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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공개되는 PS5-Xbox스칼렛, 고려해야 할 점은?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가 E3 2019에서 차세대기 'Xbox 스칼렛'(이하 스칼렛)을 공개한 가운데, 소니가 지난 5일, 차세대기 명칭을 '플레이스테이션5'(이하 PS5)로 확정하면서 일부 정보를 공개했다. 두 차세대기의 정보가 드디어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PS5와 Xbox 스칼렛은 모두 2020년 연말, 홀리데이 시즌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공개된 일부 정보들, 그리고 이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을 정리했다.
# 성능과 서비스 정책

먼저, PS5와 스칼렛의 사양을 살펴보자. 최대 출력 및 프레임 해상도, 광학 드라이브 지원 등 일부 비슷한 사양도 있지만 조금씩 다른 부분도 있다. 한쪽 또는 둘 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사양도 있어 세부 정보는 시간을 조금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사양 면에서는 의미 있는 판단을 하기는 어려운 시점이다.

다만, 대략 보면 성능 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아 보인다. 일부 미확인 사양이나 구체적이지 않은 부분이 확정될 경우에는 조금 달라질 수 있겠으나 이 역시 두드러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가격과 독점 타이틀, 그리고 부가 서비스 정도일 것이다. 특히, MS는 Xbox One에서 강한 쓴맛을 경험한 만큼 이번에는 유저에게 외면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전 기기인 PS4와 Xbox One의 경우, PS4는 Xbox One에게 가격, 부가서비스 등 방향적인 부분에서 유저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는 MS가 Xbox One을 게이밍 기기로 포지션한 것이 아니라, Xbox 360에서 재미를 본(?) 키넥트를 활용한 음성, 제스쳐 인식 및 다양한 기능, 스마트 TV 등 홈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올 인 원 홈 엔터테인먼트'를 표방했기 때문.

게임을 위한 좀 더 집중된 경험이 아닌 부가 서비스에 집중한 것에 대해 유저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로 인해 PS4와 100달러 가까이 가격 차이가 나면서 가격 경쟁에서도 뒤졌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중고 타이틀 취급 방식의 경우 PS4는 제한이 없지만 Xbox One의 경우 거래는 가능하나 중고 구매자가 게임을 즐기려면 계정 이용료를 별도 결제해야 한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8세대 콘솔은 PS4가 가격과 성능, 방향 모두 유저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승리를 가져갔다.


자신들의 울타리에 더 많은 유저를 묶어두려는 MS의 방향은 결국 과욕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PS4의 압승으로 끝났다. 심지어 국내의 경우 한국어 음성, 셋톱박스 등 일부 기능을 지원하지 않은 채 출시돼 시장 대응에 미흡한 모습도 보였다. 

내년 홀리데이 시즌을 앞두고 E3, 게임스컴, 도쿄게임쇼 등 많은 게임쇼가 열리는 만큼 여기에서 기기의 세부 정보 및 외형, 그리고 론칭 타이틀까지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사의 자체 행사를 통해서도 공개될 정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클라우드 게이밍, 소니와 MS의 상황은?

MS의 반격이 주목되는 가운데, 수면 위로 가장 많이 올라온 기능이 있으니 바로 '클라우드 게이밍'이다. MS는 현재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인 'X클라우드'를 준비 중이다. 지난 E3 2019에서 공개하며 많은 기대를 받기도 했다.

당시 X클라우드는 LA에서 640km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데이터 센터와 연결해 시연을 진행했음에도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Xbox One 독점작과 서드파티 타이틀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타사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보다 경쟁력을 드러냈다.
특히, 앞서 공개된 구글 스태디아와도 비교됐다. 구글 스태디아는 공개 당시 입력지연 현상과 더불어 독점 타이틀의 부족함, 서비스 이용료와 게임 이용료를 별도 결제해야 한다는 점 등은 우려를 낳기도 했다. 참고로, MS는 SK텔레콤과 X클라우드 서비스 협력 계획을 밝혔으며 곧 사전 체험단과 시범 서비스를 연말까지 실시한다.

PS5 출시와 함께 지원할 것으로 보이는 '플레이스테이션 나우'(이하 PS나우)도 2014년부터 서비스 중이기는 하나 전혀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PS나우는 약 650종 이상의 PS2, PS3, PS4 일부 게임을 북미, 일본, 유럽 등에서 서비스 중이다.

하지만, 출시를 앞둔 회사들의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와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여러 회사가 PC 외 무선 인터넷을 통해 모바일, 태블릿 디바이스 등 기기의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을 내세우는 것과 다르게, PS나우는 PC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4K, 8K 등 초고화질 그래픽도 지원하지 않는다. 유료회원 수도 약 70만 명에 불과한 것을 보면 서비스 유지 차원의 의미가 더 강하다. 가격도 구글 스태디아와 X클라우드보다 더 비싸다.

최근 소니가 PS나우의 가격의 이용금액을 대폭 낮췄으나, 이는 해결해야 할 전체 내용 중 일부다. PS5 출시와 함께 적용할 라인업 확보와 더불어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할 디바이스 확대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남은 기간 소니의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의 방향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소니 입장에서는, MS 외 구글, 엔비디아 등 여러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경쟁사를 고려해야 한다.


# 하위 호환, 또 다시 경쟁 요소로 등장하나

PS4와 Xbox One의 경우, 하위 호환은 Xbox One만 지원했다. Xbox One도 초기에는 지원되지 않았으나 2015년 <매스 이펙트>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하위 호환 게임을 넓혀 나갔다. 

메리트 있는 요소이나, 이를 지원할 경우 생산 단가와 소비자가격이 상승해 무작정 넣을 수는 없다. 이로 인해, PS4는 PS3와 하드웨어 구조에 달라 이를 지원하지 않았다. Xbox One은 기기에 맞춘 파일을 다운받아 Xbox 360 타이틀을 지원했다. 주기적인 패치도 진행했다.
그러나, PS5와 스칼렛이 발표되면서 양사는 모두 하위호환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소니는 PS5가 PS4 베이스 아키텍처를 사용하기 때문에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으며 PS4만 하위호환 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원 자체만 확정일뿐 호환 가능 범위가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스칼렛은 이에 비해 구체적인 편이다. MS는 E3 2019에서 스칼렛에 모든 Xbox One 게임 하위호환 지원을 밝혔다. 더불어 이전 기기들인 Xbox와 Xbox 360 타이틀 역시 대부분 지원한다.

PS4와 Xbox One 모두 뛰어난 퀄리티의 그래픽을 갖춘 타이틀이 다수 출시됐기에 PS5, 스칼렛에서도 이를 포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기에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까지 갖춘다면 온, 오프라인에 걸쳐 다양한 하위호환 지원 방식이 지원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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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데스 스트랜딩> 속 연결은 게임과 영화의 연결도 있다. 이번 작품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게임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나아가 게임을 오랫동안 플레이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게임으로 접근해 보다 많은 사람이 게임을 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의도에 맞게 많은 사람이 플레이하고 또 반응해줘 기쁘다.
"게임중독은 의료적 치료 방법도 없고, 게임이 원인도 아니다"
한국심리학회는 게임중독 질병코드화 반대 ... 조 학회장 "학자로서 지킬 것 지켜야" 2019년이 게임업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중독'의 국제 질병코드(ICD-11) 등재다. 이에 따라 국내 의료계 역시 '게임 중독'을 한국의 질병코드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게임업계 등 '게임 산업 진흥', '게임 중독 객관적 근거 부족' 등을 주장하며 게임 중독의 질병코드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런 갈등을 대변하듯,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를 위해 모인 정부 관계부처와 문화계, 의료계 등이 포함된 민관협의체 역시 날선 비판만이 오고 가고 있다. "게임중독은 의료적 치료 방법도 없고, 게임이 원인도 아니다" 답답한 상황에서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이 입을 열었다. 국내 알코올 중독 센터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던 그녀는 현재 게임중독에 관한 의료계의 입장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가장 최근에 열린 민관협의체 회의에서는 한국심리학회를 대표해 게임중독 질병코드화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약 30년간 중독자에 대한 상담과 치료를 하고 있는 조 학회장은 게임이 중독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중독과 관계는 있지만, 게임이 중독의 원인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입장이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총신대학교에서 조현섭 학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 # 게임으로 인한 중독은 분명 존재, 하지만 의료적 치료 해법 아냐 디스이즈게임: 반갑습니다. 평소 중독에 관한 일을 지속해서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이하 조현섭 회장): 안녕하세요. 약 30년 동안 중독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조현섭입니다. 1990년 자격증을 받고, 병원에 출근하면서 중독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병원에는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중독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중독에 대한 치료는 가족과 교류 못 하게 병원에 입원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독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발표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독 전문가'가 됐네요. 알코올 중독 센터, 도박 센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게임중독(Gaming Disorder)'을 ICD-11에 포함했고, 이에 맞춰 국내에서는 게임 중독을 질병코드로 지정하려 합니다. 중독 전문가로서 게임중독 어떻게 보시나요? 조현섭 학회장: 게임으로 발생하는 피해가 얼마나 큰지 항상 느끼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게임으로 인한 중독의 상담을 위해 일주일에 3~4팀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질병코드화 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병원에서만 게임으로 인한 중독에서 회복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반이 넘는 중독자가 청소년입니다. 이 청소년들을 병원에 3개월 넣어서 치료되면 제가 먼저 나서서 그렇게 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게 최선이라면 중독 전문가 입장에서 거부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오히려 다들 반대해도 앞장서서 끌고 가겠죠. 병원에 가는 게 답은 절대 아닙니다. 입원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3개월 뒤 퇴원하면 과연 안 할까요? 개인마다 사연이 있어서 중독의 원인도 다양합니다. 중독자의 중독 수준, 욕구 등을 복합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상담이나 프로그램을 해도 중독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에 입원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만약 의학적 원인이 분명하다면 당연히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원인도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치료 방법, 수술 방법, 약도 다 불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입원부터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 등 다른 중독은 어떻게 치료하나요? 조현섭 학회장: 병인론(etiology)이라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중독은 병이라고 하기에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의사에게 병원에서 중독 치료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니, 5-10분 정도 진료하고 약을 처방한다고 합니다. 약은 불안 장애나 우울증과 관련된 약을 줍니다. 너무 황당합니다.  약으로 해결될까요? 임시방편입니다. 중독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심리학적 상담'이 필요합니다.  원인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약을 처방받는 게 무섭기도 합니다. 약을 받는 것을 자체를 반대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조현섭 학회장: 아닙니다. 자살이나 타살 등 직접적인 가해가 생길 정도라면 약도 필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확실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약을 먹이는 것을 반대하는 겁니다. 중독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상담해보면, 또래 관계나 부모와의 문제가 더 클 때도 잦습니다. 현상만 보고 우울증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심리학적 상담이나 인지행동치료 등으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병원을 나서는 순간, 약을 끊는 순간 재발하겠죠.  # 중독 치료의 근본은 '중독자가 다시 사회생활이 가능한 것' 중독에서 '회복'된다고 표현하는데, 중독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조현섭 학회장: 중독자가 다시 사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외국 같은 경우는 병원에서 치료하기보다는 지역 사회에서 중독자를 돌봅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무작정 병원에서 치료하면, 경제적으로 큰 손해입니다. 심지어 중독자의 대부분은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지역 사회는 중독자 수준에 따라 참가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외국 관계자는 이런 지역사회의 프로그램이 생각 이상의 효과를 거둔다고 말했지만, 처음에 안 믿었죠.  지금은 어떤가요? 조현섭 학회장: 알코올 상담 센터부터 알코올 중독과 관련된 프로그램과 센터를 만들기 시작하니, 국내에서도 뚜렷한 효과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법무부랑 협조도 했고요. 외국 같은 경우, 어떤 사람이 중독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면, 교도소로 보내기보다는 '수감 명령 프로그램'을 하게 합니다.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게 되는 거죠.  국가 입장에서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적 비용 등을 최소화하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에 있습니다. 병원 또는 교도소에 가둬놓고 억지로 못 마시게 하는 것과 마실 수 있는데 안 마시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독자가 후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현재는 한국에도 알코올 중독 등 다양한 중독 분야에서 도입되고 있습니다. ▲ 외국의 중독자 관리 시스템 사례 (출처: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 제공) 단순히 상담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와닿지 않습니다.  조현섭 학회장: 중독과 관련된 치료는 인간을 전반적으로 다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박 중독과 관련 있다고 도박만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삶 자체가 변화해야 합니다. 어쩌면 나쁜 습관을 버리고,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시 배우고 생각해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별도의 주택에서 지내면서 치료를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학생이라면 학교도 다녀오고, 직장인이라면 직장 다녀와서 치료를 진행하는 겁니다. 학교나 직장을 못 가게 하는 게 아니라요.  병원도 중독과 관련되어 3개월 정도 치료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3개월도 길게 느껴집니다. 조현섭 학회장: 병원은 보통 3개월, 최장 6개월 치료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부족합니다. 중독에서의 회복은 굉장히 오랫동안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중독을 경험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회복자'라고 소개합니다. '끊었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중독을 이겨낸 것처럼 보이는 분들도 계속해서 욕구가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루만 참자'가 그들의 구호입니다. 중독에서의 회복은 절대 쉬운게 아닙니다. 이들에게는 접근성과 긴 시간 치료, 그리고 중독자의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면 결국 외국처럼 지역 사회가 나서야 하는 것이죠. 게임으로 인한 중독만이 아닌, 중독 문제 자체가 병원에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조현섭 학회장: 그렇습니다. 저는 30년 동안 중독자를 만났습니다. 중독의 문제는 병원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중독자가 가진 문제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그 원인은 다양합니다. 어떤 것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의 중독 수준을 파악하고 중독 수준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레지덴셜 프로그램(거주 시설)'도 좋은 방법입니다. 생활 패턴 자체를 바꿔주는 치료죠.  또 필요한 것이 저는 '직업 재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독자가 진정으로 회복되려면, 다시 말해 사회생활 하기 위해서는 직업 재활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독자가 온전한 자신의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회복됩니다.  또 중독자 치료 시에 가족들도 상담을 받는 등 해야 합니다. 가족들도 상처를 많이 받기 때문이죠. 중독상담의 기본적인 원칙이기도 합니다. 이걸 병원에서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중독의 가장 전문가는 전(前) 중독자(Ex-addict)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외국에서는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으로 고생한 중독자가 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이끄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들이 치료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사실 '심리학적 상담'을 할 수 있는 심리학자들도 중독 치료에 참여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 중독자나 힘든 상황에 대해, 당사자가 모임을 이끄는 모습은 해외 영화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출처: 캡틴아메리카-윈터솔져 캡쳐) # 오히려 상담 치료의 길은 줄어... 박사급 전문가 돈 못 받는다 계속해서 상담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상담 치료에 대한 불신이 있어요. 효과가 있는지, 믿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현섭 학회장: 상담에 대한 불신, 이해됩니다. 상담과 관련된 민간 자격증만 8천 개 정도입니다. 어떤 자격증은 3시간 만에 인터넷으로 상담사 자격이 나오기도 합니다. 저도 심리 상담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걱정됩니다. 실제로 상담 전문가가 아니면서, 시설만 잘해놓고 돈만 버는 사람도 여럿입니다. 저조차도 상담을 어디로 보내야 할까 고민될 때가 있으니까요. 말씀하신 '상담'은 단순하게 대화하는 것 이상인가요? 조현섭 학회장: 단순한 상담이 아닌 '심리학적 상담'입니다. 어떤 상담보다도 중독에 관한 상담은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심리학적 상담은 상담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심리학자만 할 수 있습니다.  한국심리학회는 석사 졸업하고 3년 정도 트레이닝해야 자격증을 딸 수 있습니다. 박사급으로 준비해야 하는 거죠. 이런 전문가가 우리 협회에만 5만 명 정도 있지만, 상담 등 국내 활동이 쉽지 않습니다. ▲ 한국심리학회가 주는 상담심리사 자격에 대한 기준. 얼핏봐도 기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 중독 전문가가 중독과 관련된 활동하기가 어렵나요? 조현섭 학회장: '치료'는 기본적으로 의료입니다. 법률상 의료인에 포함되지 않거나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심리학자를 위한 수가(酬價, 의료 보험 등의 명목으로 보수로 주는 대가)가 없으니, 심리학자를 고용하여 인지행동치료 등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인으로 분리된 X-레이 기사나 직업재활사, 간호사는 인지행동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심리 상담을 몇 년 전공한 사람은 못하지만요. 이게 법입니다. 게임중독이 질병코드화되면 중독 전문가에 대한 괄시가 더 심해질까요? 조현섭 학회장: 저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의료계는 심리학자나 사회복지 관계자와 함께 게임중독 문제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게임중독이 질병코드화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의사들이 의료 행위라고 말하는 순간 심리학자 등 모든 게 멈추게 됩니다. 병원 밖에서 게임 중독을 치료하는 것 자체가 법적 처벌이 받는 일이 될 수도 있고요. 상담만 받아도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중독자들이 많습니다. 병원에서 모든 것을 담당하면 진단은 의사가 내리겠죠. 저희가 중독 전문가인데, 진단은 왜 의사가 하게 됩니다. 중독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의사는 국내 열 명이 될까 말까입니다. 마약 중독 환자를 만나본 의사가 몇이나 될까요?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죠.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는 우리가 치료 못 합니다. 의학적인 모델에 의해 전문가가 나서서 치료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게임은 다릅니다. 확실한 원인도 치료법도 없는 상황에서 게임 탓에 문제가 생긴 아이들에게 의학적인 처치부터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게임 중독에 대해 더 연구하길 바랍니다. 중독자를, 아이들을 정신 병원에 가두기보다는, 개개인에 접근하고 고민하길 바랍니다. ▲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쉼터 (출처: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 제공) # "청소년들이 겪는 게임 문제, 이것의 최소화를 고민할 때다" 게임 중독의 국내 질병코드화 반대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조현섭 학회장: 네, 반대합니다. 한국심리학회의 입장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조현섭 학회장: 네. 한국심리학회에는 15개의 분과학회가 있습니다. 그 중 이번 '게임중독'과 관련된 분과는 중독심리학회입니다. 오래전부터 중독심리학회는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를 반대해왔고, 다른 학회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입니다.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를 위한 민관협의체가 있습니다. 토론 등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나요? 조현섭 학회장: 가장 최근 민관협의체 회의에도 참여해서 반대 의견을 밝혔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저는 게임에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게임 업체 편이 아닙니다. 게임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심리 사회적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산업의 발전이 아닌, 온전히 중독자의 회복에 집중하면 합니다. 또 이와 관련된 토론이 마련된다면, 언제든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의사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 많습니다. 저는 탁상공론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꼭 나누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심리학회가 현재 게임 중독과 관련된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을까요? 알코올 중독과 관련되어서는 십여 년 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현섭 학회장: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독심리학회가 있지만, 주로 성인과 관련된 중독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게임중독에 대해서는 다른 중독에 비해 학자들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많은 제자나 학생들에게 게임중독에 물어보면 다들 '중고등학생 때 열심히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지금은 다른 중독과 다르지 않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은 평생가는 문제입니다. 게임중독은 다른 중독과 시작점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중독과 다르게, 게임중독의 회복법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인가요? 조현섭 학회장: 흔히 어떤 일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중독'이라고 합니다. 잠을 안 자고 게임을 하게 되면 중독과 관련된 진단을 내릴 만한 행위들이 생기는 게 됩니다. 많이 한다는 것 자체가 중독이 아닙니다. 이런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예를 들어, 정신과에 가야 할까요? 저는 동의 못합니다. 저는 여러 번 강조하지만, 심리 사회적으로 해결하길 원합니다. 아직 연구를 통해 밝히지 못했지만, 저는 부모의 양육태도도 게임중독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 사이에 아이는 자기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은 더 분노하고, 부모를 더 원망하곤 합니다. 게임이 아닌, 더 큰 상처와 갈등이 생기는 거죠. 저는 이 같은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확신이 있습니다. 심리 사회적으로 접근하여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면 중독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임업계에 할 말이 있을까요? 조현섭 학회장: 게임업계가 나서서 중독을 이겨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느 정도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도박은 순이익의 0.5%를 기부하고 있습니다. 이와 똑같이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고 게임업계가 만드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달라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씀이 있을까요? 조현섭 학회장: 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청소년들과 중독자들의 게임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의료모델보다는 심리사회적 접근법이 효과적이었습니다. 정신 병원 등으로 또 다른 상처 안 받게 해야 합니다. 정신 병원은 어른들도 가기 힘든 곳입니다. 게임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하다는 이유로 병원에 입원하자, 약 먹자는 과대 해석입니다. 우리는 학자입니다. 그리고 학자는 확실한 증거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추정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정확한 원인을 가지고 와서 게임중독에 관해 이야기 해야 합니다. 
