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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붉은 눈

현수는 30분 만에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 30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들어왔어.”

그녀는 거의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현수는 지금 당장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후 옆에 있는 후배에게 말했다.

“나 가봐야 될 거 같다.”

“네? 곧 있으면 그 자식 나올 거 같은데요?”

“연이가 아직도 안 들어왔대.”

후배의 얼굴이 굳어졌다. 현수는 잠복근무를 하던 후배의 차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은평경찰서로 빨리 가달라고 말했다.

설현의 첫 전화는 연이가 학원 끝나고 집에 올 시간이 되었는데 들어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 받는다는 것이었다. 현수는 수업이 조금 늦게 끝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했고 그녀는 꺼림칙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말투로 좀 더 기다려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30분이 지나 다시 전화가 온 것이다. 연이가 아직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연이의 학원은 원래 10시 반에 끝난다. 집에는 보통 15분 안에 도착한다. 지금 현수의 손목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11시 25분이었다.

경찰서 앞에 내리자마자 현수는 주차돼 있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네 번째 신호등에서 빨간 불에 걸렸다. 초조하게 핸들을 두드리고 있던 현수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엑셀을 꾹 밟았다. 앞에서 우회전하던 트럭과 부딪힐 뻔했지만 핸들을 확 틀어 피했다. 뒤에서 트럭의 상향등이 점멸하고 클락션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차는 경찰서에서 아파트까지 20분 만에 도착했다. 현수가 502호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벽시계의 시침은 이제 막 자정을 지나는 중이었다. 설현은 식탁 주변을 서성이며 전화를 하고 있었다.

“네, 네. 저희 연이가 집에 아직 안 들어와서요. 지현이는 집에 잘 들어갔나요? 연이가 혹시 보충 수업받거나 하진 않았는지 지현이한테 좀 물어봐 주실 수 있을까요?”

현수는 아내의 앞에 서서 눈빛으로 물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입모양으로 잠깐만 이라고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설현이 전화를 끊고 식탁 의자에 주저앉았다.

“연이 학원에도 전화해 봤고 연이랑 같이 학원 다니는 친구들, 걔네 부모님한테까지 다 전화해봤는데 아무도 모른대. 연이 어디 있는지. 학원 정시에 딱 끝났고 연이 친구들도 학원 나오고 나서 항상 헤어지던 데에서 멀쩡하게 헤어졌고.”

“전화는 언제부터 안 받은 거야?”

“학원 수업 시작하는 시간 될 때까지만 해도 카톡 했었어. 그리고 집에 올 시간이 됐는데 안 오길래 전화했는데 안 받아. 카톡도 안 보고.”

“알았어 여보. 일단 내가 학원 주변 한 번 돌아볼게. 당신은 집 주변 좀 돌아봐.”

대답이 없었다. 설현은 초점 없는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수가 허리를 숙여 아내를 꼭 안았다.

“여보. 연이 아무 일 없을 거야.”

설현은 울음을 터트렸다. 전화에서부터 느껴졌던 울먹임이 이제야 형체를 가지고 흘러내렸다.

“우리 연이 괜찮겠지? 아무 일 없겠지? 나 연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설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현수는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연이 내가 데리고 들어 올게.”

현수도 그쯤에서 말을 멈췄다. 그는 눈가가 아릿해져서 흰 벽지를 쳐다보았다.

차를 타자 5분 만에 학원에 도착했다. 학원은 아직 불이 밝혀져 있었다. 현수는 계단을 세 개씩 밟고 올라가 3층에 있는 학원 문을 열었다. 문에 달린 종에서 소리가 나자 안에서 여자 한 명이 나왔다.

“누구세요?”

“혹시 연이 선생님이신가요?”

“아, 네. 아까 어머니가 전화 주셨던데 연이 아버님이세요?”

“네, 연이가 아직 집에 안 들어와서요. 혹시 오늘 수업 중에 연이가 평소랑 조금 달랐다거나 어디 간다고 이야기를 했다거나 그런 건 없었나요?”

잠시 음 소리를 내며 생각하던 여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연이 평소랑 똑같이 수업도 잘 들었고 어디 간다거나 그런 이야기도 없었어요. 학원 나갈 때도 평소처럼 지현이랑 희연이랑 인사하면서 나가길래 당연히 집으로 가겠거니 생각했거든요. 저도 어머니 전화받고 놀랐네요.”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현수는 어두워진 얼굴을 숨기지 못한 채 몸을 돌렸다. 안타까운 시선이 현수의 뒷모습에 꽂혔다. 현수는 건물을 나와 집까지 가는 길을 훑기 시작했다. 편의점과 아직 열려 있는 마트 안을 일일이 들어가서 확인했고 골목길도 하나하나 들어가서 혹시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는 않나 살폈다. 보이는 사람마다 잡고 이렇게 물었다.

“혹시 단발머리에 안경 쓴 고등학생 여자아이 못 보셨어요? 키는 이 정도 되고 17살이에요. 아마 교복 입고 있었을 거예요, 동명여고 교복.”

편의점 앞에서 술을 마시던 대학생 세 명과 셔터를 내리고 있던 마트 주인,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젊은 여자, 편의점에서 카운터를 보던 알바생까지 모두 본 적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몰라 핸드폰에 있는 연이의 사진까지 같이 보여줬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고개를 젓는 알바생을 뒤로하고 편의점에서 나온 현수의 앞에 오른쪽 골목으로 걸어가는 아줌마가 보였다. 현수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물었다.

“아주머니, 혹시 안경 쓰고 단발머리 한 여자애 못 보셨어요? 고등학생이고 아마 교복 입고 있었을 텐데…… 이렇게 생겼어요.”

스마트폰 화면 속 연이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아줌마가 말했다.

“아까 교복 입고 가던 여학생 한 명 보긴 봤는데 멀리서 봐서 얘가 맞는지는 모르겠네. 단발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혹시 그 학생 어디로 갔는지 보셨나요?”

“저기 언덕길 올라서 가던데. 지나간 지 얼마 안 됐어요. 한 5분쯤 됐나? 근데 웬 남자랑 같이 가던데?”

현수는 아줌마가 턱짓으로 가리킨 언덕길을 향해 달렸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빨간 불이었지만 현수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왼쪽에서 오던 차가 현수를 칠 뻔했다. 간발의 차로 앞으로 넘어져 급정거하는 차와의 충돌을 피한 현수는 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다시 뛰었다. 뒤에서 운전자의 욕지거리가 들렸다. 높은 언덕길을 전속력으로 달려 올라가자 숨이 차기 시작했다. 11월 밤의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기도를 차갑게 긁었다. 목에서 올라온 피 냄새가 입 속을 통과해 후각을 자극했다. 현수는 코와 입으로 동시에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언덕길을 뛰었다.

언덕을 넘어서자 앞에 내리막길이 보였다. 외길이었다. 계속 달리기만 한다면 연이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현수는 통증으로 한계를 경고하는 허벅지 근육을 무시하고 달려 내려갔다. 더 이상 다리를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심장이 쾅쾅대며 뛰는 소리가 고막을 때릴 때쯤 앞에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키 큰 남자 옆에 연이 정도 키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연이를 부르려고 했지만 숨이 가빠 크게 외칠 수가 없었다. 현수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 여자아이의 머리가 단발이라는 게 보였다. 현수는 더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며 연이를 불렀다.

“연아!”

남자와 아이가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가로등 때문에 아이의 얼굴에 그림자가 져 연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현수가 가까이 다가가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남자가 현수와 아이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현수는 그 앞에서 멈춰 섰다.

“당신 뭐야?”

“연아!”

가쁜 숨이 섞인 소리로 연이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자 아이가 남자의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안경도 없었다. 연이가 아니었다.

현수는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애써 참고 숨을 고르는 현수 앞에서 남자는 의심에 가득 찬 얼굴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흡이 진정된 현수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딸인 줄 알았어요. 딸이 집에 아직 안 들어와서요.”

연이일 뻔한 아이 앞에서 현수의 말은 조금씩 떨렸다.

“혹시 교복 입은 여자 아이 못 보셨나요? 이 정도 키에 단발머리고 안경 쓰고 있는 아이예요.”

“저희는 못 봤어요.”

연이를 닮은 여자아이의 아빠는 일말의 의심과 약간의 동정을 담은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아직도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몸을 돌렸다. 다시 언덕길을 넘어가야 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현수가 외투를 벗자 몸에서 김이 났다. 땀이 식어가며 머리가 차가웠다. 돌아가는 언덕길은 아까보다 두 배는 높았다.

현수는 땀에 젖었던 몸이 밤공기에 차갑게 식은 채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얼굴은 초췌했다. 흰자에는 붉은 실핏줄이 올라왔고 땀에 젖었던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뭉쳐 삐죽거렸다. 5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환한 빛과 억눌린 흐느낌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파트 복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내리는 사람은 없었고 문은 곧 닫혔다. 아파트 복도는 다시 고요한 어둠에 잠겼다. 엘리베이터는 5층에 한참 서 있었다.

502호에는 설현이 없었다. 현수는 헛기침을 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정도 가고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 어디야.”

“여기 롯데마트 쪽. 연이는 찾았어?”

“일단 집으로 들어 올래?”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응.”

전화가 뚝 끊겼다.

현수와 설현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연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듯 둘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고 결국 설현이 입을 열었다.

“경찰에 신고해야겠지?”

“아마도.”

설현은 발작적으로 눈물을 터트렸다. 연이의 어릴 적처럼 설현은 목놓아 울었다. 현수는 우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현수도 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설현이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처럼 산산이 깨질 것 같았다.

“나 신고 못하겠어. 그러면 진짜 연이가 집에 못 돌아올 거 같단 말이야.”

중간중간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설현이 악을 썼다. 현수는 쥐고 있는 손을 더 꼭 잡는 수밖에 없었다. 사라진 아이의 엄마는 심장을 토해낼 듯 내리 울다가 시간이 지나자 조금 진정되었다. 현수는 두 손으로 뜨거운 아내의 손을 그러쥐고 눈을 맞추며 말했다.

“괜찮아. 실종 골든타임 48시간이니까 아직 많이 남았어. 지금 신고하면 이틀 안에 연이 볼 수 있을 거야.”

현수는 설현의 눈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하라고 불안에 떨면서 웃었다. 설현은 붉어진 눈으로 울음을 멈췄다. 현수가 아내의 손을 툭툭 일정한 박자로 토닥였다. 설현의 숨은 여전히 가빴지만 어깨의 들썩거림은 잦아들었다.

“난 나가서 좀 더 찾아볼게. 혹시 연이가 갈만한 곳 아는 데 있어?”

설현이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TV 옆의 장식장 위에서 포스트잇과 볼펜 한 자루를 가지고 왔다. 설현은 볼펜을 들고 뭔가를 적더니 포스트잇을 건넸다. 포스트잇에는 여러 장소가 적혀 있었다. 카페, 독서실, 공원, 연이 학교 근처의 찜질방도 있었다. 현수는 포스트잇을 자신의 손바닥에 붙였다.

“경찰에 신고하고 집에서 눈 좀 붙여. 오늘도 늦게 퇴근했잖아. 내가 실종 수사 쪽에 아는 분 있으니까 연락 한 번 해 볼게. 걱정하지 마.”

일어서는 현수의 머릿속에 온갖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직접 본 적도 있었고 증거 사진이나 현장 사진에서 목격한 적도 있었다. 피해자들의 모습에 연이가 겹쳐졌다. 옷이 다 찢어진 채 강간당한 연이, 토막 난 채 강에서 발견된 연이의 팔과 다리, 검은 봉지에 담긴 퉁퉁 부은 연이의 머리. 머리가 지끈거리고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현수는 떨리는 손을 설현이 보지 못하게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눈물을 닦는 설현을 한 번 보고 현수는 문을 열고 나왔다.

찬 공기를 마시자 머리가 조금 차분해졌다. 현수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서울 실종 수사 총괄 위원회 쪽 높은 분이랑 전에 한 번 술자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번호를 받아 놨었다. 재작년, 장애 아동이 실종되었다가 죽은 채 발견된 사건 이후로 경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위에서 내놓은 답이 서울 실종 수사 총괄 위원회였다. 서울 경찰서들의 실종 수사팀 간 효율적인 연계와 빠른 소통을 목표로 내세우며 만들어진 단체였다. 제대로 작동하는 위원회이긴 한 건지, 연이를 찾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 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현수는 저장된 이름 몇 백개를 하나하나 살폈다. 찾았다, 이기수. 알고 보니 본이 같고 돌림자도 같은 항렬이어서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하며 비위를 맞췄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술자리는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한 잔 더 하자고 외치는 이기수가 현수의 옷에 토를 거하게 하고, 옷을 대충 씻은 현수가 대리를 불러 5만 원을 쥐어주며 이기수를 태워 보내고서야 끝이 났다. 그때 시간은 아침 6시였다. 현수는 집에 오자마자 그 옷을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그리고 다음날 이기수는 현수에게 전화해 언제든지 부탁할 일 있으면 자신에게 전화하라고 말했다.

현수는 이기수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계속 울리다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시간을 보니 벌써 새벽 3시 반이었다. 현수는 한 번 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리고 전화가 연결됐다. 현수가 형님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뾰족한 여자의 목소리가 현수의 귀를 찔렀다.

“지금 남편 자니까 내일 전화해요! 예의 없게 새벽에 뭐하는 짓이야!”

전화가 끊겼다. 현수는 멍하니 있다가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현수는 주먹으로 벽을 때렸다. 하얀 벽에 붉은 핏자국이 묻었다.

현수는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찜질방부터 가기로 결정하고 연이의 학교 쪽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신호에 빨간 불이 들어와 차를 멈췄다. 앞에서는 후드티를 입은 대학생이 담배를 입에 물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현수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흰 담배 연기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자신이나 설현에 대한 불만으로 가출한 것은 아닐까. 현수는 연이가 찜질방이나 공원에서 친구에게 아빠 욕을 실컷 하고 있기를 바랐다. 이현수 그 새끼가 무슨 아빠냐고, 꼰대라서 말이 안 통한다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찜질방에서 식혜를 먹고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 왔던 착하고 말 잘 듣는 연이의 모습이 사실 꾸며진 것이었고 그 속의 진짜 연이는 아빠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아이이기를, 그래서 말없이 가출한 것이기를 현수는 빌고 또 빌었다.

현수는 자신이 누구에게 연이의 안전을 빌고 있는 건지 생각했다. 보통은 신에게 빌겠지만 현수는 신이 있다면 일어날 수 없을 법한 일들을 수도 없이 목격한 형사였다. 불 속에서 타 죽었어야 할 인간들이 버젓이 한낮의 태양 아래서 돌아다니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세상을 어떤 존재가 만들었다면 그건 신이 아니라 악마였다. 머릿속에서 악마인지 범죄자인지 알 수 없는 검은 형체가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여기.’

