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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 전후 황금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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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신도 가네토(新藤兼人)감독의 '벌거벗은 섬'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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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와 한국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을 들자면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는 일본영화는 ‘과거와 전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리메이크는 물론이거니와 과거의 암울한 시대를 극복한 스토리들을 자주 소재로 삼는다.

예를 들어 ‘올웨이즈-3번가의 석양’(Always 三丁目の夕日: Always-Sunset On Third Street, 2005), ‘플라워즈’(フラワーズ, Flowers, 2010, 기무라 타쿠야의 드라마 ‘남극대륙’(南極大陸, 2011) 같은 전후 극복기 혹은 메이지 유신 시기 등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와 반대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Ode to My Father, 2014)의 논쟁에서 보듯이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곤 한다. 또한 일본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 (東京物語, 1953) 등 수많은 영화들을 리메이크 한 데 반하여 한국은 리메이크에 인색하다. 원작의 출처가 일본인 경우도 많아서 차라리 ‘속편’을 제작하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긴다.

게다가 일본영화는 장르의 체계(전통)가 잘 잡혀 있지만 한국은 장르 개념과 전통이 약하다. ‘전통을 이어온다’ 라든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물’이 드물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영화사를 판단할 때 ‘업력’으로 평가하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의 경우는 ‘동아수출공사’ 정도가 남아 있을 뿐 ‘업력’으로 평가받을 만한 영화사가 드물다.

일본이 선·후배 간 멘토와 멘토링 관계로 100년 넘는 영화 역사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면 한국은 너도나도 흥행 감독이 되면 제작사를 차리고 흥행에 실패하면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정치적 상황에 맞춰 끼리끼리 코드에 맞는 영화인들끼리 같은 포맷의 비슷한 배우들을 돌려막기 하며 우후죽순처럼 비슷한 영화들을 양산해 내는 경향이 강하고 정치적 코드에 따라 선·후배 간의 관계도 유지되기 때문에 ‘업력’이 무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들 때문에 ‘일본적 정서’로 세계시장을 두드렸던 일본과 이제서야 ‘한국적 정서’로 영화제를 파고드는 한국 간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본영화는 일찌감치 스튜디오 시스템을 정착 시켰고 한국은 과거 ‘신필름’을 제외하고는 영세한 시스템을 면치 못했는데 이러한 경향은 곧 프로듀서의 부재로 연결되어 작품의 질적, 양적 저하를 면치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필름도 보관되지 못했고 흥행영화도 ‘납북’되어 김정일의 창고로 가 있거나 영화제 출품 뒤 분실되었다. 특히나 일본과 한국은 똑같이 ‘검열’을 겪었지만 일본은 이것 마저도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바꿔 나갔지만 한국은 ‘저항만이 살길’이라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만 일본영화가 황금기와 쇠퇴기를 반복하는 동안 한국의 영화인들은 그들의 황금기 작품이나 쇠퇴기의 극복과정을 무작정 따라한 경향이 컸다.

그러다 보니 이따금 일본의 고전 영화들이나 로망 포르노들을 접하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도 아니고 ‘어, 이건 한국영화 아니었나...’하는 착각이 들 만큼 일종의 ‘복제품’ 영화들이 많다. 그 이유는 자명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경험하는 동안 일본어에 익숙해져 있었고 일본문화와 일본영화를 지속적으로 접했고 이후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한 영향력을 받고 있었고 심지어 ‘일본문화수입개방’조치가 1990년대 후반에야 이뤄져서 수많은 제작자들이 일본 원작을 무상으로 차용해도 한국 관객들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사이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간 영화나 드라마의 리메이크 교류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이로 인해서 원작영화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오리지널’이 어디에서 유래 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론을 길게 잡아간 것은 일본의 황금기와 쇠퇴기 그리고 이 극복과정에서 영화사들의 눈물겨운 변신과 생존기가 어쩌면 지금 한국영화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단서를 제공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나 일본 영화는 원칙적으로 주요 영화제에 소개되거나 거기서 상을 받지 않고서는 프랑스 혹은 미국이나 서구지역에 알려질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다.