"브롤스타즈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게임을 실패 걱정없이 만든 결과물"
지스타 2019에 부산 찾은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게임 리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슈퍼셀의 <브롤스타즈>. 하지만 지금의 영광은 쉽게 얻어낸 것이 아니다. 2017년 6월 캐나다에서 소프트론칭한 <브롤스타즈>는 무려 18개월의 베타 기간을 거쳤다. 그 동안 게임 화면 방향, 게임 가상 컨트롤러, 게임 내 화폐 등 수 많은 변화를 거쳐야만 했다. 오랜 베타 끝에 <브롤스타즈>는 2018년 12월 12일, 전 세계에 동시 론칭했고,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오랜 산고 끝에 출시한 게임은 이를 보답 받듯 큰 인기와 상업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지스타 2019에 맞춰 부산에 찾아온 슈퍼셀의 <브롤스타즈> 담당 리드(lead) 프랭크 카이엔부르크(Frank Keienburg)를 만나 <브롤스타즈>와 슈퍼셀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물었다. 1. '브롤 스타즈'를 너무도 사랑한 남자,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 <브롤 스타즈>를 담당하고 있는 슈퍼셀의 '프랭크 카이엔부르크(Frank Keienburg)' 게임 리드 디스이즈게임: 만나서 반갑습니다. 많은 분이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거 같네요.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게임 리드(이하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안녕하세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입니다. 편하게 프랭크라고 불러도 됩니다. 독일 출신이고 핀란드에서 거의 5년 살았네요. 핀란드에 오기 전에는 프랑스에서 10년 정도 살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블리자드의 고객지원(support) 부서를 다녔어요. 처음에는 GM이었고, 후에는 300명이 넘는 운영자들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슈퍼셀과 인연이 닿아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슈퍼셀에서는 커뮤니티, 로컬라이제이션 등과 같은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 <브롤스타즈>의 게임 리드(Lead)가 됐습니다. 처음부터 <브롤스타즈> 게임 리드는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브롤스타즈>를 이끌게 된 건가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갑자기’가 아닙니다. 저는 슈퍼셀 입사 때부터 <브롤스타즈>에 아주 열정적이었어요.  작년 5월만 해도 <브롤스타즈>는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실제 접속하는 플레이어 수도 감소하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여러 숫자가 계속 감소했습니다.  슈퍼셀은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서 회사에 어떤 일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게임 리드와 모든 팀원을 포함해서요. 당시 <브롤스타즈>의 게임 리드는 이 게임에 대해 좋지 않은 전망을 말했어요. 저는 그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정말 <브롤스타즈>를 사랑했거든요. 저는 이대로 <브롤스타즈>를 떠나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게임 리드에게 가서 구체적인 피드백을 줬고, 게임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당시 <브롤스타즈> 게임 리드는 CEO에게 저를 보냈고, 저는 똑같이 말했어요. 길게 대화를 나눴죠. 대화 덕분일까요? 조금 다른 일이 생겼어요. 어떤 일이죠?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개인적으로는 큰 변화라고 생각하는 <브롤스타즈>의 안드로이드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또 동양 시장에서 <브롤스타즈>의 아트 등이 경쟁력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싱가포르나 마카오 등에 소프트 론칭을 진행했죠.  그리고 7월이 왔습니다. 핀란드의 7월은 모두 휴가 갑니다. 저는 캐나다에 가서 쉬었죠. 그리고 휴가에서 돌아온 첫날, CEO가 직접 방으로 불러서 말했습니다.  “네가 <브롤스타즈>의 게임 리드가 되면 좋겠다” 처음에는 당황했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제안이었습니다. <브롤스타즈> 팀에 당장 필요한 사람은 팀을 조직하고, 팀에 힘을 불어 놓고, 팀을 이끄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저는 사람들을 힘을 주는 기술이 있고, <브롤스타즈>에 대한 열정이 넘쳤으며, 무엇보다 하드코어 게이머였으니까요.  또, 저에게는 게임과 게임 디자인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가 있기도 했고요. 이런 게 잘 조합된 셈이죠. 2. 슈퍼셀이 슈퍼-'셀'로 성공하다 <브롤스타즈> 개발 초기로 가겠습니다. 2016년부터 작업하던 아트 스타일을 2017년 1월 ‘리셋’했어요. 새롭게 아트 스타일을 준비하고, 같은 해 6월 캐나다에서 소프트 론칭을 진행했습니다. 빠른 속도죠.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게임 자체는 준비가 되어있어요. 게임 디자인은 물론, 게임팀이 각자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퍼즐 한 조각이 빠져 있었을 뿐이죠. 캐릭터 아트였습니다. 아트 스타일이 정해지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할 수 있었어요. 슈퍼셀에는 계급이 없고, 대신 게임팀은 아주 작은 조직(셀)으로 구성됐죠. 그래서 우리, 게임팀이 결정만 하면 빠르게 일을 실행하고 진행할 수 있습니다. <브롤스타즈>는 지금 세계 최고의 인기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2~3명일 때는 빠르게 결정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큰 조직이 되어도 가능한가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빠른 의사 결정은 팀으로서 목표이기도 합니다.  슈퍼셀의 게임 개발 과정을 알아야 이해가 쉬울 거 같네요. 슈퍼셀은 2~3명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아이디어 등의 컨셉 단계에서 재미를 증명해야 합니다. 증명되면,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회사 안의 몇몇 사람에게 보여주죠.  만약 게임에 대한 자신감이 더 붙는다면, 회사 안의 모든 사람에게 공개합니다. 회사 안의 모두가 경험하고 플레이할 수 있고, 피드백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해당 단계의 게임을 ‘컴퍼니 플레이어블(company playable)’이라고 부릅니다. 정말 모두가 할 수 있나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그럼요. 회사 안의 모든 직원이 플레이할 수 있고, 피드백도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남긴 피드백을 바탕으로 게임팀은 게임 개발 지속 여부를 결정합니다. 게임팀이 게임에 자신이 있다면, 소프트 론칭으로 넘어가죠. 그때, 게임팀의 크기가 늘어납니다. 대략 10명 정도로요. 일부 지역에서 소프트론칭을 시작하면, 게임팀은 이제 실제 숫자를 보기 시작합니다. 접속자 수나, 재방문율 같은 거죠. 그리고 이 실제 숫자를 바탕으로 글로벌 론칭을 결정합니다. 글로벌 론칭이 결정된다면, 15~20명 정도의 팀 사이즈가 됩니다. 실제로 현재 <브롤스타즈>는 23명의 팀원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슈퍼셀 게임팀의 평균보다 약간 높죠. 현재 23명으로 <브롤스타즈>를 개발하고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빠른 의사 결정에 관한 질문에 대해 답하겠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한 방에 모든 게임팀의 팀원들이 들어와서 이야기합니다. 팀원에는 개발 담당자나 기획자만이 아닌, 유저 지원 담당, 커뮤니티 담당, e스포츠 담당, 데이터 전문가 등 다 있습니다. 정말 모두가 함께 앉아있습니다. 매우 작은 방이고, 덕분에 누구나 말하기 쉬운 환경이죠. 방에 있는 저나 팀원 모두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멋진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더 이야기하고 빠르게 결론을 도출합니다. 내린 결론이 바로 게임팀의 결정입니다. 게임팀이 모든 결정을 내려요. 게임팀이 아닌 슈퍼셀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슈퍼셀의 각 조직(셀)은, 다시 말해 모든 게임팀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팀이 내리는 결정은 빠르게 실행까지 이어질 수 있죠. 하지만 '23명'이라는 숫자는 글로벌 서비스까지 이끌기에는 직원 수가 부족하게도 느껴집니다. 충분한 숫자인가요? 왜 더 채용하지 않고, 작은 조직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하나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기간 ‘작은 조직을 유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왜 사람들을 더 고용하지 않나’라고 묻기도 했죠. 사실 회사가 추가적로 고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긴 하죠. 슈퍼셀 구성원의 대부분은 경험이 많습니다. 대부분 '큰 조직'을 다니면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런 우리의 경험을 고려하면, 우리는 '큰 조직'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슈퍼셀은 큰 조직에 있는 ‘계급’을 원하지 않습니다. 계급이 생기면, 중간 관리자가 필요하고, PM이 필요하게 됩니다. 더 많은 프로듀서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팀 간 조율을 위해서 미팅도 필요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몇몇 사람이 결정하고, 다른 사람이 실행하게 됩니다.  우리는 (큰 조직에서 생기는) 이런 구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게임팀과 슈퍼셀 구성원 모두가 힘이 있고, 모두가 슈퍼셀의 게임을 자신의 게임이라고 느끼는 구조를 원합니다.  게임팀은 일종의 스타트업입니다. 그리고 저는 23명의 <브롤 스타즈>팀으로도 글로벌 서비스를 해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은 조직(셀)으로 대단한 성공을 만들었고, 이런 성공은 앞서 말한 큰 조직이 가지고 있는 장벽이 없어서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23명으로 구성된 게임팀으로 믿기 힘든 성공을 달성했습니다.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웃으며) 네 ▲ 지스타 2019에서 강연 중인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3. 슈퍼셀은 '게임팀이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  한국에서는 유독 <브롤스타즈>가 어린 유저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개발하면서 게임팀이 고려한 부분일까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개발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게임을 만드는 결정을 누가 하는 지로 돌아가게 되겠네요. 슈퍼셀에는 중간 관리자나 감독이 없지만, 있다고 가정해도, 회사의 다른 사람이나, CEO, 중간 관리자의 명령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어떤 게임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치 이것은 누군가 "우리 풋볼 게임을 만들어야 해"라고 하지 않는 것이죠.  