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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화성9차 용의자, 검찰도 허위자백 받아 재판 넘기려 했다"

당시 용의자 지목된 윤군 "내가 진범 아니다"라고 강변했지만…
경찰 강압수사 논란 속 사건 넘겨받은 검찰, 마찬가지로 허위자백 받아
당시 윤군 변호사 "검사에게 '경찰 고문' 유념해서 조사해 달라 했는데…"
억울한 옥살이 할 뻔…"일본서 유전자 감정 결과 오고서야 혐의 벗어"
검찰도 책임론 일지만…"따로 살펴볼 게 뭐가 있느냐"
(사진=연합뉴스)
1990년 9차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경찰 뿐 아니라 검찰도 엉뚱한 인물로부터 허위자백을 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재판에 넘기려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화성 사건을 둘러싼 '부실수사' 논란 속 검찰의 조사 과정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9차 살인사건은 1990년 11월15일 오후 6시30분쯤 화성 태안읍 병점5리 야산에서 13살 김모양이 성폭행당한 뒤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해당사건 발생 며칠 전 다른 사건 용의자로 윤모(당시 10대)군을 연행해 조사한 끝에 9차 사건 범행에 대한 자백도 받아냈다고 밝혔다. 윤군을 20대 여성 B씨 강제 추행 사건의 용의자로 연행한 뒤 9차 살인사건의 범인으로도 지목한 것이다.

하지만 윤군이 현장검증 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하면서 9차 사건은 물론, B씨 강제추행 사건에 대해서도 경찰의 강압수사에 못이긴 자백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당시에 일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수원지검은 같은 해 11월28일 윤군으로부터 '내가 진범'이라는 취지의 허위자백을 받아 기소을 검토한 것으로 파악됐다.

1990년 12월29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9번째 피해자 김모양 사건의 범행용의자 윤모군(19)을 경찰로부터 송치 받아 조사 중인 수원지검은 28일 윤군이 김양 강간살인 및 시체유기사실 등을 모두 자백했다고 밝혔다"고 보도돼 있다.

경찰에 이어 검찰도 윤군의 자백을 받아냈다고 사실상 언론에 드러내놓고 홍보한 셈이다.

당시 윤군 변호를 맡았던 정해원 변호사는 21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뒤 조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상세히 밝혔다.

정 변호사는 "경찰과 다투는 것보다 어차피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범행사실을 부인하면, 기존의 경찰 조서는 증거능력을 상실하기에 윤군에게 '검사실에 가서는 안심하고 네가 살해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얘기하라'고 조언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조사가 이뤄지기 직전 제가 미리 담당 검사인 A 검사 방에 들어가서 '윤군이 살해한 게 아니라, 경찰의 강압과 고문에 의해 허위자백을 한 것이니 그 점을 유념해서 조사해 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나왔다"며 "검사실 밖에서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조사를 마친 A검사가 '윤군이 자백을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는 검찰 조사를 마친 윤군에게 '왜 그런 자백을 했느냐'고 되묻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검사가 조사 과정에서 부드럽게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추측했다.