그러나 전후 황금기를 거치면서 미군정의 강한 통제를 받았던 일본의 영화계는 전쟁 기간 동안 단절 되었던 할리우드 영화들을 다시 접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지역에서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예술계나 영화계에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미국과 서구지역에 최초로 일본영화의 바람을 일으킨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감독의 ‘라쇼몽’(羅生門, 1950)만 해도 먼저 1951년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받은 후 할리우드로 넘어가 1952년 미국 아카데미상 특별상을 수상 했는데 이 영화는 일종의 법정 심리극으로써 제작사인 다이에이(大映)의 사장 나가타 마사카즈(永田正和)조차도 ‘이 영화의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비판했지만 영화제 출품으로 먼저 검증을 받은 경우였다.

이러한 수상은 1956년도 멜버른 올림픽 수영 평형 금메달 리스트인 ‘마사루 후루카’(古川 勝)의 1950년 세계신기록 수립 그리고 1951년 9월 8일 일본과 48개국과 체결한 평화조약인 ‘샌프란시스코조약’ 등과 맞물려 전후(戰後) 일본인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일본영화계가 눈을 뜨게 되는데 칸, 베니스, 베를린, 로카르노 영화제 등에 소개된 일본영화는 세계 비평계의 주목을 받게 되고 좋은 평을 받게 되면 ‘아르떼’(Arte)T.V 같은 문화 채널의 구입이 성사되어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승리를 거두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점차 이 공식은 일본영화계에서 정설로 굳어져서 비록 외면받는 ‘좌파적’영화들이라 하더라도 동구권 영화제인 모스크바 영화제, 까를로비바리 영화제 등에 출품 되어 수상을 하면 일반적인 배급자들이 꺼려하는 영화들을 프랑스의 회사들의 중개를 통해 역으로 서구에 알려진다는 사실도 터득했다.

특히 당시 유럽의 영화환경들이 많이 바뀌어 독립영화들을 배급하는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일본영화들은 고전영화, 장르영화, 독립영화 등 가리지 않고 심지어 영화제를 거치지 않더라도 프랑스 영화관에서 상영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신도 가네토(新藤兼人)감독은 이 시절 ‘블루오션’전략을 썼다. 좌파적 성향이 강했고 독립제작사를 선호했던 그의 반골적 기질은 자칫 상업적인 성공이 있어야 자유스런 표현이 확실했던 일본영화계의 관행 속에서 영원히 독립영화 감독으로 남을 뻔했는데 남들이 출품하지 않는 영화제들을 공략한 경우다.

그것도 냉전시대에 서구권이 아닌 동구권 영화제들을 말이다. ‘좌파 계열’이라는 핸디캡을 ‘작가주의 영화’로 성공시킨 사례이기도 했고 또한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일본 독립영화계의 대부로 불린 그는 ‘원폭의 아이’(原爆の子, 1952)를 통해 까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벌거벗은 섬’(裸の島, Naked Island, 1960)을 통해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사회파 리얼리즘의 기수’로 탈바꿈했다.

특히 영화 ‘벌거 벗은 섬’의 경우는 영화 내내 아이를 잃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마디의 대사도 나오지 않는 작품으로, 독립제작사인 ‘근대영화협회’에서 제작했고 100% 로케이션으로 촬영되었으며 부부역을 맡은 두 주연배우(호리모토 마사노리, 후지와라 레이코)를 제외하고는 모든 출연진이 현지 주민들로 구성된 파격적 영화였다.

이 영화의 성공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컸는데 우선 스튜디오 시스템 하에서 정착되지 못한 감독이 ‘제3의 길’을 찾았다는 점과 이후 무려 60여개국에 수출되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었다. 주로 고전영화와 장르영화로 주요 영화제를 정복해 나갔던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나루세 미키오(なるせみきお), 이치카와 곤(市川崑), 기노시타 게이스케, 고바야시 마사키(小林正樹)등 만의 황금기가 아님을 상기시켜 주었다.