그렇다면 슈퍼셀은 게임 개발을 어디서 시작하나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슈퍼셀 게임 개발은 아이디어, 특히 게임을 위한 아이디어에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게 좋은 아이디어라는 것을 다른 직원에게 설득해야 하죠. 마음에 든 직원이 합류하면서 게임팀이 형성되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해요.  여기서 어떤 유저를 위한 좋은 게임인지에 대한 고려는 없습니다. 대신 게임팀은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만 생각합니다. <브롤스타즈> 이야기를 하죠. 처음 <브롤스타즈> 개발을 시작하면서,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 같은 PC 게임을 목표로 했어요. PC에서 느낄 수 있는 치열한 경쟁의 경험을 담고 싶었죠. 하지만 작은 화면을 가진 모바일 환경에서 복잡한 UI는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래서 UI를 신경 썼고, (치열한 경쟁의 경험을 담기 위해) 실제 게임 플레이의 재미에 집중했죠. 다른 것은 없습니다. 물론, <브롤스타즈>의 귀여운 아트나 간편한 컨트롤 덕에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쉽게 시작했지만 마스터하긴 어려운 게임 특징이 어린 플레이어에게 매력적인 것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슈퍼셀의 다른 게임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타깃층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슈퍼셀에서는 개발하고 있는 게임팀이 <브롤스타즈> 등 슈퍼셀 게임들을 누구보다 즐긴다는 이야기 같네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맞아요. 우리는 우리가 게임을 재밌게 하기 위해 만들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도 엄청난 하드코어 게이머입니다. 많은 액션 게임을 했고, <오버워치>를 1,400시간 정도 했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많이 했죠.  하지만 재밌게도, 저도 모바일 액션 게임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PC와 비교했을 때, 모바일 컨트롤이 충분하지 않거나, 아니면 매우 복잡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브롤스타즈>는 제 첫 모바일 액션 게임입니다. PC게임만 하던 저도 재밌게 하고 있어요. 매일 <브롤 스타즈>를 하고 있죠. 이게 슈퍼셀의 게임팀이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슈퍼셀은 게임팀이 만들고 있는 게임에 대해 말만 하지 않고, 거기에 푹 빠져 있어요(We are not just talking about it, we're living it). 4. 실패를 두려워하지마라 <브롤 스타즈>의 베타 테스트 기간은 18개월 정도였습니다. 슈퍼셀의 게임 중 가장 긴 베타 테스트 기간이죠.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브롤스타즈> 이전의 우리 슈퍼셀의 게임은 대부분 전략 위주의 게임이었습니다. <헤이데이>마저 전략 게임에 가까웠죠. 지금까지 개발해 본 게임들과는 다르게 <브롤스타즈>는 많은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이 많았어요. <브롤스타즈>는 액션 게임입니다. 또 실시간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브롤러, 새로운 스킨 등 관련된 모든 콘텐츠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다른 것이 많았습니다. 슈퍼셀이 이전에 안 해본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공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년 반이라는 시간 자체가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회사에는 <브롤스타즈>에 대한 믿음이 있었나요? 슈퍼셀에서는 누가 게임 개발 지속 여부를 결정하나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슈퍼셀은 모든 결정을 게임 팀이 합니다. '게임 개발 취소(killing the game)'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슈퍼셀은 많은 개발 취소 사례가 있고, 최근에도 결정했죠. 사실 슈퍼셀은 게임 개발 취소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게임팀이 스스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처럼 보입니다.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게임 개발 취소(killing the game)에는 많은 가치가 있습니다. 2015년 소프트론칭한 <스매쉬 랜드>라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당시 <스매쉬 랜드>의 게임 리드는 '조난단 다우어(Jonathan Dower)'였죠. 게임은 꽤 좋았습니다. 유저 평가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고, 게임팀도 느꼈습니다. 큰 성공이 힘들 것으로 보였고, 게임팀은 게임 개발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 조나단은 <클래시 로얄>의 게임 리드가 됐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게임이죠. 게임팀은 <스매시 랜드> 개발 취소에서 얻은 배움을 <클래시 로얄>에 담았고, 더 나은 게임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죠. 조나단의 경험 역시 게임과 게임팀 모두를 더 나은 길로 이끌었죠 ▲ 좋은 평가를 받았던 <스매쉬 랜드>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는 좋은 말이지만, 모든 개발자나 개발팀이 슈퍼셀처럼 일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저는 슈퍼셀을 단순하게 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슈퍼셀은 여러 상황이 적절해서 할 수 있던 거죠. 핀란드 회사이기에, (핀란드 문화에 맞춰) 직원들이 서로 솔직한 피드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슈퍼셀은 계급도 없고, 사람을 독특하게 긴 인터뷰를 통해 뽑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슈퍼셀을 따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 중 하나를 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만약 사람들에게 실패를 하지 말라고 하거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게임 개발 취소가 좋은 예입니다. 만약 게임 개발 취소와 함께, 팀 모두가 해고되는 걸 상상해보죠. 실제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정말로 많은 곳에서 프로젝트가 취소되면, 사람들은 해고됩니다. 한국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죠. 슈퍼셀은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게임팀의 게임 개발이 취소가 되면 어떻게 되나요? 프랭크 카이엔부르크: 슈퍼셀에서는 게임팀이 실패에서 알게 된 배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다른 프로젝트로 이동합니다. 실패의 경험은 다음 프로젝트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실패를 해도 다른 프로젝트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다음 슈퍼셀 게임을 만드는 게임팀도 실패가 두렵지 않습니다. 실패한다고 사람들을 해고한다면, 어떻게 다음 게임팀이 '게임 개발 종료'라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못하죠.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면, 자신의 직장을 잃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연히 못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게임 개발 종료는 그 자체로도 슈퍼셀에게 큰 자산입니다.  그들이 실패하기 위해서는 많은 게 필요합니다. 신뢰를 주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또 그들에게 힘을 계속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실패를 허용하고, 실패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말 한 번으로 되지 않습니다. 벽에 '실패해도 된다'라고 쓴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게임팀에게 매일, 매달, 그리고 매년 이 사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들이 실패해도 된다는 것을 진심으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운 자룡 (趙雲 子龍) A.D.? ~ 229
아오.. 시부랄 다 써놨더만, 뭔 에러가 났는가.. 업로드 누르니 싹 씻은듯이 날아가 처음부터 다시 쓰는 오늘의 주인공새끼는 바로 "조운" 삼국지라는 컨텐츠의 인기가 가장 좋은 동아시아 삼국인 한국, 중국(타이완 포함), 일본은 각기 최고인기 인물이 그 나라의 국민성향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다른데, 중국 : 이미 신격화된 "관우" 한국 : 전통의 문(文) 숭배 영향인지 "제갈량" 반면, 삼국지를 가장 상업적 컨텐츠로 잘 활용해낸 일본은 조운의 인기가 제일 좋다. . . . 아마 오랜시간 무(武)가 우선시되며, 또 그런 문화특성상 주군의 명이라면 유불리 떠나 묵묵히 수행하는 "사무라이(侍) 정신"이 모토인 점 등이 작용한 듯. 조운이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다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기 없진 않다. 두세번째쯤에서는 반드시 언급이 되는 역시 인기스타! 심지어 인기는 오히려 삼국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더 높은데, 이건 조운을 좋아하면 삼국지를 모른다거나... 그런 디스가 아니라, 아무래도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깊을수록 더 많은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조운 외의 다른 인물들을 최애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워낙 유명한 조운의 인기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잘 모르거나 안읽어본 이들도 알만한 급의 유명스타기에 그렇다는! (이는 조운 외의 인기인물들도 비슷한.. ,) . . . 조운은 위처럼 유명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있지만 무엇보다 후한 말, 초창기 떠돌이시절의 유비를 따르기 시작, 후에 그 유비가 황제 되고 또 붕어한 이후까지의 긴~ 활약기간의 이유가 있는데, 정말 의외스럽게도 그런 긴 시간 활약하며 제국의 개국공신되고 또 그만큼 고위직에 오른것치고 의외로 기록이 많이 부실하다. 정사의 촉서 중 조운전과, 신뢰성은 좀 문제가 있지만 조운전의 부실함을 좀 채워주는 조운별전 등의 기록을 모두 합쳐도 군시절 내가 쓴 편지의 양보다 적다....;;; 조운이 이토록 부실한 기록을 가졌음에도 거대한 인기를 누리는 실질적인 큰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바로바로.. 일본게임업체 "코에이(KOEI)" 의 "삼국지 시리즈" 덕이다. 삼국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책과 코믹스가 있었고... 중국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옛날부터 "경극"이라는 미디어(?)매체들 통해 후대인들이 삼국지(연의)를 즐겼다. 