비닐봉지 속에서는 물에 퉁퉁 부은 연이의 머리가 나왔다. 검은 형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빵!”

뒤에서 클락션 소리가 울렸다. 정신을 차린 현수가 머리를 흔들고 앞을 보자 신호는 이미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현수는 식은땀을 훔치며 출발했다. 뒤차가 추월하면서 클락션을 한번 더 길게 울린다.

“빠아앙!”

현수는 아내가 준 포스트잇에 있는 장소들과 그 주변 편의점, 24시간 카페, 패스트푸드점, 식당들까지 모조리 돌아다녔지만 어제 아침까지 보았던 연이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지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24시간 카페 주인에게 열렬히 연이의 인상착의를 이야기했지만 그는 아는 것이 없었다. 카페를 나서는 현수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잠이 부족했다. 현수는 까끌까끌한 눈을 감고 그 위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가 뗐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밝아오는 하늘이 보였다.

집에 들어가자 설현이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쥔 채 식탁에서 졸고 있었다. 현수는 아내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여보. 신고하고 그쪽에서 다시 연락 온 건 없었어?”

설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났다. 당신이구나 라고 말하며 가슴에 손을 얹은 설현은 숨을 한 번 내쉬고 말했다.

“신고했더니 마지막으로 어디서 봤는지 물어보고 무슨 정보 조회 같은 거 동의해달라고 해서 동의한다고 했어. 마지막 목격 장소 가서 수색 시작해본다고 했는데 그 뒤로 아무 연락도 없네. 다시 전화해 봤더니 조사 중 이래. 그게 끝이야.”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실종 신고가 들어오는 사람 수만 해도 수 만 명에 이른다. 미취학 아동이나 장애인, 고령의 노인들만 수색하기에도 인력이 부족하다. 90프로, 아니 99프로 이상이 가출이나 야반 도주로 판명 나는 성인과 청소년들의 실종 신고까지 신경 쓰기는 힘들다. 게다가 17살의 고등학생이라면 더욱더. 현수도 형사로 일한 기간 동안 실종 수사는 거의 한 적이 없었다. 명백한 유괴나 납치, 혹은 살인의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실종 수사는 없다. 다른 수사해야 할 사건들이 차고 넘친다. 현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연이는 그 당사자가 되었다.

“일단 서에 가서 오늘 널널한 애들한테 탐문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볼게. 가는 길에 서장님한테도 연락해 봐야겠다.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침대 가서 잠깐이라도 쉬어.”

설현은 건조한 눈으로 현수를 바라보았다. 현수는 그녀가 울면서 자신을 비난했으면 했다. 이런 눈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밤부터 어깨를 짓누르던 죄책감과 자책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곧 현수를 잡아먹을 듯했다. 현수는 설현의 눈을 피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납치당하거나 한 거면 진작 범인한테 연락 왔을 거야. 돈 내놓으라고. 이래 봬도 나 형사잖아. 진짜 별일 없을 거니까 쉬고 있어.”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질문에 현수는 아내의 어깨쯤을 바라보며 변명했다.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을 끝낸 현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바깥으로 향했다. 불안이 머리를 조여들었다.

현수는 관자놀이를 찔러대는 두통을 무시하며 이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리고 건너편에서 여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 저번에 같이 술자리 했던 이현수입니다.”

“어, 현수야. 아침부터 웬일이야?”

“형님 실종 수사 위원회 쪽에 계시죠?”

“응. 근데 왜?”

“저희 딸이 어제부터 안 들어와서요. 일단 신고하긴 했는데……”

“야, 딸 이름이랑 사진, 신상정보 보낼 수 있는 거 싹 다 나한테 문자로 보내. 내가 다 처리해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늘 안에 딸 찾아 줄게.”

“감사합니다 형님!”

“바로 보내!”

현수는 전화가 끊기고 나서야 90도로 숙였던 허리를 폈다. 문자에 연이 사진을 첨부하고 학교, 이름, 나이, 키, 몸무게, 기억나는 흉터나 점의 위치까지 알고 있는 신상 정보를 모두 써서 이기수에게 보냈다. 마지막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고 붙였다. 현수는 자신의 옷으로 토사물을 받아 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현수는 차를 타자마자 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차 스피커에서 신호음이 울리다 전화가 연결됐다.

“서장님, 저 형사과 이현수입니다.”

“어, 무슨 일이야?”

“딸이 학원 갔다가 집에 안 들어와서 새벽에 아내가 실종 신고를 넣었습니다. 혹시 진행 상황 좀 알 수 있을까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어제 새벽에 17살 여자애 실종 신고 한 건 들어왔던데 니 딸이었어?”

“네, 그렇습니다.”

차 안이 조용해졌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현수는 서장이 다시 말을 꺼낼 때까지 입을 꾹 다물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너도 알잖아. 청소년이나 성인 실종 90프로 이상이 단순 가출인 거. 게다가 지금 발달 장애 초등학생 실종 사건 때문에 뺄 사람이 없어.”

“제 딸 그렇게 말없이 가출할 아이 아닙니다.”

“그래 아는데 사람이 없다니까, 사람이. 너 지금 인터넷 들어가 봐. 네이버 실시간에 아직도 실종된 애 이름 떠 있어. 나현이 실종, 나현이 사건, 줄줄이 다 걔 얘기야. 초동 수사 미흡하다고 뉴스에 뜨고 난리도 아니라니까. 지금 여청과 애들 밤새면서 CCTV 돌려보고 탐문 나가고 인터넷 접속 기록 뒤져보고 있는 거 너도 알잖아. 하필 우리 관할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돼 가지고, 재수 없게. 걔 못 찾으면 나만 징계받냐? 여청과 과장은 옷 벗어야 될지도 몰라.”

“그럼 신고 들어가고 나서 기본적인 조사나 탐문도 없었습니까?”

“… 미안하다. 탐문 나가는 애들한테 얘기는 해놨는데……”

현수는 서장의 말을 이해하는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누가 봐도 나현이가 급했다. 나이도 어리고 심지어 장애까지. 누구에게나 0순위는 나현이고 연이는 아마 2순위쯤일 것이다. 현수는 형사를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론에 휘청거리는 경찰이라는 집단과 연이의 흔적 하나 찾지 못하는 형사인 자신. 현수가 아무 말이 없자 서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너 연가 처리 해 놓을 테니까 납치나 유괴 관련된 거 같다는 증거나 아님 목격자라도 찾아와. 바로 정식으로 인원 동원해서 수사 나갈 수 있을 거야. 근데 혹시 증거 있어서 수색 시작하게 되면 언론에다가 기사 좀 내도 되냐? 나현이 사건 때 초동 수사 미흡하다고 기사가 엄청 떠 가지고 말이야, 실종 신고 들어오자마자 증거 찾고 정식 수색 시작했다고 기사 내면 여론도 좀 사그라들고…”

현수는 서장이 말하고 있는 도중에 통화 종료를 눌렀다. 그때 진동과 함께 문자가 하나 왔다.

‘애가 나이가 좀 많네, 열일곱 살이면. 말은 해보겠는데 정식으로 실종 수사 들어가긴 좀…’

이기수였다. 현수는 결국 스마트폰을 집어던졌다.

형사과 안으로 들어가자 같이 잠복근무했던 후배 앞에 얼굴에 피어싱을 열 개 정도 한 젊은 남자가 앉아 조서를 쓰고 있었다. 어젯밤 차 안에서 기다렸던 마약 유통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현장에 나가 있는지 자리가 비어 있었다. 후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앞에 앉아 조서를 쓰고 있던 남자가 움찔했다.

“형!”

현수는 대꾸 없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현수는 엄지와 중지로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후배도, 후배 앞의 남자도, 현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얼어 버린 공기를 깬 건 현수였다.

“야, 우리 서에서 잡았던 놈들 중에 납치범 신상 정보 리스트 볼 수 있지?”

“네.”

후배는 범죄자 및 용의자 신상정보 데이터가 들어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파일을 열었다. 현수도 일어서서 후배의 뒤에 섰다. 후배가 키보드를 몇 번 두들기더니 바로 옆의 프린터에서 종이가 인쇄되는 소리가 났다. 현수는 프린터에서 나온 재생지를 집어 들었다. 총 세 장이었다. 다섯 명의 사진과 집주소, 전화번호, 나이, 키, 몸무게 등이 표로 A4 용지 한 장에 두 명씩 정리되어 있었다. 눈이 건조해서 표가 두 개로 보였다. 현수가 왼손으로 눈을 비비자 흰자는 더 붉어졌다.

“형, 그럼 연이는…”

후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수는 계속 종이를 보고 있었다. 후배는 망설이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도 오늘 나가면서 탐문 한 번 해볼게요. 연이 사진 보내 주세요.”

“고맙다.”

현수는 피곤함과 좌절감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종이를 갈무리하고 나가려는 현수의 등 뒤에서 후배가 말했다.

“형, 좀 쉬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한숨도 못 자신 거 같은데.”

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현수는 붉은 눈으로 후배를 응시하다 대답 없이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수는 경찰서 밖으로 나와 종이에 쓰인 전화번호를 누르고 순서대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오영곤과 김철훈은 전화를 걸자마자 받았고 아는 게 없는 눈치였다. 형사의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둘은 정말로 연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세 번째로 박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네 번 울리고 전화가 연결되었다. 연결된 전화는 현수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이 새끼다.

내비게이션에서 5분 후 목적지 도착이라는 안내 음성이 나온다. 종이에 적혀있던 박진수의 집까지는 30분이면 갈 거리였지만 출근 시간대와 겹쳐 시간이 1시간 가까이 지났다. 꾸물대던 앞차 때문에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에 걸렸다. 현수가 초조하게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들긴다. 앞에서는 한 남자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왠지 익숙하다. 어디서 봤더라. 고심하던 현수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황급히 조수석에 있는 종이를 들고 박진수를 찾는다. 두 번째 장, 박진수라는 이름 옆에 있는 얼굴이 모자를 눌러쓴 채 횡단보도를 거의 건넜다. 현수는 차 문을 열고 뛰쳐나와 초록불이 깜빡거리는 횡단보도를 뛰었다. 운전자가 도로 위의 차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뛰어가자 신호를 대기하던 운전자들이 창문을 내리고 현수를 쳐다보았다. 보행자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고 차들이 클락션을 울려댔다. 현수가 모자 쓴 남자의 4m 뒤에 있을 때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6년 전 잡아넣었던 박진수와 현수의 눈이 마주쳤다. 현수는 박진수의 눈이 놀람에서 당혹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박진수는 달리기 시작했다. 현수가 박진수의 외투를 잡아 채기 바로 직전이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박진수는 대로에서 바로 주택가 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골목이 나올 때마다 방향을 틀었고 집 앞의 화분, 자전거, 주차 방지용 드럼통 등 온갖 것들을 넘어뜨리며 현수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하지만 현수는 방해물들을 피하며 집요하게 그 뒤를 따랐다.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고 눈은 고요했다. 사냥감을 노리는 호랑이처럼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지친 먹이가 스스로 목덜미를 내밀고 자신의 딸을 토해낼 때까지.

그때는 곧 찾아왔다. 박진수가 어느 가정집 대문 앞에 서 있는 유모차를 넘어트리다 손잡이에 외투 끄트머리가 걸렸다. 박진수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땅을 짚고 일어나려는 박진수의 얼굴에 현수의 발이 날아들었다. 박진수는 옆으로 다시 쓰러졌다. 현수는 여전히 차분하게 숨을 쉬며 박진수의 멱살을 잡았다. 현수가 연이의 행방을 묻기도 전에 박진수는 멱살을 쥔 현수의 팔 위로 두 손을 올려 빌기 시작했다.

“형사님! 저 뽕 딱 한 번 밖에 안 했어요. 진짜예요. 팔 보여드릴게요. 주사 자국도 하나밖에 없어요. 저한테 뽕 준 애들 명단도 다 불게요, 번호랑 어디 사는지도 다 알아요.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박진수는 속사포처럼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울기 시작했다. 왼쪽 볼이 빨갛게 부은 채 피 묻은 손을 비비며 울고 있는 29살의 남자 앞에서 현수는 사고가 정지됐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멱살을 잡은 채 움직이지 않는 현수 앞에서 박진수는 계속 자신만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연이는. 연이는 어디 있어!”

현수가 윽박지르자 박진수는 울면서 대답했다.

“연이가 누구예요. 저 진짜 그런 놈은 몰라요.”

현수는 멱살을 더 세게 틀어쥐었다. 박진수가 목이 막혀 컥컥거렸다. 현수는 아까보다 더 커진 목소리로 박진수를 윽박질렀다.

“왜! 왜 니가 아니야!”

현수는 멱살 쥔 손을 마구 흔들었다.

“왜 니가 안 데리고 있어. 너라고 말해. 니가 데리고 있다고! 니가 어젯밤에 연이 납치했다고, 제발 너라고 말해. 제발. 너라고 말하라고……”

말이 이어지는 동안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멱살을 쥔 현수의 손에서는 힘이 빠졌다. 현수의 붉은 눈에서 눈물이 울컥거리며 튀어나와 얼굴을 가로질러 흘렀다. 마지막 목표를 잃은 현수의 손은 더 이상 박진수를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현수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낀 박진수는 팔을 쳐내고 일어서서 쏜살같이 사라졌다. 현수는 동력원을 잃은 로봇처럼 그대로 멈췄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에 휘몰아쳤지만 무엇 하나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그때 어서 자신을 손에 쥐라는 듯 외투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윙윙대며 울렸다. 현수의 무시를 무시하고 스마트폰의 진동은 영원히 끊기지 않을 듯 계속해서 울려댔다. 몇 분간 지속된 진동에 현수는 천천히 스마트폰을 꺼냈다. 처음 보는 번호가 스마트폰에 떠 있었다. 현수는 아무 말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스마트폰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연이 내가 데리고 있어요.”

아직 정오도 안 지난 시각인데 하늘은 매우 흐렸다. 마치 해가 떨어지는 초저녁 즈음의 하늘 같았다. 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눈이나 비가 쏟아질 듯했다. 현수는 전화기 너머에서 알려준 주소로 향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 상에서는 경기도 양평의 산자락이었다. 현수는 허리춤의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여자의 목소리가 귓속을 맴돌았다.

“제가 말하는 주소로 오세요. 총을 들고 오든 칼을 들고 오든 상관없어요.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고 혼자 오세요. 누군가 데리고 오거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연이는 죽어요.”

여자는 주소를 불렀고 현수는 묵묵히 여자의 말을 들었다. 여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수가 물었다.

“왜 지금에야 연락하는 거지?”

“지금이어야 하니까요.”

전화가 끊겼다.