때문에 세계는 냉전 시대라는 특수성과 맞물려 서구권과 동구권 모두 일본영화에 자연스럽게 열광하게 되었고 훗날 주로 아시아 영화들을 표방 했지만 실상은 일본영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영화제인 낭트 영화제(Nantes Festival Des 3 Continents)가 창설되기에 이른다. 이를 계기로 일본영화의 회고전과 기념전이 열리게 되었으며 프랑스에 개봉되지 않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 3대륙의 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제로 정체성을 굳히면서 손쉽게 일본영화들을 접하고 이해하게 된 까닭에 비서구적인 영화 중에 일본영화가 가장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체제 경쟁이 심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서구 영화제에서 외면받은 작품이 동구권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호재도 많았다. 물론 작품성에서 뛰어난 작품들과 작가주의 작품들이 많았고 ‘사회적 경향’에 눈을 뜨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제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상위장르와 하위장르로 구분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른다.
물론 일본 영화가 초창기 가부키와 소설 등 탄탄한 원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것처럼 많은 영화인들이 우수한 ‘원작’을 찾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일본은 영화를 통해 세계의 문을 두드리면서 문학을 동시에 소개하게 되었고 이 결과로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994년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가즈오 이시구로(石黒一雄) 등 무려 3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 시기 일본영화는 단순한 ‘이국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예술적 가치를 인정 받는 영화들을 탄생시켰고 일본영화의 주요 유형이었던 ‘지다이게키’(時代劇)와 ‘겐다이게키’(現代劇)외에도 그 사이에 배치 되며 주로 메이지시대와 관련한 영화들을 뜻하는 ‘메이지모노’(明治勿), 오락적 대중영화인 ‘고라쿠에이가’(娛樂映畫)까지 광범위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시네마스코프로 대표되는 새로운 진보와 카메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어느 누구도 모방하지 못할 디테일 한 미장센들과 베테랑과 신인들의 조화는 때로 경쟁하면서 섬세한 미학과 연출력은 다작을 하면서도 ‘장인’이 될 수 있는 기초를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미국 LA=이훈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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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미나리>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일단 마운틴듀에서 합격. 다른 영화들에서 근본 없는 콜라, 사이다, 환타(심지어 어떤 영화는 미린다)를 내놓고 좋다고 마시고 있을 때 홀로 뚝심을 밀어붙이며 근본 중의 근본 마운틴듀를, 그것도 식사할 때마다 마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일단 합격이다. 중간에 나오는 데이빗과 할머니(윤여정)의 에피소드를 위해 오줌과 색이 비슷한 마운틴듀를 썼다고 혹자는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자면 어디 비슷한 색의 탄산음료가 한 둘인가. 나는 분명 마운틴듀가 정이삭 감독의 고상한 취향이라고 믿으며 이는 곧 그가 맛잘알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식당들에 콜라와 사이다 밖에 없는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많은 식당 사장님들이 <미나리>를 보고 식당 음료 라인업에 반드시 마운틴듀를 갖추어 놓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일반적으로 마운틴듀가 있는 식당은 맛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운틴듀에 대한 예찬을 이쯤에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아쉽지만 영화 이야기도 하긴 해야 하니...... 이만 줄이고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미나리>를 아직 안 본 관객분들은 조심하시길. 영화의 내용은 한국에서 이민 온 부부와 그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머나먼 한국에서 날아온 외할머니 순자가 아칸소에서 살아가며 진정한 가족이 되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은 원대한 꿈, 아메리칸드림을 가지고 있다. 아칸소의 광활한 땅을 사들여 거기에 커다란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제이콥은 모니카(한예리)에게 말한다. 농장만 제대로 만들어지면 병아리 감별사 일 할 필요 없을 거라고, 맨날 병아리 똥구멍만 들여다보는 짓 그만해도 된다고. 그렇게 제이콥과 모니카, 그리고 그들의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데이빗(앨런 킴)은 아칸소의 광활한 땅 위의 바퀴 달린 트레일러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땅만 산다고 농사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닌 데다 돈 나올 곳도 없으니 제이콥과 모니카는 농장 일과 함께 병아리 감별 일을 병행하게 된다. 