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ot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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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어머니가 시인에게 남긴 편지.jpg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산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 람태주 산문집, 그토록 붉은 사랑


마음에 맺히는 말들이네요
어떤 심정으로 저 편지를 썼을지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것 같은..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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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엄마한테 전화 한 번 해야지...
많은 생각을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좋은글 올려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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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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