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r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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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 인사했다. 유선상으로만 만났던 그녀는 나를 처음 보고는 키가 작으신 분일 줄 알았어요, 했다.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사실 내 키는 작은 것도 큰 것도 아니다. 그런데 키가 작을 것 같은 목소리와 말투라는 것이 있는 걸까. 걸걸한 목소리를 듣고 상대방의 키가 작다고 상상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내 목소리는 걸걸하지 않다. 목소리만을 들으며 상대방의 외모를 상상해보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다. 물론 나는 그녀의 외모를 사진을 통해 미리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알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신작 시집이 얼마 전에 나왔고, 나는 그녀의 시집을 편집한 사람이다. 그녀는 나와 시집 작업 진행을 하면서, 피드백하는 내내 매너를 잃지 않은 사람이다. 그녀와의 작업은 즐거웠던 편이다. 이와는 달리 어떤 시인은 시 안에 자신의 과오들을 반성하거나, 도덕적인 다짐들을 잔뜩 해놓고는, 정작 시집을 만드는 편집자에게는 무례하게 대하기도 한다. 또 어떤 시인들은 문인 모임을 진행하는 식당에서 온갖 고상함을 다 부리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식당 직원들을 하대한다. 한자리에 앉아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는 나중에 또 어딘가에서 잔뜩 반성하고 있을까? 시인과 생활인 사이의 괴리가 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람이란 무릇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을 할 줄 알아야겠지만, 반성은 차선의 행위이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보란 듯이 언행을 함부로 하고, 반성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게 무슨 반성일까. 그건 반성이라기보다는 ‘나는 쿨하게 반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라는 말로 자신을 포장하는 행위이고, 반성을 악용하는 일일 뿐이다. 반성할 일을 결코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의식은 좀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시인들치고 좋은 시 쓰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물론 시인은 성인군자가 아니다. 개차반의 성격을 가지고도 좋은 시를 쓰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앞뒤가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선한 사람은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악한 사람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모순 같지만, 앞에서 언급한 가식적인 사람들도 좋은 시를 쓸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기가 가식적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좋은 시를 쓸 수 없다고 본다. 그건 왜인지 지성과 감성이 모두 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좀 아팠는데, 엉터리 시인들을 잔뜩 험담하고 나니 머리가 더 아프다. 7월 근무 시작 이래, 이례적으로 시집 출간 문의가 쇄도해서, 정신없이 시집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정작 내 시집의 출간은 요원해 보인다. 첫 책을 내고 나면, 정말이지 한동안은 시에서 떠나 있고 싶다. 요즘은 시 쓰기에 대한 열정이 많이 줄었다. 다른 많은 것들을 생각하느라,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 탓에, 원고 계약이 자꾸 좌절되는 바람에 그렇겠지만, 또 일과 학업의 병행으로 다소 소진된 경향도 없지 않지만, 기계처럼 시를 쓰는 일이 어쩐지 요즘은 다 부질없다는 생각도 든다. 역시 시 쓰기란 습작생 시절이 가장 재밌다. 습작생도 아닌, 그렇다고 명함을 내밀만 한 시인도 아닌, ‘무명의 신인’이란 이토록 혹독한 위치다. 술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하고, 지속적인 독서를 하면 삶의 질이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지금은 전에 없이 신경증적이며, 스트레스에 취약해져 있다. 천성은 어쩔 수가 없구나, 생각한다. 사회 한복판에 던져져 있지만, 골방에 처박혀 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세계를 골방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이런 것이 죄다 슬픔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슬픔이라 이름 붙이기 난감한 감정이다. 마구 울다가 문득 ‘그런데 왜 내가 울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울음을 그친 채 어리둥절해 있는 기분이다. 잠을 자도 피곤하다. 작년에 한 잡지에 실은 좌담에서는 ‘소확행’을 묻는 질문에 그런 대답을 했다. “소확행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에겐 소행만 있을 뿐이지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결코 확실하지 않다. 그건 그냥, 이제는 잘 듣지 않는 진통제 같기도 하다. 삶에 너무 많은 내성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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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냉장고를 받기 위해 집에서 대기 중이다. 우리 집 냉장고는 물론 나보다는 어리지만, 꽤 나이가 있는 녀석이다. 