일이 바빠 심장이 좋지 않은 데이빗을 앤과 단 둘이 자주 집에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니카는 자신의 어머니이자 아이들의 외할머니 순자(윤여정)를 불러 아이들 돌보는 일을 부탁하고 그렇게 다섯 사람은 아칸소의 대지 위, 바퀴 달린 집에서 모여 살게 된다. 아칸소에서 생활하며 갖은 시련과 고초를 겪은 그들이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가 바로 <미나리>다. 영화의 초반부에 <미나리>는 병아리 부화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병아리 감별 일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온 데이빗이 지루해하며 부화장을 나가자 제이콥이 따라 나가 담배를 피우는데 그때 카메라는 부화장 위 굴뚝으로 검게 타오르는 연기를 비춘다. 데이빗이 제이콥에게 저게 뭐냐고 묻자 제이콥은 쓸모없는 수컷 병아리를 '폐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폐기'가 뭐냐고 묻는 데이빗에게 제이콥은 쓸모없는 병아리를 없애는 것이라며 그러니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장면은 제이콥의 상태와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곳은 쓸모없는 수컷이 '폐기'되는 곳이다. 그래서 제이콥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하여 아칸소의 광활한 땅을 사들여 농장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농장이 성공해 돈을 벌고 모니카가 병아리 똥구멍을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면 제이콥의 수컷으로써의 쓸모가 증명되고 그는 '폐기'를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제이콥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 모니카에게는 그다지 탐탁지 않다. 이렇게 거대한 땅에 혼자 농사를 짓겠다는 제이콥의 꿈이 무모해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바퀴 달린 집, 비 오면 물이 새는 천장을 가진 집에서 아이들을, 그것도 심장이 좋지 않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불만스럽다. 그냥 캘리포니아에서 같이 열심히 병아리 똥구멍을 들여다보면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아이들을 부족하지는 않게 키우며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러한 둘의 대립은 병아리 부화장에서 보여준 수컷의 '폐기'와 연결된다. 수컷이 쓸모없어 '폐기'된다는 말은 곧 암컷은 폐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80년대의 가족 구성에서 남자의 역할은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고 여자의 역할은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었다.(물론 현재는 그런 성역할 분담이 잘못된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여자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이상 '폐기'될 일이 없지만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폐기'될 수밖에 없다. 여자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병아리 감별까지 해야만 지탱되는 가정이다? 이것은 곧 여자가 남자의 역할까지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며 제이콥은 남자로서 자신의 부족한 쓸모를 자각하며 열등감과 열패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폐기'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제이콥은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자신이 제대로 된 남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폐기'되는 수컷 병아리들과 다를 바 없는 처지임을 말이다.(이것은 모니카가 제이콥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느냐와 상관없다. 제이콥 스스로가 느끼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열패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이콥에게는 무모하더라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일, 즉 아칸소에 농장을 만드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몇 개 있다. 장대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상황, 토네이도가 올지도 모른다는 주의보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정전이 되자 아이들은 모니카의 양 옆에 가서 딱 붙어 선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제이콥이 홀로 서 있다. 가정 내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네 명의 가족이 3:1로 양분된 상황. 엄마와 아이들은 공동체고 아빠는 홀로 맞은편에 서 있다. 아이들의 주양육자인 엄마와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없는 아이들은 이미 공동체의 일원이다. 아빠가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정전이 일어나지 않을 만한 집, 바퀴가 달리지 않은 제대로 된 집을 얻을 수 있을 만큼. 