내비게이션에서 예상 도착 시간을 알렸다. 10분 뒤였다. 현수는 불안과 희망을 초단위로 넘나들며 계속해서 총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약실에 공포탄은 없었다. 전부 실탄이었다. 경기도로 출발하면서 서에 들러 공포탄을 빼고 실탄으로 약실을 채웠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차는 점점 인적이 드문 산길로 들어갔다. 도착지가 보일 때쯤에는 포장도로가 끊겨 차가 덜덜거리며 떨렸다. 하늘에서 쌀알 같은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차가 멈췄다. 내비게이션에서 여자의 명랑한 음성이 말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현수가 차에서 내렸다. 지붕이 파란색 슬레이트로 된 조그만 시골집 한 채가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현수는 두 손으로 총을 움켜쥐고 천천히 문으로 다가갔다. 문에 귀를 댔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현수는 오른손에 든 총을 한 번 바라보고 왼손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문고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현수가 숨을 들이마시고 문을 확 열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혔다. 현수는 두 손으로 총을 잡고 집 안을 겨눴다. 거실 뿐인 집 안의 검은 소파에 검은 상복을 입고 앉아 있는 여자가 보였다. 여자의 하얗게 센 머리는 곱게 쪽 지어져 있었고 검은 상복과 대비되어 묘한 느낌이었다. 총구가 재빨리 여자의 얼굴로 향했다.

“여기 앉으세요.”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렸던 그 목소리였다. 현수는 성큼성큼 걸어가 총구를 여자의 머리 바로 앞에 가져다 댔다.

“연이 어디 있어.”

목소리가 떨렸다. 여자는 소파 앞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날 죽이면 연이도 죽어요.”

여자는 현수를 바라보지도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손을 들어 앞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목소리만 들어서는 여자가 현수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인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현수는 여자의 얼굴에서 눈과 총구를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여자의 주름진 얼굴은 60대는 되어 보였다. 현수가 소파에 앉자 여자가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여자가 잔을 현수의 앞에 놓았다. 현수는 찻잔에 손도 대지 않고 여자의 이마 정중앙에 총을 겨눈 채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총이 보이지 않는 건지 차분한 눈빛으로 현수의 시선을 맞받았다. 창 밖의 눈송이가 조금 더 많아지고 찻잔의 김이 약간 잦아들 때쯤 현수는 입을 열었다.

“연이는 어디 있지? 아니, 왜 연이를 납치한 거지?”

현수는 이 여인이 왜 자신의 딸을 납치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돈 목적은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고 사이코패스나 정신병자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뭔가 분명한 목적이 있어 보이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누군지 모르겠어요?”

깊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가 현수의 붉게 충혈된 눈과 마주쳤다. 현수는 자신의 머릿속 어딘가에 여자가 있는지 기억을 되짚었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자신이 잡았던 범죄자도 아니었고 그들의 가족도 아니었다. 비슷한 얼굴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현수가 한참 머릿속을 헤집고 있을 때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설이 엄마예요.”

저 깊은 곳에서 가는 실 같은 기억 하나가 쏜살같이 딸려 올라왔다. 기억을 되감으며 움직이던 현수의 눈동자가 멈췄다.

새벽 2시, 현수는 서로 주먹질을 하다 잡혀 온 취객 두 명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깐이라도 눈을 떼면 취객 둘이 엉겨 붙어 주먹질인지 발길질인지 구분이 안 가는 무언가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그걸 말리는 건 6개월 차 막내인 현수의 몫이었다. 선배들은 취객 둘이 싸우기 시작하면 현수에게 화를 냈고 현수는 주먹과 발에 얻어맞으며 둘을 떼어놔야 했다. 그게 벌써 1시간째였다. 그 사이 성희롱과 성추행, 취객들의 싸움, 심지어 승객이 택시 타고 돈을 안 낸다는 택시 기사의 전화까지 온갖 신고들로 경찰서의 전화기는 불이 날 지경이었다. 선배들은 현수에게 한껏 짜증을 내며 신고가 온 곳으로 출동했고 현수는 두 취객을 담당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채 홀로 남겨졌다.

현수가 혼자 남은 지 10분쯤 지났을 때 경찰서의 문이 열렸다. 현수는 아직도 기운이 남아 비틀거리는 주먹을 주고받으려는 취객 둘을 떼어놓느라 용을 쓰고 있었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출동했던 선배가 아니라 40대 중반의 여자였다. 땀범벅이 된 머리가 여자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맨발에 삼선 슬리퍼, 고무줄 바지, 대충 걸쳐 입은 듯 보이는 티와 얇은 외투는 11월의 쌀쌀한 밤 날씨에 어울리는 차림은 아니었다. 말이 안 통하는 취객들을 달래려 애쓰고 있는 현수에게 여자가 말했다.

“선생님, 딸이 없어졌어요.”

취객들의 으름장에 여자의 말은 묻혀버렸다. 현수는 뒤에 여자가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저씨, 그만 좀 하세요! 잠깐만 여기 가만히 앉아 계세요, 예?”

“선생님, 제 딸이 없어졌어요. 제 딸 좀 찾아주세요.”

여자가 현수의 등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그제야 현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벽에 머리를 박고 잠든 척하는 취객과 자기 신발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다른 취객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며 현수가 물었다.

“뭐라고요 아줌마?”

“제 딸이 없어졌어요.”

현수는 한숨을 푹 쉬고 여자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 신발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취객은 바닥에 침을 뱉기 시작했다.

“아저씨! 거기다 침 뱉으시면 안 돼요!”

현수는 포기했는지 취객을 말리지는 않고 고개를 흔들며 책상 앞에 앉았다. 취객은 거의 나오지도 않는 침을 바닥에 퉤퉤 거리며 뱉고 있었다. 여자는 책상 앞에 서서 현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현수는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언제 없어졌어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제가 일 갔다 11시쯤 들어오면 항상 집에 있었는데 애가 집에 없어서. 전화도 안 받길래 찾으러 다녔는데 안 보여요.”

“그럼 어디서 없어진지도 몰라요? 마지막으로 본 데는 어디예요?”

“제가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느라 오늘 아침에 학교 가는 거 보고 그 뒤로는 못 봤어요. 제 딸 찾을 수 있겠죠 선생님?”

여자는 말을 하면서 불현듯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여자의 눈은 현수가 이 사태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애는 몇 살이에요? 사진 같은 건 없어요?”

“열일곱 살이에요. 사진은 집에 있는데 가져올까요?”

현수는 여자의 대답을 듣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열일곱 살이요?”

“네, 열일곱 살.”

현수는 들고 있던 펜을 책상에 탕 소리 나게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침을 뱉고 있는 취객에게 걸어갔다. 여자는 취객에게 걸어가는 현수를 쳐다보다가 황급히 뒤를 따랐다.

“아저씨! 여기 침 좀 뱉지 말라니까요, 진짜. 내가 이거 다 닦아야 되는데 드러워 죽겠네.”

여자는 현수의 뒤에 서서 취객과 현수가 벌이는 실랑이를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입을 뻐끔거리던 여자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선생님, 설이는 안 찾아주시나요?”

현수는 뒤로 돌아서서 벌컥 화를 냈다.

“아니, 아줌마. 열일곱 살짜리가 무슨 말 못 하는 애도 아니고 알 거 다 아는 나이에 뭔 경찰까지 나서서 찾아요. 친구 집에서 놀고 있든가 아님 사춘기라 가출했던가 한 거겠지. 내일쯤 되면 알아서 들어올 테니까 그냥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세요. 안 그래도 바쁜데 귀찮게 하지 말고.”

다시 취객에게 돌아선 현수의 뒤에서 여자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선생님, 저희 딸 그럴 애 아니에요.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선생님. 네? 우리 설이 한 번만 찾아주세요.”

여자는 울면서 애원했다. 머리를 바닥에 닿을 듯 숙이면서. 지문이 닳아질 듯 빌면서. 하지만 현수는 무릎 꿇고 비는 여자를 돌아보지 않았다. 새벽 2시가 훌쩍 넘은 시간, 피곤한 건 당연했고 취객들이 사고 안 치게 보고 있는 것만도 정신이 없었다. 가출해서 대로변에 침이나 찍찍 뱉고 있을 열일곱 살짜리 여자애까지 신경 쓸 여력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선배들도 항상 이렇게 했었다. 청소년 실종 신고는 가출한 아이가 스스로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했으니까.

현수는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여자는 결국 일어서서 경찰서 문을 열고 나갔다.

설이는 다음날 오후 경기도 양평의 야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점심때부터 오기 시작한 눈이 설이 위에 소복이 쌓여 있었다. 설이는 옷이 다 찢겨 거의 벌거벗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몸 안에서는 정액이 검출되었다. 사인은 두부 외상이었다.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이다. 피로 물든 붉은 눈이 설이의 머리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퍼져 있었다. 범인은 근처의 나무에 목을 매달고 자살했다. 현수의 뒤에서 무릎을 꿇고 빌던 여자는 설이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여자는 취재를 거부했지만 기자들은 여자의 뒤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그 결과 한국일보에서 경찰에 설이의 실종 신고가 두 번이나 들어갔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했고 온갖 매체들이 앞다투어 실종 신고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비난하는 기사를 냈다. 현수는 실종 신고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간의 정직 처분을 받았다. 그 바로 다음날 현수가 엄중한 징계 처분을 받았다는 기사가 3대 신문의 한 꼭지를 차지했다.

현수는 설이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설이의 발인이 있던 날, 꿈에 설이가 나타나 뭔가를 말했는데 현수는 그 말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부터 현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런 현수에게 동기들과 선배들이 말했다.

“야, 너 진짜 재수 없었다. 원래 청소년 실종은 그렇게 대처하는 게 맞는 거야. 다른 사건도 수두룩한데 가출한 애들까지 언제 찾고 앉았냐. 그냥 운이 없었다 생각하고 잊어버려.”

죄책감이 조금 옅어졌다. 현수는 재수 없었던 그 일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3주가 지나자 설이는 더 이상 꿈에 나오지 않았고 불면증은 사라졌다. 시간이 갈수록 설이의 얼굴은 점점 희미해졌다. 정직 처분이 끝날 때쯤에는 설이 주위를 동그랗게 둘러싼 붉은 눈만 떠올랐다. 그리고 23년이 지나 설이가 사라진 그 날, 연이도 재수 없게 사라졌다.

현수는 소파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현수가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바닥에 닿을 정도로. 여자는 찻잔을 들고 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이 위에 쌓였던 그 눈은 오늘도 오고 있었다.

“설이, 그 날 이 산에 6시간 정도 누워 있었을 거라고 의사가 말했어요. 옷도 다 찢어지고 많이 추웠겠죠.”

여자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현수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자세 그대로 여자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연이, 지금 열일곱 살이죠?”

현수가 고개를 들었다. 현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총구를 잡은 채 총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차라리 저를 죽이세요. 연이는 아무 잘못 없어요. 연이 제발 살려주세요.”

여자는 찻잔을 놓고 일어서 현수의 손에서 흔들리고 있는 총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총을 다시 현수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이제는 당신에 대한 원망도 분노도 없어요. 그 감정을 유지하기에 23년은 너무 길었어요. 이 일은 설이가 죽은 그 날부터 제가 해야 될 의무였고 그래서 한 것뿐이죠. 그런데 그거 알아요?”

여자는 현수의 검지 손가락을 친절하게 방아쇠 구멍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총을 든 현수의 손을 두 손으로 잡은 채 현수의 귀에 대고 말했다.

“연이 이미 죽었어.”

여자는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채 옆으로 쓰러졌다. 현수는 총이 발사된 순간이 기억나지 않았다. 심지어 총성을 들었는지도 헷갈렸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검지 안쪽에 닿았던 방아쇠의 차가운 촉감뿐이었다. 여자는 노란 장판에 쓰러진 채 옆구리에 뚫린 구멍에서 피를 울컥울컥 쏟아냈다. 현수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뿜어져 나오는 피를 두 손으로 눌렀다. 하지만 검붉은 피는 현수의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와 바닥을 붉게 적셨다. 현수의 입에서는 신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수는 한 손을 떼서 여자의 코 아래 댔다. 덜덜 떨리는 손에서는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손에서 떨어진 피가 여자의 볼을 타고 아래로 흘렀다. 몸 밖으로 갓 나온 피의 진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현수의 주머니가 윙윙대며 울렸다. 현수는 여자의 코 밑에 댔던 손을 주머니에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이설현’

손에서 묻어난 피로 액정은 군데군데 붉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고 했지만 피로 미끌거리는 손이 스마트폰을 놓쳤다. 버튼은 제대로 눌렸는지 노란 장판 위 붉은 샘에 잠긴 스마트폰에서는 설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연이 무사히 돌아왔어!”