손꼽아가며 계산해보니 그가 우리 집 한구석을 지키는 동안 정권이 여섯 번 바뀌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마어마한 시간인 것 같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작동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집이 4층인 터라 새 냉장고를 들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게 되었는데, 계단으로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며, 베란다를 통해 들어올 수밖에 없어, 베란다에서부터 거실까지의 통로를 트기 위해 짐들을 이래저래 정리하였다. 온갖 화초며, 잡동사니들을 보며, 참을 수 없는 아버지의 수집벽과 유물론적 세계관을 생각한다. 어느 날 오롯한 나의 공간에는 책상과 그 위에 올려진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의자뿐일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 잡동사니로 가득해 협소한 방에 모로 누워 “어느 날 오롯한 나의 공간에는 책상과 그 위에 올려진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의자뿐일 것이라고 했었는데…….”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잡동사니를 차곡차곡 쟁여두는 이런 유물론적인 글쓰기에 오래 의지하고 있지만, 요즘은 점점 이 글쓰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할 수 없는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하고 싶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뿐이라서. 소믈리에는 어떤 식으로 되는지, 문득 궁금해서 알아보다가, 나처럼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소믈리에가 될 수도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간을 전혀 보지 않고 요리하는 사람 같은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 소믈리에가 와인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와인 맛을 전혀 보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술을 다시 조금 마셔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필요에 의해 술을 마시는 건, 그러니까 소믈리에로서 와인 맛을 보는 건 술을 마신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소믈리에가 와인을 많이 마시는 사람인 건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을 생각하니, 작년 초에 있었던 와인파티에서 엄청나게 취했던 생각이 난다. 새 작업실을 얻은 친한 시인의 초대로 가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날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다툼은 나와는 무관한 그의 어떤 울분이 취기를 통해 튀어나온 것이 하필 내게로 향했던 것이고, 다음날 우리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짬뽕을 시켜 먹고, 그는 내게 이 중국집이 삼성 회장 이건희가 자주 시켜 먹는 집이라는 말도 했는데, 이건희가 미식가는 아니군, 하고 생각하며 짬뽕을 먹었던 생각이 나고, 그런 뒤에 우리는 또 함께 다른 방에서 낮잠을 청했는데, 하필 그가 나를 부르길래 가보니 그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그렇다면 조금 전에 아주 생생하게 지인의 목소리로 나를 부른 사람은 누구인가 생각하며, 꿈결에 들었다고 하기엔 그 음성이 너무나 크고 생생했다는 생각이 들어, 오싹해져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숙취로 인해서 오싹해지기조차 힘들었던 그 날을 회상하며,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과음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7월부터 일하기 시작한 우리 사무실의 대표는 공교롭게도 내가 술을 끊은 뒤에 일을 시작하는 바람에 내 음주 풍경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애주가인 그는 내가 술을 좀 마시기를 바라며, 요즘에는 아예 내가 술이라곤 마셔본 적이 없는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한다. 가령, 반주를 하며 청하를 시킨 그가, 청하는 술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어디서 약을 파는지 모르겠고, 물론 내 주량에 따르면 청하는 약한 술이 틀림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청하는 술이 아니라고 자꾸만 마셔보라고 권하는 그가 우습기까지 하다. 그는 술을 끊었다는 내 말을 무엇으로 들었는지 의심스럽고, 듣고도 들은 척하지 않으려는 그가 끈질기다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 그는 본인이 굉장한 주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 나는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제라도 꼭 큰 실수를 할 것만 같아 조마조마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하튼 그런 생각이 든다. 술을 끊고 나니 맨정신으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술주정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문학 감성 쏟아지는 역대 수능 필적감정란 문장
수능날 맞이 역대 수능 필적 감정란 문장 모음. 근데 문장들이 하나하나 참 예쁘다. 한국의 문학이란... 글의 맛. 필적감정란에 쓰는 문구는 희망찬 내용이나 긍정적인 내용을 위주로 갖고 오고 필적확인할 때 용이하게 겹받침이 들어가는 문장을 쓴다고 함ㅋㅋㅋㅋ +2019년의 필적감정란 문구는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윤동주, 서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정지용, 향수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윤동주, 소년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윤동주, 별 헤는 밤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정채봉, 첫마음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황동규, 즐거운 편지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 -정한모, 가을에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박정만, 작은 연가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문태준, 돌의 배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주요한, 청년이여 노래하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 -정지용, 향수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김영란, 바다로 가자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김남조, 편지 (ㅊㅊ - 여성시대)