하지만 사서 통해 확고한 비쥬얼 이미징이 되어 있던 극소수의 몇몇 인물들 외에는 인물간 개성을 구분지을 표현은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 1985년 일본의 코에이에서 창업자이자 삼국지 시리즈의 창조자이기도 한 삼국지덕후인 "에리카와 요이치"가 미칠듯한 덕력으로 자료들을 수집해 이를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각 인물들의 프로필을 제작하여 이를 게임에 응용하게 되는데... 이 게임이 대박이 나게 되며 나름 고증도 괜찮았고 멋지게 잘 표현된 인물들 일러스트들도 같이 대박났다. . . . 이후 각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등 온갖 미디어물에서 다루는 삼국지의 인물묘사들은 이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모티베이션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조운을 초절세미남으로 표현했고 시리즈 거듭될수록 나날이 더 미남이 되어가며 대부분 사람들에게 "조운 = 미남"의 공식이 공식화 되었다는... 이로서 사료와 연의 속의 과묵하고 충직한 무력깡패 이미지에 코에이가 미남 이미지를 데코레이션 해주며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ㅋ . . . 참고로 위에 언급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삼국지 시리즈 오프닝 초반에 이름 나오는 프로듀서인 "시부사와 코우"와 동일인물! 저작권 관리 등 사업적인 이유로 지은 이름인데 에리카와가 존경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이의 성과 코에이의 코를 따와서 지은 이름. 실제 조운도 미남이였는지에 대해 조운전은 무언급, 조운별전에서만 "8척의 위풍당찬 체구와 사내다운 용모" 라고 짧게 언급이 꼴랑...ㅎ 당시 도량형 기준 8척은 지금 기준으로도 큰 키인데, 정말 딱 자로 재서 저만큼의 키라는 것보다는 주로 당시의 작디 작던 일반인들보다 훌쩍 키 큰 이들을 일컬으며 쓰던 감탄적 관용어구로 주로 쓰인 표현. 그래서 사료에도 실제로 키가 크다며 제법 명확한 데이터가 있던 제갈량이나 정욱 등등도 있지만 대체로 삼국지에서 8척, 여덟 자 어쩌고 하는 표현이 붙는 이들은 대개 "덩치 좋다!!" 는 의미로 쓰였고 조운도 마찬가지다. 보아하니 그냥 덩치 좀 있고, 생긴 것도 잘 생겼다기보다 남자답게 생긴 호남형 외모 수준인 것을 코에이가 무슨 존잘러로 만들어 놨다...ㅋㅋㅋ 오히려 조운의 외모묘사는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더 사료에 입각했지 싶은ㅎ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제갈량과 함께, 주로 자로 불려지는 인물. 간혹 조운이란 이름은 모르고 조자룡으로만 아는 이들도 꽤 있다. . . . 많은 분들이 별 생각없이 넘겼을 수도 있지만.... 은근 논란이 되었던 건 조운의 "나이"다. 제목에서 보듯 그의 생년관련 공식기록은 없다. 긴 시간 활약하며 사망당시는 제법 고위직이였음에도 인물기록 중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생년기록이 없으며 정사 저자 진수조차 체크를 못한 듯 싶다. 삼국지연의내의 내용들만 보면 유비보다 8살이나 연상으로 나오지만, 이건 나관중이 이렇게 저렇게 조운을 띄우다보니 설정붕괴가 오며 생긴 착오로 보여지고... 대체로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학자들은 조운을 대략 170 ~ 171년생쯤으로 보고는 있다. 그런데 170년으로만 잡아도 만 60세도 채 못 채우고 사망.. 연의에서 그려지는 노익장의 이미지에는 살짝 아쉽다. 물론 당시 평균수명 짧은 탓이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이기도 했다지만 노인사망연령 역시 짧은 탓도 있던 터라, 단명으로는 절대 볼 수 없겠지만 오래 살았다 할 수도 없는 나이임은 분명하다. 하긴, 당시 기준에 50대 중후반 나이의 장수가 전장에서 현역생활 했다면 노장인건 맞긴 하지... 살짝쿵 이견들은 있지만 확실한건 "공손찬" 아래에서 사실상의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공손찬 휘하에서 객장, 즉 일종의 용병 생활하던 유비를 만난것도 맞지만, 소년장수 조운이 이미 당시의 하북에서 네임드 맹장이던 문추와 대결한건 허구다. . . . 연의에서처럼 실제로도 조운은 공손찬 휘하에서 별 다른 활약기회없이 지내다 공손찬과 원소 양측이 제대로 전쟁 치르기 전에 형의 장례를 이유로 낙향하며 사실상 공손찬측에서 '퇴사' 했다. (형이 있었어?ㅋㅋ) 많은 이가 조운을 못 알아본 공손찬의 무지함을 까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관점일뿐... 당시 시점에서 공손찬이 무지했다 볼 수는 없는게, 그때의 공손찬은 북방의 여러 소수민족들과의 전투를 이겨내며 명성을 키운 실전강자였다. 거칠고 사나운 그들을, 몸소 전장지휘하며 조져놨던 공손찬세력에는 당연히 병력들을 이끌던 여러 검증된 장수들이 있었을테고 공손찬이 무슨 스카우터를 쓴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나타난 젊은 신입장수의 전투력을 알아보고 기회 주기보다는 기존의 전공 많고 검증된 이들 위주로 운용했을거다. 체격이나 그런거 딱보면 모르겠냐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평균신장 작던 그 시절이라도 공손찬처럼 성공한 큰 세력하의 장수들까지 다 작진 않았을거다. . . . 축구로 치면 몇 시즌 동안 리그우승을 거듭한 강팀이 있다 치고 그 팀에는 당연히 우승을 이끈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을텐데 이런 와중에 그들을 벤치에 앉히고 유망주에게 선뜻 기회 주긴 쉽지 않다. 게다가 스포츠는 큰 의미없는 게임이나 대승을 거둘 때 잠깐 투입해도 무리없겠지만 후한 말의 난세는 실전이라 괜히 검증안된 어설픈 지휘관을 투입했다 혹여 실책이라도 저지르면 그대로 수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다. 또 여러 번 말했듯 당시 전투는 "기세싸움"이라, 내리 이기고 또 전력이 유리해도 엄한 짓 한 번으로 역전패 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실전"이였다. 그리고 조운이 공손찬 휘하에 임관한 때는 공손찬이 북방을 어느 정도 다져놨고, 원소와는 제대로 붙기 전이라 더욱 전투에 나설 기회가 많지 않던터에, 원소와 붙기 전 낙향했다. 여러모로 공손찬이 모자라서 조운을 활용안했다 몰기는 공손찬도 억울하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역시 당양 장판파에서 아두(유선)를 품고 조조의 대군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는 부분이다. . . . 이 부분을 보면 따르는 이도 없이 오로지 혼자... 심지어 애까지 품고 전장을 휘저으며 싸울 놈과 싸우고 죽일 놈은 죽이는 등 할 거 다하고 다니는 육아무예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훗날 유선 하는걸 보면 이는 조운 최고의 실책....;;;) 이 부분은 역시나 나관중이 조미료를 과도하게 쳤다. 물론, 저 극한상황 속에서 목숨바쳐 자기주군의 유일한 적자를 구해낸 자체는 맞는데... 저렇게 이리저리 죄 후비고 다닌 것은 아니였다. 상식적으로... 적군이 널린 상황 속에, 자기는 혼자. 주군의 아이를 품고 있는걸 떠나 설령 혼자라 해도 대놓고 '내가 조운인데 뭐 어쩌라고' 하며 다니는건 무예와 용맹을 떠나서 만용의 정점을 찍는 어리석음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부득불 적병과 마주쳐도 걔네들을 싹쓸고 가기보다 아주 최소한의 마찰만으로 어떻게던 돌파하거나 경우에 따라 제법 많은 인원이 다가오면 숨어있다가 다 지나가면 뒤도 안보고 달아남을 반복하며 빠져나갔다. . . . 나쁜소식은 당시 장판벌을 헤집던 조조군의 주력은 평상시 조조의 호위를 목적으로 양성된 최정예부대인 "호표기(虎豹騎)"였다는거고... 좋은(?)소식은 이들의 포커스는 유비를 쫓는것이였다는 것. 게다가 당시 호표기가 뉴스나 인터넷으로 조운의 프로필을 검색해보거나 유튜브로 조운의 활약상을 본건 아닐테니 설령 조운을 마주한들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조운의 꼴도 말이 아니였을터라 효표기 입장에서 조운을 마주한들, 그냥 난전 중 낙오된 적군의 기병쯤으로 봤을테니 굳이 무리하게 전원이 덤벼서 악착같이 쫓거나 막으려고는 안했을 것이다. . . . 여튼 실상은 좀 김새고 싱거운건 맞지만, 조운의 활약이 과장되었단거지 없는걸 지어낸건 아니고 아무리 위와 같은 상황인들 조운이 생사고락의 아수라를 혼자만의 실력으로 돌파해 나온건 팩트다. 저 때의 활약이 인상깊었는지, 이후부터 조운은 주로 유비의 신변을 보호하는 호위부대장을 맡거나 유비 부재시 유비의 집안질서를 잡거나 보호하는 보안대장 비슷한 포지션을 주로 맡게 된다. 유비 입장에서는 성격도 단호박에 무력도 빼어나고 전략기재가 빼어난건 아닐지라도 원리원칙에 상명하복 확실하며 당장의 전술적 판단은 괜찮았던 편인 조운이, 성격적으로 워낙 개성들이 강하다보니 장단점이 확실한 의제보다 그런쪽으론 더 믿음 갔을 것이다. . . . 다만, 원체 난놈이라 전투에도 수 차례 투입되긴 했어도 기본적 포지션이 유비와 그 가솔들의 신변보호를 우선하는 직할대장이다보니 여타 야전지휘관들보다 가시적인 공적 세울 기회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느끼는 임팩트 대비 훗날 유비가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며 공신들의 공을 기려 직위를 하사때 조운은 우리가 알기로는 거의 동급 혹은 조운보다 아쉬운 이들이라 여겨지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보다 낮았고 위연, 이엄 등과 비슷하거나 살짝 앞서는 정도였다. 물론, 관직면에서는 그랬을지 몰라도 유비세력.. 나아가 촉한내에서 그는 직급을 떠나 아무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였다. 현대군에서 주임원사는 엄연히 계급상 갓 임관한 어린 소위보다 낮음에도 위관급은 물론 영관급 고위 장교들도 절대 함부로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당장 서열 No.1 인 유비 제외 그 아래로 관우나 제갈량조차 조운에게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지시를 내릴지라도 대놓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조운의 실력이나 공적 및 짬밥만으로 가능한게 절대 아니였고 조운의 "인성" 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당장 관우, 장비, 위연만 해도 촉한내에서 눈도 못 마주칠 거물들이였음에도 뒤에서는 그들을 싫어하거나 속으로 욕하는 이들이 적잖았고 결국 관우와 장비는 부하들의 하극상이 원인되어 남의 손에 목이 날아가고, 위연 역시 안티들에 둘러싸여 어그로만 끌고 살다 그 무수한 공을 세우고도 끝내 숙청이나 진배없는 최후를 맞은 걸 보면 조운은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다. . . . 무엇보다 상명하복에 철저한 "진짜 군인" 이였다. 다른걸 떠나 제갈량 영입 직후... 나이도 어리고 당장 크게 보여준 것도 없는 키만 큰 허연 선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해 관우와 장비는 몹시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당시 넹~ 하고 따른건 조운뿐이였다. 이후에도 유비의 명이건, 제갈량의 명이건 조운은 자신의 위세 높아지고 공적이 쌓여가도 대부분 군말없이 이행했다. 그런 조운이 유비의 지시에 대해 그와는 다른 자기주관을 드러낸건 역사적으로 딱 두번이다. 하나는 익주 정복 직후 기존 촉의 고관대작들과 부호들의 집과 토지와 뽕나무밭을 모두 압류 후 공신들에 재분배 하자는 것을 민심안정우선을 이유로 반대한 것. 두번째는 유비가 초사이언이 될 정도로 개빡쳐서 온 나라를 들어 오나라를 불싸지르러 가겠다는걸 정세와 이치상 맞지 않다며 반대한 것. . . . 둘 모두 너무나 옳고 바른 반대였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로는 정말 감히 반대하기가 거시기한... 사나이의 반대였다. 재산재분배의 경우, 가만히 있었으면 공이 적잖은 자신도 상당한 수혜자가 되며 유비의 그 발표 직후 모든 문무대관들은 입이 귀에 걸려 샴페인을 따는 분위기였고.. 오정벌의 경우, 의제 둘의 죽음과 오가 연관되어 인자함과 덕의 아이콘 유비가 생전 처음 눈까리가 뒤집혀 폭주를 하고 있는 현장이였다. 하지만 조운은 반대했다. 상명하복에 충실했지만 대의명분과 시국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조운이 단순히 커맨드대로만 움직이는 전투머신이 아니라는 뜻. 