결국 당시 수원지검도 윤군의 허위자백을 근거로 기소를 검토했지만, 변호인이 일본에서 유전자 감정을 받자고 요구했고, 감정 결과 범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가까스로 혐의를 벗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변호사는 "A 검사는 당시 '(자백을 했으니) 윤군을 기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그래서 결국 (제가) 일본에 감식기술이 있으니 사건 증거물 의뢰를 하자고 했고, 검사는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뢰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한 두달 정도 걸린 것 같다"며 "결국 일본에서 진범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윤군은 살인죄는 벗었지만, 강제추행은 끝내 유죄로 인정됐다"며 피해자가 범인의 얼굴조차 제대로 목격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정된 죄라는 점 등을 들어 아쉬움을 표했다. 윤군은 20대 후반에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윤군의 억울한 사례와 관련해 "검찰 차원에서 당시의 일을 따로 조사할 게 뭐 있느냐. 그 사람이 (살인사건) 범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돼 풀고 한 것"이라며 "오랜 시간이 지나 누군가를 징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느냐. 공소시효도 지났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진범이 바뀌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8차 사건에 대해서도 "(경찰 재조사 결과가) 정립이 된 게 아닌데, 우리가 나서서 조치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21일 언론 인터뷰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둘러싼 과거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에 대해 "그런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사건 당시 수사지휘를 하고 종결했던 사람들(검사)은 왜 비난을 안 받나. 지금 수사체계는 검찰이 모든 걸 움켜쥐고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식"이라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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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단독] '하명수사 논란' 레미콘 사건, 檢무혐의결정 살펴보니
경찰 "부당 지휘" vs 검찰 "증거 부족" 감정싸움 증거 유무·법리 적용 놓고 곳곳 충돌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근 청와대 하명 수사 논란을 촉발 시킨 것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이 지역 레미콘 업체와 유착됐다는 의혹이다. 해당 사건은 경찰에서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지만, 검찰에서는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정치 사건으로 비화했다. CBS노컷뉴스는 울산지방검찰청이 울산지방경찰청으로 내려보낸 '불기소이유통지'를 입수했다. ◇ 특정업체 일감몰아주기 의혹…'레미콘 사건' 이 문건에 따르면, 사건의 핵심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비서실장 박모 씨와 당시 울산시 도시창조국장 이모 씨가 울산시 소재 A레미콘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다. 박 씨는 A업체 대표 김모 씨에게 민원을 받은 뒤 이 씨와 함께 2017년 4월 14일과 5월 10일 두 차례에 걸쳐 울산의 한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B시공사 현장소장을 불러 A업체의 레미콘을 공급 받도록 강요했다는 게 경찰 수사 결과다. 이 대가로 박 씨와 이 씨는 A업체 대표인 김모 씨로부터 43만1천원과 34만7천원 상당의 골프 접대를 각각 받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은 박 씨와 이 씨가 B시공사에 구체적으로 특정업체를 언급하지 않았고, 지역업체 자재사용을 권장한 울산시 조례에 따른 권고일 뿐 위법성이 없다고 봤다. 또 골프접대 부분은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명확한 증거가 없어 마찬가지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 '강요'인가, '정당한 행정조치'인가 의혹의 위법 여부를 가르는 쟁점은 박 씨와 이 씨가 직권을 남용해 부당하게 A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냐는 것이다. 경찰은 A업체 대표 김 씨가 박 씨에게 민원을 제기한 이후 박 씨와 이 씨가 B시공사 현장소장을 불러 A업체 레미콘을 공급받도록 강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원 처리 절차 자체도 부적절한 데다, 박 씨와 이 씨가 B시공사 현장소장을 불러 얘기했을 당시 배석자들의 일부 진술에 '박 씨와 이 씨의 행동이 부적절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었다는 게 판단의 근거다. 