잘 살자 어떤 땅에서든
지난 주말 형의 결혼식이 있어 프랑스에 온 지 2주 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낯선 땅에 더구나 집도 아닌 숙소에 엠마를 혼자 두고 가는 일이 마음에 걸리고 티켓을 끊을 때만 해도 집을 구할지 어떨지 확신이 없어서 최대한 서울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였다. 금요일 밤에 사를 드골 공항에서 출발해서 토요일 밤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다시 월요일 새벽에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여 월요일 저녁에 사들 드골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미친 일정이었다. 그 덕에 나는 4일 동안 서 있는 시간보다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었고 근육이 약해진 때에 입주 청소까지 하느라 종아리 근육이 상해버렸다. 무엇이든 혼자서 애써 보는 게 우리 집안의 고집이고 그래서 뭐든 결국은 느리게 되어 버리는 형과 나는 서로 함께 사는 동안은 고장 난 시계를 걸고 살아 애타는 마음만은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형이 뒤늦게 갑작스레 결혼을 한다니 늦은 오후에 잠에서 깬 듯 기분이 이상했다. 높은 구두를 신고 ‘신랑 입장’을 하는 형의 모습을 아슬하게 바라보면서 사람이라는 포물선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저 바보처럼 떨어지고 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중력 안 있는 것들이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떨어지는 일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거였다. 사람이라는 평범한 신체 속에 우주 같은 마음을 담고 오르다가 결국은 떨어지면서 붙잡은 기록을 넘겨주고 가는 일인걸. 형은 애써왔고 나는 그래서 이제는 형이 떨어지면서 결정해가는 기록에 기꺼이 박수를 쳐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는 요즘 낯선 곳이라 그런지 밤마다 꿈을 자주 꾼다. 형의 결혼식을 위해 파리를 떠나기 전날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는 꿈을 꿨다. 아버지는 누군가의 집에서 값진 물건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들고 일어서다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별 다른 핑계도 둘러대지 못하고 그 값진 것을 제자리에 놓아두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바보 같았다며 분해하던 그는 이번엔 꼭 그 값진 것을 들고 나오겠다며 엄마와 형 나까지 데리고 그 집 앞으로 갔다. 나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지나가는 개와 고양이에게서도 시선을 피하며 반나절을 넘게 우리를 더 많이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마침내 그 값진 물건 앞에 서게 된 그는 꿈에서도 바보인지라 괜한 생각들을 이어가며 괴로워만 할 뿐이었다. 나와 형과 엄마는 더 주린 배를 안고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지만 그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무거운 자신의 생각들을 결코 죽이지 못했다. 우리는 결국 빈손을 얇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적당히씩 떨어진 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밤 등을 돌린 아버지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낯선 곳에서 잠이 깬 나는 온통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았다. 싫은 곳에 굳이 가고 싫은 일이라도 하려고 했었구나. 불쌍한 사람. 아버지의 싸움들. 자신의 우주와 굶주리는 욕심이 많은 우리들 사이에서 무엇하나 잘하지 못하며 휘청거렸던 그의 70년. 나는 이젠 그런 아버지의 등을 귀엽게 바라 봐주겠다. 자주 싫은 곳에 가고 자주 싫은 일을 하려 마음을 먹긴 했겠구나. 4일간의 일정이라 큰 가방도 없는데 굳이 리무진 버스를 태워주겠다며 엄마와 아빠가 함께 새벽 골목을 따라 내려오셨다. 버스가 올 시간이 되어가자 난 미리 인사를 하려고 아버지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버스가 오도록 그 손을 놓지 않으셨다. 따뜻하고 큰 손. 돌아가는 비행기, 잠도 오지 않아 죄와 벌을 읽다가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와 메모를 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라도 필요한 거니까요…….” 돌아갈 곳이 있어 나는 기꺼이 떨어지는 일을 기다린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싸움들을 피할 수는 없겠지.. 나는 때로는 엠마에게 어리광을 부린다. ‘대단한 예술가가 되려고 했었는데 나를 봐봐’라는 듯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부빈다. “하자.”라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을 놓는다. 끝까지 흔들릴 수라도 있길.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그 값진 것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 나는 정말 고맙다. 막내가 바보라고 놀리는 그의 지금 모습이 나는 고맙다. 붉게 빛나는 사를 드골 공항에 건조해진 비행기가 낙엽처럼 내렸다. 내내 먹통이던 핸드폰을 켜자 엠마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를 마중 나왔다는 것. 복잡한 공항 건물에서 헤매다가 마침내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만났다. 또한 내가 싫은 일을 하게끔 하는 곳도 함께 만났다. 생각보다는 감정으로 우리는 빠른 포옹을 나눴다. 돌아가는 기차는 지겹지가 않았다. 얼마가 아슬하게 고생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왔는지. 큰 얘기보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언제나 더 따뜻하고 맛있으니까. 잘 살자 어떤 땅에서든. W, M 레오 2019.11.06