현수는 가만히 설현의 목소리를 들었다. 설현은 환희와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계속해서 연이의 무사 귀환을 알렸다. 현수는 빨갛게 충혈된 눈을 두 번 깜빡였다. 건조한 붉은 눈에 눈꺼풀 안쪽이 달라붙었다 떨어지며 따끔거렸다. 현수는 피로 적셔진 두 손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어 얼굴을 감쌌다. 조용하고 처절한 소리가 붉은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여보? 여보! 현수 씨, 당신 울어?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창 밖에서는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눈이 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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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금요일인데 오전에 일 후딱 끝내놓고 몰래 빙글에 들어온 optimic입니다! 어제 글을 올렸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하나 둘씩 글을 올리니까 정말정말 재밌네요!! 물론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해요! :) 오늘은 제가 어언 8개월.... 전까지 쓰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왔습니다.ㅠㅠ 한참 전의 글들인데, 비교적 최근까지도 댓글로 다음 편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으셔서 너무 죄송하고 행복했습니당.. 앞으로는 최대한 자주 올려볼게요. 재밌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 너무 늦게 와서 제가 그 동안 써왔던 이야기들 링크를 가져왔어요! 제 이야기를 처음 보시거나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으신 분들은 다시 한 번 읽어주시면...감사...드리겠습니당...ㅠㅠ -------------------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1 https://www.vingle.net/posts/2518828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2 https://www.vingle.net/posts/2521220 베개 밑의 식칼 1 https://www.vingle.net/posts/2521746 베개 밑의 식칼 2 https://www.vingle.net/posts/2521788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3 https://www.vingle.net/posts/2523328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4 https://www.vingle.net/posts/2541350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5 https://www.vingle.net/posts/2544908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6 https://www.vingle.net/posts/2569956 내가 신을 믿게 된 이유 https://www.vingle.net/posts/2592522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8(完) https://www.vingle.net/posts/2683686 아 그리고! 제가 저번 '내가 신을 믿게 된 이유'에서 뵈었던 스님이 주셨던 염주 사진도 가져왔어요! 저희 아버지 차에서 찍은 사진입니당. 지금은 많이 손을 타서 조금 매끈해져있지만, 4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은은하게 향나무 냄새가 나는 신기한 염주에요. 실제로 저희 아버지도 "이 염주 덕분에 내가 안 다치는거다" 라고 말 하실 정도로... 아무튼 긴 시간을 지나서 7편 시작하겠습니당! ----------------- 얼마나 지났을까.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멈추고, 나는 눈을 떴다. 얼마나 힘을 주고 눈을 감고 있었는지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고, 눈 앞에 다 타서 하얀 가루로만 남아있는 향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몸을 일으키려고 바닥에 손을 짚자 따끔한 느낌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손바닥엔 선명한 네 개의 손톱자국이 나 있었고, 내 손톱은 피범벅이 되어 붉게 번져 있었다. 입술도 다 터져버려서 입 안에 감도는 비릿한 맛을 느끼며, 나는 온 몸이 땀에 젖은 채 일어나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조금 놀란 듯 나를 쳐다보시더니, 이윽고 죽비를 내려놓으며 말씀하셨다. -너... 혹시 누구한테 원한 샀냐? 온 몸이 저릿저릿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감각과, 입 안에 퍼지는 피 맛을 느끼며, 나는 서서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내 선생님 앞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아뇨... 원한은 무슨... 나름대로 누구한테 피해주지 않고 살았습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너 '여자' 한테 원한 살만한 짓을 했냐? -...여자요? -니한테 붙어있는 걔. 보통 원한이 아니야.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 -네... -어지간한 한이 아니라, 원한이 사무쳐서 너 하나만 보고 있다. 너 죽이고 싶다고. -헐... -여자를 울렸다거나, 상처를 줬다거나, 그 여자의 신변에 위협이 될 만한 짓을 했다거나... 사고쳤다거나... 중요한 거니까 그냥 솔직히 말해라. -...전혀요?? 진짜 전혀 없었다. 남중, 남고를 나와서 대학생이 된 이후로 몰려다니면서 술 마시기 바빴던 나날들이었는데, 여자랑 관계될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과에 친한 여자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날이면 날마다 모여서 술이나 마시고 막차타고 비틀거리면서 집에 가는 날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습니다. 지나가면서 실수로라도 그런 적이 있나 생각을 해 봐도, 전혀 없습니다... -흠... 그러면... 선생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나는 조용히 앉아 고요한 눈으로 내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없이 앉은 선생님 맞은편에서 조용히 식어버린 차를 홀짝일 뿐이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때면, 왠지 모를 갈증이 느껴지고 불안하곤 했다. 이윽고 선생님이 시선을 거두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이쯤 하자. 일어나서 집으로 가라.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죽비와 목탁을 정리하시면서 내게 등을 돌린 채 이야기하셨다. -너. 집에서 첫째지? 밑에 남동생 하나 있고. -네. 맞습니다. -곧바로 집으로 가서, 엄마한테 물어봐라. 누나 있냐고. -네? 네... 아리송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때가 되어 어머니와 둘이 저녁을 먹을 때. 나는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혹시 내 위에 누나 있어? -어? 식사를 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가, 이내 슬픔을 담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캐묻기도 뭐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식탁을 짓눌렀지만, 한 번 더 물어봤다. -오늘 선생님께 다녀왔는데, 선생님이 물어보라던데? 나 누나 있냐고. 어머니께서는 잠시 멈칫하시더니, 숟가락을 내려놓고 이야기하셨다. -있었어. 니 위에 누나. -응? 있었다고? 어머니의 입에서,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결혼하시고 난 후, 첫 아이를 가졌다고 하셨다. 첫 아이기에 정말 금이야 옥이야 하며 태교를 하셨고, 점점 불러오는 어머니의 배를 보며 두 분은 너무나도 행복해 하셨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예쁜 아이라며 분홍색 옷을 준비하라고까지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사고로 인해 아이가 세상의 빛을 못 보고 유산되었고, 슬픔에 잠긴 부모님께서 슬픔을 딛고 우리를 낳으셨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딸을 간절히 원하시고, 여자아이들을 유독 예뻐하시고, 조카딸들을 그렇게 잘 챙겨주시는 이유도 그 때 이해가 됐다. 빛을 못 보고 하늘나라로 간 딸. 나의 누나 때문이었다. 길고도 슬픈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나 이전에 태어나 우리 형제와 함께 행복을 누렸어야 할. 얼굴도 모르는 누나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음 주. 나는 선생님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전했다. -그랬구만... 빛을 못 보고 가버려서 원한을 가졌구나... -뭔가 좀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러나 선생님의 반응은 측은함을 가진 나와는 달랐다. -너 뭔가 잘못 생각하는데, 니 누나는 니가 죽길 바라는 거 같다. -...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너를 괴롭히겠냐. 한을 풀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너를 서서히 말려죽이고 있는데. 차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킨 선생님은, 이내 말을 이어가셨다. -어린 애의 마음이다. 질투와 원한으로 너한테 집착하는거야. 니가 받은 사랑. 친구, 생활이 모두 자기 거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다 누린 너한테 어마어마하게 원한을 품고 있어. -마음 독하게 먹어라. -네... 나는 전보다 뭔가 더 슬프다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차를 들이켰다. 저번 주와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틀고 염불을 외우고, 죽비로 어깨를 맞아가면서 엄청난 고통을 견딘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내 누나였던, 그러나 지금은 나를 괴롭히는 '그것'에 대해 에서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서... 그렇게 매 주 선생님과 퇴마의식을 진행하며, 점점 머릿속에서 들리던 이상한 소리가 잦아들 무렵, 서서히 고통스러운 감각들도 사라져 가고, 평온한 나날들이 반복될 무렵. 어느 날 저녁. 나는 정말 이상한 꿈을 꾸었다. -----------------------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아마 다음 편이 마지막이 될 거 같아요! 기억을 더듬어서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 혹시라도 제 글들을 정주행해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마지막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제가 정성을 다해 쓴 글들이에요! 재밌게 읽어주시고, 다른 편들도 읽어주시면 정말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제가 쓴 군대 이야기들도 재밌으니까, 읽어봐 주세요 헤헤... 좋아요 댓글은 언제나 사랑합니당!
소설) 체력단련
안녕하세요! 슬금슬금 또 나타난 optimic입니다!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네요! 솔직히 여름보다는 이런 날이 공포 이야기를 읽기에 더 좋은 거 같아요! 이번에는 단편소설을 들고 왔습니다! 별로 무섭지 않더라고 재밌게 읽어주세요! 댓글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새벽. 위병소. 도현과 민기는 위병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중이었다. 조금 늘어진 채로 구석에 서서 지루하다는 듯이 서 있는 도현과는 달리, 민기는 군기가 바짝 든 채로 서서 추위를 견디는 중이었다. -흐아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도현은 지루한 표정으로 민기를 쳐다봤다. - 야. - 일병! 박 민 기! - 야씨. 새벽에 누가 그렇게 크게 말하래. 뒤질래? -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한심하다는 듯 민기를 쳐다보는 도현의 눈에는 지루함 이외의 어떤 감정도 찾을 수 없었다. 문득, 이 지루함을 깨버려야 겠다는 듯 도현의 눈빛이 바뀌며 민기에게 말을 걸었다. - 야. 재밌는 얘기 해줄까? - 재밌는 얘기 말씀이십니까? - 그래 이 새꺄. 경계하면서 잘 들어봐. 도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 몇 년 전에 우리 중대에서 가혹행위 때문에 난리 났던 거 들었냐? - 잘 모르겠습니다. - 그 당시에 완전 고문관 새끼가 하나 있었나봐. 체력도 허약하고, 말도 못 알아먹고.. 존나 어리버리 해서 시키는 건 다 지 좆대로 하고. 도현은 이야기를 이어가며 민기를 한번 슬쩍 쳐다봤다. 민기는 긴장한 채 호기심 섞인 눈으로 도현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 어느 날, 아침 구보를 뛰는데 그 고문관이 또 낙오를 했대. 남들 다 잘 뛰어가는데, 그 새끼만 존나 헥헥대면서 맨 뒤로 쳐져서 기다시피하면서 왔다는 거야. - 근데 선임들이 그거 보고 빡 돌아서, 존나 팬 다음에 체력 단련을 시켰다더라고. - 어떤 체력단련 말씀이십니까? 도현은 민기의 얼굴 앞에 손을 올리며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는 시늉을 했다. - 연병장 뺑뺑이. 주말 아침부터 오후까지. - 헉...간부들한테 안걸렸답니까? - 간부들이야 주말에 출근도 잘 안하고, 당직사관들도 워낙 이 새끼가 고문관으로 유명해서 그냥 묵인했대. 선임들이 체력단련 시키고 온다고 하니까 고생하라고 그러면서. - 근데 그 때가 8월이었단다. 대가리 벗겨지게 더운 여름에, 하루종일 물도 못 먹게 하고 달리기만 하 니까 결국 오후에 걔가 쓰러졌대. - 헐... - 사실 애초에 수색대 애들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안 쉬고는 못하는데, 낙오하던 애한테 그걸 시킨 게 미친거지. 한계는 이미 넘었는데도 선임들이 옆에서 때리고 욕하니까 무서워서 계속 움직였대. - 헐... - 하도 뛰다가 몸이 말을 안 들으니까 양 발을 질질 끌면서 뛰어서 연병장 라인에는 발자국이 아니라 타이어를 끈 듯이 발을 끈 자국이 가득했다더라. 온 몸이 말라 비틀어진 채로 쓰러져서 결국 그대로 죽어버리고, 우리 부대 한 번 개박살 났었다고 하더라. - 와... 선임들 진짜 너무했지 말입니다... 이야기를 하던 도현. 민기의 방탄모를 손으로 가볍게 툭툭 쳤다. - 그러니까, 내가 가끔 갈궈도,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솔직히 나 잘해주잖아? - 마.. 맞습니다! - 아 이 새끼. 마음에서 안 우러나오는 거 같은ㄷ... -탁 -탁 -타탁 멀리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도현과 민기는 잽싸게 경계 자세를 취했다. - 당직사관인가보다. 암구호 외칠 준비해라. - 알겠습니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민기는 연병장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 정지! 정지! 손들어! 그러나 연병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탁탁 뛰는 발걸음 소리는 새벽 바람과 함께 점점 멀어져 갔다. - 뭐야. 당직사관 아니야? - 잘 모르겠습니다! - 아이씨. 모르면 군생활 끝나? 어둠이 깔린 연병장을 보며 긴장하는 도현과 민기. 민기는 여전히 발소리를 향해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탁 -타탁 -탁 불규칙적인 발걸음 소리는 다시 점점 가까워졌다. 도현과 민기는 긴장한 채 흔들리는 동공으로 연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닥! 그 때. 빠른 속도로 탁탁탁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위병소 옆을 뛰어 지나갔다. 사람인지 뭔지 모를 형체는, 군용 활동복을 입은 채 다시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 으악! 씨발 뭐야! - 소...손들어! -탁 탁 탁 탁 위병소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처럼, 발소리도 다시 희미해져갔다. - 뭐..뭐야... - 가..간부가 운동하는 거 아닙니까..? 도현은 침을 한번 삼키고 연병장을 쳐다봤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는 듯. - 넌 간부가 이 시간에, 활동복 입고 구보 뛰는 거 봤냐..? - 아...그..그럼...? -스으윽...지직 -스으윽...탁 -지익....탁 정체불명의 소리는 다시 가까워졌다. 발걸음 소리가 아닌, 무언가를 끌고 가는듯한 소리. 힘겹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롭지만 공포스러운 소리가 차디 찬 공기를 업고 위병소를 향하고 있었다. 도현과 민기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연병장을 쳐다봤다. - 이 씨발 누구야!! 그만 안 해! - ...니다... -탁 - 안 그러겠...습니다... -스으윽 - 죄..송...합니다... -쿵 기괴하게 뒤틀린 얼굴이 어둠을 뚫고 빠르게 달려와 도현과 민기의 눈 앞에 나타났다. 바싹 마른 몰골에 피범벅이 된 채 이리 저리 휘어져버린 발을 끌고 위병소 안으로 들이닥친 그는 도현과 민기의 위로 쓰러졌다. - 으..으악!!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도현과 민기의 귓가에 숨을 몰아쉬며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이제 그만 뛰어...도 되..겠습..니까..?
