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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할 말을 내가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것

오늘 처음으로 어학원 수업을 나갔다. 돌이켜 보니 내가 무엇을 배우러 어느 공간에 가는 일이 무려 11년 만이었다. 그래서인지 괜히 긴장도 되고 해서 어젯밤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지난 4일간은 이곳 시간 8시면 졸음이 쏟아졌었는데.. 비가 내려 새벽같이 어두운 아침을 걸어 출근하는 낯선 생김새의 사람들의 어깨에 코를 파묻으며 고등학생 때처럼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같다. 수업시간이 다가오자 다양한 피부색과 머리 스타일을 한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조그만 강의실은 빈자리가 없이 가득 찼다. 프랑스어를 배워 본 적도 없던 엠마와 난 쏟아지는 낯선 언어에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하나도 안 들린다.”
“큰일이다.”

그래도 같이 헤매는 그녀가 있어 버틸 수 있었고 버티다 지친 어깨의 힘이 조금씩 빠지자 책에서 길에서 봤던 단어들이 살짝살짝 들리기 시작했다.

“싸 바?”
“위. 싸 바.”

2시간의 첫 수업이 끝난 후 우리는 사우나에서의 탈출처럼 튀어나왔지만 서로의 표정은 나쁘지가 않았다. 비도 그치고 구름이 엹어지고 있었다. 
굳이 공항까지 따라온 엄마는 마흔에 가까운 아들을 유학 보내며 마치 18살의 아들을 보내는 듯했다. 민망하고 미끄덩거려 괜스레 수속이 바쁜 듯 굴었다. 나 대신 손을 잡힌 엠마가 고개를 끄덕여 주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사실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닐 텐데 무엇을 위한지도 모를 기합을 넣어야만 한다니.. 

비행기를 타자마자 어디선가에서 또 탈락 메일이 왔다. 결국 아무런 성공도 못 하고 도망치듯 떠나는구나 가슴이 시렸다. 벌게진 얼굴은 기압 탓으로 돌리고 얼른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을 거스르는 비행이라 자꾸 떠오르는 시간들 덕에 난 괴로운 시간을 배로 겪어야 했다. 배로 괴로워 한 손으로 잡던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멀미 덕에 잠에 든 그녀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긴 비행이 무색하게 매끄럽게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려 뜻을 알 수 없는 사인 대신 믿음직한 등을 골라 따라 걸어 입국심사도 하고 짐도 찾았다.

“잠시 앉자!”

만약을 위해 잔뜩 준비한 비밀 지갑에 돈과 카드를 옯기고 가방은 죄다 자물쇠를 꺼내 걸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휴대폰이 터지지가 않았다. 공항의 출구 근처도 못 가 힘을 잃는 와이파이를 살리려 팔을 들어대며 간식히 방법을 검색해서 시도하고 시도했지만 한국에서 사서 온 영국 유심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우버를 불러야 하는데 통화도 안되고 데이터도 안되는데 어쩌면 좋지?”

한참을 공항의 입국장에 묶여 있다가 3개의 캐리어와 함께 이리 피해 주고 저리 피해 주고 하다 할 수없어 그냥 우버를 부르고 출구를 나가서 눈으로 기사님을 찾아보기로 했다.

"EE로 시작하는 푸조! 푸조! EE!"

허리를 굽혀대며 오고 가는 차의 번호판과 앰블럼을 보고 있을 때 

"레오?"

하는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은 몰라도 헤매고 있는 동양인이라면 자기를 부른 고객인 것이겠지. 찾아준 그가 고마웠다. 비가 오는 파리의 외곽도로는 꼼짝없이 막혀 있었고 앰뷸런스는 끊임없이 날카로운 소리를 울리며 여기저기에서 여기저기로 지나갔다. 막힌 도로의 양옆으로는 뜻을 알 수 없는 그래피티가 가득 뿌려져 있었다. 하늘도 볼 여유도 없이 움츠린 채 안 되는 핸드폰만 껐다 켰다 하며 1시간 넘게 침묵의 환영 리셉션을 받았다.
레벨 테스트를 받으러 학원에 갔다. 우리가 생각하던 레벨의 시험지와 선생님이 생각하던 레벨의 시험지 두 개를 보여주시면서 풀 수 있을 거 같은 것을 고르라고 하셨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선생님이 생각하던 레벨의 시험지를 고르고 웃었다. 그 시험지조차 제대로 다 풀기가 어려웠다. 선생님은 우리의 시험지를 슬쩍 훑어보시더니 구술시험을 생략해도 되겠다고 웃으셨다.

“그래 처음부터 제대로 하는 게 좋지.”

선생님은 겉으로 말하고 우리는 속으로 말했다. 학원에서 교재로 쓰는 책을 파는 서점이 따로 있다며 주소를 알려주셨다.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곳이라고 가는 김에 구경도 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잠시 지내는 곳은 빌쥐프라는 곳으로 파리 13구에 붙어 있는 파리의 외곽 소도시이다. 이곳에는 아주 큰 병원과 의과대학 그리고 아주 큰 묘지가 있다. 작고 낮고 조용한 곳이다. 

첫날 우리는 이 작은 곳에서 마트를 가는 일에도 긴장을 했었다. 너무 많이 조사를 하고 생각에 생각을 한 덕분에 프랑스에서는 소매치기가 길만 나서면 우리를 덮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뒤에서 오는 소리 옆에서 오는 소리, 아이들, 중학생쯤 보이는 아이들, 어른들, 노인들마다 레벨이 다른 긴장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사러 간 시테섬은 그야말로 관광지, 지하철이 몇 개가 교차하는지 모를 번화가였다. 짐을 최대한 간소하게 하고 둘 사이의 공기조차 없애고 최대한 한눈을 팔지 않고서 걸었다. 빌쥐프가 파리인 줄 알았다가 13구가 파리구나 했었는데 영화에서 본 파리는 이곳에 다 있었다. 
퐁네프 다리 너머로 에펠탑이 손가락처럼 서 있고 센 강에는 유람선이 프로그램같은 물살을 그리며 지나갔다. 강 건너편 시테섬에는 날카로운 생트샤펠 성당이 서 있고 그 반대편에 회복 중인 두 얼굴 노트르담 성당이 서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관광을 할 여유가 없었기에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시테섬을 곧장 가로질러 생 미셀 분수 근처에 있는 지베르 죈느 서점에 가 교재를 샀다. 돌아가는 길에는 비가 제법 왔다. 카르네가 아까워 몽쥬 약국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엠마 몰래 일부러 조금 돌아 소르본 대학과 엉사드를 지나쳤다.

