은 개확실하니 전차는 확실히 죽고 이거 들고 있는 새끼는 더 확실하게 야스쿠니로 즉시사출된다. 정말 일본스런 병기다. 뭐 여기까진 자돌폭뢰가 존나 유명하기도 하고 나무위키에만도 쳐봐도 나오는 내용이다. 근데 잘 안 알려진, 존나 스케일이 큰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자돌폭뢰가 가끔 가다 로또샷 터져서 무적으로 보였던 양키 탱크를 잡는 모습을 보자 눈이 돌아간 윗대가리들이 어마어마한 계획을 내놨다. 탱크도 잡는데 항공모함이라고 못 잡겠냐? 이 미친 놈들이 존나 큰 성형작약탄을 만들어서 항모에 꼬라박기로 한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일본은 열심히 카미카제로 양키 항공모함에 꼬라박고 있었지만 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효과는 별로 없었다. 온몸을 떡장으로 두른 항공모함에 쥐톨만한 비행기로 꼬라박아봤자 항공모함이 입는 피해는 페인트칠을 다시해야 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음 왜냐면 비행기는 가볍고 가벼운 놈이 전속력으로 꼬라박아봐야 관통력엔 한계가 있으니까 근데 나치들이 보내준 신통방통한 관통력을 자랑하는 성형작약탄을 보고 이거라면 항모에 빵꾸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병신들의 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근데 육지에서라면야 불쌍한 일본인 하나 골라서 성형작약탄 들고 꼬라박으라고 할 수 있지만 바다에서는 어떻게 할 거 같음 당연히 카미카제죠 시바 보통 비행기도 아니고 존나 큰 폭격기를 통째로 개조해서 비행기 자체를 성형작약탄으로 만들어버렸다. 저기 등짝에 동그랗게 튀어나온 부분 보이냐? 저게 통째로 성형작약탄임. 이게 자랑스런 대일본제국의 일격필살항모격침병기 '벗꽃탄'이었다 물론 무인비행기는 당연히 아니다. 안에는 이 존나 큰 빅-성형작약탄을 항공모함까지 배달하는 불쌍한 파일럿이 들어있다. 이 새끼들 자폭 집착은 진짜 답이 없다. 이거 몇 대만 있으면 양키 함대는 모조리 용궁행 게이바로 보낼 수 있다며 득의양양하기 시작한 일본이었지만 이따위 곱추 비행기로 항모를 격침시킬 수 있는게 말이되냐며 상식적인 딴지를 건 사람도 있었음. 그래서 이 굉장하신 자폭무기가 항모를 한 방에 격침할 수 있다면서 쇼를 보여주기로 한다. 물론 실험목적이니까 미군이 아니라 지들 물건을 상대로 쇼를 해야 했음. 그래서 이 븅신들은 안 그래도 배 부족해서 난리인 주제에 항모 한 척을 통째로 벚꽃탄 실험용도로 날려버린다. 진짜로.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자폭무기 실험한답시고 지들 항모를 날려버렸다고. 뭐 일단 저렇게 존나 크게 만든 폭탄을 꼬라박았으니 일단 침몰하긴 했고, 일본 친구들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이 물건의 양산에 들어갔음. 그리하여 1945년, 항복이 임박한 일본인들의 절박한 기원을 담아 제작된 벚꽃탄들이 일제히 양키 항공모함을 목표로 날아오름 그리고 전부 가던 도중에 추락해서 행방불명됨 이 새끼 생긴 꼬라지 봐라 등짝에 저런 종양을 달고 멀쩡히 비행할 수 있겠냐 결국 항모 한 척을 꽁으로 날려먹고 수십대의 폭격기를 자폭무기로 개장해서 얻은 전과는 0였다 참으로 일본스런 결과였다. 찰떡같은 기술력을 전해줘도 개떡같이 알아먹는 놈들한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존나 웃긴 반전이 있는데 이거 일본 육군에서 개발한 무기다. 해군이 아니라.  [출처 - 소녀전선2 마이너갤러리 고질라맛스키틀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