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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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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얼굴 사진은 닛산 창업주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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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자동차는 도요타, 혼다차와 다르게 창업자의 이름을 따지 않았다. 지금의 브랜드명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라는 회사의 약칭이다.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는 누구?
닛산(日産)자동차는 1933년 12월 도바타주물(戶畑鑄物)을 이끌던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1880~1967)라는 이가 설립했다. 이때의 이름은 ‘자동차제조주식회사’이다. 1934년 6월, 통칭 닛산으로 불리는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전액 출자를 받아 회사 이름을 닛산자동차주식회사로 바꿨다.

아유카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쿄 제국대학 공과 대학을 나온 그는 신분을 속이고 직공으로 일했다. 야마구치 현 야마구치시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평범하지 않다. 그의 외할머니가 유력 정치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1836-1915, 조선 주재 공사 역임)의 누나다. 아유카와는 1910년 이노우에의 지원을 받아 도바타주물(현 히타치 금속)을 설립했다.

아유카와는 1928년 ‘구하라 광업’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닛폰산교’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아유카와는 닛폰산교를 중심으로 일본광업, 히타치제작소, 일본수산, 닛산자동차를 거느렸다. 신흥 재벌 닛산콘체른(Konzern)이었다.

닛산콘체른의 중심인 닛폰산교는 1937년 만주국으로 이주해서 만주중공업개발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과 만주에 걸쳐 콘체른을 형성하려 했다. 당시 아유카와를 만주를 불러들인 이는 현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56-57대 총리)였다. 일본 상공성의 유능한 관료였던 기시는 만주국의 산업차장으로 발탁돼 1936년 부임했다.


패전으로 닛산콘체른 해체...닛산자동차 독립
당시 만주에서 일했던 기시 노부스케, 아유카와 요시스케, 남만주철도(만철) 사장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세 사람을 ‘만주의 3스케’로 부른다.

아유카와의 닛산콘체른 야망은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좌절됐다. 전후 연합국에 의해 콘체른이 해체되면서 닛산자동차가 독립했다. 이후 닛산은 1966년 스포츠카를 만들던 프린스자동차와 합병하면서 기술력을 한층 더 높였다. ‘판매의 도요타, 기술의 닛산’이라는 말은 이런 이유 때문에 나왔다.


1966년 닛산은 써니...도요타는 코롤라 출시
닛산은 1966년 2월 기존 ‘블루버드’를 대체할 신형 대중차 써니(Sunny)를 출시했다. 그해 10월 도요타의 코롤라(Corolla)도 세상에 나왔다. 코롤라는 라틴어로 ‘화관’(花冠)을 뜻한다.

당시 도요타는 라이벌 닛산의 써니를 의식, 코롤라의 배기량을 갑자기 바꾸면서 신형 엔진 코드에 Z자를 새겨 넣었다. Z는 러일전쟁에서 연합 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가 발틱 함대를 격파했을 때 걸었던 깃발을 상징한다. 도요타의 ‘타도 닛산’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자동차공업회(JAMA:Japan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는 도요타와 닛산이 경쟁을 벌이던 1966년 그해를 일본 ‘마이 카’ 시대의 원년(The first year of My Car)이라고 표현한다.