하지만 검찰은 박 씨와 이 씨가 '지역건설산업 발전에 대한 조례'에 따라 '울산 업체로부터 자재를 공급받으라'고 권고한 것일 뿐 A업체를 콕 찝어 얘기하지 않았고, 일부 참고인들이 '민원 처리 절차가 특별하지 않다', '박 씨와 이 씨의 행동이 특별하지 않았다'는 진술로 보아 위법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조례에는 '지역건설산업에 참여하는 건설업자는 지역 건설산업체의 하도급 비율을 60% 이상'이라는 부분이 명시돼 있다. 또 경찰은 민원의 결과로 A업체만 이득을 보고 B업체는 피해를 봤다는 수사 내용을 강조하며 이들의 위법성을 강조했다. 관계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울산 지역에서 레미콘을 공급받으라는 얘기가 사실상 A업체에서 공급받으라는 얘기와 진배 없다는 것이다. 이곳에 납품할 여력이 있는 곳은 A업체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검찰은 B시공사가 조례 내용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들이 없었기에 박 씨와 이 씨가 관련 얘기를 한 것 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 두 차례 골프…현금으로 돌려줬나? 다른 핵심 쟁점은 박 씨와 이 씨가 A업체 대표 김 씨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았느냐 여부다. 박 씨와 이 씨가 골프 접대를 받았다고 의심되는 만남은 2017년 7월 29일과 11월 4일인데, 경찰은 김 씨가 '두 사람 몫을 대납했다'는 진술이 있으므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반면 검찰은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봤다. 검찰은 박 씨와 이 씨가 '현금으로 골프비를 돌려줬다'는 진술이 있기 때문에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하려면 좀 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김 씨와 박 씨는 6월에도 골프를 함께 친 적이 있는데, 이 때 김 씨는 '골프비를 대납해줬다'고 진술했으나 실제로는 박 씨가 골프비를 계산한 카드 내역이 나왔던 점을 지적하며 김 씨의 진술 신빙성을 의심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피의자들은 가명을 활용해 골프를 치고, 골프 친 사실 또는 객관적 자료가 있기 전까지 부인하는 등 그 행위가 은밀해 참석자 외 추가적으로 관련자나 자료를 확인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검찰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 봉투 건넨 건 인정…하지만 뇌물인지는 모른다? 수사지휘 과정에서 검찰의 소극적인 판단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A업체 대표 김 씨는 2017년 8월 울산시 공무원 박모 씨와 건축법과 관련한 상담을 한 뒤 사례로 봉투를 건넸고, 박 씨는 이를 거절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경찰과 검찰 모두 사실 관계를 인정한 부분이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김 씨를 뇌물공여의사표시 혐의로 판단했지만, 검찰은 '봉투 안에 현금 기타 뇌물이 들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은 '박 씨가 일관되게 '흰 봉투 안의 내용물이 돈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항변했지만, 검찰은 '봉투 안에 불상액의 현금이 들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 "수사지휘 정당성 결여" vs "무리한 법해석"…검.경 '감정 충돌' '불기소이유통지문'에서는 '레미콘 사건'을 둘러싼 법리다툼 과정에서 검.경 서로가 감정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이 수 차례 목격된다. 경찰이 박 씨와 이 씨 등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2018년 5월 11일 이후부터 올해 3월까지 검찰은 네 차례 수사 지휘 명령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다소 이례적으로 검찰에 '재지휘 건의'를 한다. 다시 말해, 검찰의 수사지휘가 부당하다는 내용을 검찰에 보낸 것이다. 경찰은 '재지휘 건의'에서 수사결과의 타당성을 강조하며 "(검찰이) 판단 혹은 반론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3차례 지휘했음에도 보완되지 않았다며 일방적으로 '혐의없음' 의견으로 송치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수사지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검찰의 수사지휘를 "정당성이 결여돼 있음은 물론 불필요하게 수사기관에서 사건이 계류되도록 해, 피의자 혹은 피해자의 재판받을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검찰은 "증거가 부족해 그 혐의를 인정할 수 없음이 명백한 사안"이라며 "검사의 지적을 무시하고 거듭 동일한 증거와 무리한 법리해석을 토대로 피의자들의 혐의 유무에 대한 결론을 변경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검찰은 이번 사안이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진행된 수사인 점을 적시해 "(경찰 수사의) 구체적인 피의사실이 언론에 지속적으로 공표되고, 김기현 울산시장 후보와 자유한국당 쪽에서 정치수사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며 "경찰 수사를 지휘한 검찰까지도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시비 그리고 수사권 남용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수사"였다며 "고 설명했다.
