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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명대사로 뜨거운 일본 축구 만화

카네시로 무네유키가 글, 노무라 유스케가 작화를 맡은 일본축구 만화.
공격수 포지션인 남고생 300명을 감옥 같은 트레이닝 시설 '블루 락'에 가두고 경쟁시켜 공격수 영웅 단 한 명을 탄생시킨다는 만화.


일단 설정부터 정신나간 것 같긴 한데 이 만화의 진가는 대사에 있다.
블리치 이후 최고의 병신미를 내뿜는 강렬한 중2병 명대사로 이미 [띵작]의 반열에 올라섰다.

「부족해. 경의가.」

(좆됐...)



「왕의 앞에 서지 마라.」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내 안의 『괴수』가 말하고 있어...」




「나, 강림.」




「내게 축구는 살인이다.」






강림좌도 거르는 살인좌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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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 후후 아직 멀었군..나는 말야..밟지 않아 필드조차..그냥 사라질뿐이라구 마치 바람처럼..크큭
블리치 작가가 그린건가요? 뱌쿠야가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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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드래곤볼 작가와 담당자 썰
토리야마 아키라와 그의 초대 담당자 토리시마 카즈히코 이 둘의 악연은 상당히 긴데 디자인 회사 때려치고 생활에 쪼달리던 토리야마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년점프에 만화를 투고함. 그 만화를 눈여겨 본 토리시마가 토리야마를 불러서 더 그려와보라고 시킴. 그 말을 듣고 토리야마는 만화를 더 그려가지고 옴. 원고를 본 토리시마는 잘 그렸다고 칭찬을 한 다음에... 토리야마의 눈 앞에서 원고를 갈아버림. 이에 빡친 토리야마는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겠다며 2년 간의 수행을 거듭하여... 닥터 슬럼프를 연재하게 됨. (그리고 여기서부터 전설이 시작되지) 이후 악연의 극치인 토리시마를 담당자로 두고 닥터 슬럼프를 연재하게 된 토리야마는 소재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악역 캐릭터를 만듬. 근데 토리시마가 임팩트가 없으니 작가에게 작가 기준으로 가장 악당같이 생긴 사람을 모티브로 새로 만들라고 시킴. 그러자 토리시마 본인을 그려가지고 옴.(어째 고이즈미하고 더 닮았지만...)  그 캐릭터가 닥터 마시리토. 처음엔 몇번 쓰다 버릴 캐릭터였는데 인기가 높아져서 장기 출연하게 됨. 담당자를 디스할 수 있어서 신이 난 토리야마는 이후 중간중간 담당자를 끼워 넣으면서 디스함. 마시리토로 저주인형을 만들기도 하며  독자 응모로 토리시마를 본딴 흉측한 키메라를 모집하기도 하고  햇님 얼굴에 토리시마를 그리기도 했으며  단행본에 토리시마가 친 사고를 실어서 디스도 하는 등 점점 겁대가리를 상실하게 됨. 심지어 토리시마에게 딸 생겼을 땐 딸까지 마시리토로 그려버리는 미친 짓까지 서슴치 않게 됨. 토리야마의 미친 짓은 차기작인 드래곤볼까지 이어지는데 토리야마가 마쥬니어 편 연재 직전에 토리시마에게 "오공이 나이 꽤 먹었으니까 슬슬 어른으로 성장시켜야 되지 않음?" 라고 물으니까 토리시마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라고 꾸짖었다고 함. 그 말 듣고 바로 어른으로 성장시킴. 당시 러브코미디에 빠져있던 토리시마가 오공과 부르마를 이어주라고 말하니까 씹고 치치랑 이어줌. 드래곤볼은 배틀만화인 만큼 강력한 악역이 필요하다니까 또 토리시마 본인을 모티브로 피콜로 대마왕을 만들어서... 죽임. (사실 이전에 만들었던 닥터 마시리토도 개그 만화인걸 이용해서 수시로 죽이긴 했음.) 여담이지만 토리시마 이후의 담당자 들도 다 하나같이 다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악역으로 만들어서 죽였다고 함. 근데 미스터 부우는 살아남고 프리저도 나중가선 살아났으니 결과적으론 토리시마만 죽었다고 할 수 있겠네. '편집자는 만화가의 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 하지만 좋은 편집자가 아니면 좋은 만화도 탄생하질못하는것도 사실 오다 봐라 편집자가 "이거 디자인 븅신같은대 이상하다하면 오다선생님 화내겠지?" 라는 생각부터 한다잖아
[펌] 2차대전 당시 영국의 뒷마당 벙커