아유카와는 태평양 전쟁 이후 어떻게 됐을까. 그는 닛산그룹 각사의 출자를 받아 ‘중소기업 조성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중소기업 진흥에 힘썼다. 말년까지 정치인(참의원)으로 살다 1967년 사망했다. <에디터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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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비즈니스리뷰 선정, 최고 실적 CEO들
... 1922년 창간된 경영학 잡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2013년부터 매년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낸 CEO’를 선정 발표하고 있다. 이 CEO 리스트는 △UC버클리의 모르텐 한센(Morten T. Hansen)교수 △런던 비즈니스 스쿨(London Business School)의 허미니아 아이바라(Herminia Ibarra)교수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의 얼스 파이어(Urs Peye)교수가 처음 고안했다. HBR은 최근 11-12월호를 발간하면서 ‘2019년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낸 CEO’ 기사를 실었다.(클릭하면 해당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876개 기업의 883명 CEO(일부 기업은 공동CEO 체제)를 대상으로 총 주주수익률, 시가총액의 변동, 재무지표를 반영해 순위를 매겼다. HBR에 따르면, 1위는 AI컴퓨팅 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엔비디아(NVIDIA, 1993년 설립)의 젠슨 황(Jensen Huang)이 차지했다. HBR은 “2015년 말부터 2018년 후반까지 엔비디아의 주가는 14배 올랐다”(From late 2015 to late 2018, the company’s stock grew 14-fold)고 평가했다. 재팬올은 HBR 기사에서 일본 경영자들의 순위를 살펴봤는데, 총 6명의 일본 CEO들이 랭크됐다. <사진=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선정 '2019년 세계 최고 실적 CEO'에 오른 일본 경영자들. 위로 부터 시계방향순으로 이에쓰구 히사시(시스멕스), 사와다 미치타카(카오), 나가모리 시게노부(일본전산), 손정의(소프트뱅크) 다카하라 다카히사(유니참) 우오타니 마사히코(시세이도)> ... ‘시스멕스’ 이에쓰구 히사시 회장 33위 가장 높은 33위에는 의료기기 제조업체 시스멕스(Sysmex, シスメックス)의 이에쓰구 히사시(家次恒·70) 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시스멕스는 혈액응고, 소변분석 장치 분야에서 세계 선두다. 이에쓰구 히사시 회장은 은행원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산와은행(현 미쓰비시 도쿄 UFJ 은행)에 취직한 그는 37세 때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동아의용전자(東亞医用電子)라는 회사의 경영을 맡고 있던 장인이 사망하면서다. 1961년 동아의용전자에 중도입사한 이에쓰구 히사시는 1996년 사장, 2013년엔 회장에 취임했다. 이 동아의용전자가 지금의 시스멕스다. ‘카오’ 사오다 미치타카 사장 36위 이에쓰구 히사시 회장 다음 순위는 36위에 오른 카오(花王)의 사와다 미치타카(澤田道隆·63)다. 카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화학, 생활용품업체다. 오사카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사와다 미치타카는 졸업(1981년)과 동시에 카오에 들어간 전통적인 ‘카오맨’이다. 입사 30년 만인 2012년 6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일본전산’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 43위 사와다 미치타카에 이어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74) 회장이 43위에 랭크됐다. 1973년부터 경영권을 쥐고 있는 나가모리 회장은 지금까지 50여 건의 M&A를 성사시키고 적자는 거의 내본 적이 없는 경영자다. 이런 ‘영속성장’(永続成長)을 지향하는 나가모리 회장의 경영방식을 ‘영수류’(永守流)라고 부른다. ‘시세이도’ 우오타니 마사히코 사장 52위 다음으로는 시세이도(資生堂)그룹의 우오타니 마사히코(魚谷雅彦·65)가 52위에 올랐다. 일본 코카콜라 회장과 사장을 역임한 그는 2014년 사장으로 취임해 ‘죽어가던 시세이도를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실적을 반영한 시세이도는 9월 26일 “우오타니 마사히코 사장의 임기를 2024년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우오타니 마사히코는 10년간 사장직을 맡게 되는 것. 외부인사로는 흔하지 않는 일이다. 시세이도 창업가 출신인 후쿠하라 요시하루(福原義春)의 10년 경영(1987~1997년)에 버금가는 긴 집권인 셈이다. ‘유니참’ 다카하라 다카하시 사장 72위 이어서 일본 위생용품 기업인 유니참의 다카하라 다카하시(高原豪久·59)가 72위를 기록했다. 산와은행(현 미쓰비시 도쿄 UFJ 은행) 출신인 다카하라 다카하시는 1991년 유니참에 입사했다. 그러다 유니참의 창업자이자 아버지인 다카하라 게이치로(高原慶一朗)가 2001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사장직에 올랐다. 