“이게 소르본이네.”

엠마가 프로필 사진을 하라고 사진을 찍어줬다. 

“어, 조금 돌아가면 엉사드도 있네.”
“그래? 그럼 가보자.”

다시 길을 조금 돌아 엉사드를 향했다. 가는 길에 프랑스가 기리는 위인들이 묻힌 83미터 높이의 돔, 팡테옹이 보였다. 영화에서 배운 파리를 우리가 우습게 걷고 있구나 웃겼다. 기분이 좋아 빗속을 걷는 일도 나쁘지 않았다. 엉사드에서 굳이 마다하는 엠마를 붙잡고 사진을 찍어 준 후 우리는 마침내 몽쥬 약국을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한주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아직도 이곳에서 있는 것이 어색해서 웃음이 다 난다. 아직은 매일 아침마다 다시 긴장을 해야하고, 정말 해야할 일들, 부동산, 은행, 오피 등이 넘쳐나지만..
내일에 쓸 기술이 하나도 없다는 것. 내일 할 말을 내가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것. 그것 하나에 우선 만족하기로 한다. 걸어서 보는 것들은 목표없이 써 보기로 한다.

W, P 레오

2019.10.21

파리일기_두려운 날이 우습게 지나갔다
9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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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파리일기인가요?! 뭔가 글을 읽는데 눈앞에 장면들이 그려졌어요! 앞으로 파리일기 기대할게요잉 🙏
@nanmollang 감사해요 자주 올리도록 해볼게요 응원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 해당 카드가 최고의 빙글러만 오를 수 있는 명예의 전당에 등극되었습니다. 명예의 전당은 빙글앱의 디스커버탭(돋보기 아이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VingleKorean 감사해요!! 😍
여러가지 많은것을 깨닫게 해주네요😊
@Twice2020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좋은 저녁 보내세요
@simplepoems 앞으로 글 자주 올려주세요^^
헐 지금 파리에 계신건가여? 머시쪄
@goodmorningman 네 파리는 요즘 비가 자주 오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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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유의 입국금지에 관하여
얼마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창 언론에서 스티브유에 대해 떠들썩 했을 당시에 이야기다. 틀리건 맞건간에 사람은 타인의 의견을 대할 때 신중히 끝까지 들어보고 정중하고 다른 생각을 존중하되 자신의 소신있는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나름의 자유가 있지 않겠나? 그게 안되면 개돼지 짐승이나 다름 없는거 아닌가. 어디가서 정치발언을 함부로 쳐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이젠 지겹다. 어차피 사람은 정치성향에 따라서 자신의 삶의 형태가 결정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기도 하고 남의 다른 생각을 들어봄으로써 새로 배워나가기도 하는거라 생각한다. 유승준형이 자신이 직접 게재한 유튜브동영상이 이슈가 되었고 뉴스에선 이를 내보냈었다. 언뜻 보기에 굉장히 감정에 호소하며 감성팔이 하는 것 같아 보이고 내가 봐도 뭔가 불안정하고 이야기가 잘 정리가 안되고 중구남방이었던걸로 기억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JTBC였나....YTN이었나... 기억은 잘 안나는데. 잠을 자려고 하다가 잠이 안와서 호기심에 직접 보고싶어서 승준이형의 채널에 직접 들어갔다. 영상을 거의 다 보고 난 후에 내가 느낀 것은... 언론보도가 좀 왜곡될 수는 있다지만 한국주류언론은 정말정말 언론왜곡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뭐 언제는 안그랬겠냐만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악마의 편집을 하고 사람하나 매장시키는 실력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승준이형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물론 처음으로 봤던 승준이형의 영상내용에서도 개인적으로 난 기독교적인 혹은 종교적인 관점에 입각해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분은 조금 거부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뭐 기독교신자인 승준이형 입장에서는 당연한거 아닌가. 그리고 좀 감정적으로 많이 격해졌다는 부분이 많이 아쉬웠다. 격해진 감정 때문에 승준이형의 의견이 잘 전달되지 못한 부분도 있고 또한 승준이형이 의도적으로 병역을 기피하려고 했다는 것에도 동의를 하는 바이며 이 부분은 잘못은 있다 생각한다. 맹목적으로 승준이형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며 잘못한 것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하고 하지만 한 국가가 개인에게 너무 과하지않나 싶었다. 싸이는 군대를 두 번 다녀온것에 비해 승준이형은 안간거 그리고 엠씨몽역시 병역기피문제에 휩쌓여서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뭐 그럴수 있지. 욕 당연히 먹을 수 있지. 징병제인 대한민국에서 그런 행동이 당연 잘못된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너무나도 심각해져가는 비난과 화살은 정도가 점점 지나치고 특히 정치권에서는 너무 맹목적이며 대중들이 주목하고 영향력이 큰 사람하나를 심하게 마녀사냥을 한다고 느껴졌으며 또한 유승준이 입대를 하기로 약속한 것에 대해 2명의 보증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사기를 쳤다는둥 유승준이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려고 하는건 연예인을 또 해서 돈을 벌어먹으려고 한다는둥..... 한참 듣고 댓글을 보던 중에 맹목적으로 까는 글들이 보이길래 나도 거기에 맞대응해서 댓글을 소신있게 달았다. 군필자들 대부분이 유승준의 입국금지를 전부다 거부한다고 써있는 댓글에 나는 군필자인데 입국금지법안에 찬성을 한다고... 10년이면 많이 했고 또 분단국가이면서 징병제인 이 나라 역시 징병제인 것이 자랑은 아닌것같다고... 굉장히 공들이고 정성들여서 써놓았는데... 몇초후 답글이 달려서 들어가보니 어떤 사람이 대한민국의 군기강을 문란하게 하며 나를 마치 해서는 안될 말을 지껄이는 무개념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매국노로 글을 써놓았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또다시 반박글을 썼는데 또 지워져버렸다. 가만히 보니 대부분의 글들은 유승준형을 응원하거나 찬양하는 글인데 어느 딱 어느 일정 특정한 구간만 그렇게 승준이형을 욕하는 댓글들이 마구마구 달려있었다. 댓글조작집단이란 생각이 들어 그 곳에도 승준이형을 옹호하는 글을 써보았더니 역시 실시간을 댓글이 모두 지워진다. 또한 답글이 아닌 직접 댓글을 달았는데 거기에는 패드립 즉 이유도 없이 부모욕을 들먹이며 댓글을 써놓았다. 몇 개 댓글을 더 달았는데 결국 최대한 심사숙고해서 올린 글들이 모두 지워져버리고 심지어 느닷없이 접속이 안되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만다. 그냥 단순히 오류로 꺼져버리는 수준이 아닌 아얘 폰자체가 먹통이 되어버렸다. 한 10분동안 계속 그렇게 먹통이다가 꺼져버렸다. 사람이 의견이 다를 순 있으나 내가 봤을 때 이건 어떠한 특정 목적을 가진 댓글부대가 활동하는 것이 분명하며 또한 그 댓글에 의해 세뇌되거나 선동당하여 실제로 어떤 한 특정대상을 매장하고 매도하는 국민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란 예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이러한 행태는 참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김해에서 가덕도로 공항을 옮기려는 이유