[책 추천] 오싹 달달한 로맨스릴러를 읽고 싶을 때 보면 좋은 책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강하늘과 공효진의 달달한 로맨스와 까불이의 정체를 알아내는 스릴러까지!   로맨스릴러의 매력을 알려주는 드라마죠! 오늘은 동백꽃 필무렵처럼 오싹하고 달달한 로맨스릴러 소설을 알려드릴게요! 상처받은 과거에 대한 두려움을 딛고 사랑을 시작한 그들을 뒤쫓는 과거의 그림자 나를 봐 니킬러스 스파크스 지음 ㅣ 아르테 펴냄 영화 <노트북>의 작가가 쓴 로맨스 스릴러 보러가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소년과 비밀을 가진 소녀의 긴장 넘치는 로맨스 너는 누구니 이희영 지음 ㅣ 황금가지 펴냄 로맨스릴러 공모전 당선작 '너는 누구니' 보러가기> 그녀에게 온 사랑과 살인을 고백하는 러브레터! 공포와 설렘 섞여선 안 될 것들의 묘한 공존 유의미한 살인 카린 지에벨 지음 ㅣ 밝은세상 펴냄 심리스릴러의 대가가 쓴 로맨스릴러 소설 보러가기> 의문의 택배 박스 속에 사라진 연인의 납치 소식 정해진 시간 내에 그녀를 찾아내는 스릴러 정미진 지음 ㅣ 엣눈북스 펴냄 사진과 함께 보는 로맨스릴러 보러가기> 오래전 이혼한 전 남편이 보낸 짧은 편지와 긴 원고로부터 시작된 복수를 담은 심리 스릴러 토니와 수잔 오스틴 라이트 지음 ㅣ 오픈하우스 펴냄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원작 소설 보러가기> 플라이북 바로가기>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최은영 작가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 그 안에 들어 있는 7편의 소설들은 다정하다. 그렇다고 마냥 즐겁고 행복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정한 공감과 연대까지 이어지기 위한 씁쓸함과 아픔이 함께 들어있다.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 같은 소설이다. 쓰지만, 달다. 7편의 소설에서 공통으로 목격되는 요소는 이별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이별, 서로의 이기심에 의한 이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이별, 다양한 이별들이 들어 있다. 어떤 이별은 시간이 지나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다시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어떤 이별은 상대를 한없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어도 다시는 만날 수 없기도 하며(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먼 곳에서 온 노래), 어떤 이별은 이미 너무나 사랑하고 있던 사람과 한순간에, 자신의 잘못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해 영원히 헤어지게 되기도 한다(미카엘라, 비밀). 작가는 이 다양한 이별들을 각각의 소설들에 각각의 방식으로 그려내며 그 속에서 퍼지는 사람과 사람 간의 공감과 유대를 표현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역시 '미카엘라'와 '비밀'이었다. 세월호로 인한 이별을 다루고 있는 소설. 이토록 폭력적이고 잔혹한 이별을 '미카엘라'는 한 발짝 밖에서 관조하듯, '비밀'은 이별인 줄 알지 못하는 자의 눈으로 아프게 그린다. '미카엘라'에는 세례명 미카엘라인 딸과 그의 어머니가 나온다. 미카엘라는 어머니를, 어머니는 지난밤 말동무가 되어 준 노인의 친구를 찾으려 세월호 시위 현장을 돌아다닌다. 그곳에서 미카엘라가 자신의 어머니인 줄 알고 어깨에 손을 얹은 어머니와 꼭 닮은 여인은 세월호 사건에 희생된 학생의 어머니였고 미카엘라의 어머니는 노인의 친구가 자신의 딸과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이제 세상에 없는 미카엘라라는 아이의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미카엘라와 그의 어머니가 서로를 찾으며 소설이 끝난다. 소설의 주인공, 미카엘라와 그의 어머니는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편하게, 세월호 사건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여느 집의 모녀와 다를 바 없는 둘의 관계를 차분히 따라간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세월호 사건은 우리를 집어삼킨다. 미카엘라와 함께 세월호 시위 현장에 있는 어머니를 닮은 여인을 만나고 미카엘라의 어머니와 함께 세월호에 희생된 한 아이의 이름이 미카엘라라는 사실을 들으며. 그 순간 세월호 사건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세월호 시위 현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 중에는 내 어머니와 너무나 닮아 엄마라고 외치며 어깨에 손을 얹을 수밖에 없는 여인이 있을 것이다. 세월호에서 사라진 학생들, 교사들, 또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이름과, 내 부모님과 가족의 이름과, 내 자식들의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장면을 통해 세월호 사건밖에 있는 사람들을 세월호 경계 안으로 끌어와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느끼게 만든다. '미카엘라'가 말을 건넨다. 시위 현장에 서 있는 저들만이 아니야. 모두가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야. 너도, 나도. 이 소설집의 소설들에서 펼쳐지는 이별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이별할 당시에는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 했던 상대에 대해 시간이 지나며, 자신이 그 시기들을 거쳐가며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이별한 상태에서 다시 만나기란 매우 힘든 법이다. 이제야 상대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했더라도 이미 이별한 상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고 다시 돌아오더라도 이별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내가 성숙했더라면, 조금만 더 상대의 입장을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하지만 그 조금의 성장을 위해서는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겪었던 수많은 이별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내 미숙함으로 인해 벌어진 이별은 무엇일까. 후에 시간이 쌓이고 시야가 넓어져 상대를 공감하게 된다면, 그때 후회하게 될 이별은 어떤 이별일까. 지금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현실 위에 붕 떠서 이상과 행복만을 노래하는 소설집은 아니다.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씁쓸함 안의 다정함을 찾아내 보여주는 소설집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 같은 소설집이다. 7개의 소설 중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최은영 작가의 다른 책, '내게 무해한 사람'도 반드시 읽어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 책은 또 어떤 맛일까. 더 달콤할지, 더 씁쓸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실망은 하지 않을 듯 하다. 소설 속 한 문장 미카엘라는 여자아이들의 흔한 세례명이었다.
빙글백일장 늦게 보고 써보는 초단편사소설
이것은 내가 꾼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종의 사연으로 남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에 진학하였고, 모종의 사연으로 1년을 휴학하였다. 복학하여 꿈도 희망도 없는 취업시장에서 나는 어찌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더랬다. 나는 사는 게 참 부질없다고, 내 삶의 이력에 동그라미 대신 빗금으로 점수를 매기곤 했다. 어리석은 청춘에 빗금이 상처를 내듯 봄비가 내리던 밤이었다. 불 끈 작은 방 침대에 누워 봄빗소리에 맞춰 빗금을 쳤다. 잠은 아무리 청해도 오지 않는 손님, 이라는 메모를 머리맡에 남기고 기상까지 남은 시간을 그렇게 계산했다. 11시부터 4시까지 하나씩 빗금을 치며 눈을 부비었다. 글로 먹고 살자던 글러먹은 나의 이력과 마찬가지로, 하염없이 빗금질만 치던 나는 어느새 바다에 빠져있었다. 꿈이란 게 그렇듯 아무런 개연 없이 나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입안에서도 진동했다. 걸친 것 하나 없이 한밤의 망망대해에서 나는 할 줄도 모르는 헤엄을 치고 있었다. 무엇이 내 왼쪽 팔뚝을 건들기에 자세히 보니 통나무였다. 잽싸게 몸을 실어 겨우 헤엄은 멈출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떠다니다 우연히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의 연유에 대해 묻게 되었다. 그러나 그도 아는 건 없었다. 목적지도 모른 채 떠다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했다. 그는 그야말로 저 바다에 누워 별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안식을 기도했지만, 우린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차마 목적을 정하지 못한 유랑이 시작되었다. 비릿하고 서늘하게 덮쳐오는 저 파랑처럼 차라리 언젠가 두 발 닿일 육지에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한참을 추위와 비릿함에 시달리다가 멀리 작은 섬이 하나 보였다. 그런데 그 섬은 점점 크게 보였다. 내가 다가선 건 아니었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겨우 제자리를 버티고 버틸 뿐이었다. 다가온 것은 그 섬이었다. 육안으로 확인된 섬은 섬이면서도 섬은 아니었다. 그것은 배이자 왕좌이며, 열망과 욕망의 군집체였다. 섬처럼 보인 것들은 다, 송장 아니면 반송장들이 얽힌 덩어리였다. 불어터진 군집체 중앙에는 커다란 의자(형태로 엮인 이들이)가 있었고, 그 의자가 작아보일 정도로 거대한 사내가 앉아있었다. 군집체에 꼭 죽은 이들만 있던 것은 아니다. 살기 위해 그 군집체에 매달려 노를 저으며 그가 던져주는 음식으로 연명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음식이란 그가 필요에 따라 주운 이들이었다. 저 앞에 별을 보며 누웠던 그 사람과 같이 떠도는 이들을 휙 낚아채 (뼈를 이어 만든 작살과 같은 물건으로) 반을 갈라 자기가 먹고, 남은 반을 또 갈라 노를 젓는 이들에게 던지고, (그러면 그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남은 건 의자(처럼 엮인 이들) 사이에 쑤셔넣었다. 나는 그제야 비릿한 바닷물이 사실은 시즙이 가득했다는 걸 깨달았다. 자연스레 속을 게워내면서 나는 뒤로 돌아서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들키지 않으려고 더 노력했다. 천만다행으로 앞에는 뭔지모를 잔해들이 나를 가려주고 있어서 가능했다. 나는 노를 젓는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마음으로, 그러나 오로지 나를 위해, 헤엄을 치고 또 쳤다. 시즙과 피로 물들어 검붉은 파랑을 젓고 또 저었다. 그 군집체는 얼마 뒤 다른 방향으로 틀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탈진한 채 겨우 통나무를 붙잡았다. 그곳은 나무잔해들로 가득했다. 통나무에 기어올랐다. 걸터앉아서야 비로소 비릿한 물로부터 몸을 꺼내었다. 그리고 앞을 보았다. 작은 폭포처럼 비릿한 물이 쓸려내려가고 있었다. 덜커덩. 걸터앉은 통나무가 잔해들과 엉켜 폭포에 걸쳐졌다. 그렇다는 것은 나는 바다가 아닌 강에서 헤매였던 걸까? 어쩌면 그저 냇가였을라나? 고개를 드니 육지가 눈앞에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빗금친 모든 일들이 떠올랐고, 잠에서 깼다. 2014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3 필사모임 <쓸모있씀!> 세번째 카드 🖋
여러분은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전 드라마 보는거에 푹 빠졌답니다 ㅎㅎ 별 거 아닌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하루하루 오늘의 기분을 글로 적으면서 작은 행복을 찾아보시는 건 어떤가요! 필사 모임은 계속 된답니다. 오늘은 벌써 세번째 카드에요! : ) <오늘의 문장> 오늘 가져온 문장은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에서 따왔습니다. 김애란 작가는 일상에서 소소하게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포착해내서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에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말로 형용하기 힘들지만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글로 풀어내줘서, 마치 어딘지 모르게 간지러웠던 곳을 긁어주는 기분이 들어요 😙 오늘은 소소한 일상에서 포착되는 것들에 집중해보자는 마음으로 두가지 데려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장을 써주셨나요? 댓글로 함께 달려봅시다! 그럼 <쓸모있씀> 여러분 모두 즐거운 금요일이 되길 바라요 👋 필사카드는 매주 화/금 업로드됩니다. 아차! 그리고 그거 아시나요?! 꼭 손글씨가 아니어도 된답니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둔 내용이라도, 내가 직접 골라 적은 문장이면 뭐든지 괜찮아요 :) 신규 참여신청👇 공지사항 👇 <쓸모있씀!> 톡방👇 즐거운 필요일 보내세요! 👋
소설) 마네킹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지난 번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를 완결짓고 나서, 많은 분들이 봐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항상 감사로 시작하는 거 같은데, 빙글에서 활동하면서는 정말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일들 뿐이라서, 입버릇처럼 감사 인사가 먼저 나오는 거 같아요! 별 거 아닌 제 글들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예전부터 쭉 제 글을 봐 오시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혹시 이 그림 기억하시나요? 예전에 무서운 글쓰기에서 제게 커피 기프티콘을 가져다 준! 웹툰작가인 제 친구가 그려준 그림이었는데요! 이 친구가 드디어! '네이버'에 입성을 했습니다! 짝짝짝! 친한 친구로써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옆에서 봐 왔는데, 저는 사실 네이버 갈 줄 알았어요!(에헴) 네이버 토요 웹툰 '공유몽' 많이 봐 주시고 관심 가져주세요! 꿈을 주제로 한 이야기라서 흥미도 있고, 그림도 정말정말 잘 그리니까! 홍보라고 생각되시면 죄송합니다..ㅠㅠ 베프가 너무 자랑스러운 마음에... (친구들 중 첫 대기업맨...) 아무튼 이번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 3평 정도 되는 밀실에서 한 사내가 서서히 눈을 떴다. -으... 여기가 어디야... 남자는 천천히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 지 살펴본다. 빛 하나 들지 않는 밀실 천장에 매달린 희미한 전등만이 작은 방에 미미한 빛을 뿌리고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는 방. 맞은 편엔 책상 하나와 작은 의자. 그리고 구석에 을씨년스럽게 세워 진 마네킹 하나 뿐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모습을 관찰했다. -으...응? 이게 뭐야? 남자는 자신이 구속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몹시도 차가운 쇠로 된 의자에 앉은 채 사지 한 곳 중 어느 곳도 움직일 수 없었다. -뭐야? 왜...? 저기요!! 누구 없어요? 저기요!! -드륵 순간 외부와 전혀 단절되어 있었을 것만 같던 밀실 벽의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보이는 한 남자의 얼굴. 두 눈에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장난기마저 어려 있다. -어..? 저기요! 도와주세요! 저기요!! -철컥 작은 문이 열리자,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일어났어? 정장을 입은 남자는 서류가방을 내려놓은 채 여유롭게 맞은편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누..누구세요? 남자가 살짝 겁에 질린 채 물었다. -뭘 물어. 묻지 마. 살짝 웃음을 띄운 남자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겁에 질린 채 묶여있는 남자를 보며, 그는 서류가방 안에서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저... 저를 어떻게 하실 건가요? 죽이실 건가요? -무사히 보낼거면 이 지랄하면서 안 묶어놨겠지? 묶인 남자를 보며 그는 엷게 웃었다. -왜...왜 이러시는거에요... -글쎄? 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해? 내가 싸이코패스라서? 