추미애 전진 배치…文정부 vs 검찰 '정면 대결'
檢, '하명수사'와 '감찰무마' 의혹 수사 박차'…靑으로 향하는 칼끝 靑, 당대표 출신 '추미애' 의원 법무장관 후보자 지명 與, 오늘 검.경 차장 호출…"檢 바른길 벗어나면 특검" 문재인 정부와 검찰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검찰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수사 논란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관련 의혹을 집중 수사하며 권력의 핵심부에 칼 끝을 겨누는 모양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원포인트' 인사로 판사 출신의 중진 추미애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고, 특별검사 도입을 거론하는 등 '검찰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 하명수사·유재수 의혹…종착지는 결국 靑? 현재 검찰에서 진행하는 청와대 관련 수사는 크게 두 줄기다. 먼저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그의 측근들에 대한 경찰수사의 뒷배경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김 전 시장과 관련한 첩보를 경찰청을 통해 울산지방검찰청으로 내려보낸 부분과 관련해 통상적인 절차였는지, 아니면 선거개입을 목적으로 한 하명(下命)이었는지 수사하고 있다. 다른 수사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관련 의혹이다. 검찰은 유 전 부시장이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재직시절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 감찰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중지된 경위와 배경 등을 수사하고 있다. 두 수사의 공통점은 수사의 종착점이 청와대 등 정권의 심장이라는 점이다. 검찰은 5일 하명수사 논란과 관련해 김 전 시장 관련 첩보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A경정을 불러 조사했다. 또 전날에는 유 전 부시장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 판사 출신 '추다르크', 돌격 앞으로 청와대 전경(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문재인 정부는 검찰 수사가 상당히 정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하명수사 논란이나 유 전 부시장 관련 의혹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내용인데, '검찰개혁법'이 통과되기 직전이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 갑자기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것 자체가 불순한 의도라는 의심이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를 받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와 상황이 명백한데도, 검찰이 고의로 수사를 지체한다고 보고 있다. 추미애 의원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것도 이런 문재인 정부의 상황 인식과 맞닿아 있다. 추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 초대 당 대표이면서 5선 중진 의원이다. 당 대표 출신 인사가 부처 장관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얘기가 당 안팎에서 나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검찰 수사가 정권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해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 법무부 장관을 공석으로 둘 수 없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에 대한 감찰권과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추 후보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시대적 요구가 됐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겠다"며 당 대표 출신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것에 대해 "개인적인 입장을 비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그런 시대적 요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 민주당 검·경 차장 호출…檢 '안간다' 문재인 정부와 검찰 간 신경전은 6일 국회에서 열리는 '김기현 측근 비리 사건 등 공정수사 촉구 간담회'를 두고도 일어났다. 