일본 항공 국제선 기장 승급 시험을 김해 공항에서  18R 서클링 랜딩 이착륙을 할수 있으면 기장 자격을 준다는 이야기도 난이도가 엄청 높다는 이야기 홍콩 카이탁 공항이 난이도가 엄청 높은 악명 높은 공항인데 김해도 똑같음. 바람 방향이 남풍이면 이걸 해야됨 이 착륙은 웬만한 베테랑 아니면 할수가 없다고 봄. 안개와 비 강풍 상황에서는 더욱더 서클링 착륙을 해야됨 사고도 한번 났음. 김해써클링을 일명 김해탁(카이탁+김해)이라 부르기도 한다네요 18R 서클링 랜딩을 해야 해서 18착륙이라고 하다는 이야기도 착륙할때 마다 욕이나와서 그렇다나요?(남풍불때) 김해공항은 활주로 접근등급이 최저단계인 선회접근으로 알고있음. 외국 항공사들 최정예 베테랑  기장들만 올수있는 공항? 남풍불면  회황이 워낙 많아서.. 그런 이야기도  그리고  김해공항 취항 조종사 95% "신공항은 가덕도로 해야한다고 했을정도 김해공항은 1940년대에 일본 해군 항공대 가미가제 훈련소였다가  해방후 군사 공항으로 쓰였다가 수영비행장 이전하면서 민간공항으로 1976년 탈바꿈 군사적으로 북쪽산들이 유용한데 민간공항으론 엄청난 위험성이 존재 김해신공항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도 부산김해에 워낙 산이 많아서 가덕도로 옮기려는 이유 위험해서 와 모야.. 개빡신 곳이였구나.. 그래서 착륙장면 찾아봤는데 산 피해서 선회 하자마자 착륙해야됨.... 히야... 이걸 해내시네......
생트 샤펠,
좁은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어디에선가에서 연이어 터지는 희미한 탄성이 우리의 귀에 조금씩 더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이름 모를 우리 앞의 등들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고 우리는 이 짧은 고행이 곧 끝남을 알 수 있었다. “와아.”  우리의 뒤를 이어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은 채 우리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우리에게 쏟아져 내려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좁은 어깨를 하고 걷던 봄날, 우리의 머리를 뒤덮으며 내리던 시린 붉은 비, 그 여린 듯 진했던 벚꽃비처럼 그것은 한 뭉텅이로 우리의 추억 안에 지울 수 없는 색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비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한국에서 받아온 기본 서류들을 번역하고 공증을 받기 위해 트램을 타고 벼룩시장이 유명한 Vanve까지 갔다. 그리곤 다시 지하철 13호선을 타고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있는 Varenne역으로 갔다. Varenne역은 근처에 로댕 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지하철 출구로 나와 대사관들이 모인 거리로 걸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육군박물관이 보이고 그 앞 광장 너머로 에펠탑이 보이는 마치 서울의 광화문과 같은 느낌의 지역이다. 육군박물관 뒤편으로 황금색 돔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그곳이 바로 프랑스혁명의 영웅이자 동시에 역적인 애증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일가가 묻혀 있는 Tombeau de Napoléon이다. 공증이 완료된 서류를 다음날 오전 11시 이후에 찾으러 오라고 해서, 다음날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다시 트램에 올랐다. 트램은 전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받아 만든 그래서 각국의 이름을 딴 기숙사들이 모여 있는 씨떼 유니벡시떼를 지난다. 건물들은 조금 낡았지만 가격이 싸서 인기가 많고 따라서 입주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곳이다. 하루를 다녀왔다고 익숙해진 풍경들을 지나 Porte Vanve역에서 메트로 1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우리의 근처에 서있는 누군가의 인상이 문득 나의 눈을 잡아맸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하고 또 영화를 만들다 보니 사람들을 관찰하고 혼자서 그들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 그리고 감정이나 목적까지도 추측 추리 상상하는 버릇이 몸에 깊게 베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을 지레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편견이 되진 않을까 싶어 절로 완료되는 짐작들을 애써 지워 버리려고 애먼 노력을 또 하곤 하는데 이곳은 낯선 땅이라 내 생각들이 편견일 확률 또한 높아서 여태껏 한국에서 보다 더욱 조심을 해왔다. 프랑스의 지하철에 대한 여러 글들을 많이 봤고, 소매치기와 거동이 이상한 사람들을 마주친 여러 사람들의 경험담도 또 그때 그들의 대처들도 지나치게 보고 이곳으로 왔지만, 지난 한 달간 딱히 위험한 상황을 만난 적은 없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아무런 사건 없이 생활을 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방심했을 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는 글을 읽고는, 반은 장난으로 ‘방심하다 당한다’ 며 서로에게 잦은 주의를 주곤 했지만, 시간의 힘이 참 무서워 요즘은 긴장을 거의 안 한 채 지내고 있던 참이었다.  13호선은 우리가 주로 타고 다니는 7호선과는 다르게 의자가 한편으로는 한 열이 나있고 다른 한편으로 두 열이 나있는 비대칭 구조이다. 다른 호선의 지하철들처럼 정방향의 의자와 역방향의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구조는 마찬가지였다. 나와 엠마는 두 열의 의자가 나있는 쪽에 정방향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그 남자는 다른 쪽 한열의 역방향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문득 들었던 부정적인 인상을 지워내고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을 하고 있을 때, 어떠한 짐작되는 이유도 없이 그 남자가 불쑥 나의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왔다. 다른 이곳의 사람들과 달리 나를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혹 소매치기를 하려는 건 아닐까 싶어 하던 검색을 멈추고 핸드폰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남자의 목적은 우리의 물건이 아닌 건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어떠한 수작도 없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우리는 괜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 남자는 계속 우리의 돌린 옆얼굴을 노려보다가 심지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창문에 비친 우리를 눈을 찾아내 노려보기 시작했다. 순간 확실해지는 이상함에 나는 등이 굳었다. 