여전히 눈은 종이에 고정시킨 채,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너무 쫄지 마. 왜 이렇게 쫄아. 좋은 일 좀 하자. -탁- 차트를 내려놓으며, 정장을 입은 사내는 서류가방에서 무언가를 또 꺼내기 시작했다. 예리하게 날이 선 손도끼였다. -바쁘니까 그럼 이제 시작할까? -사장님! 사...살려주세요...제발...저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습니다... 구속된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아. 가족이 있으셨어? -네...네! ! 어머니와 아내가 집에서 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사장님도 가족이 있으시잖아요... -있었지. 근데 없어. 순간.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더니, 묶여있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장준호. 묶여있던 남자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제..이름을 어떻게...? -8년 전 어린아이를 강간. 도망치려다 집에 들어온 아이의 엄마까지 성폭행 후 살해. 그러나 만취상태의 심신미약으로 인해 20년형. -그리고. 오늘 15년만에 모범수로 가석방. -너.. 누구야. 구속된 남자의 눈빛이 변했다. 장준호는 핏발이 선 눈으로 죽일듯이 그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가족이 있다고? 기다린다고? 나도 알아. 봤어. 티비에서 니 아내가 지껄이는 개소리들. 술이 문제지 사람은 착하다고? 기다린다고? 미쳤더라. 천생연분이야 아주? 정장을 입고 있던 사내의 눈도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래. 씨발 내가 누군지 알면 이렇게 못 할텐데? 근데 너 나 죽일 수나 있겠냐? 사람 한 명 죽이는 게 어렵지, 둘부턴 쉽더라. 내가 풀리기만 하면 너도 뒤질 줄 알아 이 새끼야. 알았어? -쿵. 덜컹!- 장준호는 입에서 침을 흘리며 거칠게 내뱉었다. 그가 묶인 쇠 의자가 남자의 몸부림에 함께 덜컹거렸다. -걱정하지마. 너 오늘 여기서 걸어서 못 나가. -지랄하고 있네. 빨리 이거 풀어! 씨ㅂ... -퍽- 순간, 정장을 입은 남자가 번개같이 도끼로 장준호의 손을 내려쳤다. 사방으로 솟구치는 피 사이로, 잘려나간 손가락들이 튀어올랐다. -끄으아아악! -들어 봐. 정말 똑같은 하루였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갔지. 우리 딸은 유치원에서 그림 잘 그렸다고 칭찬받았다고, 아빠한테 보여준다고 빨리 오라고 했고,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놓는다고 했었어. -끄...끄으...이 새끼... 손에서 여전히 피를 흘리며, 장준호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움직여야 할 손가락에 아무런 느낌이 없음을 느끼며, 남자를 쳐다봤다. -근데 집에 갔는데, 아내는 거실에 피를 흘리면서 죽어있었고, 딸... 우리 딸은 침대에 누워 있더라고. 침대가 피범벅이 된 채.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도끼를 매만졌다. -지난 15년. 아니 13년동안 우리 딸은 쭉 병원에 있었어. 평생 제대로 걸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 근데, 10년 동안은 정신병원에 있었어. 대인기피, 공포, 우울증 등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병은 다 가진 채, 아빠가 와도 무서워서 떨기만 했어. 남자가 도끼를 든 채 장준호에게 다가갔다. -너. 우리 딸이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한 게 뭔 줄 알아? 장준호는 덜덜 떨며 남자를 쳐다봤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표정이었지만, 그 눈만은 시릴 정도의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죽었어. 혀를 깨물고. 성인이 됐어도 병원에서 못 나오겠다고, 무섭다고 하면서. 평생 이렇게 살 수 없을 거 같다고. 남자는 자조섞인 비웃음을 흘렸다. -참 법이라는 게 좆같아. 그치? 내 인생, 우리 딸 인생, 아내의 인생을 포함한 우리 가족들의 인생을 박살내놓은 새끼가 고작 15년만에 감옥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성경 읽으면서 회개한다고 하면서 나왔잖아? 그리고 그런 개새끼를 기다리는 가족도 있고. 장준호의 눈에서 서서히 독기가 사라졌다. 그의 눈에 남은 감정은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사...살려...주십쇼... -빡- -끄흑! 남자가 주먹으로 장순호의 입을 날렸다. 누런 이빨 몇 개가 그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당연히 살려주지. 누가 죽인대? 걸어서 못 나간다고 했지. 죽는 건 너무 편해. 안 그래? -흐으어...으으... 제발.. 살려주세요... 남자는 공포에 질린 장준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손으로 마네킹을 가리켰다. -저거 보여? 저게 널 살려줄거야. 장준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마네킹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거 한 번 봐. 남자는 읽고 있었던 종이를 들어 장준호의 앞에 가져갔다. -무섭다. 죽고 싶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너무 무섭다. 잠에 들어도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난다. -엄마가 보고 싶다. 아빠한테 너무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잘못을 빈다면... 한 번만 내 앞에서 울면서 용서를 구한다면... 편지라도 한 통 온다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빠. 빼곡하게 쓰여진 글자들 사이로, 장준호는 남자가 보여 준 글들을 읽었다. -근데 넌, 한 번이라도 용서를 구해보긴 했어? 내가 잘못을 빌라고, 용서를 구하라고 피해자에게 편지라도 보내라고 몇 번이나 편지를 썼어. 넌 그 때 뭐라고 했어? 신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고 했잖아! 이 개새끼야! 남자는 무섭게 화를 내며 장준호에게 소리쳤다. -흐...흐윽...잘..못.. 했습니다... 제발... -늦었어. 넌 내가 니 이름을 부른 순간. 그 때부터 빌었어야 돼. 남자는 다시 도끼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장준호에게 다가갔다. -물론 그랬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야. -으... -입도 막아야 하니까 좀 참고. 알았지? -쿵- -끄아아악! ------------------------- 작은 공방. 한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삐빅! 삐비빅!- 한참을 집중해서 만들던 남자는 휴대폰 알람을 확인하며 일어났다. -읏차!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남자는 무언가를 챙겨들고 공방 구석으로 향했다. 공방 구석에는 팔다리가 없는 마네킹이 철로 된 받침대에 의지한 채 서 있었다. 마네킹의 목 부분엔 줄이 튀어나와 있었고, 길게 나와있는 그 줄은 천장에 매달린 수액통과 연결되어 있었다. -쿵- 남자는 손바닥으로 가볍게 마네킹을 내려쳤다. -웁! 후으으... -아직 살아있었네? 다행이네. 남자는 익숙하게 빈 수액통을 새 걸로 교체했다. -얼마나 더 갈 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오래 살아라. 제발. 우리 딸이 받은 고통. 다 받으려면 일 분 일 초가 부족해. -우으으...으... 눈도, 입도, 귀도 없는 마네킹. 코에 작은 구멍이 뚫린 마네킹 안에서, 짐승과도 같은 흐느낌이 들려왔다. --------------------------------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딸을 키우고 있다 보니, 쓰면서 저도 모르게 몰입이 되기도 하고,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습니다. 뉴스를 보고, 길을 가다 쇼윈도에 진열된 마네킹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서 써 봤는데, 이번 편은 약간 수위가 높아서, 보시는 분들 중엔 조금 잔인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러신 분들께는 음... 죄송합니다... 그래도 재밌게 보셨으면 좋아요와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다음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문학 감성 쏟아지는 역대 수능 필적감정란 문장
수능날 맞이 역대 수능 필적 감정란 문장 모음. 근데 문장들이 하나하나 참 예쁘다. 한국의 문학이란... 글의 맛. 필적감정란에 쓰는 문구는 희망찬 내용이나 긍정적인 내용을 위주로 갖고 오고 필적확인할 때 용이하게 겹받침이 들어가는 문장을 쓴다고 함ㅋㅋㅋㅋ +2019년의 필적감정란 문구는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윤동주, 서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정지용, 향수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윤동주, 소년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윤동주, 별 헤는 밤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정채봉, 첫마음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황동규, 즐거운 편지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 -정한모, 가을에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박정만, 작은 연가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문태준, 돌의 배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주요한, 청년이여 노래하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 -정지용, 향수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김영란, 바다로 가자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김남조, 편지 (ㅊㅊ - 여성시대)
새마음 요양원 19
@wjddl1386 @AMYming @gloomnfancy @jjy3917 @znlszk258 @younimini @yws2315 @goodmorningman @yangsig2004 @oooo5 @yangsig2004 @zhd253 @aromi196 @donas2030 @Poiu8 안녕하세요 빙글러님들 ^^ 주말에 미리 적어두었던 내용이 날라가버려서 급하게 다시 쓰느라고.. 좀 늦어졌습니다. 다소 이어지는 부분이 좀 빈약해질수 있어서 양해바랍니다. 드디어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네요. 지금 한........ 1/2 정도는 쓴거 같네여. ㅎㅎㅎ 댓글달아주신 분들 알림 같이 넣어드렸습니다. 이번댓글도 달아주신분들은 알림넣어드립니다 . ^^ 화이팅 !!!!!!!!!! ========================================================== 지현은 거품이 가득 차오른 맥주를 몇번 연거푸 들이키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손에 차가운 냉기가 서려 컵에서 손을 떼고싶었지만 올라오는 울컥한 마음에 컵을 잡고 작게 떨어야했다. " 그럼 그사람 영민씨 아빠가 아닐수도 있다는거네,,, " " 방금 나도 생각나서 전해주는거야. 지현아 우리.... 숙소 옮겨야하는거 아니야? " " 바로 옮기면 들통날거야. 뭔가 명분을 찾아야해... 적당히 서귀포쪽에 취재가 길어지는거처럼 해서 그쪽으로 이동하는걸로 운을 좀 띄워보자 . 이제 우리 둘 말고 누구도 믿을수 없어. 수연이 너도 정신 바짝차려. 우리 이제 무조건 같이 움직여야해. " " 알겠어. 지현아... 내동생 찾는일인데 언니가 정신 차려야지. " 손에서 몇번을 굴리던 비어있는 맥주잔을 한참 들여다보던 수연이 애써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툭 하고 떨어지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더니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가자. 오래 자리 비우면 오해받을지도 몰라 " " 수연아 너 괜찮겠어? 숙소 내에 도청장치같은거 있을지도 몰라. 혹시 모르니까 중요한 내용은 나에게 톡으로 보내도록해. 알겠지? " " 응! 뭐가 됐든 일단 내일 그 렌트카 부터 뒤져보자. "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 두 여자는 차갑게 내려앉은 밤공기의 길을 걸었다. 우정 여행이라도 온 길이었다면 좋았으련만... 학창시절부터 수연과 친했다면 좀 더 좋지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이런식의 만남이 아니라 서로를 반갑게 부르며 안아주는 재회였으면 더 좋았을것을...밤바다의 파도가 쏴아 하고 치는 소리가 맥주 한잔으로 알딸딸해진 두 친구의 마음을 흔들었다. 숙소에 도착해 지현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고 있었는데 방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내 누군가 똑똑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누구세요? " ' 지현씨 저에요. 권영민. 문좀 잠깐 열어주세요 ' 영민이라는 이름에 잠시 멈칫하던 지현이었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 이 시간에 왠일이에요? " " 제가 내일 그 렌터카 사장한테 약속했던 광고때문에 사무실에 다녀와야 해서요. 두분만 혹시 취재 다녀오실수 있나 해서요 . 차량은 아버지 차 빌려뒀으니까 네비에 이 주소 찍어서 다녀오시면 되요. " " 아. 물론이죠 ! 수연이 몸도 괜찮아졌다고 하니까 저희끼리 다녀올게요 " " 이거 차키요. 차량은 요 앞에 세워진 싼타페 차량이에요. 혹시 못찾으시겠으면 1층에 아버지 계실테니까 가기전에 한번 물어보셔도 좋구요. " " 걱정하지마세요 . 저 운전은 그래도 꽤 해요. 몇번 같이 다녀와봤으니까 네비만 있으면 운전 문제없을거에요 . 차량까지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 수연은 물기가 흐르는 머리칼을 수건으로 대충 감아 올리며 차키를 받아 챙겼다. 영민은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방밖을 빠져나갔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알수없는 사람 속내라지만 영 불편한상황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때 , 진동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 Rrrrr ' 가방에서 꺼내 확인해보니 윤기자의 대포폰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 메일 확인 바람 ] 짧게 보내진 메시지는 분명 윤기자의 번호였다. 급해진 마음에 지현은 가방안을 탈탈 털어 노트북과 전원을 침대에 쏟았냈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전원을 연결하고 조금 기다리자 노트북의 대기화면이 화면 가득 펼쳐졌다. 긴장된 마음으로 메일에 접속해보니 윤기자가 보낸 메일이 한개 도착해 있었다. 메일의 내용은 지현이 부탁했던 권영민과 김성민이라는 친구의 조사 내용을 정리한 듯 보였다. 아마 핸드폰으로는 한번에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메일로 보낸 듯 했다. 첨부파일에는 권영민의 제주향기 이력서가 들어있었고 그리고 그다음 페이지를 열어보자 어느 지방 신문 기사 캡쳐본이 들어있었다. 그 신문은 몇줄되지않은 아주 작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캡쳐본도 워낙 작아 지현은 안경까지 고쳐쓰고 최대한 확대해 그 내용을 확인해야 했다. [ 대학생 취업스트레스로 자살 ] s대학교 학생 김모(20)군이 학교 기숙사 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김모군은 한동안 극심한 취업스트레스 시달려 이를 견디지 못해 학교 기숙사 옥상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 고 말했다. 한편 함께 기숙사에 거주했던 친구들의 증언 으로는 " 김모군이 한동안 어떤 책을 읽고 중얼거리더니 이상한 행동을 했다. 자살을 하면 그분과 닿을수 있다고 했다며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것 같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와같은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스트레스에 의한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고 추정된다며 김모군의 가족을 찾는대로 부검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현은 위에 메일에 올라온 이 기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저 김모군은 대체 뭐란 말인가. 또 메일을 쭉 내려보자 권영민의 이력서가 첨부되어 있었는데 그 이력서를 살펴보자 예상과는 달리 이렇다할 혐의점을 찾을수가 없었다. 지현은 기운이 빠져 의심이 잘못된것인가 의구심이 들 때 쯤, 이력서 밑에 이어져 있는 자기소개서 한장을 찾아냈다. [ 성장과정 ] 나는 순탄하지 않은 성장과정을 거쳤다. 고아원에 버려져 부모님이 계시지않아 혼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혼자서 모든것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이 어린시절에는 힘들고 외롭기도 했지만 내 인생에서 귀인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분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 [생략] 뒤에 내용은 뻔한 내용이었으나 성장과정 앞부분에 적힌 권영민의 말은 지현을 섬뜩하게 했다. '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니 ... ' 지현은 입밖으로 튀어나올뻔 한 탄식을 손으로 막으며 진정되지 않는 심장을 부여 잡았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 이었다. 