더불어민주당 검찰공정수사촉구 특별위원회는 6일 대검찰청 차장과 경찰청 차장을 국회로 불러 이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전날 저녁 "현재 수사 중인 사건의 사실관계 파악 등을 위하여 사건 관계자들까지 참석시켜 개최하는 간담회에 수사 관계자가 참석하는 것은 수사의 중립성, 공정성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하지 않아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당에 통보했다. 이에 경찰도 마찬가지로 간담회 불참을 통보했다. 검찰 측에서 참석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 측만 참석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검찰공정수사촉구 특위는 향후 김 전 시장과 유 전 부시장 관련 검찰수사와 수사지휘 내용 등을 살피며 검찰의 판단에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민주당 설훈 특위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검찰과 경찰을 같이 불러 쌍방의 의견을 들은 후 '검찰이 상궤를 벗어났구나' 하면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특검 도입의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대리 (鄭代理) A.D.1981 ~
난 여기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다. 여러분들은 그런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들이며, 내 글이 " 가치 " 를 갖는 이유는 내가 글을 존나 잘 써서가 아닌, 개떡같이 써갈겨 놔도 찰떡처럼 읽어주는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분들은 단순 읽고 끝나는게 아닌 열심히 이러네 저러네 댓글들도 잘만 남겨 주며, 돈 받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자빠져 배나 긁는 백수도 아닌, 회사에서 갈려지는 직딩노비인 내가 이렇게 잘 시간, 쉴 시간 깨가며 폰 붙잡고 엄지를 혹사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여러분들의 그런 강렬한 피드백 덕분. 그래서....., 오늘은 시발 삼국지랑 1도 관련없는... 칼럼 사상 최초의 생존인물을 다루도록 하며, 제목에도 큼직하니 박혀 있듯,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들이 그토록이나 원하던 . . . 정. 대. 리. . . . . . . 지지난번 칼럼의 주제였던 " 오호대장군 " 편의 하단에 내가 우리회사 오호대장군을 설명하며 나열했던 짧막한 저 한 줄. 심지어 자세한 설명도 생략한다며 나머지 네 명에 비해 가장 간결담백진 소개에도 여러분들은 오히려 바로 저 정대리의 칼럼을 갈구해댔다... 오늘편의 시작은 바로 저기에서 비롯되었다. 우선 본론에 앞서.. 이 빙글이라는걸 도대체 몇 놈이나 깔고 쓰는진 내 모르겠고 그 중에서도 내 글을 팔로우 해놓은 2,500 명 가까운 양반들의 구성을 내 도통 모르겠지만... 오늘의 이 글은 그저 온리 여길 드나드는 닝겐들 중 우리 회사와 일절 무관한, 볼 일 없고 볼 일 없어야할 이들만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내 운을 걸고 쓴다는 점을 유의해 주시길. 이 헬조선에는 그 정보의 진위여부 떠나 불특정다수를 대상 당사자가 불쾌감 느낄만한 정보를 유출시에 법적처벌을 받는 " 명예훼손 " 이란 뭣같은 처벌규정이 존재하기에 정대리놈이 여기 들어오는 순간 여러분들은 내가 이후에 진정 소울 담아 장편으로 쓸 예정인 인물들.. 유비, 조조, 관우, 조운, 손권 등등은 못 본다는거... 그러니 이번 편만은 그냥 여기서 보고 짬시키자. 좋아요, 댓글 다 좋은데 클립은 안된다. (사실 이걸 클립해가면 그 사람도 이상한 사람) 그리고 당근 정대리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음을 양해 부탁 드린다. ........, 1981년생 닭띠인 정대리는 인사팀에 몰래 확인해본 결과, 본관이 " 나주(羅州) 정가 "에다가 고향은 전라남도 목포 출신이며, 본관도 고향도 아따 싹다 기냥 즐라도랑께, 뭣이 중헌디! . . . 정대리의 어렸을 적 꿈은 에로배우였다고 한다. 그냥 단순 흉내만 내며 좋은척 하는 그런 가짜아닌, 직접 실제로 하며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 진정한 " 실전번식가이자 짝짓기전문가가 그의 꿈이였고 이런 꿈을 가진 시기가 주변애들의 장래희망란에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경찰관 등 공직자나 전문직 위주로 적어제끼던 국민학생 시절이였으니 정대리의 싹수는 이미 그때부터 달랐다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정대리가 어린 시절부터 마냥 난봉꾼인 것은 아니였던 것 같고 그저 무한 포텐셜만 갖춘 만년 유망주였던거 같은데 이따금씩 가능성만 보여줄 뿐, 별 이슈없이 살아온 그런 어느 날 그의 막혀 있던 혈맥이 뚫리는 사건은 사회생활 하면서 발생한다..... 첫 사회생활이 어느 소프트웨어 업체에서의 기술영업이였는데, 상당히 큰 건이 걸린 한 거래처와 협의 도중 거래처 사장내외에게 식사와 술접대를 하게 되고 그러다 거래처 사장이 전화 받으러 간 사이, 사모님께서 정대리에게 제안을 한다. 정대리, 내 남편은 내가 말하는대로 해ㅎ 내가 남편한테 말해서 이번 건은 잘 되게 어떻게 해볼테니 대신 우리 정대리가 내 부탁 좀 들어줘볼래?ㅎㅎ 이거 꽤 큰 건인데 잘 되면 정대리한테도 꽤 도움될 거 같은데...  뭐 싫으면 지금 바로 일어나고~  홀홀홀 당시 예순이 넘으셨다는 사모님은 정대리에게 오.. 