모니카가 제이콥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제이콥이 너무 농장 일을 열심히 하다 근육통으로 팔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자 모니카가 제이콥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이 있다. 제이콥은 머리를 감겨주는 모니카에게 말한다. 그래도 이렇게 일 하니까 기분이 좋다고. 근육통 때문에 도저히 팔을 들지 못할 정도임에도 그가 기분이 좋은 이유는 자신이 돈을 벌어오는 남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체감 때문이다. 비로소 떳떳한 남편이 되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 뒤에 제이콥이 이런 말을 꺼낸다. 이번에도 제대로 안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도 좋다고. 그 이야기는 곧 자신을 '폐기'하라는 말이다. 농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쓸모가 없는 것이니 쓸모없는 수컷 병아리처럼 가족에서 '폐기'해도 좋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이렇듯 <미나리>의 한 줄기에는 가족 내에서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려 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병아리는 계속해서 영화 속에서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데 데이빗이 다치는 장면과 연결되는 부분을 보자. 데이빗이 서랍장을 떨어뜨려 나는 소리가 병아리 부화장에서 제이콥이 병아리가 든 바구니를 떨어뜨리는 부분과 연결되며 장면이 전환된다. 떨어진 병아리들을 주워 담는 제이콥과 모니카에게 같이 일하던 한국이 동료가 말한다. 그냥 내버려두라고, 어차피 다친 병아리들은 쓸모가 없어 다 죽여야 된다고. 데이빗이 다칠 때 나는 서랍장이 떨어지는 소리와 병아리가 다칠 때 나는 바구니가 떨어지는 소리가 영화 속에서 겹쳐져 표현되었다는 것은 다친 병아리와 다친 데이빗의 처지를 동일하게 간주하겠다는 감독의 의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친 병아리는 쓸모가 없어 죽여야 하는데 그렇다면 다친 데이빗은 어떻게 됐을까? 서랍장이 떨어져 다친 데이빗에게 달려온 순자는 데이빗의 상처를 치료해주며 도대체 어떤 놈이 우리 손주를 다치게 했냐며 화를 내더니 대답도 없는 서랍장을 혼낸다. 네가 우리 데이빗을 다치게 했냐며 말이다. 그리고는 그 커다란 서랍장을 혼자 들었냐며 데이빗이 자기가 본 소년 중에 가장 스트롱 보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리고 데이빗이 웃는다. 다친 데이빗에게 다가온 건 다친 병아리에게 다가온 것과는 정반대였다. 순자는 데이빗에게 왜 다쳤냐고, 왜 조심하지 않았냐고 다그치지 않는다. 괜찮다며 치료해주고 데이빗을 대신해서 서랍장을 혼내주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스트롱 보이라고 칭찬해준다. 데이빗도 다쳤고 병아리도 다쳤지만 다친 데이빗이 당한 건 '폐기'가 아니라 순자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손주이고 할머니이기 때문에 다친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일 뿐이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서 병아리 부화장의 병아리와 인간의 처지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제이콥의 수컷 병아리에 대한 동일시가 잘못되었음을, 가족 내에서 한 인간의 가치가 쓸모로 정해지는 것이 아님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똑같이 다쳤더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은 병아리와 데이빗처럼 말이다.(물론 여기서 동물의 기본권, 생명권에 대한 철학적이고 심도 있는 토론이 촉발될 수 있겠으나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살짝 넘어가 보도록 하자.) 이러한 은유는 결말에 이르러 멋지게 갈무리된다. 제이콥, 모니카, 앤, 그리고 앨런이 시내에 나가 병원을 방문하고 거래처와 거래를 트는 사이 뇌전증이 발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동이 힘든 순자가 바닥에 떨어진 농산물들을 태워 없애려다 농장에서 나온 상품들을 보관하는 창고에 불을 낸다. 하필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이제 그만 따로 살자는 암묵적 합의까지 이뤄진 상태에서 집에 돌아오던 네 가족은 타는 냄새와 함께 창고에 난 불을 목격한다. 거동이 불편한 순자가 불을 막을 수 있었을 리 없고 이미 불은 한참 번진 상태. 제이콥과 모니카의 분투에도 농산물을 구하지 못하고 창고는 불에 타 전소된다. 뇌전증에 걸려 오히려 보살핌이 필요한 순자와 농산물이 전부 불타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지 못한 제이콥. 만약 병아리라면 이미 한참 전에 '폐기'됐어야 할 존재들이다. 그러나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거동도 불편한 순자가 불을 낸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족을 떠나려고 하자 데이빗은 그 앞을 가로막고 소리친다. “할머니 가지 마요. 우리랑 같이 집으로 가요.” 그렇게 그들은 가족이 된다. 바퀴 달린 집의 거실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잠을 자면서, 그리고 식탁에 불편한 몸으로 앉아 그들을 바라보면서. 인간은 병아리가 아니고 인간의 가치는 쓸모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쓸모가 있는 사람이어야만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함께 딱딱한 바닥에 서로의 등을 맞대고 누울 수 있는 이들이 가족이라는 것을 <미나리>는 우리의 눈앞에 보여준다. 영화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한참 진지한 말들을 늘어놓았는데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도 아주 알차다. 