참고로 재산재분배건 당시에는 조운보다 서열이 위였던 제갈량, 장비, 수틀리면 상대 안가리고 막말 쏘는 법정, 조운 못지 않은 공적과 역시 근소하나마 윗서열 황충 등등 조운의 저 이뭐병소리를 지적하려면 지적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잔뜩 있었음에도 누구도 저 의견에 싫어요를 누른 이가 없음은 조운의 위세를 보여주는....! 평소에 원체 말수가 적었고 다른 이들과 별 다른 교분을 갖지 않았다. 조운의 사료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다른이들의 기록을 봐도 조운과 술 한잔 했다는, 조운과 사냥을 했다는, 조운과 식사를 했다는, 조운과 담화를 나눴다는, 조운과 차를 마셨다는, 조운과 바둑을 뒀다는, 조운이 집에 찾아왔거나, 조운의 집에 찾아갔다는 그 어느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조운이 그냥 아싸거나 독고다이였다기보다 과묵하지만 인성이 좋고 필요시에는 바른말을 했고, 맡은 소임에 충실한 직장인의 정석같은... 비록 노잼이긴 해도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 그런 묵직한 존재감의 인물이였다. 게다가 전장에 나가면 그 과묵함을 유지하며 미칠듯한 용맹을 자랑했으니, 별 기록 없다는 정사에도 조운이 매우 용맹했다는 기록이 강조되어 있다. 위에서 지시 떨어지면 형세가 불리하건, 병력이 적건 일단 묵묵히 들이대러 갔기에 붙는 기록이다.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코멘트 중 "자룡은 온몸이 담덩어리(子龍一身都是膽也)" 라는 멘트도 실존했던 멘트. 이릉대전 당시 유비에게 반대 걸었다 후방으로 빠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나가리의 개념이 아닌 조금이라도 본군의 형세가 불리할시 바로 지원 및 혹여 만에 하나라도 패퇴시 밀려올지 모를 오군을 사전에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강주를 맡긴 것이였고, 촉에서도 한중과 함께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요지여서 조운 직전은 장비가 맡았던 곳! . . . 유비가 백제성에서 유언 당시 제갈량과 함께 문무대관들 중 유이하게 유언을 직접 받은 신하로 연의에 나오는데, 하긴 유비가 떠돌던 시절부터 따르던 이들 중 당시 생존해 있던 신하가 그 둘뿐이도 했고 관우, 장비, 간손미, 진도 다 죽고 미방은 배신때리고 당시 숨 쉬던 게 그 둘뿐....T-T . . . 헌데 사실 저것도 나관중이 감동을 더하고자... 독자의 눈물을 뽑고자 지어낸 신파! 사실 유비 사망 당시 신하들 중 유비의 유언을 직접 받든건 제갈량 포함 두 명이 맞는데, 또 한 명은 조운이 아닌 바로 "이엄".. ..;;;; 이후 조운은 촉한에서 군의 인사권을 관할하고 황실을 호위하는 정예부대를 지휘감독하는 등... 대외정벌 부문 제외한 내부적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직위에 오른다. 보통 저 역할을 하는게 대장군인데, 본래 대장군은 타국원정권도 갖지만 그 방면은 제갈량이 도맡았던 터라 조운은 대장군의 저 책무만 분담한다. 유비는 직위, 직책에 대해 상당히 프리하게 실리를 중시해서 운용해왔는데... 유비는 당시 후한에 없는 직위도 임시로 만들어 쓰거나 기존 직위의 롤을 임의적으로 변형 하는 등 포지션보다 롤에 더 포커스를 맞춰 내부운영을 했고 이는 제갈량도 일정부분 비슷하게 진행했다. 그래서 조운의 직위자체는 실상 공적과 재직기한 등 커리어 대비 그닥 높은편은 아니였으나 역할은 상당히 주요업무를 맡은 편이였다. 이후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남만정벌도 다니고... 북벌도 다니며 눈감는 날까지 쉼없이 말타고 싸우러 다닌다. 참고로 위와의 전투 중 한덕과 그 다섯인지, 여섯 아들을 죄다 썰어놔서 한씨집안 씨를 말린건 조운의 노익장을 버프해주기 위한 나관중의 픽션이며 저런 한 부자들 자체가 없던 인물이다... 실제로 연의 속에서 조운의 창 아래 비명횡사한 이들 일부가 가상의 인물들이다. . . . 여튼 조운은 쉼없는 전투로 굴려지다 1차 북벌 다음해인 229년에 사망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짧은 생은 아니지만 길게 살지도 못한데는 역시 촉의 영토를 구석구석 누비며 거듭 참전하며 쌓인 과로탓인듯 하다. 그도 그럴게 촉은 고질적인 인재부족문제로 조운 정도의 경력과 나이의 장수면 황도에서 머물며 주요사안결정과 천자알현업무가 주가 되어야 했으나 당장 승상이 최전선에 지휘관으로 나가는 상황이니 조운 성격에 당연히 본인도 쉬지 않고 따라 나갔을 것이다.... . . . 조운 사후 순평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는데 이 시호는 조운 생전, 촉에 귀순하며 평소 조운을 존경해 마지않던 강유가 지었는데, 강유는 조운을 공경하여 몇 차례 함께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권했으나 모두 뺀찌먹었다... 전형적인 군인 of the 군인 스타일이다. 맡은바 임무에 의문제기없이 유불리 떠나 최선을 다하며 정치적 개입도 일절 없이 사리사욕조차 없다. 늘 과묵하며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고 매사에 엄정한 일처리 위해 개인적 친분도 나누지 않았으며 역시 무엇보다 주위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실력자였다. 본인의 경력, 실력, 공적에 맞지 않는 포상이나 직위에 대해 일절 불평불만을 가진적이 없다. 자신의 직위와 처우가 높아져도 이를 토대로 과한 야욕은 커녕 직권남용이나 후배들에 대한 하대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흐트러짐 한 번 없이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냈다.., . . . 공직자, 군인으로서의 조운은 완벽 그자체다. 제갈량과는 또 다른 면에서 공직자로서의 완벽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 조운의 삶은 완전 개노잼이였을거 같다. 모르겠다... 난 주위에 저런 선배나 형, 상사가 있으면 분명 당연 존경하고 롤모델 삼긴 했겠지만 고민이나 걱정 있을 때 조언을 구하진 않을거 같다.ㅋㅋ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정부관료건, 군인이나 경찰이건, 국회의원이건, 공무원이건간에 공직자로서는 확실히 저런 사람이 필요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아쉬운 처사에 불평불만이 없고 사리사욕 채우지 않았고 다른 고위직들과의 친분은 커녕, 말수도 없었던 그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조운을 아무도 쉽게 보거나 하지 못했다. 위나 오에는 있었겠지만 유비를 만나 따르고, 훗날 고관대작 되어 최후 맞기까지 최소한 내부에는 적이 없었다. 나는 조운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주위에, 사회에는 조운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정욱 중덕 (程昱 仲德) A.D.141 ~ 220
난 여기 접속해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대략 평균 연령대가 어찌 되는지를 잘 모르겠다만... 삼국지를 좋아하되,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면 왠지 삼국지를 처음 책(만화책)으로 접했을 확률이 높겠고, 나이가 좀 적은 분들이라면 아무래도 게임으로 먼저 접하다 흥미가 커지며 그 후에 책을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난 삼국지를 처음 책으로 접하다 꽤 시간 흘러 게임을 해보게 되었는데(KOEI 三國志2) 당시 상당히 충격적인 부분은 바로 "능력치" 였다... 사실.. 게임속 인물들의 능력치를 접하기까지 책이나 만화속에서는 일정 레벨 이상의 네임드 인물들의 우열을 가려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주유와 순욱 중 누가 더 뛰어난지, 장료와 방덕 중 누가 더 대단한지, 이건 알길이 없고 저마다의 상상과 추정으로 가려진다. 그러니 토론도 가능했다. 헌데 이 능력치가 매겨지며 내신등급처럼 인물들의 우열이 가려지게 되었고 이 기준은 투명하지 않음에도 게임 접해본 이들은 이 능력치로 인물들을 판단하게 된다. . . . 오늘의 주인공 "정욱" 역시 그런 능력치 시스템의 나름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긴 서론을 써본다. 수 많은 삼국지 게임들 있으나 가장 흥한 일본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를 예시해보자면 책사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능력치인 "지력"부문에서 정욱은 평균 90~91 가량인데, 그럼 과연 그는 동게임내 지력 평균치가 93~94인 순유나 95~96의 서서나 종회, 가후 등보다 못한 책사였을까?.... . . . 물론, 명확한 정답이야 없겠지만 내 생각에는 저 질문의 대답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며, 소설 속이나 게임 속 정욱이 아닌 역사 속의 정욱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해보기로~ 정욱(程昱)은 본명이 아니며, 본명은 "정립(程立)". 그러나 정욱이란 이름이 차명이나 가명은 아니고, 중간에 개명을 한건데 욱은 주군 조조가 지어준 이름! 어차피 당시는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주로 자를 불렀으며 연의에는 이런 디테일한 스토리는 안나오니 정욱의 개명전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엥간한 삼국지 빠돌이여도 거의 없다. 정욱 자체가 본인의 활약 및 능력과 별개로 별 다른 팬덤도 없는 비인기 인물이라 더욱...(T-T) . . . 현재의 중국 허난성의 구석진 작은 동아현이란 곳이 정욱이 나고 자란 고향이며, 황건적의 난 당시 지략으로 고향을 지켜내 이미 허난성의 당시 지명이던 연주에서 유명인사였다. 집안도 비교적 괜찮던 부유층이였고 본인의 학식과 지략도 출중하며 당시로는 진짜 어딜 가도 눈에 띄는 "거한" 이였는데.... 역사기록을 보면 8자 3촌으로.. 당시의 도량형을 참고, 현재의 수치로 환산해보면 거의 2m에 가까운 거인이다. 당시에는 좀 키가 꽤 크다 싶으면 일종의 감탄사처럼 "8척 거한"이란 표현을 썼기에, 사료에 8자(척)라 해서 건강검진 때 디지털 신장측정기로 잰거마냥 정확한 8자는 아니였겠지만, 정욱의 기록에는 굳이 8자 뒤에 "3촌"이라는 추가 단위가 붙은 것으로 볼 때 거의 정확한 신장측정이 맞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덩치도 상당히 좋았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하승진같은 정도의 덩치로 보였을 듯.. 보통 삼국지보면 힘쓰는 장수들이 덩치좋고 머리쓰는 책사들은 왜소하고 그럴거 같은데, 정욱은 본인이 임관해 있을 당시의 어지간한 위나라 무장들보다 체격이 컸을 듯 싶다. 연주의 유명인사다보니 일찍부터 여기저기서 오퍼를 받았고 첫번째는 후한 말 연주자사였던 "유대" 였는데, 당시의 유대는 한나라의 칙명을 받고 부임한 그냥 공무원 도지사같은 개념으로 와있었고 당시 원소나 공손찬같은 자기의 세력적 홈그라운드에서 터잡은 군벌은 아니였다. 당연히 별 큰 능력이나 야망은 없었고 정욱 역시 아쉬울게 없어 오퍼를 거절한다.(나같아도...;;;) 이후에 유대가 원소와 공손찬이라는 당시의 두 고래 사이에 끼어 난감한 상황 속에 정욱에게 자문 구하고 정욱이 해준 조언을 따르자 어려움 피한 일이 있었는데, 이에 재차 유대는 정욱에 스카웃 제의하나 역시 거절... 이후 유대가 황건적 잔당들 토벌 중 사망(...)하고 비어있던 연주에 진입한 조조가 정욱에 오퍼넣자 바로 응하는데, 이 당시 정욱은 꽤 비판을 받았고 이유는 유대의 청을 두 번이나 거절하며 내세운 이유가 "재야에 그냥 남고싶다" 라는거였는데 조조의 청은 거절없이 바로 응했기에! (나같아도...;;;) 그런데 이미 이때 정욱은 나이가 꽤 있었다. 이 당시가 거의 190년대 중후반이고 정욱은 조조보다 무려 14세 연상이이였으니 거의 50대 초중반의 나이. 후한 말 ~ 삼국시대의 높은 영유아 사망률 탓이라곤 해도 역시 노인사망률도 높아, 평균 수명이 50 안팎이던 시기인점 감안하면 거의 인생 끝자락에 사회생활 시작... . . . 조조가 직접 스카웃한만큼 시작부터 제법 높은자리서 시작은 물론, 초장부터 대활약한다. 여러가지 크고 작은 활약들이 있고 공적을 세우지만 그런건 삼국지 읽어보면 대강 다 비슷하게 실려있고 이 칼럼은 그런 삼국지를 읽어도 잘 모르겠고 세세히 안나오는 개인적 성향 위주니까 안쓸란다ㅋㅋㅋ 게임만 하신 분들 입장에서는 좀 의아할 수 있지만 정욱은 그냥 안전한 후방의 주군곁에서 이런저런 꾀만 내는 전형적인 책사타입이 아니였고, 본인이 직접 전장에 나가 상황 판단하여 병력을 통솔하는데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 조조의 네임드 책사들인 순욱, 순유나 곽가와 가후 등이 대개 후방책사들이였던 점으로 비춰, 이는 정욱만의 특징. 