시벌 " 성상납 " 을 요구 하셨고, 이런 미친 악마에게 영혼을 판 당시의 정대리는 사모님께 몸도 팔고 그 덕에 소프트웨어도 판다. 영혼, 몸, 기술.. 팔 수 있는건 다 팔았던 참장사꾼. 그 후, 계약이 진행되고 최종 체결 완료시까지 사모님은 정대리의 몸을 매일같이 탐했고... 정대리는 나날이 몸도 마음도 황폐해져 갔으며, 이렇게 자신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던 정대리.. . . . 이렇게 정대리는 각성하며 다시 태어나게 된다.. . . . 그렇게 큰 건을 달성해내며 단번에 회사의 히어로가 된 그의 사내 위상은 지금 토트넘의 해리 케인과 비슷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어쨌건 큰 실적에, 그만큼 빠방한 인센티브 받고 다친 몸과 마음을 추스려 가던 정대리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정대리...ㅎㅎ  잘 지냈어?  아잉~ 일처리 끝났다고 연락 한 번 없고 야속하넹ㅎㅎ 난 우리 정대리 생각 많이 났는데 정대리는 안그랬어? 홀홀홀홀~ 사모님께서는..... 자신이 원할 때 자신과 만나 자신을 만족시켜주면 성과급을 제공하는 바디영업을 제안 하셨던 것. 이미 그 전, 자신의 그릇된 선택 탓에 몸과 마음이 황폐해졌고 간신히 이제야 추스려가던터에 정대리는 사모님의 이런 말같잖은 제의를 받자, 자신을 뭘로 보나 싶어 가슴 속 깊은 곳부터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승낙했다...,;; 사모님과의 거래 덕에 주머니가 풍족해진 정대리는 서서히 일을 손에서 놓게 되며 향락과 유흥에 젖어가고, 나이트와 클럽 등을 전전하며 빼앗긴 자신의 기력을 보충했고 그러던 어느 날 동창회에 나갔는데 주머니가 넉넉하던 정대리는 동창회에서도 호기를 부렸고 이런 시원시원한 정대리의 모습은 인색하고 구두쇠인 남편을 만나 고생스러운 결혼생활을 하던 한 여성의 가슴을 뛰게 한다... (여러분들도 나중에 와이프가 동창회 간다면 못 가게 해!!) 모두가 예상한대로.... 정대리와 그 여동창은 그날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고 둘은 그렇게 그날 이후, 단순동창을 넘어선 " 바디프렌드 " 가 된다. 이렇게 정대리는 두 유부녀 사이에서 외줄타기같은 스릴을 즐기며 생활했고 사모님께 받은 물적지원은 다시 여동창에게 재투입되며 지하경제의 순환에도 일조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아주 박진감 넘치는 사건이 생기는데 여동창이 정대리의 2세를 갖게 된 것이 그것..., 정대리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고 놀랍게도 여동창은 정대리에게 이참에 자신은 현남편과 이혼할테니 자신을 책임지라며 강요해온다. 자신의 뜻대로 않을 경우, 정대리의 집과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은 덤이였더라는.... 정대리는 여동창에게 뱃속을 포맷할 것을 눈물로 간청하고 여동창은 물러서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물질만능주의 아니던가. 정대리는 뱃속포맷 및 모든 일에 대한 묵인을 조건으로 거액을 제시하고 결국 여동창은 수락. 그러나 당시 제안한 거액이 내가 알기로 ₩ 7,000,000. 으로 알고 있는데 솔직히 일반 평민 직장인들 수중에 빚없으면 성공이지, 저런 돈을 바로 운용 가능한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으며 특히나 문란방탕한 정대리는 이미 빚만 잔뜩 있다보니 저 돈이 없었다. 그래서 정대리는 사모님께 지원요청을 했다. (당연히 이유는 다르게 말했지.) 허나 이 사모님 역시 호구는 아니셨는지라.... 정대리에게 각서를 쓰게 했는데 이 각서의 내용이 또 아트였다. 거두절미.. 1년 이내 원금 미상환시 정대리는 3년간 자신의 모든 요청을 승낙하는 연인관계로 그 기간동안 일체의 연애를 금한다는 소위 " 노비문서 " 의 작성이였다. 그러나 한 시가 급한 정대리는 그 노비문서에 지장을 찍고 만다.... 사모님은 연륜에서 묻어나는 그 지혜가 화수분같은 마녀였기에 단순 문서작성으로 끝내지 않았다. 정대리의 나체영상을 촬영하여 보관하는 화룡점정을.. 이렇듯 멘탈을 죄다 흡입당하고 얻은 돈을 여동창에게 지급하였는데..... 졍대리의 시련은 이제 시작이였다. 여동창은 돈만 낼롬 받아 먹고는 그 돈은 아이의 출산 및 육아에 지참하겠다며 포맷을 돌연 거부! 자신은 역시 출산을 해야겠으며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고 관계를 정리할테니 자신을 책임지고, 그렇지 않으면 역시 정대리의 회사와 집에 알리겠다는 먹튀강수를 둔다. 당시 정대리는 온갖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가장 효율적이고 우수한 방법의 자살법 등을 숱하게 검색했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보다 그에 따를 고통이 두려웠기에 미처 실행은 옮기지 않았던 사면초가 풍전등화 정대리... 수시로 자신을 원하는 두 여자의 전화가 울려댔다. 결국 정대리는 패닉상태에서 회사에 사표 던지고 전화도 해지하며 잠수를 타고 이에 격분한 사모님은 경찰에 그를 고소, 여동창도 혼인빙자로 그를 고소... 겹고소를 당하는 경사를 맞고.. 사모님의 노비문서는 적법한 내용이 아니기에 무효지만 채무에 대한 변제의무는 존재한다며 사기죄가 적용될 뻔 하였으나 못난 자식 둔게 죄인 정대리의 부모님께서 변제.. 여동창의 경우 알고보니 이미 사이가 나쁘던 남편과의 이혼을 위해 정대리를 탈출구로 삼으려 했던 것이며 알고보니 임신한 아이의 아빠는 남편도 정대리도 아닌 제 3의 인물인데 여동창 본인도 정확히 이게 뉘집새끼인지는 아리까리한 상태였던 것이 밝혀졌다.. 어찌저찌 결국 법적처벌은 피한 정대리는 천신만고 끝에 재취업에 간신히 성공하고 다시 인생을 시작해 보려 하였으나 부서장에게 업무관련 기안서류와 보고서를 첨부한 이메일을 발송한다는게..... 