아오이가든
'아오이가든' / 편혜영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서 도대체 어떤 리뷰를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만큼 지금까지 접해본 적 없는 새로운 책이었고 한편으로는 놀라기도 했다. 기이하다고 해야 할까. 편혜영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그곳에서는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오이가든'은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9편의 소설이 가진 공통점은 그로테스크하고 고어한 묘사다. 끔찍하고 잔인한 것들을 가감 없이 그려내는 묘사. 퀴퀴하고 구역질 나는 냄새가 코 밑을 스치는 듯하고 등 뒤에서 찐득거리는 검은 피가 천천히 뚝뚝 떨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생생한 문장들이 펼쳐진다. 노약자라면 읽기를 권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글로, 문장으로, 단어로, 마치 눈앞에서 썩어가는 시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고 오래되어 부패한 검은 피의 비릿한 오염된 냄새가 코 밑을 스치게 만든다. 구더기들이 내 귓구멍과 팔다리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게 만들고 물에 젖어 퉁퉁 부은, 형체를 구분하기 힘든 시체의 초점 없는 눈이 나를 바라보게 만든다. 이런 작품, 이런 글은 처음이었다. 그 기괴함에서 오는 묘한 매력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도록 나를 끌고 다녔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에는 큰 서사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이미지들을 연결하기 위해서 서사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일만큼 묘사와 이미지가 이 책의 중심을 관통한다. 긴 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게다가 그 서사조차도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며 독자를 유린한다. 망자가 살아나기도 하고, 현실로 믿었던 것들이 모두 환상으로 드러나기도 하며, 환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끔찍한 현실이었다는 게 밝혀지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끝없는 유린과 기만, 그 마술적인 환상의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시체와 피와 구더기와 부패 속에 잠식되어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어느 순간 그 어둠 속에 있던 존재들이 내 옆으로 다가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로테스크한 환상과 고어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 소설의 의미는. 그건 바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고찰이다. 인간의 생명은 얼마나 소중한가, 인간의 생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해 이 '아오이가든'은 흔히 말하는 것들과 정반대의 답을 내놓는다. 인간의 삶이란 의미 없는 것이며 한낱 구더기와 다름없는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라고.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인간의 삶과 죽음은 같은 인간인 우리가 보기에는 한없이 끔찍하다. 썩은 물고기 눈알을 빨아먹고, 쥐의 똥을 입에 집어넣고, 검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한참 부패된 시체는 구더기가 들끓고, 토막 난 팔과 다리는 물에 퉁퉁 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 끔찍함은 인간인 우리에게만 와 닿는다. 인간의 시체는 육식동물에게는 맛있는 한 끼 식사일 뿐이고 부패한 살점은 구더기의 만찬이다. 물에 퉁퉁 불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팔과 다리는 물고기를 살찌운다. 어린아이들이 날개가 떨어진 잠자리의 파닥 거림을 보고 즐거워하듯이 이 소설은 인간을 그저 살아있는 생명체, 하나의 곤충과 다를 바 없이 묘사하고 그렇기에 이토록 상세하게 죽음과 썩어감과 시체의 냄새와 비린내를 풍기는 검붉은 피를 서술한다. 담담하게, 마치 인간을 내려다보며 즐거워하는 외계인처럼. 인간은 그 어떤 생명체와도 다를 바 없다. 그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존재일 뿐이다. 아프리카의 초원에 죽어 있는 하이에나의 시체에도, 어느 방에서 고독사 한 노인의 시체에도 같은 파리가, 같은 구더기가 들끓는다. '아오이가든'은 인간은 특별하고 존엄하다는 생각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구역질 날 정도로 생생한 묘사를 통해 철저하게 짓밟는다. 인간의 죽음은 시궁창에서 굶주린 쥐가 죽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이 소설집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생명의 무게는 모두 똑같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는 인간의 특별함을 믿는다. '아오이가든'은 그 믿음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아. 인간도, 시궁쥐도, 바퀴벌레도, 구더기도, 죽으면 퀴퀴하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무기물일 뿐이야. 