다들 알겠지만 영국은 2차대전 내내 나치들 공습에 뚜들겨맞으면서도 항복하지 않은 근성으로 유명함 한 두 달도 아니고 몇 년을 이렇게 공습을 버텨낸 비결로는 집집마다 벙커 하나씩이라는 정책 덕분에 가능했음 이게 영국 정부에서 배포한 집에서 만드는 방공호 '앤더슨 방공호'임 존나 간단해서 며칠이면 뚝딱 만들 수 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이 설계도대로 만든다면 누구나 마당에 벙커를 만들 수가 있었음 마당이 없다면 유감이고 앤더슨 방공포의 규모는 이렇게 한 가족이 지낼 수 있는 규모부터 지하 교실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댕댕이 아지트가 될 수도 있었고 아예 아파트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근성의 영길리들은 이렇게 전쟁을 이겨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진 크리스마스 벙커 참고로 비슷한 집집마다 벙커 정책은 비스무리한 방식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했는데 그게 어디냐면 바로 같은 섬나라 일본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일본은 벙커까지 포함해서 죄다 목재였고 미군은 뽜이야 소이탄을 정말정말 좋아했다. 강까지 끓어올라서 뛰어든 사람을 삶아버리는데 지하벙커 따위로 목숨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일본의 벙커는 그날로 오븐으로 직종을 바꿨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 더불어서 소이탄은 사실 목재든 아니든 상관없이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그럼 나치는 소이탄을 안 썼나?' 궁금했는데 마침 댓글에 이런 내용이 있네요 단지 나치의 소이탄 폭격은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당연하지만 폭격을 하려면 제공권이 있어야하고 나치는 전쟁 초중반을 제외하면 제공권을 상실했으니 소이탄 떨굴 일이 드물었음 애초에 소이탄 생산도 부족한 마당에 지상 병력도 소이탄을 많이 써야해서 소이탄을 소량만 폭탄에 섞어쓰는 방식으로 썼기 때문에 막 드레스덴이나 충칭 , 도쿄처럼 불바다가 일어나진 않았음 그렇다고 합니다 아이 유익해라
국가별 게임 발매 금지 사유 TO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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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유우우우명한 암살 총 모음집
링컨 암살에 써먹은 25달러 짜리 데린저 권총. 보다시피 존나게 싸구려 권총인데 한 짓이 어마어마한 짓이라 지금은 가장 비싼 단일권총이란 타이틀을 꿰차고 있음. 무려 28억원이다 사라예보 사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1차세계머전을 일으킨 FN m1910임 총알 한방으로 800만명을 조진 개또라이 총이다. 불쌍한 황태자는 방탄복을 입고 있었는데 하필 절묘하게 총알이 목에 날아와서 그만... 이 총은 범행 후에 실종되서 어딨는지 아무도 몰랐다가 90년만에 발견된 걸로도 유명한데 어째서인지 가톨릭 신부가 가지고 있었다고함 지금은 박물관에 있어서 가격이 매겨지진 않았다. 전설적인 총잡이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가 쓰던 걸로 유명한 콜트 리볼버 번트라인 스페셜임 정신나간 총열길이가 특징적이다 사악한 독재자 히틀러 히틀러의 머리통에 권총탄을 박은 용감한 어쌔신 아돌프 용맹한 어쌔신 아돌프가 히틀러를 암살할 때 쓴 발터 PPK 독재자 권총 아니랄까봐 화려한 금장 도금에 자기 이름 이니셜까지 박아놨다 저거 박을 때는 이걸로 지 머갈통을 쏘게 될 줄 몰랐겠지 히틀러가 워낙 쫄보인지라 이걸로 한 방에 못 죽으면 아플까봐 청산캡슐을 삼키는 동시에 방아쇠를 당긴 걸로도 유명하다 히틀러가 50살 때 받은 생일선물인데 결국 이걸 쏜 건 지가 뒤질 때 쓴 단 한 발 뿐이었다 1980년대에 약 1억 3000만원에 팔렸는데 지금은 대충 10억은 가뿐히 넘는 비싼 몸이다 (김재규가 박정희 살해 당시 쓰였던 총과 같음) 아마도 이쪽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총이 아닐까 싶은 카르카노m91/38 리 하비 오스왈드가 미국 머통령 케네디를 암살힐 때 쓴 총이다 윗짤에서 불쌍한 영부인이 차 위를 기어다니고 있는건 무서워서 도망가는게 아니라 총에 맞고 박살나서 날아간 케네디의 두개골 조각을 붙잡으려고 하는 거다 이 총은 진짜 여러가지로 불가사의한걸로 유명한데 6층 높이에서 시속 16km로 움직이는 차에 탄 케네디를 한 방에 맞춘 것도 그렇고 그 한발이 희한하게 날아다니면서 몸을 관통해서 한방으로 2명한테 7개의 상처를 만든걸로도 유명함 움짤을 보면 알겠지만 탄도가 저렇게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휘어가며 몸을 관통했음 이 때문에 범인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명이고 리 하비 오스왈드는 구라쟁이 바지암살범 아니냐? 