임관 초기의 조조는 아직 원소에게 쫄려가며 여포에게 시달려가며 유비를 신경쓰며 원술도 그냥 넘겨볼 수는 없던.... 비록 포텐은 충만할지언정 당장의 세력이 큰 시절은 아니였고 조조가 초기거점 삼은 연주 자체가 사방으로 교통 트인 평야지대라 처신 잘못하면 여러 세력의 다굴을 당하기 최적인 곳이여서... 초반의 정욱은 본인도 전장에 나가 직접 적진을 살펴가며 참전해 공을 쌓았다. 일단 본인의 피지컬도 상당하다보니 무예가 출중하진 않더라도 워낙 또 시기가 시기다보니 어느정도의 기본 호신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 . 조조 휘하의 대표적인 반유비파 책사였다. 그것도 아주 급진적이라 아직 세력이 크지 않을 때 일찍 유비를 죽여야(?!)한다는 주장을 해왔고, 당시는 뭐든 일단 명분이 중요했는데, 정욱은 그런 명분이 없더라도 일단 찬스오면 죽이고 보자는 식으로 유비에 대한 경계가 극심했는데... 유비의 세력이 소수의 어설픈 떠돌이집단이던 시절부터 줄창 유비살해주장론자였던걸 보면 사람보는 안목도 굉장했다는 증거! 정욱이 조조 휘하에서 공은 정말 많이 세웠다. 그런데 이게 확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정욱은 타자로 치자면 홈런을 치는 슬러거가 아닌 주로 안타와 타율 위주의 교타자같은 타입에 기인한다. 정사내 정욱전이나 여러 위와 관련된 사료들에는 정욱이 결코 순욱, 순유, 곽가, 가후 등에 뒤지는 책사가 아닌데도 삼국지연의 상에서 이렇다할 기억남는 대활약이 없기 때문에 저평가가 되는것 같은데... 연의는 다 알듯 소설이며 팩트전달보다 재미가 먼저다. 그렇다보니 잘잘한 활약이 많은 정욱이 돋보이기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 . . . 인성이 존니 별로였는지, 내부의 적이 상당히 많았다.... 애초에 연주의 호족집안 출신, 게다가 본인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주군인 조조보다도 14살 연상이니 그가 임관한 당시 어지간한 조조의 휘하들은 문무막론 정욱보다 많이 어리다보니 거기서 오는 꼰대기질... 작전회의시에도 누군가 자기의 의견을 반박하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으며, 상대를 비꼬듯 말하기도 잘 했다. 딱히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이도 없었고 자기와 격차가 좀 난다 싶은 이들은 아주 하대했다. 그러다보니 임관 초기부터 위가 건국된 이후까지도 주위의 이런저런 비판상소가 조조와 그 후의 조비에까지 계속 올라왔다. 물론, 일만 잘 하면 여타 프라이빗한 부분은 일절 노터치였던 조조는 흘려들었고 정욱에게도 이와 관련 일절 말이 없었다. 그런 못되먹은 성깔에서 기인한건지 모르겠지만, 조조의 책사들 중 책략에 있어서 가장 인정이 없었다고 한다. 지가 주위 평판 신경 안쓰고 막 산다고 남들도 다 그런줄 아나, 세상의 평판을 무시한 지극히 실리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 당장 위에 언급된 유비살해만 봐도 그냥 일단 죽이고 보자는 식이였는데... 조조 역시 전형적인 실리주의자라고는 해도 그때껏 자기와 자기세력에게 별 악영향도 없고 인망도 높던 유비를 다짜고짜 죽였다가는 뭔 소리를 들을지 몰라 속으로는 맞다고 여겨도 감히 실행에 옮기진 못 했다. 정욱이야 아무리 날고 긴들 그냥 지금으로 치면 "직원", 조조는 "사장" 이였던건데, 직원과 사장은 능력여하 떠나 서로의 시야나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 . . 그리고 그 당시에 세상의 "평판"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디 중요한 요소였다. 저 당시 중국은 무정부상태나 진배없던 후한 말, 그리고 황건적의 난과 각지의 군웅할거 등 삼국시대 정립이 되기까지 말 그대로 "개판 of the 개판" 이였기에 사람들이 막 살았다. 그렇기에 그 와중에도 대의명분과 정의 등의 고결한 가치를 소신삼아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가 위험해 지더라도 저런 신념을 지키는 이들은 존경과 우러름을 받았다. 그리고 나름의 인재라 불릴만한 이들 역시, 자기한테 얼마줄지, 뭐해줄지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옳은 주군 아래, 바른 일을 한다는 명분을 따라 임관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연히 세력이 엇비슷하면 무조건 반드시 꼭 명분이 앞서고 평판이 좋은 이를 따랐다. 더구나 무장들보다 많이 배우고 공부한 문관들의 경우, 이런 현상이 심했으며, 아무리 무력이 중요하던 시절이나 현실은 게임과 달라 좋은 무장보다 더 필요하고 또 부족했던게 좋은 문관(행정가, 책사 등)이였다.. 예를 들어, 장수가 오호대장군 + 책사가 당신네 회사의 당신 맞고참인 쪽과 장수가 당신네 회사의 당신 맞고참 + 책사가 제갈량 & 방통이면 후자가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다. . . . 그러다보니 평판이 나쁘면 인재가 모이지 않고, 병력징집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호족들의 물질적 지원 및 백성들 대상 세수확보까지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른다. 게다가 전황이 불리해지면 이탈자나 배반자도 높은 확률로 다수가 생겨나 조금만 불리해도 세력와해가 가속된다. 심하면 군주의 신변안전도 보장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평판이 몹시 중요하던 시기에 그런건 싹 치우고 목적지향성이 과도한 경우가 많았던 정욱의 책략이 반려되거나 다른 책사의 보완책과 더불어지는 경우가 꽤 있었던거 같다. 그러고보면 정욱도 주인을 잘 만난거다. 유비나 손권 휘하였다면 중용받지 못했을거고 원소나 원술을 모셨으면 본인의 목숨도 위험한 상황을 맞았을 수 있었겠으며 동탁을 따랐다면 인성개막장의 동탁에 인정없는 정욱의 책략이 더해지며 레드스컬 아래의 졸라박사같이 되었을 듯.... 늦은 나이에 조조 휘하에 들어가긴 했으나, 그만큼 또 오래 살아서 일흔 아홉에 사망하여 천수를 누렸다... 인성 더러운 이들이 한때는 잘 나가다가도 막판에 험한 꼴 겪거나 비참한 말로를 겪는 경우가 있지만 다행히 정욱은 본인이 권력을 잃거나 하진 않아 고위직에 몸 담다 편히 죽었다. . . . 우리 주위에도 돌아보면 정욱같은 타입의 모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정욱처럼 실력과 재능이 겸비되면 뒤에서나 속으로는 욕해도 앞에서는 모두 그와 친하게 지내려 하거나 잘 하려고 한다. 역시 정욱같은 이들도 자신이 부진해지는 순간 바로 나락이란 걸 알기에, 더 악착같이 일하고 목표를 향해 수단방법, 물불 가리지 않고 나아간다. 그러다보니 계속 평판이 좋을 수 없는 악순환이..... 어쩌면 그 능력과 실적에도 불구하고 연의에서 좋은 대우를 못 받고 또 그 탓으로 현세에도 비인기 인물이 된 것 역시 그의 인성탓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편당 평균 약 1억 원 투입된 게임중독 연구논문, 양과 질 모두 문제다
2일 '세금도 털리고 어이도 털리는 게임 디톡스 사업' 정책 토론회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서 개최 "논문 한 편에 약 1억 원이 투입됐다" 2일 '세금도 털리고 어이도 털리는 게임 디톡스 사업'이라는 주제로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정책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번 정책토론회에 참가한 발표자는 인터넷·게임중독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연구, 소위 '인터넷·게임 디톡스 사업'의 결과보고서 문제점을 설명했다. 특히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김정태 동양대학교 교수는 인터넷·게임 디톡스 사업에 5개 부처 2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고, 이 중 보건복지부는 30억이 넘는 예산을 배정했지만, 결과물로 나온 연구논문의 양과 질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인터넷·게임 디톡스 사업에 대해 설명하는 김정태 동양대학교 교수 김정태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인터넷·게임 디톡스 사업에 관해 지원한 사업 중 ▲ 인터넷·게임, 스마트폰 중독 발생기전 및 위험요인 규명을 위한 전향적 코호트연구 (예산: 21.5억 원) ▲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 치료 및 사후 관리체계관련인력양성과 기술지원 방안 개발 및 구축 (예산: 7억 원) ▲ 인터넷 게임 중독 단계별 맞춤형 예방 및 치료방법 개발 예비연구 (예산: 5억 원)에 대해 살펴봤다. 김정태 교수 발표에 따르면 3가지 인터넷·게임 디톡스 사업 모두 연구논문의 양도 부족하고, 예산이 배정된 사유와 논문 주제가 합당하지도 않고, 연구 논문으로서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먼저, 20억이 넘는 예산이 들어간 '인터넷·게임, 스마트폰 중독 발생기전 및 위험요인 규명을 위한 전향적 코호트연구'는 목표 자체가 효율적인 인터넷·게임, 스마트폰 중독 관리를 위한 근거 마련이다. 하지만 빈틈이 많다. 2천 명이 넘는 임상군이 참여한 연구였지만, IGD 유병률은 열 가지 정도의 질문을 통해서 연구자가 판단했다. 또 게임 중독이 아닌 '인터넷 중독' 또는 '스마트폰 노출'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 일쑤였다.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 치료 및 사후 관리체계관련인력양성과 기술지원 방안 개발 및 구축' 사업 역시 이해국 여성가족부 인터넷중독 민관협의체 의원, 윤명숙 중독포럼 공동대표 등이 연구진으로 참가해 공정성에 의문부호가 붙는다. 실제 연구 주제도 게임중독이나 게임이 아닌, '음주와 SNS중독', '사이버 폭력 경험' 등으로 예산 집행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 게임중독이나 게임이 아닌, '음주와 SNS중독', '사이버 폭력 경험' 등으로 예산 집행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인터넷 게임 중독 단계별 맞춤형 예방 및 치료방법 개발 예비연구'의 상황은 더 충격적이었다. 연구진이 게임 중독 등을 겪는 임상 환자에게 항우울제로 쓰이는 '부프로피온(Bupropion)'이나 알츠하이머 치매제 '메만틴(Memanatine)'을 사용해 치료해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강력한 정신병 치료제를 사용하여 '게임중독'이라는 강박 증세를 치료했다는 것이 연구결과인 셈이다. 무엇보다 30억이 넘는 예산이 들어간 3가지 사업의 결과물로 나온 연구논문의 수는 총 37개로, 편당 평균 약 9천만 원이 투입됐다. 게임과 관련된 논문의 수는 단 14개다. 정부의 사업 지원 취지를 고려하면 게임 연구논문에 들어간 돈은 편당 평균 약 2억 4천만 원이다.  김 교수는 연구논문의 질과 목표도 의문스러운 상황에서, 논문의 수 자체도 많지 않아 '황제 연구'라고 비판했다. ▲ 예산 금액에 비해 양과 질 모두 의심스러운 인터넷·게임 디톡스 사업 관련 연구 논문 발표를 진행한 김정태 교수는 "정말 공중 보건이나 게임 중독을 위한 연구가 맞냐"라고 물으며, "연구의 타당성이나 예산 집행의 정당성이 궁금하다"라고 지적했다. 또 논문 한 편에 2억 원이 넘는 돈을 지원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렵게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인디 게임 개발들에 대한 지원이 인색한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발표를 마쳤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게임 디톡스 사업은 적폐다. 현 정부가 이에 대한 지원을 그만둬야 한다"라고 운을 뗀 뒤, "관련 부처들은 기획부터 사업 선정, 예산집행 등을 조사한 뒤,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이번 정책토론회를 공동 주관한 이동섭 의원 역시 "21세기에 이런 보고서가 말이 되나 물어볼 정도로 (게임 디톡스 사업의 결과 보고서는) 부실했다"라며 관련 부서 등과 함께 사실 관계를 밝힐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서 이 의원은 스스로를 게임을 사랑하는 국회의원이며, 국회의원답게 좋은 제안을 꼭 법으로 연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발표를 마치고, 토론 중인 발표자들. 가운데가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이다. ▲ 서로를 응원 중이다. 가운데가 이번 정책토론회를 공동 주관한 이동섭 의원이다.
정보 덕모 (程普 徳謀) A.D.? ~ ?