평일 오전이라 객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창문에 비친 남자를 주의 깊게 견제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남자는 왠지 모를 흥분까지 느끼며 우리의 돌린 얼굴과 창문에 비친 우리의 이미지를 번갈아 노려보는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했고 급기야 몸을 조금씩 떨기까지 했다. 연기를 통해 익힌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일반적으로는 감정이 신체의 징후를 만들어내지만 신체의 징후 또한 숨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나는 더욱 긴장을 했다. 남자의 신체 징후는 분명 이 감정이 그의 내면 안에 가만히 갇혀 있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의 감정과 신체가 서로를 계속 불러내며 확장을 해가고 있을 때 열차는 다행히 이름 모를 정거장에 멈춰 섰다. 나는 마치 이곳이 Varenne역인 듯, 당연한 듯 엠마를 데리고 열차에서 내렸다. 엠마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놀란 얼굴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우리를 따라 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끝까지 그를 살폈다. 다행히 그 남자는 열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열차가 정거장을 떠날 때까지 남자는 우리를 노려 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굳었던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잠자리를 설쳤다. 결국 다음날, 여러 번 울린 알람에도 우리는 침대 위를 떠나지 못했다. 오전 수업이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발을 돌려 올린 창문 밖에서 위로 같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을 받으며 숨을 좀 녹인 후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렌즈로 파리를 바라보진 말자고 다짐을 했다.  기왕 학교를 못 간 김에 우리는 파리의 동쪽 크레테유라는 곳에 위치한 우리 지역 CAF 아정스에 서류를 내러 가기로 했다. CAF는 주택보조금을 산정, 집행하는 기관으로 인터넷으로 가입, 신청을 한 후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우편을 통하거나 직접 제출을 하면 검토 후 각자에 맞는 보조금을 산정해준다. 아날로그의 나라 프랑스도 많은 변화가 있어 CAF도 모든 서류를 스캔한 뒤 온라인상으로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기에 가장 빠르게 처리된다는 직접 제출을 하러 간 것이다. 파리가 아닌 외곽 지역은 위험한 곳도 많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어제의 기억까지 더불어 떠올리며 긴장을 했다. CAF 아정스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 후 조금 걸으면 되는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외곽지역을 둘러가는 동안 보는 풍경은 파리의 중심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공항을 오가는 도로에서처럼 거리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아파트 단지도 높은 굴뚝이 있는 발전소나 공장 같아 보이는 곳도 자주 눈에 띄었다. 넓어진 센느강의 모습도 고풍스러운 건물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파리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여느 곳에 흐르는 고요한 강 그 따름이었다. 강변은 온통 풀밭이었고 강 위에는 큰 새들이 앉아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낯선 거리의 모습에 경계와 신기함이 반쯤 섞인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며 CAF 아정스에 도착을 하자 먼저 건물 입구에 긴 줄을 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파리의 주거비용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벅찬 짐이 되는지 아침부터 먼 곳까지 와 긴 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순서를 기다려 아정스의 직원에게 검토를 받고 제출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지만 건물 밖에 장치해둔 CAF전용 우체통에 집어넣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글도 많아서 우리는 긴 줄에 두 명을 더 보태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가기로 했다.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는 모습이 보여 우리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류가 잘 검토되길 바라며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아정스를 들렸다가 나온 한 흑인 아저씨가 우리를 응원을 해줬다. 그리고 홀로 줄을 서고 있던 한 한국 청년이 그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이신가요? 서류 그냥 여기에 넣고 가면 되는 거예요?” 서류를 봉투에다 넣어서 밀봉을 한 후 우체통에 넣어야 하는데 그 청년은 그런 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정스 안에 가면 봉투를 준다는 글을 본 것 같아 청년에게 알려주었다. 청년은 고맙다며 아정스 안으로 가고 우리는 남은 오후를 소중히 보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먼저 파리의 동쪽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들려보기로 했다. 내가 무척 가보고 싶어 하던 곳이었는데 영화의 성지에는 역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프랑스어가 조금 더 들릴 때까지 미뤄둬야지 했었다. 다만 오늘은 파리의 동쪽으로 나온 김에 인상적이라는 건물의 모습도 봐볼 겸, 영화 박물관이라도 봐보고 갈까 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있는 Bercy역으로 갔다.  역에서 나와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를 조금 걸으니 사진에서 봐왔던 역시나 다양한 곡선들이 인상적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눈에 보였다. 이곳은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원래는 미국 문화원이었던 곳이다. 2005년, 에펠탑을 마주 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샤이요 궁 안에 있던 옛 시네마테크를 옭겨오기 위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영화 몽상가들에 등장하던 68 혁명의 주무대였던 프랑스 영화의 최전성기를 지탱하던 ‘그 시네마테크’ 는 이 건물이 아니지만 시네마테크는 위치나 외형보다는 내용이 더 핵심이기에 Cinematheque Fracaise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들떴다. 