하는 음모론이 존나 유명했다 워낙 유명하고 쓰인 곳이 쓰인 곳인지라 경매에 붙여진 적도 없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뭔가 흥미돋아서 퍼오긴 했는데... 당췌 이걸 어따 발행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돌프 히틀러가 좀 피식했지만 유머는 확실히 아닌거같고... 총 관심사 검색하니까 한국노총만 나오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난번에 댓글에 캐쥬얼한 서프라이즈 보는 느낌이라고 하던데 진짜 정확한 표현인듯ㅋㅋㅋㅋ 앞으로도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다행히 이번 건 욕설이 별로 없어서 수월햇다..
일본 관료주의의 레전드 병폐 썰
일본 도쿄도 이즈 제도에는 미하라산, 우리말로 번역하면 '삼원산'이 있음. 사진처럼 자연경관이 빼어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인데, 유명해진 이유는 자연경관 때문이 아니고 활화산인 미하라산에 1928년 1월 도쿄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여학생 두명이 분화구에 투신자살을 하게 됨;;;; 두명이 자살한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6명이 분화구에 뛰어들었고, 25명은 물리적인 제제를 받아 투신에 실패함 1주일에 5-6번 꼴로 일어나는 투신자살을 구경하려는 관광객의 행렬이 줄을 이었음. 적어도 1년동안 140명이 분화구에서 투신자살을 했고 1934년에는 160명 이상의 사람들이 투신했고 1200여명이 경찰에 의해 저지됨 (사스가 자살의 나라;;;;;;;;;;;) 경찰은 24시간 체제로 분화구에서 감시활동을 펼치고 높은 철조망을 둘러침. 그렇게 제제를 해도 1936년에 최소한 600명의 사람이 투신자살... 결국 분화구로 올라가는 진입로를 봉쇄시키기 전까지 최소 1000명이 투신한 것. 그리고 관료주의의 끝을 보여준 사건은 1986년 11월 15일, 미하라산이 활동을 재개하면서 부터임. 화산활동에도 불구하고 당시 분위기는 '야 미하라산 터졌단다 우리 용암분수 보러가자' 이정도. 관광을 수입으로 삼는 지자체는 홍보로 활용하고자 했고 많은 사람들과 기자들이 모여들어 화산을 라이브로 감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 정도로 경각심이 풀어져 있었냐면, 분화구 근처까지 관광객을 인솔하겠다는 계획도 있었다고 함. 그러나 분화가 시작된지 일주일. 미하라산은 갑자기 전례없는 활동을 보여주기 시작함. 엄청난 흔들림과 함께 화산재가 8km 상공까지 치솟고 화산탄과 용암류가 흘러내리기 시작해서 주택가로 흘러옴 (8km는 서울역에서 양재역까지의 직선거리임;;) 이 미친사태에 관광객들과 기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대피하기 시작함 이 예상치 못한 대폭발 때문에 1만명이 대피를 가야했지만 시도때도 없는 화산성 지진과 주민 3명중 1명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라 시간이 지체됨ㅠ 설상가상으로 용암류가 방향을 급변경하여 대피하고 있는 '모토마치 항구'로 향함... 마그마가 주변 바다와 닿으면 이른바 '수증기 폭발'이 암시되는 최악의 상황이었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당시 이 상황을 접한 도쿄의 정부관료. 이 비상사태에 직면한 국토성은 운수성 등 외부 부처의 담당 과장을 긴급소집한 뒤 오랜 시간동안 회의를 함 근데 그 회의 내용이 가관. 1. 대책본부 이름을 '오오시마 재해대책본부'로 해야하는지 '미하라 화산 분화 대책본부'로 해야하는지? 2. 사고 발생 연도를 '1989년'을 해야하는지 '쇼와 61년'을 해야하는지? 3. 회의의 형식을 '약식각료회의'로 해야할지 '임시내각회의'로 해야할지?  