위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담긴, 사건 발생 당시 경찰측에 진술서를 작성할 때 쓸 목적으로 써놓은 파일을 오발송하게 되며 수신인인 부서장은 물론.. 참조되어 있던 나를 비롯 우리 부서의 여러 직원들이 TV에서나 볼 법한 저 사건의 시놉시스를 읽게 된다. 부서장은 첨부자료를 읽다가 마시던 커피잔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발에 경미한 화상을 입었으며, 참조된 박과장은 내용을 읽다 처갓집에 가는 것을 잊고 아내와 부부싸움을 했고... 역시 참조된 백사원은 한참 다이어트 중임에도 중단하고 초반부를 읽다 편의점으로 달려가 콜라와 팝콘을 사와 먹는 바람에 다이어트에 실패 하는 등.. 여파는 굉장했다. 전말을 알게 된 정대리는 우리를 모아놓은 후, 우리들 앞에서 목을 메달아 죽어 수치를 면하겠다 했고 우리들은 다수결에 의해 지난 과거니 새회사에서 새시작하는 정대리의 재활을 돕기로 결정했다. . . . 하지만... 12월 경.. 가정도 있고 큰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윤과장과 송파구청 건너 모텔촌의 한 모텔에 같이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목격담이 암암리에 떠돌며 다시 전운이 맴돌고 있다.... 이번 편은 다시 말하지만 클립 하지들 마시고 여기서만 읽고 짬시키십시다들...
김우중은 누구인가…대우그룹 한때 재계 2위, 외환위기 직후 해체의 길로
세계경영 신화에서 장기 해외도피 신세 (사진=연합뉴스) 향년 83세로 9일 영면에 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한때 재계 2위 그룹의 총수이자 세계경영 신화의 주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를 내고 해외도피 생활을 하는 인물로 전락하는 등 인생 역정을 보냈다. 삼성과 현대를 키운 이병철과 정주영 등 1세대 창업가와 달리 김우중 전 회장은 샐러리맨에서 출발한 창업가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 전 회장의 성공신화는 만 30세 때인 1967년부터 비롯됐다.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 근무하다 트리코트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씨와 손잡고 대우실업을 창업한 것이다. 대우(大宇)는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실업은 첫해부터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58만 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렸고, 인도네시아, 미국 등지로 시장을 넓혔다. 트리코트 원단과 와이셔츠 수출로 종잣돈을 마련한 김 전 회장에게는 '트리코트 김'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대우실업은 1968년 수출 성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69년 국내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우는 등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가 됐다. 1973년에는 영진토건을 인수해서 대우개발로 이름을 바꾼 뒤 무역부문인 대우실업과 합쳐 그룹의 모기업격인 ㈜대우를 출범시켰다. 이어 1976년에는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고, 1980년대 인수한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그룹의 주력으로 성장시켰다. 확장 경영의 결과 대우는 창업 15년만에 자산 규모 국내 4대 재벌로 성장했다. 그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강조한 것처럼 전 회장은 1980∼90년대에도 '세계경영'에 힘을 쏟았다. 1990년대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말 396개 현지법인을 포함해 해외 네트워크가 모두 589곳에 달했다. 해외고용 인력은 15만2천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7년 말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파고는 세계경영 신화의 몰락을 재촉했다. 1998년 3월 전경련 회장을 맡은 김 전 회장은 '수출론'을 집중 부각했지만, 당시 경제관료들과는 마찰이 계속됐다. 1998년 당시 그룹 구조조정의 핵심사안으로 꼽혔던 대우차-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금융당국의 기업어음 발행한도 제한 조치에 이어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들었다. 대우그룹은 1999년 말까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은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월과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9천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말년에 '제2의 고향' 베트남 등을 오가며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에 주력하며 명예회복에 나섰던 고인은 17조원에 이르는 미납 추징금과 세금을 내지 못하고 1년여 투병 생활 끝에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