시네마테크 앞에는 조용하고 예쁜 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회전목마가 있어 이질적인 건물과 함께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거 같아 예고편처럼 사진 몇 장만 찍고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Bercy는 계획도시처럼 긴 공원을 따라 길고 낮은 아파트가 쭉 이어진 곳이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Bercy village라는 예쁜 쇼핑몰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세계 최대의 와인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유지한 채 내부만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의 쇼핑몰로 꾸민 곳이다. 당시 와인을 운송하던 기찻길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파리가 아닌 지방 소도시의 번화가를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테라스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기에는 좋은 곳 같았다. 햇볕은 좋았지만 날씨는 꽤 차가웠는데 테라스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남은 낮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엠마가 마침 지하철을 타면 한번 만에 가는 곳에 Châtelet역이 있다며 Sainte Chapelle에 가보자고 했다. 처음 어학교재를 사러 시떼섬에 갔을 땐 긴장된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다. “Oui.” Sainte Chapelle은 고등법원 건물과 붙어 있어 파리의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보안 검사를 하고 있었다. 흡사 공항에서와 같이 짐 엑스레이 감사와 금속탐지 검사도 거친 후 부속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자 센느 강 어느 다리에서도 보이던 날카로운 첨탑이 가고일 꼬리를 꽉 쥔 채 우뚝 서 있었다. 검은 괴수들이 사방으로 울부짖고 있는 검은 첨탑 너머의 하늘은 티 없이 파랬다. 그래 신은 이곳에는 없는 거지. Sainte Chapelle은 성루이라고 불리는 루이 9세가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금전적 지원의 형식으로 사들인 예수의 가시 면류관과 후일 모은 예수의 못 박힌 십자가 조각 등의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왕실 전용 예배당이자 보물창고이다. 티켓을 끊고 듣어간 곳은 성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높이에 기둥이 유난히 많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단출한 홀이었다. 심지어 그곳 안에 기념품을 파는 곳과 안내 전단을 배포하는 곳까지 같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이곳이 사람들이 그렇게나 찾을 만한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궁중 관리들과 성당을 관리하는 이들을 위한 예배공간이고 왕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준비된 곳은 이 낮은 홀이 위층 공간이었다. 이곳이 보통의 성당들 보다 낮은 이유도 기둥이 많은 이유도 위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파리에 온 후 수없이 오른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위쪽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아래층의 모습에 실망해서인지 별다른 기대는 가지지 않고 허벅지를 손으로 도우며 계단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을 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뱉고 말았다. “와아.” 그곳은 그 안 든 것이 어떠한 모습의 어떤 마음의 사람이든 그 안에 든 것이 어떤 피비린내가 나는 프로필을 지닌 물건이든 아이들의 보석함의 고증 없는 ‘보석’ 들처럼, 모두를 모든 것을 그저 순수히 빛나게만 만들어버리는 섬뜩한 마법의 공간이었다. 15미터의 거대한 스테인글라스가 최소한의 테두리만 두른 채 공간 안으로 피할 수 없는 색깔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고개를 들고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것들, 가령 하늘이나 별 같은 것들. 내가 한다던 비워내고 납득하는 그런 아름다움 말고 집요하게 강요하는 채우고 또 채워서 지나침을 훨씬 더 지나쳐 내가 모르는 곳으로 그곳으로 넘어가 버린 아름다움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예술이 미리 지고서 핑계만 오래 고민하고 있던 건 아닌지 조금 씁쓸했다. 이 곳은 온통 빼곡하다. 빈 손으로 꾸밈도 없이 걷기 위해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얘기를 해 왔는데 벌칙처럼 온통 내가 못하는 그저 아이처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할 것이 가득한 이 곳으로 불쑥 와버렸다. 우습다. 사람은 그렇게 멋대로 걸어간다. 자기 물건이 가장 지겨워서, 자신과 다른 이의 품으로 기꺼이 간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낯설어진 나를 나는 또 가까스로 소개를 해야 하겠지. 내가 마치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돈도 잘 내고 길도 잘 찾고 하지만 내일에 해야 말만은 여전히 모른다. Oui ou Non 으로 대답하는 내 시꺼먼 마음에 뭐가 걸쭉하게 녹아 있는지 꺼내지 못해서 모르겠다. 가끔은 주말에 무엇을 또 보러 가기가 조금 겁날 때가 있다. 보고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해서 보여주고 싶어 그런 거겠지. 안다. 그 마음.  좋은 것을 보고 나면 우린 더 많이 지쳐 파리 지하철의 악명도 다 잊고서 머리를 붙여가며 졸기까지 한다. 안다. 당신의 그 마음도. 글, 영상 레오 촬영 레오, 엠마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완] 그래도 너와 함께였기에.
나는 그를 몰래 따라나섰다. 그는 내가 이 학교를 다니며 한번도 본 적 없는 복도 구석으로 갔다. 그곳에는 볼드모트와 벨라트릭스가 있었다. 나는 들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주인님..저 더 이상 못 하겠어요. 제발.." "드레이코 말포이, 네가 이렇게 약한 아이인 줄 몰랐구나." "더 이상은 이렇게 못하겠어요.. 그만하게 해주세요." "죽음을 먹는 자를 관두겠다라...그 대가는 죽음인데 괜찮겠나?" "입 꼭 다물고 평생 조용히 살게요. 그러니 제발 살려만 주세요.." "흠... 하지만 그건 안되지. 너 대신 다른 아이가 죽는다면 모를까.." "제발..." 나는 목걸이를 풀어 손에 꼭 쥔 뒤, 한 발자국 씩 조용히 움직였다. 볼드모트가 드레이코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리고 외쳤다. "아브라케타브라" 나는 뛰어가 드레이코가 맞기 전에 그 저주를 맞았다. 뭔가 꽉 조여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조금 멍해진 느낌도 들었다. 바로 죽지 않는게 방어 마법 때문인건가? 세 명 다 내가 그 마법에 바로 죽지 않음에 놀란것 같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말했다. "내가 대신 맞았으니깐 됐어. 가자, 드레이코." 나는 드레이코의 손을 잡고 걸어나갔다. 그 방을 나가고 나서도 계속 멍했다. 기숙사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힘이 점점 빠지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고통스럽진 않았다. 