여성 생리용품 시장을 개척한 다카하라 게이치로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96위 끝으로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61) 회장이 96위로 가까스로 10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투자의 큰손인 그의 위상을 감안하면 의외의 순위다. 손정의 회장은 공유사무실 위워크 투자 부진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의 네이버와 동맹을 결성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산하인 라인과 야후재팬을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아쉽게도, '2019년 세계 최고의 실적을 낸 CEO' 명단에 한국 경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14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비즈니스북 한 줄/ 성공과 실패는 한 세트
... ... 양말 회사 ‘타비오’의 오치 나오마사 회장 일본 양말회사 타비오(タビオ, Tabio)를 창업한 오치 나오마사(越智直正·79) 회장의 양말 사랑은 대단하다. ‘양말의 신’으로 불리는 그의 대표적인 어록 하나가 ‘좋은 양말인지 아닌지는 씹어보면 알 수 있다’라는 문장이다. 양말을 신는 게 아니고, 씹다니?. 무슨 말인가 할 수도 있다. 품질이 떨어지는 양말에는 이 자국이 그대로 남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오치 나오마사 회장은 다른 브랜드의 새 양말을 접하면 일단 씹어본다고 한다. 만약 자국이 남으면 ‘실패작’이라는 것. 경영 철학 담은 책 ‘양말 외길 60년’ 타비오는 ‘쿠츠시타야’(靴下屋)라는 브랜드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양말 전문 체인점이다. 일본에 300여 호점이 있고 파리, 런던, 중국 등 해외에도 진출해 있다. 이번 ‘비즈니스북 한 줄’은 오치 나오마사 회장의 경영철학을 담은 책 ‘양말 외길 60년’이다. 재팬올이 이 책에서 뽑은 비즈니스북 한 줄은 ‘흥망과 성쇠는 한 세트’라는 말이다. ①저자: 오치 나오마사(越智直正) ②출판사: (주)AK커뮤니케이션즈 ③옮긴이 및 출판년도: 김진희, 2017년 “회장이 아니라 양말 장수라고 봐주길” 1939년 에히메 현에서 11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오치 나오마사 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오사카의 킹 양말 스즈시카(King 靴下 鈴鹿)상점에서 심부름 견습일을 시작했다. 독립하여 타비오(Tabio)의 전신인 ‘단 삭스’(Dan Socks)를 창업한 게 1968년이다. 1984년엔 ‘쿠츠시타야’ 1호점을 오픈하고 2008년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일단 겸손하다. “지금은 회장이라는 요란한 직함을 달고 있지만, 그냥 양말 장수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오치 나오마사 회장의 양말 사랑을 알 수 있는 한 대목. “‘양말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뭘 신든 별 차이가 있겠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차이라고 대충 넘기면 다카구라 켄(일본의 유명 배우)과 내 얼굴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흥망과 성쇠는 한 세트다’ 풋~하고 웃음을 터트릴만 한 유머 감각이다. 오치 나오마사 회장은 책에서 자신의 경영철학을 ‘흥망과 성쇠는 한 세트’라는 말로 정의한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눈앞의 현상만 보고 그때만 통하는 수법으로 약삭빠르게 처신하는 사람은 결국 잔재주가 화가 되어 대성하지 못하는 법이다. 유행을 타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행을 선도하는 데는 리스크가 동반한다. 유행과 싫증, 흥망과 성쇠는 한 세트다. 영원히 유행을 선도할 수는 없다.>(‘양말 외길 60년’ 183쪽 인용)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퇴하는 이 상반된 말들은 결코 따로 놀아서는 안되는 마치 ‘깍지 낀 손’ 같은 의미라는 말로 해석된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파나소닉 반도체 포기…대만에 매각
... ... 파나소닉 반도체, 대만에 판다 파나소닉이 반도체 사업을 접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8일 “파나소닉이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한다”며 “대만 신탕커지(新唐科技, 누보톤 테크놀로지;Nuvoton)에 사업부의 주식을 매각한다”고 보도했다. 파나소닉의 반도체 사업은 그동안 적자를 보여오다가 재건에 힘을 쏟았지만 미중 무역 마찰로 인한 판매 침체로 사업을 포기하게 됐다. 니혼게이자이는 “과거 일본의 전기(電機) 대기업들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지만, 적극적 투자를 해온 한국과 대만에게 점유율을 빼앗기고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전했다. 샤프, 도시바PC 부분도 대만에 매각 그동안 일본 전기,전자기업의 대만 매각은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샤프와 도시바다. 2002년 텔레비전 사업 부진으로 경영위기에 빠졌던 샤프는 2016년 3월 대만의 홍하이(鴻海精密工業: 통칭 폭스콘)에 팔렸다. 홍하이의 일본 기업 인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홍하이 산하의 샤프는 2018년 6월, 도시바의 PC 사업 인수를 발표, 4개월 뒤인 10월에는 절차를 완료했다. 파나소닉이 반도체를 포기하면서 과거 영광을 누리던 일본의 기술력이 속속 대만 회사의 손으로 떨어지게 됐다. 일본 기업들이 유독 대만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대만의 기술이 뛰어난 점도 이유이긴 하지만, 대만의 친일본 성향도 깊숙히 자리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자동차 꿀팁]중고차 직거래할 때 구매 팁