그런데 저 자살한 김모군이랑 권영민이랑 무슨상관이라는 것인가. 정말 이해할수 없는 내용이 지현은 참지 못하고 결국 윤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전화하지 말랬잖아. ' " 야 넌 이거 보고 전화 안걸게 생겼어 ? 너 이거 무슨내용이야. 저 s대 김모군은 누구고 그게 권영민이랑 무슨 상관이라는거야 ? " ' ........... 감이 너무 떨어지네 백지현. 니가 부탁해서 김성민에 대해 알아봤어. 신화대학교 재학생 중 또래친구들 중에 김성민은 딱 한명이었어. 그것도 사망자. 김성민이라는 친구는 이미 죽은 친구야. 누군가 수정이라는 친구에게 죽은 김성민의 신분을 도용해서 의도적으로 접근한거같아. ' " 뭐라고? 그럼 그 김성민이 진짜 김성민이 아니라는거야? " ' 사진을 봐야 더 정확하게 알겠지만 저 기사에서 말한 자살한 학생은 김성민이라는 사람이 확실해. 수상한거는 ...... 권영민이랑 죽은 김성민의 공통점이 있어. ' " 그...그게 뭔데 ? " ' 놀라지마. 권영민과 김성민은 같은 고아원에서 자랐어. 권영민과 김성민은 나이차이가 있지만 둘이 들어온 시기가 비슷해. 그래서 기록상으로는 둘이 아마 알고 지냈을 가능성이 높아. ' " 그 고아원이 어딘데? " ' ....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야. 둘은 마음의 집이라는 고아원에서 자랐어. 마음의 집은...... 한일 기업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이야. 그리고...... 니가 찾던 그 새마음 요양원이 폐쇄된 시기랑 마음의 집이 설립된 시기가 맞물려.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권영민과 김성민이 입소했어. ' " 그럼 김성민이 진짜 자살했다는거야? 그럼 계약한 김성민은 대체 누구란거야? " ' 그건 모르겠어. 일단 김성민이 찍힌 cctv사본을 찾아서 나한테 좀 보내줘. 확실한건 진짜 김성민은 수정씨가 입학하기도 전에 자살했어. 그런데 방학기간에 벌어진 사건이라 학교에서도 쉬쉬하고 그래서 소문이 퍼지지도 않고 쏙 들어간 모양이야. 들리는 소문으로는 같이 기숙사 생활을 했던 친구들에게 교수 추천서까지 들이밀면서 입을 막았단 얘기도 있어.. 그리고 ... 이건 추측인데 말야. ' " 또 뭐 !! 이거보다 더 쇼킹한 내용 있는거야? " ' 이건 정말 추측인데........ 그 죽은 김성민이 종교에 미쳤었던거 같아. 정확히 말하면 정신질환때문에 자살한게 아니라 종교때문에 자살했다는 얘기가 있어. 내가 그 친구 찾으려고 같이 일하는 기자랑 조사를 좀 했는데... 그 기자가 사실 아마추어 해커 거든. 학교 커뮤니티 비공개글 몇개를 뒤진 모양이야. 거기서 같이 기숙사를 썼던 애들이 익명으로 글을 몇개 올린거 같던데 죽은 김성민이 원래도 좀 정상은 아니였나봐. 항상 혼이 어쩌고 그러고 구름모양이 그려진 책을 읽고 자살을 하면 그곳에 도달할수 있다며 헛소리를 좀 했대. 그래서 과 내에서도 왕따여서 존재감이 없었나봐. 그 친구들 말로는 종교쟁이였다고 하던데 중요한건 그 종교가 이상한게... 자살을 하면 천국도 지옥도 아닌 제3의 세계로 도달할수 있고 그곳에는 하나님 부처님도 아닌 또다른 신이 존재한다고 했대. 그 신이 자살을 한 영혼들을 구원한다나 뭐어쩐다나.. 나도 자세한 내용은 더 알아봐야해 . 아마 그 종교 이름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종교에 빠지긴 한거같어 . ' " 아 머리아파. 그러니까 죽은 김성민이랑 권영민이 한 고아원에서 자랐고 김성민은 종교에 미쳐있었고, 또 어떤 미친놈은 죽은 김성민의 신분을 도용했고, 권영민의 아빠는 진짜가 아니고 뭐 그렇다는 거야? " ' 맞아.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둘의 공통점은 그게 다야... 혹시 몰라서 그 고아원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겠어. 왠지 기분이 편하지 않아 . 그리고 너친구한테 물어봐서 수정씨가 살았었던 기숙사 호실이나 뭐 같이 있던 룸메이트 이름이나 그런거 알아봐줘. 커뮤니티 뒤진김에 수정씨 내용도 좀 알아볼게. 아마 김성민 도용한놈이 수정씨에게 접근한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야. ' " 하... 알겠어. 수연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 ' 일단 둘이 꼭 몸조심해. 권영민이 아무래도 한일기업 재단이랑 관련이 있기는 한거 같어. 그리고 지현아..... 우리가 정말 너무 깊이 발을 들인거라면 넌 꼭 도망쳐라. ' " 개소리하지마. 우리는 지금 완전 코꿰였어. 못도망간다고. 이 판 뒤집을수 있는 방법 찾는수밖에 없어. " 실없이 풋 하고 웃는 윤기자의 목소리가 어쩐지 서글프게 들렸다. 아마 그도 느낄것이다. 조금씩 깊은 늪에 발을 빠진것 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을 말이다. 어쩌면 누군가 둘의 방을 뒤집었을때 그때 멈췄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현은 확신이 생겼다. 수정이는 단순 실종이 아닌 납치실종일수 있음을 말이다. 샤워를 마친 수연이 놀라서 미동도 없는 지현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 지현아 괜찮아? " 미소로 반기는 수연의 얼굴을 마주하자 지현은 머쓱하게 웃어보이더니 이내 숨을 고르며 진정했다. " 수연아. 영민씨가 내일 광고때문에 회사에 들어가봐야한다고... 우리끼리만 일단 취재 다녀오래. 이번이 오히려 기회인거 같아. 우리가 영민씨 없을때 관리소장도 다시만나보고 그 렌터카 한번 따보자. " " 그래?? 그러자 그럼. 렌터카에 그래도 단서가 있지 않겠어? " " 그리고... 수연아 . 너 그 핸드폰 받았을때 말야. 혹시 그날 뭐 기억나는거 없어? 그러고보니 니가 그 핸드폰을 어떻게 받게됐는지 그게 중요할수도 있잖아. " 물을 마시며 침대에 기대어 앉은 수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몇초간에 침묵이 흐르고 수연은 생각을 하는듯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 그날... 모든게 평범했어. 솔직히 나조차도 기억에서 잊었던거같아. 그 안에 들어있던 동영상만 신경쓰다 보니 그날이 어땠는지 이제서야 생각해보네. 안그래도 수정이가 연락이 안된다는 전화가왔어서 찜찜했던 참이였어. 잠도 설치고 아침에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택배가 와있던거야. 그런데 그 택배가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좀 특이했어. 택배에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거든. 택배에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 언뜻 보기엔 ... 모양이 좀........... 구름모양 그려놓은거 같았어. "
아오이가든
'아오이가든' / 편혜영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서 도대체 어떤 리뷰를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만큼 지금까지 접해본 적 없는 새로운 책이었고 한편으로는 놀라기도 했다. 기이하다고 해야 할까. 편혜영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그곳에서는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오이가든'은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9편의 소설이 가진 공통점은 그로테스크하고 고어한 묘사다. 끔찍하고 잔인한 것들을 가감 없이 그려내는 묘사. 퀴퀴하고 구역질 나는 냄새가 코 밑을 스치는 듯하고 등 뒤에서 찐득거리는 검은 피가 천천히 뚝뚝 떨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생생한 문장들이 펼쳐진다. 노약자라면 읽기를 권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글로, 문장으로, 단어로, 마치 눈앞에서 썩어가는 시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고 오래되어 부패한 검은 피의 비릿한 오염된 냄새가 코 밑을 스치게 만든다. 구더기들이 내 귓구멍과 팔다리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게 만들고 물에 젖어 퉁퉁 부은, 형체를 구분하기 힘든 시체의 초점 없는 눈이 나를 바라보게 만든다. 이런 작품, 이런 글은 처음이었다. 그 기괴함에서 오는 묘한 매력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도록 나를 끌고 다녔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에는 큰 서사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이미지들을 연결하기 위해서 서사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일만큼 묘사와 이미지가 이 책의 중심을 관통한다. 긴 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게다가 그 서사조차도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며 독자를 유린한다. 망자가 살아나기도 하고, 현실로 믿었던 것들이 모두 환상으로 드러나기도 하며, 환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끔찍한 현실이었다는 게 밝혀지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끝없는 유린과 기만, 그 마술적인 환상의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시체와 피와 구더기와 부패 속에 잠식되어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어느 순간 그 어둠 속에 있던 존재들이 내 옆으로 다가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로테스크한 환상과 고어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 소설의 의미는. 그건 바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고찰이다. 인간의 생명은 얼마나 소중한가, 인간의 생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해 이 '아오이가든'은 흔히 말하는 것들과 정반대의 답을 내놓는다. 인간의 삶이란 의미 없는 것이며 한낱 구더기와 다름없는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라고.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인간의 삶과 죽음은 같은 인간인 우리가 보기에는 한없이 끔찍하다. 썩은 물고기 눈알을 빨아먹고, 쥐의 똥을 입에 집어넣고, 검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한참 부패된 시체는 구더기가 들끓고, 토막 난 팔과 다리는 물에 퉁퉁 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 끔찍함은 인간인 우리에게만 와 닿는다. 인간의 시체는 육식동물에게는 맛있는 한 끼 식사일 뿐이고 부패한 살점은 구더기의 만찬이다. 물에 퉁퉁 불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팔과 다리는 물고기를 살찌운다. 어린아이들이 날개가 떨어진 잠자리의 파닥 거림을 보고 즐거워하듯이 이 소설은 인간을 그저 살아있는 생명체, 하나의 곤충과 다를 바 없이 묘사하고 그렇기에 이토록 상세하게 죽음과 썩어감과 시체의 냄새와 비린내를 풍기는 검붉은 피를 서술한다. 담담하게, 마치 인간을 내려다보며 즐거워하는 외계인처럼. 인간은 그 어떤 생명체와도 다를 바 없다. 그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존재일 뿐이다. 아프리카의 초원에 죽어 있는 하이에나의 시체에도, 어느 방에서 고독사 한 노인의 시체에도 같은 파리가, 같은 구더기가 들끓는다. '아오이가든'은 인간은 특별하고 존엄하다는 생각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구역질 날 정도로 생생한 묘사를 통해 철저하게 짓밟는다. 인간의 죽음은 시궁창에서 굶주린 쥐가 죽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이 소설집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생명의 무게는 모두 똑같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는 인간의 특별함을 믿는다. '아오이가든'은 그 믿음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아. 인간도, 시궁쥐도, 바퀴벌레도, 구더기도, 죽으면 퀴퀴하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무기물일 뿐이야. 소설 속 한 문장 벽에 박혀 불타고 있는 C는 눈동자가 빠진 하얀 눈으로 내가 흘린 내장들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실화) 고문관
안녕하세요! 반나절도 되지 않았지만 다시 돌아온 optimic입니다! 이렇게 하루에 두 번이나 글을 올리게 된 건. 제가 대학교에서 졸업하기 전에 연습용으로 썼던 단편 시나리오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같이 훈련소에 있었던 옆 생활관 동기가 들려 준 이야기를, 제가 시나리오 형식으로 옮겨 적었던 건데요. 노트북에서 오랜만에 보게 되어서, 여기에도 올리면 나름 신선하지 않을까 해서 올려봐요! 평소 제가 쓰던 방식이 아닌, 드라마, 영화 등의 대본과도 같은 방식이기 때문에, 혹시나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고문관 -나레이션 : 이 이야기는 군 복무 시절 겪었던 이야기다. 점심시간.) ‘정병 육성’이라고 씌어진 빨갛고 검은 모자를 눌러 쓴 머리가 보인다. 조교 : 빨리 빨리 안 움직이나! -나레이션 : 당시 나는 훈련병이었고... 훈련병들. 급하게 생활관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성열. 그 무리 중간에서 미처 다 신지 못한 한쪽 전투화를 구겨신고 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점심시간.) 생활관 현관 앞. 약 20여명의 훈련병들. 오와 열을 맞춰 2열종대로 집합해 있다. 맨 뒤에 서 있는 성열. 성열의 옆자리만 비어 있다. 그 앞에서 허리춤에 두 팔을 올린 채 훈련병들을 마주보고 화난 표정으로 서 있는 조교. -나레이션 : 내 전우조는 고문관이었다. 지환. 엉거주춤한 자세로 헥헥거리며 훈련병들을 향해 뛰어오는 뒷모습. 전투복 윗단추는 풀려 있고, 고무링도 미처 채우지 못한 모습이다. 지환. 성열의 옆에 서서 헥헥거리며 눈치를 본다. 조교. 지환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조교 : 김지환. 김지환 : 62번 훈련병 김 지 환! 조교. 한숨을 내쉬며 지환에게 삿대질을 한다. 조교 : 야. 구라치고 뺑끼 칠거면 적어도 열심히는 해라. 지환. 빳빳하게 차렷한 자세. 조금 분한 듯한 표정이다. 지환 : (큰 소리로) 죄송합니다! 조교. 빠른 걸음으로 훈련병들을 지나쳐 걸어간다. 2열종대로 서 있는 훈련병들. 여전히 굳은 자세로 차렷. 조교 : (훈련병들을 지나쳐 가면서 쳐다보지도 않고) 밥 먹으러 가라. 조교. 지환의 옆을 지나갈 때 지환을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게 한 마디 한다. 조교 : 씨발. 구라쟁이 새끼. 취사장.) 훈련병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식판을 앞에 두고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할 때도 경직된 채 한 손으로만 포크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는 모습. 그 사이에서 나란히 식판을 두고 앉아있는 성열과 지환. 맛있게 밥을 먹는 성열과는 달리, 지환은 여전히 분한 표정으로 힘없이 밥을 푼 숟가락을 들고 있다. -나레이션 : 지환이가 처음부터 고문관이었던 건 아니었다. 오후 2시. 신병교육대 행정반. ) 소대장이 다리를 꼬고 의자에 몸을 약간 뉘인 채로 앉아 있다. 무언가 거슬리는지, 짜증이 올라온 표정. 한 손에는 생활기록부를 들고, 한 손은 찌푸려진 미간을 누르고 있다. 책상을 두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지환. 긴장한 표정으로 허리를 편 채 앉아있다. 소대장 : 김지환. 이거 사실대로 쓴 거 맞아? 지환. 허리를 꼿꼿하게 피며 대답한다. 지환 : 네! 그렇습니다! 소대장. 더욱 찌푸려진 미간을 쓰다듬으며 지환에게 말한다. 지환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생활기록부만 보고 있다. 소대장 : 엄마가 무당이고, 너는 귀신을 본다고? 지환 : 네! 맞습니다! 소대장. 생활기록부를 소리 나게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지환을 노려본다. 소대장 : 야. 씨발 내가 너 같은 놈들 한두 명 보는 줄 알아? 지환. 움찔 하며 놀란 표정으로 소대장을 똑바로 쳐다본다. 소대장. 눈을 부라리며 지환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혐오감이 섞인 표정과 위압적인 행동. 소대장 : 군대는 존나게 가기 싫고, 뺑끼 칠 만한 건 없고, 만만한게 귀신이지. 존나 지랄하고 있네. 지환 : 아닙니다! 전 진짜..! 소대장. 지환의 말을 자르며 소리친다. 소대장 : 아가리 안 닥쳐!? 소대장. 지환의 앞으로 마주보며 선다. 앉아있는 지환을 앞에서 서서 내려다보는 소대장. 팔을 허리에 얹고, 위협적인 기세를 풍긴다. 소대장 : 너 이새끼야. 넌 나한테 찍혔어. 어디 한번 보자. -나레이션 : 그 때부터 지환이는 모든 조교들의 집중 감시를 받았다. 지환. 앉은 채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다. 억울하고 분한 표정으로 몸을 살짝 떤다. -나레이션 : 나는 그 때 알았다. 저녁. 점호시간.) 훈련병 생활관. 20여명의 훈련병들이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있다. 성열과 지환. 다른 훈련병들과 마찬가지로 앉아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나레이션 : 군대에서도, 아니 군대가 사회보다 남의 시선이 훨씬 무섭다는 것을. 지환을 제외한 모든 훈련병들이 까맣게 변한다. 