별 느낌없이 힘이 서서히 빠지는게 느껴졌다. 드레이코의 방에 들어간 후, 문을 닫고 나는 거의 쓰러지다시피 주저 앉았다. 드레이코는 내 모습을 보고는 급하게 물었다. "클로에, 괜찮아? 점점 창백해져." "살인 저주를 맞았으니..죽어가는거겠지...점점." "근데 어떻게 살인저주를 막았어..?" "방어 마법을 썼어. 거의 1년 전쯤부터..조금씩 걸었었어.그게 지금...이렇게..나타나네." 점점 말하는것 조차 버거워진다. "드레이코...내 방 세번째 서랍에...선물..있어... 편진데.....그거 꼭...봐...그리고 이것도..." 나는 파르르 떨리는 미소를 애써 지으며 목걸이를 건냈다. 어릴 때, 드레이코가 내게 선물해준 그 은빛 목걸이를. "안돼...안돼! 클로에. 제발..." 눈물을 흘리는 드레이코를 보며 나도 눈물이 날것 같아 나는 괜히 장난을 쳤다. "내가...기껏 구해...줬는데....웃어야지...안 그래?" 드레이코는 누워있는 나를 끌어안고는 계속해서 울었다. 처음 입학해서 너에게 상처받는 날부터, 같이 과제를 한 날, 도서관에서 공부한 날, 네가 고백한 날, 너와 함께한 좋은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럴거면 너한테 더 잘해줄걸. 괜히 후회만 된다. 숨쉬는 것도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드레이코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내 첫번째 친구, 내 남자친구 되줘서 고마워. 네 덕에 행복했어. 너도 꼭 행복해...." 점점 눈 앞이 흐려진다. 드레이코는 나를 더욱 세게 안았고, 하염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고마웠어, 드레이코 안녕. -End.
일상적인 것의 기록
수많은 탯줄이 머리 위로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검은색, 전선, 없으면 안 되는..의 공통점까지 생각하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십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요즘 팬톤의 양말을 사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옷장 속이 검은색인 자의 색 있는 양말. 레드 퍼플, 라일락, 딥 엠버, 미스틱 블루...구매하면서 생소한 색의 세계도 알게 됩니다. 길을 걷다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체내에 쌓입니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 사람들의 말소리와 행동, 냄새와 다양한 형태의 장소들. 갈수록 비어지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비어지기는 쉬우나 채우기는 어렵다는 현실이 서글퍼집니다. 수많은 감정의 울렁임 속에서 살아내고 있습니다. '살아간다' 보다는 '살아내는' 쪽에 밀접한 생입니다. 물기 어린 마음이 나락으로 잡아끌어도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지구상에 날 위해주는 이가 생겼습니다. 안전망이 사라진 곳이 영 어색하기만 합니다. 드러난. 드러난. 드렁거리며 옆 자판기에서 콜라를 꺼냅니다. 안전을 지키는 이의 눈이 빨갛습니다. 주의, 콜라, 피로가 쌓인 눈. 온통 빨갛게 칠해진 각진 세상입니다. 회사 건물 내에 위치한 꽃집의 손님은 회사원일 확률이 높습니다. '누가 살까?' 싶은데, 꽤 많은 이들이 꽃집을 들릅니다. 집에 가기 전 꽃집 앞 의자에 앉아 꽃들을 바라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마다 우르르 다들 꽃 앞으로 갑니다. 피고 싶은 마음들이 목을 내밉니다. 지하철 안에서 어떤 남자가 여자가 들고 있는 꽃을 보면서 "냄새나 꽃!!!!!"이렇게 소리 지르고 갔습니다. 꽃다발을 들고 가는 그녀를 보며 예쁘단 생각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무언가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에 대해 사유하게 됩니다. 자유 자유가 함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힐난하는 것들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내젓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에 커피를 넣자마자 뱉었습니다. 시골 된장을 물에 푼 맛. '독특한 프로세스를 적용한 커피' 등의 표현이 수려하게 적힌 종이를 보다 웃어버립니다. 하하하하. SNS상에서 핫하다고 한 카페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유리를 관통한 무지개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신발을 벗은 채, 그 옆에 가만히 발을 가져다 댑니다. 순우리말이자 긍정의 뜻을 품고 있는 무지개 옆에 말입니다. 오 일만의 출근길에 눈에 띈 풍경입니다. 매 주 열 번씩 지나가는 길이지만, 매 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침의 해가 물을 비추고, 반사된 빛의 강렬함에 눈을 온전히 뜨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일상에도 여러모로 뒷모습이 있는거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중에서- 바쁜 일상 속에서 주어지는 이틀간의 휴식,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집 가는 길에 곁눈질로 보던 하늘을 마음 놓고 봅니다. 달님, 이번 주도 절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언가를 바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매번 지켜봐달라고 하는 자는 달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건조에 극히 강해 반년쯤 물을 주지 않아도 죽지 않는 존재를 바라봅니다. 건조에 극히 강해. 강해지기 힘든 터전에 산세베리아를 그려넣습니다. 오늘도 살아내느라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게 에펠이야?
11월 11일은 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날이어서 프랑스에서는 휴일이다. 올해는 그날이 마침 월요일이어서 토일월 3일간의 연휴가 생겼다. 지난주 서울에 다녀오고 또 바로 이사를 하다가 근육을 다쳐서 학교를 오갈 때 어려움이 많았는데 몸과 마음 모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었다. 토요일 정오에는 계좌 개설을 위한 헝데뷰가 있어 Place D’Italie역 근처의 LCL로 갔다. 담당 직원과 안 되는 영어로 소통을 하려니 등에서 식은땀이 다 났다. 이쪽도 저쪽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으니까 직원도 뭔가를 설명하려다 포기하는 듯하고 나도 뭔가 확실하게 들은 게 없어서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프랑스 은행은 한국과 다르게 계좌 유지비가 있고, 카드를 분실했을 때를 대비해서 드는 의무적인(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는) 보험이 있다. LCL은 학생의 경우 계좌 유지비가 거의 무료와 마친가지라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직원이 나는 나이가 많아서 해당이 안된다고 했다.(그런데 결국 할인이 됐다.) 원래 엠마와 나 모두 선임급의 직원에게 헝데뷰를 잡았었는데 한 번에 한 사람씩 밖에 상담이 안된다 하여 나는 다른 신참 직원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신참 직원은 머리와 생김새가 앙투완 그리즈만을 꼭 닮았는데 뭔가를 열심히 하긴 하고 또 꽤나 여유가 있는 척을 했지만 내 눈에 보기에도 많이 서툴렀고 계산이 자꾸 바뀌고 말도 자주 바뀌었다. 