회의가 열리는 도중에도 신속하게 현지의 상황이 보고되었지만, 국토성에서는 '회의중' 이라는 답변만 할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 결국 회의내용을 알게된 고토우다 마사하루 국방장관은 분노에 차 고함을 지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도쿄도의 관료들에게 맡겼다가는 X된다고 판단, 나카소네 총리를 필두로 고토우다 관방장관과 하시모토 운수대신등이 뭉쳐 피난민 이주대책을 실시하고 총리가 그에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고 선언. 주민들의 긴급피난을 위해 항구로 모여든 인근 해역의 어선, 민간선, 해상보안청 함선, 자위대 함선 등 약 40척이 집결, 화산 폭발 후 약 13시간만에 긴급 피난에 성공함  다음날, 국토성의 기자회견이 또 가관. " 관저 측은 독선적이고 난폭하다 " 저런 반응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일본국민들이 유우머... 이젠 놀랍지도 않음 ㅋㅋ.. 할말이 없다.. 끄읏.
강아지 구충제의 항암 효능과 플라시보 효과
플라시보 효과는  효과 없는 가짜 약을 줬는데, 환자의 긍정적인 믿음으로 인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함. 그런데 2000년대 이후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몇가지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넘어지거나 사고로 척추골절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가짜 시술을 해줬는데 일주일내로 즉시 호전되는 것을 느끼고 다시 일상생활을 영위 로션을 마취제라 속이고 통증 테스트를 했는데 진통 효과가 실제 마취제보다 뛰어남 이때 뇌를 같이 분석했는데 모르핀 같은 내인성 진통제가 분비됨 도파민 결핍으로 증상이 악화되는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가짜약을 주고 새로나온 신약이라고 했더니 뇌에서 도파민이 알아서 분비됨 플라시보 효과가 놀라운 이유는 카페인이나 마약, 알콜 같은 자극적인 물질을 섭취하지 않아도 어떤 믿음, 생각만으로 뇌의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여러 화학물질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하버드의대에서 이루어진 실험결과를 보면  '가짜약'이라는 것을 밝히고 실험을 했는데도 해당 집단의 62%가 증상이 완화됐다고 한다.  실험을 진행했던 교수의 말에 따르면, 약에 대한 믿음 뿐만 아니라, 사람(의사)에 대한 믿음 역시도 플라시보 효과를 발현시킬 수 있다고 함. 몇몇 의사와 연구진들은 플라시보 효과를 암벽타기에서 밧줄이 주는 안정감에 비유한다.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은 인체의 면역체계에 극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요즘 강아지 구충제 - 펜벤다졸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여기서 펜벤다졸의 항암효과 보다 중요한 것은, 약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다. 1957년에 '크레비오젠'이라는 신약과 관련된  유명한 플라시보 사례를 보면, 신약을 믿고 투여했던 암환자의 상태가  처음에는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신약이 암에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 밝혀지자  그 암환자는 다시 병세가 악화됐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결론은  말기암환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펜벤다졸을 먹을 경우 실제 항암효과의 유무와 관계없이 믿음만으로 일정부분 효과를 느낄 수도 있다.  다만 이 믿음은 펜벤다졸 복용에 의한 안 좋은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할 때, 급격하게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때문에 한가지에만 의존하면서, 의사와 약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것 보다는 현재 나온 항암제들도 정말 미친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강력한 약이라는 것을 믿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병행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이번 강아지 구충제 이슈를 촉발시킨, '조 티펜스'도 병원의 임상시험과 다양한 영양제를 같이 복용했다고함.