데이빗과 앤은 어디서 데려온 건지 아주 귀여우며 특히 교회에서 앤과 데이빗, 그리고 또래 친구들 간에 벌어지는 인종차별의 향연(?)은 미친 듯이 웃기다. 데이빗에게 네 얼굴은 왜 이렇게 플랫하냐고 묻는 소년과 칭, 챙, 총 등 온갖 아시아 언어 비슷한 말을 내뱉는 소녀가 중간에 한 '코모'라는 말을 귀신 같이 알아듣고 고모는 한국말로 아주머니(aunt, 이모라는 뜻이지만 영화 내에서 번역이 아주머니로 되어 있다.)라고 알려주는 앤, 그리고 "'코모'가 aunt라니 어썸한걸!" 하며 감탄하는 소녀. 지금 기준으로는 인종차별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네 얼굴이 플랫하다고 해놓고는 그 플랫한 데이빗과 개꿀잼으로 놀아주는 소년, 그리고 한국말 고모의 뜻을 알게 된 것에 어썸해하는 소녀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 얼굴이 찌푸려지기보다는 마냥 웃음이 터질 뿐이다. 영화적 연출도 좋았다. 위에서 말한 병아리 바구니 떨어지는 소리와 서랍장 떨어지는 소리를 겹치게 편집한 것도 좋았고 화투의 8월(공산)에서 아칸소의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대지로 장면이 전환되며 제이콥이 처한 현재 상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부분도 아주 깔끔한 연출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중간에 제이콥이 인종차별(?) 소년과 아침을 먹으며 소년의 새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듣는 부분이다. 그는 데이빗에게 제이콥이 산 땅에서 과거에 농사짓던 남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냐고 묻는다. 제이콥이 대답하지 않자 그는 관자놀이에 총을 쏘는 시늉을 한다. 농사가 망해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그게 남자의 길이지." <미나리>를 다 보고 나면 깨닫게 된다. 그건 남자의 길이라기보다는 수컷 병아리의 길이다. 영화 속 한 문장 “할머니 가지 마요. 우리랑 같이 집으로 가요.”
글쓰는 습관을 기르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
글의 정의를 넓혀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누구나 제법 오랜 시간, 많은 글을 써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숙제처럼 매일 써야 했던 일기나 교과서나 참고서 내용을 베껴 적었던 과정 모두가사실은 글쓰기라는 거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납득할만한 글을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글을 쓰지는 않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고 표현하고자 하는 바람을 품고 살아 갑니다. 글 쓰는 습관을 만들고 싶은 분들을 위한 책을 소개합니다. 뭔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 꼭 장비와 도구를 먼저 갖추어 준비가 완벽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준비는 필요합니다만 모든 게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한히 유예하는 게 좋은 습관은 아니죠.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이 책은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고 글 쓰는 기술 혹은 요령을 배우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의 흉내 내기를 시도하다 지쳐서 그만두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쓰려고 욕심부리기 보다 매일 그냥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자기 글을 알아가라고 하죠.  자신에게 엄격한 글, 더 완벽한 글을 쓰려다 보면 글쓰기는 재미 없고 힘든 일이 되어 버립니다. 재미도 즐거움도 없이 억지로 쓴 글은 읽는 이에게도 비슷하게 읽히기 마련이고요. 노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노력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오래, 멀리 가기 어렵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날마다! 그냥!! 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날마다 그냥 쓰면 된다 자세히 보기 >> https://goo.gl/s2yDzC 어린 시절 잠이 들라치면 어머니는 “일기는 썼니?”하고 묻곤 하셨습니다. 부랴부랴 엎드려 몇 줄 적다 잠든 날도 많았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일기는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쓰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죠.  이 책은 일기는 밤이 아니라 아침에 쓰는 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루에 활력을 더하고, 희망을 불어넣을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오늘 중요한 발표가 있다고 하면 불안과 기대가 복잡하게 얽힌 아침일 겁니다. 아침 일기가 도움이 되는 건 바로 그 순간입니다.  머리 속으로 생각하던 불안함이 글로 실체를 보이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게 됩니다. 몰라서 생긴 불안이 해소되는 순간이죠. 희망과 기대를 적음으로써 용기를 북돋을 수도 있습니다. 어제 속 상했던 일이 아침에 보니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고 웃게 되기도 하죠. 복잡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시작해보세요. 아침 일기. 