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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답
제목을 "정신승리가 진정한 승리다"로 바꾸면 더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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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고 발버둥거리는 소를 '재미'로 죽인다
최근, 27세의 투우사 곤살로 카발레로 씨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투우 쇼 도중 소뿔에 받혀 크게 다쳤습니다. 카발레로 씨는 칼을 황소의 목뒤로 깊게 그었지만, 황소는 많은 양의 피를 흘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카발레로 씨를 들이받은 후 하늘로 날려버렸습니다.  그러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황소는 바닥에 떨어진 카발레로 씨를 재차 다시 들이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그의 대퇴정맥이 절단 됐습니다. 사고 순간 그를 촬영한 사진에는 선혈이 낭자하게 튀는 장면까지 찍혀있어서 부상의 정도가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들것에 실려 가는 와중에도 직접 상처를 눌러 출혈을 막아야야 했으며, 치료실에서 2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은 후에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모두가 투우사만을 걱정하며 쾌유를 빌 때, PETA는 '매년 7,000마리의 황소가 스페인 투우장에서 죽임을 당하고 있다'라며 비윤리적인 스페인의 전통을 강력하게 비난했습니다. '장난으로 소를 죽이는 쇼'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 PETA는 이 '잔혹한 전통'을 막으려면 스페인을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투우 경기를 보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관계자들은 소들을 보다 공격적인 상태로 만들기 위해, 발로 차고 칼로 몸을 찌르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줍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인간들에게 적개심을 갖게 한 뒤 경기장에 풀어놓는 거죠. 투우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달려드는 소를 가지고 놀다가 죽입니다." "이건 사라져야 할 일방적인 살육에 불과합니다. 제발 여러분들이 아 살육을 멈춰주세요!" P.S 20년 전, 제가 중학생이던 시절, 뭣 모르고 투우를 직접 본적이 있는데요. 정말 잔입합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잔인하다고 눈물을 흘리던 여성이 어느새 환호하면서 즐기던 모습이었어요.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나혼산 허지웅편 보고 많은 생각 든 염세주의자들.
개인적으로 허지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주 싫어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혈액암 투병을 하다가 완치 되어서 나혼자산다에 돌아온 허지웅의 모습이 굉장히 의외였음. 예전에 뾰족뾰족하던 염세주의자 느낌은 많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 둥글둥글해지고 많이 밝아지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였음.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싶다고 하고. 나도 바뀐 모습을 보고 굉장히 놀랐었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염세주의자들이 허지웅을 보고 놀란 것 같음ㅋㅋㅋㅋ 도움 받을 용기라.. 허지웅 방송분 암으로 투병할 때도 어머니나 동생 그 이외에 다른 친구들도 절대 오지 말라고 하고 거의 모든 과정을 혼자 감내했다고 함. + 허지웅이 2016년에 아버지와 자신에 대해 썼던 글. (스크롤 압박 주의.. 보고싶은 분만 보시길) 나를 '혼자'로 만드는 남자, 아버지 / 허지웅 살다보면,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3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베리 스위처 감독이 말했듯이 말이다. 아무튼 3루에 누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재수가 없어도 내버려둔다. 심지어 3루 말고는 어디도 가본 적이 없는 그를 향해 응원을 한다. 그가 홈으로 무사히 들어와 점수를 낼 수 있도록 편의와 우선권을 제공한다. 어찌됐든 그는 3루에 있으니 말이다. 마침내 기회가 온다. 평생 삼진 아니면 파울만 쳐대던 무명의 노력파 타자가 2루타를 쳐냈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인생에 허락된 단 한 번의 완벽한 안타다. 2루타를 쳐낸 무명의 타자는 아깝게 태그 아웃 당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점수만 만들어준다면 상관없다. 모두의 시선이 3루로 모인다. 지금이다! 뛰어! 점수를 내줘! 3루에서 태어나 평생 3루타를 친 것처럼 굴었던 자가 느지막하게 뛰기 시작한다. 그런데 조금 뛰는가 싶더니 도로 3루에 돌아와버린다. 다소간의 야유가 있었으나 3루에 주자가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냐는 집단 지성에 의해 소동은 금세 잦아든다. 경기가 끝난 후, 평생 단 한 번의 완벽한 2루타를 쳐낸 동료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묻는 기자를 향해 그가 말한다. “아프니까 이루타죠. 천번을 흔들리면 언젠가 그도 저처럼 삼루타를 칠 수 있지 않을까요.”(엄지 척) 이런 ‘우사인 볼트 기립근 염려해주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왔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내가 그런 사람들과 결과적으로 다른 게 뭔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한번은 아버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똥을 싸다가 문득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연락을 했다. 문자를 보냈고, 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버지와는 중학생 이후로 왕래가 없었다. 그날 아침 내가 왜 갑자기 찾아갈 생각을 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버지를 만나 대답을 들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 대답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도 잘 살아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원주는 추웠다. 아버지는 원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하고 있었다. 터미널 앞에서 만났다. 