[펌] 19세기 미국을 방문한 일본 최초의 방미사절단의 반응
1860년, 미일수통상조약의 비준 및 교환을 위해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에 <공식사절단>을 보내게 됩니다. 막부는 이를 위해 네덜란드로부터 서양식 함선을 구매하여 <간린마루>라는 이름을 짓고 막부의 사절들은 여기에 승선하여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게 됩니다. 칸린마루호 동양국가의 정부관료들이 서양에 가보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사절단의 일행으로는 후쿠자와 유키치도 포함되어 있었고일전에 소개해드린 가츠 가이슈도 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조선과 중국을 존중했던 인물이었죠)  물론 동양국가 중에서도 일본은 일찍이 서양국가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이미 수집하고 있었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서양에 가보는 것은 그들에게도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문명의 조우는 분명 엄청난 충격이었을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양의 기록을 남겼는데요 그 중의 일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인터네셔널 호텔의 식사에 대해 "국(수프)은 느끼하고 안에는 간이 안 된 생선이 들어있다" "쌀은 일본쌀보다 하얗지만, 정말 맛이 없다" "고기는 짜고 약간의 야채와 하얀 콩이 곁들여져있다" "연어는 그냥 물에 끓인 것이다" "커피라는 차는 너무 쓰고 설탕 없이 먹기 힘들다" "식사는 물론 훌륭하게 준비되었고 미국에서 분명 엄청난 만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입맛에는 너무 맛이 없고 버터 때문에 너무 느끼했다. 하지만 우리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이것저것 조금씩 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필라델피아 호텔에서 "아..또 스테이크로다, 미국인들은 우리의 입맛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에 따라 미국인들이 쌀밥을 준비했지만 버터와 같이 볶은 쌀이어서 사절단 일행은 이를 정중히 거절했답니다. 그래서 미국 측에서 다음날에는 설탕을 친 쌀밥을 준비했더니.. 사절단 일행이 일기에 기록하길 "우리는 쌀밥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렸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빵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호텔룸에는 차가 준비되지 않았는데... "미국인들은 일본인이 녹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불평합니다.  이렇게 계속 궁시렁대기는 했지만 아이스크림은 정말 좋아했다고 합니다.  "여러 색으로 칠해진 얼음모양의 과자는 달고 맛있었다" 서양의 테이블 매너도 상당한 고역이었던 모양입니다. "대통령과 동석하는 식사에서 우리는 최대한 예의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연속적으로 나오는 접시 하나 하나 모두 낮설었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먹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옆에 앉아있던 아가씨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각자 앞에 작은 물항아리가 놓여졌는데 대통령의 조카딸이 여기에 손을 적시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를 봤을 때 는 너무 늦어버렸다. 우리의 비서 모리타가 항아리에 있던 물을 마셔버린 것이다! 오구리가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눈치를 주자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뒤늦게 손을 적시는 시늉을 했다." 이어 그들은 무도회장에 초대되었는데 남녀가 뒤섞여 춤을 추는 모습은 정말 낮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남자가 여자와 함께 방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다. 여인이 움직일 때마다스커트가 엄청 커지는 것을 보니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미국에서는 가난하건 부자이건, 젊은이건 늙은이건 모두 춤을 좋아한다고 한다. 무도회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에게 미국의 정치는 더욱 낮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미국의 지도자는 왕이나 황제가 아니었고 일반인들이 선출한 또 다른 일반인이었으며 대통령궁은 그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의 재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의회는 더욱 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이곳은 시끄럽고 난잡한 곳이었고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도무지 알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사절단이 기록하길 "이곳의 사람들은 큰 몸짓으로 연설을 하는데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보인다" "중요한 국가의 대사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서로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부의장이란 사람이 연단에 서있는 것을 보니 마치 에도의 니혼바시 시장처럼 보인다"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최첨단 기술이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의 기술을 대표하는 물건은 당연 <기차>였습니다. 사절단은 기차를 처음 타면서 적지 않이 놀랐습니다. 바퀴 달린 쇠붙이가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록하길 "열차는 8개의 차량이 이어진 것이었고 철로를 따라 움직였다. 점점 속도를 내자 실내는 크게 흔들렸으며 너무 시끄러워서 서로의 말을 잘 듣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더욱 놀랐던 것은 열차의 운임이 개인당 24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이 엄청난 물건이 그들이 미국에 오기 8년 전에 <민간인>이 건설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은 물건은 민간에 판매되는 <신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봤던 신문에는 일본의 간린마루가 소개되어 있었으며 일본의 사절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절단은 미국 신문에서 자기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무척 궁금해했으며 신문이라는 매체를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Roanoke라는 곳에 머물고 있었을 때 그들은 신문에서 일본에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마 당시의 대로(오늘로 치면 총리) 이이 나오스케의 암살 소식을 들은듯)... 