하루 5분 아침 일기 자세히 보기 >> https://goo.gl/2dZn5R 많은 작가와 더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필사’죠. 수업 시간에 선생님, 교수님의 말을 받아 적거나 필사하듯, 인상 깊고 완성도 높은 작가의 문장을 따라 쓰면서 자신의 문장을 단련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이 책은 좋은 문장을 쓰고 싶지만 처음이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베껴쓰기를 소개합니다. 베껴쓰는 과정을 통해 문장과 단어, 조사 등 요소에 대한 이해와 활용을 배우는 거죠.  문장은 쇠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쇠를 달구고 두드리기를 계속해서 단단하게 단련하듯 단련할 수록 좋아진다는 거죠.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가 같은 쇠로 다양한 연장을 만들어내듯 글쓰기도 꾸준한 연습과 단련으로 능숙해질 수 있습니다.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자세히 보기 >> https://goo.gl/ctsdQs 글쓰기는 읽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읽다 보니 쓰고 싶고, 쓰려니 더 읽게 되는 효과가 생기는 거죠. 그런데 우리의 기억력에는 유통 기한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문장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이 내일까지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죠.  이 책은 읽기의 연장이자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쓰기, 그 안에서도 서평 쓰는 방법을 이야기 합니다. 서평이란 무엇이며, 왜 쓰는지를 짚어보고 쓰는 연습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죠.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의문에 논리적으로 묻고 답할 수도 있고, 자기만의 결론을 내고 결론을 뒷받침할 생각을 구체화할 수도 있습니다.  서평에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다른 결론에 닿을 수 있기에 생각의 변화나 내면의 성장을 확인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기록은 단순한 과거가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입니다. 서평 쓰는 법 자세히 보기 >> https://goo.gl/N9r3QV 글을 쓰다 보면 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얼마간의 재능이 있고, 글 쓰는 게 즐거울 때 욕심이 커지죠. 하지만 전업 작가로서의 삶은 만만하지 않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생계가 되고, 일이 되면 대하는 마음이 변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책은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 밥벌이로써 글을 쓰는 작가들의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예상하고 계신 것처럼 “책을 썼더니 처음부터 잘 팔렸다, 당신도 열심히 써서 나처럼 되길 바란다.”같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어려움과 위기, 계속 써나가는 고충과 같은 냉엄한 현실이 있죠.  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작가는 예술인 중에서도 몹시 가난한 축에 든다고 합니다. 좋아하고, 계속 하고 싶어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쓰고 싶다면 꼭 도전하시길 응원합니다. 그 모든 과정이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이어지고 전해질 테니까요.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자세히 보기 >> https://goo.gl/1pMv24 글을 쓰는 데는 많은 도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펜과 종이, 스마트 폰 메모장이나 글쓰기 앱, 공간과 방법은 얼마든지 있죠. 습관이 된다는 건 부담 없이, 꾸준히 해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부터 장편 소설을 쓸 생각이 아니라면 짧은 낙서, 일상의 기록을 남기는 일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정기배송 자세히 보기 >> https://goo.gl/BjCm9p
[책추천]영화 <미나리>를 보고 읽으면 좋은 책3
해 아카데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영화 '미나리' 보셨나요? 영화<미나리>는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이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가정의 달, 5월 마음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가족 영화,그리고 그 이야기를 닮은 책과 함께 해보는 건어떨까요? 영화<미나리> 와 함께 읽어보면 좋은책 3권을 소개해 드립니다!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김산들 지음 | 시공사 펴냄 네팔 여행 중 스페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된 저자가 남편의 제안으로 스페인 발렌시아 주 비스타베야(Vistabella)라는 마을에 자리한 200년 된 유서 깊은 집에 정착하게 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담은 에세이 #가족 #행복 #자연 #힐링 #삶 ✔️자세히보기> 405호실의 기적 쥘리앵 상드렐 지음 | 달의시간 펴냄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을 살리기 위한 엄마의 좌충우돌 고군분투를 담은 이야기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가족, 모든 세대에게 필요한 사랑과 희망, 용서와 연대, 용기와 도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설 #가족 #희망 #기적 #도전 #용기 ✔️자세히보기 >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가족에 대한 여섯 편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으로,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그려내 우리가 가끔 잊고 지내지만 누구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소설 #가족 #기억 #상실 #상처 #치유 ✔️자세히보기 > 지금 플라이북에서 바로 빌려보기!>>