나도 안다.. 아무도 안궁금해하고, 아무도 안좋아하고, 아무도 관심없을 그런 인물이라는거. 심지어 그 인기에 걸맞게 기록도 별로 없다. 그런데 맨날 피자, 치킨, 갈비, 삼겹살, 소세지, 파스타, 회, 스테이크만 먹을 수는 없잖아? 가끔은 그냥 김치하고만 먹거나 물에 말아서 후루룩 마시듯 먹을 때도 있는거고...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은 "정보". . . .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고향은 유주의 북평에 있는 토은현. 손견시절부터 시작해, 손가를 따르던 주요 인물들 중 고향이 최북단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에 대전사람도 있고 인천에 대구사람도 살고, 부산에 삼척사람도 일하고 제주에 광주사람도 놀고 그런게 아무렇지 않지만 저 당시의 중국에서는 대체로 워낙에 넓기도 넓고 거기에 도로나 교통같은 인프라도 저질인데다... 농경사회라 지주건 소작이건 일단 "땅" 이 일터라 그 땅을 벗어나면 먹고 살기가 벅차니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벗어나 사는 경우가 흔치 않았는데.... 비록 정보가 농사꾼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활약한 지역이 고향에서 1,000km도 넘는 자동차로 쉼없이 휴게소 한 번 안들리고 가도 반나절을 운전해 가야하는 거리! 손견때부터 손가를 따르긴 했는데, 언제 어디에서 어쩌다 손견을 따른건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손견 만나기 전부터 말단이나마 관직에 있던거 같다. 마냥 칼만 휘두르고 힘만 쓰는 무식쟁이 장수는 아니였고, 책사나 재사 수준이야 당연히 못되겠지만 기본적 학식은 갖춘 사람인데다 이런저런 처세술과 식견도 있는 나름 "배운" 장수였다. . . . 손견 자체가 원술의 휘하 장수다보니 그 휘하 장수의 휘하 장수인 정보는 아무래도 무슨 눈에 띌 대활약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무슨 어마무시한 무예실력이나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것도 아니였다. 이렇게 말하면 좀 돌아가신 분께 죄송할 말이지만, "그냥 좀 쓸만한" 장수였지, 어디다 내로라 할만한 그런 급은 솔직히 아니였던거 같다. 삼국지연의 속에서는 "철등사모"라는 자신만의 템을 쓰는것으로 나오는데... 연의가 다 그렇듯, 저 당시에는 저런 무기가 없던터라.. 정보의 철등사모는 픽션이다. 무슨 병장기를 썼는가에 대한 기록도 없다. 손견 사후 손책이 원술 휘하에서 벗어나며 강동 일대에서 양학을 다닐 때는 그래도 좀 나름 쏠쏠히 활약했는데, 이 당시는 손책 휘하에 별 다른 장수도, 병력도, 책사도 없다보니 정보 정도만 되어도 큰 도움이 되었던거다. 혹자는 '뭐? 그때 책사가 없다고?? 주유 있잖아!' 하겠지만, 주유는 손책이 막 원술 휘하에서 벗어나자마자 손책에 합류한게 아니고, 주유 자체가 병법과 책략에 대단히 뛰어난 사람인건 맞지만 전형적인 모사 타입이라기보다 전국시대에서 초한쟁패기 무렵의 한신같은 총사령관 타입인지라 마냥 주군 곁에서 꾀를 내기보다 독자적인 군단을 이끌고 직접 움직이는 스타일이였다. 게다가 주유는 이미 꽤 큰 세력의 호족출신이라 손책이나 손권이 쥐어주는 병력만 받아 운용하는게 아니라 자기 휘하의 직속병력들을 적잖이 거느리고 있었고 그 병력에 대해서는 손가들도 마음대로 터치를 할 수는 없었다. 이는 위, 촉과 구분되는 오세력들만의 특징이자 핸디캡. . . . 그에 비해 정보는 호족도 아니고, 형남지역이나 그 이하 강동/강남 지역에 무연고자라 그냥 손씨들 하나 보고 따라 다녔던 사람이라 손씨들이 수족부리듯 할 수 있었다. 삼국지연의에서 거의 셋트로 묶이는 황개, 한당, 조무들도 정보와 비슷한 처지였고 다 저렇게 손견을 따르면서 엮인 동료이자 전우였다. 손책 사후, 손권으로 정권이 급 바뀌던 때는 오의 격변기면서 위기였던 시절이였는데... 이건 손책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손책이 본인의 단명을 예견한건지, 그냥 지 급한 성깔 탓인지 급하게 세력을 다지느라 유화책 그딴거 다 개줘버리고 자기 안따르고 비협조면 죄 개패듯 쓸고 다니며 꿇려놓다보니 손책이 죽자마자 다시 들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저런 애들을 번거롭지만 다시 돌며 매타작을 다녔는데, 이때 정보의 성과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연의에는 딱히 이사람의 성향에 대한 언급이 없다보니 잘들 모를텐데, 저런 반란군 토벌 당시 윗선에서 듣고 놀랄만큼 꽤나 잔혹하게 토벌을 했다고 하며... 끝까지 항거하다 잡히면 그런 놈들 전부 모아다가 산채로 불구덩이에 쳐넣었다고 한다.. 자, 슬슬 정보의 인성이 나오기 시작하는데ㅋㅋ 위에서 말했듯 마냥 힘만 쓰는 무장은 아니였고 나름 글을 읽은 장수다보니 거기까진 좋은데, 자기와 달리 힘만 쓰는 전형적인 무장들을 알게 모르게 은근 무시하고 까는 경향이 있었다, ;;;; 저때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먹고 살기도 너무나 버거운 시절이다보니 날때부터 금수저 물고 나거나, 진짜 혜안있는 부모를 만난게 아니라면 대체로 책은 커녕 글조차 못 읽는 문맹들이 발에 채였는데... 아무래도 무장들 중에 문맹 혹은 그냥 간신히 자기이름이나 쓰거나 간단한 문장들이나 읽고 쓰는 수준의 장수들이 정말 많았다. . . . 예를 들어, 가난한 농민의 집에 태어나 밭갈고 논메는데 자기네 지역의 주자사나 군벌이 병력을 징집한다기에 징집되어 병졸이 되었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공 세워 말단 장수가 되었다가 공적을 인정받아 더 높은 직위에 오르고..... 이러다보면 당장 전장에서 싸우고 병사들 관리하기도 바빠 따로 글을 익히거나 책을 볼 틈 같은게 없다. 게다가 한자라는게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는 문자도 아니다. . . . 여튼 정보는 저런 소위 무식한 장수들과는 은근 거리를 두거나 무시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거나해서 당장 자기와 가장 오랜시간 생사고락 함께 한 황개, 한당, 조무와도 막 절친베프가 아니였고 혼자만 살짝 겉돌았다. 저런 정보의 인성이 제대로 터진 계기는 바로 적벽대전 앞두고 군비를 점검하고 전쟁준비 임하며 주유와 함께 좌도독, 우도독을 나눠 맡으면서다. . . . 연의에서도 이 부분이 나오며 처음에는 한참 어린 주유와 동급대우 받는 것에 불쾌해하다 주유의 병력운용과 훈련 등을 시찰 후 주유를 인정하는 걸로 그려진다. 그런데 저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참 안타깝지만. .. 주유와 동일선상 놓이며 불쾌해한게 팩트. 나중에 주유를 인정하는건 픽션이다..-_-;;;; 실제로는 내내 못마땅해했고 그 후로 주유 사망까지 딱히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 . . . 암만 봐도 학식, 병법, 책략, 용병, 대국안, 전략기재 등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주유근처도 못가는게 명백했고 외부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였건만, 정보 혼자 그걸 인정않고 그저 자기보다 한참 나이도 경력도 적고 짧은 주유가 자신과 도독을 나눴다는게 불만이였다. 엄밀히 말해.... 주유에게 도독직을 나눠줬다기보다, 그간 정보의 경력과 나이를 예우해 정보에게 도독직을 나눠준거나 마찬가지였음에도 적반하장이였던 정보다. 여튼 그래도 공사는 구분하여 적벽대전은 잘 치르고 이후 형주 남군을 맡고있던 조인까지 몰아내는데 공을 세운 것이 그의 마지막 레코드. 그러고는 얼마안가 열병을 앓다 석달 가량을 투병 후 다이.. 생몰연대는 없지만 오에서 정보를 부를 때 대개 많은 공을 세운 이를 예우해 부르는 호칭인 "정공"이라 부른걸 볼 때 사망당시 꽤 나이가 많았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 . . 성 뒤에 공을 붙이는 자체는 공이 많은 이를 예우하는, 영어로 치면 성 앞에 Sir.을 붙이는 것과 비슷했는데 당시에는 그냥 단순히 젊은이가 공 많다고 붙이진 않았고 대개 공이 많은 원로들에게 붙이는 경어같은 개념이다. 아무래도 공이 많다보면 자연스레 나이도 많으니까~ 정보! 하면 떠오르는 기념비적인 활약 자체는 없어도 오의 창업주의 부친이 젊었던 시절부터 별 기복없이 차근차근 공을 세워오며 적벽대전 앞두고 소수였던 항전파였던데다, 나이 지긋해서도 은퇴않고 야전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비록 인품이 좋은 양반까진 아니였지만 그래도 손가에 대한 깊은 충심 자체는 진심인데다 못 배운 애들을 돌려까고 어린 애들을 무시하긴 했어도 그러다 과욕이나 만용부려 팀킬을 한다거나 얼빠진 짓으로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등의 행동까진 없는, 그냥 요새 사회에도 어딜가나 있는 그냥 흔한 꼰대아재였을 뿐이였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였을 그 당시는 오히려 노장이 젊은 장수나 인재들과 오픈마인드로 논의하고 후배의 지시를 고분히 받는 트인 사람이 흔했던 시절은 아니였으니 마냥 정보의 심성이 뒤틀렸다기보다 그냥 결국 정보도 그 시대의 보통사람이였던ㅎ . . . 이번 정보편은 쓰는 나도 노잼이니, 읽는 여러분들도 노잼이였을거다. T-T 인기스타도, 빌런도 아닌데다 임팩트도 없다보니. 그래도 오늘편을 통해 "편식은 좋지 않다" 라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다.ㅋㅋㅋ
[직캠] 진모짱과 네코제X블리자드, 뮤지션 이나현 게임 음악 라이브 - 메이플스토리 Catch your Dreams
넥슨 게임의 다양한 2차 창작물을 교류하는 콘텐츠 축제, 2019년 제7회 네코제(NECOJE)가 일산 킨텍스 제2전시관 야외 광장에서 5월 11일(토)과 12일(일) 양일간 열렸습니다. 이번 네코제는 경기도 주관 게임 전시회 플레이엑스포(PlayX4)가 열리는 현장에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네코제 X 블리자드'란 이름으로 공동 개최되었습니다. '네코제 X 블리자드'에서 네코제는 만화, 소설을 포함한 개인 상점 운영, 코스튬 플레이, 성우 토크쇼, 아트워크 전시, 그리고 게임 음악 콘서트 네코제의 밤이 진행되었습니다. 코스튬 플레이에서 코스어들은 넥슨과 블리자드 게임 속 다양한 캐릭터 코스프레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블리자드는 무법항 마을에서 자사 IP를 활용한 2차 창작물 전시와 판매, 그리고 방문객 대상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무대 행사 등으로 꾸몄습니다. 또한, 블리자드 코리아 현지화 팀과 코스프레팀 스파이럴캣츠의 원데이 특강도 진행되었습니다. 영상 속 뮤지션 이나현은 게임 음악 콘서트 네코제의 밤에서 네코드(NECORD) 밴드와 함께 온라인 MMORPG 메이플스토리 Catch your Dreams를 불렀습니다. The contents festival to exchange various second creative works of Nexon Games, the 7th NECOJE in 2019, was held on May 11 (Sat) and 12 (Sun) on the outdoor plaza of KINTEX 2nd exhibition hall in Ilsan. This NECOJE was co-hosted with Blizzard Entertainment under the name of "NECOJE X Blizzard" at the place where the game exhibition PlayX4 hosted by Gyeonggi Province was held. In 'NECOJE X Blizzard', Neko performed Neko night with comic book, personal shop including the novel, costume play, voice talk show, artwork exhibition, and game music concert. In cosplay, Cosa showed various character cosplay performances in Nexon and Blizzard games. Blizzard has designed and displayed a second creative exhibition using its own IP in the town of Munhak, and various programs and stage events for visitors. In addition, a special lecture by Blizzard Korea Localization Team and Cosplay Team Spiral Cats was held. Musicians and prefectures in movies called the online MMORPG Maple Story Catch your Dreams with the NECORD band at the game music concert NECOJE night. ネクソンゲームの様々な2次創作物を交流するコンテンツフェスティバル、2019年第7回ネコ第(NECOJE)が一山KINTEX第2展示館野外広場で5月11日(土)と12日(日)の両日、開かれました。 今回の猫剤は、京畿道の主管ゲームショープレイエキスポ(PlayX4)が開かれる現場でブリザードエンターテイメントと一緒に「猫第Xブリザード」という名前で共同開催されました。 「猫第Xブリザード」でネコ剤は漫画、小説などの個人商店運営、コスチュームプレイ、声優トークショー、アートワークの展示は、ゲーム音楽コンサート猫製の夜が行われました。コスチュームプレイでコスオはネクソンとブリザードのゲームの中、様々なキャラクターのコスプレショーを披露しました。 ブリザードは無法項町では、そのIPを活用した2次創作物の展示や販売、そして訪問者対象多彩なプログラムと舞台行事などに構えています。また、ブリザードコリアローカリゼーションチームとコスプレチームスパイラルキャッツのワンデー特別講義も行われました。 映像の中のミュージシャンや県は、ゲーム音楽コンサート猫製の夜から四コード(NECORD)バンドと一緒にオンラインMMORPGメイプルストーリーCatch your Dreamsを呼びました。 #네코제 #메이플스토리 #이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