소설 속 한 문장 벽에 박혀 불타고 있는 C는 눈동자가 빠진 하얀 눈으로 내가 흘린 내장들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최은영 작가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 그 안에 들어 있는 7편의 소설들은 다정하다. 그렇다고 마냥 즐겁고 행복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정한 공감과 연대까지 이어지기 위한 씁쓸함과 아픔이 함께 들어있다.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 같은 소설이다. 쓰지만, 달다. 7편의 소설에서 공통으로 목격되는 요소는 이별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이별, 서로의 이기심에 의한 이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이별, 다양한 이별들이 들어 있다. 어떤 이별은 시간이 지나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다시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어떤 이별은 상대를 한없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어도 다시는 만날 수 없기도 하며(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먼 곳에서 온 노래), 어떤 이별은 이미 너무나 사랑하고 있던 사람과 한순간에, 자신의 잘못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해 영원히 헤어지게 되기도 한다(미카엘라, 비밀). 작가는 이 다양한 이별들을 각각의 소설들에 각각의 방식으로 그려내며 그 속에서 퍼지는 사람과 사람 간의 공감과 유대를 표현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역시 '미카엘라'와 '비밀'이었다. 세월호로 인한 이별을 다루고 있는 소설. 이토록 폭력적이고 잔혹한 이별을 '미카엘라'는 한 발짝 밖에서 관조하듯, '비밀'은 이별인 줄 알지 못하는 자의 눈으로 아프게 그린다. '미카엘라'에는 세례명 미카엘라인 딸과 그의 어머니가 나온다. 미카엘라는 어머니를, 어머니는 지난밤 말동무가 되어 준 노인의 친구를 찾으려 세월호 시위 현장을 돌아다닌다. 그곳에서 미카엘라가 자신의 어머니인 줄 알고 어깨에 손을 얹은 어머니와 꼭 닮은 여인은 세월호 사건에 희생된 학생의 어머니였고 미카엘라의 어머니는 노인의 친구가 자신의 딸과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이제 세상에 없는 미카엘라라는 아이의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미카엘라와 그의 어머니가 서로를 찾으며 소설이 끝난다. 소설의 주인공, 미카엘라와 그의 어머니는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편하게, 세월호 사건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여느 집의 모녀와 다를 바 없는 둘의 관계를 차분히 따라간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세월호 사건은 우리를 집어삼킨다. 미카엘라와 함께 세월호 시위 현장에 있는 어머니를 닮은 여인을 만나고 미카엘라의 어머니와 함께 세월호에 희생된 한 아이의 이름이 미카엘라라는 사실을 들으며. 그 순간 세월호 사건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세월호 시위 현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 중에는 내 어머니와 너무나 닮아 엄마라고 외치며 어깨에 손을 얹을 수밖에 없는 여인이 있을 것이다. 세월호에서 사라진 학생들, 교사들, 또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이름과, 내 부모님과 가족의 이름과, 내 자식들의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장면을 통해 세월호 사건밖에 있는 사람들을 세월호 경계 안으로 끌어와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느끼게 만든다. '미카엘라'가 말을 건넨다. 시위 현장에 서 있는 저들만이 아니야. 모두가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야. 너도, 나도. 이 소설집의 소설들에서 펼쳐지는 이별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이별할 당시에는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 했던 상대에 대해 시간이 지나며, 자신이 그 시기들을 거쳐가며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이별한 상태에서 다시 만나기란 매우 힘든 법이다. 이제야 상대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했더라도 이미 이별한 상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고 다시 돌아오더라도 이별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내가 성숙했더라면, 조금만 더 상대의 입장을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하지만 그 조금의 성장을 위해서는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겪었던 수많은 이별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내 미숙함으로 인해 벌어진 이별은 무엇일까. 후에 시간이 쌓이고 시야가 넓어져 상대를 공감하게 된다면, 그때 후회하게 될 이별은 어떤 이별일까. 지금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현실 위에 붕 떠서 이상과 행복만을 노래하는 소설집은 아니다.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씁쓸함 안의 다정함을 찾아내 보여주는 소설집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 같은 소설집이다. 7개의 소설 중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최은영 작가의 다른 책, '내게 무해한 사람'도 반드시 읽어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 책은 또 어떤 맛일까. 더 달콤할지, 더 씁쓸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실망은 하지 않을 듯 하다. 소설 속 한 문장 미카엘라는 여자아이들의 흔한 세례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