록그룹 '퀸'과 1975년 4월 17일의 일본
1975년 4월 17일 하네다 공항 대소동 환영 인파에 놀라..."다른 행성 온 것 같다" 1975년 4월 17일 오후 무렵. 도쿄 하네다 공항에는 전례 없던 진풍경이 벌어졌다. 무려 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비행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들은 도대체 누구를 기다렸던 걸까. 이윽고 오후 6시가 되자, 호놀룰루를 경유한 JAL061 편이 공항 활주로에 내려 앉았다. 트랩을 내려오는 주인공은 데뷔 3년차인 영국 출신 그룹 퀸(Queen)의 멤버들이었다. 섬 나라 일본에 첫 발을 디딘 멤버들이나, 이들을 맞은 팬들이 서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더 프레디 머큐리 등 멤버들은 일순간 동양의 작은 소녀들에게 포위당했고, 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맴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Harold May)는 당시 “다른 행성에 온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브라이언이 행성이라는 말을 언급한 것은 그가 실제 천문학자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적외선 천문학자(Infrared astronomer)였다. 잠시, 브라이언 메이 얘기다. 프레디 머큐리는 ‘프레디 머큐리, 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라는 책에서 “제아무리 황당무계한 꿈에서라도 브라이언 같은 적외선 천문학자가 기타를 집어들고 로큰롤 가수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썼다. 천문학 잡지 ‘에스트로노미’(Astronomy)는 ‘브라이언 메이, 과학과 음악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러분은 그를 록그룹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로 알고 있지만, 브라이언은 천문학 박사이기도 하다”(You know him best as guitarist, singer, and songwriter from the rock group Queen, but Brian May is also a Ph.D. astronomer”고 전했다. 일본에 도착한 퀸이 공연을 펼친 곳은 선배 그룹 비틀즈가 섰던 부도칸(武道館)이었다. 공항에 이어 공연장 소동도 변함없었다. 통곡하며 실신하는 여성이 속출했고, 팬들은 밀치고 넘어지며 스테이지까지 몰려들었다. 그러자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공연을 잠시 중단하고 “모두 침착하자”고 호소했다. 비틀즈 이후 최대의 소동이었다. 퀸의 공연은 2주간 전국에서 열렸다. 퀸은 이후 다섯 차례 더 일본을 방문했고, 마지막 공연을 한 곳은 1985년 5월 15일 오사카성 홀이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6년 전이다. 여섯 차례의 일본 공연은 그만큼 퀸이 일본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퀸은 이처럼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였다. J-팝이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분석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팝음악 잡지 ‘MUSIC LIFE’는 당시 인기 투표를 실시했는데, 그룹 퀸은 ᐅ1975~1978년 1위 ᐅ1979년 2위 ᐅ1980~1982년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1991년 11월 24일은 퀸의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날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 감염 사실을 전하고 24시간 후 사망(당시 45세)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마지막 앨범인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은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지 4년 뒤 발표됐다. 일본의 열성팬들은 2015년, 퀸의 일본 도착 40년을 기념해 4월 17일을 ‘퀸의 날’(The Queen Day)로 정했다. 일본에서 이런 소동을 벌였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부활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극장가에서도 히트 행진 중이다. 신드롬, 팬텀이라고 할 만하다. 음악평론가 스지 스즈키(スージー鈴木)씨는 “헤이세이 최후의 겨울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기억될 것"(平成最後の冬は、映画『ボヘミアン・ラプソディ』とともに記憶されるだろう。)이라고 했다. (일본은 내년 헤이세이 연호가 바뀐다) ‘Love Of My Life’, ‘I Want To Break Free’, ‘Spread Your Wing’ 같은 퀸의 노래들과 함께 2018년의 마지막도 저물어간다. '에~오~ 에~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