몇 번의 한숨, 포기, 번역기를 통한 번거로운 소통을 겪으며 나는 얼른 프랑스어를 잘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굴뚝 넘은 연기만큼 높아졌다. 결국 그 직원은 선임 직원에게 전화로 한소리를 듣고 또 한참을 헤매다가 수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을 했는데.. 상담을 끝내고 받은 서류는 엠마와 틀린 게 없었다. 수요일 오라고 한 것도 맞긴 한 건지.. 찜찜한 마음을 안고 지하철을 탔다. 연휴의 시작을 앞두고 엠마가 물었다. “파리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 어디야? 거길 가보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을 했다. Place D’Italie역에서 6호선을 타고 서쪽을 향해 갔다. 6호선은 우리가 늘 타는 7호선과는 다르게 문에 있는 손잡이를 위쪽으로 돌려야 문이 열린다. 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나들이를 가는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가득했다. 출근 시간과 다름없이 혼잡한 지하철이 Bir-Hakeim역에 도착을 하자 차 안의 승객 거의 대부분이 내렸다. 당연히 우리도 내렸다. 출구 번호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다들 La Tour Eiffel을 보러 온 거니까. 지하철 출구를 나와 센느 강변을 따라 오른쪽으로 발을 돌리자 거대한 철골구조가 두 눈에 들어왔다. “저게 에펠이야?” 가까이에서 본 에펠은 아름답기 보다는 조금 무서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하니까 우리가 가지는 것은 결국 상징과 같은 그림들 사진들 그리고 몇 마디의 말이나 글뿐이니까. 상징이 상징다워질 수 있게 우리는 에펠을 지나 조금 멀리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센느강을 따라 예쁘다고 소문이 난 알렉상드르 3세 다리까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한주 내내 흐리고 비가 오던 파리는 그날만큼은 맑았고 노을이 내려앉은 센느강은 서쪽 끝이 온통 노랗게 불타올라 강이 아니라 커다란 태양이 내뿜는 하나 은색 빛줄기인 것만 같았다. 군데군데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동쪽으로 조금 걸어 나가자 거대하고 검고 무섭기만 하던 에펠이 점점 친숙한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 손에 잡힐 듯 작아진 에펠은 노랗고 푸른 하늘을 걸치고 ‘이젠 어때?’ 말하는 듯했고, 우리는 몇 걸음마다 멈춰 서며 상징을 가지려 애를 썼다. 센느강을 따라 걷고 강변에 앉아 싸온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으면서 다리와 탑 그 자체만이 아닌 그날의 다리와 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했다. 돌아서 가고 돌아가고 다시 또 올 수 있다는 것. 문득 엠마와 처음으로 라오스 여행을 갔을 때, 함께 차를 탄 독일인이 우리의 10일간의 여행 일정을 듣고 매우 놀라워하던 생각이 났다. 어디를 가는 것, 무언가를 가지는 것만 아닌 어디에선가 지내고 무언가를 쓰는 것 그래서 삶과 삶 아닌 것 둘 사이에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가볍게 살아가는 것. 그래 그것이 우선 내가 바란 작은 욕심이었지. 어느새 파리를 외쳐대는 풍경들보다 집에 가기 싫다고 부모의 반대로 달려대는 붉은색 패닝의 꼬마 아이, 파리 안의 (파리가 아니라 그 어디에라도 안의)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버리고 온 것도 포기하고 온 것도 아니구나.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고 끊을 수 없는 관심이구나. “엠마, 나 잘해볼게.” ‘좋은 날이었다’ 라고 서로 말해주었고, ‘좋은 날이었다’ 고 쓰고 싶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4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브루스리,브랜든리 중국관련 의혹.
이소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얼마전에 엽문을 보다가 또 말도 안되는 왜곡된 부분이 나와서 참 불편케 했다. 영춘권은 쿵푸가 맞고 또 이소룡이 창시한 절권도에는 쿵푸의 한 권법인 영춘권이 녹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절권도는 쿵푸가 아니다. 엄연히 다르다고 본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이소룡의 광팬이었던 나는 절권도책까지 사서 보며 운동을 할 정도로 이소룡을 좋아했다. 때문에 이소룡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나혼자 빠돌짓 하며 모으고 연습하고 분석하곤 했었는데 그 때 절권도책에서 알게 된 거지만 이소룡은 쿵푸의 엘리트이면서도 쿵푸를 보고 의구심을 가지고 회의를 많이 느꼈다고 한다. 때문에 이소룡은 전세계에 무술,격투가 고수들을 만나 그 무술에서 실전에서 쓸 수 있고 유용한 동작과 기술들을 접목해 절권도라는 무술을 창시했다. 절권도의 스텝은 복싱의 스텝을 본땄으며 발차기는 우리나라 태권도의 대부 이준구씨에게 배워서 절권도에 녹여내었으며 이소룡 역시 이준구씨에게 아주 위력적인 펀치를 가르쳐주는등 많은 세계의 무술인들과 교류를 통해 다양하게 구성을 하였다. 내가 기억하기론 한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면 보통 격투를 할 때 오소독스(오른손잡이)는 오른손이 강하기 때문에 왼손이 앞으로 나와서 견제용으로 사용하고 오른손을 뒤로 놓고 사우스포(왼손잡이)는 그 반대로 왼손을 뒤로 놓는데 이소룡의 절권도에서는 오소독스가 즉 오른손이 더 강한 사람은 오른팔과 다리가 앞으로 나와 주로 사용하게 했고 왼손은 거들게끔 하고 또 사우스포는 그 반대로 왼손이 앞으로 나오게끔 두는 자세를 사용을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소룡은 서양에서 이 절권도를 가르쳤다. 또한 중국의 쿵푸대가이자 고수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절권도는 오로지 싸움을 하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하다는둥... 중국전통의 무술이 아닌 전혀 새로운 무술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비난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홍콩배우이긴 해도 자신들의 국가에서 낳은 최고의 배우를 이런식으로 대한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비록 다른 무술들을 받아들여 창시하긴 했어도 그 브루스리만의 맞춤형 무술인 절권도는 내가 봐도 정말 존경할만하고 훌륭한 것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영화 엽문. 견자단은 엽문이고 또 견자단의 제자인 이소룡이 등장을 한다. 그런데 절권도수련과 절권도를 구사하는 장면을 쿵푸로 둔갑을 시켰다. 또한 이소룡이 쿵푸의 원로들에게 비난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이소룡이 중국무술인 쿵푸를 서양인들에게 마구 가르치며 또 쿵푸로 서양인들과 맞서려는 것처럼 되어 비난받는 것으로 묘사가 되었는데 참 심히 불편했다. 그러다가 문득 얼마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구심이긴 해도 이소룡의 죽음에는 꽤나 의문점들이 많으며 지금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 미스테리한 사건 뒤에는 중국의 전통만을 퍼트리려는 그러니까 즉 중화주의 사상을 가진 중국의 정부와 관련된 어떤 모종의 계획에 의해 타살된 것이 아닐까? 