누구나 새 차를 사고 싶죠, 그치만 이런저런 이유로 중고차를 사야할 상황이 되었다면, 좋은 중고차를 사는게 좋겠죠?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중고차 직거래 구매 팁!!(일단 클립해두고 두고두고 본다)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1등 내차팔기 가격비교앱 '헤이딜러'> iOS ☞ ☞ https://goo.gl/Pwbcxx Android ☞ ☞ http://goo.gl/G99JES
포드v페라리, 브레이크 없는 쾌속질주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볼 영화가 넘치는 12월입니다. 시험기간만 아니라면 정말 행복할텐데 말이죠. 하지만 굴하지 않는 재리는 오히려 더욱 탄력을 받고 영화를 챙겨보는 중입니다. 오늘의 영화는 두 배우의 힘만으로도 감상 가능한 '포드 v 페라리'입니다. 근래 나온 영화 중에서는 가장 평이 좋은 작품입니다. 차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바로 챙겨보진 않았었는데요. 막상 보고 나니 왜 호평일색인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포드vs포드 가장 큰 그림은 포드와 페라리의 레이싱 대결입니다만, 자세히 보면 포드 내에서의 대결이 주된 소재입니다. 포드차를 이용한 레이스이지만 경기 방식, 차를 다루는 방법, 차에 대한 애정이 서로 다릅니다. 정확히는 차를 돈줄로만 보는 포드 경영진과 차를 인생으로 보는 셸비, 마일스의 대결이라 하겠습니다. 돈으로는 모든 걸 다룰 수 있다는 포드의 마음가짐은 자본주의를 무기로 쓰는 미국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미국 내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님을, 오히려 반하는 양상을 보일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건 세상 가장 비싼 것보다 때로는 가치있음을 보여주는 드라마였죠. 엄청난 속도감 스포츠물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긴장감입니다. 러닝타임이 보통 2시간을 넘어가는 시간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포드v페라리는 브레이크를 버린 듯한 속도감으로 확실하게 시간을 녹였습니다. 스토리, 연기력, 연출과 전개속도는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관객들을 이끌었습니다. 실제로 레이싱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나 속도를 주체 못하는 장면은 흔한 요소지만 동시에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정한 속도를 벗어나 사방이 흐릿하고 시공간이 흔들리는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가끔은 생사가 오가는 사점이 있음에도 레이싱에 집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렁이는 차들의 엔진소리는 끝까지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맷 데이먼, 크리스찬 베일 다 제쳐두고 이 두 배우만 있었어도 저는 영화를 보겠습니다. 두 배우가 수컷냄새를 한껏 풍기며 기를 내뿜는 모습은 단연 힘이 넘쳤습니다. 비록 아웅다웅하는 장면은 높은 텐션에 귀여운 애교가 섞인 모습이었지만 확실히 배우진이 탄탄하니 영화가 정말 실화처럼 다가왔습니다. 차를 동경하는 남자라면 더욱 이들에게 이입하기 쉬우며 극한의 스릴을 궁금해한 이들이라면 간접적으로 체함할 수 있습니다.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 포드 내에서의 대결, 두 배우의 연기대결, 하나의 큰 그림 속 구도는 여러가지로 나눠 감상할 수 있겠습니다. 퍼펙트 랩 모두가 볼 수 없는,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선명하게 보이는 트랙이 있다고 합니다. 레이서에게는 퍼펙트랩입니다. 모든 코스를 한 번의 실수와 모자람 없이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완벽한 이 트랙은 레이서에게 우승을 가져다주며 한 사람의 인생에는 커다란 깨달음을 가져다주게 되죠. 마지막 마일스의 선택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7000RPM의 영역 속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통달의 여유일지, 패배의 인정일지, 아니면 인생의 어떤 변화였을지 그건 오직 불타오른 연기만이 알 수 있겠죠. 쿠키영상은 없고 관객수는 200만 예상하겠습니다. 최근 극장가에 있는 작품 중 굳이 하나만을 봐야 한다면 저는 이 영화를 추천하겠습니다. 잔혹한 자본주의 사회 속 시원하게 내달리는 박진감 넘치는 승부의 세계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포드 v 페라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