암흑천지의 사방에 박힌 수 많은 눈들만 커다랗게 뜨인 채로, 모든 눈동자가 지환을 노려보고 있다. 저녁 점호시간. 생활관. ) 당직사관 완장을 팔에 찬 소대장이 문 앞에 짝다리를 짚고 서 있고, 훈련병들은 부동자세로 앉아 있다. 소대장 : 아픈 사람 없지? 훈련병들 : 없습니다! 소대장. 앉아 있는 재환을 힐끔 쳐다보며 말한다.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비웃고 멸시하는 표정. 소대장 : 귀신 보이는 사람 없지? 훈련병들. 재환을 쳐다보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비웃는 듯한 표정들과 피식거리며 웃는 훈련병들. 그 사이에서 걱정스러운 듯 재환을 곁눈질하는 성열의 모습도 보인다. 훈련병들 : 없습니다! 소대장. 여전히 비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로 몸을 돌린다. 등 뒤로 나지막히 들리는 지환의 목소리. 소대장 : 그럼 이상. 지환 : ...보여드리겠습니다. 소대장. 나가려다 멈칫하고 고개만 까딱 돌려 지환을 쳐다본다. 소대원들. 어이없다는 듯 지환을 쳐다본다. 소대장 : 뭐라고? 지환. 눈에 독기가 가득 찬 얼굴로 앉은 자세 그대로 소대장을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잘근잘근 씹어뱉는 듯한 느낌으로 말한다. 지환 : 소대장님께서 못 믿으시는 그거...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소대장. 지환의 눈을 본다. (지환의 얼굴 클로즈업. 마치 귀신같이 한기가 서린 눈.) 흠칫하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고 빠르게 나간다. 소대장 : 미X놈. 늦은 밤. 불 꺼진 생활관.) 훈련병들. 모포를 덮고 단잠에 빠져 있다. 생활관 문 앞에 단독군장을 한 채 불침번 근무를 서는 성열. 생활관 맨 안쪽에는 굳은 표정의 지환이 단독군장을 하고 서 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환을 바라보는 성열. 굳은 표정으로 자꾸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는 지환. 성열 : (혼자 생각한다) 지환이.. 괜찮을까... 여전히 지환은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두리번거리고, 성열은 지환을 바라보며 눈이 살짝 풀린 채로 서 있다. 성열 : (혼자 생각) 아... 졸리다... 눕고 싶다... 순간. 반쯤 감긴 성열의 눈에 보이는 생활관 모습. 머리를 풀어헤치고 얼굴이 일그러진 채 상체만 남아 생활관 공중을 떠도는 귀신 몇몇이 지환의 주변을 돌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성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다. 정면에는 아까와 똑같이. 그러나 시야에 지환이 없다. 시선을 밑으로 내리자 웅크린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귀를 막고 있는 지환의 모습이 보인다.. 성열. 오싹한 느낌에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다. 그 때. 생활관에서 들리는 소대장의 비명에 고개를 돌린다. 소대장 : 으..으아! 뭐야! 생활관에서 보이는 행정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고, 소대장이 놀란 표정으로 허겁지겁 성열을 향해 뛰어온다. 소대장. 생활관 앞으로 와 놀란 표정으로 성열을 향해 소리친다. 소대장 : 방금 뭐야! 누가 소리 질렀어! 성열 : (당황한 듯한 표정) 어떤 소리 말씀이십니까? 소대장. 인상을 찌푸리고 성열을 다그친다. 소대장 : 행정반까지 그렇게 크게 여자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못 들었다고? 성열. 겁에 질린 표정으로 굳은 채 소대장을 향해 되묻는다. 성열 : ...‘여자’ 비명 말씀이십니까..? 소대장. 성열의 말을 듣고 표정이 굳은 채, 겁에 질린 듯 몸을 살짝 떤다. 그리고 뭐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서서히 돌려 생활관 안을 쳐다본다. 소대장의 눈에 보이는 생활관. 곤하게 자고 있는 훈련병들. 그 가운데 복도에서 어느 새 일어선 채로 묘하게 미소를 지은 채 서 있는 지환. 지환. 서서히 귀를 막았던 양 손을 내린다. 비명이 들렸다기엔 너무나 적막한 생활관. 소대장 : (넋이 나간 듯 생활관을 보며 중얼거린다.) 그렇게 큰 비명이 들렸는데, 아무도 안 깼다고...? 겁에 질린 소대장의 얼굴. 혼자 서 있는 지환과 눈이 마주친다. 서 있는 채 오싹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환의 주변으로, 아까 성열이 본 귀신들이 소대장의 눈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생활관 전체에 곳곳에서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귀신들. 머리가 반쯤 깨진 채 군복을 입은 남자, 눈코입에서 피를 흘리며 웃는 여자, 온 몸에 포탄이 박혀 고통스럽게 몸을 뒤트는 여자... 모두가 잠들어 있는 훈련병의 귀를 막은 채. “꺄아아아아악” 하는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는 소대장의 뒤엔, 주저앉은 채 떨고 있는 성열의 모습. 소대장 :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이...이게 대체 무슨... 공포에 질린 채 서 있는 소대장의 어깨를 뒤에서 감싸는 창백하고 마른 손. 오싹한 느낌에 서서히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소대장. 피범벅이 된 채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구멍만 있는 여자 귀신이 입을 찢어져라 크게 벌리며 “끼야아아악” 소리를 지른다. 소대장 : 끄아아아악!! 소대장. 눈을 까뒤집으며 뒤로 넘어간다. 바닥에 쓰러지는 소대장. 성열. 덜덜 떨면서 구석에서 겨우 고개를 든다. 소대장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지환. 지환. 소대장 앞에 싸늘한 표정과 점호시간에 보였던 독기어린 눈을 하고 서 있다. 지환 : (소대장을 보면서 표정의 변화 없이, 나지막하게) 내가 보여준다고 했잖아. -나레이션 : 며칠 후, 소대장은 국군병원으로 옮겨졌다. 소대장. 공포에 떨며 미친 사람처럼 휴지를 찢고 뭉쳐서 귀에 쑤셔넣는다. 귀 주변은 상처투성이. 소대장의 자리에는 피가 묻은 채 뭉쳐진, 귀에 넣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휴지뭉치들이 사방에 버려져 있다. -나레이션 : 소대장이 이송된 후, 지환이도 훈련소에서 나갔다. 지환. 군용 더블백을 맨 채로 생활관 문 앞을 나가는 뒷모습. 지환. 나가려다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생활관 내부를 바라본다. 소대원들은 살짝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지환의 시선을 회피한다. 성열. 어색한 표정으로 지환의 눈을 피한다. -나레이션 : 그 후로 소대장과 지환의 소식은 알 수 없었고, 나는 별 일 없이 군생활을 마친 후 전역을 했다. 성열. 자리에 앉아 있다 책상 위의 노트북을 덮으며 일어난다. -나레이션 : 이젠 지난 일이지만... 다시 없을 기이한 경험이었다. 성열. 불이 꺼져 어두운 방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잠이 든 성열의 바스트 샷 클로즈업. 잠이 든 성열의 두 귀를 어둠 속에서 창백하고 마른 두 손이 나타나 감싼다. ---------------------- 실제로 저희 훈련소에서 한 명이 저렇게 나갔었고, 그 친구와 같은 생활관이었던 저희 동기가 해준 이야기여서 저는 막상 쓸 때는 정말 재밌게 썼고, 오싹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글을 올리기 전에 다시 읽어볼 때는 뭔가 재미가 부족한 거 같고, 별로 안 무서운 거 같고 그러네요...하하..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 감사합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다음 편을 더 빨리 불러옵니다...:)
[책추천]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한국 단편 소설집 5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플라이북 회원들과 함께 만드는 책 추천 콘텐츠! 오늘은 부담 없이 짧은 시간 동안 읽을 수 있지만 긴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한국 단편 소설집 5권을 추천합니다! 01. 바깥은 여름 김애란 | 문학동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등 주요 작품들을 낸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 7편이 담긴 책인데 문장들이 정말 좋아요!" - h********님의 추천 도서 02.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 문학동네 "첫 작품 <쇼코의 미소>로 독자들과 문학계의 큰 사랑을 받은 최은영 작가의 두 번째 단편 소설집으로 다소 묵직하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 시*님의 추천 도서 03. 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 창비 "상상력이 기발한 정세랑 작가의 단편들이 담긴 소설책으로 결혼과 이혼, 뱀파이어, 돌연사 등 다양한 소재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어요." - 시*님의 추천 도서 04.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 문학과지성사 "<달콤한 나의 도시>로 기억되는 정이현 작가의 초창기 단편집으로 가볍고 재치있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단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C**님의 추천 도서 05. 파인 다이닝 노희준 외 6명 | 은행나무 "7명의 작가들이 각양각색의 개성있는 음식 이야기를 다룬 테마 소설집으로 제목이 곧 소설의 소재가 되었던 책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 추천드려요." - 황**님의 추천 도서 더 많은 소설을 추천 받고 싶다면- >> http://bit.ly/2WEcqUy
설(창작 단편)
한 노인이 툇마루에 앉아 털신에 발을 집어넣는다. 오래되어 겉이 반질반질하다.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두 발을 신에 집어넣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마당에 선 노인은 무릎이 시린지 손을 무릎에 대고는 가만히 서 있다. 입에서는 오메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무릎에서 손을 뗀 노인은 구부정한 허리에 한 손을 대고 걸음을 옮긴다. 산책을 나가는 건가 싶어 아까부터 안절부절 못하던 마당의 하얀 똥개 한 마리가 결국 웡웡 짖어 대기 시작한다. 노인이 다가가니 똥개가 배를 드러내고 드러눕는다. 노인이 헥헥대며 꼬리를 흔드는 개의 배를 긁는다. “복실아. 오늘은 이 할미가 무릎이 아픈께 산책은 나중에 가자잉.” 노인이 손을 떼고 일어나 대문으로 향한다. 말을 알아들었는지 복실이는 짖는 걸 멈추고 조용히 낑낑댄다. 노인이 나가고 파란 철문이 철컹 소리를 내며 닫힌다. 철문을 나선 노인이 논두렁을 따라 걷는다. 중간중간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쉬어가며 2~30분쯤 걸었을까, 저 앞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 노인은 아이고 소리를 내며 파란색 페인트가 다 벗겨진 의자에 앉는다. 추운 날씨에 노인의 귀가 빨갛다. 의자에 앉아서도 노인은 연신 무릎을 두드린다. 한참 무릎을 만지작거리며 추위를 견디던 노인의 귀에 버스 엔진소리가 들린다. 노인은 목도리를 고쳐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목 같은 손을 흔든다. 버스가 노인의 앞에 멈추고 문을 열자 노인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른다. 노인이 올라서기 무섭게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가 시장 앞에 서고 문이 열리자 노인이 천천히 내려선다.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 버스를 뒤로 하고 노인은 시장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설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근처에 생긴 마트 때문인지 사람이 별로 없다. 노인이 한 옷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뽀글거리는 파마를 한 아줌마가 노인을 맞는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어떤 거 사러 오셨어?” 노인이 가게를 휘휘 둘러보더니 한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쩌그 있네. 내복 사러 왔는디 요즘 애기들은 어떤 걸 좋아한당가?” “애기가 몇살인디?” 아줌마의 말에 노인의 얼굴에 주름진 미소가 번진다. “손주가 7살이고 손녀가 5살이여. 지 애비랑 애미 똑 닮아가지고 을매나 잘생기고 이쁜디. 게다가 우리 변호사 아들 내미 머리를 물려받아갖고 머리들이 비상혀.” “오메, 아들이 변호사여? 부러워 죽겄네. 우리 아들은 스물 여덟이나 먹었는디 아직도 백수여, 백수.” 한숨을 내쉬며 내복들을 뒤적거리던 아줌마의 손에 파란색과 분홍색 내복이 들려 올라온다. “요즘 애기들이 제일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그려진 내복이여. 5살, 7살이면 이게 좋을 것 같은디?” “박스 열어봐도 된당가?”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박스를 열고 꼼꼼하게 내복을 살핀다. 바느질이 성긴지, 천은 좋은 걸 썼는지, 색은 빠지지 않을지. 한참 내복을 만지작거리던 노인이 박스를 닫고 건넨다. “이걸로 줘. 얼마여?” 아줌마가 능숙하게 박스를 포장한다. “원래 이만원씩인디 그냥 두 개에 삼만 오천원만 줘요. 포장도 해줄게.” 노인이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만원 짜리 세 장을 꺼낸다. “삼만원 밖에 없는디 좀만 깎아줘. 다음에 또 팔아줄텐께.” “아이고, 안돼요 어머니. 삼만 오천원도 엄청 깎은 거에요. 남는 것도 없어.” 한참을 실랑이하더니 결국 삼만 이천원에 합의를 본다. 꼬깃꼬깃 접혀 있는 천원 짜리 두 장을 주머니에서 꺼낸 노인이 삼만원과 합쳐 지폐 다섯장을 건넨다. “어머니 다음에 꼭 오셔서 더 팔아줘야 돼요. 진짜 내가 손해 보면서 드린거야.” 노인이 내복이 담긴 봉지를 받아 들며 말한다. “걱정하덜 말어. 이번 설에 아들 내미랑 손주들 오면 꼭 데리고 올텐께.” 노인이 두 손에 묵직한 비닐을 든 채 파란 철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다. 엎드려 있던 복실이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노인의 뒤를 따른다. 툇마루에 비닐 봉지 두 개를 올려놓은 노인이 오메오메 소리를 내며 허리와 무릎을 연신 두드린다. 얼핏 보이는 비닐 봉지 안에는 곶감과 과자, 내복 등 여러 가지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 시간이 지나 허리와 무릎에서 손을 뗀 노인이 비닐 봉지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주방으로 들어간 노인은 과일과 과자, 곶감들을 냉장고와 찬장에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빈 비닐 봉지를 주방 한 구석 비닐 봉지가 가득 들어 있는 박스 안에 구겨 넣는다. 정리를 끝낸 노인의 귓가에 따르릉 거리는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노인은 내복 두 개를 들고 안방으로 향한다. 노인은 들고 온 내복 두 개를 펴져 있는 이부자리 위에 조심히 올려 놓고 유선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 든다. “여보세요.” 노인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오메, 둘째냐. 잘 있냐잉?” 수화기 너머로 “잘 지내시죠 어머니”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얼핏 들린다. 노인이 다시 입을 연다. “그래 잘 있제. 너가 이번 설에 손주들이랑 며느리랑 내려온다고 해서 니 좋아하는 곶감이랑 애기들 선물도 다 사놨다. 니 형은 이번에 일이 바빠서 못 오고. 근디 언제쯤 내려오냐? 미리 방도 좀 뎁혀 놓고 해야된께.” 수화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린다. 꽤 길게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이 대뜸 말한다. “괜찮은께 걱정 말어. 못 올수도 있제. 변호사가 오죽 바쁘겄냐. 다음에 보면 된께 엄마 걱정은 하덜 말고 일 열심히 혀. 니가 잘되는 것이 엄마한테 효도하는 것이여.” 노인이 입을 다문다. 가만히 있던 노인이 다시 입을 연다. “그려. 일 잘하고 항시 몸 건강하고. 다음에 시간 되면 내려오그라잉.” 노인의 얼굴에 피어났던 꽃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시들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노인은 몸을 일으켜 이부자리 위에 있는 내복 두 개를 집어 든다. 자개로 된 옷장 문을 열자 한 구석에 무언가 쌓여있다. 어린이들이 입을 법한, 캐릭터들이 그려진 내복 박스 여러 개가 먼지가 쌓인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인은 쭈글쭈글한 손으로 위에 쌓인 먼지를 슥슥 쓸어내고 그 위에 새로 산 내복 두 개를 올려놓는다. 노인은 옷장 문을 잡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내복들을 바라본다. 늙은 고목처럼 구부정한 모습으로 쌓인 내복들을 응시하던 노인이 천천히 옷장 문을 닫는다. 노인이 툇마루에 나와 앉는다. 앉아 있는 노인의 옆으로 복실이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풀쩍 뛰어올라 노인에게 몸을 기대고 눕는다. 노인은 마디가 불거진 마른 손을 들어 복실이의 하얀 털을 쓰다듬는다. 가만히 앉아서. 하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