싶은 그런 의구심 말이다. 솔직히 그 이유 말고도 이소룡이 사망한 이유는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 중국에서 성링루라는 풍수지리의 신동이 있었는데 이 아이는 일찍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소룡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자식들이 이 할아버지를 성링루의 묘 근처(?)에다가 묻으려고 했는데 꿈에서 성링루가 이소룡아버지의 꿈에 나타나 할아버지를 여기에 묻으면 너희 집안 대대로 죽어나가거나 비참한 삶을 살게 할 것이라는 저주를 했었는데 그 말을 무시하고 묻었다고 한다. 뭐 좀 미신적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소룡의 형제자매들 모두 굉장히 힘든 삶을 살고 있으며 알코올 중독자 내지는 객사를 한 형제자매도 있었다고 정보를 들었던 것 같고 또 이소룡 아들 브랜든리까지 영화촬영도중 사망했다. 사실 여부는 모르겠으나 일련의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드러나지 않은 현실적이고 정치적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렇게 이소룡을 존경하고 사랑했으면서도 중국공산당의 실태를 알기 전까진 이러한 추측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그 죽음은 단순한 것이며 사고이든 타살이든 이렇게 커다란 이유가 있을것같다는 생각은 못했다. 또한 어렸을 적에 어렴풋이 ‘크로우’란 영화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 브루스리의 아들 브랜든리이다. 또 브랜든리는 이 영화촬영 도중 세트장에 있던 촬영용 권총에 실탄이 들어있었던 것을 모르고 총에 맞는 장면을 찍다가 실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브랜든리 역시... 이소룡과 같은 이유에서 즉 중국의 중화사상과 같은 특정 목적을 가진 정치적 세력에 의해 암묵적인 계획에 의해 사고로 위장되어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토박이말 살리기]1-27 냅뜨다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냅뜨다 #터박이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토박이말 살리기]1-27 냅뜨다 오늘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냅뜨다'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어떤 일에 기운차게 앞질러 나서다'는 바탕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에는 어쩐지 냅뜰 마음이 나지 않는다.", "승혁이는 모든 일에 냅떠 어떤 일이든지 빠르게 진행시킨다."와 같은 보기가 말집(사전)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아무 관계도 없는 일에 불쑥 참견하여 나서다'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말집(사전)에 이런 뜻으로 쓴 보기로 "어른들 일에 냅뜨다가 된통 혼났다.", "이웃집 부부싸움에 냅떠 욕먹지 말고 가만히 있어."와 같은 것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하는데 '모든 일에 냅뜬 사람'이라고 해도 되겠고 '적극적인 성격'은 '냅뜬 됨됨'이라고 해도 되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 관계도 없는 일까지 냅뜨면(기운차게 앞질러 나서면) 혼이 나거나 욕을 먹으니 삼가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둘레 사람들에게 아무 관계도 없는 일에는 냅뜨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해 줘도 괜찮겠지요?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온봄달 여드레 한날(2021년 3월 8일 월요일) 바람 바람
한국관광100선 강원도편 5곳 양양. 춘천. 인제
<<한국관광100선 강원도편 5곳 양양. 춘천. 인제>> #양양낙산해수욕장 #동호해수욕장 #하조대 #춘천육림랜드 #인제자작나무숲 안녕하세요. 네이버 인플루언서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일 화창하게 시작합니다.  완연한 봄을 느끼게 하는 날씨인데요. 한 주간도 봄의 설렘으로 신나게 시작하세요. 이미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휴일에 날씨가 참 좋았는데 전 밖에 나가지 못했네요.  어제 나들이 다녀오신 분들 봄 풍경 댓글로 부탁해요. https://blog.naver.com/homibike/222267145317 오늘 소개 할 곳은 한국관광100선으로 선정 된 곳 강원도 편으로 바다와 명승지 그리고 테마파크와 자작나무 숲으로 각 지역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입니다. 각 장소마다 특징과 영상을 함께 소개해요.  #강원도여행지추천 #강원도여행 #강원도여행지 #한국관광100선 #양양여행 #춘천여행 #인제여행 #강원도양양여행지 #강원도춘천여행지 #강원도인제여행지 #낙산해수욕장 #동호해변 #양양하조대 #춘천육림랜드 #속삭이는자작나무숲 #인제자작나무숲 #강원도관광 #강원도관광명소 #양양명소 #춘천명소 #인제명소 #양양가볼만한곳 #춘천가볼만한곳 #인제가볼만한곳 #원대리자작나무숲 #동해안여행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정오가 채 못 된 시간이었다 이른 점심을 위해 학교를 나와 마트를 찾아 걸었다 학교에서 왼쪽으로 꺾어 휘 데 뾔쁠리에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죽음을 보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한참을 뻔히 바라보았다 햇빛이 묻은 흰 주름을 따라 어림되는 덩치 아 그렇구나 더 이상 급할 일도 없어 쁘히베 데 뾔쁠리에 헝세 썽떼 병원 곁은 피가 흐르는 이에 내어주고  조금 떨어진 곳이라도 뭐 어때  수고를 감내하는 구조사의 배려 덕에 우리는 총총걸음 일상 위에서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이를 보았다 빛도 돌리지 않는 앰뷸런스에서 배송을 예약받은 택배처럼 차갑게 들것에 실려 천천히 길을 건너 가신 이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멈추지 않게 좋은 타이밍에 매끄러운 바퀴로 길을 건넜다 병원에는 달려 나오는 이가 없었고 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 죽음이 지나가도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고 그만이 조용히 내렸다 꿀렁이지 않았다 보도를 오르고 내릴 때도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틀고 병원을 향해 왼쪽으로 틀 때도 붙들고 있는 것들이 더는 필요가 없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점심을 거르지 않았다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지하철은 늘 만원이라 때를 놓치면 모두를 밀치고 파흐동 소리를 연발로 내지르고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갑자기 툭 내리면 남은 이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생긴다 가방에 쓸리고 옷이 벗겨진다 달려 나가는 파흐동 소리에 괜찮다는 말도 못 해준다 괜찮다는 말을 못 해줬다 입술을 뗄 만큼 아프지는 않아서 몸을 돌릴 만큼 가까이 있지도 않아서 매일 문은 열리고  얼마 간의 소란이 있고 문은 닫힌다 조금 넉넉하다가 더 비좁아지기도 한다 글, 사진 레오 2019.12.05 시로 일기하기_오늘 날씨 흐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