중학교 시절에 멈춰 있는 내 기억 속의 아버지 차는 언제까지나 하얀색 엑셀이었는데 다른 차를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만남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 둘 다 이런 종류의 만남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가 이 만남에 대해 내심 꽤 감동하고 있으며, 내게도 같은 종류의 감동이 전해지길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뜨거운 화해를 하러 거기 간 것이 아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사무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전공분야에 관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어색하고 거대한 구멍을 메우기 위한 용도였지만, 놀랍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반강제적 ‘독립심’에 발버둥치다 도움이 필요하다 말할 능력도 호의를 받아들일 능력도 잃었다 독선만 남은 건가, 너무 두렵다 군대를 전역한 뒤 돈이 없어서 복학을 하지 못하고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다가 탈진을 해서 쓰러진 날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고시원 앞에서 소주 두 병을 억지로 한꺼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정말 피가 났다. 도움을 구걸한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모멸감이 느껴졌다. 아버지 도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언제까지나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백기를 들고 전화를 한다는 게 끔찍했다. 그 와중에 소주는 알코올이니까 이 상처가 소독이 되어서 덧나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버지가 교수로 있는 대학교에서 자녀 학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나중에 전부 갚을 테니까 제발 등록금을 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월세와 생활비는 내가 벌 수 있다, 당장 등록금만 어떻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예상되는 상대의 답변이 있을 때 나는 그 답변을 듣기 싫어서 최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버릇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등록금도 갚고 효도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등록금과 효도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아버지가 대답을 했다. 그날 원주의 사무실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식을 부양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왜 등록금마저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후회하고 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 입에서 후회라는 단어를 목격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후회하고 있다, 는 말은 짧은 문장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왜 내가 아버지에게 미움 받아야 하는지였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학교에서 공짜로 나오는 학비 지원금마저 주고 싶지 않을 만큼 미웠는지 하는 것 따위 말이다.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나는 반평생 슬프고 창피했다. 그래서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남의 눈치 보면 지는 거라고 위악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쿨병’이니 뭐니 안 좋은 말이 쌓여갔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남에게 결코, 다시는 꼴사납게 도움을 구걸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만 버텨 살아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후회하고 있다는 말로 내게는 충분했다. 삶이란 마음먹은 대로 안 되기 마련이다. 아버지도 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후회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후회하고 있다는 그 말에 나는 정말 태아처럼 안도했다. 아버지가 “그래도 니가 그렇게 어렵게 산 덕분에 독립심이 강한 어른이 되어서 혼자 힘으로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의 만남은 그걸로 끝이었다. 아버지를 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연락이 몇번 왔지만 받지 않았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자신도 어렸을 때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친구 같은 부모 자식 사이가 되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아, 자신이 원하는 어른으로 나이 먹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살다보면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3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내가 딱히 나은 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심지어 3루에서 태어난 것도 3루타를 친 것도 아닌데 ‘아무도 필요하지 않고 여태 누구 도움도 받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혼자 힘만으로 살 수 있다’ 자신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자신감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 와서야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어떤 면에선 아버지 말이 맞았다. 그게 누구 덕이든, 나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컸다.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멀쩡한 척 살아왔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혼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좋은 어른은커녕 이대로 그냥 독선적인 노인이 되어버릴까,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허지웅 작가 [출처] 나를 '혼자'로 만드는 남자, 아버지 / 허지웅|작성자 고콩이 (ㅊㅊ - 더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