사절단이 기록하길 "10,000 마일이 넘게 멀리 떨어진 곳의 소식이 불과 40일만에 신문에 기사화된다는 것이 자못 놀랍다" 또한 그들이 워싱턴에 왔을 때 그들 주변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수첩에 메모를 적는 것을 보았는데, 사절단이 저들은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어보자, 저 사람들은 신문사를 위해 일하는 기자들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들이 저렇게 바쁘게 메모하는 이유는 최대한 빨리 기사를 내기 위함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죠.  목욕시설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꼭지를 돌리는 것만으로 물이 쏟아졌고,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꼭지를 돌리는 것만으로 온수와 냉수를 바로 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내의 가스등은 밤에도 도시를 환하게 비추었고 미국과 영국처럼 멀리 떨어져있는 곳 또한 '전신'으로 이어져 있어 실시간으로 통신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놀라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사력의 실체는 그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요새들이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깨달았고 또한 군대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도 제빨리 파악했습니다. 사절단이 기록하길 "Roanoke, Pawhatan, Niagara는 모두 거대한 군함이며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이 군함들에는 진짜 군인이 12~1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항해사와 노동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미국을 무척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총과 대포를 운용할줄 아는 이들은 매우 적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군인을 쉽게 고용하고 또 해고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무사들의 용맹과 충성심으로 미국을 완전히 파멸시킬 수도 있겠다고 은밀히 생각했다" 그들은 또 뉴욕에서 군인 8,000 명의 행진을 구경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기병대는 모두 직업군인이지만, 나머지 보병은 모두 며칠밖에 복무하지 않는 상인들에 불과하다" "미국의 군사력은 '실속'이 없다" 무사계급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평민들이 돈을 받고 군대에서 일하는 게 어이없고 허술해보였다는 말입니다.  무사계급과 평민의 신분이 구분되던 막부체제의 관료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죠.  하지만 이렇게 비아냥대면서도 미국의 항구에서 조선소를 방문하고 나서는 입이 쫙 벌어졌다고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인들이 여인을 대하는 모습이 이들에게 너무 어색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여자를 마치 우리가 부모를 모시듯 섬긴다" "방 안에 남녀가 같이 있을 때 방에 들어오는 자는 여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내고 그 후 나머지 남성들에게 인사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인사할 때 모자를 벗어야 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길을 걸을 때는 남자가 여자를 위해 길을 비켜주어야 한다" 한 관리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는 "가장이 우리를 접대하기 위해 하인들과 같이 분주히 움직일 때 그의 아내는 우리와 함께 방에 머물면서 우리와 담소를 나눴다. 마치 그녀가 가장인듯했다" 사절단은 미국 여인들에 대한 품평도 남겼는데... "미국 여인들은 매우 하얗고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했지만, 그녀들의 머리색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마치 강아지의 눈색과도 같다" 하지만 흑발의 백인에 대해서는 "백인여인들은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마치 일본인형처럼 생겼다"고 기록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조카 엘렌이 사절단의 부대사에게 일본여인에 비해 미국여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미국여인들이 더 아름답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여인들의 피부가 더 희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했던건지 아니면 대통령의 조카가 물어보니까 립서비스한건지는 본인이 알겠지만 ~~~~)  다른 사절단이 기록하길 "미국여인들은 가슴을 가리는 데 특별히 신경을 쓴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 때에도 천으로 가슴을 가린다" (당시 일본은 어머니가 아기 모유를 먹일 때 가슴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미국을 여행한 최초의 일본인들은 정말 큰 충격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갔을 때 총리에 해당하는 대로(大老) 이이 나오스케는 암살되었고 정국의 분위기는 서양을 몰아내고 천황의 존엄을 지키자는 존왕양이파가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역설적으로 나중에 이들이 근대화를 추진한다는 게 함정...) 하지만 이들의 폭넓은 경험은 후일 일본의 개화에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 정부관료들과 사회의 엘리트들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이라, 그 영향은 당연 적을 수 없었겠죠.  아무튼 흥미로운 일화입니다.  훗날 조선도 미국에 방미사절단을 보내는데 뉴욕의 현대화된 도시를 보고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고함